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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일깨우는 말씀 [성경이야기] 산상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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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러 왔습니다. 그 중에는 예수의 제자도 있었고 추종자들도 있었습니다. 추종자란 예수를 믿었지만 그를 따라 수행하지 않았던 이들, 아마도 그를 통해 관음법문에 입문하지 않았을 이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들은 단지 예수를 추종하고 만나러 가는 것뿐이었지요. 그날 예수는 산에 올라가서 앉았습니다.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니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산 위에서 설교하는 수밖에 없었지요.

예수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이 말뜻은 겸손하고 자신의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이들에게 신이 축복과 사랑을 내린다는 말입니다. 예수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통해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 이것은 내가 여러분에게 자주 하는 말과 같습니다. 병도 일종의 상입니다. 바로 그때 신의 축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물려받을 것이요.” 이 말은 신의 뜻을 따르는 이는 상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요.” 지금은 간략하게 중국어로 번역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가 말하기를 “자비로운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자비를 받을 것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동수들 중에서, 겉보기엔 별로인 듯 보여도 가장 겸손하고 문제도 전혀 안 일으키는 동수가 내면의 체험은 가장 높습니다. 아무런 소음도 일으키지 않고 내 앞에 절대 나타나지 않는 제자가 최고의 상을 받습니다. 선행사에서 체험을 발표하는 시간이 되면, 전혀 우리 눈에 띄지 않았던 몇 명이 갑자기 나와서 아주 높은 경지의 체험을 발표하곤 합니다.

예수는 “화평케 하는 자에게” 즉,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 적과 화해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나로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온갖 악한 말을 할 때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여기서 ‘나로 인하여’란 말은 당시의 예수를 위하여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스승을 위해서, 그리고 스승을 믿는다는 이유로 인해 창피를 당하고 비난받는 자는 크나큰 축복을 얻는다는 말이지요. 예수가 이 세상에 있을 당시에 그의 제자들은 비난받고, 핍박받고, 온갖 시달림을 당했습니다. 예수는 그런 제자들이 큰 축복을 받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는 그 제자들에게 그런 일을 당해도 안심하고 시험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의 설교는 이렇게 계속되었습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이전의 선지자들도 이같이 핍박받았느니라.” 이 말의 뜻은 여러분이 그렇게 핍박을 받고 비난을 받으면, 후에 스승이 되고 신의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에서 이와 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말하기를 “누구든지 네 오른 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소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고 했습니다. 겉옷까지 갖춰 입어야 더 근사해 보일 테니까요.

성경이나 보살계를 보면, 우리를 비난하고 나쁘게 대하는 이들에게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대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사랑과 친절을 두 배로 베풀어야 합니다. 오른쪽 뺨을 때리게 가만 놔두고 아무 반응도 안 한다면, 상대방은 여러분이 겁을 먹었거나 어떻게 반응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왼쪽 뺨도 내민다면 깜짝 놀라서 “어! 이 사람이 왜 이러지? 맞대응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닌 건 분명한데, 내가 때린 걸 알면서도 신경 쓰지도 않고 나를 용서했단 말이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바로 그렇게 되어야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왼쪽 뺨도 마저 내밀라고 한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예수는 이렇게 말했겠지요. “누가 얼굴을 때려도 반격하지 말라.” 우리가 다른 쪽 뺨도 내민다면 상대방은 “이 사람은 흐리멍텅한 사람이 아니라 날렵한 사람인걸. 그리고 대응할 줄 아는 사람인데도 나와 정반대로 행동하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그 사람이 깨우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내가 보기에 예수는 정말 위대했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렇습니다!” 박수)

