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스승의 길
살아 있는 스승이 필요한 이유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신의 힘을 이 세상으로 가져오기 위해 살아 있는 스승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는 뭡니까? 신의 힘은 무소부재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냥 기도를 통해 우리를 축복해 달라고 기원하면 안 됩니까? 왜 꼭 살아 있는 스승이 필요합니까?”

나도 신의 힘이 직접 우리를 축복해 주고 우리가 깨닫고 성인이 되고 천국에 들어가고 진리를 얻고 우리가 바라는 지복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랍니다. 하지만 창조주는 그런 식으로 안배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을 한번 보세요. 아이를 가지려면 먼저 결혼해야 합니다. 신이 “얍!” 하고 천국에서 아이를 만들어 우리 앞에 던져 주는 게 아닙니다! 쌀이나 야채를 원하면 먼저 씨를 뿌리고 잘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습니다. 누가 이런 창조의 법칙을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런 법칙이 없으면 세상이 혼돈 속으로 빠져 버릴 겁니다.

모두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아무렇게나 기도하겠죠. 범부의 마음은 무지합니다. 잘못된 것을 기도해서 이 세상을 엉망으로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그러니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런 법칙이 그리 나쁜 것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땅벌레들은 척박한 산성 토양을 경작 가능한 옥토로 바꿔 놓습니다. 그 일을 왜 창조주가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모릅니다. 하지만 어쨌든 땅벌레들 덕분에 경작하기에 좋은 땅이 생깁니다. 땅벌레도 인간처럼 나름의 기능을 하는 거지요.

또 예를 들면 남편과 아내는 함께 아이를 낳습니다. 그것은 주문이나 창조주의 기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중생이 신의 품성을 지녔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유에 대해선 모릅니다. 예수도 우리 모두 신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신의 자녀라는 것은 창조력을 타고났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없으면 사람도 없고 아이도 없습니다. 구세주도 이 세상에 오기 위해 인간의 몸을 빌려야만 했죠. 인간이 위대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중생은 본래 삶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이 본성이 창조의 원동력이자 신의 자비이고 사랑입니다. 신은 모든 중생이 살아서 행성 전체에 널리 퍼지길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의 자녀이면서도 신과 직접 교통할 수 없습니다. 받아들이기가 쉽진 않지만 창조의 법칙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한 예로 우리는 우리 아이들 역시 신의 자녀들임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들 역시 우리를 통해 태어나야만 했습니다. 같은 땅에서 여러 종류의 화초와 과실수, 나무들이 자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제각기 자신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흡수하여 다양한 꽃을 피우고 과일을 맺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두 신에게서 태어났지만 모습이 제각기 다릅니다. 개개인은 서로 다른 영양분을 흡수하는 화초나 과실수, 나무와 같은 거지요.

불교식으로 얘기하자면 이 영양분이 바로 인과(카르마)입니다. 인과가 정확히 뭘까요? 이생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 혹은 전생에서 한 모든 일들이 자장으로 변해서 그와 비슷한 것을 우리 몸으로 끌어들여 현재의 우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수많은 생에 걸쳐 수행을 해야 깨달은 스승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불경에서는 수조 년에 걸쳐 수행을 해야만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건 아마도 우리가 수많은 품성과 능력을 길러야 완벽해지고 완전히 준비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상 정말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즉각적인 깨달음과 일세해탈’이라는 내 주장과 상반되는 것 같군요! (웃음)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는 데 수조 년이 걸리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왜 나는 ‘즉각적인 깨달음과 일세해탈’을 말할까요? 시간이 된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깨달음’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미 영겁의 세월 동안 수행을 해 온 사람들은 즉각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겁의 세월이 흘렀는지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동안 예수, 부처, 노자, 장자, 공자, 맹자와 같이 깨달은 스승들이 많이 있었는데도 이 세상은 아직도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그건 많은 사람들이 아직 해탈하지 못했다는 의미지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해탈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동안 불교에서 말하는 육도를 거듭 윤회해 왔습니다.

