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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일깨우는 말씀 세계 문명을 발달시키는 깨달은 과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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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없다고 했을까요? 우리 내면에는 대지혜와 대자비와 위대한 능력이 있으며, 이는 우리가 신실하게 갈구할 때 나오게 됩니다. 우리 내면의 지혜는 우주와 하나입니다. 그래서 성불하면 우리가 원하는 형상으로 또는 중생을 위해서 어떤 형상으로도 화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과학과 마찬가지로 결코 신비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더 높은 차원에 있는 대수행자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와 재료의 몇 천만 배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빛광자로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많은 도구와 물건들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성불한 사람들은 위에서 할 일 없이 따분해 하거나 그저 구름 위나 연꽃 위를 날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각자 다른 사명이 있어서 불리는 이름들이 각기 다릅니다. 예를 들면 동방약사여래불은 이전에 의료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해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었습니다. 그는 성불하기 이전부터 의약에 대해 연구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후에도 계속 연구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불한 후에는 물론 다른 능력도 모두 갖추게 되었지만 특히 이 분야에 탁월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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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차원 행성의 과학

최고 수준의 깨달음까지 도달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아주 많은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우 진보된 행성이나 인간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나라에 산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곳에 사는 고등한 존재들은 집을 짓고 싶으면 자신의 힘과 지혜로 집을 만듭니다. 여기 지구에서는 아름다운 집을 짓기 전에 벽돌을 구울 진흙과 시멘트를 만들 돌가루가 필요합니다. 고차원의 세계에서는 수정으로 집을 짓습니다.

그곳에서는 수정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벽돌과 시멘트 만드는 식으로 뭔가를 파거나 갈거나 또는 가루로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의 상상력을 이용해서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수정과 다이아몬드를 비롯해 모든 보석들을 즉석에서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만일 수정으로 집을 짓기 원한다면 그저 작은 수정 조각을 앞에 놓고 신통력을 사용하여 크기와 양을 원하는 대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마치 지구상에서 우리가 농작물을 심고 꽃을 경작하듯이 수정을 재배하여 집을 짓는 데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공덕의 씨앗을 심어라, 그러면 복을 거두리라.” 이 말은 정말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무엇이든지 좋은 공덕을 심으면 저 높은 곳에서 복을 수확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높은 세상으로 갈 때 복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부처와 같은 공덕이 있다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매우 빠르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차원 세계에 있는 불보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오로지 아직 낮은 수준에 있는 존재들이나 미개한 행성에 사는 사람들을 돕는 일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불보살들은 요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집에 부엌도 없습니다. 실제로 아무것도 먹지 않으므로 장을 보러 갈 필요도 없습니다. 만일 먹어야 한다면 우주의 힘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창조주와 하나이므로 필요하다면 창조주의 어떤 자원이라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차원의 세계에서는 모두 책임감이 매우 강하고 현명하며 지적이고 또한 사랑이 넘쳐서 남을 돕는 일에 열성적이기 때문입니다. 부패도 전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우주의 재산에 유혹되지 않으며 집에 가져와서 축적해 놓지도 않습니다. 아무도 창조주의 재산을 함부로 남용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불보살들의 방에는 가구가 없습니다.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있다면 아래 세상의 중생들을 돕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고차원의 도구들뿐일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불보살들이 왜 도구가 필요합니까”라는 질문을 하겠지요. 왜냐하면 그들의 수준과 우리의 수준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차이를 해결하거나 중화시키기 위해서는 매개물인 도구가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 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너무 차원이 높으면 우리는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고전압 전기를 예로 들어 봅시다. 고전압 전기는 가정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변압기를 통해 전압을 낮춰야 합니다. 전압이 너무 높으면 전기를 사용할 수 없지요! (박수) 왜 박수를 칩니까? 여러분은 이런 말을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습니까? 간단해요. 마찬가지로 불보살이 우리와 의사전달을 하기 위해서는 이 육체를 이용해야만 합니다. 이 육체 또한 그 도구 중의 하나일 뿐이지요. 예를 들어 서방정토나 다른 불국토에서는 우주의 재료를 이용해서 그런 도구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이런 것도 굳이 필요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곳 속세에 사람들에게 판매할 옷을 만드는 공장이 많이 있듯이 거기도 육체를 전문적으로 생산해 내는 부서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은 대통령이나 내무부 장관 또는 외무부 장관의 일이 아닙니다. 그들이 이런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이는 그들의 책임 영역 밖의 일입니다. 그래서 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여러분이 성불한 후 이곳 속세로 단기간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짧은 여행이란 100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시간을 재는 기준이 엄청나게 다르니까요. 저 높은 세계에서는 시공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시간과 공간이라는 틀 속에 갇혀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때로 불보살들도 이 새장으로 산책 나오고 싶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육신이라는 이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공장’에서 하나를 골라 입고 뛰어오면 되지요!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이것보다도 (스승님이 손가락을 튕기시다) 훨씬 더 빠릅니다. 찰라보다도 더 빠르지요. 그러나 인간 세상에서는 자궁 안에서 9개월을 지내고 십몇 년간 성장한 후에 6개월에서 6년 동안의 구도 과정을 겪고 졸업 후에는 진리를 전파하느라 수십 년의 세월을 보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런 모든 일들이 찰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보살이나 아라한이 되어 여러분의 스승과 고차원의 세계로 올라간다고 가정해 봅시다. 여러분은 좋아하던 일을 계속 배우게 될 것입니다. 부처가 되는 것을 배우는 한편 원래의 전공에 대해 더 배우게 됩니다. 그런 후 사람들을 돕게 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컴퓨터나 원자공학을 공부하면 후에 이런 지식으로 사람들을 돕게 됩니다. 고차원 세계의 것과 비교해 보면 이 세상의 과학기술은 아주 열등한 단계입니다.

