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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칭하이 무상사 국제협회 &amp;gt; 수행세계 &amp;gt; 당신은 모르실거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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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테스트 버전 0.2 (2004-04-26)</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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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남자의 깊은 애정</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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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p><font color="#006ca7"><img height="200" hspace="0"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gods/img_free/member/135/father_1.jpg" width="573" align="top" border="0" alt="father_1.jpg" /></font></p>
<p><font color="#006ca7"><font color="#896fb5">나는 남자들이 수행하기 쉽지 않다는 걸 압니다. 그들은 더 쉽게 흥분하고 활동적이며 더 경쟁적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감정이 더 많습니다. 모두들 여자들이 더 애정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남자들이 애정이 더 많습니다. 애정이 너무 깊어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font>여자들은 눈물 한 두 방울 흘리고 나면 괜찮아집니다. (웃음) 여자들은 감정을 토로하고 눈물을 흘리며 모든 걸 씻어버립니다. </font></p>
<p><font color="#006ca7">그러나 남자들은 울지 못합니다. 남자들은 아무런 말도 못합니다. 그들은 말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감정을 속에 깊이 묻어둡니다. 아주 깊이 묻어둡니다. 아주 깊이 농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남자들이 더 많은 감각적 욕구를 갖는 것입니다. 그들의 감각적 욕구는 더 강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감정을 내면에 깊숙히 넣어두고 내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거기 쌓여 있습니다. 그곳에는 출구가 없습니다. 그래서 남자들이 수행하기가 더 어려운 것입니다. 어딜 가든 여자 수행자들이 남자 수행자들보다 더 많은 듯한데 그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지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못해서가 아닙니다. </font></p>
<p><font color="#006ca7">남자들은 왜 여자들을 두려워할까요? 그건 남자들의 애정이 너무 깊기 때문이지, 여자들이 위험스럽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쨌든 여자들은 위험하지 않습니다. 나는 여자라서 그걸 압니다. (웃음) 위험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좀 푼수여서 그렇지. (웃음) 내 말은 그들은 하고 싶은 말을 그냥 해버리고 그리고나면 더 이상 문제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남자들이 누군가에게 한을 품으면 훨씬 더 깊고 오래 갑니다. 그러나 여자들은 거의 그렇지 않습니다. </font></p>
<p><font color="#006ca7">우리는 단점을 알고 스스로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건 문제가 안 됩니다. 그걸 안다는 자체가 좋은 겁니다. 앞으로는 울고 싶을 때 울어도 됩니다. (웃음) 그녀를 사랑한다고 누군가에게 말하십시오. 그러면 기분이 더 나아지고 더 편안해질 겁니다. (스승님과 청중 웃음) 정말입니다. 말하고 나면 훨씬 편안해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청중: 예!) </font></p><img height="65" hspace="0"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gods/img_free/member/135/man1.jpg" border="0" alt="man1.jpg" /><p><font color="#00588a">왜 내가 때로 압박감을 심하게 느낄까요? 왜냐하면 어떤 것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면 여러분에게 문제만 줄 뿐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말할 상대가 없습니다. (웃음) 그래서 때로는 압박감이 아주 큽니다. </font></p>
<p><font color="#00588a">그러나 여러분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남자도 역시 인간입니다. '대장부' 인 체 해서는 안 됩니다. "난 울지 않아, 난 울지 않아. 흐흑흑 … !" (웃음) 여러분이 운다고 체면을 잃는 게 아닙니다. 더 편안해집니다. 신은 이런 '시스템' 을 만들어 주어 우리가 내면의 분노를 밖으로 방출하도록 했습니다.</font></p>
<p><font color="#00588a">물탱크에도 구멍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탱크에 물이 가득 차면 저절로 흐르게 됩니다. 싱크대에도 구멍이 있습니다. 물이 가득 차면 바닥에 마개가 닫혀 있어도 옆으로 물이 빠집니다. 어떤 시스템이라도 이와 비슷하게 되어 있습니다. </font></p>
<p><font color="#00588a">그러니 만일 여러분의 마음에 뭔가 있다면 말상대를 찾거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말해버리는 게 좋습니다. 그들이 여러분 말에 동의하든 안하든 상관없이 그냥 말하십시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열렬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그녀가 받아들이리라는 어떤 기대감 없이 그냥 말하십시오. 그녀가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적어도 그녀가 그걸 받아들이는지, 받아들이지 않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걸 마음에 가지고 있으면 더 문제가 됩니다. </font></p>
<p><font color="#00588a">누군가에게 화가 났을 때 우리는 너무 소심해서 말 한마디 못합니다. 그것 또한 문제가 됩니다. 부인에게 화가 났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인에게 말하십시오. 당신이 그녀를 오해할 때도 있고, 그녀가 당신을 오해할 때도 있습니다. 말을 하고 나면 서로가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바로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볼겁니다. "아, 당신이 옳아요!" 그러면 상황은 변합니다. 시도해 보세요. </font></p>
<p><font color="#00588a">대부분 남자들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걸 압니까? 남자들은 자신이 무감각하고 감정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울지도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들이 제일 애정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쉽게 가정을 버리는 배신자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들이 가정을 더 쉽게 떠난다는 뜻인데 그렇지 않습니다! 가족이나 아이들을 두고 도망가는 사람은 대부분 남자들이 아니고 여자들입니다. (스승님 웃음) 통계를 보십시오.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아는 바로는 그렇습니다. 남자들은 책임감이 더 강합니다. 부인을 아주 사랑하지 않아도 여전히 가정을 지킵니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항상 말다툼하고 흥분하고 질투합니다. 여자들의 반응이 더 강합니다.</font></p>
<p><font color="#00588a">남자들의 감정은 더 깊습니다. 대부분 수행을 방해하는 쪽은 남자들입니다. 어떤 여자들은 때로 몰래 도망나와 수행을 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 남편은 아내가 나가는 것조차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독재자라서가 아니라 아내를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남편은 없습니다. 평생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는 드뭅니다. </font></p>
<p><font color="#00588a">때로 남자들은 밖에 나가 다른 여자들을 쳐다보기도 합니다. 확실히 그들은 예쁜 여자들을 보면 그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렇게 쉽게 사랑을 주진 않습니다. 부모를 거스르는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항상 여자들입니다. 남자들은 대부분 부모의 뜻에 순종합니다. 늘 반항하는 쪽은 여자들입니다. (웃음) 그렇지 않습니까? (예!) 그것은 남자들의 감정이 더 안정되고 더 깊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걸 알지만 여자들이 좀 더 가볍게 행동하는 것입니다.</font></p>
<p><font color="#00588a">여러분은 자신을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감정은 유용합니다. 그걸 무시하거나 감출 필요가 없습니다. 감정이 끓어 오를 때 우리의 힘은 대단합니다. 감정은 아주 유용합니다. 그 감정을 수행에 쏟을 수 있다면 아주 좋은 겁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스승들이 남자인 것입니다. 내 운명은 나쁩니다. 어떻게 내가 스승이 될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그건 아마 내가 여자의 품성 뿐 아니라 남자의 품성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font></p>
<p><font color="#00588a">여러분 남자들은 자신을 더 이해하려고 노력해야만 합니다. 이제 여러분의 마음을 잘 알겠습니까? (청중: 예!) 나는 남자는 아니지만 여러분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상하지요! 여러분은 자신을 잘 이해한 적이 있습니까? (남자들: 아주 드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애정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집을 나가는 쪽은 항상 여자들입니다. 여자들은 쉽게 화를 내기도 합니다. (스승님 웃음) 그러나 남자들은 더 신중하고 안정적입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걸 아는데 왜 도망가겠습니까? 그들은 도망가는 게 소용없다고 생각합니다. </font></p>
<p><font color="#00588a">많은 여자들이 가정과 자식을 버리는 걸 나는 봤습니다. 그 남편들은 여전히 자식들을 기릅니다.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그들은 기꺼이 합니다. 우리는 여자들만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랑과 관심, 애정이 있는 한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font></p>
<p><font color="#00588a">동물의 세계를 보세요. 누가 그들에게 새끼를 돌보는 법을 가르칩니까? 우리 인간들은 말로 배울 수도 있습니다. 보육원도 있고 아기를 돌보기 위한 많은 유아용품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임산부들은 분만하기 전에 아기 돌보는 법을 배우러 가기도 합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을 배웁니다. 그러나 동물들에게는 이런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안내 책자를 인쇄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동물들은 새끼들을 잘 돌볼 수 있습니다. 맞지요? (청중: 예) </font></p>
<p><font color="#00588a">원숭이들은 새끼를 팔로 안고 다니고 새끼가 죽은 후에도 그렇게 합니다. 어미는 그 새끼 몸이 부패할 때까지 안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미 원숭이도 감염되어 죽습니다. 새끼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font></p>
<p><font color="#00588a">그러니 여자들만 자식을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왜 여자들이 자식들을 돌볼까요? 그것은 분만 후 자식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스승님 웃음)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이방인, 제 3자로 보고 "우리 둘 밖에 없다" 라고 생각합니다. (스승님 웃음) 그래서 아기가 태어나면 부부 사이에 마찰이나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아내는 아기를 너무나 사랑해서 누가 가장 중요한 사람인지를 잊어버립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자식만 돌보고 남편은 거의 잊어버립니다. 또 다른 이유는 남자들은 보통 일하러 밖에 나가기 때문입니다. </font><font color="#00588a">그들은 아주 자비심이 많아 아내는 아이를 출산한 후 몸이 허약해져 집에서 휴식해야 하며 자신은 밖에 나가 열심히 일을 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font></p>
<p><font color="#00588a">그래서 옛날부터 여자들이 항상 아이들을 돌봐왔던 겁니다. 여자들이 더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점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건 남자들이 자비심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대부분의 스승들이 남자라는 것은 놀랄 만한 일도 아닙니다. </font></p>
<p><font color="#00588a">그러니 여러분 스스로를 경멸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자들의 사랑은 여자들의 사랑과 같지 않습니다. 여자들은 그들의 감정을 쉽게 표현합니다. 끌어 안고, 흐느껴 울고, 통곡하고, 아주 시끄럽게 합니다. 그러나 남자들의 자비심은 안정적이고 보편적이며 평상적입니다. 남자 자신들조차 자신들이 자비심이 많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원래 자비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남자들은 그걸 당연하게 여깁니다. </font></p>
<p><font color="#00588a">우리 수행자들이 자신의 위대함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매일 진보한다는 것만 알 뿐입니다. 그 뿐입니다. 우리는 그것에 익숙해 있습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말하면 그제서야 그들의 수준이 우리보다 아주 낮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때 우리는 수행이 우리를 달라지게 했음을 깨닫습니다. 그 차이점을 안다 해도 우리는 거만하지 않습니다. </font></p>
<p><font color="#00588a">이처럼 남자들의 자비심은 아주 평상적입니다. 그걸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좀처럼 위대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여자들은 약간의 자비심이라도 있으면 과장해서 떠들어대고 나라 전체가 다 알게 합니다. 그들이 좋은 일을 조금만 해도 모든 사람들이 다 압니다. 꼭 나와 같습니다. 나는 전국적으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내가 자비심이 있다는 걸 모든 사람들이 압니다. (스승님 웃음, 청중 박수) 그러나 나라 전체가 다 안다 해도 나 자신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게 다릅니다. </font></p>
<p><img height="65" hspace="0"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gods/img_free/member/135/man2.jpg" border="0" alt="man2.jpg" /></p>
<p><font color="#003a9d">그래서 예로부터 대부분 남자 수행자들이 스승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겁니다. 오늘날 우리의 견해는 좀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에 항상 귀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자신을 희생하며 "내가 나가서 일을 하겠어요. 당신은 집에서 아이들이나 돌보세요." 라고 말하는 여자들은 드뭅니다. 그들은 남편이 자기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여자들은 아직 결혼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이런 기대를 합니다. 결혼한다는 것은 먹여주고 의지할 사람이 생겨서 독립심이 없어지는 겁니다.</font></p>
<p><font color="#003a9d">이것은 그들만의 잘못은 아닙니다. 아마도 사고방식이 그렇고, 천성적으로 몸이 약해 좀 더 겁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여자는 남자에게 의존해야 된다고 생각하도록 키워졌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그건 여자들만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렇게 만든 것은 세상의 전반적인 체제입니다. </font></p>
<p><font color="#003a9d">사실 여자들은 그런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런 것에 익숙해 있어서 생각이 약간 좁은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희생하는 경우는 보기가 드뭅니다. "내가 나가서 일을 하고 남편은 집에서 아이들하고 놀게 해야지. 그러면 그들은 더 행복하겠지." 이런 생각을 가진 여자들은 아주 드뭅니다. 아이들하고 노는 것은 피곤하기도 하지만 아주 편안하기도 합니다. </font></p>
<p><font color="#003a9d">그래서 우리 여자들은 아이들을 돌보니까 아주 힘들고 남자들은 나가서 일하니까 매우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들은 나가서 정말 열심히 일합니다. 그들은 상사의 성질이나 일의 부담감, 동료들의 질투심, 그런 것들을 참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여자들은 아이들을 돌보면서 집에 있습니다. 그건 아주 편안합니다. 아이들은 아주 사랑스럽기 때문이지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여러분은 너무도 편안하게 느낍니다. 아기들은 신에 가장 가까운 존재들입니다. 그들의 눈은 해맑고, 얼굴은 순진하고, 피부는 부드럽고, 손은 아주 통통하고 예쁩니다. 아이들이 움직이는 모습은 모두 다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기들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집에서 아기들을 돌보면서 희생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아기를 돌보는 일은 보람있고 만족스러운 직업입니다.</font></p>
<p><font color="#003a9d">아이들을 떼어 놓고 오랫동안 밖에 나가 볼일을 보는 여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 관음법문 수행자들만 예외입니다. 선칠하러 한두 주 나가 있는 관음법문 수행자들은 예외입니다. 그러나 이들도 더 오래 지속되면 아이들이 보고 싶어 참지 못합니다. 아이들을 돌보는 데 익숙해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들에게 아이들을 돌보라고 한다면 그들도 그처럼 집착할 겁니다. 그들도 그 직업을 좋아하게 될 겁니다.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font></p>
<p><font color="#003a9d"><font color="#0060ff">그래서 나는 남자들이 더 사랑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랑은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이지 끌어안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font>남자의 사랑은 다릅니다. 남자는 사랑하는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려고 희생합니다. 그는 자신의 옷은 별로 없어도 아내에게 돈을 몽땅 다 줍니다. 그러면 그녀는 화장품, 하이힐, 최신 유행옷 수백 벌을 삽니다. 그는 아내가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서 행복해 합니다. 그는 부인이 만족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자랑스러워 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입니다. </font></p>
<p><font color="#003a9d">오늘 나는 그 차이점을 알았습니다. 이상하지요! 내가 어떻게 이런 일들을 분석할 수 있었을까요? (스승님과 청중 웃음) 나는 남자가 아닙니다. (박수) 아마 내가 연구를 했기 때문이겠지요. 내면으로 말입니다. 때로 내가 몇몇 남자들 가까이 있는 것은 그들의 행동과 마음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고 연구하기 위해서지요. 그래야 내가 여러분 남자들을 잘 돌볼 수 있을 테니까요. 여자들만 항상 돌봐줄 수는 없지요. 그들은 스스로 충분하여 내가 돌봐줄 필요가 없습니다. </font><font color="#003a9d">그들은 내가 여자라서 행복합니다. "아, 스승님은 여자다!" 그들은 아주 행복해 하며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그래서 더 이상 말로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남자들에게는 좀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석가모니불 당시에 그가 어떻게 남자 제자들을 돌보았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는 아주 엄격했습니다. 나는 여자라서 여러분들을 좀 소홀히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난 연구를 좀 더 열심히 했지요. 좀 더 열심히 하니까 해답이 떠올랐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거지요. </font><font color="#003a9d">그래서 나는 오늘 뭔가를 깨달았습니다. 여러분을 보자마자 자연스럽게 그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나의 말은 의도적이거나 연구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안배된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청중:예, 알겠습니다) </font></p>
<p><font color="#0060ff">여러분의 사랑은 보살의 사랑에 아주 가깝습니다. 희생 정신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여러분은 그들이 행복한 걸 보고 싶어합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행복해 한다면 무엇이든 합니다. 그건 여러분이 이기적이지 않고 이타적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행복하면 여러분도 행복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이타(利他)'를 나타내는 겁니다. </font></p>
<p><font color="#003a9d">여러분이 수행할 때 더 좋은 결과를 갖는다는 게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스승들이 남자라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상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사회적 배경이 남자 수행자들에게 도움이 되지만 여러분의 사랑 또한 아주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font></p>
<p><font color="#003a9d">대부분 남자들은 밖에 나가 일해서 가족들을 부양합니다. 그들은 결혼하기 전에도 부모, 가족, 여동생들을 돌봐야 합니다. 희생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바로 남자들입니다.</font></p>
<p><img height="65" hspace="0"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gods/img_free/member/135/man3.jpg" border="0" alt="man3.jpg" /><br /></p>
<p><font color="#7051a6">그 외에도 나라가 혼란할 때 남자들은 전쟁에 나가야 합니다. 그들은 어쩌면 자신이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알면서도 나갑니다. 그들은 나라를 위해 부인과 가족과 부모들을 남겨두고 떠납니다. 때론 강제로 그렇게 할 때도 있지만 기꺼이 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이 운명이라 해도 남자들이 희생 정신이 있음을 뜻합니다. 그들의 사랑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며 본래 있었던 것입니다. 왜 대부분 남자들이 자신의 덕을 알아채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font></p>
<p><font color="#7051a6">소수의 남자들만이 수행을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건 아마 그들이 책임감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들은 일하고 가족을 돕고 부모와 여동생들을 돌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가장 중요한 일을 잊습니다. </font><font color="#ab5300">우리가 부모와 여동생들에게 수십 억, 수천 억원 혹은 재산을 준다 해도 하루 수행하는 것만 못합니다. 아니 단 한시간, 단 일분 수행하는 것만 못합니다. 하루는 너무 많습니다! </font></p>
<p><font color="#7051a6">물론 가능하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편안한 삶을 제공해야 합니다. 부모나 여동생을 돌볼 사람이 없다면 우리가 돌봐야 합니다. 의무를 다 해야 합니다. 만일 누군가 대신 그 일을 할 수 있다면 우리가 그렇게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영혼을 돌보는 게 더 낫습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면 그들은 더 많은 이로움을 얻습니다. 우리의 공덕으로 그들의 물질적인 삶조차도 창조주가 돌봐줍니다. </font></p>
<p><font color="#7051a6">"도(道)를 얻으면 9대가 천도된다" 고 말합니다. 옛날 사람들이 하는 말은 모두 그들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지혜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다 똑같은 말을 하겠습니까? 중국에서도 한 사람이 도를 얻으면 9대가 천도된다고 말합니다. 어울락과 인도에도 똑같은 말이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5대가 천도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대충 5대라고 말합니다. 5대나 9대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font></p>
<p><img height="65" hspace="0"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gods/img_free/member/135/man4.jpg" border="0" alt="man4.jpg" /></p>
<p><font color="#246169">그건 어느 곳에나 수행자들은 있었으며 그들이 얻은 지혜는 거의 같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들 모두가 똑같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이들은 같은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위대한 지혜를 가진 사람들은 서로 같은 것을 말합니다. 성경의 산상설교 부분을 읽어보면 불경에서 '보살도' 에 관해 말한 내용과 아주 흡사하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반야심경도 확인해 보면 아주 똑같습니다.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font></p>
<p><font color="#246169">석가모니가 예수와 약속한 것이 아닙니다. (웃음) 그들이 모두 같은 걸 말하자고 약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서로를 모릅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시대에 다른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공자, 노자, 소크라테스 혹은 그밖의 다른 나라 스승들을 좋아합니다. 그들 모두가 비슷한 것을 말했습니다. 이상하지요! 내가 여러분에게 말할 때도 어느 경전에서 따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후에 나는 경전을 읽다가 발견하지요. "아! 경전에서 말한 거하고 똑같구나!" (박수) 내가 여러분에게 가르치는 대부분은 내면에서 나온 것입니다. 오늘처럼 내가 여러분에게 남자들의 애정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처음입니다. 이 세상에서 처음이지요. (박수) 그렇지 않습니까? (청중: 예) 나 역시 그런 것에 대해서 처음 듣습니다. (웃음) 나는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전에 그런 것에 대해 말해 본 적도 없습니다. 오늘 나는 여러분에게 말하면서 그것에 대해 잠시 생각해 봤을 뿐입니다. 이건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런 걸 전에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여자들이 더 사랑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습니다. </font></p>
<p><font color="#246169">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자들이 나쁘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우리 인간들이 쉽게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아주 깊습니다. 특히 남자들의 사랑은 아주 깊습니다! 첫눈에 한 여자에게 자신을 완전히 주기가 그리 쉽겠습니까? 그래서 사랑을 아주 조금 떼어 줍니다. (웃음) 상대방이 우리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느끼면 그만둡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 전부를 줄 수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려고 다른 사람을 찾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여전히 힘든 일입니다.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찾으러 나섭니다. 그건 우리의 사랑이 항상 변해서가 아니라 완전히 믿을 수 있고 우리의 깊고 한결 같은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못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청중:예! 박수)</font></p>
<p><font color="#246169">이상적인 상대를 찾는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어느 땐 누군가 괜찮아 보여도 서로 잠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짐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로 대화를 나누고 난 후에도 분명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 감정을 표현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뭔가 오해를 합니다. </font></p>
<p><font color="#246169">예를 들면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묻습니다. "빨간 옷을 좋아해요?" 그러면 그녀는 빨간색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말을 중단합니다. 사실 여러분은 그녀가 빨간색 옷을 입으면 좋겠다고 말해야 합니다. (스승님 웃음, 청중 박수) 그러나 여러분은 그 말을 분명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녀에게 빨간 옷을 좋아하는지 않는지 그냥 물어 봅니다. 물론 그녀가 싫다고 말하면 "아, 그녀는 빨간색 옷을 싫어하는구나" 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강요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쌍방이 너무 예의가 바릅니다. (웃음) 이런 작은 일로 불행해지는 거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나가서 빨간색 옷을 입은 여자를 찾습니다. 그건 아주 바보스런 일이지요! 우리는 원하는 걸 말해야 합니다. 그들이 그걸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상관없습니다. 일단 말하고 상의는 나중에 하십시오. 이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겠습니까? (청중: 예) </font></p>
<p><font color="#246169">그러나 가족이 화목하지 못하면 그것 또한 남자 탓입니다. 여러분이 모든 걸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하려고 하지 않고 애정과 결혼을 지키려고 열심히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은 저절로 나아지리라고 생각합니다. 확신이 지나쳐서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아내를 사랑하고 있다" 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알거야. 분명히 알거야" 라고 생각하지만 아내가 어떻게 그걸 알겠습니까? </font></p>
<p><font color="#246169">여자들은 비교적 마음을 놓지 못합니다. 그점을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그걸 백번 말한다 해도 그녀는 그걸 알아듣지 못합니다. (웃음) 아내가 여러분을 잘 대해 주지 않는 것도 여러분의 잘못입니다. 여러분은 여자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불평합니다. 그녀가 당신에게 바라는 것은 당신이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것 뿐입니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걸 표현할 수 있다면 그녀는 안도할 것입니다. 다른 어떤 것도 필요없습니다.</font></p>
<p><img height="65" hspace="0"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gods/img_free/member/135/man5.jpg" border="0" alt="man5.jpg" /><br /><font color="#457700">내가 왜 이런 일, 결혼과 애정에 관해서 이야기할까요? 어떤 사람은 나의 임무 밖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결혼생활이 불행하면 다른 사람과 잘 지낼 수도 없고 삼매에 들 수도 없습니다. 모든 게 고통스럽고 엉망입니다. 여러분은 이로 인해 오불을 외울 수도 삼매에 빠질 수도 없게 됩니다. (웃음, 예!) </font></p>
<p><font color="#457700">그때는 부인이 스승보다 더 중요합니다. (웃음) 나는 그런 일로 여러분을 탓하진 않습니다. 사실이니까요. 그 순간에 여러분은 삼매조차도 내던져 버립니다. (웃음) 여러분은 이렇게 말하겠지요. "나는 이런 건 상관없어! 난 이런 것에 관심없어! 난 그런 걸 원치않아!" 여러분이 원한다 해도 여러분은 기분이 나쁘기 때문에 어쨌든 삼매에 들 수 없습니다. </font></p>
<p><font color="#457700">난 이런 모든 것들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을 가르칠 수 있을테니까요. 나는 이미 그걸 다 배웠습니다. 그건 피하기도 어렵고 조절하기도 힘듭니다. 물론 우리 수행자들에게는 수행을 많이 하면 할수록 애정을 다루기가 더욱 수월해집니다. 그러나 인간의 애정 때문에 여전히 영향받고 고통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소위 세속적인 일을 여러분에게 말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속의 일과 수행에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font></p>
<p><font color="#457700">누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든 기분이 좋으면 우리는 열반의 세계에 있고 극락에 있는 겁니다. 우리가 행복할 때는 누구든지 사랑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고, 무엇이든 기꺼이 줍니다. 우리가 기분이 나쁠 때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어떤 책임도 지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걸 원한다 해도 방법이 없습니다. 전혀 할 기분이 나지 않습니다. 온 세상과 모든 것을 다 내던져 버릴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법(佛法)도 세간법(世間法)을 떠나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그걸 경험해 봤지요. </font></p>
<p><font color="#457700"></font></p>]]></description>
<dc:creator>김은정</dc:creator>
<dc:date>Tue, 31 Oct 2006 21:06:58 +0900</dc:date>
</item>


<item>
<title>보시의 숭고한 의도</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93</link>
<description><![CDATA[<p><img height="188" hspace="0"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gods/img_free/member/135/rose.jpg" width="580" align="top" border="0" alt="rose.jpg" /></p>
<p>여러분의 행동이 스승의 행동과 아주 비슷하게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을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행할 때만이 우리는 모든 일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때조차도 어떠한 공덕이 있는 것이 아닌데 하물며 자신의 에고와 잘못된 관념을 만족시키려고 그들을 이용하는 때에는 말할 것조차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공덕은 커녕 나쁜 업장만 초래할 뿐입니다. </p>
<p>사업이 크게 번창하고 있는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왔기에 그의 사업이 날로 번창했던 것이었습니다. 아주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에 그는 스승에게 감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스승님, 저는 많은 돈을 벌었는데 어떻게 돈을 써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스승님께서 좋은 방안을 알려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하고 그가 물었습니다. </p>
<p>스승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집에 가라고만 했습니다. 다음번에 왔을 때도 똑같은 질문을 했지만 역시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습니다. 세번째에 그는 "제발 무슨 말씀이라도 해주세요. 스승님! 무슨 말씀이든지 그대로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p>
<p>그의 스승은 벽을 향해 세 번 한숨을 쉬고나서 그에게 말했습니다. "네게 어떻게 하라고 말해야 될지 모르겠구나. 절이나 교회에 보시하라고 한다면 욕심쟁이 성직자를 먹여 살리라고 하는 것이 될 것이고, 너의 친척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라고 한다면 너의 영적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인즉, 너에게 해가 되는 일이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쓰라고 한다면 너의 에고가 커질 것이다. 자기 자신이 위대하다고 생각할터이니 전혀 너에게는 좋을 것이 없단다. 그래도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제일 좋겠구나. 왜냐하면 적어도 그들에게는 도움이 될테니까. (스승님과 모두 웃음) 비록 너에게는 이익이 없겠지만 그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p>
<p>알겠습니까?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것이 우리에게는 좋은 것이 아닙니다. 내 말을 이해하겠어요? <br /><font color="#3e00a7">우리가 자선행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숭고한 의도로 보시하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남에게 줄 때마다 그들을 항상 조금이라도 보답받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그들이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들 자신이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어떠한 보답도 받기 전에 오만이라는 악마가 쳐놓은 함정에 빠져버립니다. 따라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font></p>
<p>나 자신도 사람들을 도울 때 나의 에고가 커지는 것이나 아닌지 두렵습니다. (모두 웃음) 그러나 나는 스스로에게 이르기를 "괜찮아, 내가 나 자신에게 조금의 해를 주기로서니 무슨 상관이냐. 불쌍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은 일이 아닌가!"라고 합니다. 따라서 나는 나의 에고가 커지거나 말거나 크게 상관하지 않습니다. 나 자신을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닌지 업을 짓는 것인지 아닌지 신경쓰지 않습니다. </p>
<p>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과가 다를 것입니다. 나는 공덕을 쌓기 위해 보시하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모두들 "예"라고 대답) 내가 여러분을 속인 적이 있습니까? (모두들 "아니오"라고 대답) </p>
<p>나는 이따금 보시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요며칠 동안에는 외국인들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이런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이 부처님께 동전 두 닢을 드렸습니다. 그로 인해 세세생생 61겁 동안 그는 항상 부자였습니다. 그가 손을 펼칠 때마다 두 개의 금화가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61겁 동안 부유한 생활을 즐겼습니다. </p>
<p>내가 이따금 밖에 나가면 노점상인들이 양배추를 나에게 줄려고 하는데 나는 감히 그것들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스승님과 모두 웃음) 나는 그들이 미래의 61겁 동안 항상 양손에 두 개의 양배추를 들고 태어나고 야채 파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됩니다. 따라서 나는 감히 받을 수가 없습니다. 전에 이따금 일요일에 시후센타를 나서면 노점상인들이 길가에서 야채 파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들을 볼 때마다 야채 중의 어떤 것은 아주 보기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스승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스승님! 제발 받아주세요!"하고 졸라댔습니다. </p>
<p align="left">나는 그들에게 축복으로 보답하기 위해 그들의 선의를 받아들였지만 나는 항상 돈을 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양쪽 모두 두 개의 양배추나 당근을 손에 들고 태어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스승님과 모두 웃음) 아니면 야채를 먹는 일을 결코 끝낼 수 없을 것입니다. 비록 야채를 파는 직업을 갖게 된다해도 61겁 동안이나 그 일을 계속해야 된다는 것은 참으로 지루한 일일 것입니다. </p>
<p>한 거지가 부처에게 한 벌의 누더기 옷을 공양했습니다. 그 결과로 그는 항상 턱 아래에 한 개의 내프킨을 두른 채로 태어났습니다. 나는 열 개의 내프킨을 두른다 해도 그것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모두 웃음) 여러분은 한 개가 아니라 만 개의 내프킨을 준다해도 다음 생에서 다시 미망의 세계에 태어나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그렇치 않습니까?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업이라는 것은 때때로 아주 재미있기도 합니다. </p>
<p align="right"><font color="#0056e6">- 뉴스잡지 59호에서 -</font></p>]]></description>
<dc:creator>김은정</dc:creator>
<dc:date>Sat, 22 Apr 2006 05:12:44 +0900</dc:date>
</item>


<item>
<title>높은 세계에서 온 예술가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92</link>
<description><![CDATA[<p><span style="color:rgb(15,48,103);">                      예술 역시 신성의 표현입니다. 아름답고, 덕스럽고, 진실된 모든 것이<br />                      신성의 표현이지요.</span></p>
<p><span style="color:rgb(15,48,103);">                      우리는 자신을 위한 시간, 생각할 시간, 다시 자신이 되고 자신 안에 존재하고 내면의 품성을 개발시키고 내면의 품성을 기억할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예술가처럼 매우 여유롭고 사랑이 많고 압박에서 자유로운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베풀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즐거움을 모른다면, 당연히 즐거움을 줄 수 없겠지요. 또 여러분이 평화를 지니고 있지 않다면, 평화를 나눌 수도 없을 것입니다. </span></p>
<p><span style="color:rgb(15,48,103);">이 세상에서 생존하려면 부단히 애를 써야 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자신을 위해 생각하는 한가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많은 예술적인 사람들, 예술가들이 물질적인 생존 본능 속에 파묻혀 버리고 맙니다. 그것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진정한 예술가들이 희생해야 하는 겁니다. <span style="color:rgb(15,48,103);">행운아였던 피카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가난합니다. 그들 대부분이 죽는 날까지 가난 속에서 살지요. 그들은 죽은 다음에야 유명해지고 그들의 작품으로 다른 사람들이 떼돈을 법니다. 그때서야 그들 작품의 진가가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span></span>
</p><p><span style="color:rgb(15,48,103);"><span style="color:rgb(15,48,103);">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 예술가들이 부자가 되었거나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었다면,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킬 영감을 얻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 위대한 창작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는 것이지요. 영감을 얻기 위해 아주 궁핍한 가운데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그림들이 암울합니다. 일종의 우울한 색채를 띠고 있지요. 그건 그 당시 화가의 감정을 반영하는 겁니다.</span> 
</span></p><p><span style="color:rgb(15,48,103);">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할 때보다는 비참한 상황에 놓여있을 때 더 많은 영감을 얻습니다. 여러분들도 행복할 때는 시를 쓴다거나 장시간에 걸쳐 그림을<br />그리기가 어렵지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즐거울 때는 그림을 그릴<br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오직 시간은 많은데 아무 할 일이 없다든지 여자 <br />친구나 남자 친구가 떠나버린 것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비로소 뭔가를 하고<br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대부분 이런 상황에서 훌륭한 노래나 시나 <br />그림 등이 탄생합니다. 아무튼 가련한 일이지요.</span> 
</p><p><span style="color:rgb(19,62,137);"><span style="color:rgb(15,48,103);">그러나 고등의 사회에서는 위대한 창작을 위해 이런 온갖 불행을 겪을 필요가 없습니다. <br />왜냐하면 그들은 많은 시간을 행복하게 지내며 명상에 잠길 수 있기 때문이지요</span>. </span></p>
<p align="right"><span style="color:rgb(0,58,157);">- 뉴스잡지 100호 -</span></p><br />]]></description>
<dc:creator>미디어팀</dc:creator>
<dc:date>Sat, 18 Feb 2006 11:21:51 +0900</dc:date>
</item>


