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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칭하이 무상사 국제협회 &amp;gt; 관음법문 &amp;gt; 입문과 수행</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int</link>
<description>테스트 버전 0.2 (2004-04-26)</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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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입문과 수행 - 질의응답&lt;2&gt;</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int&amp;amp;wr_id=23</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스승님, 제가 관음법문을 수행하면 죽은 친척들을 찾아서 함께 대화할 수 있습니까?</p>
      <p>죽은 친척이요? 아, 물론이지요. 하지만 당신이 그곳에 가고 싶어하지 않을 것 같군요. 어떤 친척들은 연락이 닿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곳에 가고 싶다면 스승이 필요하지요. 아니면 위험할 겁니다. 그러니 죽은 친척을 만나는 게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지금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사람의 친척들, 죽은 친척들은 여태껏 겪고 있던 고통에서 즉시 벗어납니다. </p>
      <p>이미 천국에 가 있다면 더 높은 천국으로 갈 것이며, 빛의 형법을 받고 있다면 빨리 통과할 수 있습니다. 너무 무거운 형벌인 
        경우엔 협상을 해야 합니다. 스승은 협상을 하거나 그 사람 대신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예를 들어 그들이 수천 년 동안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스승은 수천 년 동안이나 고통을 겪을 필요가 없습니다. 몇 시간, 때로는 
        몇 초, 몇 분, 더 길어질 수도 있지만 그리 심각한 아픔은 겪지 않습니다. 그와 같습니다. </p>
      <p>그러니 죽은 친척들을 만나는 게 항상 이상적이진 않습니다. 살아 있는 친척들을 만나는 게 낫습니다. 그들을 사랑하고 돌보고 
        죽기 전에 격려해 주십시오. 하지만 죽은 친척도 볼 수 있습니다. 볼 수 있고말고요. 많은 동수들이 죽은 친척들과 친구들이 덕분에 
        해탈했다며 찾아와 고마워하는 걸 보기도 합니다. 전혀 대단한 일이 아니지요. </p>
      <p class="caption_2"> 우리는 꿈속에서 업장을 갚습니까? 업장을 어떻게 갚습니까?</p>
      <p>신의 은총이 있어야만 꿈속에서 업장을 갚습니다.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엔 물질적으로 갚아야 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하는 식으로 갚아야 하지요. 입문을 하거나 깨닫게 되면 우리는 신의 은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p>
      <p>이생에서 존재하기 위해 갖고 있어야 하는 정업(定業)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인과의 법칙에 따라 살지 않게 됩니다. 그런 정업은 
        우리가 계속해서 치러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조차 어느 정도까지는 소멸되거나 순조로워질 수 있으며, 상당 부분이 감소될 수도 있습니다. 
        오직 그런 경우에만 꿈에서 빚을 갚을 수 있습니다. </p>
      <p class="caption_2"> 가끔 명상할 때 고양되는 것을 느끼지만 희고 검은 것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제 등급이 낮거나 아직 좋지 않다는 뜻인가요?</p>
      <p>흑백을 본다면 컬러텔레비전을 사야겠군요! (웃음) 만일 당신이 고양됨을 느끼고 더욱 평온해지고 사랑으로 넘치며 내면으로 향상되고 
        행복하게 느낀다면, 그것이야말로 명상의 최고 결과입니다. 만물이 지복에 넘치게 되지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가 명상하여 많은 
        빛을 보고 많은 소리를 듣는 것은 우리가 빛과 소리로부터 배우길 원하고, 삶의 지혜와 영혼의 평화와 평온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p>
      <p>따라서 평화와 행복을 얻었다는 것은 어쨌든 여러분이 이미 빛과 소리에서 오는 축복을 소화해 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매일 
        더욱더 많은 지복과 행복 그리고 인자함을 갖는 것이야말로 중요합니다.</p>
      <p class="caption_2"> 저는 명상할 때 생각이 이리저리 떠돌고 불안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p>
      <p>하루 종일 일하고 와서 바로 평온해지기란 쉽지 않습니다. 좀더 오래 명상하십시오. 마음이 차분해지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가능한 한 언제나 오불을 외우는 것을 기억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원치 않는 생각들을 모두 무시하십시오. </p>
      <p>명상하기 전에 스승의 책을 읽고, 스승의 테이프를 듣고, 스승의 비디오테이프를 봐도 됩니다. 또 명상하는 동안 스승의 테이프를 
        작게 틀어놔도 좋은데, 주의할 것은 소리가 앞에서 들려오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뒤에서 들리게 해선 안 됩니다. 위에 말한 
        한 가지, 혹은 전부를 실행하면 엄청난 축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명상할 때는 지혜안에 집중하는 것을 기억하십시오.</p>
      <p class="caption_2"> 만약 앉아서 명상할 수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p>
      <p>그럼 일어나서 잠시 걷고 세수를 하거나 샤워를 하십시오. 좀 걷다 돌아와서 다시 시도해 보십시오. 포기하지 마세요. 매일 명상한다고 
        해서 매일 기운이 회복되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날마다 명상해야 합니다. </p>
      <p>가능한 언제든 명상을 해야 합니다. 신의 은총은 따로 만날 약속을 하고 찾아오는 게 아니니까요. “내일 너를 찾아가 평화를 
        주겠다, 내일 비전을 보여주겠다, 내일 세 번째 하늘로 데려가겠다.” 하는 식으로 우리와 약속하지 않습니다. 그런 게 아니에요! 
      </p>
      <p>신의 은총은 언제고, 어느 순간이든 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어떤 명상법으로 수행하든 끈기 있게 해 나가면서 우리 안에 있는 
        최고의 신께 우리를 인도하시고 도와주시고 격려, 축복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p>
      <p>명상이 잘되든 안 되든 우리는 매일 명상해야 합니다. 그럼 어느 때가 되면, 어쩌면 내일이나 바로 이 다음 순간에라도 얻는 
        게 있을 것입니다. 그냥 굴복하지 마십시오. 가게를 열어 물건을 팔 때도 그렇잖아요. 여러분은 손님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 종일 문을 열어 놓고 기다려야 합니다. 손님이 있든 없든 문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때로는 마지막으로 들어온 손님이 가게의 
        물건을 전부, 혹은 반을 사 가기도 하니까요. </p>
      <p class="caption_2"> 명상하는 동안 발이 저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p>
      <p>방석의 높이를 조절해 보십시오. 아프지만 않으면 저린 상태를 참아 보세요. 자세를 너무 자주 바꾸지 않는 게 삼매(의식의 지복 
        상태)에 보다 쉽게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초심자의 경우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지만, 좀더 수행하고 나면 차츰차츰 익숙해질 
        겁니다. 명상할 때 꼭 가부좌를 할 필요는 없어요. 등만 곧게 편다면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해도 됩니다. 의자에 앉아서 
        해도 되고요.</p>
      <p class="caption_2">스승님, 저는 명상할 때 집중할 수 없습니다. 마음은 사방을 내달리고 온갖 상념들이 떠오릅니다. 
        어떻게 해야 집중하고 명상을 더 잘할 수 있을까요?</p>
      <p>입문자입니까? (사회자: 입문했나요?) 다르게 답하려고 해서 그렇습니다. 누가 질문을 했지요? (어떤 사람: 입문자입니다.) 
        그래서 단체명상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한데 응집된 힘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시간을 내십시오. 바로 집중할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다소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p>
      <p>내가 강연 앞부분에서 말했듯이 이 역시 당신 자신을 용서하십시오. 이 세계의 상황은 우리가 조용히 명상하고 차분히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시 또다시 시도하십시오. 이 세상에도 한 가지 장점이 있는데, 그것은 이 세상에서 수행하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에 신의 축복이 수십 배, 수백 배로 주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 걸음을 내딛으면 스승의 힘은 우리를 
        돕기 위해 백 걸음을 걷습니다. </p>
      <p> 천국에서 수행한다면 그만큼 수지맞진 않습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수행하는 건 시간이 좀더 걸립니다. 예를 들어 이곳에서의 하루 
        수행은 천국에서 백일 수행하는 것과 맞먹습니다. 그래서 많은 천인(天人)들이 인간의 몸으로 환생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더 빨리 
        수행하려고요. 이곳에는 업장, 상황, 재난, 전쟁, 고통, 행복 등 모든 것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이는 일종의 고온의 불로서 
        우리를 단련시킵니다. 이러한 불들은 우리를 자신과 세상을 위해 쓰일 강하고 유용한 도구로 만듭니다. </p>
      <p>이곳에서 수행하는 동안, 우리는 친구들을 도울 기회도 얻기 때문에 공덕도 더 많이 쌓게 됩니다. 예를 들어 집에서 혼자 명상하면 
        자기 한 사람만의 공덕만 얻지만, 노력이나 언변을 통해 자신의 건물을 백 명이 명상할 수 있는 장소로 제공한다면, 그때 여러분은 
        개인적인 공덕에다 백이 넘는 공덕을 쌓게 됩니다. 내 말 이해하겠습니까? 혹은 백 명의 사람들을 입문시키면 이 공덕 또한 여러분 
        것이 됩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될수록 우리의 공덕은 더욱더 확장되고 커지게 됩니다. 수학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셈입니다. </p>
      <p> 그러니 여기가 천국보다 낫습니다. 천국에서는 모두들 행복하게 지내므로 여유롭습니다. 그들에겐 집중하도록 밀어붙이는 동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슬픔이나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기도가 더 잘되고 명상도 잘된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그 순간에는 스승을 
        더 많이 기억하지요. “오, 스승님, 제발, 제발, 제발….” 하고 애원합니다. (대중 웃음) 그러면 그날 체험도 더 좋고 빛도 
        더 크고 소리도 강하게 들리며, 기분이 고양되고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어렵긴 하지만 이 세상에서 수행하는 
        건 훌륭한 일입니다. </p>
      <p>많은 동수들이 열심히 수행해서 기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냥 구경 삼아 센터에 오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괜찮아집니다. 다들 
        눈을 감고 있어서 사실상 그리 오래 두리번거리지도 못합니다. 조금 지나면 당황해서 그들도 눈을 감고 바깥의 예쁜 여자 대신 내면의 
        것을 보게 되지요. 그래서 절이나 센터를 갖는 것은 굉장한 이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거기에 모여 같이 집중하고 오로지 신만을 
        생각하니까요. 그건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니 시간을 내십시오.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려도 됩니다. 그러고 나서 싫증이 나면 눈을 
        감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명상하십시오. 됐지요?</p>
      <p>마음은 늘 통제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우리가 날마다 연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난 여러분에게 “입문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부처입니다.”라고 말할 겁니다. 더 애쓸 필요도 없이요! 그건 우리의 습관이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수천 년간, 
        어쩌면 더 많이 되었을 수도 있지요. </p>
      <p>그래서 이 모든 습관들을 한 생에 정리하는 건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아니면 그것을 계속하기 위해 
        천년도 넘게 여기에 머물고 싶나요? 어쨌든 명상은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좀더 많이, 두 시간 반이나 세 시간 명상하라고 말하는 
        겁니다. 처음 20분 동안엔 고군분투하지만 계속 명상하다 보면 한 20분 뒤엔 안정되기 시작합니다. 30분 후엔 즐기기 시작하고, 
        40분 뒤엔 가 버리지요. (대중 웃음)</p>
      <p class="caption_2">명상하는 동안 우리가 명상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위해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합니까? 만약 완전히 
        깨어 있지 않거나 잠이 든 상태라면 그 명상에 다른 이로움이라도 있습니까?</p>
      <p>그럼요, 잠을 잘 잔 것이지요. (대중 웃음)</p>
      <p><span class="caption_2">스승님, 수행하는데 조용한 환경이 필요합니까?</span><br /></p>
      <p> 예, 처음에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때때로 일주일 
        혹은 2주일 또는 3일, 4일간 선행사를 갖는 것이지요. 매년 다른 시기에 평화롭고 조용한 명상환경 속에서 함께 모여 그런 기회를 
        갖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 외에는 당신은 사회에 나가서 우리의 형제자매들에게 빛과 축복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산에서 언제까지나 
        숨어 살면서 이기적인 부처가 될 수는 없습니다. (웃음)</p>
      <p class="caption_2"> 제가 고기를 계속 먹어도 입문한 후 여전히 깨달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p>
      <p>고기는 여러분 개인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전쟁과 고통의 원인입니다. 따라서 육식을 금하는 것이 지구의 평화에 이바지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살생의 원인을 종식시킨다면 살해되거나 부상당하는 결과를 거두어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p>
      <p>또한 육식을 금하는 것이야말로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을 간접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며, 모든 생명에 대한 자비심을 키워 그들을 
        신의 동등한 창조물로 대할 수 있게 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동물성 식품을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p>
      <p>육식을 하면 입문하여 깨닫더라도 아주 무거운 업을 씻어야 하기 때문에 그 업으로 고통받게 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일정한 경지에 
        도달하여 천국의 완전한 순수성과 정면으로 부딪히게 될 때 육신의 불결함 때문에 어느 정도 부작용을 겪게 됩니다. 심신이 맑지 
        않으면 내면에 있는 강력한 힘을 견뎌 내기가 어렵습니다.<span class="caption">&lt;칭하이 무상사/ 1993. 4. 
        24. 프랑스 파리&gt; </span></p>
      <p class="caption_2"> 입문한 뒤에도 고기를 먹거나 나쁜 생각을 하는 실수를 저지른다면 신과의 연결이 끊어지거나 
        심한 벌을 받게 됩니까?</p>
      <p> 나쁜 생각은 깨달은 뒤에도 바로 제어할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자동차 브레이크와 같은 거니까요. 시속 60마일로 
        달리는 차를 멈추려면 서서히 멈춰야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자신을 완전히 정화하는 데는 얼마간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육식의 경우는 피할 수 있는 일이지요. 다만 모르고 실수로 먹은 경우는 괜찮습니다. </p>
      <p>하지만 그날은 명상을 더 많이 해서 그것을 깨끗이 씻어내야 합니다. 육식은 업장이 아주 무거우니까요. 이 때문에 사람들이 아프고 
        몸이 고통스러운 것이며, 다른 존재에게 고통을 준 대가로 나중엔 지옥에 가야 합니다. (대중 박수)</p>
      <p class="caption_2"> 저는 입문했다가 나약해져서 다시 고기를 먹게 될까 봐 걱정됩니다. 스승님, 그래도 제가 입문해야 
        할까요? </p>
      <p>그럼요. 아주 정직하군요. 마음에 들어요. 미래는 알 수 없습니다. 현재에 신경 쓰세요. 됐지요! 어쩌면 두 번 다시 먹지 
        않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신실하게 스승에게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당신이 신실하다면 스승은 당신이 쓰러지도록 
        두지 않을 겁니다. 됐지요!</p>
      <p class="caption_2">깨닫는 데 왜 그렇게 채식이 중요합니까?</p>
      <p>그건 당신에게 중요합니다. 채식을 하지 않아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에게 입문 전 채식할 것이 아닌, 입문한 
        후에 채식하라고만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스승의 축복이 있다면 똑같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만물을 향해 자비로운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지요. </p>
      <p>자신의 몸을 여기저기 먹어 버린다면 나중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또한 우리는 물질적인 미각에 너무 
        깊이 빠져들어서는 안 되며, 대신 천국의 지복에 빠져야 합니다. 만물에겐 살아갈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생존의 
        행복을 선사해야 합니다. </p>
      <p class="caption_2"> 친애하는 스승님, 제 아내는 오늘 입문하러 왔습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채식을 했습니다. 저는 
        시도는 해봤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왜 그런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십시오.</p>
      <p>부인이 채식 요리법을 더 배워야 할 것 같군요. 음식이 맛이 없으면 가련한 남편은 먹을 수 없지요. 그러니 사실 깨달음은 여기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스승님이 배를 가리키심) 여기뿐 아니지요. (스승님이 지혜안을 가리키심) (대중 웃음) </p>
      <p>내가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전 남편이지요. 그는 이미 재혼했습니다-나는 채식주의자였지만 그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의사인 데다 
        아주 실리적이고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황소자리에 소띠였습니다. 소가 두 마리나 되니 비상식적인 건 전혀 믿지 
        않았지요. 하지만 내가 요리를 아주 잘했기 때문에 매일 나와 함께 식사했고, 채식에도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p>
      <p> 내가 ‘세상을 구하려는 이상’을 찾아 (스승님이 농담조로 말씀하심) 그와 헤어진 뒤에는 내가 남긴 조리법을 모두 모아 친구들에게 
        요리해 주면서 늘 이렇게 광고했답니다. “아내는 이렇게 했었지, 저렇게 했었지. 야채는 비타민이 정말 풍부해.” 그는 내가 남겨 
        놓은 조리법 그대로 요리했어요. </p>
      <p>그처럼 서양인이, 그것도 독일인인 데다 과학적 사고를 가진 의사조차 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었으니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부인들이 
        식사를 맛있게 만든다면 아무도 육식이 그립지 않을 겁니다. </p>
      <p>중국식 탕을 예로 들자면, 면과 고기 조각이 들어갑니다. 그 고기 대신 글루텐으로 만든 고기나 두부 고기, 혹은 채식 햄 등 
        온갖 것을 넣을 수 있습니다. 생선도 채식으로 만들 수 있고, 그 어떤 것이라도 채식이 아닌 것과 완전히 똑같이 만들 수 있습니다. 
        기술의 문제지요. </p>
      <p>깨달음으로 가는 길은 위장을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요. 그러니 부인들은 부디 솜씨 좋은 손을 잘 활용해서 남편들이 함께 
        먹을 수 있도록 멋지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십시오. 여자들은 더 쉽게 합니다. 정말 그래요. 여자들은 뭔가를 믿으면 그냥 
        아무거나 먹습니다. (스승님과 대중 웃음) </p>
      <p>그러나 남자들은 좀 과학적이고 현실적이라서 여자처럼 지나치게 감상적이 되진 않습니다. 여자는 정, 애정, 감정에 따라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뭔가를 믿으면 맛이야 어떻든 그냥 먹습니다. (대중 웃음) 그러나 남자의 경우는 보다 비판적이어서 먼저 입맛이 
        충족돼야 깨달음이 옵니다. (대중 웃음)</p>
      <p><span class="caption_2">입문한 후, 오랫동안 스승님을 따라야만 합니까? 아니면 우리가 원할 때 언제라도 
        바꾸거나 중단할 수 있습니까?</span><br /></p>
      <p>물론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그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같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같은 질문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스승님 웃음, 청중 박수)</p>
      <p><span class="caption_2">입문식을 하는 데 얼마나 걸리죠? 개인적으로 행해집니까?</span><br /></p>
      <p>개인적으로 그리고 내면으로요. 그러나 외면상 입문식은 한번으로 족합니다.</p>
      <p> <span class="caption_2">관음법문을 Rose Crucian같은 종교와 함께 상용할 수 있습니까?</span><br /></p>
      <p>물론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종교를 바꿀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단지 매일 2시간 반 명상을 하고 채식을 해야만 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여러분은 카톨릭이나 불교, 다른 종교를 가져도 됩니다.</p>
      <p></p>
      <p><span class="caption_2">또 다른 질문이 있습니다. 이 방법과 다른 수행방법을 혼용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저는 
        몇 년 동안 다른 방법의 명상을 해왔습니다. 그러면 제가 스승님께 입문하면 그 방법을 그만두어야 할까요? </span><br /></p>
      <p>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br /></p>
      <p class="caption_2">예. 그렇게 생각합니다. </p>
      
      <p> 예. 당신은 이미 알고 있군요. 우리가 어떻게 자전거 두 대를 동시에 탈 수 있습니까? 넘어지겠지요. 우리는 계율과 규칙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 것은 바로 우리 삶의 장애를 예방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 바로 변화나 불행, 죄책감 등을 예방하기 
        위한 거지요. 그래서 우리가 명상할 때 이런 것들이 없으면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br /></p>
      <p>그러나 어떤 다른 경우를 잘 고려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가 살았을 당시, 기억납니까? 누군가 예수에게 간음한 여자를 데리고 
        와서 재판을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때 예수가 어떻게 했지요? 그는 그 여인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p>
      <p>왜냐하면 특별한 경우였기 때문이었지요. 그 여인은 남편과 사랑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그녀는 애인과 사랑을 하고 있었고 그와 
        정을 통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이 억지로 그녀와 결혼해 놓고는 매일 그녀를 아주 못살게 굴었습니다. 그러니 애인이 왔을 
        때 그들은 서로 기억하고 당연히 껴안았습니다. 그런 것을 간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p>
      <p>소위 남편이라는 사람은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내를 동물처럼 대했습니다. 그리고 우선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그녀를 그런 식으로 대하는데 어떻게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충실하겠어요? 무슨 뜻인지 알지요? 그것은 
        결혼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비록 그들이 결혼증명서가 있고 법원에 결혼을 등록했다고 해두요. 그래서 우리는 죄책감을 예방하고 
        우리의 행복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것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br /></p>
      <p>그것이 계율입니다. 사랑이 가장 좋은 계율이지요. 은총은 가장 높은 판결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한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지켜주고, 우리 자신의 평안을 지켜주는 이 세상의 좋은 시민이 되고자 몇 가지 규칙과 규범을 따라야만 합니다. 바로 이런 
        계율과 규칙이 여러분을 온갖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이유입니다. 그게 전부예요. 됐습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p>
      <p><span class="caption_2">저는 지금 지시서를 보고 있는데요.</span>(M: 예)<span class="caption_3"> 
        </span><span class="caption_2">신념을 가진 후에 모두 사인하고 싶습니다. 여기에는 제가 매일 2시간 
        30분 명상해야 된다고 씌어 있는데요.</span>(M: 예) <span class="caption_2">불가능합니다. 제가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어떤 면으로 제가 계율을 지킨다는 게 의심스럽습니다. 몇 년이 지나면 아마 계율에 맞춰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써는 확실치 않으므로 여기에 싸인함으로써 저 자신을 잘못 전하고 싶지 않습니다.</span>(M: 
        이해합니다.) </p>
      <p>당신은 매우 정직하군요. 아주 좋습니다. 당신이 잘할 수 있을 때까지 할 수 있는만큼 노력하십시오. 알겠어요? 제 얘기는 당신이 
        일부러 안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됐어요? 그러나 당신이 처음 입문하면 그렇게 와서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루에 1시간, 30분, 또 30분씩 나누어서 하면 됩니다. 아니면 서서히 오늘은 30분 또는 1시간 하고 다음주나 내일은 1시간 
        10분씩 당신이 좋을 대로 천천히 늘려서 하면 됩니다. 그러나 일단 앉으면 당신은 일어나고 싶어하지 않을 것 같군요. 예. 문제는 
        앉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거지요. 알겠어요?<br /></p>
      <p><span class="caption_2">예. 잘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span><br /></p>
      <p> 이 방법은 앉아 있으면 당신에게 아주 많은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아마 당신은 앉을 기회만 찾을 것 같군요. 그러니 그 점에 
        대해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을 놓치지 않을 테니까요. 됐어요? </p>
      <p>그것은 다만 우리가 진정한 계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게 하고 싶어서입니다. 당신이 일단 들어오면 열심히 해야 
        된다는 뜻이지요. 호기심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면 안 되지요. 이해합니까? </p>
      <p>그러니 우리는 모든 것을 다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사람들이 하루 2시간 30분 명상해야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나를 
        비난하지 않겠지요. 자, 이제 끝내겠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p>
      <p>그러나 당신은 명상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게 되어 2시간 30분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 있을 
        때 8시간, 10시간, 20시간 명상을 합니다. 아, 명상하기 아주 좋아합니다. 이것은 음식 같아요. 우리 영혼에 아주 맛있는 
        음식 같지요.</p>
      <p></p>
      <p><span class="caption_2"> 안녕하세요. 보울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입문신청서 그쪽에 다른 사람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 영적인 힘을 사용하지 말라고 씌어 있는 것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 점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손으로 치료하거나 다른 종류의 치료를 하고 있는 사회에 제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span><br /></p>
      <p>보세요. 만일 당신이 치유가가 되기를 원하면, 치유가의 자격을 원하면 하십시오. 당신이 치료를 포함한 전체를 알기 원하면 여러분이 
        그 전체를 알 때까지 치료는 잠시 미뤄 놓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 치료할 수 있습니다. 치료함이 없는 치료를 할 수 있지요.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기만 해도 치료가 됩니다. 어떤 류의 무드라를 취하거나 만질 필요도 없고 그들의 자장을 방해할 필요도 없지요. 
      </p>
      <p>어떤 경우에는 도리어 혼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예. 그래서 사람들이 어떤 치유가에게 가서는 더 혼동을 일으키는 이유입니다. 
        혹은 오늘 어떤 사람을 성공적으로 치료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내일 또 아프지 않으리라고 보장할 수 있습니까? 이해해요? 완전하지 
        않습니다. </p>
      <p>그래서 스승의 영혼은 그 순간 치료될 준비가 다 된 사람을 자장의 영역을 간섭하지도 않고, 그 사람의 업장을 방해하지도 않으면서 
        모든 사람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그들의 진보를 더 빠르게 해줍니다. <br /></p>
      <p>그러나 일반적인 영적 치유에서는 여러분의 집을 깨끗이 청소해 주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치유가 자신이 자아를 가지고 하기 
        때문에 자신의 업장의 이해 수준으로 행동하기도 하고 도리어 환자에게 부담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 가지 질병을 고칠 수 있지만 
        다른 면으로는 또 다른 선물(질병)을 받게 되는 겁니다. 결국에는 더 복잡하게 되고 맙니다. </p>
      <p>그리고 환자는 영적 치유가를 통해 병이 나으면 자기 자신의 신의 힘이 내면의 치유 능력을 일깨웠다고 믿는 대신 치유가를 믿게 
        됩니다. 그것은 환자와 치유가에게 모두 위험합니다. 환자는 치유가를 믿게 되고 치유가는 자아가 더 강해집니다. 그러니 사람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구세주가 되는 것입니다. 즉 치료함이 없이 치료하는 거지요. 예수는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도 이것 
        저것을 했습니다. 예수 자신이 바로 치유력입니다. 그는 치료함이 없이 치료합니다. 앎이 없이 치료하지요. <br /></p>
      <p>많은 사람들이 내가 병자와 맹인, 그와 비슷한 질병을 치료해 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면 나는 전혀 그것에 대해 
        모릅니다. 내 자존심 좀 세워 주세요. 좋아요. 그들이 치료됐고, 나 또한 자존심의 부담이 없으니 나도 행복합니다. </p>
      <p> 그러니 모든 것의 치유가가 되십시오. 오직 병만 고치지 말구요. 바로 그 이유입니다. 마치 누군가 의사가 되려고 하면서 동시에 
        간호사로서 일하며 돈을 벌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해야만 하지요. 돈과 순간의 이익을 위해 환자에게 간호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p>
      <p>그것 역시 유익하게 보이긴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의사가 되어 모든 것을 알게 될 수는 없습니다. 단지 한계가 있는 간호사가 
        될 뿐이지요. 됐어요? 그래서 우리의 길을 따르면 전체를 추구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 안의 모든 것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치료의 
        길을 가게 되면 오직 병만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것은 잊는 거지요. 예. 즉 신의식의 99.9%는 
        잊게 됩니다. 그래서 그 일을 그만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됐어요? <br /></p>
      <p><span class="caption_2">결혼하지 않으면 성적 관계를 갖지 말라고 한 내용에 관해 질문하고 싶습니다. 누군가와 
        일대일의 관계를 유지한다고 서약하는 건가요? </span> <br /></p>
      <p>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요? 맞습니까? <br /></p>
      <p><span class="caption_2">결혼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span></p>
      <p>
      </p>
      <p>괜찮습니다. 결혼이란 결혼증명서를 뜻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것은 당신이 결혼 상대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제3자로 인해서 
        그 관계를 일부러 깨지 말라는 뜻입니다. 알겠어요? 그게 전부입니다. 결혼이란 교회에 가서 당신의 이름을 써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br /></p>
      <p><span class="caption_2">됐습니다. 그러니까 일대일의 관계 이외에 간음을 하지 말라는 말이군요. 일대일의 
        관계는 바로 결혼과 마찬가지라는 뜻이지요? </span><br /></p>
      <p> 예. 그런 경우에는 결혼과 같습니다. 옛날에는 결혼증명서가 없었습니다. <br /></p>
      <p><span class="caption_2">고맙습니다. </span><br /></p>
      <p> 예. <br /></p>
      <p><span class="caption_2">또 다른 질문이 있습니다. 이 방법과 다른 수행방법을 혼용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저는 
        몇 년 동안 다른 방법의 명상을 해왔습니다. 그러면 제가 스승님께 입문하면 그 방법을 그만두어야 할까요? </span><br /></p>
      <p>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br /></p>
      <p class="caption_2"> 예. 그렇게 생각합니다. </p>
      <p> <span class="caption_2">저 또한 다른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제 아내에 관한 건데요. 제가 이번주에 
        채식에 관한 스승님의 책자를 받았을 때 아내는 매우 불쾌해 했습니다. 제가 이 길을 따를지도 모른다는 인상 때문이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오늘 알게 된 것은 술을 끊고 하루 2시간 30분 명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span><br /></p>
      <p> 지금 당신은 정말 곤경에 빠져 있군요.<br /></p>
      <p><span class="caption_2">예. 저는 큰 문제에 부닥쳤어요.(스승님과 모든 사람들 웃다) 정말 문제예요.</span><br /></p>
      <p>그런데 오늘 당신 부인이 여기 왔습니까?(아니오) 아니라구요? 그러면 곤란하겠군요. 또 다른 문제거리지요. 부인이 여기 왔다면 
        나와 얘기할 수 있었을 텐데. 예. <br /></p>
      <p><span class="caption_2">제가 오자고 했는데 그녀가 오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span><br /></p>
      <p>그것 봐요. <br /></p>
      <p><span class="caption_2">그래 제 질문은 더 이상의 어려움을 만들기 원치 않기 때문에 입문을 해야 하는지 
        결정하기가 어렵습니다. </span><br /></p>
      <p>가족간의 어려움이군요. 예. <br /></p>
      <p class="caption_2">저는 아내를 사랑하고, 관계를 잘 유지하고 싶습니다. 저를 도와주세요. </p>
      