만일 우리가 고차원의 세계에서 공부한다면 훨씬 더 진보된 과학적 지식을 배우게 될 것이며,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올 때는 유명한 과학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낮은 수준의 과학자들을 가르쳐서 수준을 조금이라도 높여 주고, 그들이 진보하면 위로 데리고 올라가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시켜서 그들 자신의 분야에서 대가, 즉 과학의 거장이 되도록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더욱 현명해져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을 밤에 잠들어 있는 동안 교육을 시키기 위해 더 높은 차원의 세계로 데리고 갑니다. 고차원의 세계에 있는 일부 과학자들은 우리의 행성이 얼마나 개발되는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주 내려와서 우리의 과학자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더 높은 세계로 데리고 올라갑니다.

과학자들을 자주 데리고 올라가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천상의 일부 수석 과학자들을 이곳에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 내려오게 되면 천상에 있었을 때와 비교해 그들의 지혜가 축소됩니다.

그들은 동시에 두 가지 삶을 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는 이곳에서의 삶이고 또 하나는 고차원 세계에서의 삶을 말합니다. 그들의 영체는 위에서 살고 육체는 이곳 아래에서 삽니다. 영체와 육체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위에서부터 이 두뇌와 육체를 조정하고 일을 하도록 명령을 합니다. 이 육신은 왜 필요할까요?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과 교통하기 위해서입니다. 중생들은 등급도 다양하고 직업도 다양합니다. 그중에서도 과학자들은 세상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므로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을 훈련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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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보살 과학자들

불보살은 몇몇 보살들을 과학자로 이곳에 보냅니다. 그들은 뛰어난 과학자가 되어 일반 과학자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이러한 관계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들을 밤에 높은 차원의 세계로 데리고 가 교육을 시킵니다. 이러한 것도 그들 스스로 원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뛰어난 과학자들에 의해 다소 영향을 받아 내적 개념이 조금씩 변화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많은 과학자들이 전혀 진보가 없습니다. 여러 생을 거듭나도 여전히 뭔가에 집착하고 또 어떤 이론이나 법칙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진보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 뛰어난 보살 과학자들이 와서 증명을 하고 이론을 설명하고 그들이 받아들이도록 설득합니다. 이때 그들은 이전의 두뇌의 장애를 극복하고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면서 발전하여 훨씬 더 진보된 법칙과 이론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불보살들은 세세생생 있었으며, 중생들의 수준이 다르므로 그들의 역할 또한 달랐습니다. 불보살들은 과학 분야 외에도 많은 다른 분야에 능숙합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배웠으니까요. 예를 들어 여러분이 훌륭한 과학자가 되고자 한다면, 이 분야의 전문가, 즉 ‘거장’이 되기까지는 천 년 이상의 세월 동안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수천만 년, 세세생생 동안 여러 분야를 배운 후에야 비로소 성불할 수 있는 거지요.

