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세상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

1989년 출가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는 운이 좋게도 스승님을 모시고 몇 개국을 다닐 기회를 얻었다. 나는 아주 운이 좋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 매우 초조하고 두려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누군가를 돌보고 보좌할 줄 모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나는 늘 과보호 속에서 살아왔다.

그런 내가 이제 갓 출가하여 요리나 빨래를 하는 등 일상사를 처리하는 법도 배우지 못했는데, 완전무결하고 꼼꼼하고 고상한 스승님을 보좌하는 일을 맡은 것이다. 내가 스승님의 시자가 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일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그날이 되자 스승님은 내 영혼의 가장 깊은 염원에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 스승님의 행동 하나하나를 이해하려는 나의 열망을 충족시켜 주시기 위해 스승님이 행하시고 받으시는 노력과 고충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스승님의 이런 노력과 고충은 나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한 것이었다!

오랜 생각 끝에 나는 자신의 많은 부정적인 면들을 없애고자 하는 염원 때문에 내가 스승님의 시자로 선택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그 염원 때문에 나는 출가했다. 그리고 출가하기 전에 이런 결정이 충동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확신하기 위해 일부러 몇 달을 기다리기도 했다. 내가 혐오하는 부정적인 성격들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출가하는 것임을 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태어난다는 기분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출가를 하자 곧바로 스승님이 나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나의 소망을 이루게 도와주신 것이다.

이미 발을 내딛은 이상 나는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출가승단에서 어느 정도 훈련을 거쳐서 좀더 나아진 후에 스승님의 시자로 불려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실제로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고 좀더 나아진 후에는 더 이상 스승님의 시자 노릇을 할 수 없었다. 이런 사실들로 짐작해보건대 스승님은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중생들에게 이로움을 주시기 위해 당신의 시자를 두시는 것이지 결코 당신 자신의 안락이나 즐거움을 위해 그러시는 것이 아니다.

1990년 외국에서 머물던 어느 날, 스승님과 나는 산책을 하던 중에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한 평범한 노인을 만났다. 나는 그다지 그 여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스승님은 손을 내밀며 괜챦냐고 물으셨다. 그러자 그 여인은 힘없이 뒤뚱거리며 오랫동안 굶었다고 대답했다. 스승님은 팔을 부축해서 그를 가까운 식당으로 데려가시더니 햄버거와 튀김 감자, 음료수 등을 주문하셨다.

그러나 식당주인은 험악한 표정으로 다가와 그 여인보고 어서 떠나라고 하였다. 전에 여기서 구걸했던 것이 분명했다. 스승님이 단호하게 '이 사람은 나의 귀한 손님입니다'라고 하시자, 식당주인은 어쩔줄 모르는 기색으로 사과했다. 스승님은 식사 대접 후에도 햄버거를 몇 개 더 사서 그에게 주셨다. 그 여인은 힘이 없어서 말도 잘 못했지만 무척 고마워하였다.

스승님이 사주신 햄버거는 채식햄버거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스승님의 즉각적이고 단호한 행동은 이전에 좋은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나를 괴롭히던 갈등을 대번에 없애주셨다. 때때로 버스에서 다른 사람에게 좌석을 양보할 때면 주위의 시선을 끌까봐 두렵고 불안했었다. 그 당시 나는 부정적인 사고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자신이 어리석었다고 느껴져 기분이 좋지 않다. 사람들은 악을 행할 때는 의기양양하면서 선을 행할 때에는 오히려 부끄러워한다. 이는 지옥에 갈 배짱은 있으면서 천국에 갈 용기는 없는 것과 같다.
어쨌건 이 사건으로 난 내 몸에 들러붙어 있던 더러운 흙먼지를 털어 낸 것 같았다. 스승님이 일을 처리하시는 것을 잘 관찰하면 빨리 배울 수 있다. 말이 필요 없이 곧바로 이해하고 느끼는 것이다. 게다가 그를 통해 스승님을 더욱 사랑하고 존경하게 된다. 스승님은 우리 전생의 무거운 멍에를 벗겨주실 뿐 아니라 친히 모든 방면에서 산 모범이 되어 주신다.

가슴속 사랑의 등불을 밝히다

1991년 필리핀 화산폭발 직후, 우리는 필리핀에 있는 친구들에게서 긴급 원조요청을 받았다. 이에 스승님은 즉시 남녀 출가제자들을 모아놓고 대책을 논의하셨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을 배웠다. 스승님은 밤을 꼬박 세우면서 활동계획과 세부사항을 논의하셨다. 구호활동에 인정 있는 사람들의 동참을 호소하는 신문광고도 내기로 결정했다.

스승님은 항상 신속하게 행동하시고, 우리들에게도 신속하게 행동하기를 요구하신다. 스승님과 함께 일하는 것은 언제나 특별한 경험이 된다. 그런데 스승님이 일을 하시는 방식은 내가 익숙해져 있던 외부의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사람의 생사가 걸린 문제라서 지체없이 순식간에 광고와 관련자료가 준비되었다. 나는 스승님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내가 매우 자애롭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다. 너무 시간이 촉박하여 스승님은 출가승들을 그곳으로 당장 보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게 하셨다. 나도 파견대의 일원으로 가게 되었다.

때마침 필리핀은 한창 더울 때였다. 마닐라 외곽지역, 온 고장이 화산재로 뒤덮여 있었다. 차마 눈뜨고는 못 볼 광경이었다. 그곳에 있는 동안 우리는 매일같이 생필품과 구호품을 구입하여 그 물품들이 이튿날 재해지역에 전달될 수 있도록 포장하는 일을 했다. 우리는 곧 어느 장군의 도움으로 공군기지의 실내체육관을 빌려 거기에 구호물자를 보관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수송시간을 줄이고 효율을 높일 수 있었다. 공군부대에서 구호물자를 지키도록 군인을 한 명 보내주었는데, 처음에 그는 우리를 그다지 존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외국인인 우리가 잠 한숨 제대로 못 자며 밤새도록 구호품을 포장하고 새벽부터 밤까지 재해지역으로 구호품을 나르고 또 날이 어둑해질 때 돌아와서는 쉬지도 못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얼마 후 인근에 사는 군인 가족들이 와서 우리가 물품을 포장하는 일을 돕기 시작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서로 친밀감과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예정보다 일찍 마닐라로 떠날 수 있었다. 거기서 스승님께 전화로 그 동안의 성과를 보고 드렸다.

우리는 한밤중에 체육관에서 철수했다. 그때 경호군인이 취침을 하고 있어서 내가 그를 깨우러 갔다. 우리가 떠난다고 알려주고 문단속을 일러주기 위해서였다. 막 깨어난 그는 눈을 뜨자마자 나의 손을 자신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그의 눈동자에서는 별빛이 빛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지만, 나는 곧 스승님의 사랑이 그의 영혼 깊이 스며들어 그로 하여금 마음속 깊은 감사의 표시를 하게 만들었다는 걸 알았다. 나는 큰 감명을 받았다. 나는 사랑의 발로에서 이 구호활동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군인의 변화를 통해 마음속 사랑의 등불이 밝혀짐을 느꼈다. 지금 나는 이 보잘 것 없는 작은 등불로써 광명이 절실히 필요한 세상을 비출 각오가 되어 있다. 이 일은 오랫동안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만약 스승님이 구호팀으로 나를 파견하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세상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또 이기심에서 벗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 마음속에 사랑이 자라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다시 좁은 세상에 안주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일로 나는 분명히 알았다. 우리가 성심과 의로운 행동으로 중생의 마음에 밝은 등불을 켤 수 있다는 것을.

- 뉴스잡지 102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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