      <p>예. 만일 당신 부인이 여기 왔다면 좀더 좋았을 텐데요. 그러나 해봅시다. 영혼은 자유를 원합니다. 그리고 역시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의무와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요. 왜냐하면 어떤 부부는 둘이 똑같은 길을 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p>
      <p>이 동수의 예를 들면 그는 입문한 사람이지만 그의 부인은 오늘부터 남편을 따르기로 했으므로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이 경우에 
        우리는 좀더 재치가 있어야 하지만 당신의 경우에는 사랑이 더 필요합니다. 부인에게 전과 똑같이 앞으로도 사랑하겠다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당신에게 그녀가 꼭 필요하다고 말하십시오. </p>
      <p>당신이 무엇을 하든 부인의 사랑과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하십시오. 열심히 추구하기 위해서 부인의 도움이 필요하고 이 길을 수행하는 
        동안 당신의 부족함을 극복하기 위해 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십시오. 알겠어요? 그리고 당신은 좀더 안정되고, 편안한 남편이 
        될 겁니다. <br />
        그것이 부인에 대한 당신의 사랑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고 도리어 두 사람의 관계를 더 좋게 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채식이 
        사랑하는 결혼생활에 전혀 방해되지 않는다고 하십시오. </p>
      <p>우리 일상적인 생활에서도 고기를 먹다가도 가끔 다른 것을 먹잖아요. 어떤 때는 돼지고기 또는 쇠고기, 때로는 치즈를 먹습니다. 
        안 그래요? 가끔 다른 맛으로 먹는 거지요. 부인이 립스틱을 바르지만 당신은 바르지 않습니다. 왜 항상 둘이 똑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당신은 서로 다른 것을 하지만 서로 사랑하며 서로의 흥미를 다양화해서 새로운 관심으로 서로의 관계를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p>
      <p>당신이 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똑같이 하지 않으면서도 당신의 관심에 부인도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당신 역시 부인을 따르거나 
        방해하지 않으면서 그녀의 관심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마치 남자는 축구를 하러 나가고, 여자는 클럽에 나가서 여성의 권리와 
        평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것은 좋습니다. <br /></p>
      <p>부인에게 그런 건 좋다고 하십시오. 당신의 자유와 연방정부의 법에 명시된 것처럼 당신의 신앙과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 달라고 
        하십시오. 상대방이 서로 같은 것을 먹고, 같은 것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결혼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이란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 때까지 서로 도와주고, 어떤 난관에도 서로 힘이 되어 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지 우리가 서로 고기를 먹고 축구를 
        해야 된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p>
      <p>서로 융통성 있고 생기 있는 관계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관계는 끝나 버리고 맙니다. 부인이 지금은 당신에게 채식을 
        못 하게 한다 하더라도 나중에 당신은 채식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부인이 당신으로 하여금 나를 따르지 못하게 한다 하더라도 
        아마 당신은 후에 나보다 못한 사람을 따를지도 모릅니다.(스승님 웃다) 안 그래요? <br /></p>
      <p>당신은 나를 따르는 게 아니고 내 가르침을 따르는 겁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내 가르침에 마음이 끌렸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이성, 
        지성이 내가 말하는 것에 끌렸기 때문이지요. 그것이 당신이 여태 생각해 오던 것이었습니다. </p>
      <p>이제 내가 그것을 틀림없다고 단언한 것뿐입니다. 그러니 가서 부인에게 당신의 법적 자유를 달라고 부탁하십시오. 그게 전부입니다. 
        결혼의 노예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결혼이 너무 융통성이 없고 숨막힙니다. 부인에게 노예 남편을 원치는 않을 거라고 
        말하십시오. 만약 그렇다면 부인에게 안 좋습니다. 됐어요? </p>
      <p>남편은 남성다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성에게 호감이 가는 것은 바로 남성적인 면모를 가진 남자입니다. 부인이 당신을 여성이나 
        양, 노예로 만들기 원한다면 결국에는 당신의 매력을 잃게 될 겁니다. 만일 부인이 그런 류의 남편을 원한다면 남성을 고르는 데 
        실수를 한 겁니다. 그녀는 개나 양을 골랐었어야 했습니다. </p>
      <p> 당신을 제한함으로써 부인은 스스로를 격하시키고 있습니다. 그건 그녀가 그만큼 관대하지 못하다는 것이고, 그녀의 삶이 당신의 
        모든 행동을 싸안을 만큼 위대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부인에게 그렇게 말하십시오. 당신을 조정함으로써 스스로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p>
      <p> 범인을 잡을 때 경찰은 자신을 범인과 함께 묶습니다. 서로 묶여서 어디든지, 화장실까지 같이 갑니다.(웃음) 나쁘지요. 예. 
        우리는 서로의 자유를 허락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결혼은 항상 건강합니다. 특히 남자가 도박하러 가거나 다른 여성에게 가지 않고 
        바른 방향으로 가게 되면 더욱 그렇습니다. </p>
      <p>그는 비폭력적인 채식주의자가 되지요. 그리고 명상하며 신의 훌륭한 본질을 향해 갑니다. 여성은, 좋은 아내는 이것을 100%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니 부인에게 좋은 아내가 되기를 원하는지, 또는 다른 방향을 원하는지 물어보십시오.</p>
      <p>그녀에게 이치에 맞게, 그러나 사랑스럽게 설명하세요.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그녀이고 스승은 두 번째라고 하십시오.(스승님 웃다) <br /></p>
      <p>부인에게 그렇게 말하십시오. 스승은 오직 교사일 뿐입니다. 당신은 나를 가끔 보지만 부인은 매일 봅니다. 그러니 부인이 당신에게 
        더 중요합니다. 부인은 단지 본인의 중요성을 잃을까 두려워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실이 아니지요. </p>
      <p>입문 후 당신은 업과 의무에 대해 더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좋은 남편, 아내가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대등한 거래'를 충실히 이행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남편, 아내로서의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자유로워질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p>
      <p>그리고 부인은 나를 또 하나의 여성으로 오해한 겁니다. 그녀에게 나는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라고 말하세요. 그리고 난 이쁘지도 
        않다구요. 그리고 금발머리와 푸른 눈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걱정 말라고 하세요.</p>
      <p>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03 Jan 2004 12:18:01 +0900</dc:date>
</item>


<item>
<title>입문과 수행 - 질의응답&lt;1&gt;</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int&amp;amp;wr_id=22</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입문이란 무엇이며 어떤 조건이 필요합니까?</p>
      <p>입문은 여러분 내면의 신과 연결되는 순간을 말합니다. 그후로는 계속 연결을 유지하고 매일 신을 볼 수 있습니다. 필요한 조건은 
        완전 채식을 할 것, 도덕적인 삶을 살 것, 매일 두 시간 반 명상할 것 등입니다. 바깥에 나가 자세한 사항을 물어봐도 됩니다. 
        그런 조건들을 적어 놓았으니까요. 사실 나는 여러분에게 어떤 조건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는 단지 여러분 자신이 훈련하는 데 
        필요한 사항에 지나지 않습니다. </p>
      <p>예를 들어, 만약 여러분이 육식을 하는 삶을 산다면 수행 생활에는 해가 됩니다. 지금 육식을 그만두라고 귀띔해 주는 건 그것이 
        여러분 자신에게 이롭기 때문이지요. 나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남편이나 부인을 바꿀 필요도 없고, 직업을 
        바꿔야 할 필요도 없으며, 그 어떤 사회 활동이나 종교도 바꿀 필요가 없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기독교인인 상태로, 유대교 신자라면 
        그대로 믿으십시오. 여러분이 어떤 종교, 어떤 종파에 있든 여러분에겐 그대로 있을 자유가 있습니다. </p>
      <p>나는 단지 여러분 내면에 있는 최고의 잠재력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뿐입니다. 그것은 이른바 여러분이 최고라고 
        지칭하는, 각 종교에서 최고라고 일컫는 바로 그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무상정등정각이라고 하며, 기독교에서도 최고의 힘이라고 부르는 
        그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 힘을 찾기를 바랄 뿐입니다. </p>
      <p>그러나 여러분은 신구의를 청정히 해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 마음속으로 폭력적인 그 무엇도 생각해선 안 되며, 사랑과 용서, 
        인내, 관용을 생각해야 합니다. 말을 할 때도 지혜를 얘기하고 사람들을 편안하게 감싸는 말을 해야 합니다. 행동에 있어서는 청정한 
        삶, 대체로 정숙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p>
      <p>정숙한 삶이란 남편이나 부인이 없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오직 한 사람의 남편, 부인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혼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남편이나 부인이 어떻든 계속 그것을 견뎌 내십시오. (스승님 웃음) 그것이 정숙한 삶입니다. 그 외 고상한 사람이 되려면 
        술을 완전히 끊어야 합니다. 정신을 흐리게 하고 신체를 약하게 만드는 것들 말입니다. 정신을 병들게 하는 마약과 술, 도박 등을 
        말하는 거지요. 그래야 고상한 삶, 청정한 삶이 됩니다. 이해가 됩니까? </p>
      <p>여러분의 신구의를 신의 고귀함과 신의 뜻에 맞춰야 합니다. 신이 되길 원하고,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라는 경지에 이르고 
        싶다면 말입니다. 신이 도박이나 술, 간음 등 온갖 저급한 욕망에 따르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신과 하나가 되고 
        싶다면, 당연히 우리의 신구의도 그에 맞게 끌어올려야 합니다. 이것이 조건입니다. 여러분은 채식을 해야 하며, 신구의를 고상하게 
        가져야 하고, 자비로워야 하며, 폭력적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뿐입니다. </p>
      <p>예를 들어 예전에 남을 때리기 좋아했는데 이제 이 명상법을 수행하고 싶다면 더 이상 남을 때리지 마십시오. 이전에 육식을 좋아했다면 
        이제는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한 사랑과 자비심의 마음으로 그것을 금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한 계단 더 높이 올라 신의식 속에 있으며 
        보다 자비로워졌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는 사랑과 자비를 연습해야 합니다. 이것이 조건입니다. 아주 쉽지요? 예.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p>
      <p class="caption_2"> 채식과 명상 외에 따라야 할 다섯 계명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p>
      <p>스승님: 계율이요? 예, 아주 간단합니다. 십계명과 같습니다. 약간 더 짧지요. 첫 번째는 살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채식을 해야 합니다. 채식을 하면 아무도 죽이지 않으니까요. 두 번째는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훔치지 말고 베풀라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고요? 죽이지 말고 생명을 도우라는 것이며, 거짓말하지 말고 진실만을 말하고 다른 이에게 진리를 설파하라는 
        것입니다. 예, 훔치지 말고 자선을 행하라는 거지요. 간음하지 말고 부인이나 남편은 한 사람만 취하십시오. 아니면 출가를 하든가요. 
        (스승님 웃음) </p>
      <p>이건 그가 좋아하지 않는군요. 좋아요, 잊어버리세요. 부인은 한 사람으로 족합니다. 일부일처, 이것이 좋지요. 다섯 번째 계율은 
        술, 도박, 마약 등을 금하는 것입니다. 뭐랄까, 아주 불쌍한 여인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지 말라는 겁니다. 불쌍한 여인들이란 
        헐벗고 옷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을 뜻해요. 이것이 다섯 가지 계명입니다. 됐나요? 통역을 들을 때는 웃음이 나오기 어렵군요. 
        아니면 벌써 웃음이 터졌을 텐데 말이에요.</p>
      <p class="caption_2"> 이 입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우리 스스로는 할 수 없습니까?</p>
      <p>질문에 답이 있군요. 만일 여러분 스스로 이미 했다면 입문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할 수 없었고, 신의 빛과 
        천국의 소리를 보고 듣지 못했다면 입문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천국으로 가는 많은 단계 외에도 말로 전하는 지시 사항과 피해야 
        할 많은 함정들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른다면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때로는 위험할 것입니다.</p>
      <p class="caption_2"> 스승님, 오늘날 살고 있는 수십억의 사람들이 스승님의 방법에 따른 입문을 하지 않고 이생을 
        넘길 것입니다. 이 말은 그들이 이번 생에 다른 방법으로는 깨달음에 도달할 수 없다는 뜻입니까?</p>
      <p> 아니오, 할 수 있어요.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도가 다릅니다. 때로는 깊은 기도 중에 깨달음을 약간 맛볼 때도 있지만, 
        그것은 깜박거리다가 그냥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면 모르게 되지요! 다시 무지 속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입문은 영속을 뜻합니다. 
      </p>
      <p>여러분은 스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확실히 알게 되고, 원할 때는 언제라도 다시 스위치를 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빛의 테두리 
        속에 있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으로 얻는 깨달음은 꼭 영속적이라곤 할 수 없으며, 때로는 새로 발견한 그 힘을 다루는 법을 
        몰라 위험해지기도 합니다. </p>
      <p>그리하여 어떤 사람들은 정신 장애가 생기거나 이상한 짓을 하고, 최고의 의식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채 낮은 경지의 신통력을 
        남용해 마술사나 치료사가 되고 맙니다. 스승의 인도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몰라서 비틀거리다가 온갖 것들과 
        노닥거리게 되는데, 이는 때로 위험합니다. </p>
      <p>왜냐하면 깨달음의 길에도 온갖 속임수와 피해야 할 함정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련한 안내인과 함께 가는 게 더 쉽고 
        빠르며 더 안전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은 이렇습니다. 그래서 ‘사바’인 것입니다. </p>
      <p>만약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깨달았다면, 우리는 이 지구를 ‘사바’라 하지 않고 ‘천국’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우리 주변 기운도 다르고 모든 것이 다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먹을 것을 위해 일할 필요도 없고 아무것도 필요치 않게 
        됩니다. 우리의 공덕이 달라져 몇 배, 수천 배가 될 것이므로 천국과 똑같이 모든 것이 생길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겨우 수백만 
        정도만이 깨달아서 그 공덕으로 전 인구를 망라하기엔 부족함이 있습니다. </p>
      <p>그래서 예전보다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직도 전쟁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주의 역시 이미 상당히 힘을 잃었으며, 제4차 대전, 
        5차 대전의 위협도 지금은 멀어졌지요. 왜냐하면 현 세기의 대다수 사람들의 자각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대중매체에서 깨달은 스승의 
        메시지를 전 세계로 내보내고, 많은 사람들이 깨달은 성인의 대열에 들어서고 있는 덕분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더 나아졌습니다. 
      </p>
      <p class="caption_2"> 입문을 하면 기존의 종교를 버려야 합니까? </p>
      <p>아닙니다. 아니에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 우리는 입문을 하면서 여러분의 직업이나 생활 방식, 종교를 바꿀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문제없습니다. 아무것도 바꾸지 마십시오. 채식만 하면 됩니다. 그뿐입니다. </p>
      <p class="caption_2"> 예수는 더 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재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능력이 
        있습니까? 우리는 동시에 두 스승을 따를 수 있습니까? 세상을 떠난 스승과 아직 지구에 있으나 장차 떠날 스승 두 분을 말입니다. 
      </p>
      <p>예. 그럴 수 있습니다. 현재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내면의 스승이기도 한 스승들을 만나는 사람들은 운이 좋은 겁니다. 그러나 
        예수가 살고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살아 있는 스승도 만나고 왕생한 스승 또한 만나거나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우리 제자들이 예수를 보고 부처를 봅니다. 그렇지 않나요? 여기 누구 제자들이 있나요? 맞지요? 예? (동수들: 그렇습니다!) 
        불교 신자들이 예수나 성모 마리아를 보기도 하고, 때로는 기독교인들이 부처나 모하메드를 보기도 합니다. </p>
      <p class="caption_2"> 다수의 스승에게 입문해도 됩니까?</p>
      <p> 예, 괜찮습니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지요? 예를 들어, 당신의 스승이 이미 당신에게 내면의 빛과 소리를 가르쳐 주어서 그에 
        만족스럽고 수행도 진보했다면 똑같은 법문을 가르치는 다른 스승에게 입문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완전히 만족스럽지 않고 
        더 많이 갖기를 원한다면, 즉 다른 스승에게 보다 확신이 든다면 물론 그래도 됩니다. </p>
      <p class="caption_2"> 다른 스승에게 입문한 사람도 입문시키십니까?</p>
      <p>입문시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내가 자신을 보다 높은 경지로 더 빨리 데려다 줄 수 있다고 진정으로 믿는 경우에만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고 여전히 예전의 스승에게 애착을 느끼고 그를 더욱 신뢰한다면 그에게 남아 있는 편이 좋습니다. 여러분의 스승이 최고라고 
        믿는다면 바꾸지 마십시오. </p>
      <p>그렇지 않고 여전히 의심이 있고 내가 말한 빛과 소리를 아직 체험하지 못했다면 한번 시도해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빛과 소리야말로 
        진정한 스승을 가늠하는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빛이나 소리를 즉시 주지 못한다면 유감스럽게도 그는 참된 스승이 아닙니다. </p>
      <p>천국으로 가려면 빛과 소리라는 장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바다 속 깊이 들어갈 때 산소마스크나 온갖 장비를 갖추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 목적에 맞는 장비들이 있는 법이지요. 그래서 성인들 주위에서 후광을 보는 것입니다. 그건 빛입니다.</p>
      <p class="caption_2"> 저는 전에 다른 스승을 헌신적으로 모시면서 그분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신 앞에 엄숙하게 맹세하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이제 관음법문의 현저한 우수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 스승을 떠나면 신으로부터 벌을 받을까요?</p>
      <p>만일 당신이 수행의 순수한 목적을 제대로 알고 있고 영원한 해탈을 갖다 줄 법문을 수행하여 진보하고 싶은데 현재의 선생이 그러한 
        법문을 가르칠 수 없다면, 그때는 물론 참된 법맥을 전해 주고 올바른 길로 적절하게 안내해 줄 수 있는 다른 스승을 찾아야 합니다. 
      </p>
      <p>사실 어떤 믿음의 스승이든 중생을 해탈로 인도할 능력이 없다면 다른 스승을 찾아야 합니다. 참 스승은 여러분에게 정확한 법문을 
        전하고, 지혜를 열어 주며, 진리를 얻어 신의 왕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배의 주된 목적이 
        우리를 건너편 기슭에 데려다 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건너편 기슭에 도달한 후에는 더 이상 그것이 필요치 않지요. 그 
        배에 집착해서 진짜 목적을 잊어선 안 됩니다.<br /></p>
      <p>다른 예를 들어 봅시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선생님은 우리가 중학교,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것을 허락해야 합니다. 우리는 단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선생님을 실망시켰다거나 배반했다고 느껴선 안 됩니다. </p>
      <p class="caption_2"> 스승님께 입문할 때 모든 다른 가르침, 스승들은 포기해야 합니까? 입문하지 않아도 칭하이 
        스승님께 기도하고 그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p>
      <p>자신의 가르침과 스승을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말했듯이 종교도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나도 입문을 했지만 
        여전히 '바가바드기타'에 대해 이야기하고, 성경, 불교 등 온갖 종교, 스승들, 심지어 과거의 스승들에 대해서도 얘기합니다. 
      </p>
      <p>그러니 나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과거와 현재의 스승들, 그리고 미래의 스승들로부터 더 많은 지혜와 지식을 얻어 
        보다 풍요로워졌을 뿐입니다. 여기서 미래의 스승이란 아직 지구에 내려오지 않은 존재로, 여러분이 더 높은 차원에 올라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명상 중에도 미래의 스승을 만나 배울 수 있지요. 그러니 여러분은 아무것도 잃지 않습니다. 얻기만 할 뿐이지요. 
      </p>
      <p>입문하지 않고 소위 ‘칭하이 스승’에게 기도한다면, 나는 그녀가 여러분을 도울지 어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가서 그녀에게 물어보십시오. 
        (스승님 웃음) 아마 도와줄 겁니다. 어쩌면 돕지 않을 수도 있고요. 그것은 여러분의 신실함과 업에 달렸습니다. </p>
      <p class="caption_2"> 저는 원래 모셨던 스승을 매우 사랑하고 보통 그 스승님의 이름을 외웁니다. 이것을 계속한다면 
        스승님의 사랑과 축복을 잃게 될까요? 저는 두 분 다 사랑합니다. 제겐 별 차이가 없어요. 원래 스승님이 없었다면 이렇게 살아서 
        스승님의 강연을 듣지 못했을 테니까요. </p>
      <p>나는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10명이 넘는 스승을 사랑해도 됩니다. 문제없어요. 깨닫기만 하십시오. 그게 
        이전 스승에게 드리는 최고의 감사 표시입니다. 내게나 그 무엇에도 고마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 나는 똑같이 
        사랑합니다. 아마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당신 자신일 겁니다. ‘난 저것을 정말 못 해냈어. 나는 이것은 제대로 못 했어.’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사랑받는 느낌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당신 자신인 것입니다. </p>
      <p class="caption_2"> 입문을 65세 미만으로 제한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p>
      <p>왜 65세 미만인 사람들만 입문할 수 있냐고요? 이 질문은 아주 간단합니다. 나이가 60이나 65세가 넘으면 두뇌가 민첩하지 
        않지요. 이들은 대부분 스승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채식 때문입니다. 그 나이에 육식에서 채식으로 갑자기 바꾸는 
        것이 불편을 초래할 수도 있고 채식하기가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까? 예. </p>
      <p>내가 나이를 구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오랫동안 채식을 했거나, 몸이 건강하여 매일 아침저녁으로 철저하게 두 시간 반 동안 
        명상할 수 있거나 채식을 할 수 있다면 나도 환영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규정일 따름입니다.<span class="caption">&lt;칭하이 
        무상사/ 1989. 5. 25.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할리데이 인 호텔&gt; </span></p>
      <p class="caption_2"> 입문을 하는데 왜 나이 제한이 있습니까?</p>
      <p>사람이란 너무 늙게 되면 마음이 혼란해집니다. 그리고 노인들은 가르침을 이해할 수도 없고 채식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뿐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할 수 있고 마음이 여전히 맑다면 80세가 되어도 환영합니다. 영혼은 영원히 젊습니다. 수행에서 필요한 것은 마음뿐입니다. 
        마음이 무슨 말을 하는지 파악하지 못한다면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대로 해낼 수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마음은 문지기와도 같습니다. 
        여러분이 그와 친하지 않으면 그는 여러분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span class="caption">&lt;칭하이 무상사/ 
        1989. 5. 27. 캘리포니아 산호세 에버그린 센터&gt;</span></p>
      <p class="caption_2"> 어린이도 스승님의 방법으로 수행할 수 있습니까?</p>
      <p>부모가 입문한 경우에는 6세에 반 입문(半入門)을 하고 12세에 완전 입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입문하지 않았다면 
        16세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p>
      <p class="caption_2"> 아이들은 제게 아주 중요합니다. 입문 후에도 계속 그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그냥 함께 
        사는 것말고요. 이에 대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p>
      <p>세상에나! (대중 웃음) 어린애가 되어 버렸군요. 내 제자들이 모두 자식들을 버리던가요? 아니면 그들이 아이들을 어떻게라도 
        했나요? 여러분, 입문한 후에 아이들에게 어떻게 했습니까? 사랑할 수 있던가요? (청중: “더욱 사랑합니다.”) 아이들을 이전보다 
        더 사랑한다고 하는군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됐지요? 아이들을 키우세요. 걱정 말아요. 나는 어떤 것도 원치 않습니다. </p>
      <p>
        스승님, 제 다섯 아이들은 이미 입문했지만 저는 너무 늙었습니다. 누구나 깨달을 수 있습니까?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요? 신실함만이 
        유일한 기준입니까?</p>
      <p>그렇습니다. 신실하면 됩니다. 그러나 너무 늙어서 일정 연령이 지난 사람들의 경우엔 육체와 기억력이 그다지 예민하지 못할 수 
        있기에 우리는 다음번에, 다음 생에 다시 오라고 말합니다. 아니면 방편법을 수행해도 도움이 될 수 있으니 완전 입문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그것은 한 사람만을 보증하지요. 입문은 많은 세대를 책임집니다. 그 차이입니다. 입문을 하고 수행을 하면 당신 
        또한 깨달은 스승이 될 수 있고 많은 영혼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p>
      <p class="caption_2"> 스승님, 입문을 했다가 요구 사항인 두 시간 반 명상을 하지 못하고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p>
      <p>그러면 그 학년에 잠시 동안 유급될 겁니다. (대중 웃음) 학생이 어떤 학년이 됐는데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지요? 
        그 학년에 유급하게 되지요. (스승님과 대중 웃음) ‘A’ 대신 ‘J’를 받는 거지요. 그런 겁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여전히 
        대학생입니다. 어쨌든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은 아닌 거예요. 최소한 여러분이 대학생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나위가 없습니다. 단지 
        점수가 낮은 것뿐이지요.</p>
      <p class="caption_2"> 한 번 이상의 입문이 있습니까?</p>
      <p>아닙니다. 아니에요. 물질적인 입문은 한 번뿐입니다. 하지만 내면으로는 여러 번 치러지지요. 개개인마다 다릅니다. 예를 들면 
        입문식 때 스승, 혹은 스승의 대리인은 말로써 똑같은 지시 사항을 전하지만, 입문은 이런 지시 사항에서 생기지 않습니다. 입문은 
        내면으로부터, 각자의 본성을 깨닫는 데서 이뤄집니다. 그리고 그 등급조차 다르지요. </p>
      <p>그러므로 같은 장소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은 서로 옆에 앉아 있어도 등급이 다릅니다. 또한 그렇기에 스승이 내면에서 각자 다르게 
        가르치는 것이며, 그건 당사자만이 압니다. 당사자만이 내면으로 스승이 자신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 알며, 그의 체험은 부인이나 
        아이들, 아버지나 형제들과는 다릅니다. 그러니 원한다면 그것을 여러 번의 입문이라고 해도 되지만, 나는 그것을 각 개인의 배움의 
        연속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p>
      <p class="caption_2"> 스승님께 입문한 사람은 영원히 스승님의 제자로 남습니까? 제자들이 할 일은 무엇입니까?</p>
      <p>제자들의 일은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대중 웃음) 그러므로 여러분은 언제까지나 나의 제자로 남아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내 
        제자가 될 필요도 없어요. 여러분은 이미 스승입니다. 단지 그 사실을 모를 뿐이지요.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다시금 자신을 인식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뿐입니다. 사실상 제자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건 단지 이 물질 세계에서 우리 자신을 부르는 하나의 
        이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p>
      <p class="caption_2">입문 신청서에 보면 다른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영적인 힘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씌어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살고 있는 마을에는 손으로나 다른 형태로 치료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습니다. </p>
      <p>치료자가 되고 싶으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나 만일 치료를 포함한 전부를 알고 싶으면, 전부를 알 때까지 치료하는 것을 잠시 
        보류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치료할 수 있습니다. 치료함이 없이 치료하는 것이지요. 여러분을 보기만 해도 사람들의 병이 낫게 
        됩니다. </p>
      <p>여러분이 어떤 무드라를 취하거나 그들의 자장(磁場)을 엉망으로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오늘 어떤 사람을 치료해서 나았다고 그가 
        내일 아프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을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완전한 게 아닙니다. </p>
      <p>또한 영적 치료사에 의해 치유되면 환자는 자신에게 있는 내면의 치유력을 믿는 대신 그 사람을 믿게 됩니다. 그것은 치료자나 
        환자 모두에게 위험한 일입니다. 환자는 치료자에게 의지하게 되고, 치료자는 에고가 더 커집니다. </p>
      <p>그래서 사람을 치료하는 최고의 방법은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치료함이 없이 치료하십시오. 알지 못하는 가운데 치료하십시오.<span class="caption">&lt;칭하이 
        무상사/ 1991. 3. 9. 미국 보울더&gt; </span></p>
      <p class="caption_2">영적인 치료가 수행의 진보에 장애가 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만약 어떤 사람이 손을 이용한 
        기(氣) 치료를 자연스럽게 한다면 괜찮습니까?</p>
      <p> 여러분이 완전히 깨닫고 싶으면 남의 업에 관여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영적인 힘을 잃고 물질적인 수준에 머무르게 
        됩니다.<span class="caption">&lt;칭하이 무상사/ 1993. 4. 29. 벨기에 브뤼셀&gt; </span><br /></p>
      <p class="caption_2"> 이 명상법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어느 특정한 종교적 배경이나 수련이 필요합니까? 그들은 어떤 
        종교에 속해야 합니까?</p>
      <p>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종교적 배경이 필요 없습니다. 그들은 자아와 보다 위대한 영혼을 알게 될 것이고, 그때 비로소 
        진정한 신앙심을 갖게 됩니다. 종교란 일종의 유물로서 옛 스승이 남긴 가르침, 말로 전해진 가르침, 이론적인 가르침일 뿐입니다. 
      </p>
      <p>스승의 가르침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말로 하는 가르침으로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일러 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더욱 중요한 것으로 침묵 속에서 전해 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이 두 부분이 함께 있어야 비로소 살아 있는 가르침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쪽 가르침밖에 되지 않습니다.<span class="caption">&lt;칭하이 무상사/ 1993. 10. 19. 
        미국 산타크루즈&gt; </span></p>
      <p></p>
      <p class="caption_2"> 스승님께선 오직 인간만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만일 어떤 제자가 4세계에 이른 
        상태로 죽는다면, 이 세계에 다시 돌아와 인간으로 성불할 때까지 공부해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p>
      <p>오, 아닙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거기에서 공부합니다. 스승은 그 제자를 계속 가르치며, 제자가 그 자신을 완전히 깨달을 
        때까지 결코 떠나지 않습니다!</p>
      <p><br /><span class="caption_2">스승님과 저희의 영적 관계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스승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스승님의 
        영혼이 입문한 사람을 고향으로 데려간다고 약속하십니까?</span></p>
      <p>약속합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우리는 육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혼이지요. 그러므로 이 몸이 가든 오든 아무런 차이가 없으며 
        우리 사이엔 아무 거리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얘기했듯이 입문식 때 설명해주는 방법으로 여러분은 살아가는 동안 활용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원치 않아 떠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 무엇도 우리 사이에 끼어들 수 없습니다. 떠나는 경우에도 그 씨앗은 다음 생을 
        위해 있게 됩니다. </p>
      <p class="caption_2"> 입문이란 스승님이 사람들을 축복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준다는 말입니까?</p>
      <p>사실 우리 모두는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가장 위대한 근원에서 왔으므로 가장 위대합니다. 우리는 나무나 바위 
        또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어떤 것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쨌든 입문 과정은 일종의 충격을 가해 우리 스스로 이 최고의 
        지위를 되찾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생활로 바쁜 나머지 이것을 오랫동안 잊고 지내 왔습니다.</p>
      <p class="caption_2"> 스승님, 한 사람이 입문하면 그 5대가 제도된다고 하셨는데, 육식을 하고 술을 마시는, 현재 
        살아 있는 가족들도 구원을 받습니까?</p>
      <p>그들도 구원을 받습니다. 슬픈 일이지만 다행이기도 하지요. (스승님과 대중 웃음) 하지만 그들이 고의로 해탈을 원치 않는다면 
        스승이 억지로 그들을 데려가지는 않습니다. 개개인이 다 신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들 각 개인이 모두 신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구도, 심지어 다른 신이라도 신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습니다. 그건 그 자신의 결정이며, 스스로 선택한 그만의 인생입니다. 
        그는 그런 역할을 하기로 선택한 겁니다. 그가 나쁜 사람이라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심판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p>
      <p class="caption_2"> 스승님께서는 컵 속에 든 물이 바다의 물과 똑같지만, 우리의 에고 때문에 컵 속의 물과 바닷물이 
        분리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명상이란 것은 컵의 바닥에 구멍을 내어 그 물을 바다와 합쳐지게 한다는 뜻입니까?</p>
      <p>입문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맞습니다! 연결 구멍을 열어서 물이 항상 드나들게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컵 속의 물이 바닷물이며 
        바닷물이 컵 속의 물이 됩니다. 그래요. 매일 명상하는 건 물이 항상 드나들어 컵 속의 물이 썩지 않도록 신선하게 유지해 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p>
      <p class="caption_2"> 입문 전에 명상했었어야 합니까? 입문은 제 일상생활에 어떤 도움을 줍니까?</p>
      <p>명상이나 명상 수행 경력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있어도 좋고 없어도 괜찮습니다. 어쨌든 올바른 방법으로 명상하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테니까요. 우리는 당신이 A, B, C부터 시작하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입문 후에는 매일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p>
      <p>입문은 당신 인생의 모든 면에 도움을 줍니다. 일을 더 잘하게 된다든가 가족을 더 잘 돌보게 되고, 가족을 보다 사랑하게 되고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며 자신감도 커집니다. 모든 것, 수백만 가지가 나아집니다. 일일이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니 여러분 스스로 
        경험하십시오. 입문은 여러분에게 도움이 됩니다. </p>
      <p>그렇지 않고 명상하면서도 매일 고통을 겪으며 천국을 기다려야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명상을 통해 천국을 지상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여기서 천국의 일부를 즐기고 지상의 삶을 마치면 더 많은 부분을 즐기게 될 것입니다. </p>
      <p class="caption_2"> 입문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p>
      <p> 입문은 이른바 가톨릭의 세례, 혹은 불교의 귀의입니다. ‘귀의’ 말입니다. 예. 부처에게 의지하는 거지요. 성경에 보면 세례 
        요한이 물로 세례를 주었을 때 예수는 천상의 빛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천상의 하얀 빛이 새처럼 내려왔다고 하지요. 이것이 일종의 
        입문입니다. 그게 입문입니다. 빛을 보면 깨달은 겁니다. 그것이 입문이에요. 예, </p>
      <p>그것은 물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닙니다. 세례 요한의 힘으로 일어난 거지요. 아니면 우리는 매일 물 속에서 목욕을 하겠지요. 
        모두들 물로 목욕을 하는데도 깨닫지 못합니다. 하지만 스승은 물을 이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꽃이나 양초, 불을 사용할 수도 있고,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성령으로써만 하기도 하지요. </p>
      <p>그래서 세례 요한이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 뿐이지만,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위대하시어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것이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손에 쥘 수도, 잡을 수도 없으며 오직 가질 수만 있을 뿐입니다. 입문식 
        때 침묵 속에서 그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p>
      <p>스승은 말을 하지 않고 악수를 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이렇게(스승님께서 자신의 머리를 만지심)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게 도움은 
        되지만 꼭 필요한 건 아닙니다. 스승이 여러분을 만지면 그 흐름이 강해지긴 하지만, 스승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입문을 시킬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처럼 신의 빛을 줄 수 있지요. 알겠습니까?</p>
      <p class="caption_2"> 말로써 전해질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전합니까?</p>
      <p> 먼저 그 선생이 자신의 진아를 깨달은 상태여야 합니다. 그러고 나면 다른 존재의 차원에서, 다른 의식의 차원에서 자동적으로 
        행해집니다. 그 말은 선생과 제자의 의식이 연결되고 나면 우리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이뤄진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연인간의 사랑이나 모자간의 사랑은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그것은 존재하고 그 당사자들은 서로 잘 알고 있듯이 말입니다. 
      </p>
      <p class="caption_2"> 왜죠? 왜 스승님에게 입문하기 위해서는 채식주의자가 되어야만 합니까? 왜 관음법문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하지요?</p>
      <p>깨끗한 물을 담기 위해서는 깨끗한 컵이나 깨끗한 그릇이 필요합니다.</p>
      <p class="caption_2"> 오늘 우리의 특별한 체험을 말해선 안 되며, 말할 경우 체험이 없어진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친구나 다른 사람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체험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p>
      <p>예, 듣는 사람에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말하는 사람에겐 도움이 되지 않지요. 좀 전 우리 친구가 자기 아들의 체험을 얘기했었습니다. 
        스승의 축복은 오직 여러분 한 사람만의 것이므로, 여러분은 그것을 누구와도 나눠서는 안 됩니다. </p>
      <p>그것을 말하면 스승은 가려 버릴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이 세계에서 스승 노릇하기가 어렵습니다. 나로서는 신통을 조금 부려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편이 쉽겠지만, 그렇게 해선 안 됩니다. 내가 그러길 바란다면, 나는 사람들을 고향으로 데려갈 수 없는 그런 스승이 
        될 것입니다. </p>
      <p>진정한 수행자는 결코 자신의 체험과 역량을 과시하지 않습니다. 스승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제자들은 입문 때, 그리고 입문 
        후에 압니다. 그리고 수행을 하면 할수록 매일 스승으로부터 축복을 받기 때문에 스승의 위대함을 더욱더 알게 됩니다. 기적은 매일 
        일어납니다. 단지 스승이 공개적으로 그것을 할 수 없을 뿐입니다. </p>
      <p>또한 스승은 매우 겸손한 사람이기 때문에 결코 이런 일을 갖고 내세우거나 신통으로 추종자들을 끌어 모으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화자찬으로서 스승의 자세로선 걸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스승에게 배우면 여러분 스스로 스승이 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p>
      <p>스승의 첫 번째 품성은 겸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제자로 있으면서 겸손해지는 훈련을 받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성취에 대해 
        입을 다무는 법을 배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은 그것을 도로 가져갈 것입니다. 알겠어요? </p>
      <p class="caption_2">관음을 연달아 세 시간 할 수 있다면 수행이 매우 빨리 진보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관광과 
        관음의 비율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관음을 많이 해도 괜찮습니까? 매일 명상할 때 그 비율을 정확히 지켜야만 합니까?</p>
      <p> 3시간 동안 이어서 관음을 할 수 있다면 떠돌아다니는 마음을 빨리 통제할 수 있고 잘못된 생각이나 개념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집중이 잘된 상태로 6시간 이상 관광을 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3시간 관음을 할 수 있는 경우에만 적용됩니다. </p>
      <p>그러므로 정확한 시간 비율에 따라 명상하는 것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명상하다가 무의식적으로 스승이 지시한 비율을 넘긴 경우, 
        이를테면 삼매에 들었을 경우엔 괜찮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하십시오. 일부러 관광보다 관음을 더 많이 하지만 않는다면 괜찮습니다. 
      </p>
      <p class="caption_2">스승님, 방금 관음을 했었을 때 온몸이 강렬하게 진동하였습니다. 저는 이 바위 위에 앉아 있었는데, 
        앞으로 흔들리다가 밑으로 떨어져서 깨어났습니다. (스승님: “지금은 편안한가요?”) 아주 편안합니다. 어제 두통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어요.</p>
    
