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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길목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꼭 알맞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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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니 아마 나의 경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얼마나 축복받고 있는가를 항상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꼭 알맞는 것이다.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고 꼭 알맞는 것이다. 조금도 지나침이 없다. 게다가 우리는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것에 대처할 힘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을 모른다. 항상 불평하고 만족하지 못하면서 ‘기진맥진’해서 뭔가에 속았다고 느낀다. 달리 말하면 항상 자책하고 산다는 것이다. 여태껏 나는 이런 유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서 나는 내가 진실로 축복받고 있다는 것을 다시 배웠다.

나에게는 어른이 다 된 정말로 착한 마음씨를 가진 리키라는 아들이 있다. 그 애는 독서 장애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주의력 분산 증세, 즉 자폐증에 가까운 정신분열증에 시달리고 있고, 간질 증세로 인한 발작을 일으키는 경향도 있다. 이 방면의 전문가와 나는 아직도 전반적인 문제를 알지 못하고 있다. 정신병원 의사는 리키의 증세가 아주 복잡 다양해서 진단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리키의 지능지수는 정신박약아에 가깝다. 리키는 어린아이 같은 지능과 천진함을 지니고 있다. 무엇인가에 집중하기 어렵고, 마음은 끊임없이 방황해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TV를 보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상태가 더욱더 악화된다. 간단히 말하면 쓸모가 없는 사람이다.

우리가 리키의 문제를 최근에서야 안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아들이 태어난 지 몇 주 되었을 때 이미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아내는 전적으로 그 문제를 나에게 해결하라고 맡겼다. 여러 해 동안 아들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 했으나 의사에게 돈만 보태줄 뿐이었다.
나는 나의 좌절감과 분노, 고통을 반항과 저주라는 형태로 발산했다. 닥치는 대로 뭐든지 다 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나는 아직도 나에게 중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위, 힘, 돈, 자산, 경력, 승용차 그리고 물론 가장 중요한 에고까지도.

내가 태도를 완전히 바꾼 것은 몇 해 전이었다. 모든 것이 나에게서 없어졌다. 심지어 그 중요한 ‘인권’마저도 빼앗겼다. 판사와 변호사와 나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나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 갔다. 나는 만신창이가 되어 상심하고 가난한 실업자가 되어 있었다. 생명만큼이나 소중했던 자존심과 에고가 정말 백만 조각으로 찢겨져 상처를 입었다.

그 무렵에 딸이 집을 나갔다. 아내와 내 역할이 뒤바뀌었다. 이제는 그녀가 가장이 되었고 재산을 관리했다. 그녀가 대장이었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당시 나는 증오심으로 꽉 차 있었지만 그걸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판사의 집 앞에서 자살하려는 생각까지도 했다. 아무도 나의 세밀한 계획을 몰랐다. 아무도 몰래 나는 건강센터에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그리고 항우울증에 대한 알약과 약품을 샀다. 나는 나 스스로 계획을 지켰다. 비록 나는 인생에 있어서 모든 것이 다 까닭이 있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모든 고통들이 가치가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때 내가 가장 축복받은 사람이 되리라는 것을 조금은 알고 있었다.

나의 계획이 실행에 옮겨질 시간이 천천히 하루하루 가까워졌다. 그 일은 거사일 며칠 전에 우연히 일어났다. 나는 한번도 가 본 적이 없는 하드웨어 가게에 가게 되었다. 내가 현금 창구에서 물건값을 지불하려고 할 때 초록색의 소책자를 발견했다. 그 책에 있는 너무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두 눈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누구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과 날짜 그리고 전화번호 등등이 적힌 판이 있었다. 나는 아가씨에게 소책자를 가져갈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대답했다. “예, 물론입니다. 좋을 대로 하십시오.”

집에 오자마자 즉시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용이 아주 훌륭했으며 내용 모두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소책자는 사랑과 자비의 따사로운 느낌을 전해 주었다.

