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감응
모든 면에서 나를 돌보시는 당신이 계시기에

황 사형 / 호주 멜버른

나는 중국 뻬이징에서 입문했다. 입문한 지 오래지 않아 나는 호주 멜버른으로 왔다. 모든 면에서 나를 돌보시는 스승님 덕분에 비록 처음에는 순조롭지 않았던 일도 나중에는 그 결과가 모두 완벽했다. 그래서 나는 스승님의 사랑어린 배려에 대한 나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이 글을 쓴다.

뻬이징 국제 공항에서 막 중국을 떠나려 할 때 나는 탑승권을 받지 못했다. 승무원은 내 티켓이 확인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나는 염려가 되어 곧 오불을 외며 스승님께 도움을 청했다. 결국 비는 자리가 하나 있어서 내가 탑승권을 받을 수 있다는 승무원의 말을 들었다. 나는 너무 기뻤다. 사실 그것은 스승님의 정교한 안배의 시작에 불과했다.

비행기가 상하이에 도착하자 옆 좌석의 승객이 내렸다. 승객들이 다시 올랐을 때 상하이에서 온 장 씨가 내 옆에 앉았다. 내 티켓은 확인된 것이 아니어서 나는 식사시간에 내가 주문했던 채식을 받지 못했다. 내가 식사시간에 식사를 받지 못하니까 호기심을 느낀 장씨가 내게 왜 채식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그에게 소개했다.

호주에 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서 공항으로 나를 마중 나올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뉴스잡지를 꺼냈다. 거기에는 멜버른의 유일한 채식식당의 주소가 있었는데, 나는 동수들을 찾기 위해 장씨에게 그곳에 가는 방법을 물었다. 그는 주소를 보더니 원래 자기가 그곳에 살았었는데 후에 채식식당을 연 동수에게 집을 팔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실제로 그 동수들을 알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자 그는 나를 그곳으로 데려다 주었다. 잠시 후 뻬이징에서 온 류 사저가 나를 친구의 집으로 태워다 주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진행되었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나는 그것은 진정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느낀다. 멜버른에는 수백만의 사람이 있고 비행기에는 수백 개의 자리가 있는데, 장씨와 나는 우연히도 같은 날 비행기에 올랐고 바로 옆자리에 앉은 것이다. 스승님의 위대한 힘이 아니라면 누가 이 같은 놀라운 안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집을 떠나 오기 전에 나는 스승님께 기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승님은 여전히 나를 돌보셨다. 이것은 스승님이 일찍이 말씀하신 것을 잘 보여준다. “때로 여러분이 스승에게 기도하지 않았어도 스승이 도울 때 그것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멜버른에 도착한 후에 나는 직업을 구하는 문제에 직면했다. 보통, 새로 온 사람은 수개월 동안 직업을 찾아다녀도 내 전문 분야에서 직업을 구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중국 본토에서 전통 한의학을 공부했다. 그래서 내가 서양의 약제사에서 직업을 구한다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스승님의 이 말씀을 기억했다. “만일 당신의 요청이 합당한 것이라면 스승은 분명 당신을 도울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스승님께 직업을 얻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같은 날, 나는 전화번호부에서 약제사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그리고는 나의 운을 시험해 보려고 회사에 구직 전화를 넣었다. 첫번째로 구직 전화를 한 곳에서 나는 곧 인터뷰를 받았다. 인터뷰 당시 매니저에게서 빈 자리가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다는 말을 들었다. 나중에 나는 실험실로 배치를 받았다. 월급도 많았다! 와! 나는 단지 열흘 만에 일자리를 구한 것이다. 그것은 정말 믿지 못할 일이었다! 나는 스승님이 나를 그 회사에 집어넣어 주신 것을 알았다.

내 직장이 시드니에 있었기 때문에 다음으로 할 일은 살 곳을 찾는 일이었다. 직장 근처의 아파트는 비는 곳이 없었고 주택은 커서 임대료가 비쌌다. 그래서 나는 첫날은 매니저의 집에서, 그리고 다음날은 중국인 동료의 집에서 머물고, 셋째날은 호텔에서 묵어야 했다. 그날 밤 나는 신문 광고에서 직장 근처의 집들보다 두서너 배가 더 싼 곳을 발견했다. 나는 아주 흡족했다. 그때 나는 뉴스잡지를 펴 놓고 파리 단체명상에서의 질의응답 부분을 보았다. ‘스승님은 생사를 함께하는 친구이다’라는 제목이 붙은 글이었다. 나는 너무 감동한 나머지 마음속으로 울음을 터뜨렸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다음날, 일을 마친 후 나는 택시를 타고 새 집으로 갔다. 그런데 택시는 불과 몇 분도 가지 않아서 멈추었다. 내가 왜 그러냐고 했더니 그는 목적지에 당도했다고 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곳이 직장에서 걸어서 얼마 안 걸리는 곳이라는 걸 알았다!

호주에 온 이후로 내게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스승님께 얼마나 감사하는지 수백 수천 가지의 말로도 표현할 길이 없다. 오로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스승님의 성스런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부지런히 수행하고 내 업장을 견디는 것뿐이리라!

- 뉴스잡지84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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