      <p>때로 진동이 현재의 우리보다 강할 때가 있는데, 그러면 거기에 익숙해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거기에 익숙해지는 순간 우리는 
        그 진동보다 더 강해집니다. 그러면 아주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지요. 마치 오랫동안 굶주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영양 부족인 사람이 
        갑자기 음식이 많이 생겨 너무 급하게 삼키면 소화불량에 걸릴 수 있는 경우와 같습니다. </p>
      <p>그래서 명상을 진지하고 규칙적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래 명상하는 데 익숙해지면 수행이 매우 평상적이 되어 자신이 명상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할 것입니다. </p>
      <p>아기가 태어날 때 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기는 어머니의 자궁 안에 있을 때 물고기처럼 물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세상으로 나오면 처음으로 피부가 공기와 접촉하게 되어 폐로 호흡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프고 곳곳이 불편해서 큰소리로 우는 것입니다. 
        울 때도 폐를 사용해야 하니 이 세상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지요. 이제는 물이 없으며 공기로 대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에 
        서서히 익숙해집니다.</p>
      <p>우리의 수행도 아기의 상황과 유사합니다. 더 열심히 수행함에 따라 우리는 더 높은 진동에 익숙해집니다. 이러한 진동은 우리 
        진동보다도 주파수가 훨씬 높기 때문에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습니다. 새로 태어난 아기 역시 어머니의 자궁 속처럼 어둡고 막힌 환경에 
        친숙합니다. 그래서 막 태어날 때 마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공포와 불안을 느낍니다. </p>
      <p>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해탈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유일한 문제는, 우리가 이 자유로운 해탈의 상태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국에 가서 그것에 익숙해지면 우리는 다시 이 육신의 감옥에 돌아오길 원치 않을 것입니다. 때로는 명상하다가 깊은 
        삼매에 들고 매우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기도 합니다. </p>
      <p>그때 우리는 완전히 자유롭고 모든 구속에서 벗어난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그러나 갚아야 할 업장과 미완의 의무, 이 세상에서 
        아직 배워야 할 공부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육신으로 되돌아와야 합니다. 끌어당겨져 다시 돌아오는 순간 우리는 극심한 좌절과 
        괴로움을 느낍니다. 너무나 기분이 나빠서 울기도 하고요. </p>
      <p>수행의 여정 중에는 어려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업장이 올 때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아기가 어머니 자궁에서의 안전한 느낌에 매달려 나오는 것을 거부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것이 그를 위해 좋을까요? 그 환경이 
        더 친숙하고 안전하고 편안하고 따뜻할지라도 그는 거기서는 자랄 수 없습니다! 자신과 어머니에게 문제만 일으킬 겁니다. 그러므로 
        태어날 때가 되면 나와야 하지요.</p>
      <p>출산 과정 동안 아기는 어머니 몸에서 좁고 뼈가 많은 부분들을 비집고 나와야 합니다. 아주 고통스럽겠지요. 마치 머리로 두 
        개의 돌문을 비집고 들어가 쪼개고 나오는 것처럼 정말 힘이 듭니다. 그러니 보십시오. 때가 되면 자그마한 아기조차 이렇게 돌파해 
        나가야 합니다. 원래는 공기도 없고 햇빛도 없으며 물질적인 접촉도 없는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물고기처럼 살고 있었지만, 태어난 
        후에는 모든 것이 정반대인, 완전히 다른 세계 속에서 살아야만 합니다! </p>
      <p>어쨌든 억지로라도 밖으로 나오는 것이 그에겐 좋습니다. 바깥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끝없이 그 안에 숨어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거기가 그의 영원한 거처는 아니니까요. <br /><br />
        수행을 하는 도중 때로는 장애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면 힘이 빠져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을 겁니다. 또 우리 자신의 업장에 
        의해 심하게 두들겨 맞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뚝 서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이니까요! 우리는 용감해지고 영웅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머리를 숙이고 매번 상황에 굴복하거나 사소한 장애에 무너져서는 안 됩니다. </p>
      <p>어제 여러분에게 '서유기'를 읽어 주었습니다. 그 책의 첫 부분에 늙은 원숭이, 젊은 원숭이, 영리한 원숭이 등 원숭이 무리들에 
        대한 묘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젖는 게 두려워 폭포를 넘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 폭포 
        뒤에 매우 아름다운 동굴, 천국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누구든 들어가 멋지고 편안한 동굴 속에서 살 수 있는데 말이지요. 
        우리가 어른이면서도 끊임없이 돌파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면 아기보다 더 나약한 겁니다! 그럼 우리 자존심을 어디서 찾겠습니까? 
        그러므로 아기에게 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아기들도 정말 용감하니까요!</p>
      <p class="caption_2"> 저는 때로 어떤 경지에 해당하는 소리와 빛을 보고 듣는 것 같은데, 그 빛이 다소 강렬합니다. 
        제가 보는 빛은 눈부시지만 스승님이 말씀하신 것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데 왜 그런지 궁금합니다. </p>
      <p>어떤 빛이든 그냥 보십시오. 알겠습니까? 그 순간에 왜 제대로 깊은 삼매에 들지 않고 ‘내가 어떤 수준에 있지?’라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어떤 것도 의심하지 말고 그냥 그것에 집중하십시오. 그러면 지속적인 이로움을 줄 것입니다. 
        경지가 당신을 돕는 게 아닙니다. 마음을 바꾸는 게 도움을 주지요. 왜 경지를 알아야 합니까? </p>
      <p>사실상 경지 같은 건 없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그건 마음이 ‘좋아. 나는 어떤 것을 얻었다.’ 하고 이해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스승이 “됐다.”라거나 “너는 여기 가서 이걸 갖고, 너는 저기 가서 저걸 가져라.” 하는 식으로 우리에게 
        밀약을 해줘야 한다고 하는 장삿속이 있다는 것을 모두 알 것입니다. </p>
      <p>그러나 우리가 정말 수행자라면 경지에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자신이 신실하고 진보하기 위해, 고귀한 존재, 진실한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알 뿐입니다. 진실하고 선량하며 사랑이 많고 자비로우며 지혜로워져야 하니까요. </p>
      <p>우리는 바로 그런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숙제를 더 많이 해낼수록 더 빨리, 더 나은 모습으로 그런 존재가 됩니다. 
        그렇지요? 그뿐입니다. 경지와 지위는 오직 외부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이 
        바라는 고향에 도달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p>
      <p>그렇다고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에겐 어둠보다 나은 빛이 있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것이지요. 그러니 그것은 
        이미 여러분의 영혼을 위안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은 우리가 수행을 계속하도록 독려하는 것이지, 자만심과 경쟁이 
        걸린 그런 과정이 아닙니다. 그러니 대통령 같은 게 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지요. (스승님 웃음) </p>
      <p>만약 여러분이 정말 집중하고 수행의 삶에 헌신한다면 자신의 경지를 곧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곧 있으면, 바로 얼마 후엔 
        그에 대해 관심이 없어질 겁니다. 그게 최상의 경지입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수행을 계속하지요. 마음은 대단히 신실하고 모든 방면에서 
        발전하지만 어느 것에도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성불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이 최상의 경지입니다. </p>
      <p>그렇다고 모든 것을 함께 포기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개의치 않는다는 거지요. 여러분이 우주에 봉사하도록 신이 어디에 배치하든, 
        어떤 낮은 경지에 두든, 여러분은 개의치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p>
      <p class="caption_2"> 2주 전 명상을 하고 있을 때 어떤 체험을 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쓰러져 위대한 힘에 몸을 
        내맡겼습니다. 저는 저 자신이 몸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보았으나 이렇게 계속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몸에서 빠져나올 때 위로 올라가는 
        대신 이렇게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 낮은 차원으로 내려가는 건 아닌지 궁금합니다. </p>
      <p>그건 당신의 느낌일 뿐입니다. 그런 차원에서는 올라가고 내려가는 게 없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기분이 좋았나요?</p>
      <p class="caption_2">예, 하지만 그땐 정말 무서웠습니다. 빠른 속도로 터널을 통과하는 것 같았어요.</p>
      <p>윤회의 터널을 통과한 겁니다. 그 순간 동안 죽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렇습니다. 삶으로 돌아왔으니, 이게 바로 진정한 ‘부활’입니다. 
        좋아요. 문제없습니다. 그것에 대해 걱정하지 마십시오.</p>
      <p class="caption_2"> 저는 정말 경이로운 체험을 했습니다. 침대에 있었는데,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천사들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수많은 천사의 소리가 들렸어요. 마치 ‘아’ 소리 비슷한 소리가 몇 천 배로 확대된 듯했습니다. 그때 저는 
        몸을 떠나 안뜰로 나갔고, 천사들과 함께 날았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대단히 컸으며, 진짜 천사였어요. 다음날 제 형이 식탁에서 
        말했습니다. (저는 이 체험에 대해 형에게 말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어제 저녁 천사들의 소리를 
        들었어! 천사들이 수천 있었다고!”</p>
      <p> 형도 그 소리를 들은 건가요?</p>
      <p class="caption_2">듣긴 했지만 날지는 못했습니다. 형은 그들과 함께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저는 전에는 천사의 
        존재를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확실히 믿습니다. 이게 사실입니까? 천사들이 있는 그런 세계가 존재합니까?</p>
      <p>물론이지요. 그게 당신이 죽는 때입니다. 당신은 매일 죽는 거예요. 몸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지요. 그게 바로 진정한 ‘부활’입니다. 
        사람들은 죽을 때만 천사를 만납니다. 그때 천사가 찾아와 높은 세계로 데려가지요. 그러나 언제나 그렇게 죽었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말하는 ‘일세해탈(一世解脫)’이란 겁니다. 천국은 바로 가까이 있습니다. 이제 성경의 그 말을 
        알 겁니다. </p>
      <p>당신의 형이 당신과 같은 영역에는 있지 않지만 그 소리를 들은 것은, 두 사람이 형제로서 통하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진동이 형까지 위로 끌어올린 겁니다. 우리가 하는 게 그런 것입니다. 관음법문을 수행하며 진지하게 명상하는 우리는 어디를 가든 
        보고 생각하는 모든 대상들을 축복합니다. 그것이 인간이든 동물이든, 무형 중생, 천사 등 그 무엇이라도 말입니다. </p>
      <p>하지만 우리는 축복하면서도 이를 알지 못합니다. 당신이 안 건 우연일 뿐입니다. 당신이 자신의 수준을 끌어올린 바로 그 순간 
        옆에 있던 형도 축복을 받았던 겁니다. 당신의 형은 그 순간 당신에게 축복을 받은 거예요. 보다 민감해져서 그것을 알아차렸던 
        겁니다. 하지만 당신의 가족들 모두도 축복을 받습니다. 단지 그들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할 뿐입니다. </p>
      <p class="caption_2">그 빛을 보았을 때, 그 빛은 아주 컸습니다. 그때 저는 멈추곤 말했지요. “아직은 안 돼, 
        아직은 안 돼.” 그러곤 돌아왔습니다. </p>
      <p>(다정하게 말씀하시며) 바보로군요. 제때 돌아올 테니 저항하지 마십시오. 그냥 잠시 당신을 데려갔다가 다시 데려오는 것뿐입니다. 
        당신이 저항하면 결코 위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p>
      <p class="caption_2">저는 스승님 뒤를 쫓아다니고 싶지 않았어요. 많이 두렵습니다. </p>
      <p>당신은 해야 해요. 높이 올라갔다가 내려와야 해요. 다시 돌아오기까진 기껏해야 몇 분,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모두들 그렇게 두려워하지요. 그들은 천국에 가고 싶어하면서도 “안 돼요. 무서워요. 거긴 아무것도 없잖아요.”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죽기를 두려워합니다. </p>
      <p>그래서 빛이 그들을 위로 데려갈 때 “안 돼요! 아직은 아니에요! 난 아직 성인이 아니에요!” 하고 거부합니다. 내일 죽어서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여러분은 결코 알지 못합니다. 예, 우리는 늘 스승의 가르침이나 도움에 저항하는 큰 에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p>
      <p>이는 우리의 진보를 매우 더디게 만듭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항상 놓을 수 있다면 즉시 성불할 겁니다. 빛이나 소리와 
        함께 갈 때는 돌아옵니다. 아주 잠시 동안만 죽는 것뿐이에요. </p>
      <p class="caption_2">하지만 저는 그 수준이 안 됐는데요.</p>
      <p>그렇게 말하는 건 당신의 에고입니다. 어떻게 나보다 더 잘 압니까? 당신이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면 스승은 당신을 데려가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당신의 내면의 스승이 결정하게 두십시오. 왜 따지나요? 스승이 당신에게 있어 좋다고 생각한다면 그 말을 
        들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p>
      <p class="caption_2"> 스승님, 저는 수행한 지 몇 달 되었습니다. 때로 엄청나게 울기도 했는데, 그러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계속할 수 있게 됩니다. </p>
      <p>좋은 일입니다. 최소한 하루에 한 번은 울어야겠군요. 관음법문만 있는 게 아닙니다. 관음법문은 단지 시작점에 불과합니다. 이후 
        스승은 각 개인에게 맞는 특별한 방법을 쓰기도 합니다. 눈물이나 웃음, 행복, 약간의 양심의 가책 등을 과외로 밀어붙입니다. 
      </p>
      <p>상황은 매 순간 바뀌기 마련입니다. 언제나 행복할 수만은 없고, 늘 후회하고 있을 수만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각자에게 주어진 
        온갖 방법을 통해 매일 진보하는 것을 느낍니다. 관음법문은 완벽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줍니다. 여러분이 
        가고자 하는 모든 방향으로 인도하며, 여러분의 성장에 필요한 내면과 외면의 온갖 가르침을 줍니다. </p>
      <p class="caption_2">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03 Jan 2004 12:17:20 +0900</dc:date>
</item>