<item>
<title>신통력은 자기를 속이는 환상을 만든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91</link>
<description><![CDATA[<p>신통의 세계는 환상의 세계입니다. 여러분이 신통력이 있으면 한동안 지속될 환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만일 커다란 신통력이 있으면 오랫동안 지속될 환상을 만들어 아주 아주 긴 세월 동안 연극을 할 수 있습니다. 60년이나 100년이나 몇 백 년이 될 수도 있고 때로 수천, 수억, 수조 년이 되기도 합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환상입니다.</p>
<p align="center"><font size="2"><font color="#2626c2"><strong><img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img/es-b.gif" alt="es-b.gif" />세상은 미로이다</strong> </font></font></p>
<p>이 세상은 위대한 신통력을 지닌 어떤 사람이 만들었으며 우리는 그 속에 매혹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이 관음법문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이 세상에서 나오는 문을 팝니다. 문이 단 하나 뿐인데 아주 작아서 뚫고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길잡이를 따라가면 위험에 처하지 않고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미로는 함정과 위험하고 유혹적인 속임수와 쓰레기로 가득차 있어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마치 미로와 같이 더 많이 들어갈수록 더욱 혼란에 빠지며 흐르는 모래와 같아서 움직일수록 더 깊이 빠집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상황입니다. </p>
<p><img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img/battle.jpg" align="right" alt="battle.jpg" />부처보다는 약간 못하지만 이렇게 위대한 신통력을 소유한 사람은 마야입니다. 그는 자비심이 없어서 이 세상을 가지고 놀려고 만들었습니다. 우리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속에 빨려 들어가거나 그냥 지나치려다가 그 마야의 꼬임에 빠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냥 걸어나올 수 없습니다. </p>
<p>원래 우리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점점 나빠지게 되었습니다. 나쁜 일을 하면 당연히 일이 더 악화되고 좋은 일을 해도 나쁘게 됩니다. 그건 우리가 스스로 이 미로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얻은 공덕도 모두 극장 안에 있는 것으로 외부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되어 있습니다. </p>
<p>미로 속에서 무슨 좋은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거대한 궁전을 짓고 어떤 사람이나 동물을 구한다 하더라도 그건 모두 환상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그 미로에서 그냥 걸어나올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것은 모두 소용없고 무엇을 하든 공덕이 되지 않습니다. </p>
<p align="center"><strong><font color="#2626c2" size="2"><img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img/es-b.gif" alt="es-b.gif" /> 깨달은 스승은 신통을 쓰지 않는다</font></strong></p>
<p>옛날 양무제가 많은 절을 지은 다음 달마대사에게 가서 자신의 공덕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습니다. 그때 달마대사는 "없다!"고 말했지요. 양무제는 어리석은 사람이어서 화를 냈습니다. 달마대사는 진실을 말했지만 그 진실된 말이 황제의 귀에는 거슬렸던 것입니다. 양무제는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달마대사를 내쫓았습니다. </p>
<p>그후 양무제는 지혜가 뛰어난 사람으로부터 달마대사는 위대하고 진짜 깨달은 스승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이 한 행동을 뉘우치고 달마대사를 다시 초청하려고 했지만 달마대사가 거절했습니다!</p>
<p><img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img/dharma.jpg" align="right" alt="dharma.jpg" />대부분의 스승들은 우리를 무시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면 따르는 것이고 원하지 않으면 그 역시 귀찮은 일이 없는 겁니다. 잃을 것이 없습니다. 그는 중생들을 가르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 그가 스스로 문제를 일으켜야 합니까? </p>
<p>그는 우리를 쫓아다니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쫓아다녀야만 합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해도 그는 그냥 내버려두고 아무 상관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다음 사람을 위해 기회를 남겨두거나 우리 스스로 지치게 내버려둡니다. 세세생생 천 년이나 이천 년 후 아니면 이만 년 후가 지난 뒤에 그때 우리는 스스로 찾고 올라가려 할 것입니다. </p>
<p>그래서 그는 걱정하지도 않고 신경쓰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미로속에 있기 때문에 공덕을 쌓을 수 없다고 우리 일에 끼어들어 귀찮게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공덕을 쌓던 미로에 있던 그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p>
<p>그건 스승이 거만해서라 아니라 단지 그의 생각이 우리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스승은 매우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그는 편안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그를 구속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스승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언제나 빌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스스로 갇혀 있습니다! 우리가 밖에 있는 사람에게 구해달라고 빌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가 우리를 구해달라고 우리에게 빌 수가 있습니까? 생과 사는 우리 일입니다. 스승은 이미 해탈했습니다! </p>
<p align="center"><font size="2"><font color="#2626c2"><strong><img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img/es-b.gif" alt="es-b.gif" />신통력을 배우는 것은 진리를 깨닫는 걸 지연시킨다</strong> </font></font></p>
<p>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신통력을 배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통력은 우리 인생을 바꿀 수는 있지만 단지 우리의 인생만을 바꿀 뿐 온 세상의 계획을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p>
<p>마치 우리가 지치고 병들었을 때 약을 먹고 누워있으면 마취가 되어서 아픔을 느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몸이 아름다워졌다고 상상합니다! 우리는 여왕이 되고, 미스 유니버스 같이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깨어나면 모든 것이 그대로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p>
<p>온 세상이 우리의 상상력 때문에 변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우리의 환상이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얼마나 속일 수 있겠습니까? 이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상상력을 지니고 있고, 우리의 신통력이 얼마나 위대한지에 달려 있습니다. 사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5년 동안 왕이 되어 많은 일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걸 상상합니다. 하지만 5년 후에 깨어나면 자신이 여전히 거지로 그 곳에 앉아 있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p>
<p>환상이 깨질 때는 모든 게 그대로 입니다. 온 세상은 변하지 않는데 마치 꿈을 꾸듯 우리만이 환상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낸 것입니다. 신통력을 쓰는 것은 자기를 속이는 일로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p>
<p>시간이 되어 환상이 깨지면 예전보다 더 나빠집니다. 왜냐하면 그 소중한 시간을 진리를 구하는데 쓰지 않고 환상을 쫓는 데 써 버렸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대해 명상하고 본성을 알기 위해 그 시간을 쓰지 않고 환상의 세계에서 사느라고 몇 날, 몇 주, 몇 달이나 몇 년을 잃어버렸기에 결국은 더 많은 걸 잃는 것입니다. 그런 도중에 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아무것도 남는 게 없습니다! 신통력은 천국과 지옥을 바꿀 수 없으니 그것이 문제입니다. </p>
<p></p>
<p align="center"><strong><font color="#2626c2" size="2"><img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img/es-b.gif" alt="es-b.gif" /> 헛된 신통력</font></strong></p>
<p>신통력으로는 인과를 바꾸지 못합니다. 다만 우리를 속이고 이 환상의 세계에서 우리를 한동안 살게 할 수는 있지만 그건 쓸모없는 것입니다. 신통력이 만들어낸 세계에서 여러분은 모든 것을 가진 부유한 사람이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웃들 또한 바뀌었다고 생각하지요! 그들은 여러분과 거래하고 장사하려고 여러분을 존경하지만 그것 또한 환상의 일부입니다. 실제로 이웃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p>
<p>우리는 스스로 극장을 만들어 그 속에서 연극을 합니다. 진짜 사람은 그 곳에 없습니다. 연극하는 사람들은 진짜 사람이 아니고 환상일 뿐입니다. 우리가 꿈을 꾸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걸 할 수 있지만 깨어나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신통력은 꿈을 꾸는 것과 같은데 아마 그 시간이 좀 길지도 모릅니다.</p>
<p><img src="http://www.godsdirectcontact.or.kr/img/enlight.jpg" align="right" alt="enlight.jpg" />신통력은 우리의 인과, 공덕이나 삶을 바꿀 수 없으므로 신통력을 배우는 것은 헛된 것입니다. 자신을 속일수록 문제만 더 생깁니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우리는 잘못된 길로 가고 잘못된 개념을 가지게 됩니다. 진리의 장소는 말할 것도 없이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p>
<p>예컨데 우리가 원래 여기 원점에 있었다고 합시다. 만일 오른쪽으로 가면 진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헌데 오른쪽으로 가지 않을 뿐 아니라 환상을 쫓느라고 왼쪽으로 간다면 더욱 더 멀어지게 됩니다. 나중에 우리가 진리를 찾으려고 할 때는 먼저 원점으로 되돌아가서 거기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오른쪽 길을 찾을 수 있을지 확실치는 않지만요. 우리는 많은 시간을 낭비합니다. 도중에 죽으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겁니다. 원점에서, 진리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을 뿐입니다. </p>
<p align="right"><font color="#0056e6">- 뉴스잡지 56호 -<br /></font></p>]]></description>
<dc:creator>God’s grace</dc:creator>
<dc:date>Mon, 07 Nov 2005 18:13:55 +0900</dc:date>
</item>


<item>
<title>사성문(四聲聞)의 과위</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90</link>
<description><![CDATA[<br /><p> <strong><font color="#0060ff">'수다원(須陀洹)'</font></strong>, 그는 방편법으로 수행하여 마침내 생사윤회에서 벗어난 사람입니다. 아마도 방편법으로 수행하는 동안 부처가 그를 축복해 주고 가끔 음류를 듣도록 해주어 소위 <font color="#0060ff">'입류(入流)' </font>의 과위로, 음류의 세계로 들어온 사람입니다.</p>
<p>그러나 그 당시 대부분의 스승들은 사람들을 결코 일세에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일곱 생을 되돌아와야 했고 그런 후에야 해탈되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스승을 만나고 그의 제자가 되어 관음법문을 수행한 후에야 해탈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수다원(須陀洹)’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입니다. </p>
<p>어떤 사람들은 4번의 생을 거친 후에야 깨달은 스승인 부처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스승의 가르침을 접하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스승을 따르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다음 해에도 또 그 다음 해에도 그런 식으로 미루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그들의 아이들이 성장해서 스승을 따르게 되지요. </p>

<p>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오! 당신은 굉장해요.” 혹은 “당신은 정말로 근사합니다. 아주 좋아요. 당신의 모든 말씀은 진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결혼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스승님 웃음) “저의 아들은 아직 다 자라지 않았고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결혼할 때 저는 포도주를 마셔야 하고 고기도 먹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당신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후에는 다른 딸이 결혼하고 그 딸이 아들을 낳습니다. “나는 손자들을 돌봐야 하고 등등….” 그 사람은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61겁 후에나 보게 되겠죠. (스승님 웃음)</p>
<p><img src="http://godsdirectcontact.or.kr/img/way_tao.jpg" align="right" alt="way_tao.jpg" /> 스승을 따르는 어떤 사람들을<font color="#0060ff"> <strong>‘사다함(斯陀含)'</strong></font> , 즉 <font color="#2d7cff">'한 번 오는 사람' </font>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이 세상에 한 번 더 온 후에 해탈합니다. </p>
<p>그리고 또 <font color="#0060ff"><strong>‘아나함(阿那含)</strong>' ,</font> 즉 <font color="#0060ff">'다시</font><font color="#0060ff"> 오지 않는 사람’</font> 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금생에 해탈합니다. 이들은 부지런히 관음법문을 수행하며 해탈을 갈망하는 사람들입니다.</p>
<p>어떤 아나함들은<font color="#0060ff"> '<strong>아라한(阿羅漢)'</strong></font>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라한은 더욱 더 높은 경지입니다. 아라한은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고 축복을 나누어 줄 수도 있습니다. </p>
<p class="caption" align="right">- 뉴스잡지 59호에서-</p>]]></description>
<dc:creator>김은정</dc:creator>
<dc:date>Mon, 17 Oct 2005 01:16:57 +0900</dc:date>
</item>


<item>
<title>고양된 영혼</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89</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p>
      <p> 스승님께서 아시아 순회강연에서 돌아오신 뒤 어느 날 오후, 보석정 앞에서 관음사자와 제자들과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셨다. 그 말씀 중에 어울락 난민들이 사실은 영적으로 대단히 고양된 영혼들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아울러 스승님은 ‘월남’이라는 말 대신 ‘어울락’이라는 
        이름을 쓰셨는데, 그것은 당초의 태평스럽고 편안하며 즐거웠던 시대를 반영하는 긍정적인 지칭이다. </p>
      <p>“중국인과 어울락인들은 세계를 구하는데 큰 은혜를 주었습니다. 세계 어디에나 그들이 존재하고 있지요. 그 중 나를 따르거나 제자가 된 사람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이들 어울락인의 경지는 대단히 높고 중국인의 수행 경지 역시 대단히 높습니다. 알겠어요? 이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영적으로 성숙되어 있고 비교적 도를 추구하는 마음이 강하다는 뜻입니다. 현재 세계 각지에서 수행하는 중국인과 어울락인들은 그들이 거주하는 국가에 복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p>
      <p>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어울락인을 난민으로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사실 그들은 영적으로 성숙된 영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세계를 돕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이런 일을 하고 있어요. 세상 사람들이 그들에게 얼마의 물질적 도움을 준 뒤, 전세계인들은 그만큼의 복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어울락인들은 수행을 함으로써 자신들을 돌보는 국가의 사람들에게 보답합니다. 알겠어요? 결코 그들은 
        난민이 아닙니다. 어울락을 벗어나 수행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성인들입니다. 그들은 세계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그러한 
        난민의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겁니다. </p>
      <p>어울락은 내 고국입니다. 당연히 어울락 사람들은 나를 좋아합니다. 그후 그들은 나를 따라 수행합니다. 어울락 난민들을 돕는 사람은 
        누구나 나와 어울락 난민과의 관계로 인해 복을 받게 됩니다. 다른 국가들이 수행을 하지 않아도 관계없습니다. 중국인과 어울락인이 
        그들을 대신해서 수행을 하면 충분합니다. 신의 안배는 대단히 오묘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계를 구할 약이 없습니다. 그래서 
        신은 나에게 중국어를 배우게 했고 중국인이 수행하도록 돕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로 하여금 세계 각지에서 수행을 하도록 
        하여 그들이 거주하는 국가에 복을 가져다주도록 했던 것입니다. 어울락인의 업장은 당연히 매우 깊습니다. 하지만 그건 수행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도피해 온 난민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희생한 후 각국으로 도피해 나와 나를 
        따라 수행을 함으로써 자신들이 거주하는 국가에 많은 복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p>
      <p>또 있습니다. 베트남이라는 명칭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이라는 명칭은 좋지 않아요. 우리는 어울락이라고 부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지 않습니다. 베트남(越南, 월남)이라고 부르지요. 그것은 ‘남쪽을 멸하자’라는 의미입니다. 수천만, 억의 인류가 매일 
        ‘베트남’, ‘월남’ 하며 부르고 있는데 그건 좋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세생생 전쟁이 있었고, 북쪽의 군대가 남쪽으로 몰려와 
        그들을 멸망시켰던 겁니다. 정말로 ‘남쪽을 멸하자’가 되어 버렸지요.</p>
      <p> 그러므로 베트남이라는 이름은 바뀌어야 합니다. 바꾸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마치 부적처럼 진동이 있고 그로 인한 영향이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적을 외워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한 국가의 언어를 들어 보면 우리도 그 나라의 상황을 
        대충 알 수 있습니다. 수천 년 동안 모두 ‘남쪽을 멸하자.’였으니 할 수 없이 멸망하고 말았던 겁니다.</p>
      <p> 예전에 우리는 원래 ‘어울락’이라는 이름이 있었는데 그 뜻은 아주 즐겁고 편안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때는 전혀 어떤 일이나 
        어떤 재난이 없었고 국가도 태평했고 대단히 부강했습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Mon, 15 Mar 2004 13:22:28 +0900</dc:date>
</item>


<item>
<title>의식은 신실하게 거행될 때만 할 수 있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88</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칭하이 무상사</p>
      <p> 스승님께 입문한 한국의 스님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스승님을 뵙기 위해 자기 사찰의 다른 스님들과 함께 왔다. 그리고 그는 
        스승님께 영적 수행에 관한 문제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그는 입문하기 전에 신이나 귀신에게 바친 음식을 전혀 먹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가 그런 음식을 조금이라도 먹고 나면 위통과 설사로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 스승님은 그가 매우 민감하다고 하셨다. 
        그는 계속해서 죽은 사람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독경 의식을 치러도 되는지를 물었다. 스승님이 말씀하신 것은 다음과 같다. </p>
      <p>“만약 당신이 독경 의식을 원한다면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위로할 목적으로 할 것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당신은 진실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신실하고 순수하다면 나쁠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전에 나는 사람들에게 이런 의식을 
        못 하도록 했습니다. 내가 말하는 사람들이란 돈 때문에 의식을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신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누구를 구제할 힘도 없었어요. 그들은 사람들을 기만했습니다. 그리고 단지 경전으로 돈만 모읍니다. 그런 의식들을 전혀 거행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에요. 당신이 만약 탐욕이 없다면 죽은 사람의 영혼에게 염불하고 그들에게 영적으로 수행할 것을 상기시키는 의식은 
        나쁘지 않습니다. 당신이 이를 이해한다면 의식을 거행해도 좋습니다. </p><p>한국 스님들의 마음과 정신은 비교적 순수합니다. 어떤 스님들은 
        돈을 벌기 위해 불공을 드립니다. 그들에겐 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을 위로하려는 최소한의 신심과 위엄도 없습니다. 불교는 매매되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이 의식을 거행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순수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매우 간소하게 
        먹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행하는 것이 아닐 때만 옳은 겁니다. 나는 다른 상황에서는 다르게 말합니다. 난 다른 나라에서는 이들 
        의식을 거행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스님들이 매우 순수하고 수행을 잘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p>
      <p>그들이 깨달았건 아니건 상관없이 그들은 신실하고 순수합니다. 만약 누가 자비심도 없이 돈을 벌기 위해 경전을 염불한다면 그는 
        많은 업장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는 그가 스스로를 대단한 것처럼, 법력도 없으면서 높은 도력을 지닌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시킨다면 
        역시 무거운 업장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매우 겸손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탐욕으로 한 것이 아니고 자비로 행했으므로 어떤 
        업장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의식을 행한 후 더욱더 많이 명상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보상입니다. 짓눌려 
        있고 길 잃은 혼귀들을 위해 의식을 행하면서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으니까요. 그래서 집으로 돌아갔을 때 매우 피곤함을 느낄 것입니다. 
        샤워하고 곧바로 명상하세요. 당신은 회복될 것이고 좋아질 겁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Mon, 15 Mar 2004 13:19:58 +0900</dc:date>
</item>


<item>
<title>12달러 지급 뒤의 사랑 이야기</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87</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기록: 관음사자/ 포모사 
        미아오리</p>
      <p> 택시 한 대가 마닐라 국제공항 청사 앞에 섰다. 차 안에는 여성 관음사자 두 명과 사저 한 명이 타고 있었다. 처음에 관음사자 
        한 명이 12달러를 지불하고 먼저 내렸다. 뒤에 탔던 사저가 이 사실을 잘 몰라서 요금을 냈느냐고 묻자 운전사가 “아니오.”라고 
        대답해 그녀 역시 12달러를 지불했다. </p>
      <p> 며칠 후 세 사람이 만나 이야기하면서 기사에게 두 배의 임금을 지불한 것을 알고는 택시 
        회사에 가서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 택시 회사는 대기업이어서 그들의 사업 평판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택시 회사는 그 기사를 처벌하고 12달러를 배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세 사람이 그렇게까지는 하지 말아 달라고 했으나 회사는 
        회사 내규를 주장했다. </p>
      <p> 그 사이 저녁 시간 무렵에 스승님이 공항에서 호텔로 오셔서 쉬고 계셨다. 스승님은 제자들과 이야기하시면서 
        갑자기 사저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셨다. 그가 일의 전모에 대해 말씀드리자 스승님은 택시기사가 처벌받지 않았는지를 물으셨다. 제자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책임자와 기사 그리고 택시에 탔던 사람들이 아래층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스승님은 제자에게 
        시켜 관리자와 택시 기사, 그리고 사저를 모두 올라오게 하셨다. </p>
      <p>스승님은 관리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외국인이며 영어가 능통하지 못합니다. 내 제자는 요금이라고 생각했고 기사는 
        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 기사가 속이려고 했던 것이 아닐 겁니다. 이게 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니 그를 처벌하지 마십시오. 많은 외국인들이 부자여서 그와 같이 팁을 주곤 합니다. 그래서 그는 12달러를 팁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한 사람은 분명하게 이야기하지 못했고, 한 사람은 오해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p>
      <p>그리고 사저에게는 즉각 뭔가 오해가 있었다는 내용의 편지를 한 통 보내 사과하라고 하셨다. 그 편지는 책임자에게 보내졌고, 
        처벌되지 않도록 요청되었다. 그는 해고되지 않았다. 그 순간 기사의 눈은 감격으로 가득 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스승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기사에게 과일을 주셨다. 스승님이 그에게 결혼했느냐고 물으시자 그는 “예. 그리고 아이들이 셋 
        있습니다.”라고 했다. 스승님은 그가 가족들에게 가져갈 과자와 비스킷이 담긴 큰 바구니를 주셨고, 그는 매우 감사해했다. 그리고 
        스승님이 “평상시 일을 할 때 솔직하고 충실히 해야 오래 지속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아이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이도록 해주세요.”라고 
        하시자 그는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고 했다. </p>
      <p>관리자는 스승님의 이런 행동에 몹시 감동을 받았다. 부당 요금을 지불당한 승객이 기사를 질책하지 않도록 하는가 하면 오히려 
        그들을 위해 중재를 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선물까지 주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책임자는 기독교인이었는데 세상은 이기적이어서 
        사랑만이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스승님이 사랑으로 가득 넘치는 분이라는 걸 느꼈고, 그 역시 자루 가득 
        선물을 받았다. </p>
      <p>그 사건 이후 스승님은 비록 기사가 잘못을 저질렀을지라도 어떤 일을 야기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필리핀에서는 
        취직하기가 힘이 들고 택시 수입으로 먹고살기 또한 힘이 든다. 더 많은 돈을 벌어서 먹을 것도 사고 장난감도 사 줘 아이들을 
        기쁘게 하려는 부성애가 이런 과오를 범하게 했던 것이다. 그가 12달러 때문에 해고당한다면 그의 어린아이들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그 사람은 너무 쪼들려서 나쁜 짓을 했던 것이다. 어린애도 공부할 돈이 없으면 나쁘게 변할지도 모른다. 대부분 암흑가의 사람들은 
        모두 어쩔 수 없이 범행을 하는 일이 많다. 한번 잘못을 범하면 다시 또 범하게 된다. 아무도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가 더욱 나쁘게 되는 것이다. 그가 정직하지 못한 것으로 인해 직장을 잃는다면 그의 가족은 몹시 곤란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건강하지 못하게 양육될 것이며 사회에 더욱더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12달러가 그런 업장을 초래할 수 있다. 
      </p>
      <p>물론 이 사회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주의 깊게 지켜보면서 미래에 조그만 잘못이나 업장을 초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무엇을 하든 남과 자신에게 이익이 되도록 해야 하며 최소한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아야 한다. 이 사건에 대해 그 
        사저는 솔직하게 책임을 느꼈고 또한 운전기사의 과실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에 대해 미안해했다. </p>
      <p>스승님은 다시 다음과 같이 가르침을 주셨다. “입문을 하고 스승을 따르면 언제나 안전합니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러분이 
        위험에 직면하거나 문제를 만나더라도 문제될 게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가련한 기사는 직장을 잃으면 모든 것이 끝장날 수 있습니다. 
        나는 이번 일을 통해 여러분에게 각성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 그 기사는 다시 속이지 않을 것이며 정직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 책임자가 돌아가 이 일을 같은 회사 사무원들에게 크게 알리게 되면 그들은 좋은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손해만 봤잖아요! 단돈 12달러와 큰 바구니에 담긴 사탕, 비스킷, 과일을!”</p>
      
      <p>모두들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유쾌한 웃음 속으로 빠져들었다. 12달러를 씀으로써 한 사람이 진실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스승님의 지혜가 아니었다면 이 같은 결말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Mon, 15 Mar 2004 13:05:03 +0900</dc:date>
</item>


<item>
<title>수행하는 사람은 청렴해야 한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86</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기록: 관음사자/ 포모사 미아오리 </p>
      <p>5월 1일은 포모사 장화의 센터 건립 기념일이었다. 책임자인 고 사형이 센터로 와서 스승님께 자오하에 있는 센터에 오셔서 케이크를 
        잘라 달라고 요청했다.       </p><p><br /><span class="topic">스승님은 중생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br />
        어떠한 번거로움도 두려워하지 않으신다</span></p>
      <p> 스승님이 장화 센터에 도착하시자마자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다. 스승님은 일본의 기모노를 입고 계셨는데 허리띠가 너무 꼭 조여서 차 안에서 잠시 풀어 놓으셨다. 스승님이 차에서 나와 몇 발자국 걸어가자마자 헐렁해진 허리띠 때문에 옷이 흐트러졌고 스승님은 바로 차 안으로 들어가 다시 옷매무새를 점검하고 허리띠를 단단히 맨 뒤 대중들 앞에 나오셨다. </p>
      <p>이처럼 작은 일만 보더라도 스승님은 대중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어떠한 옷이든 마다하지 않고 입으신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스승님이 일본의 기모노를 입고 계신 것은 그 나라에 조금이라도 복을 주기 위한 것이다. 사실 스승님은 개인적으로 이렇게 
        꽉 죄는 옷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당신 개인의 느낌이나 기호 같은 건 희생하시는 것이다. 
        스승님은 농담으로 말씀하시기를 “보기 좋은 옷을 입는 것도 자기 자신의 인내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좋은 옷을 입고 있음으로 해서 
        피곤하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것이 많으니까요. 좋은 옷을 입으면서 자기 시간을 희생하고, 좋고 나쁨이나 자기 취향까지 
        희생해 가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 싫어하는 것을 입어야 하기 때문이지요.”라고 하셨다. </p>
<p>     조금 휴식을 취한 후 스승님은 몇 가지 계율을 지키는 것과 청렴한 정신을 가지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셨다. 스승님은 우리 
        수행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은 자신의 도덕을 계속 지킬 수 있고 계율 또한 엄격히 지킬 수 있는 점이라고 하셨다. 
        따라서 그런 것을 함으로써 외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p>
      <p><br /><span class="topic">청렴한 정신이야말로 가장 귀중한 것이다</span></p>
      <p> 우리들 수행하는 사람들은 매일 계율을 지키는 것이 습관이 되도록 해야 한다. 어떤 때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상 
        계율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스승님은 한 가지 예를 들어 주셨다. 예를 들면 이 세상 국가의 시민들은 어느 국가나 같다. 때로 
        정부나 국가 관리가 공무에 써야 할 돈을 개인의 사비로 써 버리는 것에 대해 분노하는 일이 많이 있다. 서로 잠시 동안 용도를 
        달리하여 썼다 할지라도 그 이후에 돌아오는 결과는 같지 않다. 이러한 돈은 원래 개인적인 용도로 쓰도록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들 수행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 </p>
      <p>스승님은 대중들에게 마땅히 청렴한 정신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다른 사람이 주지 않는 건 어떤 물건이든 가지면 안 된다고 
        하셨다. 때로 우리가 오해하거나 몰랐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내버린 것이구나 하고 가져갔을 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후에 알았다면 다시 돌려줘야 한다. 우리가 고의로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 또 어떤 구실을 붙여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결과나 상황은 전혀 다른 것이다. </p>
      <p>스승님은 또 하나의 예를 들어 주셨다. 스승님이 우리를 어디에 파견해서 어느 정도 돈을 주시면서 스승님을 도와 일을 하라고 
        하실 때가 있다. 그때 그 돈은 비행기표를 사고 여관에서 자고 음식을 먹는 데, 꼭 필요한 곳에 쓰라고 주신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일을 돌보려고 생각지도 않고, 밖에 나가 어떤 사람을 알고 좋아하게 됐을 때 스승님의 일 대신에 그런 데에 관심을 
        가지고서 스승님이 주신 돈으로 사람을 초대해 맛있는 것을 사 준다거나 먹을 것을 사 준다거나 그 돈으로 비행기표를 사서 이리저리 
        다닌다거나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데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다. 그들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옳지 못한 곳에 돈을 
        쓰기 때문이다. 스승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혹 100만 원의 돈을 쓴다 할지라도 옳은 곳에 쓰인다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만약 옳지 못한 곳에 쓰인다면 비록 한 푼이라도 인정할 수 없어요. 그 이유는 우리의 청렴한 정신을 위배했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도덕이란 싸게 팔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p>
      <p><br /><span class="topic">계율을 지키는 데는 분명해야 한다</span></p>
      <p> 스승님이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우리의 계율이라는 것을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계율 위에 있으므로 어떤 일을 해도 관계없다고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잘못된 관념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을 범하는 
        것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조그만 잘못을 고치지 않다 보면 시간이 갈수록 나중에는 습관이 되어 버려 고치고 싶지도 
        않고 고치려 해도 고쳐지지 않는, 고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p>
      <p>스승님은 조그마한 일에서부터 도덕심을 훈련시켜야 이후 우리의 도덕이 굳건해진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마치 영어를 배우는 것과 
        같은데, 처음에는 ABC부터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같다. 이러한 것 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항상 검토하고, 우리의 신구의를 항상 주의하며,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 마음을 고쳐먹어야 한다. 우리는 매일 각기 다른 
        상황과 유혹에 직면한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고치는 데 전심전력하지 않으면 우리가 언제 자기 자신을 고칠 수 있겠는가? </p>
      <p>스승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수행하는 사람이 만약 청렴하지 않고 수시로 자신을 검토하지 않으면 어느 날 나쁘게 습성이 변해 
        있는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습성이 나쁘게 변하는 것을 알고 놀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는 이미 늦지요.”라고 
        하셨다. “또 조그마한 일이라고 해서 우리 자신을 검토해 보지 않고 내일 조금 더 나쁜 짓을 하고 모레는 다시 조금 더 하고 
        하면 그후엔 우리의 예민한 감각이 적어지며 소실되어 버립니다. 나중에 우리는 세상이 놀랄 만한 일을 해 놓고도 우리가 대단한 
        잘못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며 참회의 마음도 일어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거기까지 이르게 되었을 때는 큰일이고 
        너무 늦은 겁니다.” </p>
      <p>“또 탐관오리들 역시 이와 같습니다. 처음에는 탐관오리 같은 사람이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후 사람들이 그를 유혹하고 
        기회를 제공함에 따라 자주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그 방면으로 성공하고 그 누구도 그의 비행을 알지 못하며 그의 지위는 계속 
        올라가게 됩니다. 뇌물을 써서 더 큰 지위를 얻게 되고 이러한 일을 계속해 갑니다. 욕심이 나날이 커지게 되면 될수록 참회의 
        마음은 더 적어지고 양심은 점차적으로 없어집니다. 결과적으로 아주 나쁘게 변해 버리지요. 그는 원래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 겁니다. 
        처음 관리의 길로 접어들었을 때는 국가를 위하고 동포를 위하는 마음으로 시작했겠지만 결국 시간이 흐른 뒤에는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나쁘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p>
      <p><br /><span class="topic">나쁜 것은 나쁜 결과의 시작이다</span></p>
      <p> 스승님은 우리에게 청렴할 것을 강조하시고, 일을 할 때는 공명정대하게 명백히 해야 하며, 어떤 것이고 얻을 수 없는 것은 
        우리들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쁜 방법으로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나쁜 방법은 결과도 나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쁜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결과를 좋은 것으로 얻으려고 기대하지 마세요. 예를 들어 우유가 한 컵 있다고 칩시다. 독약을 
        타서 계속 흔든다 해도 독약이 우유로 변하지는 않고 우유가 독으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미 독약을 거기에 집어넣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나쁜 곳으로부터 시작해서 좋은 결과는 찾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일을 하는데 그 근원이 명백해야 결과도 좋고, 때로 
        자신의 감정이나 건강을 희생하거나 죽을지언정 도덕심과 정직성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상심을 일으키게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p>
      <p> 스승님은 또 우리가 만일 당신을 대신해서 일을 하고 당신을 돕고 중생을 도우려면 마땅히 자신의 도덕과 계율을 지키는 마음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정리한 이후에야 비로소 다른 사람의 신임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나쁜 
        것을 대표하는 존재가 된다면 누가 우리 말을 듣기를 바라겠어요? 우리가 밖에 나갔을 때 사람들은 우리를 존경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단체가 좋고 청렴하고 깨끗하며 도덕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계율을 지키지 않고 도덕적이지 않다면 나를 도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나쁜 선입견을 갖도록 만들고 나의 사명에 해를 주게 되고 동수들의 명예를 손상시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단체에 대해 오해를 일으키도록 함으로써 사람들이 감히 들어와서 수행하려고도 않고 들어와서 수행하는 
        사람에게 퇴행심을 일으키도록 하는 등 대단히 좋지 못한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계율을 꼭 지키도록 강요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센터에 갔을 때 우리가 계율을 범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한 이후에 들어가는 것은 이러한 까닭에서입니다.”</p>
      <p>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만약 여러분이 고의로 잘못을 범하고 스승의 도리에 거부를 하면 나는 차라리 여러분이 스승을 따라 수행하지 
        못하게 할망정 여러분에게 강제로 그것을 고쳐 수행하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라고 하셨다. “만약 학생이 선생의 가르침을 배우지 
        않는다면 선생이 가르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배우지도 않으면서 학교에 와서 무엇을 하겠어요? 매일 와서 소란만 피울 텐데요.” 
      </p>
      <p>스승님은 또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맹세하는 것이 우리에게 좋습니다. 스승이 맹세하도록 하는 것은 스승이 여러분에게 
        엄격하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마땅히 우리 자신에게 엄격하게 요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태해질 것이고 나중에는 
        구실을 찾느라 바쁠 것입니다. 우리가 매번 맹세를 할 때마다 우리 자신을 일깨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정신을 증진시키고 
        경각심을 일깨우게 되는 겁니다.”</p>
      <p><br /><span class="topic">엄격한 제자에게서 위대한 스승이 나온다 </span></p>
      <p> 우리는 항상 엄격한 스승 밑에서 위대한 제자가 나온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스승님은 우리 단체는 엄격한 제자에게서 위대한 
        스승이 나온다고 생각하신다. 일반적으로는 스승이 훈련을 시키고 제자에게 엄격하게 시험을 하고 하는데 우리 제자들은 아주 정반대이다. 
        우리는 스승님에 대해 엄격하고, 스승님을 시험하려 하고, 스승님을 돌보려 하지 않으며, 비방하고, 오해하고, 스승님의 공덕을 
        좀더 많이 빼앗아서 복을 늘리려 하는 경향이 있다. </p>
      <p>스승님은 농담으로 “나는 근본적으로 그렇게 많은 공덕과 복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나에게 다 꺼내 쓸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많은 공덕과 복을 주었기 때문에 이를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스승을 오해하면 할수록 
        스승은 더 많은 공덕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니 가장 좋은 것은 그렇게 오해를 많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로 생각하기를 좀더 
        상세히 생각하면 대부분은 우리의 자존심에 지나치게 집착하기 때문에 잘못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잘못을 말하면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지요. 자존심 때문에 그런 것에 집착하는 한 자기 자신에 집착하여 못쓰게 되고 우리의 에고(ego)를 손상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승이 우리에게 잘못을 지적해 주며 고치라고 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p>
      <p>우리는 일상적으로 병이 있으면 의사에게 바로 간다. 병을 고치기 위해 얼마의 시간이 걸리건 돈이 얼마나 들건 관계치 않는다. 
        그런데 정신에 병이 들어 있으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돈을 사용해서 병을 고치려 하지 않고, 무료로 고쳐 주는 의사가 
        있고 무료로 봉사해 주고 수술해 주려 해도 그것을 우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만약 무료로 의사가 수술을 해주려 하면 반대를 하고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도망을 가고 오해를 하고 정반대로 되어 버린다. 우리의 정신은 신체보다도 중요하다. 우리의 영혼, 도덕이 
        손상을 입게 되고 암에 걸리게 되어 좋지 못하게 되면 대단히 나쁜 것이다. 우리 영혼의 병을 수술하려고 하지 않으면 점점 더 
        확산되어 커지게 된다. 우리의 신체가 나빠지게 되면 다른 또 하나의 신체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도덕이 결핍되고 정신이 
        나쁘게 되면 세세생생 그것을 가지고 가게 된다. 우리의 몸은 바꿀 수 있지만 우리의 업장, 나빠진 도덕 정신은 바꿀 수 없다. 
        우리 자신이 바꾸려 하고 수술해 보려 한다면 그것은 좋다. 새롭게 바꾸는 방법이 있다. </p>
      <p>그러므로 우리는 스승이 교육하고 정리하는 것을 두려워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우리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자신의 등급을 오해하고 진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해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 자기 자신에 대해 엄격하고 스승에 
        대해선 엄격하지 않는 것이 되는 것이다. </p>
      <p>마지막으로 스승님은 당신이 일본의 기모노를 입고 있는데 왜 입고 계시냐고 묻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스승님에겐 어떤 
        이유가 있으신 것이다. 3000년 이후에 다시 말씀해 주실 것이다. 우리는 스승님이 무슨 일을 하시든 그것이 대중을 위해 이익이 
        된다면 하시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p>
      <p>스승님이 떠나시려 하자 장화 센터에 들어서실 때 영어로 불러 드렸던 환영 노래의 가사 내용을 말씀드렸다. </p>
      <p>“스승이시여, 나는 당신에게 경배를 올립니다. 나의 일생을 모두 당신에게 맡겼습니다. 나는 그토록 당신을 사랑하며, 나의 일생을 
        당신에게 모두 의탁합니다.”</p>
      <p> 장화 동수가 작사 작곡한 것이다. 스승님은 농담으로 “여러분은 언제 영어를 배웠습니까? 노랫소리가 듣기 참 좋았어요. 놀랐어요. 
        내가 유럽의 어느 국가에 있는지 착각할 정도였어요. 그리고 어떤 국가의 유치원에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러자 동수들이 모두 크게 
        웃었다. 정말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20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Mon, 15 Mar 2004 12:06:55 +0900</dc:date>
</item>