여러분이 완전히 깨닫기 전에는 이 많은 것들을 배우기 위해 윤회를 반복해야 하며, 이 과정은 매우 지루하고 따분합니다. 완전히 깨달은 부처는 모든 것들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으며 그렇게 힘들게 배울 필요도 없습니다. 이들 뛰어난 과학자들은 보살, 아라한들로서 부처의 일을 대신해 줍니다. 그래서 부처는 이러한 일들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불보살들은 수준이 낮은 우리들에게 우수한 능력을 전달해 주기 위해 이러한 도구들을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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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창조하다

인간이 이 세상에 어떻게 태어나고 인간의 몸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시다. 일단 여러분이 깨닫게 되면 여러분의 스승은 여러분이 볼 수 있도록 여러분을 인간의 육신을 만드는 곳으로 데려갈 수 있습니다. 이는 매우 간단하며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모든 것은 빛으로 창조됩니다. 만일 이 세상에서 뭔가를 만들고 싶다면, 예를 들어 컵을 만들고 싶다고 합시다. 그러면 먼저 어떤 원료를 녹여서 우리의 손과 두뇌 그리고 장비를 이용하여 모양을 만듭니다. 그러나 위에서는 두세 줄기의 빛을 이 세상의 컴퓨터와 비슷한 장비로 맞추면 됩니다. 그러나 위에서 쓰는 컴퓨터는 우리가 지구상에서 전혀 본 적이 없는 컴퓨터입니다. 이 세상의 컴퓨터와 장치들은 너무나 낙후되어 있기 때문에 위의 장치들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 역시 위의 장비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여러분에게 말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저 간단한 설명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한 불보살이 자신이 가진 도구를 이용해 뭔가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는 높은 단계가 아닌 낮은 단계의 보살입니다. 높은 단계의 보살이라면 그런 번거로움을 겪을 필요도 없지요. 그는 두 면을 압축하여 두세 줄기의 빛을 합칩니다. 예를 들어 빨간색과 파란색의 빛이라고 합시다.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에 따라 사용할 빛을 선택하면 됩니다. 늘 빨간색과 파란색 빛만을 사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각기 다른 색깔의 빛들은 각각 다른 기능과 성질, 그리고 용도가 있습니다. 모든 빛에는 지능이 있는데, 이는 이 세상의 돌처럼 감정이 없는 것과는 다릅니다. 위의 모든 빛에는 감정이 있습니다.

두 빛이 한곳에 모이면 보라색 같은 작은 무언가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면 이 보살은 자신의 힘을 이용하여 크게 만든 후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변화시킵니다. 그것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지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과학이 덜 발달된 상태에서는 마치 우리가 쇠조각을 불에 놓고 어느 정도 두드려 펼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압축하여 망치로 납작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원을 만들고 싶으면 둥근 형태가 되도록 망치질을 해야 합니다. 칼을 만들고자 한다면 철을 두드려서 긴 모양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위에서는 망치도 사용하지 않고 힘도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든 간에 지혜를 이용하여 만들어 냅니다. 우주의 힘과 빛을 혼합하여 많은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 역시 낮은 수준이며 배우는 단계에 있는 것입니다. 불보살은 그런 복잡한 도구를 쓰지도 않고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불보살이 사람들에게 이런 일을 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단지 그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섭니다. 또 많은 이들이 이런 일들을 하기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곳에서 하루종일 할 일이 아무것도 없으면 심심할 것입니다. 여러분 상상할 수 있겠어요? 위에서 그들은 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빛을 갖고 놀면서 두 가지 빛을 합쳐서 많은 것들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왜 이 세상에서 많은 고통을 받고 있을까요?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은 언제나 골치 아픈 일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칼을 하나 만드는 데도 많은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더욱 골치 아픈 일이었지요. 총명한 중생들이 아스트랄 세계와 인과의 세계로부터 많이 내려와서 우리 인간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점점 현명해지고 진보되어서 우리의 세상이 더욱 편안하고 사람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과학적인 물건들을 만들어 내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세상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지혜와 수십억 배 이상 진보된 곳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곳들을 서방정토, 불국토 혹은 천국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나서 고통을 받을까요? 이는 우리가 얻을 수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원하기 때문입니다. 뭔가를 얻으려면 우리는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힘을 이용하여 땀을 흘리거나 심지어 눈물까지도 흘려야 합니다. 때로는 얻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것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번뇌하게 됩니다. 얻고자 하는 것을 손쉽게 구하고 따라서 많은 고통도 받지 않는 고차원의 세계와 이 세상은 다릅니다. 이리하여 물질적이거나 낮은 단계의 요구일지라도 우리의 욕구가 쉽게 채워진다면 고통스러운 경우는 훨씬 줄어듭니다. 물질적인 부족으로 인해 이 세상의 많은 나라들이 망하고 또 다른 나라들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침략당하고 살해되었습니다.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의 통치를 받고 노예가 되었습니다. 이런 것 역시 일종의 고통입니다. 만일 이 세상에 물질적인 궁핍이 없다면 이 세상은 천국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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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이 세상과의 차이