육도가 뭐죠? 천인이 되었다가 시간이 다하면 천국에서 떨어져 짐승, 아귀가 되거나 지옥으로 가는 것 등을 말합니다. 최고의 의식에 도달하기 전에는 육도를 윤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육도 윤회는 삼계 이내에 있습니다. 그럼 이른바 삼계란 것은 또 무엇일까요? 이 세상 외에도 우리가 올라가고 내려갈 수 있는 세계가 세 개 더 있는데, 이 세계들을 가서 한번 둘러보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그러려면 수행을 해야 합니다.


왜 우리는 신의 힘을 직접 접할 수 없는가?

왜 그렇게 이상할까요? 조금 전에 나는 많은 사람들이 “왜 깨달은 스승이 있어야만 법을 전수받을 수 있습니까? 왜 신의 힘이 직접 우리에게 전해질 수 없는 겁니까? 자비로운 관세음보살은 무소부재하며 우리의 모든 기도에 응답해 주는데, 왜 우리 앞에 직접 나타나지 않고 범부의 모습을 통해 이런 일을 행합니까?”라고 묻는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이렇습니다.

자비로운 관세음보살이 무소부재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그가 바로 우리 눈앞에 있어도 그를 보지 못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진동이 너무 조잡하고 그의 것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깨달음에 도달한 사람의 진동은 아주 미세해서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인도의 유명한 요가 수행자인 파라마한사 요가난다는 그의 자서전인 <요가난다>에서 스승의 스승인 바바지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바바지는 히말라야에서 천년 이상 살고 있는 불멸의 스승입니다. 하루는 바바지가 요가난다의 스승을 방문했습니다. 그래서 감격한 요가난다의 스승이 서둘러 차를 준비하러 안으로 들어갔는데, 다시 나와 보니 스승인 바바지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바지가 햇빛에 몸을 숨겼기 때문입니다. 이 얘기는 전에도 해준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햇빛 속에 몸을 숨길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햇빛에 숨어 남들이 못 보게 하는 걸 상상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영적인 수행자들에게만 이해되는 것입니다.

좀 전에 우리 동수 가운데 한 사람도 내가 가끔씩 사라져 버린다고 말했습니다. “스승님이 어디로 사라지셨습니까? 육체는 질량이 있는데, 어떻게 그처럼 빨리 도망가실 수 있습니까? 어떻게 사라지실 수 있습니까?” 나는 자신을 빛 속에 숨겨 사람들이 찾을 수 없게 한 겁니다!

어떤 몸은 아주 미세해서 천안이 열리지 않은 사람에겐 보이지 않습니다. 범부는 마음이 안정되어 있지 않아서 그들을 볼 수 없는 겁니다. 관음법문으로 명상할 때 우리는 가끔 신의 세계를 보게 되는데, 그때 우리가 너무 기뻐하면 신이 금세 사라져 버립니다. 신이 우리를 두려워해서 도망갔을까요?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평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신이 사라져 버리는 겁니다.

나중에 우리가 수행을 해서 최고 경지에 이르게 되면, 그땐 완전히 깨달은 존재를 보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완전히 깨달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이 경지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도달할 수 있는 아주 높은 경지입니다. 관음법문을 수행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이 경지에 오를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박수) 그렇지만 관음법문을 수행한다고 누구나 다 이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어제 우리는 놀랍도록 뛰어난 의술을 지녔던 진산(金山) 스승에 대해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그가 어떻게 사람들을 치료했는지 압니까? 그는 몸의 때, 목욕물, 가래, 콧물, 귀지 등을 사용해서 사람들을 치료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치료를 받고 싶습니까? (웃음)

우리는 분별심이 있어 설사 깨달은 스승이 온다 해도 축복을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스승이 육체를 빌려 나타나도 여전히 그를 믿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들이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지요. 우리 대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과거와 미래의 스승을 믿지 않기 때문에 완전히 집중해서 염불을 하지 못합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스승을 믿고 싶어도 볼 수 없어서 쉽게 믿지 못하는 거지요.