<item>
<title>너무나 자비로우신 스승님</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85</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기록: 관음사자/ 포모사 
        미아오리</p>
      <p> 스승님이 말씀하시기를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첫째는 수행을 열심히 하여 영적인 등급이 스승의 수준에 
        가까운 사람이고, 둘째는 누구도 제도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심각한 업장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다.</p>
      <p>우리 동수들은 항상 우리가 어떻게 스승님을 만나 수행하게 된 인연을 얻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과 놀라움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 
        스승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아난다를 가르친 내용을 읽어주시면서 현생에 부처에 귀의하고 그 가르침을 따르게 된 과거 전생의 수많은 인연들을 설명하셨다.        </p>
<p>옛날 옛적에 석가모니 부처와 아난다는 길거리에서 음식을 탁발하고 있었다. 그러다 
        세 명의 강도 곁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들은 어머니와 두 아들이었고 곧 사형을 당할 처지에 있었다. 그들은 부처에게 생명을 
        구해 달라고 애원했다. 부처는 아난다를 왕궁으로 보내 왕에게 호소케 했다. 그 결과 3명의 강도는(어머니와 두 아들) 목숨을 
        구하게 되었고, 윤회에서 해탈코자 하는 서원을 하고 출가하여 부처님에게 귀의하게 되었다. </p>
      <p>아난다는 전생에 어떠한 공덕의 씨앗을 뿌렸길래 부처의 법을 얻고 열반의 길에 이를 수 있게 되었는지를 부처께 여쭈었다. 아주아주 
        헤아릴 수 없는 옛적에 이 어머니와 아들들은 거의 굶주려 아사지경에 이른 세 마리의 호랑이들이었다. 다행하게도 그들은 여행하고 
        있는 왕자(석가모니 부처의 전생)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아주 친절하고 자비로워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그의 피와 고기로써 이 
        호랑이들을 연명하게 했다. 이것이 바로 인연이었던 것이다. </p>
      <p>스승님은 말씀하셨다. “스승과의 인연은 항상 좋은 인연의 결과이지만은 않습니다. 그것이 좋은 인연이냐 또는 악연이냐 하는 것은 
        깨달은 스승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 설사 악연이라 할지라도 그 순간 스승이 그들과 함께 있음에 감사한다면 좋은 인연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 생에 다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반드시 우선적으로 우리를 구할 것입니다. 그러니 깨달은 스승이 어떤 특정한 사람을 제도하기를 
        고집하는 것에 대해 의심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질투를 해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잘못된 견해로 스승의 일을 방해하거나 스승의 
        길로 가는 사람을 막아서도 안 됩니다. 그가 진정한 스승이라는 증거가 확실한 이상 우리는 그가 행하는 어떤 일이라도 도와주고 
        지지해야만 합니다.” </p>
      <p>스승님은 이어 얼마 전에 개최된 남편과 아내 콘테스트조차도 실제론 어떤 인연을 다루기 위한 기회였다고 하셨다. 출가제자들이 스승님과 
        아주 가깝기 때문에 스승님은 우리의 업장을 간과할 수 없어서 우리를 즐겁게 하기 위해 이 방편을 이용하신 것이다. 스승님은 실제로 
        당신을 돌봐 줄 어떤 사람도 필요치 않으시다. 그러므로 스승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는 그 이면에 깊은 이유가 있다. 스승님의 일이 
        완수되고 모든 이에게 그만두라고 말씀하시면 우리는 더 이상 그 상황을 논의해서는 안 된다. </p>
      <p>스승님은 또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두 종류의 사람에 대해 말씀하셨다. 첫째는 수행을 열심히 하여 스승의 수준에 아주 가까운 
        사람들이고, 둘째는 그 어느 누구도 제도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심각한 업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스승님은 
        당신을 돌보지도 않고 그들을 제도하기 위해 온갖 방편을 시도하신다. 스승님은 주저하지 않고 이 두 종류의 사람을 아주 가까이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스승님과 가까이하기를 소망한다면 신실하게 수행을 하여 여러분의 수준을 향상시켜야만 한다. 언젠가는 모든 한계들을 
        극복하고 모든 창조와 하나가 되겠다는 소망을 갖고서 말이다. 만약 우리가 스승과 가까와질 수 없다면 스승을 비난하지 마라. 왜냐하면 
        스승은 단지 우리 내면 상태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p>
      <p>우리는 항상 “정법을 듣는다는 것은 어렵다.”는 말을 들어 왔다. 스승님은 말씀하셨다. “그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과연 그들 중 몇 명이 깨달은 스승을 볼 수 있을까요? 그들은 깨달은 스승을 보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서 깨달은 스승을 인식할 수 있단 말인가? 스승님이 말씀하시길 “깨달은 스승은 어떠한 세속적인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떠한 것도 받지 않으며 오직 주기만 할 뿐입니다. 그가 무엇을 하건 그것은 단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입니다.”라고 하셨다. 스승님은 또한 말씀하셨다. “만약 우리가 두 번째 세계에 이른다면 그곳을 책임지고 있는 스승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얘기를 해주실 겁니다.” </p>
      <p>스승님의 설법에 귀기울이면서 우리는 아주 흡족했고 법열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깨달은 스승을 만나서 수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새삼 기쁨을 느꼈다. 스승님은 또한 항상 입문한 제자들에게 과거 또는 미래에 대해서 신경 쓰지 말라고 
        가르치신다. 우리는 오직 완전하게 현재를 갈고 닦을 필요가 있을 뿐이다. 지금 좋은 씨앗을 심으라. 그러면 미래에 좋은 열매를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로부터 나쁜 습성을 가졌을지라도 진실로 참회하고 지금 그것을 개선하라. 때가 이르면 스승님이 우리를 
        정화시켜 주실 것이다. 중생을 제도하는 데 전문가인 우리의 이 우주적인 교사는 우리를 그녀의 집으로 되돌아가도록 이끌 것이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21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Mon, 15 Mar 2004 12:02:21 +0900</dc:date>
</item>


<item>
<title>스승님이 직접 관음사자를 가르치시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84</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기록: 관음사자/ 포모사 미아오리 </p>
      <p>어느 더운 여름날 오후, 남자 관음사자들은 수업에 참석하기 위해 출가승의 사무실 근처, 나무 그늘 아래 모였다. 그때 
        마침 스승님이 지프를 타고 지나가고 계셨다. 사람들을 발견하신 스승님은 차를 멈춘 뒤 계단으로 내려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앉으셨다. 
        이 기회에 스승님은 수업에 동참하셨다. 스승님은 “질문 있으면 해요!”라고 말씀하셨다. 스승님은 또 여자 관음사자들도 수업과 
        토론에 동참하라고 통보하셨다. </p>
      <p>한 관음사자가 물었다. “입문하지 않은 사람도 죽을 때 스승님의 이름을 부르면 해탈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그가 해탈한 후 
        스승님께서는 그를 5세계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가르치시는지, 아니면 단지 어떤 단계에 머무르게 하시는지요?” </p>
      <p>스승님이 대답하셨다. 
        “그것은 그의 상황에 달려 있어요! 큰 깨달음을 갈망하고 계속 수행하기를 원한다면 물론 그를 계속 가르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곳에 머무르게 할 것입니다. 그는 또 윤회할 것이고, 수행을 계속하기 위해 돌아올 것입니다. 어쨌든 그는 삼악도에 떨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적어도 그는 다시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가 수행하기를 원한다면 그를 인도할 깨달은 스승을 만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돌아오기를 원치 않는다면 그곳에 머물러 계속 배울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계속 수행하면서 가르침을 받는다면 지혜가 
        늘어나고 단계가 높아질 것입니다. 해탈을 갈망하고 지혜가 완전하게 계발되기를 원할 때, 그는 인간으로 다시 오기를 원할 것입니다.</p>
      <p> 
        그래서 여러분이 동수들 중 어떤 사람은 수행을 시작하자마자 매우 높은 단계에 이르는 것을 보는 겁니다. 그것은 그들이 실제로 
        이미 많은 공덕을 쌓았고, 살아 있는 부처에 귀의하여 자신의 지혜를 완전히 계발시키기 위해 매우 높은 등급으로부터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의 공덕은 점점 증가합니다. 그들은 직접 살아 있는 부처의 가르침을 들을 것이고, 더욱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도구로 자신들의 두뇌를 사용합니다. 이런 방법이 이 세상의 상황을 극복하고 마야에 맞서서 수행하기 때문에 더 빠릅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단계를 향상시키기 위한 힘을 축적할 수 있습니다.”</p>
      <p><br /><span class="topic">수행자들은 바라는 바가 없다 </span></p>
      <p> 스승님은 계속 말씀하셨다. “아주 높은 등급의 수행자는 세속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세속의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바라는 바는 없습니다. 그는 ‘나는 성공해야만 한다.’는 식의 강한 생각도 없고, 밤낮으로 신께 기도하거나 도와 달라고 내면의 
        스승께 기도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계획적이지 않습니다. 어떤 문제가 성공할지 안 할지는 인연에 달려 있습니다. 성공하면 좋고, 
        실패해도 상관없습니다. 이 세상의 상황에 따라 여러 요소들을 같이 모아 이 세상의 도리에 맞게 일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공할지 
        못 할지를 봅니다.” </p>
      <p>스승님은 이 점을 상세히 설명하기 위해 예까지 들어 주셨다. 한 동수가 스승님께 많은 돈을 보시할 수 있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했다. 그러므로 그는 스승님께 그 돈을 벌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밤낮으로 기도했다. ‘어울락 난민을 돕는 등 어떤 일을 해야 할 때, 스승님을 돕는 데 사용될 수 있기를….’ 하고 
        말이다. 그는 또한 스승님이 이 돈을 출가승이나 당신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기도는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p>
      <p>그는 물었다. “스승님, 왜 저를 도와주지 않으십니까?”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당신은 나에게 가능한 만큼만 요구해야 합니다. 
        그것은 가능성에 따라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는 말했다. “스승님, 왜 매번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왜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십니까?”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문제는 내가 아무것도 원치 않는다는 거예요. 나는 다만 어떤 것을 요구하는 바람을 
        일으킬 수 없을 뿐이에요.” 스승님은 솔직히 그에게 말씀하셨다. “당신이 실패한다 해도 그건 나의 잘못입니다. 당신 자신을 너무 
        탓하지 마세요.” </p>
      <p>스승님은 우리에게 또한 말씀하셨다. “우리는 스승의 가피력을 남용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어떤 것을 
        요구한다면, 내면의 스승은 그를 돕기 위해 그의 요구를 듣고서 인연적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적절한 때라면 도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미친 듯이 스승에게 도와 달라고 계속 청하기만 한다면 정말로 바람직하지 못한 겁니다. 나는 결코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내가 뭔가를 한다 해도 내가 얻을 수 없다면 그만둘 것입니다. 나는 계속 그것을 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얻을 권리가 
        있다면 얻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들이 하기로 되어 있을 때 기회는 올 것입니다. 내가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 거라는 
        것은 너무나 명확합니다. </p>
      <p>예를 들면 당신은 2+2=4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지금 당신에게 2+2=6을 증명해 보라고 요구하는 무지한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 당신은 그것을 증명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수행 초기 단계에서 우리는 마음속으로 
        여전히 요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진보함에 따라 우리는 결국 더 이상 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설사 당신에게 어떤 요구가 
        있다 해도 그것을 요청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그때 우리는 ‘함이 없이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할지라도 인과가 없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것이 되어야 한다면 성공할 것입니다. </p>
      <p>여러분이 뭔가를 기도할 때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해결될 것이고 되어서는 안 될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행함에 따라 우리의 마음은 더 깨끗해질 것입니다. 그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은 아는데 다른 사람이 여전히 당신에게 조른다면 
        당신은 그들을 돕기 위해 당신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물론 당신은 어떤 강요된 노력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성공하든 
        못 하든 당신은 조정할 수 없습니다. 물론 당신은 그들의 고통을 알지만, 그것에 대해 당신 자신을 책망하거나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해하겠습니까?” </p>
      <p>누가 어떤 동수를 대신해 질문을 했다. “그는 어떤 동수의 친구입니다. 그의 할머니는 흑마술을 수행했었습니다. 그 자신도 또한 
        약간의 영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는 그가 증오하는 사람에게 악담을 했습니다. 후에 그 사람은 죽었습니다. 그는 
        그 악담의 영향 때문이 아닌가 해서 그 자신을 매우 책망했습니다.” </p>
      <p>관음사자는 이와 같이 대답했다. “스승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에는 
        항상 강력한 힘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아니까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생각지 마십시오. 대신 좋은 
        것을 듣고 생각함으로써 그것을 보충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수행의 공덕은 무한하므로 당신의 과거 실수로 인한 
        업장을 없앨 수 있습니다.” </p>
      <p>이 동수는 그의 친구를 대신해 계속 질문했다. “그는 할머니의 흑마술 도구들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영향력이 있습니까?” </p>
      <p>스승님이 
        말씀하셨다. “왜 그것을 지니고 있지요? 그는 그 도구들을 볼 때마다 흑마술에 관해 생각할 것입니다. 어떻게 아무런 영향이 없겠어요? 
        또한 동수들은 흑마술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는 안 됩니다.”</p>
      <p> 다른 동수가 관음사자에게 질문했다. “스승님께서는 만약 우리가 사랑으로 어떤 사람에 대해 염려하거나 어떤 문제를 다루면 어떤 
        업장도 초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은 또 어떤 사람을 나무라거나 어떤 일을 한다면 업을 짓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해야 합니까? 안 해야 합니까?” </p>
      <p>관음사자가 대답했다. “우리가 진실로 
        진정한 사랑으로 행동하는 한 확실히 어떤 업장도 없을 것입니다. 에고로 행동했거나 우리의 수행이 충분치 못했을 때만 업장을 받습니다. 
        그러나 수행의 공덕이 무한하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 공덕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라도 업장에 대해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우리는 상황에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스승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할 
        때 털어놓고 말할 상황이면 우리는 당연히 신실하게 거리낌 없이 말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어떤 업장을 받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p>
      <p><br /><span class="topic">깨달은 스승의 힘은 정말 불가사의하다</span></p>
      <p> 또 다른 관음사자가 스승님의 책에 있는 “깨달은 스승을 단지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해탈할 수 있다.”라는 인용문에 대해 질문했다. 
        그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이 해탈과 우리 동수들의 해탈에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p>
      <p>스승님이 대답하셨다. “당신은 충분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합니다.” 스승님은 이 점에 대해 재치 있는 설명을 계속하셨다. “당신 자신만 해탈하면 됐지 왜 다른 
        사람들의 일에 쓸데없이 간섭합니까? 어떤 종류의 해탈도 가능합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원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합니다. 깨달은 스승을 단지 한번 봄으로써 당신은 해탈할 수 있습니다. (불교 경전에 기록되어 있다.) 깨달은 스승은 바다에 
        온 세상을 다 빠뜨릴 수도 있고, 또한 참깨 씨앗 속에 온 세상을 다 넣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불가능하겠습니까? </p>
      <p>때로 믿음이 
        매우 강한 사람은 스승의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해탈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믿음이 약한 당신 같은 사람은 수백 년 동안 수행한 
        후에도 같은 단계에 머무를 것입니다. 당신은 입문한 후에 반신반의하고 있어요. 당신은 수행이 흐트러져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수백 년 동안 수행한들 발전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공덕이 매우 많습니다. 그들은 업장이 있다 할지라도 믿음이 매우 강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스승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쉽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6, 7, 8세계에까지도 이를 수 있지요. 
        해탈의 상황이 비슷한지 않은지에 대해 더 이상 논쟁하지 마세요. 사람들마다 다 다릅니다. </p>
      <p>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매춘부를 입문시키고 그녀를 용서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칭찬받고 존경받을 만한 제자들은 
        불평을 했습니다. “스승님, 그녀의 상황을 보십시오. 어떻게 그녀와 우리가 같을 수 있습니까?”라고. 수행에 있어서도 여전히 
        이런 분규가 있습니다. 여전히 ‘내가 그보다 낫다.’는 분별이 있습니다. ‘나는 수십 년 동안 수행을 해 오고 있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단지 스승님의 이름만 불러도 해탈을 하다니.’라는 분별심. 어떻게 이런 일들이 있을 수 있을까요? 물론 있을 수 있어요! </p>
      <p>
        스승이 전지전능하다는 것을 당신은 모릅니까? 그의 인연이 그렇다면 그런 방법으로 인도할 것이고 당신의 인연이 이렇다면 이런 방법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같을 수 있겠어요? 각인각색이지요.”</p>
      <p> 스승님은 한 예를 들면서 이것을 자세히 설명하셨다. “어떤 억만장자가 있었어요. 그의 채무자들 중에 어떤 사람은 몇 백만 
        원을 빚지고, 또 어떤 사람은 몇 만 원을, 어떤 사람은 몇 천 원을 빚졌습니다. 그는 그들의 빚을 전부 무효로 했습니다. 그래서 
        몇 천 원만 빚진 사람은 ‘어떻게 몇 백만 원을 빚진 사람의 빚을 무효로 할 수 있습니까? 나처럼 몇 천 원만 빌린 사람의 빚을 
        무효로 하는 것은 괜찮지만, 그 사람은 몇 백만 원을 빌렸는데 어떻게 그 사람의 빚도 무효로 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억만장자가 말했습니다. ‘그는 나에게 빚졌지 당신에게 빚진 게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그에게 준다 해도 그건 내 
        돈입니다. 당신은 지금 나에게 몇 백만 원을 빚지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까? 결정할 권리는 나에게 있습니다. 내가 원하면 
        어떤 방법으로든 그 사람을 데려갈 수 있습니다.’</p>
      <p> 그것이 옳지 않습니까? 심지어 보통의 왕도 모든 권리를 다 가졌습니다. 죽이는 권리조차도요. 하물며 깨달은 스승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당신 자신이 도달한 단계를 알고 해탈을 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일은 당신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나는 당신의 부지런함의 공덕을 그와 나누기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뭐가 걱정입니까? 내가 해탈한다 하면 해탈합니다. 더 이상 묻지 마세요. 난 그가 이생에 해탈할 수 있다고 여기면 그를 일세에 
        해탈시킬 것이고, 만약 그가 다음 생에 해탈해야 한다고 여기면 그를 다음 생에 해탈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5세계에 도달하기를 
        원한다면 그를 그곳에 데려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단지 3세계를 원한다면 나 또한 그를 그곳에 내버려둘 것입니다. </p>
      <p>당신이 매일 
        2, 3시간 명상을 하고 나의 책을 읽음으로써 무한한 공덕을 쌓는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그렇게 계산되는 게 아니에요. 당신의 
        업장 때문에 당신은 고된 노동을 해야만 합니다. 어쩌면 그들의 업장은 훨씬 적어서 한번 보거나 한번 부르는 것으로 충분할지 모릅니다. 
        당신은 백만 번을 봐도 여전히 똑같습니다. 당신은 계속 묻지 말고 당신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아무에게라도 내가 
        원하는 만큼 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돈을 가지고 있어요. 백만 원을 주든 억만 원을 주든 그것은 내 일입니다. 그가 가치 있든 
        없든 상관없습니다. 내가 주고 싶을 때 줄 것입니다. 나는 아무리 많이 주어도 바닥나지 않을 만큼 많은 돈을 가지고 있습니다. </p>
      <p>
        당신은 단지 매일 채식을 하고, 계율을 지키고, 잘못에 대해 무릎을 꿇고, 꾸지람을 듣는 것만으로는 무한한 공덕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만약 매우 신실하고 나를 괴롭히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나의 이름을 한번만 불러도 그를 데리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나는 그가 
        계율을 지키도록, 채식을 하도록 가르칠 필요가 없으므로 많은 힘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그건 정말 골치 아픕니다. 전에 당신에게 
        채식한다고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것은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 법칙은 이와 같지 않습니다. 이해하겠어요? 
        그것은 각자 인연에 달려 있습니다. 또한 나의 이름을 부를 때 그의 믿음이 얼마나 강한지에 달려 있습니다. 나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모든 사람이 5세계에 이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해탈하는 방법도 많고 해탈하는 기간도 다릅니다.”</p>
      <p> 스승님은 또 다른 예를 드셨다. 목련의 어머니도 또한 해탈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승단을 기만했고 부처를 
        모욕했기 때문에 나중에 해탈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처음에 고통 받아야만 했고 후에 해탈했다.</p>
      <p><br /><span class="topic">사랑이 있을 때만 가정이 화목해진다</span></p>
      <p> 다음은 부부 관계에 관한 질문인데, 스승님이 지혜롭게 답해 주셨다. 한 관음사자가 물었다. “입문 후 어떤 사저는 남편과의 친밀한 관계를 꺼려 왔습니다. 나중에 남편이 다른 여자를 찾아 나가 버렸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잘못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관음사자는 대답하기를 “잘한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사랑과 인내로 남편을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라고 했다. </p>
      <p>스승님은 말씀하셨다. “그는 이미 나가 버렸는데 왜 그를 돌아오도록 하지요? 그는 이 식당에서 자고 다른 식당으로 밥 먹으러 
        가서는 안 됩니다. 이런 고객은 붙들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는 이미 나가 버렸으니 그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하고 관계를 
        끊어 버리세요. 그것은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그녀가 남편 없이 살 수 없다면 그녀 자신의 내부를 
        조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더 이상 남편을 원치 않는다면 그를 가도록 하세요. 당신의 새로운 삶을 건설하도록 하세요. 아이들 
        양육 문제 때문에 당신의 남편을 붙잡아 두는 건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단지 가족에 대한 의무 때문에 그를 돌아오도록 하지는 마세요. </p>
      <p>
        만약 당신들이 서로 사랑하고 돌보며 아이들을 보살피겠다면, 물론 당신들은 화목한 가족 분위기를 가꾸고 가족을 결속함으로써 함께 
        결혼 생활을 유지하도록 서로 노력하고 협동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 중 한 사람만 그것을 원하거나 한쪽이 이미 떠났다면 아내 
        혼자서 애들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이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신들이 함께 산다 하더라도 분위기가 나쁘면 애들한테 무엇이 좋겠어요? 
        머지않아 아내나 남편이 죽는다면 애들은 고아가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미래를 보장할 수 없지요. 
        그 가정이 깨어지지 않고, 남편이 아내를 좋아하고 아내가 남편을 좋아한다면 물론 그들은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스승님은 우리에게 
        각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답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융통성 없이 매번 일률적인 대답을 해서는 안 된다.</p>
      <p> 어떤 관음사자가 외부 사람들이 종종 하는 질문에 대해 언급했다. 예를 들면 “당신의 스승님은 법사이면서 왜 그런 옷을 입고 
        있느냐?”라는. 스승님은 유머러스하게 대답하셨다. “왜 그에겐 내 옷이 멋있어 보이지 않지요? 또한 내가 왜 평생 출가승으로 
        있어야 하지요? 출가하는 것은 군대 생활과 같아요. 어떤 사람은 몇 년 간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평생 합니다. 왜 내가 
        평생 출가승으로 있어야 하지요?” 스승님이 계속 말씀하셨다. “그가 정말로 이것에 대해 그렇게 신경이 쓰인다면 어느 날 나는 
        아무것도 안 입을지 몰라요.” 스승님의 귀엽고 유머러스한 대답에 모든 제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p>
      <p> 어떤 농부가 질문을 했다. “농약을 살포하는 것도 살생하는 것입니까? 한 동수가 계율을 깨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스승님은 
        문답록에서 이미 이 질문에 대답하셨다. </p>
      <p>“내가 그렇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은 모두 굶어 죽을 것입니다.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농약을 살포해야 하는 사람들, 그들도 또한 수행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그들이 지은 이 업장을 씻기 위해 더 수행해야 합니다. 곡식을 재배하는 사람들 외에 먹는 사람들도 또한 농부와 더불어서 약간의 
        업장을 갚아야 합니다. 그러니 당신은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업장을 나누어 가질 것입니다. 스승을 포함해서!” 
        (모두 웃음) </p>
      <p>스승님은 이렇게 덧붙이셨다. “때로 여러분은 질문에 대답할 때 너무 극단적입니다. 불살생은 단지 사람들이 사악한, 
        살생하려는 의도를 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피할 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입문 후엔 완전히 단식하는 게 좋을 겁니다.” </p>
      <p><br /><span class="topic">무분별하게 명상법을 바꾸지 마라 </span></p>
      <p> 한 관음사자가 어떤 동수의 문제를 언급했다. 그가 말하기를 명상할 때 매번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오곤 해서 그의 단계가 떨어졌다고 
        했다.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그 자신이 스스로 떨어졌는데 누구를 탓하지요? 이것은 그가 충분히 집중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체험의 단계는 이미 내면에 있는데, 어떻게 그처럼 빨리 떨어지겠어요? 그가 내면의 체험 상태에 있었다면 어떻게 누군가가 자신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알 수 있겠어요?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면, 그는 전혀 어떤 단계의 체험을 못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p>
      <p>그 다음 한 동수가 다른 질문을 했다. “규칙적인 2시간 반 명상 이외에, 다른 시간에 누워서 명상을 해도 됩니까?”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당신이 잠시 동안 누워 있으면 밖에서 소리가 들릴 겁니다.(코고는 소리) 당신이 아주 상당한 단계에 도달할 때까지 
        수행을 하고 나서야 걸을 때나 휴식할 때, 앉아 있을 때 또는 누워 있을 때도 삼매에 들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이제 막 수행을 
        시작했으며 단계도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스승이 가르쳐 준 대로 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면 좀더 나은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자기 임의대로 스승이 가르쳐 준 방법을 바꾸지 마세요.” </p>
      <p>또 다른 관음사자가 말했다. 그가 유럽에 있을 때 스승님의 가르침을 매우 존경하는 한 수행 단체의 지도자를 만났다. 그러나 
        그는 술을 마시지 말라는 계율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계란과 생선을 먹지 말라는 것은 좋다. 그러나 식사 전 약간의 술은 
        아무런 해가 없는데 왜 술을 마실 수 없는가.’라고 생각했다. 그때 관음사자는 대답했다. “스승님의 요구는 제자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스승님께 입문하는 필수 조건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반드시 지키고 따라야 합니다.”</p>
      <p> 스승님이 덧붙여 말씀하셨다. “그가 약간의 술조차 끊을 수 없다면 더 이상 말할 필요 없습니다. 실제로 그가 마신다 하더라도 
        나는 그를 해탈로 이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처럼 조그만 요구 사항도 따르기를 원치 않는다면 내가 왜 그를 도와야 합니까? 
        그는 아직 충분히 신(God)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가 아주 사소한 노력도 꺼려하고 심지어 나와 흥정하려고 한다면 더 이상 
        신경 쓰지 맙시다. 게다가 유럽에는 여러 종류의 무알코올 와인이 많습니다. 왜 알코올이 함유된 것을 마셔야 하지요? 우리가 너무 
        많이 마시면 취하게 되고, 그러면 우리는 분별없이 운전할 것입니다. 또한 술을 마신 후 위는 뒤집힐 것이고 머리는 빙빙 돌고 
        깨질 듯할 겁니다.” </p>
      <p>다음은 관음사자의 의복에 대한 질문이었다. 관음사자가 밖으로 나가면 어떤 사람들은 항상 호기심에서 질문을 하고, 그러면 그들에게 
        관음법문을 소개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p>
      <p>스승님은 우리가 이렇게 대답하도록 가르쳐 주셨다. “만약 내가 전통 의상을 입고 있다면 실제로 당신은 나를 지나칠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최대의 이유입니다. 오늘 우리는 서로를 알 수 있었고, 잠시 동안 내가 
        입고 있는 의상 때문에 함께 담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다음번에는 여러분들이 즐겁도록 좀더 예쁜 옷을 입을 겁니다.” </p>
      <p><br /><span class="topic">비입문자의 5대 조상도 천도될 수 있다 </span></p>
      <p> 중국 대륙에 갔었던 한 관음사자가 질문했다. “중국 대륙에 71세 된 노인이 한 명 있는데 나이가 너무 많아서 입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매일 신실하게 방편법으로 명상했습니다. 그 결과 그녀의 조상들이 승강기를 탄 것처럼 스승님에 의해 
        차례로 올라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녀는 스승님께 보답하기 위해 매일 2시간 반 명상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렇게 
        해도 되는지요?” </p>
      <p>스승님이 말씀하셨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도 됩니다. 나는 그녀를 막을 수 없습니다. 명상하기를 원하는 사람을 왜 막겠습니까? 
        그러나 모든 사람이 방편법으로 5대 조상을 천도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나는 비입문자의 5대 조상이 천도된다는 
        것을 보증할 수 없습니다. 해줄 수 있는 것만 보증합니다. 보편적이고 빈번히 일어나는 것만 보증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입문하면 
        5대 조상이 천도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은 5대가 천도되고 어떤 사람은 2대가 천도됩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5대 조상이 천도되지 않습니다. </p>
      <p>그래서 나는 허풍을 떨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입문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사람은 낮은 단계에 도달하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아주 높은 단계에 도달합니다. 나는 단지 일세에 해탈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한 생에 5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p>
      <p>나는 비입문자들에게 너무 많은 보증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정말로 신실한 사람들은 5대 조상 또는 몇 대 조상, 또는 
        몇몇 친척이나 친구도 천도할 수 있습니다. 각자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확언할 수 없습니다. </p>
      <p>그러나 나는 입문자의 경우에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내가 5대 조상이 천도된다고 했지만 그것은 꼭 5대까지가 아닙니다. 10대 
        또는 100대 조상까지도 가능합니다. 나는 임시로 5대 조상이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이미 내가 5대 조상이라고 말함으로써 
        허풍을 떤다고 나무라고 있습니다. </p>
      <p>그런데 내가 50대 조상이라고 하면 어찌 될까요? 사람들은 입문 후 5대 조상이 천도된다고 말했을 때 나를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비입문자에게 5대 조상이 천도될 수 있다고 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사람들은 더 의심만 할 뿐입니다. </p>
      <p>그러나 내면의 스승의 힘은 불가사의하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할 수 있습니다. 이 내면의 믿기 어려운 힘은 온 우주로도 다 
        삼켜질 수 없습니다. 대부호가 부에 관해 일부러 얘기하지 않는 것이나 왕이 그의 권력에 대해 자랑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깨달은 스승의 힘에 대해 말하려면 끝이 없을 겁니다. </p>
      <p><br /><span class="topic">오고 감이 자유로운 체험</span></p>
      <p> 관음사자가 스승님을 대신해 입문을 시킨 경우, 어떤 사람이 관광과 관음을 할 때 체험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입문할 때 
        그는 스승님께서 사진에서 걸어 나와 그의 앞에서 미소 짓는 것을 보았다. 스승님의 살결은 정말 진짜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왜 
        화신 스승님이 이와 같을까 하고 의아해하고 있었다. 그는 화신 스승님의 몸은 희미한 빛처럼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p>
      <p>스승님이 
        말씀하셨다. “어떻게 그가 체험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내가 그에게 확실히 보여 주지 않았다면 그가 나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었겠어요? 확실히 보여 주지 않았을 경우 그는 그 사람이 누구라고 말할 만큼 선명하게 볼 수 없었다고 불평하기까지 합니다. 
        당신이 그에게 스승의 화신을 보았는지를 물었을 때 그는 분명히 아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그에게 분명히 보라고 하면 
        그는 왜냐고 물을 겁니다.”</p>
      <p> 스승님은 또한 이렇게 언급하셨다. “당신은 입문할 때 빛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인연에 달려 있습니다. 
        때로 당신이 체험을 원할 때 체험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스승이 당신에게 보여 주려고 할 때 체험을 할 것입니다. 그것은 시계에 
        의해 조종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 당신은 너무 신경과민이거나 주의를 안 했든가, 또는 너무 기대를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체험은 사라질 것입니다. 좀더 이완하는 것이 좋습니다.” </p>
      <p>어떤 사람이 물었다. “어떤 비입문자가 방편법을 수행하고서 온몸이 쇠약해져 고통 받고 있습니다. 그는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p>
      <p>스승님이 말씀하셨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릅니다. 그는 업장이 너무 많기 때문에 정화 기간이 끝나면 
        좋아질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금방 약물 치료를 받았을 때와 같습니다. 좋아지기 전에 당신의 상태가 더 악화되는 것일지 모르지만 
        곧 좋아질 겁니다. 이것은 일종의 과도기적 반응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드문 경우다. </p>
      <p>한 동수가 그의 영체가 빠져나가려 할 때마다 참기 힘들다고 했다. 그가 더 이상 그것을 참을 수 없었을 때도 그의 영체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려 했다. </p>
      <p>스승님이 대답하셨다. “당신의 영체가 빠져나가길 원한다면 나가도록 하세요. 그것을 막지 말고요. 그것은 어머니가 
        아이를 낳는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막을 수 있겠어요? 나오도록 할 뿐, 한번 나간 후에는 괜찮을 겁니다. 그것을 계속 
        막으면 당신은 더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이것은 일을 지연시킬 뿐이에요. 산모와 아이, 둘 다 고통스러울 겁니다.” </p>
       
      <p><br /><span class="topic">재가, 출가에 집착하지 마라 </span></p>
      <p> 최근 해외 동수들이 스승님께 출가승을 선임해서 그곳으로 배치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 스승님은 후에 출가와 재가에 대해 말씀하셨다. </p>
      <p>
        “사실상 출가자들이 누구보다 나을 건 없습니다. 그것은 출가자들의 생활 방식에 유익할 뿐입니다. 출가자들이 여기 있는 동안 출가자들은 
        오탁악세로부터 피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매일 직접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고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더 운이 좋을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출가자들이 더 지혜롭다는 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출가자는 이 세계의 모든 현상은 환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실제로 그들에게 막힘이 없어야 합니다. </p>
      <p>스승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그들은 동수들이 없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동수들이 있는 곳은 재가자도 매우 잘할 수 있습니다. 왜 그곳에 출가자를 보내야 합니까? 그들은 스승이 설법한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출가자를 필요로 하지요? 그들은 수천에 이르는 비디오테이프, 카세트테이프, 문답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듣기에 충분할 만큼. 그들은 왜 승복에 집착하지요? 사실상 스승에게 충실한 사람은 누구라도 쓸 수 있습니다. 그가 출가자냐 재가자냐를 
        꼭 구별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출가자에게 의존하는 것은 밖에 있는 나무로 만든 불상을 숭배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그것은 또한 
        일종의 형상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식입니다. </p>
      <p>어떤 동수는 스승의 행위를 흉내 내기 좋아합니다. 그들은 스승의 권력을 갖기를 원합니다.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을 때가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릅니다. 그것은 어떤 제자들이 크게 떠들어대는 것이 아닙니다. 덕이 없는 몇몇 사람들이 우리 단체를 협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항상 이들 문제들을 다루는 데 애를 먹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왕의 일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배반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국경에서 그리고 궁정에서 그를 배반합니다. 비교해 보면, 그것은 스승의 생활과 아주 비슷합니다. 
        차이점은 그들은 군대의 힘으로 배반하는 것이 아니고 마야의 힘으로 배반합니다. 그들은 나에게 많은 곤란을 줍니다. 한 깨달은 
        스승이 있다면 당신은 국내 문제와 외부 침략, 그리고 많은 일을 다루어야 합니다. 당신이 제자들을 두지 않았다면 당신은 여전히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다. 당신이 제자들을 받아들인 후에는 당신의 삶은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p>
      <p><br /><span class="topic">스승님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 모든 것이 평화롭고 안전하다 </span></p>
      <p>“마찬가지로 당신이 왕들에 관한 영화를 볼 때 비교해 보면 대충 나의 삶과 같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외부적인 
        문제만을 다루는데 나는 내부로 보살펴야 합니다. 그들은 한 나라의 문제를 다루지만 나는 많은 나라와 많은 세계의 문제를 다룹니다. 
        그것은 다른 날 스승이 말한 이유입니다. 내가 여기에 있지 않으면 사정은 다를 겁니다. 내가 홀로 모든 비바람을 다 막아 주기 
        때문에 여러분은 모두 평화롭고 안전합니다. 여러분은 단지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스승이 더 이상 옆에 있지 않을 
        때조차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내가 해외에 있을 때도 나는 여전히 이 세계에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언제든 전화로 
        팩스로 여전히 지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그렇게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이유입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22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un, 14 Mar 2004 22:01:09 +0900</dc:date>
</item>


