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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감응

증명된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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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락 동료수행자/ 미국

되돌아온 신기한 이야기

작년 선칠에 나는 명상 캠프 참가를 준비하고 있을 때, 어머니의 병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받았다. 나는 어머니를 뵙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어울락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 때 고향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손에 잡히는 대로 스승님의 책과 녹음테이프, 비디오 등을 준비하였다. 나는 입문을 한 후 많은 유익함을 얻었고, 또 스승님의 가르침이 가장 좋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항시 스승님의 책을 어울락으로 가지고 돌아가 나누어 줄 수 있는 기회를 희구했다. 나는 10여 개에 달하는 비디오테이프와 즉각 깨닫는 열쇠 한 권 그리고 문답록을 챙겨 가지고 내가 어울락의 세관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 어울락의 세관에 도착했을 때 나는 대단히 긴장하였다. 심장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해서 뛰었다. 나는 한편으로 스승님의 모습이 담긴 목걸이를 움켜쥐고서 그 목걸이를 내 가슴속 깊숙이 집어넣고 또 다른 한 편으론 얼마 걸려도 좋으니 스승님의 책을 가지고 무사히 통과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구하였다. 한 편으로는 기도하면서 한편으로는 세관검사를 위해 긴장된 마음을 졸이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두 사람의 청년이 나에게 와서 물었다. “외국에서 들어오시는 겁니까? 뭐 내가 도와줄 짐이 없습니까? 나는 당신을 다른 줄로 데리고 가서 검사 받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여권 검사하는 것도 아주 빠릅니다. 단지 나한테 돈을 조금만 주면 됩니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제 짐을 도와주시겠어요?”

그들은 말했다. “나는 여기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자신의 신분증을 내보였다. 그러자 당시의 나를 짓누르던 압박감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지면서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다. 그 뒤에 그들은 나를 비교적 사람이 적게 서 있는 줄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여권과 비자를 대단히 빠르게 검사하도록 해주고 내가 가지고 있던 두 개의 짐도 열어보지 않아 세관을 아주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두 명의 청년은 내 짐을 들고 밖으로 나와서 차에 실어 주었다. 집에 돌아 올 때, 나는 달마대사에 관한 비디오테이프와 만화영화를 찍은 비디오테이프, 그리고 한 대의 비디오를 샀다. 내가 집에 돌아오자 내 동생들은 나를 보고 왜 그렇게 고가품을 사는데 돈을 낭비했냐고 원망어린 이야기를 했다. “우리 집은 가난한데, 왜 그런 기계를 사야 하죠?” 나는 “우리가 배고픈 것은 참아낼 수 있지만, 우리는 원래 그렇게 부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력만 하면 자기가 먹고사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 비디오는 어떤 사실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계이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거란다.” 비록 나는 이렇게 말했지만 아주 대단히 가난하기 때문에 나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첫 날 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만화 영화 한 편을 보여 주었다. 왜냐하면 당시 우리 일대에서 칼라 TV와 비디오가 있는 집은 우리 집 한 곳뿐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모여들었다. 만화영화를 보고 나서 계속해서 나는 달마대사의 비디오를 틀어 주었다. 모든 사람들은 달마가 중국에 가서 법을 전하였는데 대단히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보고 흥미로워 하였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에게 다시 다른 좋은 비디오, 즉 스승님의 강연 비디오를 틀어주었다. 나는 스승님께 미국의 성 요셉에서 강연한 것을 택했는데 강연의 내용은 5개의 종교를 하나로 통일한다는 것이다.

그날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두 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우리 집으로 스승님의 비디오를 보러 왔다. 우리 집은 비록 대단히 작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이를 상관하지 않고 어떤 사람은 의자에 서서 보기도 하면서 만원을 이루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아주 열성으로 스승님의 강연 내용을 경청하고 있는 것을 보고 대단히 기뻐했다. 그래서 우리의 응접실에 아주 크게 걸려있는 스승님의 사진을 모두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사진을 꿇어앉아서 경배를 올렸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서 채식을 하게 되었다.