진산 스승이 하루는 고위 관료의 부인을 치료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진산 스승은 그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 부인을 껴안고 키스하며 부인의 입 속에 침을 넣었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질겁하고 달아났죠. 지금까지 그런 스승은 만나 본 적이 없었던 겁니다. 그리고 물론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남편은 그 즉시 부인을 내쫓았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다른 한 여인이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가련한지고! 진산이 어떻게 사람들을 치료하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야. 진산의 몸에서 나오는 건 뭐든지 기적을 일으키는 약이거늘.” 이 이야기가 사실이더라도 보통 사람들은 남의 침을 삼키는 게 불가능하니 그들을 탓할 수만도 없습니다. 나라도 그 침을 삼키지는 않았을 겁니다! (웃음) 진산 스승에게 용서를 빕니다! (스승님과 대중 웃음) 난 너무 솔직한 게 탈이에요!


세상을 구하는 최상의 방법

세상이 온통 뒤죽박죽이어서 깨달은 스승들은 중생 제도를 위해 밖으로 나오길 망설입니다. 실제로 좋은 것들을 우린 나쁜 것으로 간주하지요. 그리고 반대로 마약처럼 나쁜 것들, 우리를 오만하고 병들고 화나게 하는 것들은 좋은 것으로 봅니다.

그렇지만 이런 법문들은 극소수 사람들에게만 유용하므로 그것을 가르치지 않는 스승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중생들을 탓할 수 없습니다. 범부는 다른 식으로 생각하고 다른 관념을 갖고 있으니까요. 그런 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좀더 편안한 법문들을 사용합니다. 위에서 말한 것 같은 법문들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니까요. 어떻게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식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당시에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죠. 많은 사람들이 진산의 치료를 거부하고 병을 지닌 채 그냥 떠났습니다.

어떤 스승들에겐 그런 방법이 필요 없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방법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외면 이로움이 있다고, 구원을 받는다고 들어 왔습니다. 이런 방법들이 좀더 편안하죠. 그렇지 않습니까?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외는 것으로 아들을 낳을 태몽을 꾸거나 승진을 하거나 장수하거나 남자로 환생하는 꿈을 이룰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관세음보살처럼 깨달은 스승은 아주 드뭅니다!

우리는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에 대해 많이 들어 왔지만 그들은 좀처럼 이 세상에 내려오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들 불보살의 이름조차 들어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을 예로 들어 보죠.

그들이 어떻게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알겠습니까? 그렇다고 그들이 영원히 구원받지 못할까요? 그렇다면 이 얼마나 가련한 일입니까? 우리가 잠깐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을 잊고 더 훌륭하고 멋진 스승에게 집중했다고 칩시다. 그땐 스승의 이름을 암송할 필요조차 없을 겁니다. 스승을 알기도 전에 이미 스승에게 구원을 받았을 테니까요. 이런 존재들이 최고의 스승입니다. 하지만 극히 드물지요.

또 설사 그들이 이 세상에 내려온다 해도 우리는 그들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들이 “나는 깨달은 스승이다.”라고 말해도 우리는 그를 믿지 못합니다. 물론 그들 스스로 그렇게 주장하는 경우는 드물지요. 그러니 어떻게 그들을 알아보겠습니까? 우리의 생명을 구원해 줄 위대한 스승을 만난다는 게 이처럼 어렵습니다.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것이 늘 유익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관세음보살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이 이 세상에 내려와 육신으로 화해서 우리와 교통하기만을 희망할 수 있습니다. 오로지 그럴 때에만 희망이 있습니다.