<item>
<title>무지한 왕자</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83</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강연: 칭하이 무상사 <br />
        기록: 관음사자/ 포모사 미아오리 </p>
      <p><font color="#669966">최근 스승님은 시후 센터와 양밍산에서 훌륭한 강연을 많이 하셨다. 본 잡지는 가장 아름다운 
        강연들을 골라서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한다.</font></p>
      <p><br />스승님은 중생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우리와 함께 살고 계신다. 스승님이 우리의 편견과 습관을 점차 고쳐 주셔서 결국 우리는 
        고귀한 우주의 본성을 배우고 익히게 된다. </p>
      <p>우리가 산에 있었던 어느 날 비가 왔다. 그때 몇몇 동수는 스승님이 만드신 화롯가에 둘러앉아 있었다. 우리는 인도 빵을 구워 
        먹고 차도 마시며 고요하고 평화롭고 상큼한 분위기를 즐겼다. 그러는 동안 화롯불은 우리를 따뜻하고 편안하게 해주었다. 가족이 
        다시 모인 것 같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로 우리는 세상의 모든 걱정을 잊었다. 스승님과 제자들은 하나가 되어 함께 웃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 우리는 마치 동화의 나라에 온 것 같았으며, 천상의 생활을 즐기는 듯했다. </p>
      <p>스승님은 우리에게 “여러분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가정하고 이 산을 내려가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가겠어요?”라고 물으셨다. 우리는 
        “절대로 안 내려가요.”라고 대답했다.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더욱 동의할 수 없어요. 여러분이 내게 금과 은으로 된 산을 
        주거나 나를 왕이 되게 해준다 해도 내 마음을 바꾸지 않겠어요. 다른 사람들을 만나러 이 산을 내려가지 않겠어요.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과 즐거움의 법문을 나눌 것을 생각하면, 나는 마음이 바뀌어 사람들에게 수행하는 방법을 가르치러 산을 내려가고 
        싶어져요. 그것이 내 결점이지요.(너무 마음이 약한 것) 뭔가 좋은 것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항상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 이런 습관을 바꾸기 어렵지요.” </p>
      <p>잠시 후 스승님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옛날 어느 나라에 왕자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정신병이 있어 매일 옷을 벗은 채 돌아다녔다. 
        그는 식탁에 앉아서 식사하지도 않고 스스로를 바퀴벌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먹을 것을 찾으려고 마룻바닥을 뛰어다녔다. 왕은 많은 
        유명한 의사에게 왕자를 보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어느 누구도 왕자의 병을 치료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노인 한 사람이 왕에게 
        와서 “소인이 왕자님의 병을 치료할 수 있지만, 소인 나름대로 왕자님을 다룰 수 있는 충분한 권한을 주셔야 합니다.”라고 하자 
        왕은 “물론이오.” 하고 약속했다. </p>
      <p>그 노인은 매일 왕자와 같이 살았으며, 왕자와 똑같이 행동했다. 옷도 입지 않고 바퀴벌레처럼 매일 바닥을 기어 다니며 먹었다. 
        첫날 왕자는 그 노인을 보자 놀라서 물었다. “너는 누구냐?” 그러자 노인은 “나는 바퀴벌레다.”라고 대답했다. 왕자는 “아, 
        나와 같은 바퀴벌레구나.”라고 말했다. 그후 이 두 사람은 같이 살았다. 왕자는 매일 그 노인을 더 신뢰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는 왕에게 웃옷 두 벌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고는 왕자에게 “누가 우리 바퀴벌레들이 웃옷을 입을 수 없다고 했는가?”라고 
        말하면서 그 스스로 웃옷을 입었다. 그리고 왕자에게도 보여 주면서 입혀 주었다. 그후 노인은 왕에게 바지 두 벌을 가져오라고 
        부탁하고, 왕자에게 “누가 우리 바퀴벌레가 바지를 입을 수 없다고 했나?”라고 말했다. 그가 바지를 입자 왕자 역시 일초도 생각하지 
        않고 바지를 입었다. 왜냐하면 왕자는 그 노인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만한 친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p>
      <p> 오래지 않아 노인은 왕에게 식탁과 의자와 식탁에 앉아 먹을 식사를 부탁했다. 그리고 왕자를 식탁으로 데리고 가 “누가 우리 
        바퀴벌레들은 식탁에 앉아 정식으로 식사할 수 없다고 했나?”라고 말했다. 노인이 식탁에 앉아서 먹자 왕자도 그를 따라 그대로 
        했다. 얼마 후 왕자의 병은 다 치료되어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p>
      <p> 이야기가 끝나자 스승님은 우리에게 이야기의 뜻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물으셨다. 나는 “예, 이해했습니다. 이는 마치 스승님이 
        우리 무지한 중생을 가르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과 같습니다. 중생들의 신임을 얻기 위해 스승님은 우리와 함께 살고 계십니다. 
        스승님은 우리의 편견과 나쁜 습관을 점차 고쳐 주셔서, 그 이후 우리는 우주에서 가장 훌륭한 성품을 지닌 부처들이 될 수 있도록 
        배우고 있습니다. 스승님은 그 노인과 같으며, 왕자는 우리 무지한 중생과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스승님은 싱긋 웃으시고 내 
        이마를 살짝 두드리시며 말씀하셨다. “와, 이런 바보 같은 왕자까지도 이것을 이해할 수 있다니.” 본래 우리는 모두 부처였다. 
        우리는 그 왕자처럼 원래 훌륭했었지만 무지라는 병을 앓아 우리가 누구였는지를 잊고 말았다. 스승님이 지금까지 계속 우리를 가르쳐 
        오셨기 때문에, 스승님은 우리를 열심히 교육하시고, 우리의 편견과 나쁜 습관을 점차 고쳐 주셨다. 그런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p>
      <p><br /><span class="topic"><font color="#003300">각기 다른 재능을 가진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font></span></p>
      <p> 스승님은 이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하셨다. 첫 번째는 오직 주기만 하고 받지 않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는 
        주고받는 사람들이다. 세 번째는 받기만 하고 결코 주지 않는 사람들이다. 항상 주기만 하고 받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매우 편안함을 느낀다. 그의 외모가 어떻게 생겼든지 간에 그의 내면에는 성인의 본질이 있다. 그의 나누어 줌은 비단 물질적인 
        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줄 수 있으며, 그의 명예까지도 줄 수 있다. 오직 받기만을 원하는 사람에게서는 매우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그들은 여러분의 돈뿐만 아니라 시간과 가장 귀중한 것을 가져가 버린다. 그들은 여러분의 영혼까지도 낚아채길 원하며, 
        이는 가장 끔찍한 일이다. 이런 유의 사람들은 악마의 성질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두 번째 부류인 주고받는 사람들의 특성은 전형적인 
        인간이다. 이렇게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은 매우 확실하게 구분된다. </p>
      <p>받기만 원하고 결코 주지 않는 사람들이 여러분 가까이 다가오거나 멀리 있더라도 여러분은 참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 내면의 특성은 
        곧 드러나게 된다. 그들은 여러분 가까이 다가오면 여러분의 마음과 영혼과 여러분이 갖고 있는 어떤 축복이든 그냥 삼켜 버리고 
        만다. 그들은 여러분을 완전히 지배할 때까지 모든 것을 가져가 버리고 만다. 그들은 부정적인 요소로 꽉 차 있어서 뭘 가져가기 
        원하는지 말할 수가 없다. 이런 사람이 결혼하면 부인은 남편을 지배하게 되고 남편의 모든 수입을 다 가져야만 한다. 부인이 아이를 
        가지게 되면 아이를 지배하여 아이가 숨쉬기조차 어렵게 한다. 만일 그 아이가 그녀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으면, 그녀는 아이의 
        영혼까지 지배하여 아이의 영혼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그 아이는 모든 삶, 행동과 처신을 전부 자기 어머니의 지시에 
        따른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전혀 여유나 자유로운 권리도 주지 않는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친구를 사귀게 되면 결국 친구를 
        잃게 되고 만다. </p>
      <p>이런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지배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분과 친구가 되려는 것은 오직 여러분에게서 더 좋은 것과 혜택을 얻고자 
        할 때이다. 그들은 어디를 가든 똑같이 행동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공간을 차지하고 그들의 영혼을 지배하며, 그들의 귀하고 
        보배로운 것을 낚아채 간다. 재산뿐이 아니다. 재산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모든 재산을 다 준다 해도 결코 만족하지 
        않으며, 여러분을 완전히 삼켜도 만족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매우 불편하면서도 악마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여러분은 이런 종류의 기분을 설명할 말조차 찾지 못할 것이다. </p>
      <p>오직 주기만 하고 받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다. 그들은 우리를 매우 편안하게 해준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뭔가 
        빚졌다는 느낌이나 적대심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우리는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으므로 그들이 우리에게 얼마만큼을 준다 해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것처럼 주기 때문에 우리는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어쩌다 그들은 뭔가 받을 때도 
        있지만 몇 만 배로 갚기 때문에, 비교해 보면 그들이 받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므로 아무것도 받지 않은 것과 같다. 비록 그들이 
        실제는 받기는 하지만 더 귀중한 것을 몇 십억 배로 갚는다. </p>
      <p>주기만 하고 받지 않는 사람들도 가끔 뭔가 받기는 하지만 받은 것의 몇 만 배로 갚기를 원한다. 따라서 여러분은 결코 다시 
        갚을 수가 없으니까 사실 준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구분하기 위해 
        관찰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서로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다르다. 주고받는 사람들의 본질은 일반적인 사람들이므로 
        그런 사람들에 대해 말할 필요는 없다. </p>
      <p>우리가 영적 수행을 하게 된 후에는 매우 예민하게 된다. 우리의 감정 또한 매우 명확해진다. 가끔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불평하는 
        것을 들을 때가 있다. “누구누구는 자기 부인이 매우 사랑하는데도 아주 나쁘다. 그 부인은 남편에게 아주 잘해 주고, 사랑해 
        주고,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주는데…등등.” 사실은 그 부인은 모든 것을 다 가져간다.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남편을 항상 지배해서 남편에게 숨쉴 여유도 안 주고 아무런 권리나 자유도 안 주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이렇게는 더 이상 살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사랑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가끔 이 결과로 결혼이 
        실패한다.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이 실제로는 사랑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세상은 참 복잡하다. 사람들의 잠재된 본질을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쉽게 속는다. 우리는 그들이 옳은지 그른지, 또는 좋은지 나쁜지조차 구분할 수 없다. </p>
      <p>여기 어울락 이야기가 있는데, 그 여자는 자기 시어머니가 싫어서 시어머니가 빨리 죽어서 그 재산을 물려받기 원했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자기의 본색을 드러내지 않고 대신 그 시어머니를 돌봐 주면서, 이것저것 잡수시라고 하고 또 매우 존중해 주었다.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굽실거리며 잘해 주었고, 시어머니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했다. 그녀는 매일 시어머니에게 계란을 억지로 먹였다. 
        계란이 보통 영양이 많다는 구실로 그녀는 계란을 오래 삶아서 하루에도 몇 개씩 시어머니에게 먹였다. 그 시어머니는 계란을 너무 
        많이 먹어, 마침내 간이 망가져서 견디지를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녀가 아무런 독약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시어머니에게 계란을 
        먹임으로써 마침내 시어머니는 죽었다. 아무도 시어머니의 죽음에 그녀를 책망하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 그 여자를 책망했다면 아마 
        무지하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실제로 시어머니가 너무 늙어서 계란을 소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억지로 먹였다. 겉으로 
        판단한다면,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좋은 뜻으로 계란을 먹으라고 설득했을 뿐 폭력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이렇듯 세상 사람들은 가끔 
        매우 잔인해질 수 있으므로 선과 악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p>
      <p>스승님은 이 주제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말씀하셨다. 일반 사람들도 선과 악을 구분하기 어렵지만, 당신 자신도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스승님은 너그럽고 관대해야 하며 동시에 다른 많은 순수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정말 나쁜 본성은 제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나쁜 본성은 암세포처럼 몸 전체에 퍼져 스승님도 때로는 이런 상황을 다루기가 정말 어려울 때가 있다. </p>
      <p><br /><span class="topic"><font color="#003300">우아한 고전의상의 회상</font></span></p>
      <p> 나는 저런 환경을 보면 두 번 다시 밖에 나가고 싶지 않다. 저 사람들이 어떻게 매일 이런 환경 속에서 섞여 살면서도 저렇게 
        행복한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저렇게 서로 빠져나가려고 애쓰는 자동차들을 보면, 내가 밖에 나가서 저들과 섞였을 때의 피곤한 순간이 
        기억난다. 그들은 나가서 허덕거려야만 한다.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것은 먹을 쌀과 빵, 그리고 값비싼 몇 벌의 옷뿐이다. 
        그러나 그 비싼 옷도 전혀 훌륭한 옷이 아니다. 그들이 입는 서양 옷은 까마귀같이 검은데도 가장 좋은 옷이라고 한다. 상류층의 
        사람들은 항상 검은 옷을 입으면서 검은 색이 가장 의례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너무 형식적이고 미워 보인다.</p>
      <p> 색상이 다양한 고전적인 옷은 거의 잊혀져 가고 있어서 무슨 행사나 잔치 때 이외에는 그런 옷을 보기가 어렵다. 그들이 입고 
        있는 새 옷들은 매우 비싸지만 좋아 보이지 않는다. 검정 모자에 검정 넥타이, 검은 구두를 포함해서 모두가 다 검정색이다. 그들 
        대부분은 검정 손수건에다 검은색 장미를 갖는다. (검은색 장미는 매우 드물고, 더 검은색 장미일수록 비싸다고 한다.) 세상은 
        뒤바뀌어서, 그런 것에다 돈을 쓰고자 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매우 무분별하다. 그들이 그렇게 피로해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p>
      <p>만일 우리가 일을 하는 방법을 안다면 여러분이 하는 모든 것은 다 옳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이 얼마나 재능 있고 얼마나 부자인지에 
        상관없이, 그것은 단지 시간과 돈의 낭비이며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지혜가 정말 대단히 중요한 이유이다. “너희 
        내면에 있는 천국을 찾아라. 그러면 모든 것을 다 가지리라.” 만일 그들이 우리처럼 직접 만든 옷을 입는다면, 그들이 매일 새 
        옷을 입는다 해도 그들이 평생 동안 옷에다 쓰는 돈이 그들이 지금 입고 있는 한 벌의 옷값보다 훨씬 적게 들 것이다. 우리의 
        옷도 단순하고 멋이 있으면서도 매우 싸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깨닫는다면, 그들의 삶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여전히 아름다울 것이다. 
      </p>
      <p>중국 청나라의 사진이나 영화를 보면, 그 옛날에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즐겼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옷도 선녀들처럼 
        보이면서도 그들이 직접 중국에서 만들기 때문에 그렇게 비싸지 않다. 모든 보석, 진주, 구슬 같은 것도 모두 중국에서 산 것이다. 
        그 당시 중국 사람들은 매우 예술적이었다. </p>
      <p>그들은 장신구를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사용할 줄 알았다. 장신구들을 다르게 꾸미면 전혀 다른 심미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옷에다 허리띠를 두르면 무게 있어 보이고 아름답다. 반면에 서양 옷은 두껍고, 검은 색이며, 덥고, 불편하며, 외국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너무 비싸다. 작고 마른 체구의 중국 사람들이 그런 옷을 입는다는 것은 정말 좋아 보이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일을 다룰 줄 모르는데, 잘만 안다면 이 세상은 천국이 될 수 있다. </p>
      <p>지금 모든 사람들이 그런 옛날 중국 비단옷이나 무명옷을 입는다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서늘하게 느낄 뿐 아니라, 그런 
        가볍고 흐르는 듯하며 바람에 휘날리는 천으로 된 옷에 색깔 있는 허리띠를 잘 맞추어 입으면 사람들은 아마 선녀처럼 느낄 것이다. 
        사실이 아닌가? 이제 우리는 모두 소몰이 할 때 입는 청바지를 입었으니 ‘소 선녀’같이 걸을까? 거리에 그렇게 가볍고 흐르는 
        듯한 옷을 입은 여자들이 넘친다고 상상할 수 있는가? 더욱이 입고 있는 옷에 맞추어 화장하는 법을 알고 모든 사람들이 서로 배운다면 
        곳곳에서 선남선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23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13 Mar 2004 15:43:19 +0900</dc:date>
</item>


<item>
<title>스승님의 비밀 방어</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82</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기록: 관음사자/ 포모사 
        미아오리</p>
      <p> 어느 날 산속에서 이웃이 장례를 치르고 있었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스승님은 명상을 할 수 없으셨다. 지루해지자 스승님은 몇몇 
        제자들을 불러 ‘별’들을 보라고 하셨다. 제자들이 와서 하늘을 쳐다보았지만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제자들은 매우 이상해서 
        낮에 어떻게 ‘별’을 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자 스승님은 웃으시며 스승님의 발밑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바보로군요. 별이 여기 있잖아요. 유대교를 상징하는 ‘육각형의 별’과 그 옆에 가톨릭을 상징하는 ‘십자가’가 있잖아요. 이것이 
        비밀 방어인데 당신들은 잘 보이지 않지요?”(종교적 본질을 가지고 있는 것) </p>
      <p><br /><span class="topic"><font color="#003300">통밀 차파티</font></span></p>
      <p>통밀가루는 매우 영양이 있지만 흰 밀가루만큼 맛은 없다. 어느 날 제자들은 통밀가루로 인도 차파티를 만들었는데 잘 팔리지는 
        않았지만 맛은 좋았다. 장기를 두는 동안 스승님은 “게임에 이기는 사람에게 상으로 차파티 6개를 주겠어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두 제자는 은밀히 웃으면서 일부러 천천히 장기를 두었는데 스승님도 그렇게 하셨다. 이 차파티를 생각하면 다들 손이 떨렸다. 
        그래서 그들은 차파티를 먹지 않으려고 될 수 있는 한 천천히 장기를 두었다. 결국 장기 게임이 아주 재미있게 되었다. </p>
      <p><br /><span class="topic"><font color="#003300">느린 방법</font></span></p>
      <p>스승님이 간단한 이야기를 하나 해주셨다. 두 형제와 병이 든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는 유언장에다 “맨 마지막으로 말을 타고 
        오는 아들에게 내 전 재산을 주겠다.”라고 썼다. 그러자 그 두 형제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무엇을 하든 
        아주 천천히 했으며, 먹는 것도 옷 입는 것도 천천히 했다. 그들은 서로를 계속 주시하며,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천천히 하려고 
        애썼다. 예를 들면 말을 탈 때는 아주 천천히 타고, 앞으로 한 걸음 가면 뒤로 세 걸음 물러나곤 했다. 그들은 마을에 도착해서는 
        호텔에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지만,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말 위에 재빨리 올라타고는 마을까지 계속 달렸다. 그 이유를 알고 싶은가? 
        그들이 말을 서로 바꿔 탔기 때문이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23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13 Mar 2004 15:34:01 +0900</dc:date>
</item>


<item>
<title>강도의 기이한 만남</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81</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칭하이 무상사/ 1992. 
        8. 포모사 양밍산 <br />
        기록: 동료수행자 홍/ 포모사 미아오리</p>
      <p> <font color="#669966">스승님은 “큰스승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힘과 지혜와 사랑의 마음은 외재적인 행위로는 
        모방할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font></p>
      <p><br />
        옛날 인도에 한 가난한 부부가 있었다. 어느 날 그 부인은 견딜 수 없어 남편에게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옆집 여자를 좀 
        봐요. 아주 예쁜 옷을 걸치고 또 집안이 부유해서 원하는 것은 모두 있잖아요. 당신은 뭐예요? 아무런 재주도 없으니 집에 아무것도 
        없잖아요. 당신이 오늘 어떤 수단 방법을 쓰든 상관하지 않겠어요. 꼭 집에 돈을 벌어 와야지 그렇지 못하면 다시는 집에 발을 
        들여놓지 말아요.” </p>
      <p>부인이 욕을 퍼부어 대니 남편은 그녀의 흉흉함을 보다 못해 할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 그는 길을 걷고 걸었다. 
        그는 한동안 어디로 가야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 몰랐다. 돈을 벌어 아내에게 가져다주어야 할 텐데 그는 또 무슨 특별난 재주가 
        없었다. 한참 생각하다가 그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강도질을 해서라도 물건을 빼앗아야지 달리 방법이 없어!” 그래서 
        생각 끝에 칼을 한 자루 만들어 몸에 지니고 강도질을 할 준비를 했다. </p>
      <p>그는 길가로 나가 부유한 사람이 지나가는지를 살피며 기다렸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으면 일을 저지르려고 했다. 한참을 기다리자 
        마침내 한 사람이 말을 타고 천천히 지나가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사람은 풍모가 장엄하기 그지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그 사람이야말로 부자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마침 또 그는 혼자였다. 그는 이 기회를 절대 놓칠 수가 없었다. </p>
      <p>그는 칼을 빼 
        그를 가로막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강도다. 가지고 있는 것 전부 내놔. 그렇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 그 덕이 있는 사람은 
        조금도 놀라지 않고 그에게 말했다. “내 목숨은 당신에게 아무 소용이 없을 텐데 당신은 왜 강도짓을 하려 하는가?”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집이 너무 가난하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내 마누라가 나에게 쓸모없는 자라고 욕을 하며 어떻게 해서든 
        돈을 만들어 오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돈을 벌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할 수 없이 강도짓을 하게 되었다.” </p>
      <p>그 덕 있는 자가 
        “일단 잡히면 사형을 당할 텐데 두렵지 않은가?”라고 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지금 죽는다 해도 두렵지 않다.” 그러자 
        그 덕 있는 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좋다. 나는 의원인데 당신도 사실 나쁜 사람은 아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내 옆에서 
        조수로 일해도 좋다. 우리가 함께 여기저기서 병을 고쳐 주고 돈을 벌면 둘이 절반씩 나누기로 하는 게 어떻겠는가?” 그 가난한 
        자는 아주 흔쾌히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 덕 있는 의원을 따라다니자 과연 충분히 돈을 벌게 되었다. 생활도 나날이 좋아지고 
        부인 역시 더 이상 그에게 욕을 하지 않았다. </p>
      <p>그 나라의 왕에게는 아주 아름다운 공주가 있었다. 어느 날 공주는 괴상한 병에 걸려 혼수상태에 빠져 버렸다. 왕은 명의란 명의는 
        모두 찾아 초빙해 보았지만 공주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누구든 공주의 병을 고치는 자에게는 후한 상을 
        내리겠다고 방을 붙이게 되었다. 그 덕이 있는 의원은 조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자. 우리가 가서 공주의 병을 고치자.” </p>
      <p>두 
        사람은 궁궐로 가서 왕을 뵙고 그들의 뜻을 말씀드렸다. 왕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일 너희들이 공주의 병을 고치면 아주 
        많은 재물을 상금으로 하사하겠지만 고치지 못하면 목을 자르겠다. 지금 여기에 온 것이 후회스러우면 아직 시간이 있으니 떠나도 
        좋다. 저쪽 담에 매달린 머리들을 봐라. 모두 고치지 못해서 잘린 것들이다.” 조수는 그것을 보고 소름이 오싹하여 의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는 죽기 싫습니다.” </p>
      <p>그 의원이 “너는 며칠 전에 돈을 위해서라면 죽는다 해도 두렵지 
        않다고 하지 않았느냐. 지금 아주 큰 돈이 너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찌 그것을 원하지 않는가?”라고 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가 가진 돈은 충분히 쓰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저는 이런 모험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돌아가지요.” 그러자 의원은 말하기를 
        “안 돼! 그렇게 두려우면 자네나 가게.”라고 했다. 조수는 할 수 없이 체면상 그를 따라 공주를 구하러 갔다. 왕이 그처럼 
        엄격하게 했던 까닭은 재주도 없는 사람이 공주를 구한다는 명목으로 그것을 기회로 삼아 어떤 사리(私利)를 취하지 못하도록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p>
      <p>의원은 공주의 병실에 도착한 후 왕에게 말하기를, 자신이 공주를 치료하는 동안 그 누구도 주위에 얼씬거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왕은 그의 말대로 모든 사람에게 그 자리를 떠나도록 하명했다. 의원은 사방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조수에게 창문과 문을 
        모두 잠그도록 했다. 그리고 칼을 꺼내 공주의 몸을 자르기 시작했다. 우선 머리를 자르고 나서 양손과 다리를 잘랐다. 그 조수는 
        그것을 보고 너무나 놀라 말했다. “죽고 싶어 환장했어요? 그렇게 사람을 구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당신 때문에 나도 죽고 말 
        거요.” </p>
      <p>조수가 옆에서 놀라 꽥꽥 소리를 지르자 그 의원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와서 두려워해 봤자 소용이 없네. 빨리 
        물을 떠다가 잘라낸 머리, 손, 발을 씻기나 해.” 조수도 하는 수 없이 그의 말대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의원은 다시 
        잘라낸 팔다리와 몸을 처음과 같이 원래의 신체에 붙였다. 그러자 공주의 병도 완쾌를 보게 되었다. 그때서야 조수는 그가 보통 
        의원이 아니라 신의(神醫)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대단히 기뻐했다. </p>
      <p>그들이 공주의 병을 고친 것을 보고 왕은 그들에게 아주 많은 
        재물을 내렸다. 의원은 그에게 재물의 반을 나누어 주며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이제 돈을 충분히 벌었으니 나를 더 이상 따라다닐 
        필요가 없어졌네. 나는 이제 아주 먼 곳으로 가려 하네.” 그때부터 그 조수는 가정에서 아주 부유한 생활을 하며 보냈다. </p>
      <p>어느 날 왕의 아들 역시 괴상한 병에 걸리게 되었다. 아무도 그의 병을 고치지 못하자 왕은 전에 공주의 병을 고친 의원이 생각났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보내 그를 찾았으나 모두 찾지를 못했다. 그러자 왕은 이렇게 생각했다. “그 의원을 찾을 수 없다면 그 조수라도 
        좋다. 그는 필히 그 의원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파견해 조수를 찾게 되었다. </p>
      <p>그때 조수는 대단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어떻게 병을 고칠 수 있겠는가? 그도 여기저기 함께 일을 했던 의원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또 그는 국왕의 요청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궁궐에 들어가 전에 의원이 했던 대로 나도 그렇게 
        한번 해보자.” 그는 왕자의 병실에 들어간 후 역시 모든 사람에게 자리를 뜨도록 하고 모든 문과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 칼로 
        왕자의 손발과 머리를 하나하나 잘랐다. 잘라낸 부위를 깨끗이 씻은 뒤 그것을 원래의 몸에 다시 붙여 보았지만 이때는 아무리 해도 
        다시 붙지 않았다. 그는 너무 급했다. 그러나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이번에는 자신의 목이 달아나고 말겠구나, 이런 생각이 미치자 
        그는 방에서 울기 시작했다. </p>
      <p>갑자기 방을 둘러친 벽이 갈라지더니 한 사람이 뛰어나왔다. 그는 그와 함께 병을 치료했던 의원이었다. 조수는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그의 발을 붙들고 “저 좀 살려 줘요.”라고 애걸했다. 그 의원은 아주 화가 난 어투로 그에게 말했다. “어째서 나를 
        함부로 모방하여 다른 사람의 손과 머리를 잘랐느냐? 그런 일은 나만이 할 수 있지 너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보통의 
        의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p>
      <p>원래 그 의원은 당시 인도의 큰스승이었던 것이다. 조수도 이를 알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을 감히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그 큰스승은 머리와 팔, 다리를 일일이 원상태로 회복시킨 뒤 이렇게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앞으로 또다시 함부로 모방을 할 경우에는 다시 너를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곧 벽 속으로 사라졌다.</p>
      <p> 왕자의 병을 
        치료하자 왕은 당연히 그에게 많은 재물을 내렸다. 그러나 그는 감히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왕에게 이렇게 간청했다. “제발 다음에는 
        병을 치료하는 문제로 또다시 저를 찾지 말아 주십시오.” 그후 그는 집에 돌아가 평범한 생활을 보냈다. </p>
      <p>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났다. 스승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몇몇 제자들도 똑같이 스승의 행위를 모방하기 좋아합니다. 내가 
        사람들의 머리를 만지며 가피하는 것을 보고 그도 다른 사람의 머리를 만지려 합니다. 내가 제자들에게 내 눈을 쳐다보게 하자 그도 
        역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눈을 응시하도록 합니다. 마땅히 배워야 할 것은 배우려 하지 않고 배워서는 안 될 것만 잔뜩 
        배우지요. 명예욕이 아주 많아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옹호하고 존경하며 사랑하는 것을 보고는 그도 나를 그대로 모방하려 합니다.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가피하는 모습이라든가 말투 또는 내가 사용하는 물건과 똑같은 것을 사용하기를 좋아한다든가 합니다. </p>
      <p>
        물론 소수의 몇몇 사람은 한동안 속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을 명백히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큰스승 내면의 
        힘과 지혜, 그리고 사랑의 마음은 외재적인 행위로는 결코 모방할 수 없으니까요. 우리 내면의 영혼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주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면 자연적으로 좋아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억제할 수 없어 울기도 합니다. 눈물이 
        끝없이 흐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영혼은 세세생생 육도윤회를 거듭하며 고향으로 돌아갈 해탈의 길을 찾지 못하다가 지금에 
        이르러 스승을 보자 윤회의 고통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너무 기뻐 우는 것입니다. 마치 오랫동안 길을 잃고 헤매던 
        아이가 갑자기 자기 엄마를 보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당연히 아주 감격해 마지않지요. 그러나 우리의 두뇌는 이를 모르기 때문에 
        이를 아주 이상하게 느낍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25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13 Mar 2004 15:19:39 +0900</dc:date>
</item>


<item>
<title>신은 만족할 줄 아는 자에게 복을 내린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80</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칭하이 무상사/ 1992. 
        8. 포모사 양밍산 <br />
        기록: 동료수행자 홍/ 포모사 미아오리</p>
      <p> <font color="#669966">우리는 오늘날 자유롭고 부유한 국가에 거주하며 최고의 법문으로 수행하고 있다. 각지에 
        우리의 수행을 위한 센터가 마련되어 있다. 또 항상 스승을 볼 수가 있다. 이것은 커다란 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조용히 
        이를 향유함이 옳다. </font></p>
      <p><br />옛날에 한 부인이 있었다. 그녀의 가정은 빈궁하기 그지없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옆집에는 아주 부유한 여자가 살고 있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매년 그 지역 사람들이 숭배하는 최고의 신을 위해 경축 행사를 벌였다. 그날만은 매 가정마다 모두 청소를 
        깨끗이 하고 풍성한 곡물을 마련해 신에게 공양했다. 그리고 각 가정에서는 부모들이 어린애에게 아주 아름다운 옷을 사다가 입혀 
        주었다. 그밖에 그들은 양 한 마리를 현관에 매어 두고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그것은 그 지역의 풍속으로서 우리에게는 설과 같은 
        명절에 해당된다. </p>
      <p>물론 부유한 여자들은 명절이 돌아오기 전에 모든 것을 준비해 두었다. 가정에는 곡물과 귀중한 물건으로 가득 찼고 어린애들은 
        모두 아름다운 옷을 입었다. 그리고 현관에는 한 마리의 양을 매어 두었다. 그러나 그 가난한 여인은 아무것도 없었다. 새 옷을 
        사다가 어린애에게 입힐 수 없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할 수 없이 헌옷을 내다가 깨끗이 빨아 어린애들에게 입힐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헌옷을 강변으로 가지고 가서 깨끗이 빨았다. </p>
      <p>옷을 빨고 있을 때 한 수행자가 그곳을 지나가다가 그 부인이 강변에 있는 것을 보고 이렇게 물었다. “뭐 하십니까?” 부인은 
        “옷을 빨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수행자가 계속 묻기를 “명절을 위해 풍성한 음식을 준비해 두었습니까?” 하자 그녀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집이 가난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기가 좀 쑥스러워 할 수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아! 저는 신을 찬미하고 
        신께 감사드립니다.” 그 수행자는 그 말을 듣고는 “아멘.”이라고 했다. 그 뜻은 그녀를 축복한다는 의미였다. 그후 그는 또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자신을 위해 그리고 어린애들을 위해 새 옷을 준비해 두었습니까?” 그러자 그녀는 똑같이 “최고의 신을 
        찬미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수행자는 그 말을 듣고 또 “아멘.”이라고 했다. 그후 또 그는 “당신은 신에게 
        공양할 양 한 마리를 현관에 준비해 두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 부인은 당연히 준비하지 못했다. 할수 없이 또 “신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수행자도 그 말을 듣고 똑같이 “아멘.”이라 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p>
      <p>부인이 옷을 빨고 집에 돌아와 보니 모든 것이 변해 버린 것을 발견했다. 집에는 풍성한 음식물과 돈이 가득 차 있었고 옷장에는 
        아름다운 새 옷들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현관에는 한 마리의 양이 매여 있었다. 그녀는 정말 대단히 즐거웠다. 방금 전 강변에서 
        만났던 그분은 성자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알았다. 옆집의 부유한 여자는 가난했던 그녀가 하루아침에 어떻게 그렇게 부자로 변할 수 
        있었을까 하고 그녀에게 달려가 물었다. 그녀는 옆집의 부유한 여자에게 강변에서 옷을 빨고 있는 동안 한 분의 수행자를 만나게 
        되었던 일을 모두 알려 주었다. 그 부유한 여자는 집에 돌아가 재빨리 가장 더러운 걸레들을 꺼내 강변으로 빨러 나갔다. 그 수행자를 
        만날 수 있는지 살피던 중에 그녀는 그 수행자를 만나게 되었다. </p>
      <p>그 수행자는 그녀가 강변에 있는 것을 보고는 똑같은 질문을 했다. “뭘 하고 계십니까? 집에는 명절을 새기 위해 풍부한 음식물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그녀는 바로 “저는 가련하고 가난한 사람입니다. 저는 아무 음식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수행자는 
        그 말을 듣고 “아멘.”이라 했다. 그리고 또 “자신과 어린애를 위해 새 옷을 준비해 두었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녀는 또 
        “저는 새 옷이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지금 더럽고 헤진 베를 빨고 있는 것을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똑같이 “아멘.”이라 했다. 그리고 또 “현관에 한 마리의 양을 준비해 두었습니까?” 하고 묻자 그녀는 “없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또 “아멘.” 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그 부유한 여자는 아주 즐거워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집에 아주 많은 재물로 가득 찼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돌아와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음식물, 새 옷 그리고 양 모두 보이지 
        않았다. 원래 그 수행자는 인도의 아주 유명한 큰스승이었다. </p>
      <p>이 이야기로부터 우리는 그 가난한 부인이 모든 것을 신께 맡겨 버렸다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 그녀는 신께 감사했다. 그리고 
        꼭 신이 자신을 돌봐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큰스승도 그녀에게 그렇게 되기를 축복했다. 그러므로 그런 가난한 상황에서 
        모든 것이 풍요로운 상태로 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또 다른 부유한 여자는 분수에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원래 신은 그녀에게 
        아주 많은 것을 내려 주었지만 그녀는 아직도 분수에 만족하지 못했다. 큰스승이 그녀에게 무엇을 물으면 그녀는 심한 원망을 하며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했다. 큰스승은 똑같이 그녀를 축복했다. 그 결과 아무것도 없게 변해 버렸다. 이것은 그녀 자신이 선택한 
        것이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p>
      <p>계속해서 스승님은 이렇게 평하셨다. “마찬가지로 내 제자 중에도 그녀와 똑같은 사람이 있어요. 스승과 같은 곳에서 스승을 모시고 
        가까이 거주하고 항상 스승을 볼 수가 있지요. 그것은 가장 큰 축복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여전히 분수를 모르고 이것저것을 
        요구합니다. 체험이 없다고 원망한다든가, 스승이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그리고 자신과 함께하지 않는다고 원망을 합니다. 
        정말 한심한 노릇입니다. 늘 스승을 보고 있는 여러분들로서는 스승을 단 한 번이라도 직접 보고 싶어하지만 보지 못하는 다른 나라의 
        아주 많은 사람들의 갈망 어린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울락이나 미국, 그리고 중국 본토의 어떤 사람이 보고하기를 그곳의 
        갈망하는 사람들은 스승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스승의 제자들을 본다고 합니다. 스승의 제자가 재가자든 출가자든 가리지 않고 모두 
        그들을 존경하고 예를 올리는데 그들을 성인으로 간주한다고 합니다.” </p>
      <p>여러분은 스승님 곁에 있는 제자이거나 포모사 동수들로서 항상 스승님을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스승님은 이미 여러분에게 가장 
        우수한 법문을 전해 주셨다. 여러분은 마땅히 분수에 만족해야 옳다. 다시 무엇을 더 요구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때로 요구가 
        지나쳐 눈앞에 주어진 복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때가 있다. 분수에 만족하지 못하면 어느 날엔가 그 부유했던 부인이 갑자기 가난한 
        여인으로 변해 버린 것과 같은 꼴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오늘날 이 자유스럽고 부유한 나라에 살면서 최고의 법문을 수행하고 
        있다. 각지에 우리의 수행을 위한 센터가 마련되어 있다. 또 스승을 항상 볼 수 있으니 그것은 이미 엄청난 복이 아닐 수 없다. 
        마땅히 조용히 이를 향유해야 옳다. 너무 원망해서는 안 된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25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13 Mar 2004 15:14:24 +0900</dc:date>
</item>