<item>
<title>수행 진보를 위한 비결</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int&amp;amp;wr_id=21</link>
<description><![CDATA[<br /><p> 여러분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것들이 좀 있습니다. 전에 여러 번 얘기했던 것들이지만, 더러는 이해를 하지 못했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어떻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명상을 잘할 수 있는지 말해 주겠습니다. </p>
      <p>우선은 집에서든 센터에서든 단체명상에 참가하라는 것입니다. 단체명상은 언제나 큰 도움이 됩니다. 얼굴을 마주 보고 앉는 것이 
        더 강력하고 안심이 된다면 그렇게 해도 됩니다. 명상하기 전에 찬물로 세수를 하십시오. 그러면 명상할 때 정신이 더 맑을 겁니다. 
      </p>
      <p>세수하기 전후에 가능하다면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는 것도 좋습니다. 여러분 대다수에게는 아직도 말로 하는 가르침이 매우 
        유익하니, 부디 비디오를 좀더 보고 오디오를 좀더 들으세요. 그리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세요. </p>
      <p>여러분 가운데 다수가 명상에서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은 내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를 많이 
        봤지요. 예를 들어 난 선에 올 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라고 말합니다. 잠시 동안 가족과 모든 것을 잊으라는 거지요. </p>
      <p>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여러분은 내게 와서 “제 아이는 어떻고, 제 어머니는 어떻고, 제 아버지는 아프고, 저도 아프고….”라고 
        말합니다. 온 마을 사람을 이곳에 데리고 옵니다. (웃음) 여러분 중 일부가 그렇다는 겁니다. 다행히도 전부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저기에 먼지를 일으키고 내게 말썽을 안겨 주는 데는 한두 사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면 나는 내 성질로, ‘사자후(獅子吼)’ 
        법문으로 되갚지요. </p>
      <p>부처님도 가끔 이 ‘사자후’ 법문을 썼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 것입니다. 그는 팔만 사천 법문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사자후(獅子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묻기를 “스승님께서도 그 법문을 좀 사용해 보시지 그러세요. 다른 
        건 빼놓고 한 가지 법문만 가르치시는 것 같아요.”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나는 팔만 사천 법문을 다 사용합니다. </p>
      <p>그리고 여러분이 가끔 경험하듯 ‘사자후’법문도 사용하고 있으니 더 이상 묻지 마십시오. 불교 신자들은 그것이 내가 가르친 바 
        없는 뭔가 신비로운 법문이라고 생각하며 늘 이렇게 묻습니다. ‘사자후’ 법문을 언급하는 불교 경전을 너무 많이 읽은 탓이지요. 
        그러나 여러분, 15년 동안 숱하게 그것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요! 아직도 더 원해요? (청중: “아닙니다.”) 그래요. 
        그걸로 충분하지요. 나 역시 그리 자주는 사용하고 싶지 않아요.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니까요.</p>
      <p>내가 얘기하길 좋아해서 말을 많이 하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이 전에 나와 친구였거나 동료였던 사람, 같은 선생님 밑에서 공부했거나 
        같은 반이었던 동창들을 안다면, 예전의 나는 말수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누군가 내게 말을 많이 하려고 하면 난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곳은 말하는 장소가 아니에요. 더군다나 식사할 때는 말하지 말아요.”라고 하는 식이었지요. </p>
      <p>어제 옛 ‘동수’를 만났는데, 그 사저는 옛날에 내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회합을 가질 때나 식사할 때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고 
        기억했습니다. 사실입니다. 나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지요. 아주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집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니고 아쉬람이나 
        모임에서도 그랬습니다. </p>
      <p>그 사저는 내가 24시간 명상만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사저는 나를 기억했지만 나는 어제 그 사저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저는 나와 함께 점심을 먹고 싶다고 자기 자신을 내 점심에 초대했지요. (웃음) 그래서 그를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정말 기억이 납니다. 그 사저는 아주 사랑스러웠으니까요. 말을 많이 하지도 않았고 아주 좋은 수행자였습니다. </p>
      <p>그가 내 기억을 되살려 주었습니다. 나는 그들과 더는 관계를 갖지 않고 연락을 취하지 않으니까 그들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를 
        알아보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난 정말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나와 오랜 기간 같이 일을 한 경우가 아니면, 물론 
        이런 경우는 예외지만,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여러분에게 말한 적도 있을 거예요. 그 사저에게 다시 한 번 사과합니다. 
        당신은 나를 ‘스승’이 아니라 ‘사저’라 불러야 합니다. 우리는 한때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했으니까요. 전에도 말했듯이 내겐 
        많은 스승이 있었습니다. </p>
      <p> <font color="#6666FF"><b class="caption_3">**한 곳에 집중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존중하라</b></font></p>
      <p>그 사저는 점심때 모인 사람들에게 내가 전에 말도 거의 하지 않고 24시간 내내 명상만 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나처럼 되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나를 우상이나 이상적인 여성상 혹은 이상적인 수행자상으로 여긴다면 여러분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달리 비결은 없습니다. </p>
      <p>한 곳에 집중하고 어떤 스승과 같이 있든 그동안에는 그의 가르침을 존중하십시오. 어느 날 내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어떤 이유가 있어 나를 떠난다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여기 있는 동안에는 한 곳에 집중하고 내가 가르치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p>
      <p>만약 이렇게 하는데도 좋은 결과가 없다면 언제라도 나를 떠나십시오. 여러분을 탓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내 충고를 
        귀담아듣지도 않고 내 가르침을 실행에 옮겨 보지도 않은 채 떠난다면 내가 유감스럽게 여길 겁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미안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의 과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음으로써 성장할 수 있고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것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니까요.</p>
      <p>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나쁜 것을 가르쳤다면 그 즉시 내게 알려 주십시오. 그리고 의심이 있다면 내게 물으세요. 그래야 옳습니다. 
        최근에 여러분 가운데 몇몇이 나에 대한 의심과 견해를 피력했습니다. 그것에 대해 난 전혀 화가 나지 않았지요. 나는 왜 그런지 
        그들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어떤 비판을 해도 환영하고, 어떤 의심을 해도 이해합니다. </p>
      <p>그리고 내 설명을 듣고도 여전히 의심이 가고 이해할 수 없다면 가도 좋습니다. 그렇지 않고 내게 믿음이 있어 한번 해볼 생각이라면 
        최선을 다해 최상의 결과를 얻도록 해야 합니다. 기왕에 와서 그토록 많은 시간과 노력, 돈과 희망을 쏟았다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나를 위해 여러분이 꼭 그렇게 해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내게 죄를 짓는 것이라서 그런 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자신에게 죄를 짓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노력과 돈을 낭비했으니까요.</p>
      <p>그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오지 마십시오. 아예 시작을 하지 마세요. 대신에 여러분에게 더욱 이롭다고 생각하는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세요. 괜찮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제각기 인연 있는 스승이 있으니까요. 서로 다른 이해의 등급을 지니고 있으니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스승을 만나는 것입니다. </p>
      <p>만일 좋지 않은 스승을 만난다면 그건 자신의 업장입니다. 여러분 내면의 품성이 그런 스승을 끌어당기는 것이지요. 여러분 안의 
        내적 열망이 더 훌륭한 스승에겐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승을 탓하지 말고 자신을 탓해야 합니다. 스승의 잘못된 점을 
        발견하고 다른 스승으로 바꿀 때마다 그러한 스승에 이끌린 건 바로 여러분 자신이라는 사실을 아십시오. (박수)</p>
      <p> <font color="#6666FF"><b class="caption_3">**명상 중 장애에 부딪혔을 때</b></font></p>
      <p>만약 집에서 어떤 장애를 만나면, 예를 들어 무형의 중생이 방해를 해서 명상을 잘할 수 없거나 안절부절못하고 흥분하게 되면 
        두 가지 해결책을 쓸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내 불찬 테이프나 음악 테이프, 강연 테이프를 틀어 놓는 것입니다. 등 뒤가 아닌 
        앞에서 약한 소리가 나게 틀어 놓으십시오. 절대 뒤에는 뭔가를 놓지 마세요. 왜냐하면 주의가 뒤쪽으로 쏠려 앞쪽으로 집중하기가 
        어려워지니까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좋지 않다는 겁니다. </p>
      <p>테이프나 음악, TV 등 뭐든 듣고 싶을 때는 앞쪽에 두십시오. 전화나 팩스 등 모든 것을 말예요. 만약 사무실에 앉아 있어야 
        한다면 기계를 마주하고 앉으세요. 그것이 울릴 때면 앞에서 울리도록 해서 주의를 뒤쪽으로 빼앗기지 않도록 말예요. 뒤쪽으로 습관이 
        들면 앞으로 되돌리기가 어렵습니다. 전화를 사용할 때도 오른쪽 귀를 사용하는 습관을 들이세요. 왼쪽으로는 듣지 마세요. 뭐든 
        의식을 왼쪽이나 뒤로 끌고 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이걸 잘 기억하세요. 또 한 가지는 필요하다면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하루에 
        한 시간씩 크게 오불을 외우는 것입니다. </p>
      <p>또 다른 보호책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끔 두려움을 느끼거나, 무형의 중생이 주변에 혹은 뒤쪽에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아니면 
        전에 귀신이 들려 내게 왔는데 아직까지 두려움이 남아 있다면, 내 사진을 앉은 자리 주변에 둘러놓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겐 
        내 사진이 많겠지요. 크기는 작아도 상관없습니다.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물이 중요한 것이니까요. 작은 사진으로라도 주위에 
        원을 만들어 놓으면 됩니다. </p>
      <p>티베트의 만다라 전통은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지요. 그들은 언제나 원을 그렸습니다. 그 전통은 스승이 기념으로 준 가피물들을 
        주위에 둥그렇게 둘러놓고 그 가운데에 앉으라는 가르침을 주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원 가운데서 스승의 사랑과 축복으로 둘러싸이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점점 화려해져서 꽃과 향, 모래, 거기다 색깔 같은 온갖 것들이 더해졌지요. </p>
      <p>좋고 안전하며 보호받는 느낌을 주는 것이라면 뭐든 좋습니다. 내 사진만이 아니고 원한다면 꽃이나 향, 촛불을 갖다 놔도 됩니다. 
        그렇다고 연기를 너무 많이 피워 놓고 기침을 하진 마세요. (웃음) 향이나 촛불에서 나오는 연기는 낭만적이고 영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많은 경우 짜증을 돋웁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목이 아프거나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p>
      <p>이런 부작용은 오래가고 전혀 좋을 게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참을 수만 있다면 괜찮습니다. 난 여러분 수행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금하지 않습니다. 염주나 묵주를 돌려도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염주 알 세는 것에 습관이 들면 여기(지혜안)에 
        집중하는 것을 잊게 됩니다. 다시 돌이키기가 어렵지요.</p>
      <p>우리는 이미 바깥 세상에 너무 매여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화장을 하거나 넥타이를 매지요. 이미 
        물질적인 것에 신경을 너무 많이 씁니다. 직장에서는 온통 정신을 돈에 쏟고 집에 와서도 돈만 생각합니다. 매일같이 여자, 남자, 
        넥타이, 보석, 화장, 돈에 대한 명상을 하는 것이지요. </p>
      <p>그러므로 명상할 시간이 나면 내면에 집중해야 합니다. 다른 스승이나 내가 광신적이거나 권위적이어서 이러한 것들을 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것은 모두 잊고 그저 내면의 지혜의 중심에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집중할 때는 정면을 바라봐야 
        합니다.</p>
      <p>정면을 바라본다는 것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방식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내면에 있는 지혜안으로 보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실 
        우리는 내면에 있는 것도 외면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어떤 곳에도 있지 않습니다. 그저 설명을 하기 위해 그렇게 말하는 것뿐입니다.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내면에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물질적인 세상과 접하지 않고 내면에 홀로 있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을 
        재발견하고 알게 됩니다. </p>
      <p>바로 여러분이 영혼이고 신이며 부처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그때 묵주나 염주 등은 우리의 집중을 방해하여 해를 줍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신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것은 무엇이든 좋습니다. 사진, 묵주, 십자가, 불상, 
        그 모든 것이 다 좋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자신이 부처이고 십자가이며 신이기 때문에 명상할 때는 모든 것을 잠시 잊는 편이 
        좋습니다. 그것을 일깨워 줄 뭔가가 필요한 게 아니지요.</p>
      <p>만다라는, 여러분 가운데 무형의 중생에게 방해를 받은 적이 있어서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고 안 좋은 기억들로 인해 고통을 받거나 
        어둠을 무서워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명상을 할 때 두려움을 없애려고 촛불을 켜 놓곤 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가끔은 그런 조언을 하기도 합니다. 그것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누가 그렇게 하면 “그래, 촛불을 켜니까 좋은데.” 하면서 모든 이들이 따라 배웁니다. 그렇게 해서 그것이 습관이 됩니다. 그래서는 
        안 되지요.</p>
      <p>앉아 있을 땐 홀로 되어야 합니다. 촛불도, 꽃도, 향도 필요 없고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이 어떻게든 정신을 
        산란하게 만듭니다. 촛불은 계속해서 깜빡이고 향은 냄새를 피웁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에취!”(스승님이 기침하는 흉내를 내시다.) 
        (웃음) 기침을 하고, 앉아서 ‘이건 유향이야. 맘에 안 들어. 난 백단향이 더 좋은데.’(웃음)라는 생각을 하며 번뇌를 일으키다 
        보면 두 시간이 지나가 버립니다. 다음엔 꽃을 갖다 놓고, ‘장미잖아! 난 장미 알레르기가 있는데. 국화가 더 좋아.’라고 또 
        속으로 주절댑니다. 그리고 옆의 사람이 국화를 갖다 놓으니 스승님이 오신 것 같고 기분이 좋았으며 명상이 잘되었다는 등의 말을 
        듣고 나가서 국화를 사는 데 시간을 전부 허비합니다.</p>
      <p>맹목적인 믿음은 해롭고 수행에 도움이 안 됩니다. 내 말을 포함하여 사람들이 말하는 모든 것을 여러분 스스로 검증해야 합니다. 
        받아들이기 전에 그것이 논리적인지 분석해 봐야 하지요. 내 생각에는, 내 가르침이 논리적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p>
      <p>내 가르침은 논리에 어긋나는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상식, 최상의 논리에 비추어 볼 때 일치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걸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논리적이지 않다면 곧바로 내게 반박을 하거나 지적을 해주거나 편지를 
        써도 좋습니다.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한은 설명해 주겠습니다. </p>
      <p>그래도 여러분이 받아들일 수 없다면 나와 견해가 다르다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제각기 다른 생각을 하며 
        다른 인생을 사니까요. 나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고 여기에 머물러 있겠다면 여러분의 돈과 노력,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p>
      <p>지혜안을 문지를 수도 있습니다. 너무 건조하면 기름을 약간 발라도 좋습니다. 그러면 훨씬 부드러워지죠. 그리고 나처럼 늙은 
        사람은 주름살도 펴지고요. (웃음) 난 마사지를 자주 하지는 않습니다. 화장할 때만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집중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손가락으로 이렇게 여기를(양미간에서 약간 위쪽으로 이마 한가운데를 가리키시다.) 대고 있거나 문질러도 됩니다.</p>
      <p> <font color="#6666FF"><b class="caption_3">**사랑과 수행</b></font></p>
      <p>선이나 단체명상에 오면 주위를 너무 둘러보지 마세요. 여자를 쳐다보지 않는 것도 비정상이라고 내가 말한 적이 있지요. 나도 
        압니다. (웃음) 하지만 그것은 그 남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이었습니다. 그저 그가 정상이라는 것을 알게 하려고 한 말이었지요. 
        미혼의 총각이니 아름다운 여자를 보면 관심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보지 않을수록 여러분에게 더 이롭습니다. 
      </p>
      <p>특히 이미 결혼을 했거나 애인, 남편, 남자 친구가 있는 사람은 더욱 그렇습니다. 혼란이 적을수록 현재의 관계에 집중해서 그 
        관계 속에서 더 많은 이로움과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감과 열정이 생겨 수행을 포함한 모든 인생사에 열심히 
        임할 수 있습니다. 육체적 쾌락에 너무 탐닉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피곤해서 명상을 잘할 수 없고 수행에 전념할 시간도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뭐든 적당한 것이 좋습니다.</p>
      <p>여러분이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를 찾아야 한다면, 외로워서 대화를 나눌 상대나 함께 동행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면 친구를 갖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는 마십시오. 일단 어떤 사람을 만났으면 그에게 정성을 다하세요. 그래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많을수록 더욱 불행해집니다. 날 믿으세요! </p>
      <p>그 때문에 모든 스승들이 한 명의 배우자로 족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질투 따위를 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윤리 때문도 아니지요. 
        단 한 사람의 배우자를 가지라는 것은 전적으로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바람을 피우며 여러 사람의 마음을 들쑤셔 놓고 다닌다면 
        도덕성은 언급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해를 입히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도 불행하고 공허해집니다.</p>
      <p>사랑하는 것과 섹스를 하는 것은 다릅니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미안합니다. 그렇다고 뭐 잘못된 것이 있습니까? 없지요? 사랑을 
        한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서로 관계를 가지며 일체가 되고, 서로에게 느끼는 사랑과 애정을 나누는 
        것입니다. 존재의 모든 면이 관계되는 것이지요.</p>
      <p>그러나 섹스를 한다는 것은 일시적인 욕망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공허감에 빠지지요. 가끔은 죄의식을 느낄 수도 있고, 
        가볍게 앓거나 심각한 질병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하다 보면 방심하게 되고,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거의 없어집니다. 
      </p>
      <p>왜냐하면 여러분이 도덕적 측면에서, 정서적 만족감 측면에서, 영적인 보호 측면에서, 정신적 무장 측면에서 아주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렇게나 섹스를 할 때는 이 모든 것이 아주 낮습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이 약하지요. 그래서 일단 
        질병에 걸리면 그걸 이겨내지 못합니다.</p>
      <p>하지만 사랑을 하는 것은 다릅니다.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지복과 일체감과 신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감정, 정신, 영혼, 열정, 이 모든 것이 높습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가득 찹니다. 그 때문에 여러분은 다른 수준의 존재가 됩니다. 
        어떤 것도 여러분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완전 무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질병이 오더라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p>
      <p>두 사람이 온몸으로 이 고귀한 사랑과 헌신과 하나 됨의 행위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질병은 근처에 오지도 못합니다. 
        두 사람이 동일체가 되므로 모든 것이 괜찮습니다. 모든 것이 순수합니다. 불결함이나 죄의식, 공허함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약간 피곤할 수는 있어도 체력이 고갈된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내면으로 행복하기 때문이죠. </p>
      <p>이것은 단지 육체적 만족을 위해 성행위를 남용했을 때의 무엇인가 빨려나간 듯한 공허함이나 고갈된 느낌과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관계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관계에 충실한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p>
      <p>고대의 스승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계율들은 지혜의 보고(寶庫)에서 나온 것입니다. 제약이나 통제, 명령이 아닙니다. 계율은 
        우리 자신의 이로움과 행복을 위한 것이니, 그것을 따르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도 원치 않는다면 두리번거리지 
        마십시오. </p>
      <p>예의 바르고 친절하게 행동할 수는 있지만 일부러 문젯거리를 만들거나, 특히 다른 사람에게 문제를 안겨 주지는 마세요. 사전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만두세요. 물론 어떤 때는 아무것도 모른 채 문제를 만들기도 하지요. 이건 다른 경우입니다. 
      </p>
      <p>하지만 이미 알고 있다면 시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르고 했더라도 안 좋긴 마찬가집니다. 뒤처리를 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미 
        다른 사람의 연인임을 알고 있다면 후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아예 시작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p>
      <p>이미 누군가가 있다면 과거의 사람은 잊어버리십시오. 이로울 게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과거가 더 좋았던 것 같지요. 나쁜 
        것은 잊어버리고 좋은 것만 기억하니까요. 그러나 사실 현재가 가장 좋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잘 돌보고 현 관계를 잘 풀어 나가면 
        조만간 이로움을 얻게 됩니다. 반면에 과거를 되짚거나 미래를 내다보면 걱정과 근심, 후회, 환상뿐이지요. 그러므로 사업에 있어서나 
        수행에 있어서, 선 행사 혹은 사적인 관계에 있어서 늘 현재를 직시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현재에 이익을 가져다주니까요. 과거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p>
      <p>우리에겐 항상 과거가 더 좋았다는 환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늘 말하는 것처럼 선에 참가할 때는 
        모든 것을 놓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단상에 올라와 무의미한 질문들을 합니다. 나는 지칠 때까지 
        인내합니다. </p>
      <p>그렇지만 아주 낮은 수준의 이런 질문들은 모든 이들에게 재를 뿌리고 전체의 분위기를 낮은 수준으로 끌어내립니다. 우리가 전부 
        그것의 영향을 받게 되지요. 그래서 내가 나서서 그것들을 쓸어 내야 합니다. 그러니 내가 가끔 ‘사자후’ 법문을 쓰더라도 양해하길 
        바랍니다. 다른 방법을 쓸 수도 있습니다. 바로 ‘호랑이 후’ 법문입니다. 차이가 있다고 느낀다면 바꿔 보겠습니다. (웃음) 
        이제 됐습니다. 이런 것들이 여러분의 명상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법입니다.<br /></p>
      <p align="right" class="caption">칭하이 무상사/ 1997. 12. 26. 미국 워싱턴 국제 선사</p>
      <p class="caption">  </p>
      <p>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03 Jan 2004 08:40:26 +0900</dc:date>
</item>


<item>
<title>신실하게 명상하는 사람들의 청정한 분위기</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int&amp;amp;wr_id=20</link>
<description><![CDATA[<br /><p>
        아주 좋은 명상시간을 가진 후 여러분은 성자처럼 돋보입니다. 감히 아무도 여러분에게 범접하지 못합니다. 당신이 정말로 좋은 명상을 
        하고, 신실한 마음으로 수행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느끼고 여러분에 대해 존경심과 사랑하는 마음만을 갖게 됩니다. </p>
      <p>사랑과 청정함을 빼놓고 여러분의 얼굴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나는 책을 읽는 것처럼 분명히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의를 기울여 본 적이 있습니까? 많이 명상하고 신실하게 수행하는 사람들이 변화하는 것을 주의하여 본 적이 있습니까? </p>
      <p>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여기에 와서 여러분이 할 수 있을 때 언제든지 많이 명상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앉아있기만 해서는 안 되며 
        마음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친구나 이곳저곳 이야깃거리를 찾아다니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나는 여러분을 보고 있지 않으나 
        일단 보게 되면 나는 압니다. 모든 사람이 보입니다. 아주 분명하게 여러분의 얼굴에 써있습니다. </p>
      <p>이것은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어디로도 숨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얼굴에, 눈에 그리고 이마에 써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어떤 향수를 뿌렸는가에 관계없이 여러분의 몸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느낌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은 명상입니다. 
      </p>
      <p align="right"><span class="caption">칭하이 무상사/ 1995. 7. 11. 포모사 시후 센터</span></p>
      <p>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03 Jan 2004 08:39:14 +0900</dc:date>
</item>


<item>
<title>사성문(四聲聞)의 과위(果位)</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int&amp;amp;wr_id=19</link>
<description><![CDATA[<br /><p><font color="#669900">수다원(須陀洹)</font> - 그는 방편법으로 수행하여 마침내 생사윤회에서 벗어난 
        사람입니다. 아마도 방편법으로 수행하는 동안 부처가 그를 축복해주고 가끔 음류를 듣도록 해주어 소위 말하는 입류(入流)의 과위로서, 
        음류의 세계로 들어온 사람입니다.</p>
      <p>그러나 그 당시 대부분의 스승들은 사람들을 결코 일세에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일곱 생을 되돌아와야 했고 
        그런 후에야 해탈되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스승을 만나고 그의 제자가 되어 관음법문을 수행한 후에야 해탈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수다원(須陀洹)'로 여겨지는 사람들입니다. </p>
      <p>어떤 사람들은 4번의 생을 거친 후에야 깨달은 스승인 부처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스승의 가르침을 접하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스승을 따르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다음해에도 또 그 다음해에도 그런 식으로 미루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그들의 
        아이들이 성장해서 그들이 스승을 따르게 되죠. </p>
      <p>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br />
        "오! 당신은 굉장해요." 혹은 "당신은 정말로 근사합니다. 아주 좋아요. 당신의 모든 말씀은 진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결혼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스승님 웃음) <br />
        "저의 아들은 아직 다 자라지 않았고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결혼할 때 저는 포도주를 마셔야 하고 고기도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나서 당신을 따르겠습니다."</p>
      <p>그러나 그 후에는 다른 딸이 결혼하고 그 딸이 아들을 낳습니다. "나는 손자들을 돌봐야 하고 등등…" 그 
        사람은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61겁 후에나 보게 되겠죠. (스승님 웃음)</p>
      <p>스승을 따르는 어떤 사람들을 "<font color="#669900">사다함(斯陀含)</font>-한 번 오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이 세상에 한번 더 온 후에 해탈합니다. 그리고 또 "<font color="#669900">아나함(阿那含)</font>-다시 
        오지 않는 사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금생에 해탈합니다. 이들은 부지런히 관음법문을 수행하며 해탈을 
        갈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아나함들은 <font color="#669900">아라한(阿羅漢)</font>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라한은 더욱더 높은 경지입니다. 아라한은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고 축복을 나누어 줄 수도 있습니다. <br /></p>
      <p align="right" class="caption">칭하이 무상사/ 1996. 2. 17. 포모사 시후 센터 </p>
      <p>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03 Jan 2004 08:38:29 +0900</dc:date>
</item>


<item>
<title>바른 진보를 위한 자세</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int&amp;amp;wr_id=18</link>
<description><![CDATA[<br /><p>
        여러분이 완전히 깨닫고자 한다면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단순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빨리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만약 
        마음이 복잡하고 갈등이 많으며, 분별심이 많아 시비를 많이 가리고 승패를 크게 여긴다면, 깨달음을 얻는 게 느리다고 스승을 탓하지 
        마십시오. 그건 여러분 자신이 자초한 번뇌니까요.</p>
      <p>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닌 여러분 자신을 위해 이해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의식은 한층 더 예민한 경지로 고양됩니다. 
        사람들의 감정과 상황을 거칠게 다루는 조악한 수준에 마냥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의 요구나 필요에 민감한 것은 
        상대방에게만 이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건 우리가 매우 진보된 영혼이라는 걸 의미하기에 우리 모두를 위해서도 좋은 겁니다. </p>
      <p>민감해지면 다른 사람이 말하기도 전에 그의 뜻을 이해하게 되며, 그건 우리가 아미타불의 서방세계의 차원에 도달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경전에서 “서방정토의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다른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말하려는지 완전히 이해한다.”고 했으니까요. 
      </p>
      <p>우리는 죽어서 그런 곳에 나기를 기다릴 필요 없이 지상을 천국으로 바꿔야 합니다. 이 세상을 버리고 다른 차원으로 간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개선시키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자신도 고양되지 못할뿐더러 세상에 피해를 
        주게 됩니다. 세상을 더욱 안 좋게 만들지요.<br /></p>
      <p align="right"><span class="caption">칭하이 무상사 / 1991. 4. 9. 타오웬 국제공항</span></p>
      <p>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03 Jan 2004 08:36:21 +0900</dc:date>
</item>


<item>
<title>항상 집중해야 내면의 체험이 온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int&amp;amp;wr_id=17</link>
<description><![CDATA[<br /><p>빛은 여러 가지의 형태나 색깔로 나타나며, 때로는 일광과도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빛은 꼭 무슨 섬광이나 광선처럼 나타나서 
        여러분을 깨우거나 깜짝 놀라게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움직이는 듯한 암흑 또한 수행의 한 경지입니다. 그것이 그리 유쾌한 
        것은 아니지만 거기서라도 시작해야만 합니다.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p>
      <p>어떤 때는 여러분이 아주 꼿꼿하게 똑바로 앉아서 명상하는데도 빛이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러다 간혹 몸을 편안히 
        하고 머리를 이렇게 하니까(스승님 의자에 축 늘어지며 머리를 뒤로 젖히다) 그제서야 빛이 나타나곤 하지요. 또 어떤 때는 머리를 
        한쪽으로 돌리는데 어디선가 빛이 오기도 합니다. 그러니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집중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좋습니다. 그래야 
        빛을 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빛은 여러분이 집중했기 때문에 있는 게 아니라 항상 존재하는 것입니다.</p>
      <p>진정으로 빛을 보고자 한다면 가끔씩 자세를 바꿔야 합니다. 전통적인 가부좌를 풀어 보세요. 바닥을 기어 볼 수도 있지요. 정말입니다. 
        이마를 바닥에 대면 빛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이들은 무릎을 꿇은 것처럼, 혹은 피곤해서 사지를 바닥에 대고 쓰러진 것처럼 
        해요. 그리고는 빛을 봅니다. 때로는 벤치에서 머리를 뒤로 잠시 젖히고 있는데 빛을 보기도 하지요. 항상 이곳(지혜안)에 집중해야 
        합니다. 늘 다리를 꼬고 이렇게 똑바로 앉아 있어야만 하는 게 아닙니다.</p>
      <p>얼마 동안은 똑바로 앉아 있다가 좀 돌아다니거나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어 보세요. 관음할 때나 피곤할 때 취하는 자세 등을 
        취해 보세요. 그것도 여러분의 몸을 이완시켜 줍니다. 아니면 자리를 바꿔 보든가요. 의자에 앉아 보세요. 앉아서 얼마간 명상한 
        뒤 잠자리에 누우면 빛을 볼 수도 있어요. </p>
      <p>빛은 어느 때나 옵니다. 입문 후에는 늘 빛이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아, 나는 지금 명상하고 있는데 빛이 오나 
        안 오나? (웃음) 오나? 벌써 왔어야 하는데!"라고 자꾸만 생각하는 게 문제입니다. 앉아서 빛에 관해서만 읊조릴 뿐 
        정작 집중은 하지 않지요.</p>
      <p>때로는 집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오히려 집중을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생각?이나 마음으로는 집중할 수 없는 
        법입니다. 몸의 모든 세포와 뇌파 등 그 모든 게 이완되어야 집중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때로 그냥 웃거나 하품하거나 잠자리에서 
        뒹굴다가 빛을 보는 겁니다. 모든 세포가 이완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집중입니다.</p>
      <p>자연스럽게 되는 것이지, 명상을 하거나 오불을 외우거나 다른 어떤 것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니 항상 주의를 집중하세요. 스승은 
        아무 때나 오고 빛도 아무 때나 옵니다. 단지 그 순간에 빛이 오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빛이 안 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를 기울이세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명상해야 합니다. 심지어는 걸으면서, 잠자면서, 먹고 말하거나 농담하면서도 항상 명상해야 
        합니다. 늘 내면에 주의를 집중해야만 합니다. </p>
      <p>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내가 의자에 이렇게(스승님 머리를 의자 한쪽으로 늘어뜨리다) 늘어져 있는 모습은 여러분이 보기에 전혀 
        성인 같이 안 보이지요. 하지만 나는 그때 명상하고 있는 겁니다. 농담이 아니에요. 여러분도 해보세요.</p>
      <p>꿈도 일종의 체험입니다. 앉아서 명상할 때만 체험이 있는 게 아닙니다. 체험이 언제 어떤 식으로 나타나도 그저 반가이 받아들이세요. 
        그게 여러분에게 좋습니다.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지고, 사랑이 더 많아지고, 더 지혜로워지고, 생활에 더 만족하고 더 행복해진다면, 
        그 모든 것이 다 명상의 결실입니다. 체험을 빛이나 소리로써 측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체험은 여러분이 기도조차 하지 않을 때 
        오기 때문이지요. 체험은 대부분 잠자는 동안에 찾아옵니다.</p>
      <p>깨어나서 여러분이 그것을 기억하든 못 하든 체험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내가 보증합니다. 내 말을 못 믿겠다면, 아내나 남편에게 
        부탁해서 한밤중에 여러분을 발로 차라고 해보세요. 그러면 천 개의 별, 천 개의 태양이나 섬광의 잔상을 볼 겁니다. 그리고 그게 
        무엇이었는지 알게 됩니다.</p>
      <p>내가 불교 선종의 승려들과 수행할 때 그들은 나에게 이렇게 (스승님 똑바로 앉아서 코를 내려다보는 명상 자세를 시범 보이다) 
        앉아서 눈을 뜨고 명상해야 한다고 했지요. 그런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내 코와 바닥만 보였지요! (웃음) 그래서 하루는 
        지친 나머지 눈을 감았더니 온갖 체험들이 있었지요. 그래서 그들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았어요. (스승님 웃음) 
        내 방식대로 했던거죠.</p>
      <p>나는 구도의 과정에서 많은 스승들을 찾아다녔기 때문에 수많은 스승들로부터 배운 바 있습니다. 그 중 한 선사는 내게 이렇게 
        말했어요. "명상할 때는 가부좌를 틀거라. 다리를 더 많이 꼴수록 좋으니라." 그래서 나는 엉덩이를 쥐어짜고 
        사지를 뒤틀었지요. 아주 끔찍했어요! 그리고 눈을 제대로 감지 않거나 움직이거나 긁기라도 하면 어디선가 '찰싹!'(스승님 회초리에 
        맞는 모습을 흉내내다) 하는 소리가 들렸지요. 온몸을 뒤흔드는 매질이었어요. 그렇게까지 해도 아무런 체험이 없자 그냥 긴장을 
        풀기로 했지요. 그러자 천상의 모든 존재들이 나타났어요. (스승님 웃음)</p>
      <p>그 승려들은 나에게 잠자리에서도 누워서 명상할 수 있다고 말해 주었지요. (내가 말했던 것처럼요. 그건 맞아요. 명상하기 위해 
        누울 때는 부처처럼 오른쪽으로 누워야 합니다.)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해봤습니다. 그런데 누워서 전력을 다해 명상했는데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지요! 그러다 잠에 들려고 뒤척이다가, 우와! 온갖 체험이 있었습니다! (스승님 웃음) 그러니 전통적인 자세가 정말로 
        우리에게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여러분 좋을 대로 하세요. 어떻게 하든 빛을 볼 수 있다면 여러분에게 좋은 겁니다.</p>
      <p>그들은 나에게 이런 말도 했지요. "잠자는 동안에도 명상하고 싶으면 관 속에 누워 있는 것처럼 똑바로 누워야 해. 
        그리고 눈도 감아서는 안 돼." (스승님 한숨) 하지만 내가 그렇게 몇 시간이고 노력해 봤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요. 
        너무 피곤했고 눈이 마르고 아파서 이제는 잠에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리곤 오른쪽으로 돌아눕는데 갑자기 빛이 보였어요. 잠들려고 
        했는데 온갖 빛이 보여서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지요. </p>
      <p>그러니 자신에게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대로 하세요. 만일 빛을 보고 싶은데, 바닥을 기어야만 빛이 보인다면 그렇게라도 하세요. 
        나는 절대로 다리를 꼬고 앉아야만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가부좌 상태에서는 쉽게 잠에 빠져들지 않는다는 것뿐입니다. 후에 여러분들이 
        향상되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한번 재미있게 실험해 보세요.</p>
      <p>그리고는 나에게 와서 이렇게 말하겠지요. "아, 스승님. 저는 한쪽 다리로 서서 빛을 보았습니다! 저는 홍학의 자세를 
        취했습니다." (웃음) "아, 스승님. 저는 귀를 후비다가 천상의 존재들을 보았습니다." 그런 등등의 
        얘기들이 있겠지요. (웃음) 나중에 여러분의 모든 체험을 이야기해 주세요. 실험해 보는 겁니다. 물론 안전하게 해야지요. 우선 
        매일 두 시간 반 동안 앉아서 명상하고, 그후에 원하는 것을 해보세요. 어쩌다 몸이 피곤해져서 휴식을 취하다가 빛을 보고는 깜짝 
        놀랄 것입니다. 대부분 잠자는 동안에 빛이 옵니다.</p>
      <p>여러분 중 일부는 왜 명상 중에 빛을 못 보는지 이유를 알아요? 여러분은 생각을 너무 많이 합니다! 뭔가가 오기를 계속 기다리지요. 
        기다리지 마세요. 기다리지 않아도 옵니다. 그것은 도망갈 수도 없습니다. 빛은 여러분의 내면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빛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여러분의 전신은 빛의 집결체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바로 해탈하는 때입니다. 여러분은 빛이요 소리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근육이나 신경조직이 아닙니다. 모든 게 빛과 소리로부터 창조된 겁니다. 밀도가 다른 것뿐입니다. (박수) 
      </p>
      <p align="right"><span class="caption">칭하이 무상사/ 1995. 10. 28. 포모사 시후</span></p>
      <p>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03 Jan 2004 08:35:26 +0900</dc:date>
</item>


<item>
<title>호흡법</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int&amp;amp;wr_id=16</link>
<description><![CDATA[<br /><p>'프라나야마(Pranayama-호흡수련법)'를 수행하면 여러 가지 이로움을 얻을 수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건강해져서 
        좀더 오래 살 수도 있고, 약간의 신통력을 얻거나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에는 나름의 이익이 있습니다. 그러나 
        '프라나야마'만으로는 아무 곳에도 갈 수 없습니다. 숨이 끊어져도 삶은 계속 되니까요. 이른바 생명이라는 것은 이 육신에만 국한된 
        게 아닙니다. </p>
      <p>그런데 만약 여러분은 육신이 곧 생명이라고 생각한다면 가서 호흡수련을 하십시오. 호흡은 신체에 중요합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만 
        그렇죠. 많은 이들이 호흡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요가난다의 자서전을 읽어봤습니까? 삼매에 들었을 때 그의 스승은 호흡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그가 삼매에 들어 호흡을 멈추었을 때 그에게 지혜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그럼 그의 지혜는 어디로 
        갔을까요? '프라나야마'를 수행할 호흡이 없는 상황에서 그는 어떻게 지혜를 얻었을까요?</p>
      <p>'프라나야마'는 아니지만 호흡을 세는 다른 호흡수행법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많이 압니다. 호흡과 관련되어 있고, 집중의 한 형태로 
        호흡을 사용하는 수행법들이 많이 있죠. 집중에 관한 거라면 그것도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됩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있죠. 하지만 
        나라면 누구에게도 그 방법을 권하지 않겠습니다. 왜냐면 이 덧없는 호흡에 의지하는 것보다 나은 방법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외부의 도움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자기 영혼의 힘으로 집중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단련해야 합니다. </p>
      <p>그렇지 않으면 사고를 당할 때나, 정신이 아찔할 때, 죽을 때, 병을 앓거나 잠들어 있을 때, 다시 말하면 호흡을 의식하지 
        못할 때 어떻게 수행하겠습니까? 단순히 깨어있을 때나 호흡을 의식할 수 있을 때만 수행할 순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24시간 
        내내 수행할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이건 오로지 영혼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p>
      <p>나는 이 호흡법을 수행해서 이 호흡법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 즉 호흡을 멈추고 있는 단계까지 올라간 사람들을 많이 
        압니다. 누군가 이처럼 숨을 멈출 수 있다면 사람들은 그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까지 올랐다며 그를 축하해 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숨을 멈출 수 있다면, 그건 바로 호흡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호흡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얘기니까요.</p>
      <p>진실로 말하건대, 사실 호흡은 감동할 만한 것이 전혀 못 됩니다. 우리 신체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력 혹은 
        호연지기(浩然之氣)라고 하는 '샤브드(shabd)'의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활동력 혹은 활기(活氣)라고 하는 '모토르(motor)'의 
        흐름입니다. '샤브드'는 신에게서 나오는 것으로 우리가 숨을 쉬건 쉬지 않건 움직이건 움직이지 않건 간에 만물(萬物) 안에서 
        진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p>
      <p>이 '샤브드'가 바로 우리가 듣는 것이죠. 그리고 다른 하나인 '모토르'는 열기와 냉기, 소화기관과 호흡기관, 호흡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관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조절되고 있는 것이니 우리가 건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늘이거나 
        줄이든지 멈추게 하거나 통제하려고 해선 안 됩니다. 이것은 지고의 지성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p>
      <p>우리가 손을 대서 이 기계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고 나면 잘못될지도 모릅니다. 혹시 기계에 문제가 있다면 손을 보거나 돌봐줄 
        필요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그걸 굳이 건드리거나 엉뚱한 단추를 누를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러면 다함께 잘못되는 수가 
        있습니다.<br /></p>
      <p align="right" class="caption">칭하이 무상사/ 1991. 1. 28. 파나마</p>
      <p>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03 Jan 2004 08:34:23 +0900</dc:date>
</item>


