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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길목에서

세계에 기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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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칭하이의 날’ ‘세계에 기쁨을’. 칭하이의 날 시후 센터 정문에 걸린 영문표어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선칠 기간 동안 그 옆을 지나갈 때마다 나의 가슴 속에는 벅찬 즐거움이 용솟음쳤다. ‘세계에 기쁨을’이란 문구는 나에게 아름답고 근사한 메시지, 즉 “영적 수행은 금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일깨워주었다. 스승님께서 작곡하신 ‘가자, 가자, 가자(Go, Go, Go)’라는 제목의 노래 가사와 같이 우리는 명상수행을 하면서 동시에 세계에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스승님의 예기치 않은 계획

내가 막 입문했던 시절이 기억난다. 그 당시 나는 마치 부끄러운 듯 봉우리를 살포시 내밀고 이 세상 주위를 살피는 어린 새싹과도 같았다. 나는 시후센터 건립 3주년 기념일에 ‘모든 종교의 틀을 깨자’라는 내용의 댄스파티를 개최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출가자들은 우아하고 매혹적인 모습의 소녀같이 차려 입었으며 아울러 스승님은 등이 노출된 밝게 빛나는 이브닝 가운을 입고 얼굴은 색색으로 화장을 했으며 음악에 맞춰 우아하게 춤을 추셨다. 그 당시 나는 여전히 ‘종교적인 관념’에 사로잡혀 있어서 이러한 광경에 어이가 없었다. 그때 한 동수가 스승님은 외면에 대한 우리의 아집을 깨고 있다고 나에게 말했다. 당혹함을 느낀 나는 조심스럽게 달마조사의 ‘파상론(破相論)’을 살펴보았고 거기에서 다소 위안을 얻었다. “외모는 내면의 수행과 아무 관련이 없다. 스승님이 이처럼 행동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즈음 나는 마음속에서 무언가 느낌을 받았는데 그것은 스승님이 우리들, 즉 미래에 부처가 될 사람들을 놀래주기 위해 가끔 예기치 못한 책략을 사용한다는 것이었으며 나는 그 속에 담긴 스승님의 노고와 의도를 돌연 깨닫게 되었다.


금욕적일 필요는 없다

그 뒤로 스승님은 머리를 길렀으며 화장을 했고, 마치 상아(달의 여신)와 같이 차려 입으시거나 우아하고 독특한 의상을 입으시기도 했고, 고대 중국의 황제와 같은 역할을 하시기도 했으며, 그림을 그리고, 발로 피아노를 연주하기도 하고, MTV에 모습을 나타내시기도 했으며, CD를 제작하고 천국의 보석 디자인도 하고, 천의 패션쇼도 개최했으며, 칭하이의 날에 참석한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몸소 공연까지 하셨다. 스승님께서 하신 이 모든 예기치 못한 일들은 외견상 영적 수행과는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나는 스승님의 예기치 못한 행동에 완전히 면역이 되어 있었고, 항상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 박수를 치곤 했다. 점차적으로 나는 스승님이 “단순한 생활이란 네가 어디에 있든 편안한 기분을 갖는 것이며, 네가 무엇을 하든 그것을 즐기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히말라야나 사찰의 납골당 혹은 텐트나 해먹 아니면 평범한 가옥 등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스승님은 항상 이와 같이 사신다. 좋은 옷에 좋은 음식을 먹든 말든 혹은 화장을 했건 안했건 간에 그런 것과 무관하게 스승님은 늘 좋게 느끼신다. 외국 강연시에나 홀로 있을 때나 은거를 하실 때나 아니면 유쾌하게 노실 때 등 어떤 상황 속에서도 스승님은 그 모든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신다. 스승은 이렇다. 늘 평상심을 유지하며 단지 신의 섭리에 따를 뿐이다. 어떤 것을 갖든지 잃어버리든지 둘 다 좋다. 스승님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편안하며 항상 자기 자신을 몰입시키고 즐거움을 발굴해 내신다. 만약 우리도 이와 같이 될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금욕적인 삶을 살겠는가?


내적 순수함을 견지하라

막 수행을 시작했을 무렵 나는 모든 욕망을 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어떤 욕망도 억누를 수가 없었으며 억지로 그렇게 하는 것이 실로 고통스러웠다. 지금은 우리가 그러한 금욕에 대해서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점차적으로 깨닫고 있다. 진실로 우리가 신실함과 믿음을 갖고 우리의 내면의 순수함을 지킬 때 창조주와 하나가 되고 창조주가 우리에게 준 모든 것을 즐기게 된다. 이와 같이 우리는 우리가 느끼는 대로 자연스럽고 순조롭게 살아갈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우리의 근심걱정은 연기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육조 혜능이 “본디 아무것도 없거늘 티끌이 어디에 붙어 있겠는가?”라고 말한 바이다. ‘사랑의 바다(The Ocean of Love)’라는 노래에서 스승님은 “나의 가슴 깊은 곳에서 휴식하라, 그러면 너희들은 자유를 알게 될 것이다. 사랑의 품안에서 쉬라… 그러면 너희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들이 갈망해온 모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깨닫고 이해하고 계획하며 자기 자신과 다툴 필요조차 없다. 단지 우리는 온전히 신에게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일단 우리가 신에게 모든 것을 바치기만 하면 우리는 완전한 즐거움과 위안을 알고 그것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스승의 모범을 따르라

스승님은 “만약 너희들이 부처와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한다면 그때 너희가 바로 부처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불성을 깨닫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러나 만약 우리가 걷거나 앉거나 잠자거나 먹거나 놀거나 명상하거나 가정을 돌보고 일하는데 있어 부처와 같이 할 수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신, 구, 의 모든 면에서 부처와 같이 되라. 그때 우리는 진실로 부처이다!

- 뉴스잡지 53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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