<item>
<title>아름다운 아내</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79</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글/ 동료수행자 짱, 
        포모사 미아오리</p>
      <p> 스승님이 홍콩을 방문하셨을 때 어느 동수가 스승님께 말하기를, 자기는 입문한 지 오래되었는데도 아직 스승님의 자장을 느낄 
        수 없는 데 반해 기공을 하는 자기 친구는 스승님의 견본책자를 읽기만 했는데도 어떤 감응을 받았다고 했다. 그의 친구는 스승님의 
        큰 사진을 보았을 때 엄청난 자장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p>
      <p>그는 스승님께 “왜 입문한 사람의 감응이 비입문자의 감응보다 덜합니까?”라고 물었다. 스승님은 매우 명확한 예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 “당신에게 매우 아름다운 아내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오랫동안 매일 그녀를 보게 되면 거기에 익숙해져서 무관심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당신의 특별한 감정은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나 멀리서 당신의 친구가 왔을 때 그는 
        당신 아내의 아름다움을 대단히 찬탄할 것입니다. ‘오! 자네의 아내는 너무나 아름답군.’ 당신의 아내를 처음 보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녀가 매우 아름답다고 느낄 것입니다.”</p>
      <p> 후에 그의 친구도 입문했다. 선칠(禪七)에 참가하기 위해 포모사에 왔을 때 그는 첫날 아주 강력한 에너지, 스승님의 자장을 
        느꼈다. 이것이 처음으로 스승님을 직접 본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말하기를 큰 사진에서보다 직접 느낀 스승님의 자장은 2배 이상 
        강하다고 했다. 그의 체험에 따르면, 스승님의 사진이 클수록 자장과 가피력은 더 강하다고 한다. 선칠(禪七) 이틀째 스승님의 
        자장에 대한 그의 감응은 점점 약해졌고 그 다음날은 거의 없을 정도로 감소했다. 그것은 그가 이미 스승님의 자장에 순응되었기 
        때문이며 또한 그의 진동(바이브레이션)이 스승님에 의해 정화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향기를 맡을 때와 같다. 우리의 후각신경이 
        자동적으로 적응됨으로써 잠시 후 우리는 그 향기에 익숙해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더 이상 향기를 맡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그곳에 여전히 존재한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25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13 Mar 2004 15:09:12 +0900</dc:date>
</item>


<item>
<title>이 세상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詩)를 읊으시는 스승님</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78</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칭하이 무상사/ 1991. 
        8. 18.</p>
      <p><font color="#993366">어느 날 저녁, 스승님과 제자들이 보물정 앞에서 차를 들고 있었다. 그때는 중국인들의 
        발렌타인데이 바로 직후였다. 그와 같은 분위기에 자극을 받아 스승님은 전에 당신이 쓰셨던 어울락어로 된 몇 편의 사랑의 시를 
        읊으셨다. 그 시들이 아주 아름답게 들려서 제자들은 실제로 도취되어 버렸다.</font></p>
      <p><font color="#993366">“수행자들은 감수성이 아주 예민해요. 그들의 수행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감수성도 더욱 
        깊어집니다. 그들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마지막이 될지 모릅니다. 그들은 깜짝 놀라게 될 겁니다.”</font></p>
      <p><font color="#993366">최근에 약간의 베트남 시인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이 쓴 시의 주제는 그들 나라의 
        슬픔과 멸망, 피난과 전쟁 등에 모아지고 있습니다. 이들 시가 너무 의기소침하게 들려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지가 않군요. </font></p>
      <p><font color="#993366">그러나 몇 편의 아주 좋은 시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의 시는 이래요.</font> 
      </p>
      <p><br /><font color="#F3038D" face="바탕체">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은하계의 멀리 떨어진 구석에서 <br />
        우리는 우리의 지구를 돌아다보네. <br />
        우리는 고개를 돌려 우리의 지구를 보네. <br />
        정말로 밝게 빛나는구나! <br />
        왜 지구가 그렇게 행복하게 보이느냐고 묻는다면? <br />
        거기에는 당신이 있으니까 지구가 아름답다고 대답하겠네.</font></p>
    <p><br /><font color="#993366">이것은 의미가 단순하면서도 편안합니다. 은하계의 한구석에서 내려다보면 우리의 지구가 밝게 
        빛나는 것을 보게 되고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지구가 왜 그렇게 행복한가? 혼자 대답합니다. 당신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아름답고 즐겁고 행복하고 기쁘다고 말이에요.</font></p>
      <p><font color="#993366"> 이 시는 이런 식으로 읊조려야 되며 여러분이 자신의 시를 평이하게 읊듯이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시를 읊조리는 방법은 다릅니다. 여러분 듣고 싶나요? 그것은 매우 짧아요. 우리는 시를 읊을 때 플루트를 연주하여 
        소리가 더욱 아름답게 하곤 했습니다. 이제 내가 자연스럽게 해보겠어요. </font></p>
      <p><br /><font color="#FF0099" face="바탕체">은하계 아득히 먼 곳에서 <br />
        고개 돌려 반짝이는 지구를 보네.<br />
        왜 지구가 그렇게 밝은지 물어본다면 <br />
        그것은 지구에 당신이 있기 때문이오.<br />
        -베트남 시인 비 큐(Vi Khue)</font></p>
      <p><br /><font color="#993366">여러분 이해할 수 있겠어요? 정말 이해합니까? 이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 목소리가 오늘은 
        좋지 않네요. 이 시의 의미는 이래요. “은하계의 외진 구석으로부터 내려다보면 우리의 지구는 매우 밝다. 행복한 이유가 뭘까? 
        그것은 당신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font></p>
      <p><font color="#993366">매우 편안하지요! 한두 줄이면 충분하고 그 이상은 필요치 않아요. 일본인들도 시를 이런 
        식으로 한두 줄로 씁니다. 그렇지요? 중국과 어울락 사람들이 쓴 시는 때로 너무 길어요. 그들 역시 좋은 시를 갖고 있습니다. 
        짧은 시와 긴 시도 좋은 점을 갖고 있지요. 나는 내가 사랑에 빠졌을 때 많은 시를 썼어요. 그러나 지금은 한두 편만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죠.</font></p>
      <p><br /><font color="#FF0099" face="바탕체">당신이 그리워 하루하루가 너무 길어요.<br />
        단지 한 뼘만 떨어져 있어도 <br />
        수천 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아요.<br />
        당신을 그리워하는 나의 슬픔은 <br />
        독한 술 없이도 날 취하게 만들어요.</font></p>
      <p><br /><font color="#993366">이 시는 다른 운율을 가지고 있어요. 이 시의 의미는 이래요. ‘왜 하루가 그렇게 길까요? 
        왜냐하면 내가 당신을 매우 보고 싶어하니까요. 내가 당신을 생각할 때 하루가 긴 거예요.’ 이것이 이 시의 의미예요. 내가 당신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루가 긴 것입니다. 하루가 짧다면 나는 당신을 생각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있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가 긴 것입니다. 왜 하루하루가 그렇게 길까요? 왜냐하면 내가 당신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의미하는 것은 하늘이 
        하루하루를 길게 만들기 때문에 나는 기억할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긴 날들을 가지는 목적입니다. 이해하겠어요?</font></p>
      <p><font color="#993366"> 여러분이 전혀 낭만적이지 않아서 난 포기하겠어요. 이와 같은 세세한 설명이 있음에도 
        여러분은 여전히 어리석게 보입니다. 나는 낭만적인 분위기 없이는 시 낭송을 계속할 수 없습니다. 나의 연인을 생각하고 기억하는 
        데 더 오랜 날들이 소요됩니다. 나는 누구를 그리워하는지를 말하지 않았고 단지 어떤 사람, 나는 그 사람이 그립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말해 볼까요? 우리는 서로 몇 센티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몇 센티미터만 떨어져 있어도 수천 마일 떨어져 있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건 내가 너무나 수줍어서 그에게 나의 사랑을 표현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단지 가슴속에 사랑을 간직할 수밖에 없었어요. 좋은 시를 쓰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마세요. 알겠어요? 그 사람은 내가 시를 쓰는 데 도움을 주는 하나의 수단일 따름이에요. 그 사람의 정체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마세요. ‘서로가 그리워하는 슬픔은 독한 술을 전혀 마시지 않고도 그대를 취하게 하고 자아도취 시키게 할지 모른다.’ 글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상하네요. 나는 단지 오늘 그들을 기억할 따름입니다. </font></p>
      <p><font color="#993366">나는 병원에서 동경하거나 소위 연애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포함하여 그들 모두를 적어 
        놓지 않았습니다. 나는 감히 손을 잡거나, 눈을 쳐다보거나, 가슴속의 사랑하는 마음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씌어져 있지 
        않아요. 여러분 이것을 읽은 적이 있어요? 글쎄, 나는 최선의 것을 쓰지 못했어요. ‘서로가 그리워하는 슬픔, 독한 술을 마실 
        필요가 없는 것, 독한 술을 마실 필요 없이 취하게 되는 것.’ 그것은 어울락어로는 다르게 들립니다. 내 번역이 좋지 못합니다. 
        내 메시지는 매우 아름답게 전달되었어요. 어울락어로는 매우 아름다워요. </font></p>
      <p><font color="#993366">내가 잊어버린 또 하나의 시가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것을 기억했는데 다시 잊어버렸어요. 
        내가 생각하기에 그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 시의 의미는 이래요. </font></p>
      <p><font color="#993366">“어느 날 저녁, 쓸쓸한 저녁이었어요. 누군가가 몹시 그리워졌어요. 바람과 빗소리가 
        우울하게 들렸고 내가 듣는 어떠한 소리도 모두 다 우울하게 들렸어요. 세계의 모든 우울감을 나 혼자 견뎌내야 하는 것처럼 모든 
        세계의 절망감이 내게 전해졌어요.” 아주 아름다운 시예요! 나는 그런 분위기를 소생시킬 수 없습니다. 나는 단지 의미만을 기억합니다. 
        역시 아름답지 않나요? 연인들 사이의 동경은 시로 쓰더라도 아름답지요. 내가 조금 기억하는 또 하나의 시가 있습니다. </font></p>
      <p><br /><font color="#FF0099" face="바탕체">나는 그대가 그리운데 누가 그 이유를 알겠는가.<br />
        당신의 악기로 이국적인 선율을 연주해 주오.<br />
        사랑은 아름다운 장미와 같은 것.<br />
        하지만 그로 인해 고통스러울 수 있다오.</font></p>
      <p><br /><font color="#993366">4행뿐이에요. 여러분은 이 시가 아름답게 들린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주 좋습니다.) 
        나는 틀에 얽매이거나 힘들이지 않고, 그저 자연스럽게 암송했습니다. 왜 그 사람이 보고 싶을까요? 왜 우리는 그를 그리워할까요? 
        그 사람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여백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어울락 시인들의 시는 이런 식으로 여백을 사용합니다. 누가 
        동경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는데, 그건 역시 의미가 없을 겁니다. 단지 서로가 그리워하는 것을 말하면 되지요. 그렇지 
        않아요?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왜 우리가 서로 사모하는지 아무도 모른다오. 제발 아름다운 곡을 연주해 주오. 당신의 
        악기로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해 주오. 사랑은 장미처럼 아름답고 황홀하지만 역시 가시가 있다오.’ 바로 이와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예.”) 어떻게 알지요? (모두 웃음) 당신은 전에 사랑해 본 적이 있나요? 당신 대답은 그렇게 달콤하게 들립니다. 
        </font></p>
      <p><font color="#993366">내가 중국인들의 발렌타인데이 전에 여러분에게 이들 시를 읽어 주었어야 했는데, 지금은 
        너무 늦었네요. 그것이 전부예요. 나는 내가 쓴 사랑의 시 중 두세 편밖에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들 시가 짧을지 모르지만, 
        의미 있고 매우 심오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은 이들 시를 들은 뒤에 어떤 정감이나 감상이 떠오르지 않나요? 내 말을 이해합니까? 
        여러분은 그 당시 내 마음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겠어요? 그래요? 이상하네요! 나는 잘 기억할 수가 없어요. </font></p>
      <p><font color="#993366">오, 맞아요! 나는 좀더 기억해요. 나는 오늘 모두를 기억할 수 있어요. 오늘은 발렌타인데이가 
        아니에요. (어떤 사람이 오늘은 입문식 날이므로 발렌타인데이로 여겨도 된다고 말함.) 그것은 인과응보의 방해물과 같이 인과응보의 
        사랑입니다. 업장의 업(業)처럼, 사랑의 업이지요.</font></p>
      <p><font color="#FF0099" face="바탕체"><br />
        신께서 작은 제비를 벌하시어 <br />
        강가에 떨어뜨리셨네.<br />
        어느 날 저녁 폭풍우가 휘몰아쳐 <br />
        제비의 날개를 부러뜨렸네.<br />
        제비는 쓰디쓴 열정의 포도주를 맛보았네.<br />
        그리고는 하늘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렸네.</font></p>
      <p><br /><font color="#993366">멋있게 들리나요? 이 시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신께서 작은 제비를 벌하시어 떨어지게 
        하셨네. 신은 작은 제비를 강가에 떨어뜨렸네. 그날 저녁 폭풍우가 휘몰아쳐 제비의 날개를 부러뜨리고 제비는 열정의 포도주를 마셨네. 
        제비는 천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렸고 길을 잃게 되었네.’ 이해하겠어요? 멋있게 들립니까? 누가 이런 정도로 사모해 본 적이 
        있나요? 등장인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단지 그 속에 있는 감정이 중요합니다. 그림자이고 실루엣에 불과한 사람들은 무시해야 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들 자신만을 사랑하고 우리들 자신이 만들어 낸 꿈을 사랑하지요. 그들은 때로 백일몽을 꾸고, 때로는 밤에 
        악몽들을 꾸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내가 지금 시들을 잘 낭송했나요? 정말이에요? 시를 쓰는 것은 쉽지만 
        낭송할 수 있다면 더욱 좋지요. 어떤 시들은 나무토막 같은 소리가 나기 때문에 낭송할 수가 없습니다. 선택된 톤이 좋지 않기 
        때문에 운율이 아름답지 못하지요. 그들은 조화를 잘 이루지 못합니다. 그렇지요? 자연스럽지 못해요. </font></p>
      <p><font color="#993366">내가 생각하기에 아까 낭송해 준 시들은 좋습니다. 그 시들은 멋있게 들립니다. 그 밖에 
        무엇이 또 있을까요? 글쎄, 다 말한 것 같군요! 나는 오늘 나의 비밀스런 국가적인 보호막을 다 드러내 보였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지 마세요. 이것들은 과거의 일입니다. 여러분은 나를 감성이나 정감이 없는 목불 같은 존재로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천만에요! 
        그렇지 않아요. 가장 감성적인 사람이 정신적인 수행에 가장 적합합니다. 정신적인 수행자들은 가장 감성적입니다. 수행을 하면 할수록 
        그들은 더욱 감성적인 사람이 됩니다. 이해하겠어요? 그들이 누구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끝나게 됩니다! 그들 둘, 즉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 그 자신은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우리 수행자들이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백 배의 강도로 확대되니까요. 따라서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해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우리의 감성을 우리 자신을 양육하는 연료로 사용하도록 합시다! 만일 
        우리가 여기서 그것을 낭비해 버린다면 우리는 진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더 진보할 수가 없습니다. 좋아요.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font></p>
      <p><font color="#993366">흔히 여러분은 나를 위해 시를 낭송하려고 하지만 결국에는 내가 여러분에게 낭송하게 됩니다. 
        이상하지요. 세상은 거꾸로예요. 언제나 이와 같아요. 그 이유는 여러분이 낭송하는 능력이 너무나 나빠서 내가 참을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모두 웃음) </font></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26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13 Mar 2004 14:57:21 +0900</dc:date>
</item>


<item>
<title>스승님과 제자의 행복한 재회</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77</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M: 스승님, T: 
        스승님의 초등학교 선생님, D: 제자<br />
        (원문 어울락어) </p>
      <p> 스승님은 하늘이 내려 주신 선물이다. 스승님의 빛나는 천재성은 어렸을 때에도 명백했다. 스승님의 선생님들은 그와 같이 명석한 
        학생을 두게 되어서 매우 기뻐했다. 그들은 스승님을 진정으로 사랑했다. 스승님의 초등학교 선생님 중의 한 분(지금은 관음법문 
        수행자)이 솔직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승님은 제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안 가장 특출한 학생이었습니다.” 과거의 학생과 
        선생님은 30년이 지나 스승님과 제자로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감동적이고 매우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글의 내용은 
        그들 사이의 아름다운 대화를 담고 있다. 재회는 선칠이 있기 전 핑뚱의 라이이 센터에서 있었다.</p>
      <p><font color="#003333">M: 내가 어렸을 때 모든 나의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나를 매우 사랑했습니다. 맞습니까? 
        </font></p>
      <p> <font color="#336666">T: 예.</font></p>
      <p> <font color="#003333">M: 예. 그리고 선생님은 그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매우 사랑했습니다. 
        선생님이 지금 나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그들도 나를 사랑했습니다. 맞습니까? </font></p>
      <p> <font color="#336666">T: 예.</font></p>
      <p> <font color="#003333">M: 예. 예. 선생님들은 나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모든 선생님들은 언제나 나한테 
        와서 내 손을 잡았습니다. 그들은 나한테 노래하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나를 사랑했습니다. 나는 기억합니다. 
        아주아주 많이! 나를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부모나 어떠한 누구보다도 더 나를 사랑했습니다. 나는 언제나 기억합니다. (이 초등학교 
        선생님은 스승님께 거기에 참석한 동수들에게 더 말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font></p>
      <p> <font color="#336666">T: 사랑하는 스승님과 동수님. 저는 스승님과 인연이 참 깊습니다. 스승님이 어렸을 
        때… 제가 지금 나이를 잊었지만 스승님의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아마 1962년 또는 
        1963년경이었을 겁니다. 스승님은 가장 뛰어난 학생이었기 때문에 결코 잊을 수 없었습니다.</font></p>
      <p><font color="#336666"> 스승님은 어린 시절부터 채식을 좋아했습니다. 스승님은 가슴으로 모든 종교 경전들을 
        알았습니다. 비록 제가 스승님의 선생이었지만 스승님이 쓰신 글을 읽을 때는 두 손을 모으고 스승님께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승님은 반 학생 중에서 제일 작았지만 모든 분야에서 특출하고 제일 잘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스승님, 제가 청중들에게 스승님에 
        관하여 얘기한 것을 용서해 주세요. 저의 모든 교사 재직 기간 중 스승님은 아주 뛰어난 학생이었습니다. 제가 교사이면서 교장이었기 
        때문에 저는 자리를 비울 때마다 스승님께 저를 대신하여 수업을 해줄 것을 요청하곤 했습니다. 스승님은 어울락 문학과 수학을 잘하셨으며, 
        반에서 항상 일등을 했습니다. 이등을 한 학생은 스승님보다 훨씬 아래였습니다. </font></p>
      <p> <font color="#003333">M: 나는 이런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font></p>
      <p> <font color="#336666">T: 저는 아직도 분명히 기억합니다. 예를 들면, 스승님의 점수가 90이나 100점이면 
        이등을 한 학생은 단지 70점 정도였습니다. 스승님이 가지신 또 다른 능력으로는, 스승님은 키가 가장 작았지만 운동할 때 여자들 
        중에서 가장 멀리 뛰었습니다. </font></p>
      <p> <font color="#003333">M: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font></p>
      <p> <font color="#336666">T: 현재의 스승님의 다재다능함을 저는 이미 보았습니다. 수줍어하시는 스승님은 시를 
        낭송하고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많은 다른 과목들에서 우수했습니다. 스승님은 그림그리기를 포함하여 모든 면에서 우수했습니다. 
        학년말에 스승님은 2개의 큰 상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는 반에서 1등을 한 것이고 두 번째는 학교 전체에서 1등을 한 것입니다. 
        스승님은 아주 우수했습니다. 스승님은 어렸지만 반에 무슨 일이 있으면 스승님은 순진한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처럼 제게 와서 상의하곤 
        했습니다. </font></p>
      <p> <font color="#003333">M: 선생님은 기억을 잘하지만 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font></p>
      <p> D: 왜냐하면 스승님은 아주 특별했기 때문입니다. </p>
      <p><font color="#336666">T: 동수들과 비교할 때 저는 스승님을 받아들이기가 약간 어려웠습니다. 여러분은 전에 
        스승님을 몰랐기 때문에 쉬웠을 것입니다. 스승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왜냐하면 처음 몇 달 동안 저는 언제나 마음속에 옛날 
        학생의 얼굴을 떠올리게 되어서 명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스승님이 저를 축복해 주신 이후로 저는 스승님이 매우 그리웠습니다. 
        지금도 스승님을 매우 그리워합니다. 다만 몇 마디로써 스승님을 여러분에게 소개했습니다. 제 말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font></p>
      <p> <font color="#003333">M: 나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선생님 맞아요? 이 모든 것이 다 사실인가요? 
        </font></p>
      <p> <font color="#336666">T: 그것은 사실일 뿐 아니라 110% 사실입니다. 제가 과거로 돌아가서 제 내부의 
        경험을 얘기하는 것이라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여기 있는 동수들은 저보다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스승님이 제가 얘기하는 것을 
        허용하시므로 저는 몇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에 저는 믿지 않았기 때문에 스승님께 가까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제게는 
        미국 오하이오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는 저에게 스승님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비디오테이프와 사진을 보내 
        주었습니다. 현재 뉴저지 센터에 거주하고 있는 탕이라는 동수가 앞표지에 스승님의 사진이 실린 견본책자를 보내 주었습니다. 스승님은 
        나이가 들었으므로 저는 즉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책에서 저는 스승님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오, 이상하다. 
        왜 이분이 친밀하게 느껴질까?” 그러나 저는 기억할 수가 없었고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단지 약간만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친척이 갑자기 전화를 걸어 “너 칭하이 스승님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모른다. 나는 단지 
        칭하이 스승님은 관음보살(깨달은 존재)의 화신이라고 누가 말하는 것을 들었을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그 당시 스승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의 전부였습니다. 그러자 제 친척은 “아니, 내가 의미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고 그 밖의 다른 것을 뜻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 밖의 무엇을?”이라고 하니 친척은 “그녀는 네가 가르치던 학생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그런 농담 그만둬. 그것은 불가능해, 그것은 불가능해. 아니야. 그녀가 내가 가르친 학생이었다는 것은 불가능해. 그렇게 놀리지 
        마.” 그때 당시 저는 스승님이 제가 가르치던 학생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후 저는 스승님과 접촉하게 되었습니다. 1991년 
        3월 17일 스승님은 가족들을 방문하기 위하여 고향에 오셨습니다. 불행하게도 저는 바빠서 가지 못했습니다. 처음부터 저는 많은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사실인가?”라고 물었습니다. 동수 여러분께서 저를 용서해 주세요. 1970년 이후 저는 
        명상을 알게 되었으며 진리에 대해 열망해 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만났던 스승은 영적으로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스승님의 책을 한 권 읽게 되었습니다. </font></p>
      <p><font color="#336666">첫 부분을 읽은 후에도 저는 여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왜 제가 계속해서 읽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스승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저는 이층에서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갑자기 제 다리를 반듯이 하고 “나모 칭하이 우쌍스.” 하고 외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스승님의 책은 대단한 축복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책을 읽었고 다리도 반듯이 했습니다. 저는 단지 “나모 칭하이 우쌍스.”가 아니고 “나모 칭하이 
        우쌍스 부처님.” 하고 외었습니다. 저는 부처(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존재)라는 단어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왜 그렇게 
        큰소리로 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처럼 세 번 반복했습니다. 저는 집안을 걸어 다녔습니다. 현관문을 닫고 큰소리로 외면서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제가 왜 그랬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는 저 자신에게 “오, 내가 왜 이처럼 행동하고 있지?”라고 말했습니다. 그 뒤에 
        스승님께 편지를 써서 스승님의 안부를 여쭙고 입문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일주일 후에 스승님은 입문식을 하기 위해 길로이(Gilroy)에 
        오셨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1991년 5월 10일까지 머물렀으며 그후 로스앤젤레스로 가서 입문을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기 위하여 모든 것을 면밀히 관찰했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입문한 이후 지금까지… 글쎄, 
        아마 스승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것 같았습니다. 스승님은 우리가 도달해 있는 수준을 이미 알고 그에 따라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저는 여러분들과 같이 부지런히 수행하고 스승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스승님께 보여 주고 우리가 스승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말로써가 
        아닌 행동으로 보여 주기 위하여 언제나 노력합니다. 스승님을 사랑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font></p>
      <p> <font color="#003333">M: 친애하는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되어 나는 매우 기쁩니다. 그는 여전히 나의 선생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아직도 그를 존경합니다. 나는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내가 어렸을 때 나를 가르쳐 주신 
        데 대해 감사합니다. 선생님,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지가 얼마나 됐지요? </font></p>
      <p> <font color="#336666">T: 30년이 됐습니다.</font> </p>
      <p><font color="#003333">M: 30년이나요?</font></p>
      <p> <font color="#336666">T: 그때는 1962년이었고 올해는 1992년입니다. </font></p>
      <p> <font color="#003333">M: 선생님은 그때와 별로 다르지 않군요.</font></p>
      <p> <font color="#336666">T: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습니다. </font></p>
      <p> <font color="#003333">M: 선생님은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아직도 젊어 보이십니다. 
        </font></p>
      <p> D: 매우 젊게 보여요.</p>
      <p> <font color="#003333">M: 그는 매우 젊게 보입니다. 그는 그렇게 많이 변한 것 같지 않군요.</font></p>
      <p> D: 맞습니다. </p>
      <p><font color="#003333">M: 그래서 나는 그를 즉시 알아보았습니다. </font></p>
      <p><font color="#336666">T: 우리 애들보다는 나이가 많지만 스승님의 부모님보다는 젊습니다. 스승님, 고맙습니다. 
        </font></p>
      <p><font color="#003333">M: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어떠신가요? 다른 선생님들을 
        보신 적이 있으세요?</font></p>
      <p> <font color="#336666">T: 아니오. 저는 그분들은 본 적이 없습니다. </font></p>
      <p><font color="#003333">M: 와! 내가 어렸을 때 교장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들은 진정으로 나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사랑했습니다. </font></p>
      <p><font color="#336666">T: 스승님은 어렸을 때 매우 작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승님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우리는 스승님의 머리를 어루만졌습니다. 만일 학급에서 무언가 할 일이 있으면 스승님이 모두 다 하곤 했습니다. 스승님이 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학생들을 교대로 가르치는 선생님이 두 분 있었습니다. </font></p>
      <p><font color="#003333">M: 나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font></p>
      <p><font color="#336666">T: 아주 잘하셨어요. 스승님은 아주 뛰어났어요. </font></p>
      <p><font color="#003333">M: 그것이 사실인가요, 선생님? 정말로요?</font></p>
      <p> <font color="#336666">T: 스승님은 수학 문제를 설명할 수가 있었고,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었고, 모든 
        주제에 대해 설명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2명의 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font></p>
      <p><font color="#003333">M: 아니오. 그렇지는 않습니다.</font> </p>
      <p><font color="#336666">T: 스승님, 스승님은 잊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교사이면서 동시에 교장으로서 학급을 
        돌볼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쉬운 과목이나 문법 같은 경우 저는 스승님께 수업 시간 전에 교재들을 주곤 했습니다. 때로 
        저는 뒤에 서서 스승님이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스승님은 수학을 설명했는데 아주 잘했습니다. 스승님은 매우 참을성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모든 일을 아주 잘하셨습니다. 한번 가르치면 그것이 크든 작든 간에 스승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가 있었습니다. </font></p>
      <p>D: 와!</p>
      <p> <font color="#336666">T: 모든 것을 하셨습니다. 스승님은 학급에서 키가 제일 작았지만 자발적으로 모든 
        것을 하셨습니다. 저희 학급에서 좌석 배열은 뒤에 앉은 학생이 칠판을 볼 수 있도록 작은 학생이 앞좌석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스승님은 언제나 코너에 있는 앞쪽 책상에 앉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매우 잘 기억하며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제가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스승님을 뵈었을 때 저는 즉시 알아봤습니다. 학급에서 키가 제일 작았습니다. </font></p>
      <p> <font color="#003333">M: 선생님, 학교에서 제일 작았지요.</font></p>
      <p> <font color="#336666">T: 작았지만, 말하자면 외모는 작았지만 내면은 매우 컸습니다. </font></p>
      <p><font color="#003333">M: 그는 내부의 불성(우리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font></p>
      <p> <font color="#336666">T: 존경하는 스승님. 육체가 강건하면 영혼은 작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 사람들은 
        키가 크지만 내부, 내면의 마음은 작습니다. </font></p>
      <p><font color="#003333">M: 선생님은 나를 너무나 칭찬하십니다. 나는 이런 모든 것을 잊었습니다. 나는 단지 
        선생님이 나를 매우 사랑하신 것만을 기억합니다.</font> </p>
      <p><font color="#336666">T: 선생님들이 스승님을 최우수 학생으로 선정했었습니다. 그리고 스승님은 그해에 학교를 
        졸업하셨는데 그것은 나만이 아는 것이 아니고 학교 전체가 알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스승님께 감사드립니다.</font> 
      </p>
      <p><font color="#003333">M: 선생님의 찬사의 말씀과 내가 어렸을 때 가르쳐 주신 데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읽고 쓸 수가 있으며 덕망스러울 수가 있습니다. </font></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26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Sat, 13 Mar 2004 14:44:07 +0900</dc:date>
</item>


<item>
<title>사랑이란 스승님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76</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글/ 동료수행자/ 포모사 미아오리</p>
      <p> <span class="topic">자선 경매회의 요약 보고</span></p>
      <p> 스승님의 최근 세계 순회강연은 아주 많은 재정적 지원을 필요로 했다. 스승님은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스승님의 개인 물건을 
        경매하도록 내놓으셨다. 이런 기회에 제자들은 스승님 사랑의 또 다른 부분을 소장하게 되었다. 스승님은 항상 우리에게 이 세상의 
        어떤 물건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신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들이 덧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승님이 만지신 어떤 
        물건이든 우리의 자장을 높여 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들어 왔고, 보아 왔다. 2주 동안 아쉬람에서 온 동수들이 스승님의 식사 
        도구를 포모사의 모든 센터에 나누어 주었다. 모든 동수들이 이 경매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p>
      <p><br /><span class="topic">스승님의 비할 수 없는 자비심</span></p>
      <p> 스승님의 귀중한 물건들을 경매하기 위해 진열하자마자 동수들은 감사와 열망과 진지함으로 모여들었다. 동수들은 경매에서 물건을 
        사든 안 사든 점심 시간에도 경매장에 모여들어 스승님의 보물을 감상했다. 조용히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게 그들은 스승님의 사랑의 
        축복을 받았으며, 자선 경매가 끝났을 때 마지못해 그곳을 떠났다. 스승님이 ‘집’에 안 계시기 때문에 스승님의 개인적 물건을 
        보고 즐기는 것이 그들의 스승님에 대한 갈망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는 최고의 위안이 되었다. </p>
      <p>몇몇 사저들은 귀한 물건을 구입할 때 매우 진지해 보였다. 그들은 어떤 문제를 가지고 곰곰이 생각하는 듯이 보였다. 마침내 
        물건을 구입하고 나자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이 가보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공평하게 나누어 줄지에 대해 고심하게 되었다. 
      </p>
      <p>보통 때와는 반대로 어떤 사저는 스승님의 귀한 보물을 구입한 후 아주 행복하고 편안해 보였다. 마치 큰 짐을 벗은 듯한 느낌이었다. 
        입문을 하지 않은 그녀 남편조차 집의 자장이 달라진 것을 즉시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아주 엄청나게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어떤 
        외적 상황에 서서히 무관심하게 되었다. 그녀의 마음도 항상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후 그녀는 다른 몇 가지 물건을 더 구입해서 
        다른 동수들에게 선전하며 스승님의 비할 수 없는 사랑을 나누어 주었다.</p>
      <p><br /><span class="topic">어린 동수들도 자선 경매를 지지하는 데 똑같이 열심이었다</span></p>
      <p> 이 경매에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주 많았다. 어른 동수들이 물건을 사려고 싸울 뿐 아니라 돈을 전혀 벌지 않는 어린 동수들도 
        주저하지 않고 제(諸)비용 선불로 물건을 샀다. 자연히 그들은 나중에 돈을 지불하기 위해 부모를 데리고 왔다. 이 닦기를 싫어하는 
        한 어린 동수는 스승님의 치약을 골랐다. 그리고는 집에서 어느 누구도 이 치약을 못 만지게 하고는 매일 아주 열심히 이를 닦았다. 
      </p>
      <p>동수들은 모두 스승님의 물건은 값을 정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이해했기 때문에 경매 가격을 정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그들 주변에 있는 동수들은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 때까지 그 가격을 올리도록 부추겨서 입찰자들 또한 마음이 편안했다. 성공한 입찰자들은 
        보물을 받았을 때 아이들같이 진심 어린 미소를 지으며 기쁨의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어떤 동수는 스승님의 물건을 받자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런 영광스러운 날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전 지역에서 온 동수들은 하나같이 신의 은총에 감사했다.</p>
      <p><br /><span class="topic">놀라운 ‘매기’ 이야기</span></p>
      <p> 한 동수는 스승님의 장화 한 짝을 샀는데 그 장화는 스승님이 비바람 속에서 얼마나 열심히 일하셨던가를 생각나게 했다. 이 
        장화 한 짝이 그에게 수행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늘 상기시켰다. </p>
      <p>매기 소스에 관한 아주 놀라운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는 입문한 이래 스승님이 쓰시던 매기 소스 병을 사기 전까지 집식구들의 
        오해를 사 왔다. 그는 그 소스 병을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 말 없이 집으로 가져갔다. 놀랍게도 그의 식구들(입문하지 않은 
        사람들)은 뭔가 다른 것을 느꼈다. 그들은 스승님이 매일 밤 그들을 가르치고 축복해 주러 오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매기 소스 병을 그들에게 보여 주고 설명하면서 소스를 두 방울씩 나누어 주기까지 했다. 게다가 그 매기 
        병의 모양은 마치 관세음보살의 감로수병과 똑같아 보였다. 이 동수는 명상할 때 항상 한 손에 매기 병을 들고 있으면 스승님이 
        그의 가까이 계심을 느꼈다.</p>
      <p><br /><span class="topic">펑후의 보물</span></p>
      <p> 부처는 우리가 내면으로 진정 구하는 것을 항상 우리에게 주신다. 한 동수는 스승님의 물건을 사는 데 아주 열심이었다. 이 
        경매 차를 따라잡기 위해서 그는 한 단체명상지에서 다른 곳으로 서둘러 가곤 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연달아 세 번의 단체명상에 
        빠지게 되었다. 많은 고생 끝에 마침내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보물을 얻게 되었다. </p>
<p>        펑후의 외딴섬에 있는 우리 센터는 동수들이 얼마 안 되어 스승님의 세계 순회강연에 대해 들었을 때 단체로 스승님을 돕기로 자원했다. 
        어느 일요일 연락인은 경매장을 특별 방문하여 펑후 동수들이 살 수 있는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다른 동수들은 그가 손에 보물을 
        하나씩 쥐는 것을 보고 매우 부러워했다. 펑후의 동수들은 이런 드문 기회를 갖게 해주신 스승님께 감사드렸다. 이 사랑의 선물들은 
        이제 펑후의 보물이 되었다. </p>
      <p><br /><span class="topic">스승님의 옥 장식에서 나오는 엄청난 가피</span></p>
      <p> 얼마 후 경매진들은 아주 작고 귀중한 물건들을 내놓았다. 그들 중에는 중국식 매듭이 달린 옥 장식 세트가 하나 있었다. 한번만 
        봐도 스승님이 자주 쓰셔서 닳았음을 잘 알 수 있었다. 일하는 임원들이 말하기를 그 장식을 매우 좋아하시는 스승님은 그것을 주저하며 
        내놓으셨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 동수는 눈물을 흘리며 그것을 바로 사겠다고 결정했다. 그는 이 옥 장식이 스승님에 대한 
        자신의 갈망을 채워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경매 후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옥을 몸 가까이에 대자 특별히 의기충천함을 
        느꼈다. 차 안에서 잠을 잘 수가 없어서 그는 놀랐다. 그리고 다른 동수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사저 한 
        명은 경매하기 위해 스승님의 물건을 싸는 일을 도왔기 때문에 많은 낮과 밤을 잘 수가 없었다. 스승님의 가피력은 정말 위대하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28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Fri, 12 Mar 2004 11:59:12 +0900</dc:date>
</item>