나는 여러분을 천국으로 이끌기 위해 물질적인 것을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천국과 이 세상과의 차이를 말해 줌으로써 여러분은 왜 많은 고통을 받고 있고 그들은 왜 그렇게 즐겁고 모든 일을 쉽게 하며 더 총명하고 더욱 문명화되었는지를 알려 줄 뿐입니다. 우리 대부분이 왜 그렇게 많은 것을 요구할까요? 이는 우리가 신의 왕국을 알고 있고 전에 그곳에 가 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의 왕국을 본 적이 있고 그곳에 대해 배웠습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과학적인 지식과 불보살의 경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우리의 기억을 되살린다면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을 확실히 알게 되며 점차적으로 이해하게 될 겁니다. “오, 나도 전에는 아주 많은 능력이 있었네”라고 말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우리가 부처의 경지에서 이 세상을 한번 구경하러 내려와서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명상할 때 이런 경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지는 어디에서부터 오는 걸까요? 내가 여러분께 보여주려고 수퍼마켓에서 사왔나요? 아니면 텔레비전을 틀어서 보여주는 걸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모두 여러분의 내면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원래 우리의 기억 속에 있던 것입니다. 불보살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어느 누구도 여러분에게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눈을 감으면 여러분 스스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불보살은 우리의 친구이며 우리의 본성입니다. 외부의 그 무엇이 아닙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바깥에서 부처를 찾아다니며 숭배한다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는 외도를, 그릇된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모든 것은 우리의 내면에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나의 가르침이 논리에 맞다는 걸 이해했을 줄 압니다. (박수)

“부처가 되기 위해 부처를 숭배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처를 숭배하면 부처가 될 수 없습니다”라고 내가 말할 때 반대하거나 신경과민이 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아직 깨닫지 못했거나 이 이치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의미합니다. 수세기를 거쳐 어느 누구도 외부에서 부처를 찾아낸 사람은 없었습니다. 부처를 일단 찾은 사람은 일체유심조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불교인들은 아침 저녁으로 예불을 드릴 때 “삼세의 부처를 알고자 한다면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성찰하라. 모든 것은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다”라고 항상 암송합니다. 부처도 마음에 의해 창조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우리의 내면에서 부처를 찾아야 합니다. 산이나 강 또는 우상을 숭배해서는 안 됩니다.

방금 내가 어떤 세계에 대해 말한 것은 여러분이 이 세상과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한 것뿐입니다. 그 세계는 가장 높은 세계도 아닙니다. 가장 높은 세계에서는 그러한 것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해할 수 있도록 낮은 수준의 이야기만을 했을 뿐입니다. 만일 내가 위에서는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많은 것을 갖고 싶어하고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려워할지도 모릅니다. 만일 지금 여러분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면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 견디지 못할 수도 있고 너무 생소하게 느끼게 될지도 모릅니다. 불보살은 모든 것을 갖고 계십니다. 어떤 도구도 필요 없으며 두 줄기의 빛을 맞출 필요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불보살은 전지전능하시며 마음 먹은 대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아직도 어떤 외양에 집착해서 부처가 이런저런 모습처럼 생기셨기를 원하므로 그저 그들의 희망대로 맞추어 주십니다.

성불을 하면 모든 창조물과 하나가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지요? 그런데 왜 아직도 이런저런 부처가 있을까요? 그들은 물론 우주와 하나이지만 개인의 특질을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개별적으로 발전해 온 탓에 우리가 모두 하나이고 개별성이 없던 이전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이미 태어난 아이와 같습니다. 아이가 여러분의 피와 뼈 그리고 사랑으로 나왔다 해도 그 아이를 다시 뱃속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습니다. 그 아이는 본래 여러분에게서 나왔지만 출생한 이후로는 한 개인이 된 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주의 위대한 빛으로부터 탄생된 이후 각자 발전해 왔습니다. 비록 우리가 처음에는 우주와 하나였다 해도 우리 각자가 발전한 후로는 같은 능력과 재능, 힘과 사랑을 여전히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래의 빛이 될 수는 없습니다.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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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신의 왕국에서 왔다

우리가 불국토에 살게 되면 우리의 개념, 관점, 지혜, 일처리 방식 그리고 사고방식 등이 이 세상에 사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 사바세계에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제약을 받기 때문에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일을 합니다. 그래서 이런 틀을 부수고 한번 둘러보러 나가기 위해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겁니다. 우리 대부분은 원래 불보살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한번 둘러보고 축복을 주고 이곳의 중생, 동물, 식물과 돌까지도 교육시키러 내려왔습니다. 그들을 가르치고 축복을 주며 수준을 향상시켜 주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가르친 후에 그만 습관이 되어 우리가 가르치고 있는 것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에는 놓지를 못하고 이곳에 묶여 이렇게 된 거지요.

