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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길목에서

이것이 나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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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에고는 작은 일에서는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 작은 일을 할 때도 불평, 불만을 터뜨린다면, 어떻게 그에게 큰일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사소한 일로 다툴수록, 에고는 더욱 커진다.

약 1년 전 나는 아내에게 “스님생활은 정말 가장 이상적인 삶이지만, TV 없이는 살 수 없어서 두렵소.”라고 말했다. 나는 TV를 그다지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무척 즐겼다.

최근 나는 시후 명상센터에 와서 한동안 지내려고 노력했다. 열흘 후 집에 왔을 때 놀랍게도 TV를 틀고 싶지 않았다. 예전에는 신문을 읽지 않을 때는 뭔가를 잃은 것같이 느끼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우연히 보게 되더라도 마음이 어수선해지는데, 말할 것도 없이 내가 신문을 펴서 읽게 된다면 어떻게 느끼게 될까!

내가 센터에서 지낸 열흘이 이런 변화를 일으키게 한, 스승님의 커다란 축복이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10년 전쯤, 나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일 년 동안 한 영적 수행단체의 일원으로 모임에 참가한 적이 있다. 이 모임에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이런 내적인 변화를 깨닫지는 못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나는 점차 예전으로 되돌아갔다.

그 경험이 나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멋있고 조용한 장소를 찾거나 영적 수행자의 모임을 따라다니면 영적 수준이 나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내 경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즉 세상의 걱정거리를 뒤로하면, 그는 영원한 해탈에 대한 동기와 열정을 잃을 것이다.

덧붙여 말하면, 사람들이 칭찬하기 시작하면 그의 에고는 점차 커진다.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소위 영적 수행자들을 가르치기가 가장 어렵다. 그들의 선생과 같은 깨달은 스승 없이는 그들의 자아는 사회적 지위에 비례해서 부풀어진다.

내가 이 센터에서 평거주자로서 살기 위해 병원 일을 그만두려고 결심했을 때, 고용주는 계속 근무하게 하려고 매우 애썼다. 만약 승진을 원했더라면 감히 요구조차 할 수 없었을 정도의 많은 보수를 제안받았다. 많은 사람에게는 좋은 기회였으나 나는 금과 다이아몬드의 차이점을 알고 있었다. 지난 십 년 동안 영적인 삶을 살도록 도와주었던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일 년은 나의 버릇을 변화시킬 수 없었지만, 시후 센터에서의 짧은 열흘간의 생활은 수십 년간의 버릇을 뿌리째 뽑아버렸다.

그러니 100일이나 1,000일간의 수행 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스승을 진정으로 따르는 출가승이 되기를 원한 것이 나의 사사로운 복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관음법문의 깃발을 곧게 높이 올리고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옆에서 구경만 할 수는 없었다. 이 운동의 한 부분이 되어야 했다.

6개월 전, 나는 한 달이나 계속된 일련의 세미나에 참석했다. 주제의 범위는 정치, 경제, 법률 등을 광범위하게 포괄했다. 150명의 참석자들은 그해 포모사의 일류 의사들이었다. 세미나 후에 치른 시험에서 나의 점수는 가장 높았다. 시험결과는 공개하지 않도록 되어 있었지만, 내 점수가 워낙 높아서 새어 나왔다.

나는 일등이 되려고 애쓰지 않았기에 별로 기쁘지 않았으며, 나의 지식과 지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차분한 마음이었다. 나는 그저 보통 사람이었다. 내가 뛰어날 수 있었던 것은 관음법문을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취는 우리 동료수행자 사이에서는 빈번하다.

이러한 인간능력은 일반 사람에게는 부러움이 되겠지만, 센터에서는 내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센터에서 하는 일은 부처와 보살의 일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 일을 다루기 위해서는 지혜와 미덕, 공덕이 있어야 한다. 누구든지 세상의 영리함이나 지식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센터에서 평거주자가 되자마자 나는 동료수행자들이 말하는 어떤 것도, 스승님의 말씀을 대신하고 여건이 어떻든지 스승님의 교훈이라는 것을 되새겼다. 이러한 생각으로, 나는 참기 힘든 여건을 이겨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내가 도착한 첫날, 텐트를 치는 동안 배수로를 파느라고 지쳐 있었다. 거의 마쳤을 무렵, 한 제자가 와서 “아니야, 여기 파면 안돼! 다른 제자가 방금 이 땅을 고르게 했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허겁지겁 도랑을 묻고, 미리 땅을 고르게 했던 그 제자에게 사과했다. 뜻밖에 그는 “네가 평거주자로 여기 살려고 한다면 도랑을 파도 좋아!”라고 말했다. 나는 뭐라고 할 말을 잊었으나, 스승님이 우리의 불만을 단련시키곤 하는 작은 사건이라는 것을 알았다.

또 다른 어느 날, 우리는 마당의 나무뿌리를 뽑으라고 들었다. 내가 깨끗하고 철저하게 일을 마쳐 혼자 기뻐하고 있을 때, “아니야, 아니야. 흙이 아주 쉽게 부식되는 걸!”이라고 제자는 내게 말했다. 나는 멍하니 섰다. 가벼운 망설임이 내 마음을 스쳤더라도, 이것이 스승님의 의도였다면 아무것도 다툴 일이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동안에, 나는 스승님의 명확한 인내와 사랑을 관찰했다. 끊임없이 시험받고 오해받는 이는 스승님이지 제자들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너무 많은 시험이 있다고 여전히 느꼈다면, 그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었던 나쁜 속성을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나 자신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스승님의 시험으로는 가치가 없었다! 나는 어떤 것도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센터에서 거주하기 전에, 나는 영적 수행이 매우 낮은 수준이어서 출가승으로서는 말할 것도 없고 평거주자로서도 적합치 않다고 느꼈다. 나는 스승님의 영적 길을 따라 지난 삼 년에 걸쳐 모든 분야에서 많이 배우고 향상되었음을 알았지만, 센터를 돕거나 스승님을 위해 봉사한다는 에고에 찬 생각은 곧 사라졌다.

그러나 스승님은 지난 몇 달에 내 의심을 씻어 주었다. 나는 삼십 몇 년 동안의 집착 때문에 앞으로 몇 년이나 더 허비해야 하느냐고 스스로 간혹 묻는다. 스승님은 출가승이 되는 것은 남을 섬기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할 수 있는 동안은 섬기기 원한다. 나는 스승님에게 나를 받아들인 모험을 감수하심에 감사드리고 싶다. 센터에서 사는 데 적응하는 시간이 좀 걸리지만, 나는 진실로 지금 행복하다.

어떤 성직자가 팔십 노파에게 “계획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죽기를 기다린다.”라고 대답했다. 그 성직자는 “안돼요! 당신은 오늘부터 사는 걸 시작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후일, 지난 몇 년이 그녀 삶의 최고의 해였다고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우리 제자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즉 입문 후에 우리는 다만 죽기를 기다리지만, 이것은 새로운 삶의 시작일 뿐이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알기 원하는 사람이나, 관음법문을 널리 알리는 데 열심인 사람이나,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시후 명상센터에서 1, 2년 지내는 것이 이 생애에서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대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생활이 아주 좋다고 느끼더라도 너무 특별난 것을 찾으리라고는 기대하지 말아라. 그리고 여기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이 전 세계를 뒤흔들지라도 뭔가 엄청난 일을 해내리라 기대하지도 말아라.

- 뉴스잡지 22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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