<item>
<title>위대한 스승님은 위대한 화가이시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75</link>
<description><![CDATA[<br class="caption_2" /> 글/ 동료수행자 짜오, 
        포모사 타이난
      <p>작년 선삼 기간 중 서적 유통센터에서는 스승님이 쓰시던 물건을 파는 자선 경매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살아 있는 부처님이 쓰시던 
        그 보물 하나하나를 보다가 특별히 스승님이 쓰시던 유화 도구들에 푹 빠져서 그것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미술은 내 전공이니 스승님이 
        쓰시던 유화 도구를 가지고 스승님의 가피력으로 작품을 하게 됨으로써 내 작품을 사는 사람들에게 스승님의 가피를 전달해 주어 사람들이 
        살아 있는 부처의 사랑과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마침내 나는 그것을 사게 되어 매우 기뻤다. 어느 날 꿈에 스승님은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내 그림의 방향을 지시해 주셨다. 나는 스승님의 끝없는 사랑에 감사드렸다. </p>
      <p>올해 스승님은 세계 순회강연 중이시다. 중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홍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스승님은 기금 마련을 위해 당신이 아끼시는 
        물건들을 자선 경매회에 팔려고 내놓으셨다. 이런 사심 없는 정신은 스승님을 따르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아주 유익한 것이다. 
        자선 경매회에서 아주 강한 자장의 힘에 완전히 매료되어 경매장을 여러 번 돌았어도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갑자기 나는 스승님이 
        쓰시던 그림붓을 발견하고는 너무나 좋아서 그것을 얼른 경매에 부쳐서 결국 사게 되었다. 며칠 후 스승님은 꿈에 내게 다가와 다시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스승님! 당신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나는 스승님의 화구와 붓을 갖게 되었고, 그것은 
        내 화실에서 가장 좋은 화구 세트가 되었다. </p>
      <p>어느 날 나는 화실에 들어선 순간 갑자기 내가 어디서 그 붓을 보았던가를 알게 되었다. 스승님이 코스타리카에서 그림을 그리실 
        때 들고 계시던 붓이 바로 내가 산 붓이었다. 스승님, 고맙습니다. 당신은 모든 곳에 다 계시고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살아 있는 
        신이십니다. 당신의 모든 말씀 한마디, 모든 행동 하나, 그 모든 것이 중생들의 요구에 대한 대답입니다. 이제부터 스승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수행을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28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Fri, 12 Mar 2004 11:52:50 +0900</dc:date>
</item>


<item>
<title>결코 시들지 않는 사랑의 설화</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74</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글/ 거주자, 포모사 미아오리</p>
      <p>중국 연인의 날을 기념하며</p>
      <p><font color="#2C8357">[스승님과 함께 보내는 날들은 우리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들입니다. <br />
        2년 전 한여름 우리가 아직 ‘풋내기’였을 때를 회상해 봅니다. <br />
        우리들 가운데 몇 명이 중앙 부엌 한쪽에서 야채를 분류하고 있을 때, <br />
        긴 분홍색 옷을 입으신 스승님이 당신의 부엌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셨습니다. <br />
        그녀는 자연스럽게 작은 담장 위에 앉아 우리와 함께하시며 부드럽게 노래를 부르셨지요.<br />
        “우리는 모두 좋은 친구들. 손을 잡고 이 멋진 순간을 소중히….”] </font></p>
      <p>언젠가 스승님은, 스승과 함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스승이 단지 그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은 스승이 무엇을 
        하든 항상 그 일에 전력을 기울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비록 스승님은 세계 구석구석에 수천 명의 제자를 두고 계시지만 그들은 
        각자 스승님으로부터 완전한 보살핌과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스승님은 순수하고 진지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어디를 가더라도 
        온 우주적인 사랑의 힘이 즉시 뒤따를 것이다. </p>
      <p>그것은 사실이다! 여러분이 스승님과 대화를 나눌 때 스승님의 주의력으로 인하여 여러분은 온 우주에 당신 홀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만약 스승님이 여러분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보내실 경우 그때는 태양과 달과 별들이 어둠 속에서 여러분과 함께하게 
        될 것이다! 그와 동시에 사랑의 물결이 너무 강해서 가장 끈질긴 에고조차도 저항하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 버릴 것이다. </p>
      <p>오늘은 칠월칠석, 중국에선 연인의 날이다. 여기 스승님과 함께 보낸 며칠 동안에 일어난 재미있는 일화 몇 개를, 스승님을 사랑하는 
        모든 형제자매들과 나누고 싶다. </p>
      <p><br /><span class="topic">여장부의 출현</span></p>
      <p> 그 설화는 지금 시대에 일어나지 않았지만, 영혼을 감동시키는 사랑의 사건이 이 시대에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다. </p>
      <p>내가 선생님을 도와 시험 답안지를 교정하고 있을 때 한 급우가 뛰어 들어와서 마치 호외를 알리는 것처럼 큰소리로 “헤이! 칭하이 
        무상사가 강연하러 오실 예정이라는 포스터가 거리에 붙어 있는 걸 방금 봤어!”라고 했다. </p>
      <p>“뭐라고?” 나는 상세히 알아보기 위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포스터가 있다는 곳으로 곧장 달려갔다. 스승님의 사진을 보고 나는 
        스승님이 여자였기 때문에 너무 기뻤다. 나는 위대한 여장부가 나타나리라는 사실을 오랫동안 믿어 왔다. (나에게 있어서 남자영웅ㆍ여자영웅은 
        진정으로 위대한 남자ㆍ위대한 여자를 의미한다.) 나는 사진 속의 스승님에게 “당신이 마침내 이렇게 오셨군요!”라고 말했다. 나는 
        상세하게 강연 날짜와 장소를 적고는 잊어버릴까 봐 걱정이 되어서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계속 반복해서 외웠다. </p>
      <p>드디어 그날이 오자 나는 스승님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 나는 스승님의 모든 말씀을 믿었으며 즉시 그녀를 따르기로 결정했다. 
        강연 후에 나는 스승님께 말을 하고 싶어서 문 입구로 뛰어갔다. 미소를 머금으시며 다가온 스승님은 나를 깊이 응시하셨다. 마치 
        음악과도 같이 너무나 멋지고 심오한 스승님의 눈빛은 내 심장을 뚫고 들어갔다. 그 즉시 내 영혼은 완전히 포로가 되었으며, 그것은 
        이제까지 결코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느낌이었다! 또한 나의 소망은 그 순간에 긍정적인 대답을 얻었다. </p>
      <p>스승님의 눈빛은 지금까지도 나의 마음을 심하게 흔들고 있으며, 그것은 계속 내 마음의 골짜기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p>
      <p><br /><span class="topic">우주의 총아</span></p>
      <p> 스승님이 포모사에서 강연을 하시던 초기에, 스승님께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동수들이 만든 노래들을 강연 시작 전에 스피커에서 
        큰소리로 들을 수 있었다. 그 노래들은 들으면 들을수록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나의 게으름이 나 자신을 진리로부터 얼마나 멀리 
        떼어놓았나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이런 생각은 나를 더욱 슬피 울게 만들었다. 눈물은 끊임없이 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용솟음쳤다. 
        침묵 속에서 조용히 나는 자신을 정화하기 위하여 노력하기로 결심했으며 스승님으로부터 결코 떨어지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p>
      <p>잠시 후에 스승님께 갈 사람들은 모두 모이라는 스승님의 전갈을 듣고 나는 걸어가면서 여전히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려고 애썼는데, 
        나는 이것이 스승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의 징표라고 마음속으로 느꼈다. 스승님이 주시는 과일을 받기 위해 우리는 차례로 스승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내 차례가 되어 막 무릎을 꿇으려 하자 스승님이 앞으로 몸을 굽히시고는 “헤이! 필요 없어요. 괜찮아요.”라고 
        말씀하셨다. </p>
      <p>그리고 재빨리 쿠션을 꺼내서 내 무릎 아래에 놓으셨다. 이러한 예상치 못한 호의에 내가 얼마나 당황했던지! 나는 너무나 부끄럽고 
        울어서 빨갛게 된 눈을 스승님께 보여 드릴 수가 없어서 스승님을 잠깐 보고는 머리를 푹 숙여 버렸는데 스승님은 미소를 지으셨다. 
        너무도 친절하게, 너무도 다정히…. 충만한 그 느낌이란 마치 우주의 총아가 된 것만 같았다. </p>
      <p>그날 이후로 줄곧 나는 스승님이 어떻게 모든 것을 알고 계신지 더욱 놀랍기만 했다. 만약 우리에게 약간이라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거나 혹은 우리가 아주 조금이라도 참회나 진보를 하게 되면 스승님은 즉시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하여 우리의 가슴속에 사랑의 
        대양을 쏟아 부으신다. 스승님의 사랑은 너무나 자비로우며 너그러우시다. </p>
      <p>사랑의 설화들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어떤 경우에도 육신의 스승님이 계시든 안 계시든 나는 여전히 충만감 속에 있다. </p>
      <p>내가 시후 센터에 거주하게 된 후의 어느 날 스승님과 제자들이 함께 모이게 되었다. 스승님은 “우리 차 마십시다!”라고 제의하시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어떤 차를 마시고 싶은지, 그리고 누가 차를 가지러 부엌에 갈 것인지 물으셨다. 나는 평소에 그리 열성적이거나 
        희생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었으나 단숨에 결심하고는 내가 가겠노라고 했다. 부엌으로 달려가 고양된 마음으로 그리고 열성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이것저것을 하도록 재촉했다. </p>
      <p>그때 스승님이 발코니에서 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스승님은 난간에 기대어 나를 훑어보시고는, “어! 어! 어! 소매를 
        너무 높이 말아 올렸군요. 당신 머리카락을 내 차에 떨어뜨리지 않도록 조심해요!”라며 놀리셨다. </p>
      <p>이 말씀을 듣자마자 나는 기쁨에 넘쳤다. 그렇게 개인적으로 스승님이 나를 부르실 때마다 나는 항상 매우 흥분되곤 했기 때문에 
        갑자기 어린 양처럼 부엌을 깡충깡충 뛰어다녔다. </p>
      <p>어떻게 새벽녘에도 어린 나무의 새잎들이 활짝 벌어지는 것을 당신은 알아차리십니까? 심지어 당신은 용기를 북돋우기 위하여 박수를 
        보내십니다. 당신의 정원에 셀 수 없이 많이 있는 꽃과 나무들의 모든 단순한 움직임들을 당신은 어떻게 명확히 아십니까? </p>
      <p>오! 당신의 신비한 사랑의 숲 속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p>
      <p><br /><span class="topic">보초 이야기</span></p>
      <p> 신성한 사랑의 일화들은 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스승님의 문지기 자리는 항상 어떤 스릴 넘치는 새로운 일화들을 제공한다. 
      </p>
      <p>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에 시후에서 시원하게 지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는 ‘대나무 숲’이다. 동수들은 돌아가며 스승님의 문지기를 
        하는데, 그날 내 차례가 되어 나에게 수호천사의 역할이 주어졌다. 둔덕에 나의 보초지가 있었는데, 멀리 있는 마을 주위에 구름이 
        물결치고 있는 것을 선명히 볼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스승님 주위의 조용하고 한가로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p>
      <p>정오에 태양이 저 높이서 빛나고 있을 때 뜻밖에 스승님이 모두를 대나무 숲으로 집합시키셨다. 그 당시에 스승님이 가시는 곳은 
        어디든지 따라다니는 게 수호천사의 임무 중 하나였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무엇인가 스승님을 화나게 만들었다. 그래서 스승님은 
        모두를 해산시키고 대나무 숲 속에 스승님과 두 명의 보초만 남아 있게 하셨다. 부드러운 산들바람의 미묘한 리듬과 가득히 흩어져 
        넘실대는 빛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스승님은 대나무들 사이에 있는 그물침대 안에서 쉬고 계셨다. 잠시 후에 스승님은 누구를 부르러 
        다른 한 명의 보초를 보내셨으며 명령에 따라 그 보초는 서둘러 달려가 버렸다. 나는 ‘이제 나만 남았구나! 조심해서 스승님을 
        더 화나게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가능한 한 정신을 차리고 5불을 계속 외며 마음을 가다듬고 서 있었다. 그러자 
        곧 스승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이 전혀 안 부는 것 같은데 거긴 어때요?” </p>
      <p>나는 놀라고 말았다! 조금 전에는 그렇게 화나 있던 스승님이 어떻게 갑자기 그토록 부드러워지셨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 지금 바람이 전혀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갑자기 영감을 받아 “스승님, 스승님께 제가 부채질을 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br />
        “좋아요!”라고 스승님이 대답하시자 나는 더 이상 아무 생각 없이 스승님의 ‘여장부’ 모자를 들고 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스승님이 “주위에 베개가 있나요?”라고 물으셨다. 내 옆에는 책이 한 권 있었는데 나는 ‘만약에 베개를 찾지 못한다면 여기 
        이 책을 우선 사용해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p>
      <p>스승님은 내 마음을 읽으신 듯 반대편에 있는 베개를 가리키시며 “아! 저쪽에 베개가 있네요.”라고 말씀하셨다. </p>
      <p>한 손으로는 부채질을 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물침대를 부드럽게 흔드는 나는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한 사람이었다. 
        전에는 결코 그렇게 가까이 스승님 곁에 있어 본 적이 없었다. 시간이 거기서 영원히 멈추기를 나는 얼마나 바랐던가. “좋은 것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라는 옛말은 얼마나 지당한지. 스승님께서 부르러 보낸 동수가 오자 그들은 자신들의 일에 대해 말씀드리기 
        시작했다. 그때 스승님이 “이제 바람이 충분히 부네요. 멈추어도 돼요.”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현실로 돌아와 천천히 나의 자리로 
        걸어왔다. </p>
		 <p><br /><span class="topic">사랑의 화관</span></p>
      <p> 한번은 스승님이 뒷동산에 있는 통나무집에 거주하고 계실 때 스승님의 수호자로서의 임무를 맡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스승님이 
        내 곁을 지나가실 때 나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했지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몰랐다. 감히 스승님께 말을 걸 수조차 없었다. 
        나는 단지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을 뿐이다. ‘스승님, 사랑합니다!’ 바로 그 순간에 스승님이 내 말을 들으신 듯 “이 꽃들은 
        매우 아름답군요. 이 꽃들을 엮어서 화관을 만들면 좋겠네요.”라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기쁘게 “좋아요.”라고 대답했다.</p>
      <p> 그때 언덕과 들에는 작고 하얀 꽃들로 뒤덮인 무화과나무로 가득 찼었는데, 떨어진 꽃잎들이 겹겹이 언덕을 덮고 있어 마치 하얀 
        융단을 깐 것 같았다. </p>
      <p>나는 바늘과 실을 가져가서 땅에 떨어진 꽃잎들 중에 아직 흠 없고 신선한 것으로 고르기 시작했다. 작업을 하기 위하여 바닥에 
        옷을 깔고 조심스럽게 꽃잎들을 실에 꿰기 시작했다. 햇빛이 나뭇잎들 사이로 비쳐 들어와 꽃잎 위로 떨어졌다. 꽃들이 아름다운 
        흰 광채를 내뿜는 것처럼 보였다. 종일 나는 이러한 아름다움을 즐겼다. </p>
      <p>드디어 화관을 완성했으나 나는 스승님께 가져가는 것을 망설였다. 그래서 누군가 와서 나의 선물을 대신 전해 주기를 바랐다. 
        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p>
      <p>그래서 할 수 없이 내가 직접 화관을 갖다 드리기로 결정했지만 나는 매우 흥분되었고, 스승님이 그 화관을 좋아하실지 어떨지 
        궁금했다. </p>
<p>        스승님은 독서 중이셨는데 그 화관을 보시고는 그것을 받아 손에 쥐며 감탄하셨다. “아름다워요! 그런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지요?”라고 
        물으셨다. </p>
      <p>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미소만 지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스승님께 ‘죄송해요! 정말로 전 대단한 겁쟁이예요. 다음번에는 
        용감한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p>
      <p><br /><span class="topic">방해하지 말고 그냥 자도록 놔두어라</span></p>
      <p> 스승님의 수호자가 되는 것은 신성한 의무이다. 내가 한번은 스승님의 수호자로서의 임무를 맡았을 때, 점심을 너무 많이 먹어서 
        나의 두 눈이 임무를 회피했던 일을 회고해 보겠다. 나는 정말 자러 가거나 코를 골아서는 안 되었기 때문에 졸음과 협상도 하고 
        투쟁도 했지만 끝내 지고 말았다. 마침내 눈꺼풀이 닫히려고 하기 직전에 스승님이 2륜 마차 위에 계신 것을 보았는데, 내가 깼을 
        때는 오두막 안에서 스승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오, 안 돼! 스승님이 언제 돌아오셨지?’라고 
        생각했다. </p>
      <p> 다음날 앞문을 지키던 보초를 만났는데, 그녀는 마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듯 멀리서 웃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어제 
        내가 모르는 무슨 좋은 일이 있었나 하고 생각했다. 그 보초의 얘기에 따르면, 어제 오후 스승님이 2륜 마차를 타고 보초지 앞을 
        지나실 때 그녀에게 “뒤쪽에 있는 저 보초는 자고 있군요!”라고 말씀하셨다 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재미있다는 듯 장난기가 넘쳤다. 
        그때 다른 보초가 당장 가서 나를 깨우려 했으나 마음을 읽으신 듯 스승님은 “아니, 괜찮아요. 그녀를 방해하지 말고 자게 내버려둬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부끄러웠던 반면 그토록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 그토록 주의 깊고 이해심 많은 어머니를 가진 
        데 대해 마음이 편안해졌다. </p>
		 <p><br /><span class="topic">사랑의 성찬</span></p>
      <p> 몇 해 전 스승님이 아직 감나무 과수원에 계실 때 있었던 일이다. 하루는 스승님의 수호자로서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스승님이 
        문지기를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나는 서둘러 앞으로 달려갔다. 어머니처럼 스승님은 부드럽게 “식사했어요?”라고 물으셨다. 스승님은 
        진지하고도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셨다. </p>
      <p>마치 초등학생이 선생님에게 대답하듯이 큰소리로 “오늘은 식사를 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내가 대답을 하자마자 다른 
        보초도 와서 “저는 벌써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스승님.”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하느님 맙소사! 그 말을 듣자 나는 그에게 
        연민을 느꼈다. 설사 그가 이미 식사를 했더라도 그는 최소한 “하지만 아직 저는 더 먹고 싶습니다.”라고 덧붙였어야 했다. 그는 
        어쩌면 저토록 능글맞을까? </p>
      <p>스승님이 주신 과일을 받아 든 후 그는 만족해하며 떠났다. 그러고 나서 스승님은 나에게 “빨리! 가서 식사할 철제 그릇을 가져와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p>
      <p>나는 최대한 빨리 가장 가까운 텐트 지역으로 돌진해 가서 식기들을 빌려 왔다. 그리고 돌아와서 스승님과 함께 앉아 식사를 했다. 
        헐떡거리며 매우 흥분해 있어서 나는 어느 접시에 있는 음식을 집어야 할지를 몰랐다. 손이 떨려서 젓가락으로 아무것도 집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야채 햄 두 조각이 보이자 그것들은 크고 집기가 쉬워서 훨씬 안심이 되었다. 나는 한 개를 황급히 그릇에 담았다. 
        마치 나의 어색한 마음을 편하게 해주시려는 것처럼 스승님은 “오! 오늘은 날씨가 꽤 나쁘군. 날씨 때문에 당신이 예민해져 있군요!”라고 
        하셨다. 나는 매우 부끄러워 그저 머리를 숙이고 죄송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 속으로 밥을 밀어 넣었다. </p>
      <p>옆에서 시중들던 사저가 나를 대신해서 좋은 뜻으로, “그녀는 스승님을 가장 사랑해요!”라고 말했다. 스승님은 “그녀는 정말 
        상태가 안 좋아요.”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정말로 나에 대한 스승님의 매우 많은 사랑을 느꼈으며 마음이 황홀했다. </p>
      <p>식사 후에 스승님은 냉장고에서 내가 좋아하는 과일이나 음료수를 더 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배가 부르도록 먹어서 포만감을 느꼈다. 
        그리고 조금도 수줍어하지 않고 스승님께 감사를 드리고는, 마술에 걸린 듯 ‘떠밀려’ 나의 보초지로 돌아왔다. 나에게 걸린 마취 
        상태는 그후로도 오래오래 지속되었다.</p>
		 <p><br /><span class="topic">자신을 바보로 만듦</span></p>
      <p> 스승님을 따른 이후 나는 스승님의 갑작스런 소집은 어떠한 것도 놓치지 않기로 다짐하며 항상 눈과 귀를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예리한 지각 때문에 나는 바보가 되었다. </p>
      <p>내가 출가한 지 얼마 안 되어 하루는 많은 남자 출가승들이 분주하게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래서 나는 스승님이 소집을 하셨음에 
        틀림없다고 결론짓고는 망설이지도 않고 그들의 뒤를 서둘러 따라갔다. </p>
<p>     옛 명상홀에 이르니 스승님이 몸소 밥통을 들고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계셨다. ‘이상하군. 어째서 여기에는 여자들이 전혀 
        없는 걸까?’라고 미심쩍어하긴 했지만, 나는 내 몫을 얻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다. </p>
      <p>내 차례가 되었을 때 스승님이 “당신이 남자예요?”라고 물으셔서 깜짝 놀랐다. 나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스승님이 그날 사형들만을 
        부르러 보내셨다는 것을! 나는 매우 난처해졌는데 스승님은 나에게도 몫을 덜어 주셨다. 심지어 내가 다 먹고 나서 떠나려 하자 
        스승님은 나에게 부드럽게 “좀더 먹고 싶나요, 아가야?”라고 물으셨다. </p>
		 <p><br /><span class="topic">처음으로</span></p>
      <p> 스승님 곁에서는 결코 지루하지 않다고 우리는 늘 들어 왔다. 스승님은 언제나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으시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재미있고 온정 넘치는 일화 하나를 들려주고 싶다. </p>
      <p>스승님이 나에게 스승님의 머리카락을 빗질하는 영예를 주셨을 때는 내가 승려가 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였다. 나는 흥분한 
        채 스승님의 처소에 도착했는데, 스승님이 그물침대에 기대어 사형들과 한담을 나누고 계셨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몰라 
        한쪽에 서 있었다. 잠시 후에 스승님이 “뭘 기다리고 있지요?”라고 말씀하셨다. </p>
      <p>나는 그 순간 당황했다. 사람들이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있을 때 그들의 머리를 만지는 것에는 익숙해 있었지만, 스승님은 그물침대에 
        등을 기대고 계셨기 때문에 스승님의 머리카락을 고정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멍해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러나 나는 흥분되는 것을 억누르고 매우 특별한 첫 시도를 시작했다. </p>
      <p>스승님은 헤어스타일을 결정하실 때 나의 견해를 물으셨다. 내가 스승님의 머리카락을 손질하고 있는 동안에 스승님은 영적 수행에 
        헌신하기 전의 내 상황에 대해 나와 한담을 나누셨으며 승려가 된 후의 내 느낌이 어떤지를 물으셨다. 스승님의 목소리에는 모성적인 
        사랑과 관심이 깃들어 있었다. 스승님의 머리 손질과 대화가 끝났을 때 스승님은 즐겁게 거울을 들여다보시며 매우 만족해하셨다. 
        그리고 부드럽게 “테이블 위에 있는 과일을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아이들에게도 조금 갖다 줘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우신 스승님은 흥겹게 아이들처럼 행복해하며 계단을 뛰어 올라가셨다. 이 모든 것이 나의 마음속 깊은 열망을 충족시켜 주기 
        위한 스승님의 안배라는 것을 나는 완전히 이해했다. </p>
      <p>스승님과 사적으로 함께 있을 뜻밖의 기회를 갖게 되면 스승님이 얼마나 겸손하시고 정이 많으신지 더 잘 깨달을 수 있다. 스승님은 
        결코 우리에게 어떤 것도 숨기지 않으신다. 스승님께 봉사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항상 “신께서 이러한 영광을 주시다니, 너는 
        얼마나 운이 좋고 축복받은 사람인가.”라고 혼자 되뇌곤 한다. 일 자체가 나에게 억누를 수 없는 행복을 가져다줌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너그러움을 가지신 스승님은 일이 끝날 때마다 작은 보답으로 나에게 뭔가를 주시는 것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 우리는 스승님과 
        함께할 때마다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배운다. 스승님은 말씀과 행동 모두로 우리를 가르치신다. </p>
      <p><br /><span class="topic">닭사저의 사랑</span></p>
      <p> 핑뚱에 있는 왕가 혈통의 닭은 정말 매우 신실하게 수행한다! 닭은 또한 스승님을 매우 그리워하는데, 한번은 그녀의 신실함에 
        우리는 매우 감동을 받았다. </p>
      <p>일요일, 단체명상이 있는 날이었다. 점심 식사 후에 우리는 대기소 아래의 그늘에 있는 그물침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사저 한 명이 나중에 도착하여 우리는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둘 다 스승님이 너무나 그립다는 감정들을 표현하며 
        영적으로 고양되어 있었다. 우리가 대화에 빠져 있는 동안에 우리의 ‘닭 사저’가 조용히 다가왔다. 그녀는 눈을 감고 주의 깊게 
        듣고 있는 것처럼 혹은 삼매에 든 것처럼 고요하게 있었다. 이것을 보고 우리는 소리를 죽이고는 놀라고 기쁜 마음으로 그녀를 지켜보았다. 
        불과 한두 개의 깃털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 움직임 없이 서 있었다. 나의 가슴은 감동으로 가득 찼으며, ‘와! 
        그녀는 정말로 덕스러운 수행자처럼 보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그곳에서 그녀는 명상의 상태로 있었으며 많은 동수들이 
        주위에 모여들 때까지 삼매에서 깨어나질 않았다. 나는 그녀가 스승님을 대단히 그리워하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느꼈다. </p>
      <p><br /><span class="topic">당신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을 받음</span></p>
      <p> 언젠가 나는[성모 테레사의 회고록]에서 테레사 수녀가 여 수도원장의 무릎에 기대곤 했었다는 기사를 읽고는 내가 스승님께 기댈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고 상상하며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그후로 나의 마음속에는 그 생각이 줄곧 머물러 있었다. </p>
      <p>나의 소원은 마침내 받아들여졌다. 어느 날 오후 한 사저가 모든 사람들은 스승님 처소에 가서 개별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소식을 알렸다. 그때 나는 스승님이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는 걸 알지 못했다. 나는 당장 스승님 처소로 달려가서 “스승님! 평소에 
        스승님께 드릴 말씀이 너무 많았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라고 말씀드릴 생각을 하며 흥분해 있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내 마음은 텅 비어 있었다. </p>
      <p>내 차례가 되어 안으로 들어갔을 때 스승님은 침대에 누워 기침을 하고 계셨다. 그러나 스승님은 나에게 미소를 지으시며 두 팔을 
        밖으로 내미셨다. 나는 가슴이 미어질 듯하여 앞으로 달려가 스승님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울기 시작했다. 왜 스승님은 그렇게 자주 
        편찮으시고 기침을 하시는 걸까? 연민과 반쯤은 불만을 가지고 나는 “늘 그렇게 편찮으신 것을 제발 멈추어 주세요.”라고 말씀드렸다. 
      </p>
      <p>스승님은 나를 사랑스러운 듯이 바라보시고 “내가 아픈 게 아니에요. 지각 있는 중생들이 아파하는 거예요.”라고 말씀하셨다. 
        오! 스승님, 이 무지한 아이들이 어떻게 당신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p>
<p>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요 몇 년 동안에 있었던 스승님의 말씀과 행동과 매일의 사건들로부터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이 
        스승님임을 깨달았다. 유감스럽게도 자주 나는 나중에야 스승님의 의도를 이해하곤 했으며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더 많았다. 
        어떻게 나비로 변하기 전의 한 마리 애벌레가 하늘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나비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을까? </p>
      <p>스승님, 저는 스승님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제가 항상 필사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어떤 이상한 환희를 느낍니다. 신성한 사랑에 
        의해 야기되는 우리의 미치광이 같은 행동이 세속인들에게는 매우 바보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스승님, 저희는 진심으로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당신의 사랑을 이해합니다.”라고 큰소리로 외칠 정도로 충분히 용감하답니다.</p>
     <p><br /><span class="topic">안녕히 주무세요, 스승님</span></p>
      <p> 스승님, 기다란 관수처럼 흘러내리는 스승님의 자애로운 사랑을 받으며 저희는 성장했고 점점 더 성숙했습니다. 또한 스승님은 
        ‘사무실(육신)’일 뿐만 아니라 온 우주이며, 본질적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신성한 사랑임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p>
      <p>스승님이 하시는 것처럼 저희들도 본래면목인 신성한 사랑으로써 사람들과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당신의 사랑 안에 용해되어, 
        우리 자신이 연기처럼 사라져 사랑으로 전환되기를 늘 소망하고 있습니다. </p>
      <p>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저희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당신은 영원히 한결같습니다. 하늘에 가득 찬 작은 별들과 황홀하고 오묘한 달이 
        잠자라고 요람을 흔드네요. 스승님의 눈에 어리는 미소와 자비로운 자장은 모두의 꿈속에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깁니다. <br />
        안녕히 주무세요, 스승님!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2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Fri, 12 Mar 2004 11:42:57 +0900</dc:date>
</item>


<item>
<title>신의 축복을 소중히 하라！</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73</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칭하이 무상사<br />
        기록: 동료수행자 짱/ 홍콩 사티엔 센터</p>
      <p>어느 날 스승님이 예고 없이 동수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스승님의 거처에서 이 사티엔 센터 1층으로 오셨다. 스승님은 “내가 
        지난여름에 홍콩을 방문했을 때 이 센터 언덕이 황금빛 오렌지로 덮여 있는 것을 보았어요. 여러분이 먹기에는 너무 많았지요. 여러분이 
        어떻게 할 줄 몰라서 많은 오렌지가 땅에 떨어져 버려졌어요.”라고 말씀하셨다. </p>
      <p>스승님은 또 “사실 우리는 서양인들이 하는 것처럼 여분의 오렌지로 마멀레이드를 만들 수 있어요. 우리는 또한 농축 오렌지 주스나 
        잼을 만들 수 있으며 다른 향을 쳐 가면서 모든 사람들이 맛볼 수 있게 할 수 있어요. 이런 식으로 우리는 신이 주신 것을 버리지 
        않고 일년 내내 훌륭한 오렌지 맛을 즐길 수가 있어요.”라고 하셨다. </p>
      <p>스승님이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시길 “신이 우리에게 많은 오렌지를 주시므로 우리는 자주 그 좋은 맛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신이 주신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주신 축복을 다시 가져가실 거예요. 마치 오늘날 기아로 굶주리는 
        아프리카 사람들처럼 말이에요. 그들은 그들의 전생에 매우 풍요로운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의 축복에 감사하지 않았으므로 
        이생에서 자신들의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매우 가난하게 되었고 가진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뭔가 부족한 것을 느낀다면 신이 불공평하다고 불평하지 마세요. 아마 그것은 신이 전생에 우리에게 주신 것을 우리가 소중히 
        여기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2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Fri, 12 Mar 2004 11:24:21 +0900</dc:date>
</item>


<item>
<title>살아 있는 부처가 이 땅에 있으니 보리수는 죽지 않을 것이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72</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구술: 스승님의 어머니<br />
        기록: 동료수행자 한 인/ 홍콩</p>
      <p>스승님이 아직 어리던 시절, 우리 집 근처에 연못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연못가에는 시멘트로 친 담장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담장에서 보리수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 크고 우람하게 우거졌습니다. 흙 한 줌 없는 시멘트 담에서 나무가 자라난 것이, 더구나 
        근처에 종자를 뿌릴 만한 다른 보리수나무가 전혀 없었음에도 참 신기한 일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곤 했어요. </p>
      <p>어느 폭풍우가 심하게 치던 날, 그 나무가 통째로 쓰러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새 보리수나무가 다시 자라나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훗날 그 연못은 다른 사람에게 임대되었고, 그 나무는 그때 베어졌습니다. 또 우리가 맏딸 집으로 이사를 했었는데, 
        이상하게도 보리수나무가 마당 이곳저곳에서 상당히 많이 싹터 올라오고 있었어요. </p>
      <p>우리는 이 기적 같은 현상이 안치해 둔 많은 불상들과 성구(聖具)들 때문이겠거니 여겼는데, 나중에야 그것이 가족 중에서 ‘생불(生佛)’이 
        나올 상서로운 징조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30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11 Mar 2004 16:47:18 +0900</dc:date>
</item>


<item>
<title>스승님에 대한 예연</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71</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구술: 스승님의 어머니<br />기록: 홍콩 거주 제자</p>
<p>스승님이 해외로 유학을 떠난 후 모친께서 한 점술사를 찾아갔다. 그는 여자였는데 다가올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모친은 그녀가 수행의 길을 가는 한 수도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그녀의 예언이 아주 정확하다는 소리를 듣고서 다른 가족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어 보였는데, 그녀는 모친께 딸 가운데 한 분이 현재는 고향을 떠나 멀리 가 있으며, 총명하고 건강하며, 영적인 수도자로서의 길을 가야 할 운명이므로 가급적이면 빨리 수행을 시작할수록 이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스승님의 모든 가족들의 운명을 알려 주었는데, 스승님의 운명 점수는 36이었다. (점수는 그 사람의 영적 수행의 등급을 가리킨다.) 그것은 평균치보다 훨씬 높은 점수이며, 스승님이 관음보살의 축복과 인도를 받고 계시다고 말해 주었다. </p>
<p>모친은 스승님이 수행의 길을 가신다면 아주 높은 수준까지 진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매우 흡족해하셨으며, 스승님께도 그런 사실을 편지로, 그 점술사가 적어 준 예언들과 함께 넣어 보내셨다. 훗날 드디어 스승님이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인도로 떠나게 되셨는데, 딸로부터 소식이 끊기자 모친은 많은 사찰과 도인들을 찾아다니며 스승님의 수행 진보를 물으셨다. 그들은 한결같이 딸이 범상치 않은 분으로, 수행 또한 훌륭히 성취해 나가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p>
<p>한편 그 지역 사람들 사이에서 ‘생불’로 알려진 한 비구니가 스승님에 대한 시를 하나 지어 모친께 드렸는데, 이런 내용이었다. “나, 어느 왕 못지않게 신망 있는 그 왕좌로 돌아가리, 나를 인도자로 알아차리는 그 세상을 기다리리.” 모친은 스승님이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 시의 참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실 수 있었다. 진실로 살아 있는 부처인 스승님 외에 그 누가 우주의 왕으로서의 영광을 바랄 수 있겠는가? 오직 스승님만이 그런 영광을 지니고 계실 뿐인 것을. 수년 뒤에 모친은 160세 된 한 도인을 만나셨는데, 그는 이제 집안에 부처가 계시므로 집밖의 사찰에 불공을 드리러 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때 당시에는 그가 언급한 부처가 자신의 딸을 가리킨다는 것은 짐작조차도 못 하고서 집안에 안치해 둔 불상들을 두고 하는 말이거니 여겼다. </p>
<p>그후 곧바로 모친은 명상을 시작하셨다. 어느 날인가 명상 중에 모자를 쓰고 노란 법복을 갖춰 입은 일곱 분의 부처를 보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모두 여자였다. 바로 그 이튿날 스승님이 ‘도’를 얻으셨다는 반가운 내용의 편지를 받으셨으며, 동봉되어 있는 일곱 장의 스승님 사진을 보니 전날 명상 중에 보았던 법복 입은 부처, 바로 그분들 모습이었다. 편지가 도착하기에 앞서 스승님의 화신이 먼저 기쁜 소식을 알렸던 것이다. 모친은 가슴이 터질 듯이 설레었다. </p>
<p>쾅이 지방에 콴티엔이라는 스님이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오직 신을 숭배하며 살고 있었다. 그는 모친 댁을 방문했을 때 스승님의 사진을 보고는 크게 놀라며 즉시 엎드려 예를 올리고 나서 다음과 같은 예언의 시를 지었다. </p>
<p><br /><font face="돋움" color="#0049c4">우주는 어두운 구름으로 뒤덮여 있는데<br />태양이 떠올라 구름 사이를 비추도다.<br />이는 칭하이님 탄생하실 징후<br />온 누리에 가득한 평화여,<br />온 세상 환호하며 기뻐하는도다.</font></p>
<p><font face="돋움" color="#0049c4">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br />이 나라에 오시는 임<br />모두들 따르라! <br />기쁜 소식 알리시는 그분<br />우리 영혼 구제하려 <br />가시밭길도 견뎌내야 하실 임.</font></p>
<p><font face="돋움" color="#0049c4">오늘 그 임께서 깨달음을 얻으시도다. <br />축복이 아홉 세대에 임하리로다.<br />삼보(三寶)를 목 타게 기다리는 어울락의 땅,<br />임의 가르침은 심오하기 바다와 하늘 같거니<br />복음이 온 누리 가득히 퍼져 흐르리.<br />부처의 옥좌에 앉으실 임이로다.<br />칭하이 스승이여, <br />살아 있는 관세음보살이여,<br />만 중생들의 영원한 어머니시여,<br />진심으로 기원하옵나니,</font></p>
<p><font face="돋움" color="#0049c4">이 무지렁이 중생들에게 빛을 주옵소서.<br />달디단 젖을 보채는 어린아이같이 <br />그들은 애타하고 있사오니<br />저녁놀 진 속으로 홀로 가고 계신 임이여,<br />저희들을 따뜻한 본향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font></p>
<p><font face="돋움" color="#0049c4">불성에서 발하는 임의 복음<br />세상 모든 종교의 뿌리는 하나.<br />성스런 모후께서 오시면 <br />세상은 하나가 되리라.<br />모든 강물이 바다로 모이듯<br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br />살아 있는 부처가 지상에 계시니<br />보리수는 죽지 않을 것이다.</font></p>
<p class="caption" align="right">- 뉴스잡지 30호에서-</p>]]></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11 Mar 2004 16:42:43 +0900</dc:date>
</item>