99명을 살해한 살인자가 석가모니 부처를 죽이려고 했을 때 부처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습니다. 부처는 맞서 싸운 게 아니라 그를 아라한의 경지까지 끌어올렸습니다. 그것이 올바른 대응입니다. 우리는 여러 생에서 영적 수행을 하고 선한 씨를 많이 뿌렸으므로 “누가 오른 뺨을 때리면 왼쪽 뺨도 내밀라”는 예수의 방식으로 대응할 것입니다. 그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런 대응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릴 때 자전거를 탈 수가 없었는데 계속 연습을 하다보면 잘 탈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처음엔 너무나 행복해합니다. 하지만 익숙해지고 나면 별 거 아니라고 느끼지요. 자전거를 타면서 대화도 나눌 수 있지만 대단하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며 자전거 위에 올라서기도 하지요. 또 어떤 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뒤로 갈 수도 있지만 그것을 아주 쉬운 것으로 여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선한 행동을 하면서 그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여긴다는 것은, 많은 생애에 걸쳐 영적인 씨앗을 많이 뿌려서 축복을 받고 선해졌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누가 남에게 나쁜 행동을 한다면 그 사람을 가엾게 여겨야 옳습니다. 그 사람도 전생에 선한 씨앗을 뿌리긴 했지만, 그 씨앗이 썩었거나 아직 다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 사람이 마음을 열고 이해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냥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나쁜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이 자신의 내면을 돌이켜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주어야 합니다. 뺨을 맞고 아무 반응도 없이 가만히 있는다고 다 되는 게 아닙니다. 그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이 내게 안 좋게 할 때 내가 왜 오히려 더 잘 대해주는 지 알겠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생불’이라고 불렀나 봅니다. 내가 수행을 하기 전부터도 사람들은 나를 ‘생불’이라는 애칭으로 불렀습니다. 물론 내가 정말 살아 있는 부처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부른 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아무리 안 좋게 대해도 내가 점점 더 잘해주었다는 의미였지요. 그래서 그들은 “그녀는 살아 있는 부처야”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지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를 안 좋게 대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 나를 ‘살아 있는 부처’라고 불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으니까요. 나를 아는 사람들만 그런 식으로 불렀습니다.

예수의 산상설교는 불교의 보살계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 설교는 너무도 유명해서 누구나 다 알고 있지요. 우리는 그것을 ‘산상수훈’이라고 부릅니다. 예수가 말했습니다. ‘너희는(제자를 지칭)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이 말은, 우리 영적 수행자들은 미덕을 대표하는데, 우리가 근면하지도 않고 도덕적이지도 않다면 어느 누가 우리를 도울 수 있겠냐는 뜻입니다. 어느 누가 우리를 선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누가 우리의 귀감이 될 수 있지요?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귀감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의 말이 백 번 옳습니다.

그래서 내가 늘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만을 위해서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들의 귀감이 되고, 남들이 우리의 신실함을 느끼고 우리를 따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수행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수행자라고 떠들어대면서, 일반인들처럼 쾌락을 좇고, 고기 먹고, 술 마시고, 중생을 보호하기는커녕 도리어 그들을 해치고, 남들과 말다툼이나 하고, 싸우고 헐뜯기나 한다면 누가 우리를 도울 수 있겠습니까? 수행을 하지 않는 이들을 누가 구제하겠습니까?

여러분에게 오래 전부터 강조하고 또 강조해 왔습니다. 수행을 할 때 계율에 너무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높은 등급을 얻었다 해도 그에게 덕이 없으면 아무도 그를 믿고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내면의 등급이 아무리 높아도 외면으로는 아주 낮아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할 것입니다. 무지한 중생들이 어떻게 그의 경지가 높다는 것을 알겠습니까? 겉보기에 좋아 보이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가 나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고기 먹고 술 마셔도 신의식을 얻을 수 있다는 사람들의 말에 귀기울이지 마십시오. 우리는 몇 가지의 음식을 포기함으로써 수행에 더 정진하고, 다른 이의 귀감이 되고, 죽음을 너무나 두려워하는 가엾은 동물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도록 하고자 합니다.

