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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길목에서

둥지로 되돌아온 길 잃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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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길목에는 대단히 많은 함정이 있다. 만일 완전한 스승의 보호가 없으면 일단 함정에 빠지게 되었을 때 이를 회복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작년 나는 큰 잘못을 범했는데 그것은 모든 동수에게 영향을 주어 그 파장은 대단히 켰다. 그 사건은 스승님으로 하여금 부득이 나를 승단에서 축출하여 다시는 스승님을 뵈러 올 수 없도록 만들었다. 승단을 떠난 후 둥지를 떠난 새 마냥 나는 의지할 곳이 없었다. 세상은 이미 옛날 같지 않았다. 2년여의 출가 생활은 그리 긴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다시 전에 익숙했던 재가 생활로 되돌아가 볼까 생각했지만 아무리 해도 다시 적응할 수 없었다.

시시각각 나는 승복을 입고 있을 때의 일들이 그리웠다. 스승님께서는 붓을 들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내 생명의 화폭 위에 2년간의 다채로운 그림을 그리셨다. 스승님은 나에게 존엄성을 되찾을 수 있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용기를 가지고 불완전한 내 자신에 맞설 수 있도록 했다. 스승님은 또 믿음을 주시고 내 자신의 가치를 찾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화원에 핀 독특한 꽃들로서 하나님의 안배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꽃을 피운다는 것에 확신을 주었다. 나에게 이러한 호의를 베풀어 주신 스승님을 나는 도리어 마음 아프게 했던 것이다.

나는 부단히 하나님께 다시 나에게 기회를 주도록 간구했다. 왜냐하면 나는 생명이란 단지 음식물에 의지하여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상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생명의 즐거움을 앗아가 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매일 내 자신을 돌아보면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두 손을 보면 단지 자신의 안락함을 위해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이것은 처음 승단에 있을 때 설혹 비바람이 휘몰아쳐도, 저녁 이슥할 때까지 일을 해도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때와는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마치 형을 받고 언제 풀려날지 알 수 없는 죄수와 같았다. 나는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한 구절을 기억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이라도 나에게 의지하려 하고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는 그가 나를 의지할 수 있도록 계속 살아갈 것이다. 스승님께서 필히 나를 구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나는 계속해서 기다렸다. 처음 승단에 축출되었을 때는 너무 갑자기 닥쳐온 현실을 직면하기가 어려웠으나 점차 적응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욱 더 참회와 반성을 계속하게 되었다. 몇 차례 중대한 고비와 위험한 상황이 있었다. 다만 새벽녘 그리고 황혼에 스승과 제자가 함께 보냈던 지난날들을 생각하면 마음을 억제할 수 없어 깊은 골짜기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스승님은 말씀하시기를 입문을 한 후에는 스승님의 화신이 24시간 우리와 함께 하여 길을 걸을 때나 일을 할 때나 밥을 먹을 때 명상을 할 때… 영원히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몇 개월 동안의 생활 중에 수많은 체험을 했다. 예를 들면 물건을 사기 위해 서비스 센터에 가는 도중 나는 다시 집에 돌아가야 했다. 왜냐하면 물품 구입증을 집에 두고 왔기 때문이다. 전에 도장(道場)에서 생활할 때는 모든 일을 스승님께서 돌봐 주시기 때문에 천당과 같았다. 어디 먹고 자는 문제를 걱정해 본 적이 있는가? 밖에서는 어떠한가. 집을 세들었으니 매달 말이면 월세를 지불해야 한다. 내 몸에 한 푼도 없다는 것을 안 집 주인은 스스로 방세를 인하해 주었다. 또 한 번은 방세를 되돌려 주며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까지 했다. 이처럼 생활도중에 일어나는 우연과 신기함은 꼭 일어나야 할 상황에서 정확히 발생하는 것이다. 경험을 해본 동수들은 그에 함유된 신비함을 깊이 알고 있을 것이다.

명상센터 부근에 거주하는 것이 집단명사에 참여하는 데 편리했기 때문에 설혹 인근 주위에서 담배 연기와 술 냄새가 나의 작은 방에 끊임없이 풍겨왔지만 나는 인내와 함께 꾸준히 생활했다. 스승님께서 화신으로 나타나셔서 나를 위로해 주시는 날에는 항시 눈물을 머금고 잠에 들었다가 미소를 머금고 깨어나곤 했다. 몽롱한 꿈속에서 스승님의 자비로운 충고와 용기는 내가 어려운 환경을 버텨 나갈 수 있도록 했다. 단지 나 하나만의 외로운 투쟁을 한 것만은 아니었다.

