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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스승님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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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의 유럽 순회강연을 따라가다

순회강연을 위한 스승님의 유럽 방문이 이루어지는 날이야말로 입문 이래로 나의 꿈이 실현되는 날이며, 그날은 기다릴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스승님 곁에서 함께 지낸 며칠이야말로 일생 중 최고의 행복과 희열과 성취감을 느낀 때였다. 그동안 나는 스승님이 밤낮없이 많은 일을 하며, 얼마나 많은 사람을 보살피고 매사에 사랑을 주시는지 알 수 있었다. 멀리서는 그것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스승님이 강연중이거나 질문에 대답하는 동안에 우리들로 하여금 벅차고 고양된 느낌을 가지도록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분이 어떤 느낌을 갖고 있는지, 피곤하지 않은지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 스승님은 매연과 소음으로 가득한 곳에서 중생들을 위하여 그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 점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으나 스승님은 항상 우리를 먼저 생각한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스승님이 순회강연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같은 세부적인 일에 신경쓸 시간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 스승님은 모든 일에 주의를 기울인다. 우리가 불평하는 것을 그 분은 모두 알고 계시다. 그 분은 우리를 완전히 알고 있으므로 우리들의 문제와 좌절감을 뚜렷이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를 돕고자 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문제부터 해결하고 다른 문제를 오히려 야기치 말고, 상식을 활용하여 사려 깊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스승님이 농담하는 것처럼 보일 때 특히 우리 개인에 대해 하시는 모든 말씀은 우리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것이므로 소중히 기억해야 한다. 그 분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면서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우리를 돕는다.


스승님은 완전함의 표상이다

나는 듣는 것보다 보는 것을 통하여 보다 많은 것을 배운다. 스승님 주변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그 분은 언제나 어린이나 노인이나 병자 등 모든 사람을 생각하고 보살피신다. 심지어 스승님은 좌석이 없는 사람이나 자신을 볼 수 없는 사람 혹은 강연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는 뒤쪽의 청중 한 사람에게조차 주의를 기울이신다. 스승님은 당신 자신에 대한 생각에 앞서 언제나 모든 사람들이 음식을 갖고 있고, 편안하며,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가를 확인하신다. 만일 우리가 그 분의 모범을 따른다면, 이 세상은 틀림없이 천국으로 변할 것이다.

이번 여행을 통하여 나 자신이 지혜를 자주 사용하지 않고 마음을 너무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습관이란 깨기 어렵다! 무슨 일을 하든 주체가 나라고만 생각하지, 내가 단지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결과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당신의 뜻을 이루었습니다.”라고 했다.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이 환상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세상일로 영향을 받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예수님의 그 짧은 말씀 속에 숨어 있는 큰 뜻을 발견했다. 그것은 모든 것을 그렇게 우리로부터 먼 곳에 옮겨 놓아, 우리로 하여금 쓸데없는 짐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준다.


언제나 기민하고, 주의 깊고, 깨어 있자

스승님은 우리의 잘못된 관념과 집착을 버리도록 항상 우리를 여러 가지 상황에 처하게 해서 경험을 통해 배우도록 하신다. 스승님과 함께 일하려면 필히 기민하고, 주의 깊고, 집중력을 가져서 언제든지 봉사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이것은 최고의 훈련이며 최대의 도전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하며, 주변의 업무를 수행해야 하고, 우리의 두뇌와 에고로 인해 스승님의 일에 장애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필요할 때만 생각하고, 그 외에는 자신의 지혜나 내면의 스승이 일을 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나는 스승님이 사람들을 가까이하고 그들의 요구사항과 관습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을 보고 감동받았다. 대부분의 스승은 통상 한 가지 언어만을 고집하지만, 우리 스승님은 그렇지 않다. 스승님은 파리, 제네바, 브뤼셀에서는 불어를, 비엔나, 뮌헨, 베를린에서는 독일어로 말했다. 이따금씩 그저 한두 마디 하는 것이 아니라, 강연 전체와 질의응답과 모든 대화를 다른 언어로 했다. 하루나 이틀 정도 지나서는 딴 도움이 필요 없을 정도로 스승님의 불어가 빨리 느는 것을 보고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스승님은 불어와 독어로 재담까지 하여, 말할 필요 없이 사람들은 스승님의 친절과 사랑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대부분의 경우 스승님이 그렇게 엄숙히 있지 말고 평소처럼 하라고 할 때까지 청중들은 스승님이 농담을 해도 마음놓고 함께 웃어야 하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살아 있는 스승 앞에서는 어떻게 처신해야 된다고 미리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


깨닫는 것과 아름다운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스승님은 사람들과 보다 가까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그들의 언어로 말씀하셨다. 또한 스승님은 입을 옷을 고르는데도 파리인들의 미적 감각을 존중하려고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셨다. 그 분은 깨달음과 아름다움은 서로 배타적이 아니며, 일단 깨달은 후에는 아름다움과 우아함에 대한 감각이 더욱 세련된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사실, 유럽이나 다른 어느 곳에서도 스승님은 자신이 더 위대하고 남들과 다르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그녀는 항상 우리 모두는 같다고 주장한다. 그녀가 우리보다 더 많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녀가 우리보다 자신에 대하여 더 많이 알고 있을 뿐이다.

베를린이 유럽 순회강연의 종착지였는데, 스승님은 청중에게 작별의 축복을 주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질의 응답 시간을 연장하셨다. 스승님의 말씀은 청중들로 하여금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 그러한 것이 우리가 선택한 길의 위대성과 수행, 이 세상에 대한 우리의 책임, 이 최고의 법문을 사람들에게 주기 위하여 스승님이 감내해야 할 희생과 고통을 알도록 일깨워 주었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찾기 위하여 여러 해를 방황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 뉴스잡지 29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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