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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과 수행

항상 집중해야 내면의 체험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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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여러 가지의 형태나 색깔로 나타나며, 때로는 일광과도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빛은 꼭 무슨 섬광이나 광선처럼 나타나서 여러분을 깨우거나 깜짝 놀라게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움직이는 듯한 암흑 또한 수행의 한 경지입니다. 그것이 그리 유쾌한 것은 아니지만 거기서라도 시작해야만 합니다.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어떤 때는 여러분이 아주 꼿꼿하게 똑바로 앉아서 명상하는데도 빛이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러다 간혹 몸을 편안히 하고 머리를 이렇게 하니까(스승님 의자에 축 늘어지며 머리를 뒤로 젖히다) 그제서야 빛이 나타나곤 하지요. 또 어떤 때는 머리를 한쪽으로 돌리는데 어디선가 빛이 오기도 합니다. 그러니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집중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좋습니다. 그래야 빛을 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빛은 여러분이 집중했기 때문에 있는 게 아니라 항상 존재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빛을 보고자 한다면 가끔씩 자세를 바꿔야 합니다. 전통적인 가부좌를 풀어 보세요. 바닥을 기어 볼 수도 있지요. 정말입니다. 이마를 바닥에 대면 빛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이들은 무릎을 꿇은 것처럼, 혹은 피곤해서 사지를 바닥에 대고 쓰러진 것처럼 해요. 그리고는 빛을 봅니다. 때로는 벤치에서 머리를 뒤로 잠시 젖히고 있는데 빛을 보기도 하지요. 항상 이곳(지혜안)에 집중해야 합니다. 늘 다리를 꼬고 이렇게 똑바로 앉아 있어야만 하는 게 아닙니다.

얼마 동안은 똑바로 앉아 있다가 좀 돌아다니거나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어 보세요. 관음할 때나 피곤할 때 취하는 자세 등을 취해 보세요. 그것도 여러분의 몸을 이완시켜 줍니다. 아니면 자리를 바꿔 보든가요. 의자에 앉아 보세요. 앉아서 얼마간 명상한 뒤 잠자리에 누우면 빛을 볼 수도 있어요.

빛은 어느 때나 옵니다. 입문 후에는 늘 빛이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아, 나는 지금 명상하고 있는데 빛이 오나 안 오나? (웃음) 오나? 벌써 왔어야 하는데!"라고 자꾸만 생각하는 게 문제입니다. 앉아서 빛에 관해서만 읊조릴 뿐 정작 집중은 하지 않지요.

때로는 집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오히려 집중을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생각?이나 마음으로는 집중할 수 없는 법입니다. 몸의 모든 세포와 뇌파 등 그 모든 게 이완되어야 집중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때로 그냥 웃거나 하품하거나 잠자리에서 뒹굴다가 빛을 보는 겁니다. 모든 세포가 이완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집중입니다.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지, 명상을 하거나 오불을 외우거나 다른 어떤 것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니 항상 주의를 집중하세요. 스승은 아무 때나 오고 빛도 아무 때나 옵니다. 단지 그 순간에 빛이 오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빛이 안 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를 기울이세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명상해야 합니다. 심지어는 걸으면서, 잠자면서, 먹고 말하거나 농담하면서도 항상 명상해야 합니다. 늘 내면에 주의를 집중해야만 합니다.

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내가 의자에 이렇게(스승님 머리를 의자 한쪽으로 늘어뜨리다) 늘어져 있는 모습은 여러분이 보기에 전혀 성인 같이 안 보이지요. 하지만 나는 그때 명상하고 있는 겁니다. 농담이 아니에요. 여러분도 해보세요.

꿈도 일종의 체험입니다. 앉아서 명상할 때만 체험이 있는 게 아닙니다. 체험이 언제 어떤 식으로 나타나도 그저 반가이 받아들이세요. 그게 여러분에게 좋습니다.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지고, 사랑이 더 많아지고, 더 지혜로워지고, 생활에 더 만족하고 더 행복해진다면, 그 모든 것이 다 명상의 결실입니다. 체험을 빛이나 소리로써 측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체험은 여러분이 기도조차 하지 않을 때 오기 때문이지요. 체험은 대부분 잠자는 동안에 찾아옵니다.

깨어나서 여러분이 그것을 기억하든 못 하든 체험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내가 보증합니다. 내 말을 못 믿겠다면, 아내나 남편에게 부탁해서 한밤중에 여러분을 발로 차라고 해보세요. 그러면 천 개의 별, 천 개의 태양이나 섬광의 잔상을 볼 겁니다. 그리고 그게 무엇이었는지 알게 됩니다.