예수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어지지 못할 것이요.” 즉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신실하게 수행하면, 광명과 자비, 그리고 선하고 평화스런 분위기가 절로 뿜어져 나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것을 감지할 수 있으므로 그것을 숨길 수도 없고, 숨길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 말 안 해도 사람들은 알아차립니다. “사람이 불을 켜서 탁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잔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온 집안이 환해지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사람들이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 지를 알게 되면, 우리의 아버지가 더욱 위대하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남들이 신을 믿기를 바란다면 먼저 우리 자신을 정화하고 스스로 훌륭한 본보기가 되어서, 우리가 고귀한 도덕과 숭고한 이상, 즉 숭고한 신을 대변한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예수의 말이 맞습니까? 그렇지요? (“예!” 박수) 내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하는 지 알겠지요? 예수의 설교는 정말 훌륭합니다! 기독교가 얼마나 좋은 지 모르는 것 같아서 오늘 이렇게 소개를 합니다. 내가 이렇게 예수를 찬미하고 성경과 기독교의 가르침을 찬미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예요.

어떤 기독교인들은 아주 극단적이어서 좋지 않은 일을 하고, 다른 종교를 멸시하며 그들을 과격하게 대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일부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그 집단에 몰래 들어가서 망쳐 놓으려는 마야의 조종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기독교가 좋지 않은 게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불교에도 방해하는 극단적이고 과격한 종파나 불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 역시 불교 전체의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기독교든 시크교든 어떤 종교이든 간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그 종교 자체가 좋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언제 한 번 시크교 경전을 구하게 되면 여러분에게 읽어주겠습니다. 거기에도 좋은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예수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여기서 너희란 당시의 성직자들과 추종자를 말함),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아마도 당시의 성직자들과 수도사들이 그리 의롭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들은 쾌락을 추구했고, 큰 교회를 짓기 위해 사람들에게 기부금을 받으면서도 좋은 일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많은 돈을 벌고 오만해졌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지요. 올바르지 못했는데도 칭송을 받았고, 공덕이 없었는데도 공경을 받았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매일 사람들에게 보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그들의 업장이 무겁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천국에 들어가려면 의롭고 순수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여기 있는 출가인들은 다른 단체의 출가인들 보다 나아야 합니다. 외부의 출가인들이 보시 받는 것을 보고 왜 우리 스승은 보시를 받지 못하게 하는 지 모르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보시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받고 싶으면 받으세요. 하지만 그때부터는 더 이상 내 제자가 아닙니다. 나와 함께 있는 동안은 어떤 보시도 받지 마십시오. 물론 밖에 홀로 나갔을 때 돈이 다 떨어졌다면 한두 끼니 얻어먹거나 약간의 돈을 받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외부 출가인들은 나라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은 하지 않고 지나치게 많은 보시를 받고 안락을 누려왔습니다. 자신들의 임무도 다하지 않고, 예의도 지키지 않고, 도덕적이지도 않으니, 다른 사람들이 출가인들을 안 좋게 봐도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출가인으로서 나를 따를 때에는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엄격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이 나쁜 습성에 물들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다른 단체의 출가승들은 보다 자유롭고 좋은 옷도 많은데, 우리 옷은 단순하거나 직접 만든 것이고, 그나마도 몇 벌 안 되고, 개인적인 돈도 없는 것을 보고 무슨 출가승 생활이 이런지 의아해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태도와 이상은 물질적인 것으로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몸가짐과 도덕은 돈으로 살 수 없으며, 훌륭한 옷으로 대변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내면의 빛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그 빛이 전해지면 그들은 좋은 느낌을 받고 우리를 존경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스럽게 감동을 주는 우리의 태도이며 위엄 있는 옷입니다. 좋은 옷을 입는다고 존경받는 것은 아닙니다.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설명했습니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들(이웃과 친지들)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될 것이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Raca)라 하는 자는 재판에 회부될 것이니라.” 이렇게까지 엄격한 것을 잘 보십시오! 부당하게 남에게 화를 내는 것은 타인을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것이므로 지옥에 가거나 업장을 짓게 됩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살인을 저지른 사람만 지옥에 간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우리는 마땅히 자신의 신·구·의를 정화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우리가 순수하지도 않고 친절하지도 않다면, 신에게 예물을 드려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는 그 외에도 많은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너희와 재판을 벌이려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화해하라. 그 자가 너희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경관에게 넘겨 너희를 옥에 가두도록 만들지 말라.” 이는 가능하면 재판에 휘말리거나 남들과 싸우지 말고, 되도록 빨리 그들과 화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설교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오래 전부터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예수는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지적한 것입니다. 바로 불교의 신·구·의와 똑같지 않습니까? (“예”) 그리고 재판에 휘말리지 말고 이웃과 평화롭게 지내라는 것도 불교의 보살계나 출가계와 일치합니다. 그러니 기독교와 불교가 다르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다 같은 것입니다.

