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참된 무술

우리의 깨달음이 비록 제한적이더라도 그냥 앉아서 ‘대도(大道)’를 기다리기보다는 실생활에 우리의 깨달음을 적용시키는 편이 더 좋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십시오. 어떤 기적적인 일을 행하려거나 신비한 사건을 알고 신비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요.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세요. 여러분이 ABC를 배우는 어린이일 때는 그저 그것을 잘 배우면 됩니다. 그러고 나서 선생님이 여러분들에게 어떤 문장을 가르쳐 주면 그것들을 배우지 않았습니까? 이제 여러분은 어떻게 배우고 읽는지 압니다. 그러니 여유를 가지세요. 여러분이 이제 막 유치원에 들어왔는데 [삼계의 비밀] 같은 책을 읽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그것을 읽게 해주지 않았다고 선생님을 원망하지요. 학교에 갓 입학했거나 들어온 지 며칠 안 되었다면 어려운 책이나 경전을 읽는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그런 기대를 해서는 안 되고 조금밖에 배운 게 없다고 선생님을 탓해서도 안 됩니다.

‘가라데 소년 (Karate Kid)’ 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봤을 것입니다. 가라데를 배우는 미국 소년에 관한 영화입니다. 그 소년은 심하게 얻어맞고서 한 노인에게 갑니다. 노인은 소년이 다른 가라데 그룹으로부터 여러 차례 심하게 얻어맞았기에 그 소년을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가르침을 주기 전에 노인은 소년에게 자신의 말을 잘 듣고,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고 잘 배울 것을 약속하도록 했습니다. 소년은 약속했어요. 그런 다음에 소년은 무엇을 했을까요? 여러 날 동안 차와 마루를 닦고 광내는 일을 했으며 벽을 청소하고 칠을 했습니다. 온몸이 아파도 쉴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소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불평했습니다. “나는 여기 가라데를 배우러 왔는데 당신은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군요!”

소년은 자신을 보호하고 또 원수를 갚기 위해 가라데를 배우길 열망했는데 스승은 자기한테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라데를 배우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노예처럼 부림을 당한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는 속았다고 느껴서 그의 스승을 마구 비난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물었습니다. “차를 어떻게 닦지?” 그는 소년에게 차 닦는 시늉을 하라고 했습니다. 소년은 몸을 구부려 허공에서 차 닦는 시늉을 했습니다. 노인은 말했습니다. “아니, 서서 닦는 그 동작이야. 그걸 계속해.” 그러면서 소년을 공격했습니다. 소년은 그 동작을 사용해 그를 막았습니다. 소년은 할 수 있었던 거지요. 그러자 그 스승은 소년에게 “양손으로 벽 닦기를 해라.” 하고 말하면서 또 공격을 했습니다. 그 소년은 ‘벽 닦기’를 하며 주먹을 다시 막아냈습니다. 스승은 그를 계속 공격했으나 소년은 날마다 그가 일하던 동작으로 공격을 막아냈습니다. 그의 스승이 그에게 시킨 일들은 그냥 평범한 일이 아니었으며 쿵푸 동작으로 변환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즉 우리가 되는 대로 그냥 닦는 것과는 다른 것으로 일종의 테크닉이었던 것입니다. 노인은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아래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이런 식으로 닦으라고 가르쳤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쿵푸의 기본 동작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이와 같은 동작들을 도장 안에서 연습합니다. 그러나 항상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는 소년을 단지 두 달만 가르쳤지만 소년은 쿵푸에 아주 능숙하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그의 일상사에 쿵푸 기술을 사용했던 것이지요. 그렇지 않고 두 달 동안 그저 2시간 반씩만 연습해서는 몇 년 동안 수련한 사람과는 대적할 수가 없었겠지요. 더욱이 그 소년은 전에 쿵푸를 배워 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는 그냥 평범한 소년이었지만 두 달 동안 훈련받고는 미국에서 최고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스승이 일상사에 쿵푸 동작을 사용하도록 그에게 마루 닦는 일 같은 것을 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소년이 하는 모든 일이 결국은 쿵푸 훈련이었던 셈이지요. 이런 식으로 그는 겨우 두 달 만에 모든 방법을 아주 잘 익혔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때 스승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때 우리가 배우고 있다고 느끼게 하지는 않습니다. 만일 스승이 “나는 너를 가르치고 있느니라.” 하고 알린다면 그 스승은 별 볼일 없습니다. 그의 삶이 곧 그의 가르침입니다. 그의 말과 행동이 그대로 우리를 가르칩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만약 어떤 신기한 일이나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거나 기대한다면 우리의 목표에서 더 멀어지게 됩니다. 우리의 눈이 너무 먼 곳을 응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일상생활의 다양한 모습으로부터 깨달음을 감지하고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 뉴스잡지 75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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