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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길목에서

궁극적인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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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 후 영적인 길을 가면서 나는 천주교 친구들 또는 다른 종교나 관음수행을 하지 않는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다양한 체험들을 종종 할 수 있었다. 어떤 신부님과 수녀님들은 여전히 나에 대해 염려를 하며 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내가 관음법문을 수행한 이후 어떤 변화를 느끼는지, 내가 계속해서 관음법문을 수행할 것인지, 아직도 천주교 신자인지를 물어보곤 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는 만성 질환을 앓고 계셨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실 동안 아버지는 삶의 참된 의미를 열심히 찾아 헤매셨다. 이 세상의 덧없음을 몸소 체험하신 아버지는 영적인 해탈을 갈망하셨다. 그 당시 나는 부모님께서 ‘성장의 집’에 대해 자주 얘기하시는 걸 들었다. 비록 어렸지만 이는 나에게 보이지 않는 영향을 주었고 내가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고 이해하도록 고무시켰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생로병사와 고통이라는 개념은 내 의식을 사로잡았고 내 마음을 심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인생의 무상함에 대한 혼란과 무지에 대한 나의 투쟁은 영원한 진리를 더욱 갈망하게 했다.

내가 14세가량 되었을 때 천주교의 크리스마스 행사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거룩한 사랑과 자비에 대한 나의 첫 경험이었다. 나는 희망과 삶의 활력을 얻게 되었다. 나는 거룩하신 분의 사랑이 내 손을 잡아주고 소리 없이 지혜의 씨앗을 심어주심을 느꼈다. 그리하여 미래의 어느 날 관음법문을 수행하여 신을 직접 만날 수 있게 말이다.

나중에 간호사 공부를 몇 년 동안 하면서 나는 서양의 기독교 문화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나이팅 게일의 우주적인 박애정신의 영향을 받아 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외딴 지방으로 가서 사람들에게 봉사를 했다. 그 즈음에 스위스 천주교의 신부와 수녀들이 “신은 사랑이다”라는 복음을 전하고자 바다를 건너 포모사의 외딴 지방으로 왔다. 그때 내 친구를 통해 천주교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는 성서 연구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성서 공부를 한지 몇 달이 지나 그 해 크리스마스에 정식으로 세례를 받게 되었는데 아이라는 캐나다 신부님의 인도에 의해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고향, 신의 왕국, 천국으로 돌아가는 영적인 여행을 시작했고 나는 환희로 가득 차 울었다.

나는 수줍음이 많고 떨어져 지내고 혼자 있는 편을 좋아하는 조용한 성격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에 종종 많은 어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 과정에서 나만의 공간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천주교의 많은 영적인 유산에 감사를 느끼고 내게 신의 거룩한 사랑과 광대하고 끝없는 우주의 경이를 경험하게 해주신 선교단의 신부님과 수녀님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나는 논리적인 사고에 능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적인 체험에 더 마음이 끌렸고 천주교는 그런 내게 잘 맞았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황은 ‘종교간의 교류’를 호소했고 그에 힘입어 나는 불교의 서방정토라는 개념과 선과 다른 종교 전통의 명상법을 알아보게 되었다. 나는 모든 선 행사에 빠지지 않았으며 이러한 활동으로 나의 마음은 확장되었다. 종교의 이러한 열린 태도에 그리고 다양한 가르침과 명상 수행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에 무척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중 나는 남동생으로부터 ‘즉각 깨닫는 열쇠’라는 견본책을 받고 당장 일세해탈을 할 수 있는 관음법문에 입문해 수행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입문 후 스승님께서는 모든 창조물과 내가 하나임을 경험하게 해주셨다. 스승님께서는 나의 많은 의문들을 풀어주었고 이전에 영적인 수행을 할 때 내가 경험했던 경계와 장애를 극복하게 해 주셨다. 내 지혜의 문이 열렸던 것이다. 관음법문으로 변치 않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고, 언제나 신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외롭다고 느끼지 않았다. 명상을 하면서 신으로부터 성스럽고 완벽한 진, 선, 미의 가르침을 들을 때마다 나는 신과 하나가 되고 내 자신의 주인이 된다. 나는 법열의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모든 종교들이 다른 길을 통하지만 결국에는 같은 지점에 도달한다는 것을 마음 속 깊이 깨달았다. 나는 언어가 우주와 신의 왕국으로 가는 길에서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했고, 우주의 모든 만물이 같은 근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이해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빛과 소리라는 공통된 언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입문 후 영적인 길을 가면서 나는 천주교 친구들 또는 다른 종교나 관음수행을 하지 않는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다양한 체험들을 종종 할 수 있었다. 어떤 신부님과 수녀님들은 여전히 나에 대해 염려를 하며 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내가 관음법문을 수행한 이후 어떤 변화를 느끼는지, 내가 계속해서 관음법문을 수행할 것인지, 아직도 천주교 신자인지를 물어보곤 했다.

관음법문을 수행한 이후 난 성서에 언급된 말씀(우주적 음류)의 참 의미를 항상 체험한다. “태초에 하느님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했고 그 말씀이 하느님이었다.” (요한 1:1) 그리고 빛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태초에 모든 것이 하느님과 함께 했다. 만물이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하느님 없이 창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느님 안에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은 인간들의 빛이었다.” (요한 1:2-4) 또한 나는 일상 생활에서 내면의 스승을 만나서 환희에 넘치게 되었다.