<item>
<title>수행자들의 분위기</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int&amp;amp;wr_id=15</link>
<description><![CDATA[<br /><p>
        입문해서 관음법문을 수행하고 나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매우 좋아하게 됩니다. 때로는 우리가 그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런 건 아니에요. 단지 우리는 현재 보다 위대한 사랑, 더 우주적이고 초연하고 소유하지 않는 본성을 가지고 있게 된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하되 소유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도움을 주되 집착하지 않습니다. </p>
      <p>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아직 세속적인 수준에서 외면의 모습과 행동에 따라 판단한다면 우리가 냉정해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늘 껴안고 포옹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들을 사랑합니다. 이러한 우주적인 큰 
        사랑은 결코 속박하지 않습니다. 오직 치유하고 고양시킬 뿐입니다. </p>
      <p>수행자들의 에너지 자장은 점점 더 부드러워지고 위안을 주게 됩니다. 영적 수준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 곁에 있고 
        싶어합니다. 그것은 수행자들이 어떤 자장에도 결코 흐트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적 수준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수행자에게서 매우 편안한 느낌을 갖기 때문에 그들을 좋아하며, 반면 다른 사람들에게선 
        짜증스런 느낌을 갖습니다. </p>
      <p>정말 그렇습니다. 전에는 매력이 없던 많은 사람들이 입문하고 얼마간 명상한 후엔 갑자기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합니다. 꼭 
        육체적으로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냥 끌어당긴다는 것입니다. 마냥 그들을 사랑하고 근처에 있고 싶어하지요. 그것은 여러분의 진동, 
        신을 사랑하는 에너지 때문입니다. 그건 숨김없이 그대로 밖으로 발산되어 자석처럼 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그들 내면의 영혼도 신과 
        같기 때문이지요. </p>
      <p>그래서 그들이 여러분에게 끌리는 것이며, 같은 이유로 사람들이 스승에게 끌리는 것입니다. 그건 결코 ‘목발’이 아닙니다. 한 
        자아가 더 높은 자아에게 이끌리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얼마 후에는 그들 둘이 하나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목발을 갖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누가 누구에게 의지한단 말입니까? 바로 이것은 스승과 종교가 목발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요.</p>
      <p>  </p>
      <p>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03 Jan 2004 08:33:15 +0900</dc:date>
</item>


<item>
<title>명상할 때 도움이 되는 것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int&amp;amp;wr_id=14</link>
<description><![CDATA[<br /><p>명상하기 전 비디오를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많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그게 
        쓸모없다고 생각해서 주변을 돌아다니거나 딴 짓을 해선 안 됩니다. 설령 제대로 집중하지 않을 때라도 불찬을 듣거나 강연 비디오테이프를 
        보는 건 여러분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 중 몇몇 구절들이 크게 와 닿아 여러분을 깨어나게 하거나 신경을 안정시킬 테니까요.</p>
      <p>화면 속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여 마음이 차분해지면 명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게 목적이지요.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매일 화면으로 나를 봐야 하는 게 아닙니다. 단체명상도 힘이 집중되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많은 도움을 줍니다. 그러니 
        나는 여러분이 항상 나의 몸이 아닌 나의 가르침을 따르기를 바랍니다. 나의 가르침이 여러분에게 좋은 것이지, 몸이 그런 게 아니니까요.</p>
      <p>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03 Jan 2004 08:32:14 +0900</dc:date>
</item>


<item>
<title>입문할 때 얻은 바가 없이 얻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int&amp;amp;wr_id=13</link>
<description><![CDATA[<br /><p>여러분은 고요하게 한참을 여기 앉아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평정의 힘을 경험했습니다. 부처나 신의 힘은 전기쇼크처럼 여러분을 
        흔들어 대지 않습니다. "우와, 오는구나! 축복이 오고 있어!" (스승님이 전기쇼크 장면을 흉내내시다.)(대중 
        웃음)</p>
      <p>부처나 신의 힘은 아주 고요합니다. 그건 우리 자신의 힘이어서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너무도 
        편안하고 자연스럽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인식합니까? 물론 아닙니다! 자신의 존재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죠! </p>
      <p>우린 낯선 존재가 있을 때에만 뭔가 다른 분위기를 느낍니다. 그래서 자기가 명상을 하면서 뭔가 이로움을 얻는다는 걸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아무 이익이 없는 것처럼 느낍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부드러워서 매우 주의 깊게 집중해서 봐야만 자신이 
        얻은 걸 알 수 있습니다. </p>
      <p>'반야심경'에서 말한 대로 '얻은 바가 없는'것입니다. 그렇지만 공자의 책에서는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은 이 둘이 
        같은 말입니다. 거기엔 아무 모순이 없습니다! '반야심경'과 '대학'은 각기 다른 표현일 뿐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닙니다. '뭔가를 
        얻는다'고 해도 맞고 '아무 것도 얻지 않는다'고 해도 맞습니다. </p>
      <p>여기서 '얻어지는 것'은 셈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니므로 '얻는 것'이라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건 전기쇼크를 받는 것처럼 감각적으로 느끼거나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때로는 그렇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p>
      <p>우리의 업장이 너무 무겁거나 우리의 분위기가 좋지 않으면 신의 축복이 내려와 우리의 부정적인 기운을 날려버릴 때 충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낯선 현상이어서 충격적으로 느껴질 겁니다. </p>
      <p>마야는 외적인 영(靈)이나 기운을 말하므로 신의 힘과 마야는 서로 상충됩니다. 우리 안에서 두 힘이 서로 상충되므로 우리 자신은 
        그것을 낯설게 느낍니다. 마치 우리 안에서 전투가 벌어진 것처럼 우린 충격을 받을 겁니다. </p>
      <p>반면에 우리 업장이 그다지 무겁지 않고 우리가 외적인 영(靈)이나 기운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면 우린 아주 편안하여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느낄 것입니다. 완전히 평온하여 아무 것도 감지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 내면의 빛을 보고 내면의 
        소리를 들음으로써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p>
      <p> 때로 우린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뭔가 흥분되는 일이 벌어지길 기대합니다. 한 예로 입문 때 천둥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하면 
        여러분은 계속 천둥소리가 나기만을 기대합니다. "어째서 아직 천둥소리가 들리지 않는거지?" </p>
      <p>하지만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여러분에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내면의 천둥소리는 외적인 천둥소리만큼 그렇게 
        충격적이지도 않습니다. 내면에서 우르릉거리는 큰 소리가 들려 마치 천둥소리를 듣는 것 같다는 것이지 사실 이 둘이 같은 소리는 
        아닙니다. 내면의 소리는 세속의 소리에 비교될 수 없습니다. </p>
      <p>여러분은 의아하게 여길지도 모릅니다. "그가 천둥소리를 언급했는데, 이게 바로 그 소린가?" 의심하기 시작하면 
        집중이 흐트러지고 천둥소리마저 사라져 버립니다!(스승님과 모두 웃음)</p>
      <p>조금 전 한 동료수행자가 말하길, 그는 '옴'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건 내면의 소리가 
        아니라는 말인가요? 분명 내면의 소리죠! 때론 여러분의 기대가 지나칩니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p>
      <p>오늘은 첫날입니다. 앞으로 놀라운 일들이 더 많을 겁니다. 여러분이 수행을 열심히 하며 자신의 에너지를 비축해 둘 때 믿을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보문품'에서 언급한대로 '불길에도 타지 않고 칼날에도 죽지 않는'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p>
      <p>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매일 이 문구를 외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길에 금세 타버리고 
        칼날에 곧 죽어버리죠. 여러분은 결코 이런 체험을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이건 상징적인 현상입니다. 말로는 표현될 수 없는 것이죠. 
        그건 고대인들이 자신의 체험을 글로 적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가 외웁니다. </p>
      <p>'관음보살 보문품'에 "불길에도 타지 않고 칼날에도 죽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나오는 것을 보고 그걸 열심히 
        외우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 자신의 체험이 아닌데 왜 그걸 계속 암송하는 걸까요? 어쨌든 소용없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의 체험일 뿐이니까요. </p>
      <p>한 예로 어떤 사람이 과자를 먹고 있다고 합시다. 그는 과자가 정말 바싹바싹하고 맛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말을 계속 되풀이한다면 정말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까요? 그는 과자를 먹었기에 과자의 맛이 어떠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자신이 느낀 맛을 글로 적어 표현할 수 있습니다. </p>
      <p>하지만 우린 과자를 먹지 않았으니 그 맛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맛을 표현하겠습니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체험한 
        것을 외우는 게 소용 있을까요? 그러므로 암송하는 건 아무 소용없습니다. </p>
      <p>하지만 이젠 '보문품'을 외우는 것도 이로움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였기 때문입니다. '보문품'에는 
        우선 관음보살을 친견하는 것이나 다른 놀라운 비전을 보는 것에 대한 묘사와 관음보살의 공덕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그런 다음 
        계속해서 범음이나 해조음 등 초세계적인 신비한 소리들에 대한 언급이 나오죠. </p>
      <p>여기서 앞부분은 관광(觀光)을 묘사하는 것이고, 뒷부분은 관음(觀音)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바로 내면의 체험을 명쾌하고 상세하게 
        설명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후대의 사람들은 그것이 뭘 의미하는 지도 모른 채 그것을 외우고 있습니다. 나의 화신을 봤다고 
        방금 말한 사저를 예로 들어봅시다. 그 사저는 어젯밤 꿈에서 나를 봤다고 했습니다. </p>
      <p>그래서 오늘 아침 일찍 이곳에 오고 싶어했죠. 그리고 방금 전 입문하는 동안에 또 다시 나의 빛나는 화신을 봤습니다. 내면의 
        화신은 외면의 스승과 매우 흡사하지만 외면의 스승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옷도 더 예쁩니다.(박수) </p>
      <p>내가 여기 오기 전에 그 사저는 내 화신을 보고 나를 전에 만난 적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입고 있는 옷이 달랐죠. 
        그녀가 본 모습은 빨간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강연 중에 나는 노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습니다. </p>
      <p>자, 그런데 오늘 나는 빨간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저는 기억을 되살렸습니다! 이 옷이 바로 그 사저가 봤던 옷입니다. 
        나는 다양한 색상의 옷을 입습니다. 어떤 것은 아주 쇼킹하죠.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에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p>
      <p>이따금 사람들은 내면으로 각기 다른 내 모습을 봅니다. 옷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난 사람들이 나를 알아볼 수 있게 
        그런 옷들을 입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만나기 전에 이미 내면으로 나를 만나는 일이 허다합니다. </p>
      <p>그런데 내가 그들이 본 그 옷을 입고 있지 않으면 그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해 나와 연결되지 못합니다. 전생에 나와 맺었던 인연을 
        잊은 것이죠. 그러다 내가 그 옷을 입은 걸 보면 무의식중에 나를 기억하고는 서둘러 수행을 하게 됩니다. </p>
      <p>이런 예들은 많이 있지만, 하나로 충분할 겁니다. 그런 얘기들은 듣고 있을 시간이 없죠. 빛을 보지 않더라고 우린 편안하고 
        고요하게 앉아 있을 수 있습니다. 마치 삼매에 든 것 처럼요. 그리고 아주 좋은 체험도 합니다. </p>
      <p>날마다 우리의 사랑과 지성과 지혜가 자라나고 생활이 점차 안정됩니다. 우리는 아주 안전하고 안정된 느낌, 어떤 힘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것 또한 체험이며 수행의 이로움입니다. </p>
      <p>빛을 보려고 수행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빛은 단지 우리가 수행의 노상에 있고 제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뿐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마음을 놓을 수 있으니까요. 만일 빛을 보진 못해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린 자신이 안전하고 갈 곳이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p>
      <p>그것도 좋은 체험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에게 내적인 체험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동수들한테도 말해선 안 됩니다.<br /></p>
      <p align="right"><span class="caption">칭하이 무상사 / 1992. 2. 20. 홍콩</span></p>
      <p>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03 Jan 2004 08:31:35 +0900</dc:date>
</item>


<item>
<title>내적인 체험을 말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int&amp;amp;wr_id=12</link>
<description><![CDATA[<br /><p> 사람들이 무슨 수행을 하느냐고 물으면 여러분은 "나는 관음법문을 수행하고, 이 법문이 매우 좋다고 느낍니다. 나는 
        매일 채식하며 여러 시간을 명상합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적인 체험에 대해서는 말하지 마십시오. 이유가 
        뭘까요? </p>
      <p>내적인 체험을 말하면 분명 사람들은 여러분의 말을 믿지 않고 오히려 여러분을 비웃을 겁니다. 이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여러분을 
        믿지 않을 겁니다! 어제 내가 다른 행성에 대해 말했을 때도 사람들은 이렇게 의문을 제기 했죠. "그런 행성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당신의 상상일 수도 있잖아요?" </p>
      <p>신문과 텔레비전에 UFO와 외계인에 대한 기사가 그토록 많이 실렸는데도 사람들은 아직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내적인 체험을 말할 때 그들이 무엇을 생각할지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가 그들에게 UFO를 보여줄 수 없는데,(스승님 웃음) 어떻게 
        그들이 우리를 믿도록 하겠습니까?</p>
      <p> 나는 '불운하게도' 깨달은 스승으로서 봉사하도록 선택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걸 전부 밝혀 스스로 바보가 되어야만 합니다. 
        누군가는 희생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미 신이 내게 이 사명, 아니 이 '사업'을 주었으니 그걸 해나가야 합니다. </p>
      <p>우리 자신의 내적 체험과 영적인 등급을 누설하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부작용을 겪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믿고 수행하길 원해 말을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비웃으며 공격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신심도 손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p>
      <p>그것이 우리 자신의 상상이라는 말을 자꾸 듣다보면 점차적으로 그 말이 사실인 것처럼 생각되어 수행을 그만두고 싶어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곤란하죠! 내적 체험을 얘기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많은 경우 그런 후로는 더 이상 그런 체험을 갖지 
        못하기도 합니다. </p>
      <p>그러므로 우리는 체험을 혼자만 간직하고 무슨 부처나 빛을 보았고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말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을 땐 이렇게 말하면 되죠. "글쎄요!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사람들 중에는 어떤 빛을 보고 어떤 소리를 듣는 이들이 
        있습니다." 소리를 들은 사람이 바로 여러분 자신이라고 말하지 말고 그냥 일반적인 얘기를 해 주십시오. </p>
      <p>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나 역시 이러한 체험을 합니다. 내게도 물론 체험이 있지만 그것을 말할 순 없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완전히 입을 다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것이 이로운지를 알겠습니까? 어떻게 그들이 우리와 함께 수행할 마음을 내겠습니까? </p>
      <p>해야 할 말은 하되 자신의 내적 체험과 입문할 때 설명해 주는 상세한 지침만은 말하지 마십시오. 내 허락 없이는 아무에게도 
        내적 체험을 말해선 안 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아직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런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제 막 알파벳 몇 글자를 배웠는데 나가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친다면 그게 소용 있는 일일까요?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p>
      <p>여러분에게 모든 걸 금지시키고 뭔가 신비로운 것을 만들려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잊지 말아야 할 게 한 가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을 떠벌이면 십중팔구는 그 일을 그르치게 된다는 것이죠. 세상일이 그렇다면 수행 역시 비밀스럽게 
        하는 게 옳습니다. </p>
      <p>이 세상은 마왕(환상)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를 공격하고 방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의 부하들이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우리 안에 값진 보물, 열반과 같이 안락하고 좋은 느낌이 있다는 것을 알면 그들은 우리를 가로막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질투를 느껴 우리가 수행하는 걸 원치 않을 겁니다. 그래서 이 법문을 수행하는 것이 우리에게 매우 유익하다는 것을 알면 틀림없이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의 방식입니다.</p>
      <p> 여러분에게 돈과 지위가 있으면 사람들은 여러분을 미워합니다. 사람들을 잘 가르쳐 수많은 제자를 거느려도 사람들의 공격을 받습니다. 
        많은 종교가 분쟁과 갈등을 겪는 건 교인들이 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의 자녀가 되는 대신 마야의 노예나 
        도구가 되는 것이죠. </p>
      <p>그러므로 우리는 수행의 길을 갈 때 그런 면들에 좀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뿐입니다! 여러분에게 엄격한 금지조항이나 규칙을 
        부과하려는 게 아닙니다! 절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단지 수행의 길을 갈 때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알아야만 
        하는 비법입니다.<br /></p>
      <p align="right"><span class="caption">칭하이 무상사 / 1992. 2. 20. 홍콩</span></p>
      <p>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03 Jan 2004 08:30:11 +0900</dc:date>
</item>


<item>
<title>깨달은 스승을 따르면 결코 떨어지지 않으리</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int&amp;amp;wr_id=11</link>
<description><![CDATA[<br /><p><b><font color="#6666FF" class="caption_3">범천망(梵天網)</font></b></p>
      <p>우리 수행자들은 아주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러분과 관계가 있다면 나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나와 연고가 
        있다는 것은 거대한 수행단체와 관계가 있다는 겁니다. 나는 혼자 일하지 않습니다. 천국과 지구에는 나의 동료들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우린 마치 하나의 통신망처럼(네트워크)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 중 하나와 관계를 맺으면 곧 우리 전체와 관계를 맺게 
        됩니다. </p>
      <p>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교통사고나 암살 혹은 자살로 죽어야 한다고 합시다. 그러나 단지 그들이 여러분을 한번 본 적이 있거나 
        여러분과 아는 사이 혹은 관계가 있거나 스승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재난을 당했을 때 구원을 받고 다른 
        곳으로 가게 됩니다. (청중: 박수)</p>
      <p>그들이 구원받은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들은 불운한 사람들과는 다른 운명을 갖게 됩니다! 그들은 특별한 장소에서 돌봐질 
        것입니다. 병원에서 특별담당 의사와 간호사가 돌봐주는 환자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사고로 다쳤을 때의 경우와 비슷합니다. 
        옆에서 사고를 목격한 누군가가 병원에 전화를 걸어 엠브란스를 부를 것이고 부상자는 치료받기 위해 병원으로 빨리 옮겨질 것입니다.</p>
      <p>마찬가지로 우리 영적 수행자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 또한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들이 임종하는 순간, 천사들이 그들을 맞이하러 
        내려옵니다. 아니면 누군가가 특별히 데리러 올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개인의 상황에 달려있습니다. </p>
      <p>우리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천재지변으로 죽은 사람을 맞이하고, 어떤 이들은 
        암살당한 사람을, 어떤 이들은 자살한 사람을, 또 어떤 이들은 일반적인 사람을 맞이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또는 염불수행을 한 
        사람들을 맞이하거나 최고의 영적 수행자들을 돌보는 특별 임무를 띠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소홀히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여러분의 상황에 상응하는 버튼을 누르는 겁니다. 그러면 누군가가 여러분을 맞이하러 올 겁니다. 이것은 매우 편리합니다. 
      </p>
      <p>범천망은 지극히 넓어서 아무도 그것을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어떤 영적 수행자와도 관련이 없거나 혹은 수행을 
        한 적이 없다면 당신은 소홀히 대해질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여러분에게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며 여러분은 헛되이 몇 백만 
        년 동안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지옥에 간 사람이나 외로운 영혼들은 영적 수행자와 어떤 연고도 없던 사람들입니다. </p>
      <p>등급이 다른 중생들에게는 다른 차원으로 대합니다. 인간은 이 지구에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천상과 지상에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부처가 되기 전까지는 천상과 지상에서 돌봐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먼저 그것들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전화나 전기도 없고, 친구나 이웃들도 없는 외딴 마을에서 혼자 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죽은 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은 우리를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p>
      <p><b><font color="#6666FF" class="caption_3">창조주의 보호체계</font></b></p>
      <p>우리는 사회 안에 능률적인 보호체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아프면 이웃이 우리를 병원으로 보냅니다. 
        전화를 걸면 의사나 간호사가 환자의 집에 옵니다. 아니면 앰뷸런스가 와서 우리를 병원으로 데려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혼자 살고 
        친구도 한 명 없다면 우리는 이런 보호체계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가 병이 났는지를 모를 겁니다. 아마 집에 
        전화가 없거나 우리가 너무 약하거나 병들거나 늙어서 자기 몸을 주체하지 못해서 소홀히 될 수도 있을 겁니다. </p>
      <p>그래서 우리는 제외됩니다. 그것은 사회체제가 우리를 돌보지 않거나 정부가 위급 환자를 다루는 체계를 세우지 못한 게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신은 많은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각각의 모든 영적 수행자는 그들의 등급에 따라 특정한 임무를 갖고 있습니다. </p>
      <p>그들이 육신을 떠나 천국에 간 후에도 그들은 임무를 계속 수행하게 되는 거지요. 우리가 부처가 된 후에는 일을 할지 안 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모두가 자신만의 의무를 갖고 스스로를 고양시키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합니다. </p>
      <p>실제로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을 고양시키기 위해서만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 수행자이기에 우리는 천국에 간 후에도 이 비참한 
        세계에 동정심을 갖고 매우 돕고 싶어 할 것입니다. 우리는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설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p>
      <p>어쨌든 이 일로 우리 또한 이로움을 얻습니다. 우리는 신의 은총을 받게 되고 우리의 등급이 상승됩니다. 이런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공덕은 얼마 후 다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통 받는 인간의 존재로 떨어지게 될 겁니다. 우리는 
        심지어 지옥으로 떨어지거나 동물이나 곤충, 개구리 그리고 갖가지 중생이 될지도 모릅니다. </p>
      <p>이런 천상의 체계 속에서 일함으로써 우리 또한 보험에 가입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이고, 그것은 이 세계의 상황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그래서 남을 돕는 것이 자신을 돕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p>
      <p>절대로 우리가 사람들을 돕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공덕을 쌓을 기회를 갖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덕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해야 합니다. 공덕에 대해 생각하면 공덕은 오히려 적어집니다. </p>
      <p>우주에는 모든 종류의 일꾼들이 있고 온 우주를 채울 정도로 많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많이 도와줍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죽은 후에야 우리를 도울 수 있습니다. 죽은 후에 우리에게는 더 이상 육체와 두뇌가 없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를 돕기가 쉽습니다. 
        다른 상황에서 그들의 도움을 직접 받으면 믿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육신을 가지고 있고 이 세계에 살고 있으니 우리의 
        상황은 다릅니다. </p>
      <p>만약 위에서 누가 내려와 미래에 대해서 알려준다고 해도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그들이 말하는 경지, 세계와 존재들은 
        지구에서 사는 우리들에게는 모두 생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기가 어렵습니다. 경전을 보면 다른 많은 세계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각각의 세계는 고유의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수가 굉장히 많습니다. </p>
      <p>그러나 만약 그들이 우리가 죽은 후에만 우리를 도울 수 있다면, 그들에게 그것은 아주 피곤하고 힘든 일일 것입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매일 죽고 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죽은 후에도 나쁜 생각들을 계속 지닌 채로 변화하기를 거부해서 천국에 가서도 아주 
        힘듭니다. 그들을 교육시키기가 아주 더딥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자신을 희생해서 이 세상에 내려와야만 합니다. 인류가 사고방식을 
        바꾸고, 생명구제 능력과 통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p>
      <p>그러면 사람들은 자신을 구할 수 있어 천국에서의 일거리를 덜어줄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자기를 바로잡는? 과정을 통해 
        세상의 분위기를 개선시킬 수 있습니다. 고쳐진 사람들과 관계를 맺음으로 인해 사람들은 천국에서 더 이상 고쳐질 필요가 없거나 
        적어도 생명구제의 망(네트워크)으로부터 도외시 되지는 않을 겁니다. 따라서 지상에서의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p>
      <p>고대로부터 많은 부처와 보살들이 자신을 희생해 이 세상에 내려와서 우리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하는 
        것처럼 무료한 행동을 하고 우리가 먹는 것과 꼭같은 무미건조한 음식을 먹으며 따분한 삶을 삽니다. 단지 우리가 여기 있는 동안 
        우리 자신을 고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기 위해서 말입니다.</p>
      <p>한 사람이 자신을 고치면 여러 사람에게 이롭습니다! 어떤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병원에서만 일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일은 병고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그들은 환자들이 그들에게 찾아올 때만 치료해 줍니다. </p>
      <p>그러나 어떤 이들은 좀더 자기희생적이어서 낙후되고 빈곤한 지역을 찾아가 사람들을 계몽시킵니다. 그들은 약품을 가지고 가서 접종하는 
        법, 위생적으로 사는 법, 질병을 예방하는 법 등을 가르칩니다. 사람들의 고통을 돌보면서 또한 병원에서 동료들이 해야 하는 힘든 
        일을 많이 줄여줍니다. </p>
      <p>마찬가지로 어떤 부처와 보살들은 문제를 근원에서부터 해결하기 위해 이곳으로 옵니다. 우리 세계가 고통받을 때 전 우주에 문제가 
        생깁니다. 만약 우리가 건강하면 우주는 평안할 것입니다. 천국의 존재들은 우리가 여기서 돕고 있으므로 부담을 덜 느낄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지상과 통하거나 연락할 곳이 없다면 그들은 우리를 돕고 싶어도 도울 수가 없습니다. </p>
      <p>내가 아까 말했던 것처럼 한 외로운 사람이나 자살한 사람이나 정신적으로 타락한 사람이 영적 수행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그들은 
        그런 사람을 건져낼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그를 잃게 될 것입니다! 안됐지만 그는 아주 깊은 곳에 갇히게 됩니다. 구원받으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지요. 그래서 너무 더디게 됩니다. </p>
      <p>만약 영적 수행자와 관계가 있다면 '망(네트워크)'안에 떨어질 수 있을 테고 그러면 구제되기도 쉬울 겁니다. 이미 관계가 성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건 마치 내가 전화번호부에서 여러분의 이름을 보거나 차의 번호판을 보고 여러분의 주소를 알 수 있는 것 같이 
        아주 쉬운 일입니다! </p>
      <p>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우리는 누구든 우리와 연관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며 스승에게 입문을 받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이지만 매일 
        수행을 해서 이 연락체계를 유지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p>
      <p>명상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도덕이나 관습에 밝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천천히 하십시오. 그건 심각한 것이 아니고 
        단지 여러분의 마음이 좀 편치 않을 뿐입니다. 여러분의 등급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스승이 곁에 있으면 아주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조화 속에 있으면 기분이 더 좋아질 것이고, 사회의 관습과 너무 많이 갈등하게 되면 
        정신적으로 수행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p>
      <p>불안정한 마음은 우리의 정신적인 수양에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안정적으로 명상할 수도 없고 우리의 죄의식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우리를 짓누를 것입니다. 만약 참을 수 없게 되면 높은 단계에 오를 수 없겠지요.. 비관적인 생각을 가지면 지혜는 발전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도덕적인 문제는 가능한 만큼만 돌보고 우리 자신을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p>
      <p>그런 것은 실제로 그처럼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 말은 세상의 관념, 윤리, 계율, 경전, 종교, 이런 것들은 실제로는 그리 
        높은 수준의 것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놓아 버릴수록 더욱 좋습니다. 단지 최선을 다해 조화를 이루도록 하고 그런 
        것들에 너무 연연해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극복하지 못해 가슴속에 응어리를 갖게 되고 옳고 그름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좀더 시간을 가지십시오. 열심히 관음을 하고 명상을 더 하고 용감해지십시오. 여러분은 나중에 깨닫게 
        될 것입니다. </p>
      <p>인간으로서 지혜를 갖추지 못하고 수행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동물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영향에는 
        저급과 고급의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최고의 이상과 소통을 하고 관계를 맺고 있다면 우리는 고급한 쪽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으로부터 
        빛을 보내 우리는 이 육신을 밝게 비춥니다. 그렇게 우리는 이 세상과 연관되고 이 세상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p>
      <p>관음법문을 수행하면 우리는 이쪽에서 저쪽까지 모두 통하며 위에서 보내는 초월적인 힘을 받을 수 있습니다. 관음법문을 수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사회나 아수라 세계처럼 저급하고 열등한 세계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기도가 신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낮은 차원의 존재들이 중간에서 가로채서 그들이 도와줍니다. </p>
      <p>그들은 사람들을 도와주기는 하지만 작은 봉사의 대가로 사람들에게 큰 빚을 지게 만듭니다. 이런 사람들이 죽게 되면 그들은 사람들을 
        자신의 세계로 데려가 노예와 하인으로 부릴 것입니다. 심지어 그들이 이 세상에 인간으로 다시 오더라도 이런 관계 때문에 다시 
        잡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끊임없이 삼계를 윤회하는 것입니다.</p>
      <p>삼계 이내도 과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수라 중생들과 관계하고 있을 뿐입니다. 최고 높든지 낮든지 단지 아수라 중생에 불과합니다. 
        수행자도 예외는 아닙니다. 단지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것만이 이러한 지배적인 힘을 초월하여 저 너머의 최고의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p>
      <p>어째서 여러분은 입문 때 빛을 보게 될까요? 왜 입문 이후에도 계속 빛을 보게 되고 평온하고 구원받은 느낌을 갖게 될까요? 
        그것은 바로 전생에서부터 쌓아온 여러분의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는 저급한 영향들을 스승이 씻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스승은 또한 
        여러분을 최고의 힘과 연결시켜 줍니다. 그날 이후로 여러분은 더 이상 저급한 영향을 받지 않으며 최고의 영향만 받게 됩니다.</p>
      <p>어째서 우리는 종종 입문을 전후한 시기에, 혹은 입문 도중에도 시험을 받게 될까요? 스승이 우리를 시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저급한 존재로부터의 영향입니다. 그들이 시기하는 것입니다. 가장 혹독한 장애는 대개 입문 전에 옵니다. 입문하러 올 수 
        있는 것 자체가 벌써 대단한 것입니다! 이 부정적인 힘은 많은 일들이 일어나게 해서 길에다 아주 많은 장애물을 만들어 놓습니다. 
      </p>
      <p>입문 후에도 여전히 장애가 많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더 이상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화가 나서 큰 소동을 피웁니다. 
        우리의 친지들을 이용해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의 영적 수행을 방해합니다. 그들은 또한 우리 법문, 우리 스승과 동수들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오로지 우리가 좋은 면이 아닌 나쁜 면만을 보게 합니다. 우리는 심지어 좋은 것을 나쁘게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서 이전의 영향이 지워졌다고 할지라도 약간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런 것이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p>
      <p>만약 우리가 신실하게 도를 구하지 않는다면 그 저급한 힘들은 우리를 붙들거나 괴롭히기 위해 다시 다가올 것입니다. 그들은 실제로 
        우리를 붙잡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다시 통제하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기 위한 ?시작?에 불과한 데도 우리는 
        이미 굉장한 고통과 곤란을 겪습니다. 하물며 그들이 우리를 완전히 붙잡았다면 어떻겠습니까?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기만 해도 
        아주 곤란을 겪게 되는데 말입니다.</p>
      <p><b><font color="#6666FF" class="caption_3">자신에게 의존하는 것이 제일 좋다</font></b></p>
      <p>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기도하는 것을 얻을 수 있지만 그건 어떤 힘과 관계하고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생명구제의 망 또는 
        체제에 속해있는 시방삼세 불보살과 천사들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힘으로부터 나온 악마적인 존재 역시 우리 
        곁에 있습니다. 어느 쪽에 기도하느냐에 따라 그쪽의 도움을 받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고의 힘과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저급한 존재로부터의 '축복'을 받습니다.</p>
      <p>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생명구제의 힘에 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아주 신실해서 비교적 높은 힘에 도달했다 할지라도 
        아직은 신이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하는 천국의 일꾼들일 뿐입니다. 신의 힘은 우리들 내면에 있고 이 힘과 
        접촉하는 것이 최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기도할 때 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입니다.</p>
      <p>우리는 입문 때 이 힘과 접촉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의 스승이며, 우리 자신의 지혜인 그 힘, 우리 
        최고의 힘, 무상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좋은 힘이나 나쁜 힘에 의해 통제됩니다. 좋은 힘이 우리를 돕고 
        있다고 해도 많이 도와줄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우리가 돈을 더 많이 벌고 약간의 사소한 재난을 피하게 해줄 뿐입니다. </p>
      <p>그러나 우리가 사소한 재난을 면했다 하더라도 조만간 그것을 보상해야 합니다. 단지 연기된 것뿐입니다! 오늘 돈을 더 벌어도 
        내일 아니면 내년 혹은 다음 생에 잃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업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에 대해 보상을 해야 
        합니다. </p>
      <p>그러나 입문을 한 후에는 다릅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정말로 얻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최고의 힘으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힘은 무한하고 전능하므로 우리는 결코 그 힘을 다 써버릴 수 없습니다. 선한 힘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더라도 결국에는 
        보상을 해야 합니다. 만약 나쁜 힘으로부터였다면 이자가 높기 때문에 피해가 막심하겠지요.</p>
      <p>그래서 입문을 한 사람들은 무언가를 구하는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나쁜 힘이 이를 우연히 듣고 우리를 도우러 온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심지어 선한 힘이 듣게 된다 해도 그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 역시 문제가 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빚을 지게 
        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무상사, 무상의 힘, 또는 신에게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것들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들이 기도해서 좋은 힘으로부터든 나쁜 힘으로부터든 도움을 받는다면 그들과 접촉한 힘은 그들이 죽은 후에도 
        계속해서 도우려고 할 것입니다.</p>
      <p>우리 입문한 사람들은 무엇을 얻기 위해 기도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위대한 지혜, 우리 안에 있는 무상사가 우리를 보살펴줄 
        것입니다. 내면의 스승이 우리를 돌봐줄 것입니다. 아무것도 구하지 않고 단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더 좋습니다. 단지 매일 
        명상을 하면서 더 큰 믿음과 위대한 지혜를 빨리 얻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십시오. 다른 물질적인 것을 위한 기도는 하지 마십시오. 
        수행자는 결단코 굶어죽지는 않을 것입니다!<br /></p>
      <p align="right" class="caption">칭하이 무상사/ 1990. 4. 1. 포모사 산티먼 선칠 </p>
      <p>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03 Jan 2004 08:29:02 +0900</dc:date>
</item>