예수는 또 이런 말까지 했습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그렇다고 진짜로 빼버리지는 마십시오. 부디 진정하세요. (웃음)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도덕과 계율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뿐입니다. “네 몸의 일부가 없어지는 것이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는 유익하니라.” 이것은 바로 계율의 엄격한 준수를 강조한 것입니다. 나쁜 생각이 일어나면 즉시 뉘우쳐서 그것이 행동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재빨리 뉘우치고 오불을 외우고 스승이나 신을 생각하십시오. 눈은 빼지 말고요. 그럼 추해 보이니까요. (웃음)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옛 사람이 말한 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전혀 맹세하지 말라.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판이요.” 이 말은 모든 것이 신에게 속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 세속의 사람들은 숭고한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없습니다.

“네 머리로도 말라.” 예를 들어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내가 너에게 못되게 굴거나 한다면 내 머리를 내놓거나 벼락을 맞을 거야.” 저런! 너무 끔찍한 말입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그런 식으로 맹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늘과 땅을 업신여기는 셈이 됩니다. 우리는 마땅히 하늘과 땅을 존경해야 하며 그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머리를 걸고 맹세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실 어떤 것을 걸고 맹세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 육신은 신이 창조한 것이기에 우리 임의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니라.” 예수는 이것을 아주 명확하게 설명했습니다. 예, 실제로 예수는 나보다 더 엄격했지요. 아! 잘됐군요! (박수) 오늘부터는 예수에게 배워야겠어요. (청중 웃음)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더 엄격해져야겠어요.

예수의 설교는 이렇게 계속됩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 편 뺨을 치거든 왼 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고소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에게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빌리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도우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놀음을 하기 위해 돈을 빌려 달라는 사람은 그냥 돌려보내야겠지요. 술 마시기 위해 돈을 빌리는 사람이 있으면 술을 못 마시도록 설득하고 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태양을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우리는 신의 분별없는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박수)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이방인)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우리 수행자들은 그들보다 더 높고 나아야 하며 차별심이 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아버지가 완벽하다고 말했습니다. 불자들은 부처가 완벽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 위선자들이 교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군중 앞에서 나팔을 불지 말라. 너희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 이와 똑같은 말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생각 없이 제도하는 것이 진정으로 제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옳은 말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가르친 것은 예수와 부처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과 완전히 같습니다. (박수) 우리가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자비심과 정의와 호의, 그리고 지혜와 믿음, 본분, 사랑으로 하는 것이지 칭찬 받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좋은 일을 한다고 시장에 나가서 나팔을 불고 광고하고 다녀서는 안 됩니다.

예수는 구제하면서 나팔을 불어대는 이들은 자신의 상을 이미 받은 셈이지만, 은밀하게 구제한 이들은 하느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했습니다. 남을 구제하면서 나팔을 불어대는 ‘요란한 보살’은 세속적이고 덧없는 상만을 받지만 우리는 영원한 상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위선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교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너희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예수는 이 점을 아주 명확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우리 수행자들만이 그 골방의 위치를 알고 있습니다! (스승님 웃음. 박수) 너무나 아름다운 설교입니다!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느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니 신에게 기도한답시고 바깥에서 중얼중얼대지 마십시오. 스피커에다 대고 요란하게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다 온 마을 사람들을 다 깨우겠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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