미아오리에는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매 일요일 마다 타이중의 명상센터에서 하루 종일 명상을 하곤 했다. 동료 수행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스승님과 도장에 관한 모든 소식을 묻곤 했다. 그들이 얼마를 기억하고 있건 그들이 말해 줄 때마다 이야기의 삼매에 빠져들곤 했다. 어떤 때는 오직 한 마디만 들려줄 때도 있었다. 스승님께서 전화를 주셨는데 우리들을 아주 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 말만으로도 나는 눈물이 시야를 가려움을 느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스승님께서 가르침을 주시는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싶은 갈망이 더욱더 간절했다. 요즈음 나는 거의 매주마다 미아오리의 도장으로부터 비디오테이프가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어떤 주에는 한꺼번에 5권의 테이프가 나오는 때도 있었다. 나는 스승님께서 하루 종일 제자들과 출가승들을 돌봐줌으로 인해 감당하기 어려운 피로가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밤을 새워 가면 비디오테이프의 출간을 지도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 수 있었다. 스승님께서는 가르침을 주시는 장면과 일상생활의 내용이 담긴 비디오 케이프를 가능하면 빨리 그리고 가장 완전하게 동수들에게 보내 주시려는 것이다. 원래 보이지 않은 이면에서 너무도 많이 갈망하는 눈물은 스승님을 재촉하여 하루 종일 쉬지도 못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기적이란 절망 끝에 갑자기 눈앞에 전개 된다. 작년 성탄절 전야는 내가 미아오리를 떠난 지 3개월이 조금 더 되는 기간이었다. 마치 3천년이나 된 듯한 시간이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스승님께서 일본으로부터 포모사에 되돌아 오셨기 때문에 동수들은 모두 미아오리로 가 스승님과 즐거움을 나누었다. 평상시처럼 나는 쓸쓸히 남아 재작년 스승님께서 코스타리카에서 성탄전야에 가르침을 주신 내용의 비디오테이프를 틀고 있었다. 귀 언저리에는 나에게 너무도 익숙한 성탄절 전야의 캐럴송이 울렸다. 스승님께서 가피물을 분배해 주시는 장면의 화면 역시 나에게 너무도 익숙했던 것들이었다. 동수들은 이때 스승님을 에워싸고 스승님께서 들려주시는 가르침에 귀기울이고 하나님께 바쳐졌던 사탕과 비스킷을 나누어 먹던 장면이 눈에 선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맛도 스승님께서 친히 가피하신 과자들의 맛 보다 맛있는 것은 없다. 화면에는 코스타리카의 귀엽게 생긴 어린 동수가 목마를 타고 놀다 사탕을 땅에 떨어뜨리는 장면이 비쳐졌다. 나는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차가운 냉기만이 나를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왜 과자를 사다 두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을까 하고 후회했다.

원래 천주교도였던 나로서는 일년 중 가장 즐거운 날은 바로 성탄 전야였다. 옛날 부드럽고 휘황하게 장식되어 있던 교회,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장식된 비둘기, 자정 미사, 그리고 한 때 실현된 적이 있다가 지금은 완전히 부셔져 내린 천사의 꿈 등이 뇌리를 스쳤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복받쳐 오르는 설움을 참기 어려웠다. 예수 그리스도께 원망어린 호소를 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줄곧 당신을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 저녁처럼 잔인하게 버려두십니까? 그 다음날 스승님은 과연 시방삼세불의 대표적인 존재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왜냐하면 스승님은 나의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무례하다 할 정도의 원망을 들으셨기 때문이다. 성탄절 하오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스승님께서 사면을 내리시어 스승님께 다시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어떻게 해서 다시 스승님 곁으로 돌아오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알려고 할 필요도 없고 또 나로서는 알려고 해야 알수도 없다. 禪三 때 스승님께서는 스승님이 원래 서원이 무엇이었는지 말씀하셨다. 스승님은 그녀의 모든 공덕을 구제받지 못하고 지옥에서 헤매는 중생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원하셨다. 내가 절망에 빠져 있었을 때 하늘과 땅에 울부짖어도 아무런 감응이 없었을 때에도 스승님만은 나를 버리시지 않았다. 내가 그녀의 마음을 그토록 아프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최후까지 제자를 지켜주신다는 그녀의 말씀을 지키셨던 것이다.

불가사의한 일은 스승님께서 세상의 모든 고통을 온 몸으로 짊어지는 가장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무한한 사랑의 힘이 훨씬 더 발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의 업장을 감당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나는 어찌 한 개인의 몸으로 천백억 배의 짓눌려 오는 압박을 감당할 수 있는 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나의 스승님은 바로 이를 감당하시는 존재인 것이다. 그녀는 매분 매초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짊어지시고 계신다. 왜냐하면 그녀는 사랑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 뉴스잡지 20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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