나는 어제, 신이 여기에 내려와 있어도 우리가 상상하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어서 실망하게 될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신이라 하더라도 모든 사람의 마음을 다 충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실망하는 중생은 언제나 있게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은 신이 남자인 것을 좋아하고 또 어떤 사람은 여자인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자신의 마음과 타협하고, 마음에게 이 점을 납득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이 남자건 여자건, 키가 크건 작건, 그의 외양이 어떻든 그를 받아들여야 한다!” 여러분은 이런 식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박수)


깨닫고 난 후에도 스승이 필요하다

나는 처음 포모사에 왔을 때 7일 염불선에 참가했습니다. 7일 동안 불보살의 명호를 외는 것이죠. “나무 아미타불, 나무 관세음보살….”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하루 종일 서너 댓 명의 불보살 이름을 쉬지 않고 외워서 집에 돌아갈 때면 목이 다 쉬곤 했습니다. 이것이 염불선입니다.

염불할 때 난 약간의 체험을 했습니다. 그때 당시 난 관음법문을 수행하고 있었지만 할 일도 별로 없고 해서 포모사 사람들이 어떻게 수행하는지를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유명한 선 스승들을 만나러 가곤 했습니다. 나는 경지가 높든 낮든 모든 수행자들을 좋아합니다. 신을 향한 그들의 갈망과 소박한 생활 방식, 자비로운 중생 구제 서원을 좋아합니다. 그들의 그런 면을 다 좋아합니다.

그들과 함께 염불하는 동안 나는 감응을 좀 받았고 아미타불을 만났습니다. 그때 갑자기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중생들이 큰 고통에 놓여 있다고 느껴져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때는 참회 의식 중이어서 전부가 아미타불을 염하고 있었지만 난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는 아미타불에게 이렇게 불평했습니다. “중생들은 큰 고통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당신의 성스런 이름을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그들은 염불하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겁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만일 부처(깨달은 스승)가 된다면 사람들이 내 이름을 외울 필요조차 없게 만들겠습니다. 누군가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즉시 가서 그를 돕겠습니다!” (박수)

성심으로 기원하면 뭐든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내가 체험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나는 전에도 몇 번 서원을 했는데 모두 실현되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진실로 중생을 돕고자 한다면 정말 신실하게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빨리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 도를 얻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관음법문을 수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깨닫기를 간절히 바라면 우리의 신실함이 신을 감동시킬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고통 받는 중생을 돕고자 한다면 우리의 신실함이 천상의 존재들을 감동시킬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우리의 서원이 실현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순식간에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우린 열심히 깨달은 스승을 찾아야 합니다. 때가 되면 스승이 우리 앞에 나타나겠죠! 우리가 이처럼 위대한 서원을 세운다면 스승이 나타나고 최고의 존재가 우리를 도우러 올 겁니다. 아주 빨리 깨달아 도를 이루게 될 거예요!

평범한 사람들은 이처럼 큰 서원을 세우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녀가 좋은 성적으로 대학에 가길 바라고, 딸이 고위 관리와 결혼하길 바라고, 승진을 하거나 세상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여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자신을 잊고서 자신의 복을 바라는 대신 다른 사람들의 평안한 삶을 전심으로 기원합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전생에 수행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고귀한 이상이 잠재의식 속에 기록되어 있는 거지요. 누구한테서 그런 걸 배운 게 아닙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뭘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죠. 예를 들면 우리는 모두 신앙심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처나 관세음보살의 자비,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 들어 알고 있고 그들을 믿고 있습니다. 모든 이들이 이것을 알고 있지만, 그 사실이 우리를 그들처럼 자비롭고 사랑에 넘치게 만들진 못합니다.

이따금 우리는 그들처럼 서원을 하기도 하지만 그들처럼 신실하진 못합니다! 자신이 진심에서 우러나 서원한다고 여기지만, 조금만 지나면 두려움이 생겨 “아니, 관두세요. 그냥 해본 말이에요”라고 하죠. (스승님과 대중 웃음) 그래서 수행에 성공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성공하려면 아주 신실해야 하고, 위대한 스승의 도움을 받으며 성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왜 위대한 스승이 필요할까요? 그 이유를 방금 말했죠. 자, 다시 한 번 그것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벼는 자라서 곡식(쌀)이 됩니다. 하지만 누군가 논에 벼를 심어 주지 않으면 벼는 싹을 틔울 수 없습니다. 또 싹이 튼 후에는 누군가 그것을 돌봐 주고 모내기를 해주고 비료를 주고 해충을 막아 주고 물을 대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새싹은 살지 못합니다.