나는 가게 아가씨에게 전화를 걸어 현금 창구 옆의 안내판에 있는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그녀가 대답했을 때 이 믿지 못할 일을 당한 나를 상상해 보라. 거기에는 소책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떤 종류의 안내판도 없었고, 더욱 가관인 것은 내가 소책자를 가져도 좋으냐고 묻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오, 그녀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떻게 나를 잊어버릴 수 있을까? 나는 분명한 악센트로 그녀에게 농담을 했다. "저기... 아니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소책자에 대한 꿈을 꾼 게 틀림없군요. 아마 다른 곳에서 가져왔나 봅니다." 그래서 그녀는 나를 도와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소책자 안에서 전화번호와 주소를 찾아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그리고 책 뒷장에서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그후 나의 인생은 이전과 결코 같지 않았다. 마치 무거운 짐이 내려지는 것처럼 무거운 망토가 내 지친 어깨에서 벗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입문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그만 참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스승님께 나를 받아들여 달라는 호소의 편지를 써서 팩스로 보냈다. 그리고 스승님께서 어디에 계시든 간에 나를 받아 줄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저 기다려야만 했다. 그럭저럭하는 동안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나의 생활은 변화되었다. 인내의 세월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이란 지나고 나서야 그걸 알게 된다.

몇 년 동안 나는 세금을 낼 필요가 없었는데, 세금 징수기관에서 몇 년 전에 과잉징수를 했다는 이유로 의외의 금액을 내게 보내왔던 것이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얼마 안 되어 미아오리에서 선사가 있음을 알리는 통지서가 도착했다. 스승님께서 비입문자들의 참여도 환영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비입문자들은 선행사 이전에 입문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얼마 안 되는 돈을 쓰기에 너무나 좋은 기회였다! 아내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말리지는 않았다. 나는 미아오리로 갔다. 그리고 입문했다.

나는 천국에 있었다. 스승님과 가까이 있어 본 사람들은 누구나 이 느낌을 알 것이다. 나는 스승님으로부터 매일 축복을 받았다. 스승님께서는 나에게 몇 마디 해주시기도 하고 나의 지친 어깨에 손을 얹기도 하셨다. 하루도 그냥 지나치는 날이 없었다. 스승님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어느 날 저녁 스승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오불을 암송해 주셨다. 그때 정서적으로 고양되었던 느낌을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다. 그때 내가 울었는지 흐느꼈는지 무엇을 했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그때 나는 사랑, 자비, 조화 그리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온갖 종류의 감정으로 충만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자비롭고, 무엇보다도 인내심이 많으신 스승님을 모시게 되어 너무 기쁘다. 스승님께서는 내가 완고하고 때로는 신념과 믿음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믿고, 자비롭게 도와주고, 편안하게 해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내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안내해 주신다. 스승님께서는 또 내가 너무 큰 고통을 겪지 않고 살아가는 교훈을 배울 수 있게 해주신다. 심지어는 나의 아들을 통해서 내가 정말 축복받았음과 세상에는 그보다 훨씬 더 안 좋은 상황에 처해 있는 부모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기회를 주셨다.

내가 처음 서술했던 내용으로 돌아가 보자. 즉 우리는 (아니 아마 ‘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 의해 얼마나 축복받고 있는가를 항상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꼭 알맞는 것이다.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고 꼭 알맞는 것이다. 조금도 지나침이 없다. 단지 우리가 에고를 밖으로 내버릴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 알다시피 어려운 일이다. 우리의 신념과 믿음이 부족할 뿐이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한다든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 결국 그것은 우리 자신의 문제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처리해야지 스승님께 안겨 드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스승님보다도 치과의사에게 더 신뢰를 보인다. 치과의사가 “입을 벌리고 그대로 있으세요.” 하고 말할 때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한다. 그가 우리를 아주 나쁘게 다치게 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를 믿는다. 우리가 한번 고통을 겪기만 하면 더 좋아질 것이라고 아주 당연하게 여긴다.

스승님께서는 더욱이 우리에게 고통을 감수하라고 요구하시지 않는다. 스승님께서는 우리의 고통을 거두어 가시고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것만 요구하신다. 즉 서로서로 사랑하고, 우리가 본래 있던 고향으로 데려가는 당신을 도와 달라고.

제게 이 모든 것을 체험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승님.

- 뉴스잡지 85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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