그후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몇 백의 사람들이 스승님의 비디오를 보게 되었다. 나는 내가 가지고 간 두 권의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 볼 수 있도록 복사했다. 그밖에 나는 몇 명의 비구승을 찾아갔다. 그 비구승들도 나에게 스승님의 강연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몇 개 달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 비구승은 모든 사람들이 스승님에 대해서 찬탄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그 스님도 비디오테이프를 틀어서 절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우리 집이 대단히 성황을 이루게 되자 어느 날 몇몇 공안 당국의 요원이 우리 집을 찾아오게 되었다. 그 때 우리 집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비디오테이프를 보려고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동생들은 긴장하여 이렇게 말했다. “큰일났어. 공안당국 사람들이 왔어.”나는 바로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갔다. 마음속으로 스승님께 기구했다. 그 때 갑자기 나의 신체가 불가사의한 강한 열기로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후에 나는 점차 두려운 마음이 사라져 냉정하게 그 사람에게 말했다. “이렇게 나의 어머니의 문병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나를 보려 오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미국에서 돌아 온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왜 나의 비디오테이프를 검사하려고 하는지요. 나는 이 기계를 아주 합법적인 방법을 샀고 영수증도 있습니다.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도 문화 사업기관의 검사를 거쳐서 합법적인 절차로 통과된 것입니다.”

그들이 비디오와 비디오테이프가 합법적이지 못하며 용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논쟁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냉정한 태도로 그들과 교섭을 하였다.

이 때 동생들과 주위 사람들은 모두 무서워 벌벌 떨고 있었다. 공안당국 요원들과 말을 하면 할수록 정정당당하게 맞섰다. 그러면서 나는 드디어 화를 내기 시작하였다. “ 내가 방영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비디오테이프이고 또 사람의 마음과 사회를 정화시키는 것인데 왜 내가 이 테이프를 틀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까?”

또 나는 이렇게 말했다. “ 자, 공안당국 요원들에게 비디오를 좀 보여줘. 이 비디오야말로 도덕적인 것이니까. 빨리 그 공안당국 요원들에게 틀어 줘.” 그 때 나는 대단히 직접적이고 명백하게 말했는데 그것은 대단히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러자 공안당국 요원도 할 수 없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화내지 말아요. 나는 단지 우리의 책임을 이행하러 왔을 뿐입니다.” 그리고 또 공안당국 요원들에게 비디오를 틀어주자 그것을 완전히 본 이후에 아무 문제도 없다고 말하고는 바로 떠났다. 스승님! 제가 그렇게 용감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제가 스승님의 도움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미 모든 일은 다 스승께서 안배하신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집으로 비디오를 보러 온 사람들은 돌아가서 대단히 많이 채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스승님의 법상 앞에 꿇어앉아 경배를 올리며 아주 신실하게 갈망하여 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다 스승님에 대해서 찬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나의 집에 와서 나의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러 온 의사마저도 스승님의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밥 먹는 것을 잊을 정도로 쳐다보았습니다. 스승님의 강연 모습을 본 사람들은 전부 머리를 흔들며 “저렇게 위대한 스승님은 마땅히 어울락으로 돌아와 우리들을 제도해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지금 나는 내 자신의 체험을 말하고 있다. 내가 어울락으로 돌아온 지 15일 째 되던 날에 어머니께서는 거의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위독한 상태였다. 나의 어머니는 이미 90 이상의 나이였는데 나는 바로 나의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셔갔다. 우리 집안 사람들은 내가 어울락으로 돌아온 후에야 비로소 채식을 시작했다. 어머니께서도 스승님의 비디오를 본 이후에 경배를 드리며 참회하였다. 내가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갔을 때, 의사가 X레이 촬영을 해 주면서 어머니의 병이 너무 심각한 지경이라 몇 개월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 말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켜 계속 치료하도록 결정했다.

