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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과 생활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님들께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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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수행자 루루미 사형/ 포모사 타이베이

나는 이제 막 청소년기를 벗어난 사회 초년생입니다. 성장기를 겪으며 얻은 몇 가지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들을 부모님 되시는 여러 동수님들과 나누어 요즘 청소년들의 사고 및 행동 양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이 글을 씁니다.


청소년기의 감정

또래들과의 우정, 가족적인 유대, 이성 친구와의 사랑 중에서 청소년에게 가장 중시되는 것은 우정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막 독자적으로 사고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법을 배우게 된 청소년들에게 있어서는 또래 친구들의 반응과 인정이야말로 자신감과 힘을 키우는 가장 큰 원천이 되기 때문이지요. 동시에 청소년들은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 자신이 다 자랐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자 합니다. 예를 들면 집에 늦게 들어올 자유를 원하고, 자기 삶을 스스로 관리하는 더 많은 권리를 갖고자 하지요. 또 친구에 대한 의리가 강해서 친구를 실망시키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이 그들을 가두는 감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당시 나는 어머니가 너무 참견한다고 느꼈습니다. 지금은 어머니의 사랑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때는 어머니의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습니다.

그러니 부모님은 이 시기에 가정을 정신적 안식처로 만들어 주시기를 권합니다. 자녀들이 밖에서 상처를 입고 돌아왔을 때 그들을 나무라지 말고 최대한 빨리 치유되도록 도와주는 게 낫습니다. 상처가 치유된 뒤 다시 나가서 상처를 입는다 해도 그것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배움의 과정이므로, 부모님은 인내심을 가지고 옆에서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으면 됩니다. 한번은 밖에서 친구들과 놀다 안 좋은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그날 어머니는 왜 이렇게 늦게 돌아왔냐고 나무라지 않으시고, 대신 내가 저녁을 먹었는지 물으시며 서둘러 밥을 차려 주셨습니다. 나는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서 밥을 먹으며 다시는 반항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10대의 사랑에 관해서는, 강제적으로 이성 교제를 금지시키는 것보다 서로를 존중하고 친구로서 잘 지내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낫습니다. 이성 관계에 대해 건전하고 올바른 개념을 세워 주고 그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이해시키면 자녀들의 인격 발전과 성장에 큰 도움이 됩니다. 청소년들은 경험이 부족한 탓에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긍정적인 이성 관계를 키워 간다면 ‘나무토막’처럼 감정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입니다.


학업

대부분의 부모님들에게 있어 자녀들의 학업은 최대 관심사입니다. 오늘날은 학력 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에 좋은 학력을 갖고 있으면 직장을 구하기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지요. 대학을 졸업하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건대 나는 한번도 공부에 흥미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인연이 있었는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와 대학도 쉽게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대학 입학시험의 만점은 600점이었는데 나의 첫 모의고사 성적은 180점, 두 번째 모의고사에선 190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 시험에서 280이 되더니 마침내 300점을 얻어 대학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점수는 타이베이의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대학을 선택하기에 딱 맞았습니다. 당시 나의 수행은 아직 견고하지 못했기 때문에, 만일 그때 집을 떠나 먼 곳으로 대학을 갔다면 수행을 그만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타이베이에 남아 있게 되자 단체명상에 정기적으로 참석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수업 시간을 조절해 센터 일에 참여할 기회도 많이 갖게 되어 구도심을 더욱 굳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저 개인적으로는 공부는 각자의 인연과 타고난 능력과 연관이 있으므로 순리대로 따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모님들이 자녀에게 공부를 강요할 필요는 없지만 그들에게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하면 지금 사회에서는 살기가 어렵고 육체적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 가야 한다는 것은 알려 줘야 합니다. 자녀들은 조만간에 자신의 미래와 마주하게 됩니다. 자녀들이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 분명히 알고 생각하도록 부모님들이 도울 수 있다면 그들은 나중에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수행

10대 시절, 나는 나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느끼곤 했습니다. 완전 채식을 하는 데다 매일 2시간 반 명상을 해야 했고 이런저런 것을 할 수 없었으므로 우정을 유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날마다 우정과 수행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나는 종종 ‘왜 수행을 해야 하는가? 왜 이 두 가지는 동시에 존재할 수는 없는 걸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한때는 저녁 8시에 친구와 외출하여 다음날 아침 8시에 들어와 수업 시간 내내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 몰랐고, 나 자신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나는 단지 나 자신이 행복을 찾고자 갈망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바깥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나는 진정으로 나를 만족시키는 참된 행복은 바로 내 내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청소년 동수들이 아주 어릴 때 입문을 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 수행은 어린 시절부터 몸에 익은 일상생활에 지나지 않을 뿐 ‘해탈’이라는 말이 굉장히 요원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유혹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 대해 아직 많은 호기심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무조건 바깥세상과의 접촉을 금지시킨다면 세상의 영향으로부터 보호할 수는 있지만, 과보호가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가장 영향력 있는 가르침은 부모님이 몸소 보이는 말없는 모범입니다. 열심히 수행하는 모습과 은총으로 충만한 사랑만이 진정으로 자녀들의 가슴 깊은 곳을 감동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 힘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암울한 시절에도 관음 가족을 떠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관음법문 없이 단 하루도 살 수 있으리라곤 상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지요.


맺음말

왜 이 편지를 청소년이 아닌 부모님들께 썼을까요? 왜냐하면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호기심이 많고, 스스로 탐색하고 경험하며 답을 얻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의견은 별로 듣고 싶어하지 않고 충고도 따르려 하지 않습니다. 그 당시의 나를 돌아보아도 그와 같아서, 나는 오직 나 자신의 생각에 따라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10대의 생각은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치고, 또 이 때문에 많은 충돌이 일어납니다. 어느 날인가 나는 문득 이 모든 것을 반성하다가 어머니가 나를 끝없이 보살피고 한결같이 사랑해 주셨으며, 내가 밖에서 ‘길’과 ‘행복’을 찾는 동안 스승님이 언제나 내 곁에 계시며 늘 나를 보살피고 사랑하고 보호해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을 이해한 뒤 내 마음은 부드럽게 누그러지고, 그때부터 ‘반항’이라는 두 글자와는 완전히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십대 자녀를 둔 부모님들께 자녀들을 진실하고 헌신적인 사랑으로 대해 주실 것을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 무아의 사랑이야말로 내면의 갈등과 고민을 겪는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처방입니다.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응석을 받아 주는 것도, 구속당하는 것도 원치 않으며, 대신 옳고 그름과 선악, 대인 관계에서의 올바르고 건전한 개념을 정립하는 데 있어 부모님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비록 때때로 비뚤어진 행동을 하거나 올바른 길을 모른 척하기도 하지만, 그게 바로 ‘청소년’인 것입니다.

나의 이 작은 견해가 부족하나마 청소년과 부모님께 도움이 되기를 신실하게 바라고, 관음 가족의 모든 청소년들이 이 위대하고 건실한 수행의 길을 꾸준하게 안정적으로 걷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

- 뉴스잡지 138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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