내가 불교 선종의 승려들과 수행할 때 그들은 나에게 이렇게 (스승님 똑바로 앉아서 코를 내려다보는 명상 자세를 시범 보이다) 앉아서 눈을 뜨고 명상해야 한다고 했지요. 그런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내 코와 바닥만 보였지요! (웃음) 그래서 하루는 지친 나머지 눈을 감았더니 온갖 체험들이 있었지요. 그래서 그들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았어요. (스승님 웃음) 내 방식대로 했던거죠.

나는 구도의 과정에서 많은 스승들을 찾아다녔기 때문에 수많은 스승들로부터 배운 바 있습니다. 그 중 한 선사는 내게 이렇게 말했어요. "명상할 때는 가부좌를 틀거라. 다리를 더 많이 꼴수록 좋으니라." 그래서 나는 엉덩이를 쥐어짜고 사지를 뒤틀었지요. 아주 끔찍했어요! 그리고 눈을 제대로 감지 않거나 움직이거나 긁기라도 하면 어디선가 '찰싹!'(스승님 회초리에 맞는 모습을 흉내내다) 하는 소리가 들렸지요. 온몸을 뒤흔드는 매질이었어요. 그렇게까지 해도 아무런 체험이 없자 그냥 긴장을 풀기로 했지요. 그러자 천상의 모든 존재들이 나타났어요. (스승님 웃음)

그 승려들은 나에게 잠자리에서도 누워서 명상할 수 있다고 말해 주었지요. (내가 말했던 것처럼요. 그건 맞아요. 명상하기 위해 누울 때는 부처처럼 오른쪽으로 누워야 합니다.)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해봤습니다. 그런데 누워서 전력을 다해 명상했는데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지요! 그러다 잠에 들려고 뒤척이다가, 우와! 온갖 체험이 있었습니다! (스승님 웃음) 그러니 전통적인 자세가 정말로 우리에게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여러분 좋을 대로 하세요. 어떻게 하든 빛을 볼 수 있다면 여러분에게 좋은 겁니다.

그들은 나에게 이런 말도 했지요. "잠자는 동안에도 명상하고 싶으면 관 속에 누워 있는 것처럼 똑바로 누워야 해. 그리고 눈도 감아서는 안 돼." (스승님 한숨) 하지만 내가 그렇게 몇 시간이고 노력해 봤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요. 너무 피곤했고 눈이 마르고 아파서 이제는 잠에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리곤 오른쪽으로 돌아눕는데 갑자기 빛이 보였어요. 잠들려고 했는데 온갖 빛이 보여서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지요.

그러니 자신에게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대로 하세요. 만일 빛을 보고 싶은데, 바닥을 기어야만 빛이 보인다면 그렇게라도 하세요. 나는 절대로 다리를 꼬고 앉아야만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가부좌 상태에서는 쉽게 잠에 빠져들지 않는다는 것뿐입니다. 후에 여러분들이 향상되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한번 재미있게 실험해 보세요.

그리고는 나에게 와서 이렇게 말하겠지요. "아, 스승님. 저는 한쪽 다리로 서서 빛을 보았습니다! 저는 홍학의 자세를 취했습니다." (웃음) "아, 스승님. 저는 귀를 후비다가 천상의 존재들을 보았습니다." 그런 등등의 얘기들이 있겠지요. (웃음) 나중에 여러분의 모든 체험을 이야기해 주세요. 실험해 보는 겁니다. 물론 안전하게 해야지요. 우선 매일 두 시간 반 동안 앉아서 명상하고, 그후에 원하는 것을 해보세요. 어쩌다 몸이 피곤해져서 휴식을 취하다가 빛을 보고는 깜짝 놀랄 것입니다. 대부분 잠자는 동안에 빛이 옵니다.

여러분 중 일부는 왜 명상 중에 빛을 못 보는지 이유를 알아요? 여러분은 생각을 너무 많이 합니다! 뭔가가 오기를 계속 기다리지요. 기다리지 마세요. 기다리지 않아도 옵니다. 그것은 도망갈 수도 없습니다. 빛은 여러분의 내면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빛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여러분의 전신은 빛의 집결체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바로 해탈하는 때입니다. 여러분은 빛이요 소리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근육이나 신경조직이 아닙니다. 모든 게 빛과 소리로부터 창조된 겁니다. 밀도가 다른 것뿐입니다. (박수)

칭하이 무상사/ 1995. 10. 28. 포모사 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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