나는 여러분에게 새로운 법문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며 새로운 경전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이 나와 똑같고 또 불보살과 같다고 항상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자신이 누군지를 기억해 내기 위해서 다시 자신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 하고 있습니까?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의 불성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나타날 겁니다. 오랫동안 깨달음을 추구한 후에 내면이 깨어나게 되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손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잊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오랫동안 명상을 한 후에 손이나 어떤 육체적인 형태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을 갖거나 걸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잠시 마사지를 해주면 손의 감각을 느끼게 되어 사용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나 오래 갇혀 있거나 묶여 있었다면 전신이 마비될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 풀어 주어도 손과 발을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이와 같은 이유입니다.

우리 불성도 마찬가집니다. 만일 불성을 계발시키지 않고 불성을 일깨우지도 않고 꺼내어 사용하지도 않는다면 우리는 그저 평범한 존재에 불과하겠지요. 비록 우리 내면에 불성과 대지혜가 있다 하더라도 꺼내어 사용하지 않는다면 쓸 수가 없는 거지요. 이는 굶어죽을 때까지 은행에다 저축만 하고 꺼내 쓰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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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눈을 계발하여 수행하는 것을
습관으로 삼아라

입문 전에, 또 어떤 사람들은 입문 후 수행을 하면서 왜 때때로 빛을 볼 수 없을까요? 왜 어떤 이들은 겨우 가끔씩만 빛을 볼까요? 이는 우리가 오랫동안 제3의 눈을 사용하지 않아서 곰팡이가 끼고 녹슬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사용하고 싶다 해도 익숙하지가 못합니다. 이는 마치 매일 근육을 단련하는 사람은 점점 더 강한 근육을 갖게 되는 것과 똑같은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먹어 매일 위를 단련시켜서 결국 위만 점점 커지게 됩니다. (웃음) 어떤 사람들은 제3의 눈을 훈련시켜 제3의 눈이 점점 많이 열리고 더욱 밝아져서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육체의 눈으로 외부 세계를 보고 제3의 눈으로 내면의 세계를 볼 수 있다면 모든 종류의 눈을 갖고 내면과 외부를 동시에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불국토와 더 높은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세상은 우주에 있는 여러 세계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거칠고 더욱 물질적이지만 다른 종류의 영체도 있습니다. 이는 육체적인 외모와 비슷한데 더욱 아름답고 섬세하며 우아합니다. 만일 우리의 아름답고 섬세하며 우아한 눈으로 보지 않는다면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육체와 영체로 되어 있는 것과 같이 한 송이 꽃도 물질적인 꽃과 더욱 아름다운 영체로 되어 있습니다.

깨달은 사람이나 지혜안이 열린 사람은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도 무언가에 주의를 집중하는 연습을 한다면 얻을 수 있습니다. 근육을 단련하면 더욱더 발달할 것이고 또 위를 단련시키면 아마도 위가 어마어마하게 커질 것입니다. 두뇌를 사용하면 할수록 더 총명해질 것입니다. 대학에 가서 매일 많은 것을 공부하면 더욱 똑똑해져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과학자들은 두뇌를 사용하여 매일 연구를 하기 때문에 세상을 위해 많은 것을 발명해 낼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3의 눈을 훈련한다면 이는 마치 일을 하거나 취미를 갖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제3의 눈을 훈련하기 위해서 아내와 자식, 가족을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나는 아무것도 놓지 않았습니다. 나에게는 많은 자식과 아내와 가정이 있습니다. (스승님 웃으심, 청중 박수) 나는 그저 한 가정을, 한 사람을 단념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응보를 받았습니다. 만일 남편이나 아내, 두세 명의 아이들이 있는 게 골치 아프고 그들이 여러분의 수행을 방해한다고 생각한다면 나를 본보기로 들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가족을 포기한다면 여러분은 나와 같이 될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돌봐야 될 것입니다. 다른 곳으로 도망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돌보면서 제3의 눈을 훈련하는 것은 우리의 취미입니다. 이것은 대단한 일도 아니고 신비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모든 불보살이 우리의 기억 속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 생을 거쳐 많은 일을 하는 동안 불보살들은 늘 우리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들을 기억하게 되면 깨닫게 될 겁니다. 매일매일 자신에게 기억하도록 일깨우면 결국 깨닫게 될 겁니다. “나 역시 부처이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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