<item>
<title>진정한 가르침은 스승으로부터 나온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int&amp;amp;wr_id=10</link>
<description><![CDATA[<br /><p> <font color="#6666FF"><b class="caption_3">여러분의 능력을 인지하라</b></font></p>
      <p>여러분이 계속적으로 스승의 자질을 개발할 때 여러분은 차츰차츰 기교를 완전히 터득해 나갈 것입니다. 그 중간에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씩 여러분들은 그것들을 완전히 터득해 갈 것입니다. 사실 한번에 하나씩이 아니라 한꺼번에 수백 가지 수천 가지씩 
        배워 나갑니다. 단지 여러분이 이러한 것들을 사용할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모르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꼭 해결해야만 하는 갑작스런 문제나 위험 또는 곤란에 부딪칠 때 여러분은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p>
      <p><font color="#6666FF"><b class="caption_3">믿음</b></font></p>
      <p>
        믿음이란 무엇니까?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여러분이 누구이며, 여러분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여러분은 매우 고귀했으며, 고귀하게 
        될 것이라는 좀더 높고 숭고한 이상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내 힘에 대한 믿음이나 내가 당신을 고쳐줄 수 있고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나의 내면에도 있고 여러분 내면에도 있는 전지전능한 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힘에 대한 믿음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 스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은 그 스승이 여러분에게 일깨워 준 위대한 우주의 법칙을 따르는 것입니다. 
      </p>
      <p><b><font color="#6666FF" class="caption_3">최고의 스승을 따르라</font></b></p>
      <p> 허튼소리를 하거나 여러분의 진보를 방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따르지 마십시오. 대신 가르침이 훌륭하고 고귀하며 숭고한 사람을 
        따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좀더 위대해지며 좀더 많은 자신감과 지혜를 가지도록 이끌어 줄 것입니다. 그분이 최고의 스승입니다. 
        그 스승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며, 여러분의 기호에 맞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p>
      <p>예를 들어 그 스승이 어떻게 옷을 입고, 어떻게 말을 하며, 식사를 어떻게 하든지 스승은 빵을 먹고 여러분은 밥을 먹을 수도 
        있고 반대로 그가 밥을 먹고 여러분이 빵을 먹을 수도 있겠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p>
      <p>만약 그 스승이 삶의 최고 법칙과 인류에 대한 가장 고귀한 이상을 알고 있으며 여러분들에게 그것을 가르치고 있다면 그는 진정한 
        스승입니다. 신통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지 마십시오. 성격을 보지 마십시오. 겉모습을 보지 마십시오. 그의 생활방식을 보지 마십시오. 
        그 스승의 가르침을 보십시오. 그 가르침은 매우 논리적이며 영혼을 발전시킵니다. 우리의 영혼이 퇴보하도록 가르치는 자는 악마이고 
        우리의 영혼이 진보하도록 가르침을 펴는 자는 최고의 스승입니다. </p>
      <p><font color="#6666FF"><b class="caption_3">진정한 가르침은 스승으로부터 나온다</b></font></p>
      <p> 우리는 신이며 내면에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모든 사람들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하는 것과 이면에 그 힘을 가진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진정한 가르침은 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가 의미하는 바는 선을 말하고 좋은 교리를 여러분에게 말해주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훌륭한 스승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니 진정한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p>
      <p>그 가르침은 스승의 전 존재로부터 나오는 에너지, 스승의 전 생명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원칙, 스승의 전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귀로 듣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영혼으로 들어야만 합니다. 그때 여러분의 지혜로서 이해할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가르침입니다. 
        말로서가 아닙니다. 이미 많은 선생들이 말로서 가르침을 펴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p>
      <p>진정한 가르침이란 그 스승이 여러분에게 한 모든 약속과 말 이면의 보이지 않는 모든 힘입니다. 그것은 완전히 실현되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복사본과 원본의 차이점을 알아야만 합니다. <br /></p>
      <p align="right" class="caption">칭하이 무상사/ 1992. 5. 12. 포모사 시후센터 단체명상</p>
      <p>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03 Jan 2004 08:27:47 +0900</dc:date>
</item>


<item>
<title>다시 한 번 상기합시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int&amp;amp;wr_id=9</link>
<description><![CDATA[<br /><p>우리는 입문 후에 우리의 여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이 보다 좋게 변화되기 시작했음을 분명히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방편법일지라도 한동안 수행하고 나면 생활이 이전보다 훨씬 좋게 변화되었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요? (청중들 
        "예") 그래서 여러분이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입문하러 온 것이지요. </p>
      <p>오늘 여러분은 전보다 더 많은 인도를 받았으니 그에 따른 축복과 행복도 당연히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다 좋고 순탄하고 
        평화스런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전 같으면 여러분에게 너무 어려웠던 상황들이 좀더 용이하게 됩니다. 전에는 여러분이 해결할 
        수 없었던 모든 문제들을 이제는 한결 쉽고 빠르게 그리고 한층 명확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매일 시간을 내서 
        명상하도록 하십시오.</p>
      <p>음식을 먹을 때 그 음식이 여러분을 오염되게 하여 뇌와 신체의 세포 하나하나를 혼란케 함으로써 여러분들의 영적인 진보가 방해받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우리가 무엇을 먹든지 신은 개의치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신을 혼미케 하는 식품이나 육류, 동물성 식품 
        같은 불결한 음식물을 섭취함으로써 우리의 신체 계통에 독을 준다면 뇌세포를 비롯하여 신체의 모든 세포는 오염되고 뒤죽박죽이 됩니다. 
      </p>
      <p>그 결과 우리는 명확하게 사고할 수 없고 평온하게 앉아 있을 수도 없게 되어 행복과 지혜의 원천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평온한 마음으로 정좌하여 매일매일 명상해야 합니다. 매일의 활동이 보다 평온하게 되고 보다 내면을 향하게 됨으로써 
        우리의 진정한 근원 ─ 하느님의 품성과 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매일 발생하는 모든 문제와 고통을 잘 다룰 수 
        있게 되어 우리의 삶이 보다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p>
      <p>만약 우리가 자신의 세포, 뇌, 그리고 피를 혼란에 빠지게 한다면 감성적인 부분 또한 혼란스럽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분명하게 생각할 수 없게 되며 명상 중에도 매우 불안정하고 동요하게 되지요. 심지어 명상 중에 정좌를 잘할 수 
        있다 해도 우리가 섭취한 좋지 않은 음식물로부터 나오는 부정적인 힘으로 인해서 우리의 비전(경계)은 흐려지게 됩니다. </p>
      <p>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먹는지에 대해 신이나 내가 관심을 갖는다거나 고기를 아주 조금만 먹더라도 바로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신처럼 되기를 바란다면 우리의 행위, 먹는 음식 등 모든 면에서 깨끗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신.구.의가 깨끗하게 됩니다. </p>
      <p>여러분이 무엇을 먹든지 나는 개의치 않습니다. 여러분이 먹는 것은 무엇이든지 명상이나 기분, 성격, 개성 그리고 삶의 가치관 
        등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우리가 물질세계에 살고 있는 한 모든 것이 관계가 있으며, 그 모든 물질은 우리에게 영향을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깨끗한 음식, 즉 업장과 고통을 덜 주는 음식을 섭취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지요. </p>
      <p>동물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삶에 대한 집착 등 많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의 먹이가 되기 위해 다 자라기도 
        전에 그 동물들이 살육 당하게 되면, 그들의 두려움과 증오는 우리가 먹는 고기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됩니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그 동물들이 죽기 전에 느꼈던 것처럼 공격적이고 불안하고 불만족스럽게 되며 때로는 폭력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p>
      <p>식물 또한 감정을 갖고 있지만 사실 감정이라기보다는 반응할 뿐입니다. 식물의 수명은 동물처럼 그렇게 길지도 않으며 식물이 느끼는 
        두려움 또한 그렇게 강렬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다시 자랄 수 있지요. 여러분이 나무의 가지를 한 개 자르면 또 다른 가지가 
        여러 개 자라게 됩니다. </p>
      <p>따라서 몇 그루의 나무를 자르는 것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좀더 많은 나무를 심거나 혹은 가지를 잘라 더 무성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자연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이용하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라도 자연을 보호해야 합니다. </p>
      <p>몇몇 사람들은 지나치게 광적입니다. 그들은 "식물 또한 생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먹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말에 대해 나는 "좋습니다만, 생명을 부지 못할 텐데요."라고 말해 줍니다. 우리는 광신도적인 
        것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중용을 지키며 매우 유연한 자세로 모든 것을 처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온종일 명상하지 
        않고 단지 하루에 2시간 30분만 명상하지요.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다하고 나서 마음이 평온해지면 그때 명상을 위해 
        정좌를 할 수 있습니다. </p>
      <p>한번에 2시간 30분 동안 명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1시간 동안만 할 수도 있고 몸이 좀 피곤하지 않으면 더 오래 할 
        수도 있지요. 그때는 명상시간을 2시간 30분 혹은 3시간 정도씩 늘려 나가십시오. 하지만 가끔 여러분이 1주일 혹은 2주일 
        아니면 단 며칠이라도 함께 모여 있을 때는 온종일 명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 또한 여러분에게 좋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평소에 
        여러분이 명상을 충분히 못했거나 혹은 전혀 하지 못한 것을 보충해 주는 것입니다. </p>
      <p>그러므로 우리가 소개한 것은 모두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고 매우 유익한 것이지 규정이나 규율도 아니며 어떤 계율도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숭고한 삶의 방식일 뿐입니다. 만약 모든 사람이 여러분들처럼 삶을 영위한다면 이 세상은 천국이 될 것입니다. 정말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p>
      <p>대부분의 이 세상 사람들은 신이 의도하는 대로 아름다운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우리 주위에는 전쟁과 고통, 재난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내면에 가지고 있는 신의 품성대로 살고 있지 않으며, 신의 품성은 묻어두고 세속적인 재능만을 계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균형을 잃고 물질 만능주의가 되어 각종 재난과 경쟁을 초래하게 되는데, 이러한 경쟁으로 인해 전쟁과 
        국가간의 충돌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p>
      <p>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최선이고 가장 고귀한 길이며 또한 모든 사람이 걸어야 할 길인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이 길을 걷고 있지 않은 것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나는 오늘부터 여러분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 가장 완벽한 것이란 
        것을 상기시켜 주고자 이러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p>
      <p>그러니 이를 기억하고 계속 이 길을 갈 수 있도록 스스로 상기하십시오. 오래된 입문자들도 자신이 선택한 길이 완벽한 길임을 
        기억하도록 하십시오. 우리가 걷고 있는 길보다 더 나은 길, 더 좋은 선택은 없습니다. 그 외 다른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여러분은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p>
      <p>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바로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이 방법, 즉 영적인 지혜를 수행하고 부정적인 것을 배제하고 
        우리 삶을 조절하여 보다 고귀하고 의미 있는 삶이 되도록 하는 길뿐입니다.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다른 
        선택을 하고자 한다 해도 그것은 여러분에게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계속해서 이 길을 가야하며, 여러분도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p>
      <p>나는 이 방법이 여러분이 취한 가장 좋은 선택임을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있으며 여러분이 선택한 길을 계속 견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우리와 이 세상을 위해 유익하며 다른 모든 사람들이 따라야 할 모범적인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웃이 먼저 하기를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p>
      <p>우리가 일단 먼저 하면 이웃 사람들은 따라올 것입니다. 한 사람이 시작하면 많은 사람들이 따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를 
        보면 그 예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의 훌륭한 모범적인 삶으로 인하여 수천 명의 다른 사람들의 삶이 보다 훌륭하고 
        보다 행복하게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p>
      <p>그러므로 여러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세상을 위해 한 사람도 중요하고 두 사람은 더욱 중요하며 전체 그룹은 한층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입문한 날부터 여러분의 영적 에너지 때문에 수많은 전쟁이 피해 가고 갖가지 재난은 최소화될 것입니다. </p>
      <p>여러분은 아마도 여러분의 이웃 사람들까지도 더 좋게, 더 좋은 모습이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며, 여러분이 걷고 있는 도로 
        주위나 나무들 주위, 그리고 여러분이 보고 즐기는 꽃들 주위에서 반짝이는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로 인하여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이 수행의 길로 들어서게 되어 같은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또한 이 지구를 위해 우리와 같이 동참하게 
        된 입문자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박수)</p>
      <p>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이 잘되고 신의 축복이 영원히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박수)<br /></p>
      <p align="right" class="caption">칭하이 무상사/ 1997. 7. 6. 미국 로스앤젤레스</p>
      <p>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03 Jan 2004 08:26:32 +0900</dc:date>
</item>


<item>
<title>단체명상은 여러분을 성장시킨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int&amp;amp;wr_id=8</link>
<description><![CDATA[<br /><p><span class="caption_3">단체명상은</span> 여러분을 성장시킵니다. 그래서 단체명상에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진실한 친구들이니까요. 만약 여러분에게 문제가 있거나 실수를 하더라도 많은 친구들이 얘기해 주고 사랑해 
        주고 격려해 줄 수 있습니다. </p>
      <p>그러면 여러분은 다시 제대로 된 방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단체명상에 가는 건 헌신적인 좋은 친구나 좋은 연인을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함께 성장하며, 약간의 문제와 행복도 함께 나눕니다. 이는 수행 운운할 필요도 없이 인간의 정신에도 매우 
        좋은 일입니다. </p>
      <p>그러니 이제 우리가 왜 수행해야 하는지, 왜 단체명상에 가야 하는지 알 겁니다. 우리가 약하기 때문이지요. 혼자 갈 경우엔 
        누군가 유혹하면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둘이나 셋, 넷이 함께 간다면 설령 우리가 유혹에 빠지고 싶어도 친구들이 “안 
        돼, 안 돼! 그건 네게 좋지 않아. 돌아와!”라고 말해 줄 것입니다. 그래서 함께 수행할 친구들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p>
      <p>이 삶의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지요. 만약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길 원한다면, 그는 자신과 동일한 이상을 갖고 
        자신을 지지해 줄 추종자들을 많이 모아야 합니다. 모두가 아는 일이지요. 그렇지 않고 혼자서 특정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혼자서 나라 전체를 바꿀 수 있나요? </p>
      <p>지지자들이 많아야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비난할 때는 좀더 생각해 봐야 해요! 그것은 서로 이미 공유한 이상이며, 많은 사람들이 
        책임질 내용입니다. 단지 한두 사람만의 것이 아니지요. </p>
      <p>모든 이상,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모든 목적도 그와 같습니다. 우리가 목표한 길을 가기 위해서는 지지해 줄 친구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넘어지고 약해질 때 친구들이 도와주거나 이끌어 줄 것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친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서로 격려해 줄 동수들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p>
      <p>이 단체는 대가족과 같기 때문에, 이 단체에 들어와서 함께 명상하는 사람은 세속적인 문제뿐 아니라 영적인 힘도 함께 나눠 갖게 
        되며, 그렇게 되면 모두가 서로 연결됩니다. 또 강한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서 우리 사이엔 약한 사람이 없게 됩니다. 
        우리는 같은 수준에 함께 도달하고 누구나 행복합니다. 여러분은 정화되어 더욱더 행복해집니다. 그리고 매일 더욱더 홀가분하게 느끼게 
        됩니다. </p>
      <p align="center"><font color="#FF6600">-- -- -- -- -- -- -- </font></p>
        
      <p><span class="caption_3">단체명상은</span> 많은 힘으로 장애를 빨리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여러분이 
        갖고 있는 문제들은 대부분 스스로 만든 것입니다. 입문 후 계율을 지키고 완전 채식을 하고 단체명상에 참석한다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p> 
      <p>절은 원래 입문한 수행자들이 단체명상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절의 원래 목적은 우리 센터처럼 단체명상을 위한 것이었어요. 입문한 
        후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 혹은 격주에 한 번씩 함께 명상하기 위해 모여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질문을 했을 겁니다. 스승은 
        그들의 질문에 답변할 제자들을 보내고, 이로 인해 그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더욱더 정진했습니다. 단체명상의 가피력은 참으로 크기 
        때문에 그들은 더 빨리 진보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절의 원래 목적입니다. <br /><br />
        진정으로 명상 시간을 잘 보낸 후에는 성인처럼 우뚝 서게 되어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정말 명상을 
        잘하고 신실하게 수행한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감지하고 느껴서 존경과 사랑으로써만 대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얼굴에도 사랑과 
        순수만 있게 되지요. 나는 그것을 책 읽듯이 환히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아챌 수 있습니까? 명상을 많이 하고 신실하게 
        수행하는 사람들의 변화를 알 수 있나요? 예? 그래서 여기에 오면 가능하면 언제나 명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p>
      <p>앉아서 명상해야 할 뿐 아니라 마음도 집중해야 합니다. 친구를 찾으려 하거나 사방팔방 다니며 할 일 없이 잡담이나 하려 하지 
        마십시오. 내가 그때는 못 봤어도 나중에 여러분을 보면 나는 압니다. 모든 사람이 압니다. 여러분 얼굴에 아주 명확히 씌어 있으니까요. 
      </p>
      <p>정말 정직하게 말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털끝만큼도 숨길 수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얼굴에, 눈에, 이마 위에 씌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몸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감각으로서, 어떤 향수를 뿌렸든 그것과는 별개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러니 명상은 
        정말 값진 것입니다. </p>
      <p>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03 Jan 2004 08:24:30 +0900</dc:date>
</item>


<item>
<title>잠을 잘 때도 들어올려진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int&amp;amp;wr_id=7</link>
<description><![CDATA[<br /><p>누워서 명상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잠들기 쉽습니다. 앉아 있어도 곯아떨어지는데 누워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나 역시 같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나도 누워 있으면 잠이 듭니다. 그렇다고 잠을 잘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수면은 
        충분히 취해야 합니다. 육신은 재충전될 필요가 있고 영혼은 휴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p>
      <p>그러니 그다지 피곤하지 않은 때를 택해 명상하십시오. 충분히 수면을 취하고 난 아침에 명상을 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일어나기야 
        물론 싫겠지만 일어나는 편이 낫습니다. 이 때가 명상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니까요. 그러나 용기와 성심이 없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p>
      <p>때로 여러분은 잠을 자는 동안 들어올려집니다. 그러나 대개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간혹 그것을 알게 되는 경우에는 오히려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어제 한 동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승님, 전 잠이 들었을 때 영혼이 나가 제 몸이 
        누워있는 것을 자주 봅니다. 이건 육신이라고 제가 제 자신에게 말합니다. 하지만 곧 두려워져서 육신으로 돌아옵니다." </p>
      <p>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늘 육신에 구속되어 있으니 얼마동안 
        밖으로 나가 있는 것은 재미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여러분이 지키고 있지 않아도 육신은 도망가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그 안에 있어야만 
        육신이 움직이니까요. 움직이는 건 바로 우리이지 육신이 아닙니다. </p>
      <p>그렇지 않으면 왜 사람이 죽었을 때 육신은 그대로 있고 눈과 귀도 여전히 달려있는데 움직이지 못할까요? 사람이 죽으면 때리거나 
        꾸짖어도 울지도 않고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영혼 없이 육신이 홀로 기능 할 수 없다는 걸 말해줍니다. 육신은 
        오직 우리가 그 안에 있을 때에만 움직일 수 있습니다. </p>
      <p>그러므로 우리가 몸 밖으로 빠져나가 육신이 누워 있는 것을 보는 건 근사한 일입니다. 육신은 도망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도 두려워진다면 내 도움을 구하십시오. "스승님, 부디 저를 보호해 주세요!" 내가 여러분을 
        위로 데려갈 수 있도록 여러분이 허락한다면 그것은 여러분에게 아주 좋은 일이 될 겁니다! </p>
      <p>여러분이 두려워하기 때문에 나는 가끔씩 여러분이 눈치 채지 못하게 자는 동안 살짝 여러분을 데리고 올라갑니다. 여러분이 알게 
        되면 오히려 곤란이 따르지요! 여러분이 알게 되면 더 곤란해집니다! 여러분을 끌고 나올 수 없으니까요. </p>
      <p>육신은 그저 썩고 냄새나는 살덩이일 뿐인데 여러분은 온 힘을 다해 그것에 집착합니다. 평생 동안 그 안에만 갇혀 있었고 정말 
        오랜만에 그 안에서 나오게 되는 것인데도 그것을 강하게 붙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생사해탈을 원한다는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썩은 가죽부대에서조차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데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p>
      <p>우주에는 수많은 행성이 있습니다. 그것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고개 들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별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별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별들은 고도로 문명화되어 있는 반면 어떤 별들은 낙후되어 있습니다. 
      </p>
      <p>우리 지구가 전 우주에서 생명체가 거주하는 유일한 행성이라면 이 얼마나 큰 낭비일까요? 조물주가 지구 하나만을 창조할 정도로 
        그렇게 멍청하겠습니까?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행성들이 존재합니다! 최근 과학자들은 탐사를 통해 어떤 행성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p>
      <p>하지만 그 행성 안으로 들어갈 순 없었죠. 이른바 영적인 행성이라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육체를 지니고 있지 않아서 
        우리의 육안에 잡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순 없죠.</p>
      <p>이런 영적인 행성들은 우리 지구나 다른 지구들보다 고등한 행성입니다. 우리가 '지구'라고 할 때는 우리 세계와 같은 행성을 
        일컫는 것입니다. 이런 물질적인 행성들을 '지구'라 부르는 것이죠. 그곳에선 모든 것이 물질적이어서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다른 종류의 행성들은 어떻게 불러야 할지를 몰라 그냥 '영적인 행성'이라 하겠습니다. </p>
      <p>영적으로 높이 발달된 존재들의 차원에서는 육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보거나 느끼려면 우리 자신의 진동을 높여 그들의 수준에 
        맞춰야 합니다. 우린 진동이 너무 거칠어 그들을 볼 수 없습니다. 고등한 세계에 대해 말하는 대신 이 세상에 보다 근접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p>
      <p>어떤 이들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볼 수 없는데, 그건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살아 
        있는 우리의 육체적 진동과는 다르게 진동하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들도 여전히 몸을 가지고 있지만, 그건 육체와는 다른 몸입니다. 
      </p>
      <p>텐트는 집과 비슷해도 다른 재료로 만들어져서 칼이나 맨손으로도 쉽게 찢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무로 지은 집은 좀 더 견고합니다. 
        재료가 다른 것이죠. 만일 콘크리트로 지었다면 훨씬 더 강할 겁니다. <br /><br />
        홍콩 사람들은 유리로 집을 짓는데 보기에도 좋고 훤하고 편안합니다. 안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어 아주 편안한 느낌이 들죠. 홍콩의 
        고층 건물들이 전부 콘크리트로 투박하게 지어졌다면 아무도 견딜 수 없을 겁니다. 사람들은 좁은 공간에 갇혀 있으면 답답해서 미치게 
        됩니다. </p>
      <p>이런 홍콩의 건축양식은 보다 문명화된 세계의 건축양식과 매우 흡사합니다. 어떤 세계에서는 수정으로 집을 짓습니다. 집이 있어도 
        구속감이 전혀 없습니다. 집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 어떤 건물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게 아니어서 사람들이 벽을 통과해 지나다닐 수 
        있습니다. 아주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이죠. </p>
      <p>시야를 가리는 높다란 벽 같은 건 없습니다. 벽이 무형의 것이기 때문에 집의 내부가 아주 널찍하고 탁 트인 느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유리로 건물을 짓는 건 이런 고등한 세계의 건축양식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문명화된 세계가 꼭 영적인 세계인 
        것은 아닙니다. 그런 세계가 가장 높은 세계는 아닙니다. 그러나 천상의 범주에 속한다고는 할 수 있습니다.</p>
      <p>그런 세계에 사는 사람들만이 이런 집을 좋아합니다. 그런 세계에 근접한 것이죠. 그뿐입니다.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전에 살았던 
        세계어서 보았던 집들을 기억하는 겁니다.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형태의 집을 지으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집을 짓기는커녕 
        그런 집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죠. 문명화된 세계에 다가간 사람들만이 이런 형태의 집을 고안해서 짓고 그 속에서 살기를 좋아합니다. 
      </p>
      <p>하지만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일반적인 실례를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영적인 수행자는 어디에 거주하든 상관없습니다. 수정으로 
        지은 집이 최상의 경지는 아닙니다. 집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도를 이루면 우리 스스로 자신의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p>
      <p>우리가 어떤 집을 생각하든 생각만으로 그 집이 실제화 됩니다. 우린 자신의 상상력과 건축 재능에 따라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천상으로 올라가기도 전에 이미 우리의 집이 존재합니다. 우리가 지은 복에 따라 우리가 살 집이 결정될 것입니다.</p>
      <p> 석가모니불이 살았을 때 그의 사촌이 승단에 몸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속적인 향락에 빠져 수행은 열심히 하지 않고 
        남몰래 살짝 집으로 돌아가 어여쁜 부인을 만나곤 했습니다. 그가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아서 석가모니불도 그를 어쩌지 못했습니다. 
      </p>
      <p>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잠결엔가 명상을 하는 중에 아름다운 세계로 갔습니다. 그곳은 경치가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웅장한 궁전도 
        있고 감미로운 음악도 흐르고 있었죠. 어여쁜 선녀들과 천사들이 나와 그를 맞이했습니다. 그들은 그를 궁전으로 안내했습니다. </p>
      <p>거기서 그는 선녀들의 시중을 받고 천상의 음식과 술을 대접받았으며 선녀들의 춤과 노래를 맘껏 즐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선녀들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이곳은 어느 분의 궁전입니까? 너무도 아름답군요. 아름다운 분이시여, 당신은 
        어느 왕궁에서 오셨습니까?"<br /><br />
        이에 선녀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궁전은 석가모니불의 사촌인 아무개를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그들은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척했습니다. "수행이 좋으면 그는 여기에 와서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시녀들입니다." 
        이 시녀들이 자신의 아내보다 수천 수백 배나 더 아름다워 그는 무척 기뻤습니다. 술과 음식도 맛있고 배나 다른 과일들도 이 세상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고 맛이 좋았습니다. </p>
      <p>그래서 그는 물었습니다. "지금부터 여기에 살면 안 될까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니, 이 집과 당신들 모두가 내 소유입니다. 
        이제부터 여기에 머물겠습니다." 그러나 선녀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 됩니다. 그럴 순 없습니다. 당신은 
        수행이 아직 여기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수행을 마친 뒤에야 여기 와 머물 수 있습니다. 우린 여기서 당신을 기다릴 것입니다. 
        오늘은 미래의 저택을 잠시 보여드린 것뿐입니다." </p>
      <p>그건 마치 집을 사기전에 미리 둘러보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제 자신의 꿈의 저택을 봤으니 나중에 이리로 오십시오. 
        당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입니다. 며칠 정도면 되겠죠." "뭐라고요? 며칠이라고요? 
        내려가서 수십 년간 수행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선녀들이 대답했습니다.<br /><br />
        "맞습니다! 여기에서 며칠은 아래 세상에서 수십 년과 맞먹습니다."(스승님 웃으심) 그는 크게 실망하여 갑자기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아직 수행이 충분치 않아 안정된 마음으로 거기에 머물지 못한 것입니다. 게다가 아직은 그의 시간이 되지 
        않았죠.<br /><br />
        그는 그곳이 진정으로 그리워서 상심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석가모니불이 그를 발로 차서 지옥으로 떨어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막 천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지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엔 긴 이빨과 거대한 코, 시커먼 눈, 흉측한 머리카락과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얼굴을 한 무시무시한 귀신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p>
      <p>여러분도 영화에서 그런 모습을 봤겠죠. 지옥에서 그들은 사람들을 톱으로 자르고 불로 지지고 다른 여러 무시무시한 방법들로 벌을 
        줍니다. 그래서 지옥은 엄청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고 귀가 멍하죠. 악마들은 기름이 끓고 있는 큰 단지가 있는 데로 
        그를 데려 갔습니다. </p>
      <p>그가 단지를 보고 물었습니다. "왜 이 단지는 비어 있습니까? 안에 아무도 없군요!" 그러자 그들은 그 단지는 
        석가모니 부처의 사촌, 아무개를 위해 마련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수행이 형편없으면 지옥이 그를 맞을 것이란 얘기였죠! </p>
      <p>그런 뒤 그들은 그에게 사람을 자르고 켜고 저며서 그릇에 집어넣고 요리할 때 쓰는 여러 도구들을 보여줬습니다. 악마들은 그의 
        몸에 일어나게 될 복잡한 과정을 단계별로 차근차근 설명해 줬습니다. 어느 부위는 튀기고 어느 부위는 살짝 지질 것이니, 그리고 
        몇 차례나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설명했죠. </p>
      <p>악마들이 기다란 메뉴를 전부 읽어주자 그는 머리카락이 온통 곤두섰습니다. "아, 안 돼요! 난 여기에 오고 싶지 않아요! 
        나는 여기에 있을 사람이 아니에요! 난 천국에 속한 사람이라고요." 그러나 그가 들은 대답은 이랬습니다. "천국에 
        가려면 열심히 수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옥은 언제든 당신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는 극도의 공포로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그러자 석가모니불이 그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p>
      <p> 이처럼 천국과 지옥은 모두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 결정은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잘 해주지 않는다고 남을 원망하지 
        말고, 우리를 구하지 않는다고 신을 탓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신은 바로 우리 자신, 자신의 진정한 자아이기 때문입니다. </p>
      <p>우리가 자신을 구하려 하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를 구하겠습니까?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 우주에서 우리 각자는 모두 
        독립된 영혼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선함과 악함을 전부 알고 있으며, 자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p>
      <p>누구도 우리를 돌봐주지 않습니다. 선한 일을 하면 좋은 열매를 거둘 것이고 악한 일을 하면 나쁜 과보를 받을 것입니다. 이는 
        너무도 명백한 일입니다. 우리 자신이 스승이므로 우리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br /><br />
        자신이 과거에 잘못을 했더라도 신경 쓰지 마십시오. 우리는 미래에 과거를 보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입문할 때 나는 
        여러분이 수많은 전생에서 지은 업장을 씻어 주었습니다. 이 일은 보이지 않게 이루어집니다. 하나의 버튼을 눌러 컴퓨터에 저장된 
        모든 정보를 지우는 것과 같죠. </p>
      <p>그렇지만 우리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다시 기록이 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율을 지키고 채식을 해서 미래의 업장을 짓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래야 중생들과 좋지 않은 인연 맺는 걸 피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통 받는 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는 건 
        우리 자신을 사랑으로 돌보는 것과 같습니다. 좋은 인과가 생기기 때문이죠. </p>
      <p>그렇지만 자신이 지은 좋고 나쁜 업에 집착하지 않아야 인과의 사슬인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좋은 업이든 나쁜 업이든 
        우리를 여전히 돌아오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최선의 길은 좋은 업도 나쁜 업도 지니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린 하느님의 왕국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p>
      <p>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03 Jan 2004 08:23:20 +0900</dc:date>
</item>