<item>
<title>전생을 보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70</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칭하이 무상사/ 1993. 
        9. 11 홍콩 샤틴 티엔산 센터</p>
      <p>구오가 스승님이 홍콩에 계시던 어느 날 한 수행원의 전생에 관해 물었을 때 스승님은 ‘조사 확인’하고서 그가 누구였는지, 그리고 
        전생에 스승님과 어떤 관계가 있으며, 그가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를 말해야 한다고 하셨다. 다음은 스승님의 설명이다.</p>
      <p>“나는 언제나 나의 지혜를 이용해서 모든 상황을 동시에 처리합니다. 모든 것은 명확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빠르게 처리됩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알지 못합니다. 만약 내가 나의 마음이 알도록 하려면 나는 나 자신을 마음의 수준으로 끌어내려야 합니다.</p>
      <p> 그것은 마치 매우 높은 산 정상에 서 있는 사람은 거기서 집이나 빌딩, 개울, 사람들과 같은 전체적인 광경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집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려고 한다면 그는 누군가를 아래로 내려 보내야만 하거나 그 자신이 직접 그 집 
        안으로 들어가 보아야 합니다. 오직 그때만이 명확히 건물 안에 무엇이 있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p>
      <p>그것은 또한 경찰서장과 같습니다. 비록 사무실 안에 많은 범죄자의 정보가 있긴 있지만 그는 그것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는 것은 너무나 피곤한 일이지요. 단지 체포 후에 그는 용의자의 파일을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각각의 파일에는 그 사람에 
        대한 중요한 데이터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일은 피곤하지 않을 것이고 읽기에 지루하지 않을 것입니다.”</p>
      <p> 스승님은 또한 말씀하셨다. “한 사람의 전생에 관한 정보를 찾는 일은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그의 고통스러운 
        과거를 알게 되었을 때 그는 다시 같은 경험을 통해 고통을 받을 것이고 동일한 상황에 사로잡히는 느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전생에 
        관한 정보를 찾는 일은 아카식 기록의 도서관에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거기에는 카드 목록과 유사한 방식으로 배열된 정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안에는 모든 죽은 사람들의 기록이 있습니다. 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알아내기 위해서 무덤 속으로 
        들어가 시체를 파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어떤 사람의 기록을 찾아보길 원하는데,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그의 삶에서 
        중요한 한때이거나 특별한 시기입니다.</p>
      <p> 이것은 내가 순회강연을 한 이래로 세 달 동안 나의 일일 생활의 비디오 기록들을 한두 시간짜리의 비디오테이프로 편집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지요.”</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30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11 Mar 2004 16:28:45 +0900</dc:date>
</item>


<item>
<title>플럼 수확기</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69</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기록: 동료수행자 유/ 
        홍콩</p>
      <p>홍콩의 티엔산 센터에는 플럼(서양 자두) 과수원이 있다. 올해는 플럼이 아주 풍성하게 열렸다. 어떤 것은 이미 너무 익어서 
        땅바닥에 떨어져 매우 안타까웠다. 제때에 수확하지 않으면 정말로 대단한 손실이다. 작년에 스승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 가운데 
        나무의 과일도 신의 창조물인데 사람들이 그것을 소비하지 않고 낭비한다면 미래에 굶주림의 과보를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상기해 
        본다. </p>
      <p>어느 날 단체명상 후 스승님은 말씀 중에 빵에 발라 먹는 플럼잼과 신 플럼주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다음날 아침 일찍 
        동수들은 그들의 지역에서 바쁘게 일하면서 재빨리 플럼을 주워 모았다. 플럼 나무에 플럼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광경은 대단했다. 
        짧은 시간 안에 플럼은 주머니에 가득 찼고, 너무 무거워 옮길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나중에 우리는 잘 익은 플럼과 덜 익은 
        플럼을 분리시켰다. 잘 익은 것은 플럼잼을 만들고 덜 익은 것은 부패되지 않도록 소금물에 절여 보관했다. 후에 우리는 새로운 
        음식을 먹게 될 것이다. 에그플랜트에 향긋한 플럼소스를, 빈커트에 핫 플럼소스를, 야채튀김에 플럼과 생강 등등.</p>
      <p> 정말 대단한 플럼 수확이었다. 마치 ‘과일 공장’이 세워진 것 같았다. 우리는 저장된 플럼을 가방 속에 넣고 동수들이 집에 
        가져가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가지도록 했다. 우리는 스승님이 이 플럼 줍기 운동을 통해 ‘선(禪)은 생활이다’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 감사합니다, 스승님.</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34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11 Mar 2004 16:16:19 +0900</dc:date>
</item>


<item>
<title>묵언스님의 기도</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68</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기록: 동료수행자 박/ 
        한국</p>
      <p>이 스님은 16년 전 출가한 이래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구도 행각을 벌였으나 진정한 스승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태백산 
        깊은 곳에 은둔하기로 결심했다. 태백산으로 들어가면서 깨닫기 전에는 산을 내려오지 않을 것이며, 깨닫지 못하면 그 토굴이 자신의 
        무덤이 되리라고 결심했다! 또한 깨닫기 전에는 일체 말을 않기로 맹세하여 사람들은 그를 ‘묵언 스님’이라고 불렀으며, 그의 법명은 
        잊혀졌다.</p>
      <p> 그는 태백산에서 수행하면서 혼자 채소도 기르고 나무도 했다. 그렇게 4년을 보내면서 수많은 경전을 읽었지만 뚜렷한 진척이 
        보이지 않자 서서히 걱정이 되었다.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수행을 계속했다.</p>
      <p> 태백산에는 개인 토굴에 다른 스님이 몇 분 있었다. 윗 토굴에 사는 어느 스님이 입문을 받고서는 환희에 넘치는 얼굴로 돌아왔다. 
        그는 목에 여자 사진이 새겨진 목걸이를 걸고 가슴에도 같은 여자 사진이 있는 브로치를 하고는, 그 여자 사진이 표지에 있는 책을 
        가지고 왔다. 그는 만족한 듯이 걸어왔다. 그러나 이 묵언 스님은 대단히 언짢아하며 ‘아이고, 저 스님이 마장에 걸렸네! 어쩌면 
        좋지?’라고 생각했다. 잠시 궁리 끝에 ‘우리는 같은 산에서 수행한 처지이니 그를 도와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날 저녁 입문한 
        그 스님의 토굴로 가 보니 그 토굴은 온통 그 여자의 사진으로 가득했다! 이 스님이 정말 머리가 돌아 버렸군! 그러나 입문한 
        스님은 그에게 스승님이 얼마나 위대하고 경이로운지를 흥분하여 설명하면서 그에게 견본책자를 보여 주었다. 묵언 스님은 그에게 마장에 
        들지 말라고 충고하면서 책장을 넘기다가 오계(五戒)가 쓰인 것을 언뜻 보고는 잠깐 당황했다. 어떻게 마구니가 이런 지혜로운 말을 
        할 수 있을까? 묵언 스님은 이 글귀들을 계속 읽어 나가다 무안해서 그 책을 자기 토굴로 가져왔다.</p>
      <p> 그 책에는 ‘즉각개오 일세해탈’이라는 글귀가 있었다. 묵언 스님은 그 책자를 황급히 통독하고는 ‘이분이야말로 내가 수년 동안이나 
        찾아 헤매던 바로 그 스승이다!’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윗 토굴로 달려갔다. 그 책자를 돌려준다는 
        걸 구실 삼아 또 다른 책자를 보려고 했다. 입문한 스님이 토굴에 없고 문이 열려 있어 묵언 스님은 안으로 들어가 다른 책들을 
        뒤적였다. 마침내 이 스승이야말로 그가 찾아 헤매던 스승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염치도 아랑곳 않고, 입문한 스님에게 몇 
        가지 정보를 얻고서는 곧바로 부산 센터로 향했다. 그가 산기슭에 다다르자 작은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차 주인이 그에게 어디를 
        가느냐고 물어 “부산으로 가려고 해요!" 하고 대답하자 차 주인도 마침 부산 가는 길이니 동행하자고 해서 부산까지 오는 
        데 아무런 어려움 없이 올 수 있었다. 스승님이 이미 첫 과정에서부터 자신을 도와 그는 대단히 기뻤다.</p>
      <p> 묵언 스님은 마침내 입문했다! 얼마나 기뻤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요즈음 그는 대단히 쾌활해져서 이제는 더 이상 ‘묵언'이 
        아니다. 사실 그는 말이 너무 많아졌다! 최근 그는 동수들에게 앞으로는 ‘묵언 스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그냥 동수라고 부르는 
        게 더 좋겠다고 말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묵언 스님에 대한 이야기 줄거리이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35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11 Mar 2004 16:13:44 +0900</dc:date>
</item>


<item>
<title>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수녀</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67</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기록: 동료수행자 박/ 
        한국</p>
      <p>그녀는 24세 때 처음 성당에 가서는 25세에 세례를 받았다. 26세 되는 해 모두들 설날 연휴를 보내는 사이 그녀는 수녀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10명이 해야 할 바느질과 자수를 혼자서 했다. 그녀는 수녀원에 한동안 머물다 이곳이 평생 지낼 곳은 아니라고 
        느껴 떠나려고 작정했지만, 지내다 보니 어언 10년의 세월이 흘러 버렸다. </p>
      <p>그러던 어느 날 부친은 그녀가 지낼 집을 마련하고는 10년이나 지낸 수녀원을 떠나라고 권유했다. 그녀는 부친의 청을 거절하고 
        수녀원이 자신의 집이라고 대답했다. 그후 부친이 세상을 뜨자 그녀는 보름 동안 어떤 절에서 지냈다. 그때 그녀는 부친의 말을 
        듣지 않은 걸 후회하면서 수행을 위해 절에 머물 생각을 했지만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을 꾸짖었다. 그녀가 수녀원에 돌아온 지 며칠 
        안 되어 심하게 다쳤다. 만약 그녀가 다치지 않았더라면 아마 절로 갔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 부상을 절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예시로 알고, 다친 것도 신의 뜻이라고 여겼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수녀원이 자신의 집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떠날 궁리를 
        했다. 드디어 그녀는 건강이 악화되어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의사들은 현대 의학으로는 그 병을 고칠 수 없으므로 별다른 
        방도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기공을 배우러 갔다. 그곳은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제자들이 10여 명 있는 곳이었다.</p>
      <p> 관음법문에 대한 약간의 정보를 얻은 그녀는 채식을 하고 방편법을 수행키로 결심했다. 그녀는 수녀원에는 알리지 않은 채 매주 
        센터에 가서 소리 없이 수행했다. 주위 사람들은 그녀가 채식을 해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선배하고 다투었는데, 
        그 선배는 수녀원의 명령은 신의 명령이라고 윽박지르면서 그녀가 악마에게 홀렸다고 주장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녀는 정신병원에 
        강제로 감금되어 치료를 받게 되었다.</p>
      <p> 그녀의 정신 상태는 정상이었기 때문에 정신 병원에 있다는 것이 그리 두려운 건 아니었다. 그녀가 정말로 두려워한 것은 채식을 
        할 수 없어서 입문을 못 할까 하는 것뿐이었다. 정신 병원에 입원해서도 그녀는 병원에서 나오는 음식을 일체 먹지 않았다. 음식을 
        입 안에 강제로 넣으면 곧바로 뱉어 버리곤 했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그녀가 미친 것으로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가톨릭계 병원이어서 
        그 수녀는 병원 당국과 말할 수 있어 병원에서 식사를 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녀는 정신 이상이 아니라 수행을 위해 채식하는 
        것이라고 병원 측에 말하며, 제발 억지로 고기를 먹이지 말 것을 부탁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절대로 고기를 먹지 않았지만, 병원 
        측이 계속 고기를 먹인다면 정말 정신 이상이 될 것이며, 이 업장은 당신들이 떠맡게 된다고 했다. 그렇게 그녀가 설명하자 병원 
        당국은 태도를 바꾸어 의사와 영양사에게 말하여 채식을 허락했다. 이 기간 동안 그녀는 맨밥에 가지고 온 간장만으로 버텼다.</p>
      <p> 채식으로 인한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입문을 놓칠까 봐 걱정했다. 40일이 지난 후 그녀는 센터에 전화를 하여 
        스승님이 한국에 계시다는 걸 알았다. 센터의 연락인이 보증인이 되어 그녀는 삼일간의 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 마침내 수녀는 꿈을 
        이루어 입문하게 되었다!</p>
      <p> 그녀의 소원은 모두 성취되었다. 입문하러 가기 전 그녀는 동료를 만나면 어디를 가는지 설명해야 하므로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수녀원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수녀복도 입지 않았으므로 병원에서 오는 도중에 몇몇의 동료를 포함해서 아무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의 고민을 확실하게 없애 주었다! </p>
      <p>삼일 동안의 휴가가 끝났다! 그녀는 병원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걱정이 없어졌다. 채식을 할 수 있고 독방을 가져 
        그곳에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도록 관음법문을 수행할 수 있다. 그녀는 마침내 수년 동안 갈구해 왔던 길을 찾고야 말았다.</p>
      <p>*주: 21세기에 접어드는 이 시대에 영혼을 깨끗이 하려고 고기 먹기를 거부하고 단체의 요구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신 
        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킨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비극이다. 오늘날과 같은 문명 시대에 개인의 자유를 무참히 짓누르는 행위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35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11 Mar 2004 16:10:27 +0900</dc:date>
</item>


<item>
<title>사랑의 의사</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66</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기록/ 거주제자 우, 
        포모사 시후 센터</p>
      <p>스승님이 언젠가 어떤 나라의 해변 도로에서 부상을 당한 채 길가에서 구급차를 기다리고 있는 소녀를 만나게 되셨다. 그 소녀는 
        발을 헛디뎌 넘어져서 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또 이빨 몇 개가 부러져서 온 입안이 피투성이였다. 더욱이 이빨이 입술을 들이박아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p>
      <p>그녀의 동료는 구급차를 부르러 간 지 한참 되었으며 지나가던 행인, 차량들도 자진해서 그녀를 도우려고 하지는 않았다. 스승님은 
        그 소녀의 상처를 관심 있게 보시고 뇌진탕일까 봐 염려하셨다. 결국 우리에게 그녀를 병원까지 데려가도록 결정하셨다. 그러나 가는 
        도중 구급차를 만나게 되었다. 간호사는 우선 우리 차 안에 누워서 휴식하고 있던,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고 있는 그 소녀를 일으켜 
        검사를 받도록 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그 소녀 혼자 버스를 타고 병원까지 갈 수 있겠다는 결정을 내리고는 구급차에 그녀를 
        태우려고 하지 않았다. 스승님은 그 소녀가 상처를 받은 데다가 다시 또 이러한 괴로움을 겪게 된 것을 참을 수가 없으셨다. 게다가 
        그 소녀의 친구는 미숙한 10대여서 그 소녀를 잘 돌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스승님의 간곡한 말씀에 간호사는 약간 미안해했다. 
        그리고 곧 버스 타는 곳까지 소녀를 데려가겠다고 대답했다. 버스 정류소까지 데려가겠다면, 그렇다면 병원까지는 얼마 안 되는데 
        왜 그런 차이를 두는가! 스승님은 그 소녀를 병원까지 호송하기로 하셨다. 간호사가 어린아이를 경솔히 겉모습만 보고 병세의 경중을 
        판단한 것에 마음이 놓이지 않으셨던 것이다. 차로 가는 도중 몇 분이 안 되어 하늘에서 갑자기 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스승님은 
        그 소녀가 비를 맞음으로 인해서 상처 부위에 염증이 생기는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배려하셨던 것이다. (물론 스승님께서 일찌감치 
        이 일을 안배하셨던 것이다.)</p>
      <p> 동시에 스승님은 그 틈을 타서 우리에게 표면만으로 어떤 일의 경중을 판단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일을 
        한 지 너무 오래되어 사랑의 마음을 잃어버렸지만 자기 스스로는 모르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수행하는 사람은 다르다. 그들은 
        위급한 상황을 보면 바로 반응하여 돕는다. 사랑의 마음이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보면 마치 자기를 
        보는 것과 같이 여기기 때문이다. 어떤 동일체의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p>
      <p>그러나 병원에서 일어났던 일은 또 한 번 우리를 분노하게 했다. 치과에서 오랫동안 기다린 후에야 의사가 느릿느릿 걸어 나왔다. 
        그런데 또 도와줄 간호사를 한 명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의사는 어쩔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자신이 모든 것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간호사가 병세가 극히 미약하다고 판단했던 그 소녀는 결국 5시간이나 걸리는 큰 수술을 받게 되었다. </p>
      <p>스승님은 사랑의 말씀으로 그 소녀를 위로했을 뿐만 아니라 우스갯소리로 그녀의 마음이 밝고 가뿐해지도록 하셨다. 그리고 마치 
        간호사처럼 의사를 최대한 도와주셨다. 그러나 이상한 일은 어떤 간호사가 도와줄 사람을 찾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난폭한 
        태도로 스승님과 어린아이를 모두 치과에서 내보낸 것이다. 스승님은 여전히 병원에서 기다리셨다. 그 소녀의 양부모가 병원에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떠나셨다. 그리고 병원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스승님은 그 소녀와 함께 동료가 되어 식사를 하셨으며 다른 환자들도 
        위로하셨다. 또는 몸을 일으켜 진찰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에게 자리를 양보하기도 하셨다. 그렇게 하여 사랑의 마음과 관심을 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 주셨다. </p>
      <p>그러고 나서 얼마 후 스승님은 그 나라의 천 사형에게 자상하게 설명을 하고 전화하여 그 소녀의 병세를 물어보셨다. 천 사형은 
        우리에게 그 소녀가 전화해서 스승님께 매우 감사하고 있으며 또한 스승님을 뵙고 싶어한다고 알려 주었다. </p>
      <p>이 나라를 떠날 때까지 그 소녀는 여전히 이렇게 선한 일을 행했으면서도 다른 사람이 알기를 원치 않는, 길가에서 만났던 생소한 
        그러나 매우 열심히, 부드럽게 또한 아주 세심하게 보살펴 주었던 이 숙녀가 누구였는지를 몰랐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이 사건 
        현장에 있으면서 다시 한 번 스승님의 넓고도 깊은 헤아릴 수 없는, 미치치 않는 곳이 없는 사랑의 마음을 지켜볼 수 있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42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11 Mar 2004 16:07:07 +0900</dc:date>
</item>


<item>
<title>황홀경에 빠져</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65</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기록/ 거주제자 우, 
        포모사 시후 센터</p>
      <p>스승님이 태국에 계실 때 한번은 기분전환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러나 운전사가 아직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는데 스승님은 벌써 
        번개처럼 빠르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서 택시를 잡아타셨다. 스승님은 택시기사에게 근처의 해변이나 아름다운 곳을 돌아 달라고 
        하셨다. </p>
<p>     가는 도중 말하기를 좋아하는 운전기사는 스승님과 한담했다. 그러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견본책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차 안에 놓인 책표지를 보고 다시 스승님을 보고 또다시 책표지를 보았다. 얼마 뒤 그가 스승님께 물었다. 
      </p>
      <p>“저, 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당신이 이 책표지의 인물이 아닙니까? 당신은 정말 그녀와 똑같이 생겼군요.” 스승님은 유머러스하게 
        다른 화제를 꺼내셨다. 그러나 운전기사가 몇 번이고 다그치고 포기를 하지 않자 스승님은 웃으면서 인정하셨다. 이에 흥분된 운전기사는 
        이 좋은 기회를 틈타 수행에 관한 몇 가지 질문을 했다. </p>
      <p>거의 차 안에서 관광을 했다. 스승님은 관광할 기분이 아니셨다. 택시가 호텔로 돌아왔을 때 운전기사는 공손히 차 문을 열어 
        드리고 스승님이 호텔 입구로 걸어가실 때까지 합장을 했다. 그의 눈은 스승님의 발걸음을 계속 응시했으며 마치 취한 듯이 몽롱한 
        표정이었다. 큰 홀까지 걸어 오셨을 때 스승님은 우리에게 차비를 지불했느냐고 물으셨다. 시자들은 당황했다. 한 사람은 녹음기를 
        옮기느라고, 또 한 사람은 짐을 드느라고 바빠서 서로 상대방이 지불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스승님은 우리를 상기시키느라 
        번거로우셨다. 그러나 황홀경에 빠진 이 운전기사가 차비를 받는 것도 잊어버린 것은 더더욱 희한한 일이었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42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11 Mar 2004 16:03:25 +0900</dc:date>
</item>


<item>
<title>수행의 평화로운 분위기로 지구의 미래를 맞이하자</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64</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칭하이 무상사/ 1995. 
        1. 2. 포모사 시후 센터(원문 중국어)</p>
      <p><font color="#336699">최근의 세태가 점점 더 불안해지고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심판의 날과 계시록에 대한 두려운 소문들이 무성하다. 결국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지구의 발달과 미래의 방향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새해 선삼 동안의 스승님의 최근 강연을 소개한다. 온 
        인류가 새해로 접어들 때에 우리는 스승님의 충고와 주의 말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최고의 관음법문 가족에 
        더 많은 친구들이 함께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사람들의 수행의 힘이 만들어 낸 부드러운 자장으로 지구는 재난으로부터 구조될 것이며 
        점점 문명화되고 진보될 것이다.</font></p>
      <p>우리의 수행에 의해 형성된 긍정적인 힘으로 세상의 재난들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누구의 도움도 없이 
        방치된 상태로 재난이 일어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을 하지 않았다면 오래전에 지구 전체를 파괴할 정도의 재난들이 훨씬 
        더 많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파괴시키는 방법은… 큰 사람들이 작은 사람들을 삼키고 작은 사람들은 더 
        작은 사람들을 잡아먹고…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우리가 서로를 죽이는 것입니다.</p>
      <p> 이 세상은 혼란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국가들 사이에 왜 그렇게 많은 재난들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총과 무기를 
        제조하는 어떤 사업가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자기들의 상품을 팔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 저것 봐라! 저들이 당신들을 
        공격하려 하고 있다.”(스승님 웃으심)라는 소문들을 퍼뜨릴 방법을 찾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실과도 무관한 이야기들을 지어냅니다. 
        “어떤 최고의 비밀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이 당신들을 공격하리라는 것을 안다. 만약 그들이 당신들을 공격한다면 그들을 
        지옥으로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나는 당신들에게 경고했다!” 저 어리석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와 무기들을 삽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친구이니까 난 당신들에게 유리한 거래를 할 것이다. 나는 당신네 나라를 보호하고 싶기 때문에 싼 가격에 줄 
        것이다. 당신들이 원한다면 기한 외에 지불할 수 있다.” </p>
      <p>그는 또 다른 나라에 가서 말합니다. “봐라! 왜 저 나라가 그렇게 많은 무기들을 사들이고 있는지 아는가? 당신들이 그 이유를 
        아는가? 그들은 당신 나라의 국경 인접 지역에 많은 무기들을 비축해 놓고 있다. 내가 아는 한 그들은 심지어 핵폭탄도 가지고 
        있다. 당신들이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면 너무 늦을 것이다." 양측에서 싸움이 시작될 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와! 
        대단하구나. 나는 이제 수백만 달러를 벌었다!”</p>
      <p> 이것은 한 가지 예에 불과합니다. 세상의 역사 속에는 이와 같은 이야기들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그렇게 
        많은 전쟁이 일어난 이유입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가 많은 생애에 걸쳐 살생의 업장을 너무 많이 축적해 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 지구를 둘러싼 그러한 증오의 분위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수행을 한다면 상황은 호전될 
        것입니다. 지난 1994년처럼 비록 많은 재난이 발생했지만 아직도 밝은 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죠? 가령 지구는 다른 행성과 
        거의 충돌할 뻔했습니다. 지구에 타격을 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습니다. 맞아요? 아마도 우리가 참회했기 때문에 지구의 
        어떤 좋은 분위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하고 명상을 합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힘이 지구의 큰 재난의 일부를 
        막습니다. </p>
      <p>전쟁이 일어나는 한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인간이 살생에 의해 야기되는 죽음의 결과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세상에는 재난이 계속될 것입니다. 채식주의자들도 약간의 영향을 받지만 우리들 중 대부분에게는 아무 일 없이 평화로울 것입니다. 
        우리는 죽을 때 우리가 갈 곳을 압니다. 우리에게는 어떠한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42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11 Mar 2004 16:01:45 +0900</dc:date>
</item>


<item>
<title>진정으로 에고란 없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63</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칭하이 무상사/ 1994. 9. 6. 하와이 단체명상(원문 영어)</p>
      <p> 단체명상 때 어느 동수가 이런 질문을 했다. <br />
        “스승님, 내면의 신과 우리의 절친한 관계에 있어 우리의 에고가 개입한다는 사실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에고를 어떻게 제거할까요?”</p>
      <p><br /><span class="topic">에고는 환경의 영향에서 비롯된다</span></p>
      <p> 진정으로 에고란 없습니다. 단지 환경의 영향일 뿐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무언가를 잘못했을 때는 벌을 받고, 잘했을 때는 
        칭찬을 받지요. 때로 뒤늦게 칭찬을 받기도 하고요. 그후 칭찬을 받고 캔디나 다른 뭔가를 받기 때문에 어떻게든 돋보여야 한다고 
        배웁니다. 그후 우리는 자라서 학교에 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훌륭한 사람 또는 사회적으로 일을 잘 해나가는 방법과 우월해지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에 대해서 배웁니다. 우리는 다시 똑같은 것을 배웁니다. 최고가 되는 법, 말을 매끄럽게 하는 법,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법 등. 심지어 어떤 때는 이런 것들이 그리 정직하게 행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칭찬을 받기 위해서지요. </p>
      <p>그리하여 습관이 몸에 배는 것입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우리가 원하는 방법으로 일을 해나가는 것이지요. 그것이 소위 
        에고입니다. 애당초 에고란 없습니다. 그후 우리는 성공과 실패에 아주 익숙해지고 우리 자신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우리는 생각하지요. 
        ‘아! 나는 이것을 해냈어. 저것을 해냈어. 나는 그를 아웃시켰어. 그들을 속였지. 기타 등등.’ 그러고 나서 우리는 점점 더 
        거만해집니다. 그것이 소위 에고입니다.</p>
      <p><br /><span class="topic">습관은 두뇌에 의해 축적된 정보이다</span></p>
      <p> 실제로 그것은 모두 습관입니다. 우리는 에고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개인에게 있어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같은 수준의 지능을 가진 두 사람이 다른 환경 속에서 자랐다면 똑같은 상황에 직면했을 때 다르게 반응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축적한 습관이나 어린 시절 또는 일생 동안 배운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에고란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오직 습관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합니다.</p>
      <p> 예를 들어 이제 여러분은 명상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돌아다니는 데 아주 익숙해 있죠. 7시에 커피 마시러 가고 
        8시에 춤추러 갑니다. 그런데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여기에 앉아 있으라고 말합니다. 비참한 노릇이지요. 때로는 신을 볼 수조차 
        없는데, 항상 그런 건 아닙니다. 예? 어떤 행운아는 항상 신을 보고, 이를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바닥이 내려앉을 
        정도로 앉아 있지만 아무것도 못 봅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여러분을 언짢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신으로서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신이 자애롭다는 것조차도 여러분은 믿기 어렵습니다. 신이 자애롭다면 왜 나한테는 오지 않고 이웃에게는 가는지?</p>
      <p> 왜냐하면 여러분은 성장함에 따라 세상 사람들이 하는 방식으로 사물을 비교하는 것을 배우려고 하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여러분에게 
        이렇게 가르치지요. 이웃이 너보다 낫다. 그의 차가 더 비싸다. 왜 신은 그에게는 그런 것들을 주고 나에게는 주지 않는가? 이것이 
        소위 에고로서, 따지기 좋아하는 두뇌이며 사회의 영향으로부터 축적한 것이지요. 그래서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와 반대로 
        하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는 무의미한 것을 생각하며 OK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단지 습관일 뿐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쓰레기를 
        믿지 않습니다. 단지 여러분의 일을 하기만 하십시오. 두뇌에 귀기울이지 마십시오. 그러면 천천히 여러분은 그것에 익숙해질 것입니다.</p>
      <p><br /><span class="topic">여러분 자신을 용서하고 바꾸도록 노력하라</span></p>
      <p> 마음이 순수한 사람은 더욱더 단순합니다. 그들은 더 빨리 신에게 도달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너무 많은 생각도 너무 많은 
        비교도 하지 않으며 이기기 위해 너무 많은 연구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적인 사람들일수록 더욱더 복잡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런 분야에서 성공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면 그런 거예요. 그러므로 그들은 찬반과 성패를 분석하고 생각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습니다. “내가 앉아서 명상을 하면 신으로부터 무엇을 얻을까? 알다시피 시간은 돈인데."(웃음) 때때로 그와 같죠. 
        그후 잠재적으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천국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습니다. 그것이 이른바 에고입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불화가 잦은 집에서 자란 많은 어린이들이 자라서 범죄자가 됩니다. 그들은 어린 시절에 사랑받지 못했지요. 그들은 자라서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 폭력만 알지요. 그들은 폭력과 완력으로 적을 이기기 위해 그리고 더욱더 힘센 자가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폭력은 무엇이나 사용하는 것만을 알 뿐입니다. 그들 대부분은 사랑받지 못했으며, 그들이 변화되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그때 여러분은 그것을 그들의 에고라고 말하지요. </p>
      <p>실제로 나는 그것을 단지 습관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습관'이라고 말하면 ‘에고'라고 말하는 것보다 이해하기가 더 쉬우며 
        또한 도달하거나 교정하기가 더 쉬운 것 같습니다. 에고는 우리가 싸워야 할 어떤 실체, 또는 그와 같은 어떤 것처럼 아주 위협적으로 
        들립니다. 그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를 닦는 것조차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 세 번씩 닦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습관이 안 되었으며 바꾸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양치질을 하루 세 번씩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장 
        후 그것이 이를 상하게 한다는 것을 알았으며 나는 아름다워지고 싶었지요. (웃음) 그때서야 나는 식사 후 이를 닦는 습관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으며 그것을 따랐지요. 그런 겁니다. 단지 습관입니다. 하나의 습관, OK? 그러므로 자신을 용서하고 바꾸려고 노력하십시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43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11 Mar 2004 14:45:25 +0900</dc:date>
</item>


<item>
<title>시련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62</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칭하이 무상사/ 1994. 9. 6. 미국 하와이 단체명상(원문 영어)</p>
<p><font face="돋움" color="#0049c4">단체명상 때 한 동수가 질문했다. “우리가 이 지구에 올 때 우리 자신이 부모를 선택합니까?” <br />스승님이 대답하셨다. “예! 여러분이 모든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 어떤 것도 모두 여러분의 선택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것을 잊어버리고 거부하는 것입니다.”</font></p>
<p>때로 우리는 거부합니다. 당신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우리의 상황에 대해 불평합니다. 사실상 힘든 상황, 심지어 재난이나 폭력적인 사건들조차도 때로는 우리 자신이 도전해서 성장하도록 우리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상황이 힘들면 힘들수록 우리의 영혼은 더욱더 강해질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p>
<p>그러나 때로 우리는 너무 막중한 임무를 선택해서 실패하게 되면 그것을 싫어하게 됩니다. 예, 그런 겁니다. 그래서 내가 사실 그 어떤 것도 모두 여러분에게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하지만 우주 만물 상호간의 모순은 결코 끝이 없습니다. 내가 말하는 뜻을 이해하겠습니까? 예를 들어 여러분은 내게 “그러면 왜 스승님은 사람들의 고통에 함께 우십니까?”라고 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 것입니다. </p>
<p>한편으로 우리는 고통이 우리에게 좋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 한편으로는 의사의 주사가 나의 알레르기에 좋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난 주사 맞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나는 말하죠. “제발!” 나는 정말로 그들이 주사 놓는 것을 막고 싶었어요. 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겠습니까? 어리석지요! 나는 그 전에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때로 나는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어떡하겠어요! 그것이 내 약점인데. 나는 그것을 알고 있고 여러분에게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p>
<p>여러분의 영적인 면과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선택한 상황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이나 시험들이 실제 상황으로 닥쳐오면 여러분은 두려워합니다. </p>
<p>나는 나 스스로 의사에게 찾아갔던 사람입니다. 나는 곧바로 그 문을 지나서 의사에게 진찰을 요구했습니다. 왜냐하면 시럽이 발라진 온갖 달콤한 알약을 먹어 봐도 아무 소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미 의사가 나에게 주사를 놓거나 뭔가를 처방해 주리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나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알레르기는 약을 먹어 봐야 소용도 없고 몸 전체에 번질 수도 있어요. 의사에게 가면 아마 100% 주사를 놓아 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낫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나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지요. </p>
<p>그러나 아는 것과 주사를 맞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스승님 웃음) 간호사가 당신 뒤에 있을 때 당신은 그녀를 볼 수도 없습니다. 처참할 노릇이지요. (웃음) 그녀가 거기서 뭘 하고 있는지, 그녀가 실수해서 다시 주사를 놓고 있는지 어떤지 당신은 알 수가 없습니다. 때때로 그렇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그들은 형편없습니다. 때로는 주사를 엉뚱한 데 꽂고는 “오! 미안해요. 다시 놔 드릴게요.”라고 합니다. (웃음) 오, 그럴 때는 정말 신이 존재하는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모두 웃음)</p>
<p>하지만 괜찮아요. 상관없어요. 다행스럽게도 신은 아주 관대하십니다. 신은 우리의 약점을 개의치 않습니다. 예! 그 또한 좋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주사 바늘을 싫어합니다. 나는 결코 좋아하지 않아요. 내가 어렸을 때 나의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억지로 주사를 놓았죠. 나는 주사 맞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나는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가 그것을 싫어한다 해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p>
<p>우리가 태어나기 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환경, 부모, 시련, 시험, 친구들 그리고 우리가 처해질 여러 상황 등등. 우리 자신이 모두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너무 힘들 때 우리는 울지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여러분은 울 수도 있고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약점을 극복하고 그 시험을 통과하도록 여러분의 영혼을 위로하거나 좀더 빨리 그 시험을 통과하도록 여러분을 돕는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p>
<p>마치 여러분이 의사에게 주사를 맞아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간호사가 여러분의 손을 잡는 등 혹은 여러분의 딸이나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가 말할 것입니다. “착하지, 내가 나중에 영화 구경시켜 줄게.” (모두 웃음) 이처럼 말입니다. 내 말을 이해하겠습니까? 하지만 여러분은 여전히 그 주사를 맞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 옆에 있으면 좀더 나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찾아옵니다. 그로 인해 당신의 고통이 줄어들거나 슬픔이 덜한 것은 아니지만 꽃이나 문병 카드 또는 친구들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미소 짓고 사랑해 줌으로써 위로가 되고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그렇죠? 예!</p>
<p>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 그 때문에 우리가 명상하는 겁니다. 기도와 명상은 시험의 고통을 경감시켜 줄 뿐만 아니라 그 시험을 무사히 통과하도록 해 줄 것입니다. 됐습니까?</p>
<p class="caption" align="right">- 뉴스잡지 45호에서-</p>]]></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11 Mar 2004 14:38:39 +0900</dc:date>
</item>