어느 날 병원으로 돌아와서 나의 방문을 잠그고 명상을 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방으로 뛰어 들어와 “어머니께서 곧 돌아가시려고 해.”라고 말했다. 이 소식을 듣고 나는 곧바로 오토바이를 타고 병원에 가서 어머니를 뵈었다. 병원에 도착하자 이미 다섯 명의 의사가 응급조치를 하고 있었다. 원래 나는 대단히 걱정하고 긴장하였다. 스승님의 법호를 계속 외우면서 스승님께 나의 어머니를 도와주시고 어머니의 병이 조금 더 진정되기를 기구했다. 점차 나의 어머니의 입과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변하기 시작했고 머리칼도 점차 원래 모습으로 변하여 보기가 좋았다. 나는 그 때 스승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다. 그리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게 되어 나의 몸도 점차 긴장을 풀고 따뜻해져 옴을 느꼈다.

나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었다. “저 알아보실 수 있겠어요?” 그러자 어머니는 의식이 뚜렷이 되돌아와서 나의 이름을 불렀다. 나는 내 입을 어머니의 귀 가까이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어머니 큰소리로 나무 칭하이 무상사 님이여 저를 구해 주십시오. 제게 스승을 따라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이렇게 큰 소리로 외우세요.” 이렇게 어머니의 귀에 대고 속삭이기를 15분 정도하자 어머니는 드디어 그것을 외우기 시작했다. 얼마 지난 쥐 어머니는 나에게 말했다. “나에게 물 한잔 다오.” 그 때 의사가 상황을 보고 바로 어머니의 맥을 짚어 보았다. 그러면서 나에게 말했다. “ 당신 어머니가 지금도 살아있어요. 말할 수 있어요.” 그 때 어머니께서 완전히 다시 깨어났다. 그리고 얼굴과 피부도 모두 다 아주 불그스름하게 되었다.

나는 이것은 모두 스승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다른 병상에 가서 명상을 했다. 명상 중에 스승님께서 갈색의 옷을 입고 계셨는데 온 몸이 녹색과 흑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나는 이런 스승님을 뵙고 끌어안고 막 울었다. 본래 나의 어머니가 병으로 곧 돌아가시게 되었어도 별로 울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스승님의 모습을 보자 스승님을 부여잡고 참을 수 없이 계속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스승이시여. 당신께서는 제 어머니의 업장을 거두어들이기 위해 그러한 고초를 당하고 계십니까?” 나의 동생은 내 옆에 있다가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물었다. “지금 뭐라고 했어?” 나는 명상에서 깨어난 뒤 그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너희는 스승님께서 얼마나 자비로운지 몰라. 스승님께서 내가 지금 기구 하는 것을 들으시고 내 앞에 바로 화신으로 오셨었어.”

그 후에 나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었다. “방금 어머니께서 혼미한 가운데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아세요? 모르세요?” 어머니는 “비디오테이프에서 본 것과 똑같은 스승님이 계셨는데 그 분이 나에게 오셔서 세단 차에 올라타라고 했지만 나는 감히 올라탈 수가 없었어.”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큰일났네. 스승님께서 어머니를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오셨는데 어머니는 완전히 기회를 잃어버렸어요.” 그러나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나는 너무 기뻤다. 어쨌든 스승님께서 어머니를 돌봐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 후 나의 비자가 기간이 거의 끝나갔다. 내가 어울락을 떠나기 전에 어머니는 계속 편안한 상태였다.

미국에 돌아 왔을 때,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은 미국에 돌아가기 전에 어느 날 저녁에 명상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이미 어머니께서 돌아가실 징조를 보았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동생이 함께 나를 보러 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의 얼굴은 대단히 아름다웠고 즐거운 모습이었다. 삼일 후 동생의 전보를 통해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것을 알았다.
나의 수행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작년에 나는 스승님의 사랑을 더욱 더 크게 느꼈다. 초사흘 날 스승님께서는 제자들을 꾸짖으셨다. 그런데 스승님의 꾸짖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나의 영혼은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은 너무나 따뜻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스승님께서 보이지 않게 나를 도와 업장을 씻어 주고 계신다는 것을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스승님에 대해 표하는 감사의 마음은 언어로써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다.

- 뉴스잡지 19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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