<item>
<title>최고의 스승은 내면에 존재한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int&amp;amp;wr_id=6</link>
<description><![CDATA[<br /><p>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려는 것은 스스로를 가르치는 방법입니다. <br />
        그러면 여러분 내면의 부처, 내면의 신이 깨어나 여러분을 가르칠 것입니다. <br />
        하지만 그러기에 앞서 내가 먼저 이 최고의 스승인 내면의 신, <br />
        내면의 부처를 깨우는 법을 알려줘야만 하지요. <br />
        최고의 스승은 여러분 내면의 신의 왕국이나 부처이지, 내가 아닙니다. <br />
        나는 단지 그를 어떻게 깨우는지 아는 사람으로서 <br />
        여러분에게 그를 소개시켜 주고 <br />
        또 그에게 어서 일어나 제대로 일하도록 말해줄 수 있을 뿐입니다. <br />
        내 일은 이게 다입니다. </p>
      <p align="right">
        <span class="caption">칭하이 무상사/ 1989. 10. 27. 미국 하버드 대학</span><br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Fri, 02 Jan 2004 20:56:55 +0900</dc:date>
</item>


<item>
<title>왜 꼭 입문을 받아야 하는가?</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int&amp;amp;wr_id=5</link>
<description><![CDATA[<br /><p>많은 사람들이 내게 깊은 신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를 숭배합니다. 그들은 나의 가르침을 알고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고 
        믿습니다. 그들은 내 사진을 집에 갖다놓고 숭배하거나, 아니면 내 책 서너 권을 들고 가 이틀 밤새에 전부 읽고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뒤 아주 거만해져 스스로 내 제자가 되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제자가 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할 수 있을까요? 
      </p>
      <p>사람들이 입문하라고 권하면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왜 꼭 입문을 해야 합니까? 내가 당신들보다 더 신실해요! 당신들보다 
        스승님에 대한 신심이 더 크다고요!" 그들은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br /></p>
      <p>그러나 결코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마치 결혼을 해 본 적이 없는 어린아이 같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잘 알지만 실제 경험은 전혀 
        없는 것이죠. 젊은 청년의 경우에도 아직 미혼이라면 어린아이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결혼이 어떤 것인지, 결혼의 기쁨과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진 못합니다. </p>
      <p>이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경전에서 석가모니 부처와 예수의 제자들이 어떻게 빛을 보고 음악을 듣고 부처나 신을 보았으며, 어떻게 
        세 번째 천국과 네 번째 천국, 다른 여러 비범한 천계를 체험했는지를 읽습니다. 우리는 팔지보살, 아라한, 수다원 등에 대해 
        많은 말을 듣습니다. </p>
      <p>하지만 수다원이 무엇인지, 수다원이나 아라한의 과위를 얻으면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그는 내면으로 
        무엇을 얻었는가?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보는가? 그는 범부와는 달리 아라한으로서 존경받을 만한 힘과 지혜를 지니고 있는가? 
        이런 것들은 알지 못하죠.</p>
      <p>이 세상에 비슷하게 닮은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의학을 배우고 다른 한 사람은 목수일을 배웠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그들은 확실히 다릅니다. 목수는 의사가 아주 훌륭한 전문직업인으로서 매우 지적이고 사람들을 구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만 의사가 어떻게 그 일을 하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p>
      <p>목수는 의사의 내면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의사가 어떻게 사람들을 구하고, 어떻게 얼굴만 보고 아픈 곳을 알 수 있으며 
        맥만 짚어보고 심각한 병이 있는 것을 아는지 알지 못합니다. 목수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왜 의사를 의사라 
        부르겠습니까? 그는 목수와는 완전히 다른 지식을 쌓고 다른 기술을 터득한 것입니다. </p>
      <p>예리하게 날이 선 도구를 사용한다고 나무를 자르는 것과 배를 가르는 것이 같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이 둘은 전혀 같지 않습니다! 
        한쪽은 나무를 다루고 다른 한쪽은 인간을 다루지요. 나무는 복잡할 것이 없지만 인간의 육체는 안에 많은 내장이 있으니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수술은 단지 칼로 자르는 단순한 작업이 아닙니다!</p>
      <p>이와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전을 읽고 해석하고 암송합니다. 그들은 언제, 누구에 의해 이 경전이 씌어졌으며 거기에 무슨 
        내용이 담겨 있는지는 식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성한 체험이 없어서 그것의 참뜻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아라한이나 
        팔지보살, 십지보살, 부처, 혹은 심지어 가장 기초적인 수다원이나 사다함, 연각불의 체험을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관음법문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죠.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번거롭게 수행을 하겠습니까?</p>
      <p>사람들은 모든 이에게 불성이 있다는 말을 듣고 좋아합니다. 그들은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불성이 뭔지 모릅니다. 그래서 불성이 무엇이고 아라한의 과위가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관음법문을 수행해야 합니다. 팔지보살 등급을 
        성취하면 어떻게 느끼고 어떠한 권능과 힘을 얻으며 어느 정도까지 중생을 구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 관음법문을 수행해야 합니다. 
      </p>
      <p>그건 의사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더 많이 배울수록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고, 수련을 더 쌓을수록 경험이 더욱 
        풍부해집니다. 그래서 어떤 의사들은 환자를 진맥하지 않고도 어디가 아픈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저 얼굴만 보고도 무슨 병인지 
        알지요.</p>
      <p><font color="#6666FF" class="caption_3">깨달은 스승은 우리를 위해 인과망(因果網)을 다룬다</font></p>
      <p>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수행자들이 우리의 운명을 확인하지 않고도 우리를 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조상의 내력을 
        보여주거나 이전에 우리가 어떤 수행을 했고, 어떤 선행이나 악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해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한마디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흘낏만 봐도 우리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p>
      <p>지상에 내려온 그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에 관한 모든 것, 세세생생 우리가 행한 모든 행위를 알며, 우리가 이전에 짐승이었는지 
        왕이나 인간, 관리, 남성, 여성이었는지를 모조리 압니다. 그래야만 우리를 대신해 복잡한 인과망을 다룰 수 있습니다. 운수를 
        점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단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고작 과거 몇 백년간 일어났던 일들을 말해줄 수 있을 뿐이고, 길어봤자 몇 
        천년입니다. 그건 아무 것도 아니죠. 우리의 전생 인과를 낱낱이 읽지는 못합니다. </p>
      <p>그래서 입문식 때 난 여러분에게 신통력을 사용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신통력은 너무나 보잘 것 없고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전생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도 잘해야 수백 년, 수천 년 동안의 인과만을 거슬러 올라갈 뿐입니다. 그들은 원자가 중생으로 
        변형된 태초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진 못하며, 그 사람이 수십 억 년 동안 환생을 거듭하며 살아온 수많은 생을 다 읽어내진 
        못합니다. 오로지 부처나 깨달은 스승만이 그런 개인적 기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오직 그런 스승만이 그런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수) </p>
      <p>인과가 기록된 자료는 평범한 사람이나 일반적인 점쟁이들, 혹은 전생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의 능력이 미칠 수 없는 어떤 특수한 
        장소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신분증이 없어 그곳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그보다 차원이 높은 깨달은 스승들에게만 입장이 
        허가됩니다. 그들은 이곳과 관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점쟁이들은 이러한 자료 안에 무엇이 기록되어 있는지 알 수 없으며, 설사 
        알았다 해도 그들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p>
      <p>예를 들어 어떤 점쟁이들은 우리의 현재 인과를 약간 바꿔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아, 왕 부인, 부정적인 에너지가 
        당신에게 드리워져 있군요! 당신 집의 풍수가 잘못되었으니 빨리 이사를 가야겠군요! 그러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겁니다. 그리고 장차 
        복을 얻으려면 얼마의 돈을 시주해야 합니다."라고 말해줄 수 있습니다. </p>
      <p>그들은 우리가 지난 생에 초래한 인과로 힘든 상황에 처하고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말해줄 수 있습니다. 
        그 인과를 볼 수 있어 전생에서 이어진 인과의 매듭을 풀게 도와줄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인과가 아주 오래 전에, 
        수천 년 전에 비롯되었으나 그 인과의 열매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점쟁이는 그것을 볼 수 있더라도 
        바람직하지 않은 과보를 받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p>
      <p>오직 깨달은 스승만이 완전한 기록이 정리되어 보관된 장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래된 인과를 깨끗이 지우는 것이 스승의 일입니다. 
        스승이 그것을 지워주지 않으면 수행을 해도 해탈할 수 없습니다. 인과를 다 지우는데 수십 억겁이 걸릴 테니까요! 그래도 완전히 
        지울 수 없을지 모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다시 환생할 때마다 새로운 업장을 짓고 다시 그것에 묶이기 때문입니다. </p>
      <p>이전에 수집한 업장을 완전히 지우기도 전에 우리는 더 많은 쓰레기들을 긁어모을 겁니다. 어떤 초자연적인 능력이나 전생을 볼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 미래를 점칠 수 있는 사람들도 이런 장소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들에겐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고객들이 오랜 인과를 처리하게 도와줄 방도가 없는 것입니다.</p>
      <p>그러나 깨달은 스승은 전능한 힘을 지녔기 때문에 한 순간에 우리 전생의 모든 인과를 지울 수 있습니다. 스승의 힘은 불가사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런 스승을 만나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은 공덕을 쌓더라도 충분치 못합니다. 우리의 업장이 너무나 무겁고 나쁜 
        과보가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이죠! </p>
      <p>그래서 정말로 열심히 부처를 숭배한다 해도 그것으론 부족합니다. 모든 경전을 다 공부할 수도 있지만, 그것으로 우리의 지혜를 
        열진 못합니다. 우리가 전생의 업장에서 비롯된 어두운 먹구름에 가로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경전을 읊어도 눈 먼 
        상태를 면치 못하죠! 경전에 명백하게 쓰여 있어도 쓰레기와 업장으로 앞이 가린 우리는 그 참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p>
      <p><font color="#6666FF" class="caption_3">입문한 사람과 입문하지 않은 사람의 차이</font></p>
      <p>많은 사람들이 단지 스승을 믿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여러분을 안팎으로 깨끗이 
        청소하도록 허락해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집이니 여러분의 허락 없이는 내 맘대로 청소할 수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자신의 쓰레기에 
        집착하여 그것을 꼭 붙들고 있겠다면 그 누구도 그것을 여러분에게서 가져갈 수 없습니다. </p>
      <p>사람들이 내게 신심을 갖고 내 책을 읽거나 내 사진을 숭배하는 일도 어느 정도는 유용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을 외적으로 
        정화시켜 줍니다. 하지만 내적으로는 아닙니다. 신심을 갖고 내 책을 읽는 비입문자들은 단지 외적으로만 정화되는 반면, 입문한 
        사람들은 내가 내면에서부터 정화시킬 수 있습니다. 자기 혼자서는 수많은 생을 통해 쌓은 인과를 다루지 못합니다. 너무나 많은 
        쓰레기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p>
      <p>생을 거듭하면서 우리는 달갑지 않은 오물들을 너무 많이 가져다 쌓았습니다. 그래서 집안에 있는 더러움을 완전히 씻어내려면 쓰레기를 
        잘 다루는 경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어떤 집은 너무 오래되고 낡아서 천장을 완전히 새로 하고 벽을 다시 칠하고 카펫을 
        걷어내어 세탁하는 일 등이 필요합니다. 살만한 집을 만들려면 구석구석 청소하고 마루를 새로 깔고 벽을 새로 칠해야 하는 것이죠. 
      </p>
      <p>이처럼 우리 내면의 집, 이 마음도 잔뜩 더렵혀져 있습니다. 마루바닥은 이미 썩었고, 우리의 도덕관념과 고귀한 이상은 세속적인 
        관념과 습관적인 탐욕, 분노, 어리석음의 뒤편에 방치된 채 퇴색되어 왔습니다. 우리 혼자 힘으로는 이 모든 것들을 수리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입문한 사람의 경우에는 스승이 그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 모든 것을 말끔히 치웁니다.</p>
      <p>많은 사람들이 내 사진을 집에 갖다놓고 숭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숭배습관은 뿌리가 깊습니다. 
        그들은 지신들을 숭배하고 나무의 정령 따위도 숭배합니다. 그러다 내가 힘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내 사진을 집에 가져가 역시 숭배합니다. 
        그것도 유용하긴 하지만 단지 외적으로만 그렇습니다. </p>
      <p>내가 방금 아주 정확한 비유를 들었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생사해탈을 갈망한다면, 그리고 정말로 자신의 더러운 부분을 깨끗이 
        지우고자 한다면 오직 단 하나의 길, 입문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점에 대해 오해하지 마십시오. 나는 입문에 대해 잘못된 
        관념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내게 신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잘못 이해하고 있어서 그런 것이죠. 정말 딱한 일입니다.</p>
      <p>그래서 여러분이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게 내가 오늘 특별히 이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박수) 여러분에게 입문하라고 강요하거나 
        유혹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단지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입문하는 것과 입문하지 않는 것의 중대한 차이를 확실히 이해하길 
        바랄 뿐입니다!</p>
      <p>신심이 그다지 강하진 않더라도 입문한다면 나를 믿으면서도 입문하지 않는 것보단 훨씬 낫습니다. 후자는 어떤 사람을 무척 사랑하지만 
        그와 결혼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그것은 그 정도로 그 사람을 사랑하진 않지만 그 사람과 매일 같이 
        생활하며 결혼생활을 몸소 체험하고 두 사람의 세계를 함께 향유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아주 엄청난 차이가 있지요! 그렇지 않나요? 
      </p>
      <p>여러분이 어떤 여인을 사랑한다면 매일 그녀의 집 문밖에 서서 그녀를 사랑하겠습니까, 그녀와 결혼하겠습니까? (그녀와 결혼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단지 그 여인을 사랑하기만 하면서 자신이 그녀의 약혼자보다 그녀를 더욱 사랑하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내게 
        말하지 마십시오. 서로 멀리 헤어져 있다면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진정으로 그녀를 원한다면 그녀와 결혼해야 합니다. 
        이처럼 생사에서 벗어나 해탈하려면, 스승의 진정한 도움을 받으려면, 최고의 이로움과 축복을 얻으려면, 입문을 받아야 합니다! 
        <br /></p>
      <p align="right"><span class="caption">칭하이 무상사/ 1989. 4. 11. 포모사 핑뚱</span><br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Fri, 02 Jan 2004 20:56:2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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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사랑과 관용의 수행법문</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int&amp;amp;wr_id=4</link>
<description><![CDATA[<br /><p>우리가 입문한 후에는 이 세상에 사는 것이 한낱 꿈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 배우자, 아이들, 친지들 모두가 낯선 
        사람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아직도 그들과 인과관계가 있기 때문에 여전히 그들에게 잘 대해 주어야 하며 우리의 
        의무를 다해야만 합니다. </p>
      <p>모든 중생이 우리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들이 입문을 했든 안 했든,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정도이든 외도이든, 그리고 
        신앙이 있든 없든지 간에 우리와 관계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선과 악, 슬픔과 행복, 그 모든 것이 우리와 관계가 있습니다. 
      </p>
      <p>우리는 과거에 좋은 사상이든 나쁜 사상이든 많은 사상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세상의 상황에 대해 얼마간의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와 다른 중생들이 함께 이 세계와 현재의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므로 "저 사람은 정말 지독해.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관계가 있습니다! </p>
      <p>우리는 지난날 아주 많은 나쁜 사상과 관념을 가졌을 것이며 많은 과오를 범했을 것입니다. 세세생생 축적되어 온 이러한 나쁜 
        사상과 과오가 현재의 상황으로 변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일체유심조'라고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 존재하고 선과 악이 
        있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잘못과 우리가 행한 나쁜 일들을 고쳐 나가기 위해 수행을 
        해야만 합니다. </p>
      <p>우리는 이 세상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우리가 아주 많은 나쁜 일을 했기 때문에 그로인해 현재의 이러한 나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나쁜 면을 고쳐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친지와 나라, 
        세계와 우주를 위해서 수행을 해야 합니다. </p>
      <p>그들은 모두 우리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들이 좋든 나쁘든, 그들이 이처럼 된 것은 모두 우리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행은 내적인 
        면과 외적인 면 둘 다와 관계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 수행을 하고 싶으니까 부모님과 배우자를 다 버려야겠어." 
        이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전과 같아야만 합니다. </p>
      <p>만약 진정으로 출가를 하고 싶다면 그것은 다른 경우입니다. 출가란 자신의 신, 구 ,의를 시방세계 부처와 중생들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수행하기에 좀더 쉽고 빨리 진보하기 위해서 세상과의 관계를 끊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자기 
        자신을 시방삼세불과 중생들에게 바치고 싶기 때문에 출가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경우입니다. </p>
      <p>출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부모님께 효도를 다해야 합니다. 우리 부모님께 잘못된 점이 있다 하더라도 도덕적인 것을 권하고 
        아주 부드럽고 공손한 태도로 이치를 설명해야 합니다. 만약 그들이 들으려고 하지 않든가, 여러분을 나무라든가, 혹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우리의 사고방식이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우리는 불효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p>
      <p>마찬가지로 우리의 배우자나 형제자매들에게도 아주 달콤하고 부드럽게 말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리를 
        설명하고 권해야만 합니다. 한구석에 앉아서 울거나 배우자를 탓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이해하도록 시도해 보지도 않고서 어떻게 
        우리가 그들을 나무랄 수 있겠습니까? 그들 대부분은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을 싫어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우리를 더욱 더 오해하고 
        우리에게 더 많은 문제를 가져다주게 되는 겁니다. </p>
      <p><b><font color="#6666FF"><span class="caption_3">사랑으로써 가족을 감화시켜라</span></font></b> 
      </p>
      <p>사실 이것 또한 우리의 책임입니다.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 그들이 우리를 의심하고 불편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의 
        스승을 탓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탓할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충분히 지혜롭지 못한 것을, 
        그리고 대화를 잘 이끌어 나가지 못한 것을, 우리의 친지들을 납득시킬 충분한 힘을 갖지 못한 것을 탓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더욱 더 참회해야만 합니다. </p>
      <p>동시에 그들을 더욱 더 사랑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그들이 느낄 수 있도록 더 큰 사랑으로 그들을 돌봐야 합니다. 그들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그들을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그때 비로소 그들의 마음이 움직여 우리를 믿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아주 평화롭게 
        수행할 수 있고, 점차적으로 그들을 바른 길로 전향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우리의 책임이며, 이것이 바로 중생들을 
        구제하는 방법입니다. </p>
      <p>수행자는 수행할수록 괴팍해져서는 안 됩니다. 남편이 수행을 반대한다고 남편을 꾸짖거나, 동의하지 않는다고 남편과 싸우고 말도 
        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사다주지 않고, 관계도 하지 않고, 멀어진다면 그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됩니다. </p>
      <p>석가모니 부처는 말했습니다. "모든 중생은 우리의 친척이다.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고 존중해야만 한다." 예수 
        그리스도도 말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라." 그가 여러분의 친구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p>
      <p>우리에게 좋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건 모든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에게 좋은 
        사람을 사랑하고 잘 대할 겁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좋지 않은 사람도 존중하고 사랑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용서하고 잘 대해 
        주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그들을 감화시킬 수 있습니다. </p>
      <p>우리가 그들을 감화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은 참 불쌍하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복이 많다. 스승도 있고, 좋은 교리도 있고, 좋은 법문도 있으며, 좋은 가르침도 있다. 우리는 
        복이 아주 많으며 지혜가 있어 수행도 할 수 있지만 그들은 아주 불쌍하다. 아마 아직 때가 되지 않았겠지. 그래서 그들의 두뇌가 
        꽉 막혀 있고 우리처럼 수행할 만한 지혜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정말로 불쌍하다. 우리는 그들에게 더 많은 자비심을 
        가져야 하며, 더욱 더 사랑하고 존중하고 보호해 주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상기시켜야만 합니다. 그들이 이해를 안 
        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수행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이건 
        자비도 박애도 아닙니다. </p>
      <p>우리는 어디에 있든 사람들에게 더욱 인내하고 관대해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제자들에게 때때로 이렇게 대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을 내쫓을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내가 누군가를 꾸짖거나 아주 엄격하게 대하는 
        것은 그가 빨리 변하고, 그의 업장이 빨리 소멸되고, 그의 에고가 깨어져 잘못을 빨리 개선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것을 잘 알며 그도 그가 하고 있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게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p>
      <p><b><font color="#6666FF" class="caption_3">재미있는 성자</font></b></p>
      <p>내가 출가하기 전, 내가 10대였을 때 사람들은 나를 생불(生佛)이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그때는 생불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몇몇 친지들이 나를 이런 식으로 불렀습니다. 어떤 이들은 나를 웃기는 성자, '재미있는 성자'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아주 괴짜 성자, 재미있는 성자라는 뜻입니다. 어떤 이들은 나를 ?생불?이라고 불렀습니다. </p>
      <p>그러나 그들이 진짜 나를 부처로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나의 개성이나 행동거지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 생불처럼 
        아주 좋았다는 뜻입니다. 나는 일을 할 때나 사람들을 대할 때 아주 이완되어 있었고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나를 '웃기는 성자', 혹은 '재미있는 성자'라고 불렀던 겁니다. 또 좀더 진지하게 나를 생불이라고 불렀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p>
      <p>영국 사람들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들도 나를 생불이라고 불렀습니다. 독일 사람들도 내가 아주 웃기고 재미있는 성자, 혹은 
        보살이라고 말했습니다. 어울락 친구들 또한 나를 생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때 당시 나는 어떤 법문도 수행하지 않았고, 그저 부처의 
        이름을 외우고 경전을 읽었을 뿐 그렇게 진지하지 않았었습니다. </p>
      <p>나는 보통 사람과 같았습니다. 겨우 10대 소녀였지요. 그때는 아직 어렸었고 출가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심지어 내가 20세가 넘었을 때도 내가 머물렀던 나라의 사람들은 모두 나를 이러한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내가 보살이나 성인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p>
      <p>나는 그들이 왜 나를 그렇게 부르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농담입니다. 그러나 농담 같은 진담이었습니다. 그들은 정말 그렇게 느꼈으며, 나를 칭찬하는 의미로 말했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잘 대할 수 있었다면, 수행자라면 당연히 다른 사람들에게 더 잘 대해야 합니다. </p>
      <p>우리는 이전보다 교리를 더 잘 이해해야 합니다. 나는 그때 교리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습니다. 그리고 깨달은 스승도 없었습니다. 
        나는 단지 어릴 때부터 도덕경, 불경, 성경, 기타 다른 경전들을 읽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깨달은 스승의 지도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도리에 대해서 안 것은 아닙니다. 그때 나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대했습니다. 당연히 지금은 사람들에게 더 잘 대해야만 
        하겠지요. </p>
      <p><b><font color="#6666FF" class="caption_3">엄한 꾸짖음은 깊은 사랑으로부터 나온다 </font></b></p>
      <p>그러나 때때로 내가 오히려 그 반대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요. 전에는 좀처럼 사람들을 꾸짖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렇게 합니다. 왜 일까요? 그것은 내 가까운 제자들을 빨리 가르쳐 그들이 빨리 진보하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가 
        그들을 꾸짖을 때 그들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꾸짖는 겁니다. 
      </p>
      <p>만약 그들을 싫어한다면 아예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은 집에서 아이들을 더 많이 꾸짖지요? 이웃집에 가서 그들의 아이를 
        꾸짖습니까? 만약 옆집 아이들이 밖에 나가 훔치거나 살인을 해도 여러분은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과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전혀 상관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p>
      <p>그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아주 싫어할지라도 여러분은 실제로는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내어 그의 집에 찾아가서 
        관여하고 관심을 가지고 걱정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의 집에 찾아가 이치를 설명한다거나 꾸짖거나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게 하고 때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청중 예) </p>
      <p>일반적으로 부모들은 항상 그들의 자녀들이 그들보다 낫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농부라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식이 의원이나 대통령, 
        혹은 높은 지위의 사람이나 박사, 변호사 등. 이런 사람이 되기를 꿈꿀 것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고 부유하지도 
        높은 지위에 있지도 않지만, 그들은 아주 열심히 일하면서 온갖 노력을 기울여 자식을 교육시킵니다. 좋은 교육을 받아 높은 지위를 
        얻고 좀더 안락한 삶을 살게 해 주려고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이지요.</p>
      <p>모든 부모들이 자기의 자녀들은 더욱 더 편안하고 고상하며 부유하고 뜻 깊은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 혹은 제자들을 꾸짖거나 아주 엄하게 대하는 것은 그들이 나보다 더 나아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충분히 겸손하지 못하다면 나의 제자들이 더욱 더 겸손하고 나보다 교만하지 않기를 바랄 겁니다. 혹은 내가 충분히 지혜롭지 못하다면 
        내 제자가 나보다 더욱 더 지혜롭고 현명하기를 바랄 겁니다. 나의 등급이 충분히 높지 못하다면 여러분의 등급이 나보다 더욱 더 
        높고 훌륭하기를 바랄 겁니다. 나의 힘이 충분치 못하다면 내 제자들은 나보다도 더욱 더 큰 힘을 갖기를 바랄 겁니다. </p>
      <p>내 등급이 단지 초지보살 단계라고 가정해 보세요. 초지보살이란 막 발심한 상태여서 아직은 성인이라 할 수 없는 단계를 말합니다. 
        성인이 된기 위해 배우기로 막 결심한 단계지요. 그렇더라도 나는 내 제자들이 빨리 십지보살이나 최고 높은 성인이 되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그것은 내 제자들이 나보다 더 훌륭하고 강해져서 수행에 있어서나 다른 모든 면에서 나보다 더 낫고 더 빨리 진보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제자들에게 아주 엄하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 대부분은 나의 성격을 이해하고 
        나의 가르침을 이해하며 나의 초월적인 사랑이 인간의 감정과는 다르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엄하게 할 수 
        있는 겁니다. </p>
      <p><b><font color="#6666FF" class="caption_3">겸손과 온화함은 사람들과 교통하는 최상의 방법이다</font></b></p>
      <p>우리 친지들이 도덕과 우리의 사고방식과 우리의 등급, 수행법문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에게 더욱 더 관대해야만 
        합니다. 그들을 꾸짖어서도 안 되며 때리거나 억지로 우리를 믿으라고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좀더 현명해야만 합니다. 심지어 
        홍법을 할 때 우리가 그들을 교육시키고 있다고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아주 평상적이고 부드럽게 말하십시오. 마치 커피를 
        마시면서 아주 가벼운 대화를 나누듯이 말입니다. </p>
      <p>그들을 스승의 제자로 만들려고 한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두려워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들은 내 말을 들어야 해요. 내 스승님의 힘을 느끼나요? 당신은 이해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지옥에 갈 거에요. 당신이 내 스승을 믿지 않는다면 당신은 가장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에요. 당신은 정말 멍청이에요. 내 
        스승이 정말 무상사라는 것을 당신은 몰라요. 우리의 법문이 최고의 법문이라는 것을 모르나요? 정말 너무 불쌍하고 어리석고 지혜가 
        없군요."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도 이런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겁니다. </p>
      <p>수행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존심도 강하고 에고도 높고 집착도 강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사상이 최고이고, 그들이 가장 잘 
        이해하고 있고, 그들의 종교가 제일이고, 그들의 관념이 가장 올바르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만약에 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면 
        그때는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p>
      <p>그래서 그들이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교육시키려고 한다거나, 그들을 우리의 동수로 만들려고 한다거나, 
        그들을 불자로 만들려고 한다고 그들이 생각지 않도록 하십시오. 그들과 종교문제에 관해서는 말하지 마십시오. 그들이 믿는 종교를 
        그대로 믿도록 하십시오. 그들이 도교를 믿는다면 좋은 도교 신도가 되도록 하고 도교에 관한 이야기를 하십시오. 난 이미 이것에 
        대해 말했습니다. </p>
      <p>나는 《도덕경》에 관해서도 약간 언급했었습니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도덕경》은 아주 좋은 경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이해 못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당신'이 이해 못한다고 말하지 말고 '우리'가 이해 못한다고 말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 도울 수 있고, 대화를 나누면 서로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자신의 이해의 등급을 드러낼 수도 있을 것이고 자신이 이해한 사상이나 견해를 표현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들의 
        견해를 배척해서는 안 됩니다. </p>
      <p>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당신의 생각은 아주 논리적입니다. 그러나 내게도 한 가지 생각이 있어요. 
        그러니 이치에 맞는지 인내를 갖고 한번 들어봐 주세요." 바로 반박을 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의 견해가 틀렸어요. 
        당신은 너무 어리석군요. 그런 게 아니에요"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p>
      <p>여러분은 우선 그의 생각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도 생각의 자유와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이해하고 
        생각할 권리가 있습니다. 사람들과 교통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을 배척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그들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봐야만 
        합니다. 그때 서로 이해할 수 있고 교통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사람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p>
      <p><b><font color="#6666FF" class="caption_3">창조주처럼 관대하라 </font></b></p>
      <p>수행을 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관대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이해의 
        수준을 더욱 더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의 자유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우주는 아주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p>
      <p>창조주는 아주 많은 것들을 창조해 냈습니다. 큰 나무, 작은 풀, 코끼리, 바퀴벌레, 개구리, 그 밖의 많은 것들을 포함해서요. 
        창조주는 이 모든 것들을 다 포용할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우리의 친지와 친구와 우리가 아는 사람들의 생각을 포용할 수 없을까요? 
        우리는 창조주처럼 관대해야 합니다. 창조주는 우주 만물을 포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우주 만물을 포용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될 수 있고, 최고의 경지, 최고의 등급에 이를 수 있습니다. </p>
      <p>이 등급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우리는 배워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가장 높은 사람이라고 
        가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배움을 통해서 언젠가는 최고이고, 가장 관대하고, 가장 자비롭고, 가장 인내심이 있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수행자입니다. </p>
      <p>수행자들은 수행할수록 더욱 괴팍해져서도 안 되며 다른 사람들과 멀어져서도 안 됩니다. 내적인 면에 관해서는 소위 관계가 없지만 
        외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똑같아야 합니다. "나는 그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수많은 
        중생들을 구제하겠다."고 서원을 했는데 한두 사람조차 구할 수 없다면 이를 어떻게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수행 
        목적은 더욱 사랑이 넘치고 인내심이 있고 고상해지는 것입니다. 가부좌를 하거나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것만이 수행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이것도 수행입니다. 그러나 외적인 면에서 행해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p>
      <p>'사랑'은 하나의 수행법문입니다. '관용' 역시 하나의 수행법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유롭게 하도록 하는 것도 우리의 수행법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자신을 삼계 이내에 묶어두고 자유로울 수 없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주의 자연스런 존재의 체계에 
        개입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퀴벌레를 코끼리로 변화시키려고 하고 지렁이를 나비가 되도록 강요합니다. 이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절대로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p>
      <p>노자는 '천하본무사(天下本無事)'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본래 어떤 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되어져야 할 일도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우리와 함께 수행을 하고 싶고 우리와 같은 이상을 가졌다면 그때 그들을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를 전향시키려고 안달할 필요가 없습니다. </p>
      <p><b><font color="#6666FF" class="caption_3">살아 있는 성자가 되는 것</font></b></p>
      <p>중생들을 억지로 수행하게 할 수 있었다면 왜 수십억 년이 지난 지금 모두 부처가 되지 않았을까요? 거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를 믿지 못한다 하더라도 조급해 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마십시오. 그들은 우리를 미워할 수 있고 우리가 그들에게 
        미움을 받을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을 미워할 수 없습니다. </p>
      <p>자비와 박애는 우리의 수행법문입니다. 우리의 품성이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게 하십시오. 사람들이 그것을 알게 하십시오. 우리가 
        살아 있는 부처이며 재미있는 성자라고 느끼게 하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정말로 살아 있는 보살과 같다고 느끼게 하십시오. </p>
      <p>나는 여러분이 이를 성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아주 빨리 그것을 성취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또한 나에게 협조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마음을 닫아두고 내가 들어갈 수 없도록 한다면 나는 
        여러분을 가르칠 수 없고 교통할 수도 없습니다. 나는 단지 여러분이 잠잘 때만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의 두뇌가 더욱 
        더 이완되니까요. 너무 피곤해서 저항할 수가 없는 거지요. 이 육신 또한 너무 피곤해서 저항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때 내가 
        여러분을 가르치기가 훨씬 쉬운 겁니다. </p>
      <p>많은 제자들이 좀처럼 명상을 않더라도 그들이 잘 때 종종 스승이 와서 뭔가를 이야기해 주고 그들의 문제에 답을 해주거나 도와주는 
        꿈을 꿉니다. 왜냐하면 그때 두뇌가 좀더 이완되기 때문입니다. 입문자 여러분에겐 잠자는 것 또한 보통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꿈 역시 내면의 체험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발설해서는 안 됩니다. </p>
      <p>굳이 말을 해야겠다면 나에게 하십시오. 혹은 수행일기에 적으세요. 진짜 그 일이 발생했을 때 꿈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겁니다. 
        그때 여러분은 꿈이 체험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이것은 스승이 여러분에게 먼저 와서 알려주는 것입니다. 혹은 여러분을 '야간학교'에 
        데려가 수행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p>
      <p></p>
      <p><span class="caption_3"><b>사랑과 
        용서, 자비의 법률</b></span></p>
      <p> 인과법보다 더 높은 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비의 법이고 관용의 법으로 신에게서 직접 나옵니다. 인과법은 낮은 것으로 신이 
        이 우주를 다스리려고 임명한 부하입니다. 그러나 이것 위에 더 높은 법이 있는데 사랑과 관용, 자비의 법이 그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가 왔을 때 이 땅에 가져온 것이고, 부처가 육신이 있을 때 우리에게 준 것이며, 모든 깨달은 스승이 사람들에게 구원과 
        도움을 주려고 가져온 것입니다. </p>
      <p>그것은 사랑과 자비의 법칙입니다. 여러분이 그들에게 가면 어떤 업도 당신에게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그들이 여러분을 업의 법칙 
        위로 끌어올려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왕을 알고 있으면 장관들이나 경호원들을 무서워하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은 왕의 
        친구이고 왕의 보호를 받습니다. 신분이 다릅니다.</p>
      <p align="right"><span class="caption">칭하이 무상사/ 1987. 7. 5. 포모사 </span><br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Fri, 02 Jan 2004 20:55:15 +0900</dc:date>
</item>