이렇듯 세속의 일조차도 결실을 맺으려면 전문가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도를 얻는 건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의 안내를 받는다든지, 혹은 자기 혼자의 힘으로 무턱대고 찾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깨닫고 난 후에도 역시 스승이 필요합니다. 계속해서 우리의 등급을 향상시키고 새로 열린 우리의 지혜를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안 그러면 지혜가 금세 시들어 죽고 말 겁니다.

불이법문(不二法問)

많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염불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지만 난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어제 나는 여러분에게 좀더 효과적으로 염불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완전한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고 나를 원망하진 마십시오. 단순히 염불만 해서는 깨달을 수 없으니까요. 왜냐고요? 염불은 아직 ‘분별이 남아 있는 법문’이기 때문입니다.

신과 나 사이에 분별이 있습니다. 내가 염불하고 내가 신을 경배하는 것이지 내가 신이 된 것이 아니니까요. 내가 신이라는 경지에 도달하려면 다른 법문이 필요합니다. 법문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법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일종의 법맥, 보이지 않는 힘, 스승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나 이런 스승에 의해 지명된 제자가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는 이심전심의 전법이라고 하는 게 옳습니다.

그러므로 꼭 스승에게 배워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법문을 전수해 주라고 스승이 보낸 제자에게 배워도 상관없습니다! 법맥을 전하도록 스승이 내면으로 허가를 했기 때문에 효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뢰할 수 있습니다.

밀라레빠는 한때 흑마술을 사용해서 나쁜 업장을 지었기 때문에 그것을 씻기 위해 스승에게 7년간 벌을 받았습니다. 그의 스승은 7년이 지나도록 그에게 법문을 전해 주지 않았지요. 그래서 밀라레빠는 조급한 마음에 스승 몰래 살짝 법문을 배우려고도 했지만 성공하진 못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계략을 하나 짰습니다. 스승의 부인한테 도움을 받아 스승이 잠든 사이에 몰래 스승의 도장을 찍어 스승의 편지를 날조한 거지요. 밀라레빠는 이 편지를 가지고 먼 곳에 사는 스승의 제자에게 갔습니다. 이 제자는 사람들에게 법문을 전해도 좋다고 스승이 허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밀라레빠는 스승이 자기한테 법문을 전해 주라고 했다며 그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의 말을 곧이듣고 이 선배 제자는 밀라레빠에게 법문을 전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전혀 효력이 없었어요! 어떻게 스승을 속이겠습니까? 밀라레빠는 계략이 성공할 줄 믿었겠지만 깨달은 스승의 지혜를 속이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스승에게 돌아가 무릎을 꿇고 간절히 용서를 구할 수밖에 없었지요.

스승만이 누군가에게 이 법문의 전수를 위임하고 그 권리를 취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문을 전수하는 그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법문을 전할 때도 범부의 몸인 이 칭하이가 하지 않고 스승의 힘이 합니다. 여기서 스승이란 바로 내면의 스승을 뜻하죠!

우리 내면의 지혜는 성숙하여 깨달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외부의 협력을 필요로 합니다. 이렇게 외부의 도움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열리죠. 예를 들어 달걀은 닭이 되기로 예정되어 있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선 부화될 때까지 암탉이 매일 달걀을 품어 줘야 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내면에 깨달음의 본성과 지혜를 가지고 있지만 스승의 도움 없이는 그것을 꺼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암탉이 달걀을 품어 줘야 하는 것처럼 창조의 법칙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암탉이 없으면 인공적으로 보온을 해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새끼가 태어나지 못하지요.

이처럼 우리는 늘 우리 안에 불성이 있다, 신이나 최고의 힘은 무소부재해서 언제나 우리를 도울 수 있다는 말을 듣지만, 이 세상에 내려온 신의 화신을 만나기 전에는 신을 잡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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