나는 ‘요한 복음’을 쓴 사람이 했던 것과 같은 체험을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 하고 궁금해 하곤 했다. 관음법문을 수행한 이후 난 마침내 그 해답을 알게 되었다! 예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빛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에게 갈 수 없다”라고 하신 말씀의 뜻을 진정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여기서 ‘나’란 우주의 위대한 자아이자 ‘빛’과 소리이고 길이며 생명임을 깨달았다. 관음법문은 모든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의 빛과 소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법문이다. 이 방법으로 나는 매일 신의 빛과 소리를 명상할 수 있다. 관음법문은 진실로 신의 왕국으로 들어가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제 나는 신이 나와 영원히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내가 보잘 것 없고 비천하고 무지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은 신의 왕국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관음법문을 수행한 이후에야 이러한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모든 창조물은 평등하며 모든 중생들은 불성을 가지고 있기에(내면의 빛과 소리) 언젠가 살아있는 스승님께 입문을 하고 깨닫게 된다면 신의 왕국으로 들어가고 삶의 근원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요한 복음’은 그 저자가 명상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서 내면으로 체험한 경지를 기록했음을 난 이해했다. 오, 얼마나 멋진 체험이었을까! 20세기에 마침내 나는 신의 왕국으로 순탄하게 이끌어줄 고대의 영적 수행법을 알게 되었다. 길 잃은 ‘양’을 찾아 고향으로 이끌어 주고자 오신 스승님을 만날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느님의 자비로운 은총에 감사드린다.


입문을 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체험을 경험하는 것이다

예수는 세례를 받은 후에 “곧장 물 밖으로 걸어나갔고 하늘이 열리고 마치 비둘기가 내려오듯 성령이 그의 머리 위로 내려오는 걸 보았다. 그리고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길 ‘그대는 내가 너무나도 흡족히 여기는 사랑스런 아들이니라’라고 하셨다.” (마르코 1:10-11)

관음법문은 우주에 흐르는 내면의 소리를 체험할 수 있게 하는 고대의 비법이다. 신의 말씀을 관할 수 있는 이 법문은 바로 예수가 가르쳤던 그것이다. 예수가 황야로 들어갔을 때 그가 관음법문을 수행했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리고 예수는 거룩한 영혼으로 충만되어 요르단에서 돌아와 성령의 인도로 황야로 향했고, 40일 동안 사탄의 유혹을 받았다. 사탄은 온갖 유혹을 다하더니 결국 예수에게서 떠나가더라.” (누가 4:1-2, 13) 성서에서는 예수가 산으로 올라가 기도를 하고 신의 말씀에 대해 명상을 한 사실을 곳곳에 기록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관음법문을 수행할 때 우리의 신.구.의가 정화되고, 우리는 신으로부터 축복을 받아 지혜가 열리고 선입견이나 탐진치와 같은 장애와 집착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롭게 되며, 영생을 보장받고 신과 하나가 되고 아버지 하느님과 하나임을 체험하게 된다. “그날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되리라.” (요한 14:20)

성서에는 예수께서 “누구든지 신의 뜻을 행하는 자는 내 형제자매요, 어머니이니라”라고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신의 뜻은 우리 내면의 빛과 소리이다. 우리는 하루 24시간 내내 빛과 소리 안에 거할 수 있다. 명상의 방법을 일단 배우게 되면 걷고, 자고, 먹는 등 일상생활의 모든 행동 안에서 신의 뜻과 우주적 사랑의 진동을 명상할 수 있다. 이는 불교에서 언급한 내용과 같다. “선이란 행주좌와(行住坐臥) 안에 있다.”

언젠가 내가 미국 뉴저지 주의 성공 수녀회를 방문했을 때 거실에 있던 종이 우산 위에 한자 ‘챈(禪)’이 쓰여 있음을 보게 되었다. 아하! 마침내 나는 ‘보이다(示)’라는 글자와 ‘하나의(單)’란 글자로 이루어진 이 한자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성서에 의하면 “육체의 빛은 눈이며, 그대의 눈이 하나가 될 때 그대의 온 육체가 충만하리라 … 만일 그대의 온 몸이 빛으로 충만할 때 … 모든 것이 빛으로 충만하리라.” (누가 11:34-36) 이 말씀은 빛의 명상을 한 예수의 수행법이 관음법문과 같은 것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관음법문을 찾은 이후 나는 신과 나의 진아를 인식하게 되었다. 내가 신과 하나이며 이 관계가 영원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신과 나는 상반되지 않으며 나는 하느님보다 비천하지 않다. 그것은 성서에서 표현하길 “먼저 하느님의 왕국과 정의를 찾으라. 그러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해지리라”라고 하는 것이다. (마태 6:33)

신은 우리가 무지의 장애를 극복하도록 북돋아 주고, 난관을 헤치고 내면의 보물과 지혜를 발견할 수 있도록 의지의 힘을 주시며, 신의 우주적 사랑과 자비를 체험할 수 있도록 믿을 수 없는 위대함과 거룩한 힘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최후의 만찬에서 빵과 포도주를 주시며 이 거룩한 성찬의 상징으로 축복을 내리심으로써 우주적 사랑을 보여주셨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은 모든 살아있는 신의 창조물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채식을 하라고 가르치고자 하신 것이다. 구약 성서에 나오는 첫 번째 계명 “살생하지 말라”는 우주적 사랑이라는 정신에 위배되지 않으려면 모든 살아있는 창조물을 죽일 수 없다는 점을 의미하고 있다.

천주교에서도 금요일마다 채식을 하는 전통이 있다. 성서에도 나와 있듯이 신이 창조한 모든 생명체는 한 부모로부터 태어난 형제자매들과 같다. 우리는 분별심 없이 서로가 자비와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이러한 자비심이 깊어지려면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오직 그렇게 될 때만이 살생과 파괴가 신의 뜻과 사랑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뉴스잡지 78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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