<item>
<title>입문의 이로움</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int&amp;amp;wr_id=3</link>
<description><![CDATA[<br /><p>입문 후에는 내면으로 도움과 보호를 받고 외면으로 접촉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내면으로 명상할 때 스승이 돕는 것을 보고 
        빛을 보며 편안하고 축복받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또한 여러분의 지혜가 나날이 커 가고 여러분의 사랑이 무한히 확장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때야말로 여러분은 이 법문이 매우 유용하며 성공적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p>
      <p>그렇지 않고 뭔가를 하고 눈을 감고 믿으라고 하면서 아무런 증거도 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증거를 주어야 
        하고 여러분은 증거를 요구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입문할 때 즉시 증거를 갖게 되며 그 후에도 매일 지속적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p>
      <p>곤경에 처하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의지할 사람이 없을 때 기적을 체험할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신의 힘을 알게 되고 여러분이 
        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신이 여러분을 보호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알겠습니까?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어요? 우리가 곤경에 처했을 때, 신을 보지도 못하고 신의 도움과 보호를 받지도 못한다면 신이 
        무슨 소용입니까? </p>
      <p>우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그래서 관음법문을 수행한 다음에는 기독교인은 더욱더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어 하느님을 
        숭배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신이 알고 있는 바를 우리가 알게 되며, 삶의 매 순간마다 보호와 축복의 힘을 보고 느끼고 체험하게 
        될 테니까요.” <br /></p>
      <p align="right"><span class="caption">칭하이 무상사/ 1992. 3. 3. 싱가포르</span></p>
      <p>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Fri, 02 Jan 2004 20:53:22 +0900</dc:date>
</item>


<item>
<title>입문 안내</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int&amp;amp;wr_id=2</link>
<description><![CDATA[     <br /><p class="caption_3">입문의 목적</p>
      <p><font color="#669900"><span class="selection">입문의 목적은 순수해야 합니다. 오직 진리를 
        구하기 위해서, 진아를 찾기 위해서, 또는 해탈, 성불을 위해서, 내면의 천국을 발견하기 위해서… 등 순수하고 고상한 목적을 
        가지고 입문해야 합니다. </span></font></p>
      <p class="hight">수행자의 마음가짐이나 사상이 정확하고 올바르지 못하면 수행의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수행이 
        잘 못되어 마에 이끌려 가기 쉽기 때문에 신통을 얻기 위해서,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어떤 법문인지 궁금해서, 남들이 좋다고 
        하니 배워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등등의 순수하지 못한 목적으로 입문을 해서는 안 됩니다.</p>
      <p><br /><span class="caption_3">입문의 조건</span></p>
      <p><font color="#669900" class="selection">입문을 원하는 분은 입문을 신청하는 날부터 완전 채식을 
        해야 합니다. 3개월 동안 완전 채식을 하면서 자신의 신구의를 정화시키고 난 후 입문을 할 수 있습니다. 입문 후에는 평생 완전 
        채식과 오계를 지켜야 합니다. </font></p>
      <p>칭하이 스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p>
      <p>“지금 우리의 지혜안은 우리 자신의 무지와 지난날의 부덕한 행위로 생긴 장애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을 깨끗이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알고 있는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신에게서 나오는 위대한 힘이 필요합니다. 그 마개를 열 
        수만 있다면 그 힘이 넘쳐 나올 것입니다. 마치 탱크에는 물이 가득한데 마개가 막혀 있는 것과 같습니다. </p>
      <p>그래서 원한다면 내가 여러분을 대신해서 그 마개를 열어 주겠습니다. 자기 자신을 정화시키고, 선한 삶을 살며, 자비심 있는 
        식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조건이나 비용도 없습니다. 오늘부터 다시는 남의 살을 취하거나 생명을 해치지 않고, 
        거짓말이나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는 등의 맹세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십계명이나 불교 재가자들의 오계와 같습니다. 오계는 
        살생을 하지 말고, 거짓말을 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훔치지 말고, 술과 마약과 도박을 삼가라는 것입니다.”<span class="caption">&lt;칭하이 
        무상사/ 1989. 5. 28. 미국 산호세&gt;</span></p>
      <p>“채식을 하지 않아도 깨달음을 체험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 늘 행복한 상태를 유지하려면 온전하게 모든 
        생명체의 행복을 지켜 주어야 하며, 여러분 주위에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공포의 기운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더욱 
        완전한 깨달음입니다. 채식하는 것만으로는 깨달을 수 없고 성불을 앞당길 수도 없습니다. 소나 말들도 모두 채식을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채식은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하나의 위대한 길입니다.” </p>
      <p class="caption_3">입문하는 시간은 얼마나 걸립니까? </p>
      <p>두세 시간 걸립니다. 입문은 몇 분밖에 안 걸립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입문 후 매일 명상하고 일상적인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다시 만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어떤 것이든 다 말해 주어야 하지요. 여러분이 나를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또 내가 내일 죽을지도 모르구요. 그러니 실제적인 많은 얘기를 해야 되고 우주의 각기 다른 등급에 
        대해서 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명상할 때 그 등급에 올라가서 어디인지 알 수 있지요. 몇 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앉자마자 바로 집중하기 어려우니 20~40분 정도 편하게 앉아 여러분이 어떻게 느끼는지, 또 어디에 있는지 알게 해줍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p>
      <p><br /><span class="caption_3">명상</span></p>
      <p><font color="#669900" class="selection">관음법문 입문자는 하루 두 시간 반 이상의 명상을 해야 
        하며 도덕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font></p>
      <p>우리가 세상을 살고 있는 동안에는 크든 작든 업장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설령 우리가 채식을 하더라도 거기에는 미세한 업장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일상생활을 하면서 불가피하게 짓게 되는 업장은 매일 두 시간 반의 명상을 함으로써 깨끗이 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관음법문의 큰 장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p>
      <p><br /><span class="caption_3">직업</span></p>
      <p><font color="#669900" class="selection">입문을 원하는 사람이 직접 간접으로 살생과 관련 있는 
        직업을 가졌거나 남의 인과에 개입하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면 우선 그 직업을 바꾼 후 입문 신청을 해주십시오. </font></p>
      <p>입문할 때 스승님은 제자들의 세세생생의 업장을 가져가십니다. 입문한 제자들은 입문 후 이생의 삶에 필요한 정업만을 가지고 새 
        출발을 하면서 하루 두 시간 반의 명상으로 그날그날 지은 업장을 깨끗이 씻게 됩니다. 그렇지만 살생과 유관한 직업이나 다른 사람의 
        인과에 개입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업장은 일반인에 비해 커서 두 시간 반의 명상으로도 다 씻을 수가 없습니다. 이 경우 
        명상 시간을 늘려 자신의 업장을 씻어야 하며, 다 씻지 못하여 날마다 신업이 쌓이게 되면 이로 인해 수행에 큰 장애를 갖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수행의 진보를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p>
      <p><br /><span class="caption_3">종교와 명상 지식</span></p>
      <p>관음법문에 입문하기 위해서 기존의 종교를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명상에 대한 어떠한 지식을 구비하지 않아도 됩니다.</p>
      <p><br /><span class="caption_3">다른 수행법</span></p>
      <p><font color="#669900" class="selection">이전에 호흡 조절법 등 다른 수행법으로 수행하신 분은 
        그 방법을 포기해야 됩니다. </font></p>
      <p>동시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수행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수행에 있어서 바르지 못한 태도입니다. 일단 이 법문으로 수행하기로 
        결정했다면 여기에 여러분의 모든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여러분은 수행에 장애를 일으키지 않고 진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자전거 두 대를 동시에 탈 수 있습니까? 두 대를 동시에 타고 다니면 넘어집니다. 우리는 계율과 규칙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 것은 바로 우리 삶의 장애를 예방하기 위한 것입니다. 변화나 불행, 죄책감 등을 예방하기 위한 거지요. 그래서 
        우리가 명상할 때 이런 것들이 없으면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p>
      <p><br /><span class="caption_3">입문 연령</span></p>
      <p><font color="#669900" class="selection">반 입문: 부모가 입문한 경우(부모 중 한 분만 입문해도 
        가능) 만 6세가 되면 반 입문을 할 수 있습니다. </font></p>
      <p>6세 이하의 어린아이는 너무 어려서 가르침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너무 많은 경지를 보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수행의 
        경지가 나날이 높아져서 나중에 학교에 들어가 속세의 복잡한 상황과 부딪치게 되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게 되지요. 천당에 
        가는 것이 습관이 된 그로선 이 사바세계로 되돌아온 후엔 이 세상이 너무 더럽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학교에 가려고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청중 웃음) 이해하겠어요? 그는 여전히 이 세상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스승이 그를 즉시 위의 높은 경지로 데리고 
        가서 놀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부모가 이미 입문을 한 6세 이상의 어린이에게 반 입문만 시켜 줍니다. 그가 서서히 
        배우도록 하려는 이유에서 말이에요. (칭하이 무상사/ 1988. 3. 5. 포모사 타이베이)</p>
      <p><font color="#669900" class="selection">완전 입문: 부모가 입문한 경우(한쪽 부모도 가능)에는 
        만 12세 이후부터 완전 입문을 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다 입문을 하지 않은 경우는 만 16세 이상부터 만 65세까지 입문을 
        할 수 있습니다. </font></p>
      <p>만 65세 이후에는 입문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나이가 60이나 65세가 넘으면 두뇌 활동이 민첩하지 않기 때문에 스승의 가르침을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또 다른 이유는 채식 때문입니다. 그 나이에 육식에서 갑자기 채식으로 바꾸는 게 불편을 초래할 수도 있고 
        채식하기가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굳이 나이를 구분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미 오랫동안 채식을 했거나, 몸이 건강하여 매일 아침저녁으로 
        철저하게 두 시간 반 동안 명상할 수 있거나 채식을 할 수 있다면 환영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규정일 뿐입니다.</p>
      <p></p>
      <p class="caption_3">입문 신청</p>
      <p><font color="#669900" class="selection">입문 신청은 반드시 해당 지역 명상센터를 찾아가 상담을 
        받으신 후 하십시오.</font></p>
      <p>서울, 부산, 대구, 대전, 인천, 광주, 전주, 안동, 포항, 울산, 춘천 등지의 대도시에 명상센터가 있습니다. 해당 거주 
        지역과 가까운 명상센터를 찾아가 상담을 한 후 신청서를 작성하고 등록하시면 됩니다. 온라인으로는 입문 신청을 받지 않습니다. 
        관음법문에 입문 신청할 때부터 입문하여 수행하게 된 이후에도 회비 같은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무료로 제공됩니다.</p>
      <p><br /><span class="caption_3">방편법 전수</span></p>
      <p><font color="#669900" class="selection">입문을 신청하시면 센터에서 안내자로부터 방편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font></p>
      <p>입문 전 3개월 동안 방편법으로 수행하게 됩니다. 이때 명상 시간이 하루 30분을 초과해서는 안 됩니다. 육신이 아직 정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주 에너지를 너무 많이 받게 되면 육체에 무리가 올 수 있습니다. </p>
      <p><br /><span class="caption_3">신구의 정화</span></p>
      <p><font color="#669900" class="selection">입문 전 3개월은 신구의를 정화하는 기간입니다. </font></p>
      <p>신구의가 잘 정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입문을 하게 되면 수행이 잘 되지 않아 수행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한 해탈과 
        자신의 수행을 위해 신실하게 신구의를 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br />
        채식은 명상센터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완벽하게 지켜야 합니다. 채식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을 이용하거나 명상센터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p>
      <p><br /><span class="caption_3">올바른 수행 개념</span></p>
      <p><font color="#669900" class="selection">입문을 신청한 후부터 입문하기 전까지 가능한 칭하이 
        스승님의 가르침을 숙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font></p>
      <p>스승님의 강연은 주로 영어와 중국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미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온 책과 비디오, 오디오, DVD 등이 아주 
        많습니다. 또한 뉴스잡지(무료 발행)가 꾸준히 발간되고 있으므로 센터에서 구입해 많이 보고 듣는다면 수행 진보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수행 개념을 올바로 정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p>
      <p><br /><span class="caption_3">단체명상</span></p>
      <p><font color="#669900" class="selection">입문하기 전까지 각 지역 명상센터에서 열리는 예비입문자 
        단체명상에 참석할 수 있습니다.<br />
        입문을 원하시는 분들도 이날 모임에서 상담을 받으시고 입문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font></p>
      <p>명상센터에서는 예비입문자들을 위한 단체명상 시간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매주 1회로 대부분 일요일에 편성되어 있는데, 칭하이 
        스승님의 영상 법문을 듣고 30분 동안 명상을 한 후 방편 명상법을 수행하면서 생긴 궁금증이나 채식 혹은 수행에 대한 정보 등을 
        얻을 수 있습니다.<br />
        매주 일요일 예비입문자 단체명상 시간에 꼭 참석하시길 바랍니다. 단체명상의 힘은 매우 커서 수행 진보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p>
      <p><br /><span class="caption_3">내면의 체험</span></p>
      <p><font color="#669900" class="selection">명상 중의 체험이나 내면의 체험에 대해서는 칭하이 스승님 
        이외에 그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됩니다.</font></p>
      <p>입문 신청 후 방편법을 배워 수행을 하다 보면 각자의 근기에 맞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 내면의 체험은 칭하이 스승님 이외에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십시오. 체험을 이야기하면 그 체험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고, 수행의 진보에 장애가 될 것입니다. 
        주의를 어기고 체험을 말한 후 체험을 잃어버린 경우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도와줄 수 없으니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체험에 
        대해 질문이 있을 땐 언제든지 칭하이 스승님께 편지를 보낼 수 있습니다. 편지는 영어로 쓰셔야 하며, 한국어로 된 편지일 경우 
        명상센터에 맡기시면 됩니다. 체험 외에 수행에 대해 궁금한 점들은 명상센터 안내자들에게 물어보실 수 있습니다.</p>
      <p><br /><span class="caption_3">주의</span></p>
      <p><font color="#669900" class="selection">방편법을 배우신 후 절대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font></p>
      <p>주위에서 이 법문으로 수행하기를 원하는 분이 있으면 센터에 와서 등록한 후 배우도록 해주십시오. 이 방편법은 칭하이 스승님의 
        가피가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힘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스승님의 허락을 받지 않은 사람이 임의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친다면, 
        그 수행법은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와 같아서 아무런 힘이 없으므로 가르쳐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p>
      <p> </p>
      <p>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Fri, 02 Jan 2004 20:49:24 +0900</dc:date>
</item>


<item>
<title>입문이란</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int&amp;amp;wr_id=1</link>
<description><![CDATA[<br /><p><b><font color="#FF6600" size="3"><span class="caption_3">입문은</span></font></b>사실 
        입문이 아닙니다. 그냥 세상의 언어로 그렇게 부를 뿐입니다. 그와 같은 입문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 여러분이 이곳에 왔으니 
        내가 여러분 스스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것,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것을 입문이라고 부릅니다. 됐습니까? 그 이외는 어떻게 불러야 
        될지 모르겠네요. </p>
      <p>마치 여러분이 대학에 입학해서 교수가 되기 위해 대학교수에게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등록이라고 불러도 되겠지요. 예. 그 이외에 
        뭐가 있습니까? 여러분은 이 방에 들어와 앉았지요. 그리고 여러분의 위대한 자성을 매일 만나기 위해 오늘과 내일부터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할지 설명을 듣는 것이 바로 입문입니다. </p>
      <p><br /><font color="#FF6600"><b><font size="3" class="caption_3">입문 때</font></b></font> 
        여러분은 기꺼이 거기 앉아서 스승이 여러분을 위해 내면의 문을 열도록 하게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신이 어떤 존재인지, 신의 빛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거지요. 성경에 보면 성인은 신이 큰 불빛과 같거나 신의 목소리는 큰 물소리나 
        큰 천둥소리와 같이 알고 있다고 씌어 있습니다. 그래서 입문 때 여러분은 신을 알고 신의식을 서서히 갖기 위해 이런 것 또는 
        그 이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실 여러분은 오늘 신의식을 가졌지만 한번에 다 이르고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무지했기 때문이지요. </p>
      <p>그래서 우리는 이 경험을 매일 되풀이해야 됩니다. 그리고 완전한 다이아몬드가 되기까지 계속 닦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완전히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입문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러나 그 입문 과정에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저 영혼과 영혼과의 
        대화만이 있을 뿐입니다. 신이 신을 가리키지요. 예. 여러분 내면의 신이 나의 내면의 신을 알아보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끼리 
        어떻게 해야 될지 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우리가 없어야 마음과 인간의 언어로 인해 방해받지 않습니다. 이 일에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입문 때 하는 일입니다. 됐습니까? </p>
      <p></p>
      <p><br /><b><font color="#FF6600" size="3" class="caption_3">입문이란</font></b> 여러분이 
        우리 내면의 신의 왕국, 우리 자신의 위대함과 타고난 지혜를 신실하게 알고자 갈망하는 때를 말합니다. 예, 여러분이 알고 싶다면 
        우리가 준비하겠습니다. 우리는 내면에 그것을 가지고 있지만, 여러분은 그것을 잊고 어떻게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 모르는 것뿐입니다. 
        그 버튼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입문은 내면에서 무형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p>
      <p>그래서 입문을 할 때는 경험 있는 친구, 안내자가 그 버튼을 눌러서 열도록 도와줍니다. 그때부터 여러분은 성인의 대열에 들어가게 
        되며, 자신의 지혜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버튼을 눌러 열리게 되면 어떤 신호가 있게 됩니다. 이를테면 눈부신 빛이 나타난다거나 
        천상의 음악이 들리는 거지요. 그것이 여러분 내면에 있는 신의 왕국이 열렸다는 신호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으므로 
        스승, 선생은 그 어느 것도 주지 않습니다. 단지 여러분이 다시금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 뿐입니다. 그것이 입문입니다. </p>
      <p></p>
      <p><br /><b><font color="#FF6600" size="3" class="caption_3">입문이란</font></b> 사실 
        영혼을 연다는 말일 뿐입니다. 알다시피 우리에겐 유무형의 온갖 장애물들로 꽉 차 있습니다. 그래서 소위 입문이란 지혜의 문을 
        열고 영혼으로 하여금 이 세상으로 흘러 들어가 자아는 말할 것도 없고 세상을 축복하도록 하는 절차일 뿐입니다. 하지만 진아는 
        늘 영광과 지혜안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축복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죠.</p>
      <p><br /><font color="#FF6600"><b><font size="3"><span class="caption_3">입문이란</span></font></b></font><span class="caption_3"><font size="3"></font></span><font size="3"> 
        </font>여러분 자신의 신의 힘과 다시 연결되는 것입니다. 자신과 다시 연결되고, 내면의 신의 힘, 불성과 다시 연결되는 
        것을 말합니다. 신의 힘이나 불성은 같은 겁니다. 예. 마치 전기 기사와 같은 거지요. 전선이 있고 전구가 있어도 불이 켜지진 
        않습니다. 전기 기사가 두 가지를 손보면 불이 켜지게 됩니다. 그렇지요? 그가 전등을 두꺼비집에 연결시키면 빛이 있게 되는 거지요.</p>
      <p><br /><font size="3"><b><font color="#FF6600" class="caption_3">입문이란</font></b></font> 
        지혜를 여는 일종의 무형의 의식(儀式)입니다. 꽃이나 향도 없고 엎드려 절하지도 않으며, 불상이나 교회,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여러분과 여러분 자신의 긍정적이고 본래적인 힘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때 여러분이 혼자 앉아 있으면 나는 여러분에게 긍정과 
        부정을 함께 되찾을 수 있는 방향을 일러 줍니다. </p>
      <p>지금 여러분은 생존을 위해 늘 부정적인 쪽에 기울어 있기 때문에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준비된 자세로 앉아서 다시 
        돌아가고자 원하면 내가 여러분을 다시 끌어올립니다. 하지만 아무런 동작도 취하지 않지요.</p>
      <p>이런 것들은 추상적인 것으로서, 무형의 힘으로 하는 경이로운 일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함이 없이 하지요. 내가 그 
        자리에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이나 주소, 나이, 직업 등을 알 필요가 없으며, 여러분을 알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육체적으로는 말이지요. 내면으로는 압니다. </p>
      <p>그러므로 입문이란 앉아서 자신의 긍정적인 면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은 겁니다. 지금은 균형이 깨져 부정적인 쪽으로만 향해 있지만, 
        이제 되돌아가면 균형이 잡힙니다. 그뿐이에요. 그러면 여러분은 빛을 보고 음률을 통해 천국의 가르침을 받게 되기 때문에 자신이 
        깨달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p>
      <p>그 가르침은 싱가포르 식 영어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중국어로 전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말 없는 말이며 소리 없는 
        소리입니다. 이로 인해 여러분은 더욱 지혜로워지고, 자신이 위대하며 그 집의 주인임을 보다 깨닫게 됩니다. 예, 이것이 입문입니다. 
      </p>
      <p>하지만 어떤 말로도 그것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때 나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내가 거기에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당신은 온 우주와 함께 있을 테니까요. 알겠어요? 그런 방식으로 여러분은 자신을 알게 됩니다. 지금은 이해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모르겠거든 그냥 입문하십시오. 그러면 알게 될 겁니다. </p>
      <p><br /><b><font color="#FF6600" size="3"><span class="caption_3">입문은 내면의 전법(傳法)</span></font></b><br /><span class="caption_2">스승님, 싱가포르에 관음법문 수행에 대해 새 입문자들을 지도해 줄 사람이 있을 건지요?</span></p>
      <p> 예, 내가 여기에 몇몇 출가승을 남겨둘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관음사자들이지만 출가승 같지 않고 나처럼, 여러분들처럼 평범하게 
        보입니다. 수행초보 단계를 알고 있는 수행을 오래한 사람을 남겨둘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나에게 편지를 해도 됩니다. 요즘은 
        팩스도 있지요. 걱정 마세요. 그리고 내면의 연결 관계는 항상 100% 거기에 존재할 것입니다. 절대로 고장 나지 않지요. 그것이 
        최선의 지도입니다. </p>
      <p>나중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내면으로부터 곧 바로 답을 얻을 수 있으며 당신은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승은 당신이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지 또는 당신에게 어떤 훈련이 
        필요한지 다 압니다. 내면으로 알고 내면으로 가르칩니다. 언어로서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p>
      <p>언어라는 것은 단지 평상적인 것이지요. 우리가 서로 재미있게 얘기하고 여러분들이 수행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옛날 얘기를 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완전한 가르침은 오직 내면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입니다. 스승과 제자 두 사람만 알지요. 
      </p><p>내면으로부터 개개인마다 다르게 주어집니다. 서로 옆에 앉아 있다 해도 당신은 그의 단계를 알 수 없으며 또한 스승이 그에게 
        내면으로 무엇을 전했는지 모릅니다. 개개인마다 다 다릅니다. 각자의 등급에 달려 있습니다. <span class="caption">&lt;칭하이 
        무상사/ 1995. 1. 10. 싱가포르&gt;</span> 
      </p><p></p>
      <p><br /><b><font color="#FF6600" size="3" class="caption_3">입문할 때</font></b> 여러분은 
        육신의 귀 없이도 내면의 진동이나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육신의 눈 없이도 하느님의 빛을 볼 것입니다. 나는 이에 대해 설명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언어와 지성은 두뇌와 물질(유한함)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지 영혼과 하느님(무한함)에게 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은 자료와 학습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서 기인합니다. </p>
      <p>그러나 우리의 영혼과 신성은 스스로 태어나 존재하고 유지되며 그 자체로 순수합니다. 따라서 사회나 생각이나 철학이나 언어에 
        영향을 받는 것은 지성에 속하는 것이지 지혜에 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이것을 완전한 침묵 속에서 전합니다. 그래서 이를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합니다. <span class="caption">&lt;칭하이 무상사/ 1990. 8. 13. 미국 
        길로이&gt;</span></p>
      <p></p>
      <p><br /><font size="2"><b><font color="#FF6600" size="3" class="caption_3">입문은</font></b></font> 
        새로운 지위로 새 삶을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스승이 여러분을 성인 단체의 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더 이상 평범한 존재로 남아 있지 않고 매우 고양된 존재가 됩니다. </p>
      <p>마치 대학에 입학하면 더 이상 고등학생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옛날에는 이것을 ‘세례’ 또는 ‘스승에게로의 귀의’라고 했습니다.<span class="caption">&lt;칭하이 
        무상사/ 1992. 3. 3. 싱가포르&gt; </span></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Fri, 02 Jan 2004 20:48:03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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