<item>
<title>스승도 유전된 습관과 싸워야 한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61</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칭하이 무상사/ 1994. 
        9. 6. 미국 하와이 단체명상(원문 영어)</p>
      <p><font color="#FF6666">스승은 인류의 복지와 안녕을 증진시키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온다고들 합니다. 스승이 이곳에 
        있는 동안 그들도 우리처럼 될 수 있나요?</font></p>
      <p><strong>스승</strong>: 당신은 스승이 이 등급으로 낮아지는지를 질문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 얻은 그 DNA(유전 인자)는 많은 세대를 거쳐 유전된 것입니다. 당신은 그들의 아이들을 통해서 그들로부터 약간의 DNA를 
        얻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아기가 당신에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일컬어 윤회라고 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결코 순수한 
        유전 인자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물려받은 DNA 속에 수집되어 있는 습관과 투쟁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이곳에 올 때는 더 이상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명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세포 안에 물려받은 부정적인 정보를 저지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당신이 완전하지 않으므로 그것들과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p>
      <p>물론 당신은 이미 이 상황을 선택해서 태어났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여기서 어떤 타고난 스승의 DNA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옛 스승의 DNA가 이 지상에 남아 있어 그 가족을 통해서 당신이 어느 정도 물려받았더라도 말입니다. 좋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스승으로 태어날 수 있었다고 내가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도 혈통을 통해서 이미 다른 많은 DNA와 섞이게 되지요. 
      </p>
      <p>자, 예수에게 자녀가 있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괜찮습니까? 좋습니다. 그러면 예수의 DNA는 그 아이에게 유전됩니다. 그 아이는 
        스승이 안 될 수도 있지만 DNA는 여전히 거기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는 사회로부터 다른 것들도 수집했기 때문에 반드시 
        순수한 DNA만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자녀가 또 다른 아기를 가지면 사회 환경과 축적된 습관이 원래 물려받은 
        DNA에 함께 등록됩니다. 내 말뜻을 알겠습니까?</p>
      <p> 또 다른 천상의 존재가 스승이 되려고 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는 옛 스승의 DNA를 가진 가족을 선택할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었다면 아마 나는 그곳에 태어났을 것입니다. 천국에 있는 모든 가능한 중매자들은 이들 두 사람을 결합시키려고 무진 애를 
        썼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원하는 DNA와 그에게 필요한 상황과 부모를 갖게 하려고 말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순수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말하는 걸 알지요? 진짜 예수는 아닙니다. </p>
      <p>그때에도 세포 안에는 예수의 기억에서 떨어져 나온 많은 습관들이 섞여 있습니다. 그가 얻은 모든 지혜는 그만두더라도 때로는 
        섞이고 더럽혀져 모두 희석됩니다. 아니 그뿐 아니라 다른 종류의 성분들도 섞입니다. 그래서 이것만으로는 스승이라고 알아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것을 분리할 수는 없습니다. 이해하겠습니까?</p>
<p>        따라서 스승의 영혼이 그 사람의 몸으로 들어갈 때 그는 전에 물려받은 훌륭하고 성스런 DNA 외에 부정적인 요소들과 여전히 싸워야 
        합니다. </p>
      <p><br /><font color="#FF6666">그렇다면 여기 이미 환생한 영혼이 스승의 영혼과 합의했다는 말입니까?</font></p>
      <p><strong>스승</strong>: 예, 때로는요. 오래전에 준비된 거지요. 그래서 나는 인간이 매우 소중하며 인간의 생명이 
        귀중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좋은 방향으로 활용하십시오. 안 그러면 우리가 다시 기회를 갖기란 무척 희박합니다. 매일 너무나 
        많은 영혼이 생산되어 신이 일일이 반죽하고 손질해서 완벽한 형태로 조각해야 합니다. (스승님 웃음) 그래서 그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그 기회가 빨리 오지 않습니다. 아마 그 기회를 놓치면 때로는 수억 년이나 수조 년이 흘러야 대기 명단에 오르게 되어 
        눈길이라도 받게 될 것입니다. </p>
      <p>그래서 스승과 스승 사이에도 차이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승은 그래도 스승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모두 스승에게서 
        배웠고, 천국에 있는 스승의 수준으로부터 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배우고 자신과 투쟁하고 진보하는 방식을 통해 여러분은 스승이 
        됩니다. 그때 다른 사람들은 게을러 주변에만 맴돕니다. 그것도 괜찮습니다. 그들은 서서히 천상의 존재가 됩니다. 그것도 좋지만 
        똑같지는 않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학생과 같습니다. 어떤 학생은 진보하고 교수가 되려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어떤 학생은 유급되거나 
        낙제합니다. 그것도 괜찮습니다. 누구도 뭐라고 말하지 않지요. 여러분이 바라는 대로 될 것입니다. </p>
      <p>당신이 천국에 가서 예수나 그 주위에 있는 다른 존재들을 보면 비록 그들이 모두 사랑이 넘치고 인자하고 거룩하더라도 스승은 
        아닙니다. 또한 스승은 여기서의 임무를 마치면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더 훌륭한 임무, 더 막중한 책임이 주어지지만 지상에서보다 
        훨씬 즐거운 일이며 지구인들보다 그들 존재를 가르치는 것이 더 수월합니다. </p>
        <p>그것은 지구인들을 가르치기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이런 상황으로 뛰어들 때 세포 안에 이 모든 DNA와 에고를 물려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는 말을 알겠습니까?</p>
      <p> 당신이 죽으면 세포도 죽지만 당신의 자녀는 당신이 가졌던 DNA와 세포를 계속 갖게 되지요. 또한 모든 정보는 두뇌에서와 
        같이 세포 안에 기록됩니다. 그래서 결코 죽지 않습니다. 두뇌는 죽어도 정보는 계속 이어집니다. </p>
      <p>그래서 사람들이 대를 이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내 말을 알겠지요? 모든 정보는 대를 이어 물려주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식구끼리는 많은 특징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론 그렇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는 다양하게 변화합니다. 
        설사 어떤 사람이 아버지로부터 모든 정보와 특성을 물려받았더라도 자신의 것을 발전시키고 다른 혼합체로부터 배워 원래 지녔던 정보와는 
        달리 별개의 개체가 됩니다. 그래서 그는 또 다른 개체가 됩니다. 그는 아버지의 특성과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함께 지닙니다. 
        많은 스승들이 이곳에 오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오기 전에 물려받은 숱한 쓰레기와 누군가의 DNA(모두 웃음)와 이 도구로는 
        일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여러분은 어쩔 수 없지요. 알아요? 그래서 이 고장난 도구를 가지고 불완전한 상황과 다른 도구들 속에서 
        완벽하게 일하려고 몸부림칩니다. 이건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스승이 되고 싶으면 삼세번은 생각해 보세요!</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47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11 Mar 2004 14:35:45 +0900</dc:date>
</item>


<item>
<title>무한한 매혹이 담긴 스승님의 사랑</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60</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글/ 거주제자 쿠오/ 
        포모사 시후 센터</p>
      <p><font color="#cc0099">*</font><font color="#cc0099">!*모나코 여행*!*</font></p>
      <p><font color="#9933cc">프랑스 파리와 이태리 밀라노에서의 패션쇼 사이의 막간을 이용하여 몇 명의 시자들은 스승님을 
        따라서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모나코라는 조그마한 나라를 방문했다. 현재 이 나라에는 동수가 한 사람도 없었다. 그 나라는 바다에 
        근접하여 있는 매우 아름다운 곳으로서, 산이 온통 바위로 형성되어 있음에도 나무가 매우 많았으며 아름다운 꽃과 빌딩이 많이 있었다. 
        특이한 모습은 건물들이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이었다. 모나코에서 자동차 경주 시즌이 다가옴에 따라 도시 내의 모든 호텔들이 
        완전히 예약이 되어 있어 우리는 할 수 없이 일시적으로 프랑스 지역 내의 언덕에 자리잡은 호텔에 투숙할 수밖에 없었다. <br />
        방문 첫날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거의 어둠이 깔려 있었는데, 호텔로 가기 전에 스승님은 모나코 도심 주위를 여행하고자 차를 한 
        대 빌리셨다. </font></p>
      <p><font color="#9933cc">그날 스승님은 손수 디자인하신 드레스(노란 색깔의 인디언 의상)를 입고 계셨는데 너무나 
        우아하고 아름답게 보여 실로 여왕같이 보였다. 우리 택시 기사는 매우 유머러스한 사람으로서 스승님을 매우 좋아했는데, 우리가 
        가는 곳마다 “이분은 여왕이에요.”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다. </font></p>
      <p><font color="#9933cc">실제로 스승님의 품위나 거동은 어느 여왕보다도 출중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스승님 소개를 
        받을 때는 어느 누구든지 의심 없이 자연스럽게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가끔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가까이 다가와서는 “이분은 
        어느 나라에서 온 여왕입니까?” “그녀는 어디에서 오셨나요?” “그녀는 매우 아름답군요.” 하는 등 질문을 하기도 했다. 스승님은 
        가는 곳마다 대중들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font></p>
      <p><font color="#9933cc"> 한번은 운전기사가 교통 경찰관의 코앞에서 불법 주차를 한 채(그 나라의 법은 매우 
        엄격하다.) 경찰관에게 “이분은 여왕입니다.”라고 말하자 그 경찰관이 벌금을 징수하는 것조차 잊은 적이 있었다. </font></p>
      <p><font color="#9933cc">다음날 스승님은 우아한 어울락 전통 의상을 입고 전세 택시로(전날의 그 운전기사가 아님) 
        모나코 궁전 앞에 도착하셨다. 궁전 앞 광장에서는 많은 관광객들이 건물 양식과 주위 풍경에 찬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스승님이 
        자동차에서 내리시자마자 순간적으로 그곳에 있던 관광객들은 동시에 스승님 쪽으로 시선을 향하고는 마치 잘 훈련된 군인들처럼 스승님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들의 카메라나 비디오카메라는 온통 스승님을 사진 찍기에 분주했고, 몇몇의 사람들은 고개 돌리는 것을 잊은 
        듯 계속 스승님을 응시하고 있었다. </font></p>
      <p><font color="#9933cc">그러한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스승님도 부끄러우신 듯 몰리는 관중들의 시선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시면서 우산을 펴 들고 얼굴을 가리셨다. 운전기사는 차를 다른 장소에 주차했는데, 그곳에는 스승님을 시중드는 한 사람의 
        시자가 있었다.</font></p>
      <p><font color="#9933cc"> 궁전 앞에 있는 경찰마저도 자기 나라의 600년 된 역사적인 성채가 스승님 앞에서는 
        순간 볼품없는 성으로 전락해 버리자 매우 상심해했다. 박물관 또한 관람객들이 박물관 구경도 잊은 채 스승님을 보는 데 분주한 
        나머지 한산했다. 이전에 스승님을 따라 많은 나라를 다니면서 나는 대중들의 시선에 익숙해 있는 스승님께서 이토록 부끄러워하며 
        당황해하시는 것을 결코 본 적이 없다. </font></p>
      <p><font color="#9933cc">스승님은 바라보는 몇몇 사람은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 정도로 많은 사람이 바라볼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마치 스승님이 오실 것을 미리 알고는 사람들이 기다리며 예행연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font></p>
      <p><font color="#9933cc">후에 우리는 스승님을 따라서 해양 박물관을 방문했는데, 박물관으로 돌아올 때도 역시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앞 다투어 스승님을 사진기에 담았는데 그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나는 이들 모든 사람들이 
        스승님을 진실로 좋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font></p>
      <p><font color="#9933cc">스승님은 자리를 떠나시면서 여느 때와 같이 서서히 앞으로 움직이고 있는 차의 열린 창문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작별의 손을 흔들어 보이셨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승님 앞으로 원형의 파도처럼 모여들었으며 
        그들 중 몇 명은 합장하고 있었다. 여러 동수들은 이러한 광경에 매우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마치 스승님의 제자들인 
        양 우리 모든 동수와 같이 진지하고 자연스럽다는 걸 느꼈다.</font></p>
      <p><font color="#9933cc">후에 스승님은 “이상한 일이군! 어째서 그들이 나를 그토록 보고 싶어할까? 내가 특별한 
        어떤 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라고 말씀하셨다. </font></p>
      <p><font color="#9933cc">나는 스승님이 매혹적인 향기의 한 송이 꽃처럼 느껴졌다. 그녀를 보는 사람들은 가까이 
        있기를 원하고 그 향기를 맡은 사람은 누구나 깊이 도취될 것이다!</font></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47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11 Mar 2004 14:31:11 +0900</dc:date>
</item>


<item>
<title>사후(死後)의 심판</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59</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칭하이 무상사/ 1995. 
        6. 12. <br />
        포모사 시후 센터에서 외국 동수들에게 하신 말씀(원문 영어) </p>
      <p>사실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와 친했던 사람들은 우리가 죽은 다음에 우리와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조차도 그런 경험을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관음법문을 수행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는 동안 양심에 꺼리는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죽은 
        후 친척들과 친구들을 만날 것입니다. 선량하고 여러분과 좋은 관계를 맺은 사람, 여러분처럼 좋은 사람들은 잠시 동안 여러분과 
        함께 있다가 각자의 인생으로 돌아와 끝내지 않은 일들을 끝내거나 사명을 완수해야 합니다. 또는 그에 따른 새로운 것을 배우기도 
        합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말 여러분이 나를 좋아한다면 우리는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박수) 그리고 만일 우리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면 같이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원한다면 말예요. (박수) </p>
      <p>심리학자인 한 의사의 최근 연구 발표에 
        의하면 어떤 질병을 가진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최면을 이용하여 그 사람을 전생으로 돌아가도록 했을 때 여러분도 알다시피 대부분의 
        환자들이 동일한 이야기를 한다는 걸 그는 알았습니다. 즉 그들은 전생으로 돌아가 그들이 죽기 바로 전 지점까지 갔다가 터널을 
        빠져나가서 빛과 빛줄기 등등을 본다는 거지요. 그리고 심판처럼 정말 그들을 심판하는 것은 아니고 그들이 살면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바르게 고치고 다음에는 태도를 바꾸어야 된다는 등 그와 같은 것을 말해 준다는 겁니다. </p>
      <p>즉 그들이 살면서 뭔가 
        잘못했다면 그것은 지옥을 겪는 것처럼 아주 고통스러운 체험입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 피해자가 느끼는 느낌을 그대로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바로 지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서 고통을 받고 위협을 받을 때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고통을 준 사람은 이생을 떠나기 전에 그 피해자들의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 알겠지요. 거기 앉아 있는 사람들이 그에게 영화처럼 그런 상황을 보게 하지만 그 느낌은 실제처럼 아주 생생합니다. 
        우리가 죽는 순간에 그런 아주 고통스러운 느낌을 체험하는지 안 하는지는 우리가 이생에서 얼마나 악한 행동을 했는지에 달렸습니다. 
        이생을 떠난 후 여러분은 죽습니다. 그 사이에는 항상 휴식 기간이 있습니다. </p>
      <p>이 기간 동안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한 그런 고통스러운 느낌들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 체험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우리가 
        나쁘고 악한 행동을 너무 많이 하게 되면 그 고통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 같습니다. 고통스러운 기간은 항상 길고 행복한 시간은 
        항상 짧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살면서 악한 일들을 했다면 그 기간 동안 아주 고통스럽습니다. 그것을 바로 지옥이나 벌을 받는다고 
        하는 거지요. 그래서 그 의사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그와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좋은 일을 했건 나쁜 
        일을 했건 간에 그들과 똑같은 수준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죽은 다음에 와서 그들을 반겨 줍니다. 그런 다음 그들이 살면서 
        좋은 행동이나 나쁜 일을 한 것에 대한 회고 내지는 대가를 치르고 나면 그 심판, 즉 스스로의 심판이 끝납니다. </p>
      <p>사실 사랑에 
        가득 찬 세 존재가 거기 앉아서 아량 있고 친절하게 그들을 지도하고 가르쳐 주긴 해도 어느 누구도 그들을 심판하지는 않습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 심판하는 것입니다. 우리 감정 때문에 우리가 남에게 무엇을 했건 간에 똑같은 방식으로 더욱 확대되어 우리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심판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우리가 어떻게 했는지 그 모든 것을 자세하게 아는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통이 몇 갑절 더한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과 다음 생 사이에 있는 이 고통과 보상의 기간을 
        전부 겪은 다음에 그들이 죽기 전에 다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그 똑같은 일을 하거나 또 다른 뭔가를 하러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들이 다 끝냈다면 다른 새로운 걸 배우거나 그들이 원하면 전생에 했었던 일을 계속합니다. </p>
        <p>그런 후에 대부분의 친척, 친구들이 다시 함께 돌아올 것입니다. 그들은 최대한 안배를 하지요. 예를 들면 어머니와 아들이 다시 
        와서 같이 살게 됩니다. 남편과 부인, 형제자매들 등등, 불행하게든 또는 다행스럽든 서로 다른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모자지간이 
        부부가 된 이야기를 가끔 듣기도 하지요. 왜냐하면 천국에는 나쁜 일이나 좋은 일, 그런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배우는 
        과정의 경험일 뿐입니다. 그러나 경험상 반드시 좋고 나쁜 게 있습니다. 나쁜 경험은 여러분에게 나쁜 느낌을 주고, 좋은 경험은 
        좋은 느낌을 줍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경험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모든 경험이 다 똑같거나 좋거나 나쁘거나 또는 밋밋하거나 
        느낌도 없고, 감정도 없고, 고통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면 각 경험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것이 
        나쁘니 마음이 아프고, 이것이 좋으니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 수도 없고 그 앎을 통해 성장할 수도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p>
      <p>정말 심판은 없습니다. ‘당신은 나쁜 사람, 당신은 좋은 사람’이라고 꼭 집어서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분의 선택에 따라 여러분 내면의 지혜가 다른 사람과 여러분 자신에게 무엇이 더 이롭고 더 행복한 것인지 말해 주는 것뿐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사는 동안 그와 같은 좋은 판단을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한 나쁜 일이 정말 사람들을 해친다는 걸 경험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게 나쁜 선택이었기 때문에 다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다음번에 알기 위해서 아픔을 느껴야만 합니다. 알겠어요? 
        </p>
      <p>그렇게 해서 우리는 세세생생 바른 선택을 하고 정말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 된다는 걸 배우게 되는 겁니다. 그리하여 이생과 다음 
        생에 좋은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좋은 일을 여러분이 하고 있다면 확실히 우리는 다시 함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경험이나 선택의 법칙에 따르면 유유상종이니까요. 그런 거지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좋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생에서 바른 선택을 한다면 우리가 함께하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오랫동안 말예요. </p>
      <p>여러분이 나쁜 선택을 했다면 여러분이 진정으로 그것이 나쁜 선택이었다는 걸 깨달을 때까지 우리는 얼마간 떨어져 있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배우고 그것을 다 경험하고 난 다음에는 함께 있을 수 있겠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지도 않고 받아들이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이런 윤회의 사실은 몇몇 의사들이 최면술을 통해 우연히 발견해서 증명된 것입니다. </p>
      <p>어쨌든 입문한 우리가 정말로 최선을 다해 명상하고 
        착하고 항상 바른 선택을 하라는 지시와 계율을 따르면 그렇게 윤회할 필요도 없고 중간에 쉬면서 심판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우리가 심판을 받아야 한다면 아무런 할 말이 없고 오직 좋은 것만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스승이 
        이 모든 것을 돌봐 줄 테니까요. 우리는 이미 다른 영역에 속해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박수)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이라도 
        우리가 다시 함께하리라는 걸 여러분에게 알려 주려고 이 이야기를 해주는 겁니다. 우리가 얼마나 더 여러 번 귀족 혈통의 형제자매가 
        될는지. (스승님 웃으심, 청중들 박수) 우리는 고귀한 가문 출신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함께할 겁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4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11 Mar 2004 14:25:28 +0900</dc:date>
</item>


<item>
<title>항상 행복하고 즐거운 마음을 유지하라</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58</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칭하이 무상사/ 포모사 시후 센터. 중추절 선삼(원문 중국어)</p>
      <p> 사람마다 다른 빛깔의 오라를 지니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한 과학자(Kaths 박사)가 그것을 증명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는 
        각기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예를 들면 그는 항상 즐거워하고 웃고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상대로 그들이 내뱉는 공기를 채취했습니다. 그것을 테스트해 본 결과 그 공기는 하얀 빛깔을 띠고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또 몇몇의 사람들 ‘고뇌에 찬 부처’-찌푸린 눈썹에 우거지상을 한 긴 얼굴의 소유자들-을 상대로 그들이 내뱉는 공기를 
        실험했습니다. 색깔이 완전히 달랐어요. 회색처럼 우중충한 색깔이었습니다. 그는 계속 실험했는데 이번에는 항상 화를 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내뱉는 공기는 짙은 노란색, 붉은 갈색 또는 주황색이었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매우 어두운 노란색, 아주 어두운 색깔을 
        말하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항상 다른 사람을 해치고 못살게 구는 사람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죽었으면 하고 바라는(스승님 
        웃으심) 사람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지요! 그들이 내뱉는 공기를 검사한 결과 검거나 아주 어두운 갈색이었습니다. 그후에 그가 
        그 어두운 갈색 공기를 생쥐에게 주입시켰는데 단 몇 분 만에 그 쥐는 죽어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내뱉었던 
        공기를 주입시킨 쥐들은 살아남았는데, 그 쥐들은 흰빛의 신선한 공기를 주입시킨 것들이었고 반면에 검거나 짙은 갈색의 공기를 주입시킨 
        쥐들은 곧바로 죽어 버렸지요!</p>
      <p> 오! 우리는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자가 실제로 사람의 오라가 존재한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해 보였다는 
        사실은 몰랐던 거지요! 나는 종종 얘기해 주었습니다. 누군가와 가까이 앉음으로 해서 그의 업장을 절반은 짊어지게 된다고요. 그러니까 
        공업(共業)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요! 때로 우리는 어떤 장소에 갔다 온 후에는 매우 지치게 되는데 반면에 다른 곳에서 돌아왔을 
        때는 매우 편안하게 느끼곤 합니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진실이지만 우리가 발산하는 오라는 신에게 속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말을 이해합니까? 그것은 내면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신의 품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와 연관되어 있는 
        우리 두뇌의 어두운 사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면의 신과 접촉하지 않고 있지요! 우리는 보물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있지요. 그래서 우리는 가난한 사람과 같습니다. 알겠습니까? </p>
      <p>바로 이 때문에 여러분이 사람들 가운데 섞여 있을 때 지치게 되는 겁니다. 그것은 그들 내면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러한 신의 품성 대신에 외부의 어둡고 불결한 쓰레기를 여러분에게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러분이 그들 내면의 
        궁전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고서 현관에서 여러분에게 쓰레기만 안겨 주는 것입니다. </p>
      <p><br /><span class="topic">오염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법</span></p>
      <p> 오늘날 누군가 결국 이것을 증명해 보인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일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내가 얘기하는 것만을 들을 뿐이지요. 나는 그것을 내면의 지혜로 압니다. 이해합니까? 그렇지만 
        과학적인 근거를 대는 것이 더 신빙성이 있겠지요. 그래야 여러분이 스승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 테니까요. 나는 거짓말을 하지도 
        않고 여러분에게 겁을 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또는 여러분이 나를 두려워하거나 나를 위대하게 생각하도록 자랑을 늘어놓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말한 모든 것은 시간이 흐르면 다른 책들을 통해 증명될 것입니다. 나는 그 책들을 읽은 적도 없고 그러한 실험을 
        한 적도 없지만 그들이 언급하는 것들은 내가 말한 것과 동일한 사실입니다. 정말 대단한 일이지요. </p>
      <p>이 세상의 위협적인 분위기로부터 벗어나기를 진정 원한다면 우리는 항상 내면에 집중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피하기는 아주 어렵지요. 
        알겠어요? 사람들이 너무 여러분 가까이 있거나 또는 우리가 다른 일들을 하느라고 바빠서 항상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오염된 분위기를 정화하기 위해 매일 귀가한 후에 일정 시간 동안 명상해야 합니다. 이것이 명상한 후에는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또한 우리가 단체명상을 하러 센터에 갔을 때 우리는 하나로 융화되어서 긍정적이고 선한 생각을 하게 되고 
        아주 순수하고 불가사의한 힘을 지니게 되어 매우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까 센터에 올 때는 그 어떤 부정적인 생각도 가지고 
        오지 마세요. 잡다한 쓰레기, 실망과 좌절 그리고 골칫거리들을 가져오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다른 동수들을 오염시킬 
        것입니다. 이해합니까? 쓰레기는 모두 문밖에다 내려놓으세요. 여러분이 그것을 다시 가지기를 원한다면 집으로 돌아갈 때 다시 가져가세요. 
        아무도 여러분을 말리지 않을 것입니다. 단지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지 말라는 거지요. </p>
      <p>나는 히말라야에 아주 영험 있는 절이 하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어떤 환자도 그곳에 가면 낫는다고 하는데, 그건 그 절에서는 
        결코 그 누구도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사람들은 항상 선한 것만 말하고 선한 것만을 생각해서 그 영향력이 매우 
        커진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많은 이들이 우리 센터에 오면 행복하게 느낍니다. 우리가 선한 것만을 생각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 때문이지요. 그렇지요? </p>
      <p>단체명상은 진지한 것입니다. 비록 어떤 사람들은 ‘애인을 구하기’ 위해 올지도 모르지만요. 그러나 어쨌든 단체명상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단체명상에 오면 진짜 명상을 해야지 ‘애인 찾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알겠어요? 그렇지만 그것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나는 여러분 중 일부는 여전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렇다면 재빨리 그만두세요. OK? 그렇지 않으면 동수들이나 
        스승, 출가자들에게 문제를 가져다주게 됩니다.</p>
      <p> 때로는 진실을 모르는 편이 더 좋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사실을 알고 나면 두려움을 갖게 되고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감히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리에게는 보호하는 힘이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 간단히 좀더 충전을 하면 됩니다. 밤이나 낮 동안에 또는 아침에 언제든 우리가 시간이 있을 때 재충전하는 것입니다. </p>
      <p>우리는 여전히 세속의 사람들보다는 낫습니다. 밖에 나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은 수준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똑같은 이상을 가지고 함께 살고 있으니까요. 많든 적든 그들은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검은 공기를 내뿜는다면 그리고 여러분이 그 사람 가까이 서 있다면 당연히 여러분도 그 공기를 들이마시게 되지요. 그렇지요? </p>
      <p>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닮아 가지요. 왜냐하면 그들은 똑같은 코를 가지고 숨을 쉬니까요. (스승님과 모두들 웃음) 그것이 
        문제입니다. 때로 여러분은 정말 어떻게 이러한 상황을 피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p>
      <p>이 세상은 진정 고통스럽습니다. 우리는 옳게 또는 그르게 행동해 오면서 모두 똑같이 오염되어 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항상 우리를 보호해 주는 관음법문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망각하면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되지요. 그러니 잊지 않는 게 가장 
        좋습니다. 그리고 항상 5불을 외우십시오. 더 많이 명상할수록 더욱 좋아집니다. 그러니 항상 내면에서 5불을 떠올리십시오. 명상할 
        수 없을 때에도 5불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 잘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p>
      <p>자기 자신을 보호하도록 상기시키는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어떻게 여러분 자신을 보호하지요? 비참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오염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센터에 올 때는 나를 오염시키지 마세요. 나는 여러분을 만날 때만 제외하고는 
        매일매일 유쾌하게 웃는 아주 단순한 사람입니다. (웃음) 그러니까 남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왜냐하면 
        그것은 전염성이니까요. 알겠습니까?</p>
      <p> 예를 들어 여러분이 이번 주에 여기 올 때 얼굴은 우거지상을 해 가지고 말처럼 혹은 소시지처럼 긴 얼굴에 아주 비참해 보인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여기 있는 동안 여러분은 나에게 영향을 줍니다. 좋아요. 나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 주겠어요. 그러면 여러분은 
        그것을 나에게 떠넘긴 후에 다시 회복되겠지요. 하지만 다음주에 다시 왔을 때 나는 여전히 회복되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스승님과 
        모두들 웃음) 그러므로 여러분이 나를 보러 왔을 때 내가 여러분에게 그것을 되돌려 줄 거예요. 그래서 돌고 도는 거지요. 이해합니까? 
      </p>
      <p>우리는 센터 입구에서 얼굴이 긴 사람들을 가려내야만 할 것입니다. 모든 이들이 검열관에게 불려 가야 합니다. 만약 얼굴 길이가 
        20cm에 달한다면 퇴장이고 15cm 이하면 허용됩니다. 아니면 17cm 이하 그러나 만약 20cm라면 밖으로 내쫓기는 거예요. 
        나를 못된 사람으로 만들지 마세요. 알겠습니까? 나를 대신해서 그에게 말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눌러서 그의 
        얼굴을 샌드위치처럼 납작하게 만들어 버리겠어요. 그러고 나서는 이쑤시개 두 개를 사용해서 입 양쪽을 벌려 놓겠어요. 이 방법도 
        실패한다면 그를 밖으로 차 버려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똑같이 비참해질 거고 정말 나빠집니다. 특히나 단체명상에 
        올 때는 그렇습니다. </p>
      <p>때로 우리가 기분이 안 좋은 상태에 있다 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센터에 그것을 가져오지는 마세요. 다른 사람들은 단지 잠시 
        동안 단체명상을 하려고 잔뜩 기대를 품고 기쁨과 희망에 차서 옵니다. 그들은 업장을 씻어내고 활기를 되찾기를 원하고 그래야만 
        한 주 동안 모든 외부 장벽들과 싸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시간을 낭비하러 여기에 오고 귀중한 시간과 공간을 낭비하러 옵니다. 
        또한 사람들의 정신을 괴롭히고 에너지를 낭비하게 하고 그들의 수행의 진보를 방해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무거운 업장인지 잘 알 
        것입니다. 됐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p>
      <p><br /><span class="topic">서로에게 즐거움을 상기시키다</span></p>
      <p> 왜 우리가 즐겁고 청정하고 순수해야만 할까요? 첫째로 그것은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고 둘째로 다른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오늘 그에게 영향을 끼치면 내일은 그가 여러분에게 되돌려 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우리 단체가 
        결코 정화될 수 없습니다. </p>
      <p>그러므로 지금부터는 여러분이 센터에 올 때 여러분의 지저분한 감정의 찌꺼기들은 밖에 있는 쓰레기통에 다 버리고 오세요. 밖에는 
        쓰레기가 아주 많습니다. 여러분이 원한다면 나중에 다시 찾아가도 좋습니다. 아무도 당신의 쓰레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누구 원하는 
        사람 있습니까? 아무도 그렇게 어리석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기 학대증이 있는 사람일 겁니다. </p>
      <p>그러니까 이후로는 여러분이 센터에 왔을 때 긴 얼굴을 가진 사람이 없나 살펴보고 그가 긴 얼굴을 위로 잡아당겨 짧아지도록 도와주세요. 
        알겠어요? 아니면 여러분이 그에게 미용실에 가라고 말해 줘도 좋습니다. 플라스틱 기구로 위, 아래로 얼굴을 깎고 다듬어서 짧게 
        만들도록 말이지요. 만약 입 양쪽이 축 늘어져 있다면 입 양쪽을 위로 잡아당기도록 도와주세요. 그 어떤 방법이라도 좋습니다. 
        단지 너무 무섭고 난폭하게 당기지는 말아요. 그러면 그 사람이 역반응을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양쪽 다 계율을 어기게 될 
        테니까요. (웃음)</p>
      <p> 우리 모두 서로서로 행복해지도록 상기시킵시다. 간단히 우리는 행복해지기로 결심하면 됩니다. 매번 우리가 센터 입구에 도착했을 
        때마다 스스로 웃도록 마음먹는 것입니다. 물론 시끄럽게 웃음소리를 내면 안 되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고이 잠들어 있는 옆집 닭을 
        방해해서 암탉이 알을 낳지 않을지도 모르니까요. (웃음) 단지 신비스럽고 고요하면서도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십시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여러분의 치아가 다 드러나도 상관없습니다. 소음만 내지 말아요. 여러분 자신에게 웃으라고 말하십시오! 
        아니면 욕실로 가서 거울을 보고 미소 지으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아주 부드럽고 예쁘고 행복하게 미소 지을 수 있을 때까지 말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거기에 계속 서서 미소 짓는 연습을 하십시오. 언제까지? 여러분의 이웃이 OK라고 말할 때까지요. 두 사람씩 가서 
        서로서로 점검해 주는 것도 좋겠지요. 알겠습니까?</p>
      <p>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미소가 괜찮은지 어떤지 측정하는 검열관을 데려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기준을 세우기가 
        좀처럼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입 모양도 다르고 크기도 다 틀리니까요. (웃음) 그러니까 여러분 스스로 기준을 세우십시오. 
      </p>
      <p>좋습니다! 우리가 좌절감을 느낄 때마다 서로에게 상기시키도록 노력합시다. 만약 우리가 매일매일 이처럼 할 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때로 잊어버릴 때도 있겠죠. 그러니까 센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센터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미소 지으세요. 연락인들에게 
        센터마다 미소 짓는 미륵불상을 세우라고 요청하세요. </p>
      <p>왜 모든 사원에 미륵불이 있는지 알겠지요. 그것은 여러분에게 웃음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들 
        잊어버립니다. 이제 사람들은 미륵불을 볼 때마다 그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 자신의 문젯거리를 쏟아 붓고서 웁니다. 미륵불조차 
        더 이상 웃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미륵불의 배가 점점 커지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중생들의 온갖 고민거리를 집어삼켜야 
        하니까요! 온갖 쓰레기는 센터 밖에다 다 남겨 두고 미륵불께 전가시키지 않도록 합시다. </p>
      <p>때로는 억지로 웃는 것도 효과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신체의 세포가 아주 반응적이기 때문입니다. 신체의 세포들은 명령 체계의 
        신호대로 움직일 따름입니다. 이해합니까? 입가의 근육 세포들이 웃을 때 신체의 모든 세포들도 함께 웃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확대경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 깔깔대고 웃는 신체 세포들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당연히 우리의 정신도 향상되고 우리의 기분도 훨씬 
        좋아집니다. 내 방법대로 해보세요. 그리고 다음주에 봅시다. 여러분이 다음주에도 여전히 웃을 수 있다면요. </p>
      <p>됐습니다. 작별을 고합시다. 여러분 모두 자신을 잘 돌보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웃는 연습을 하십시오. 웃는 얼굴로 여러분 가족에게 
        인사하세요. 적어도 현관에 들어설 때 몇 초 동안이라도 웃어야 합니다. 계속 웃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그렇지만 크게 웃는 
        습관이 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여러분을 바보들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이제부터 웃지 않으면 입장 
        불가입니다. 웃지 않으면 여러분의 입문증을 압수해 버리겠어요. (스승님과 모두 웃음) 이 방법이 제일 효과가 있지요. 나는 이렇게 
        많은 아이가 있는데도 여전히 웃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이가 겨우 몇 명밖에 안 되는데 못 웃을 이유가 뭐 있겠어요? 
        하! 하!</p>
            
      <p> <br /><font color="#006699">과학적 실험들은 생명을 살해하는 이러한 믿을 수 없는 방법들을 보여 주었다. 격앙된 감정이 
        강력하고 치명적인 독소를 방출한다는 것이다. 극심한 공포와 분노를 일으키는 사람들에게서 추출한 혈액을 실험용 생쥐한테 주입시켰을 
        때 그 쥐들은 2분도 채 안 되어 죽었다. 이 독소들이 당신의 몸을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을지 상상해 보라. 공포와 분노, 좌절과 
        스트레스에서 나오는 독소들은 생쥐를 죽일 뿐만 아니라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죽이고 있다. </font><br /><font color="#003399">☞ 미국인 작가이자 예술인 앤드류 매튜스의 ‘행복해지기!’에서 발췌(원문 영어)</font></p>
      <p><font color="#006699">공포, 걱정과 불안 속에 살면서 건강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하다. 캐스 박사는 사람들이 
        호흡으로 내뿜는 공기의 성분을 조사하는 실험을 해 왔다. 그는 시험관을 사용해서 사람들이 내쉬는 공기를 채취한 후에 냉각 압축시켜서 
        액체로 만들어 그것을 시험관 병에 담았다. 그의 실험 결과 항상 미소 짓는 유쾌한 사람들이 내뿜는 공기는 아름다운 라벤더 꽃빛깔 
        혹은 밝은 백금색이었다. 반면 항상 화를 내는 사람들이 내뿜는 공기는 검은색이나 어두운 회색이었다. 캐스 박사는 특별히 독특한 
        한 부류의 사람들의 분비물을 수집했다. 이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해치려는 데 의식을 집중했을 때 내뿜는 공기는 진흙빛 갈색 
        또는 검은색이었다. 이것을 실험용 생쥐에게 주입시켰더니 그 쥐들은 5, 6분 만에 즉사했다. 이 사실은 모든 이들이 주목할 만하다. 
        </font><br /><font color="#003399">☞ 일본의 초월심리학자 미우라 세이리우 히로마사의 ‘4차원 세계를 방문하다’에서 발췌</font></p>
      <p><font color="#006699">노만 코신스의 책 [질병 해부]에서 그는 자신이 어떻게 불치병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정상적인 
        삶을 되찾았는지 말하고 있다. 그의 처방은 웃음이다. 코신스는 자신의 심각한 인생관이 병을 유발시켰다고 믿었고 웃음을 통해 회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년 동안 사람들이 ‘웃음은 최고의 약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여러분이 웃을 때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이롭게 하는 온갖 가지의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다. 엔도르핀이 두뇌로부터 흘러나와 몸과 마음이 고양된 느낌을 
        갖도록 해주며, 호흡계는 조깅을 하고 났을 때처럼 활발하게 움직이는 상태가 된다. </font></p>
      <p><font color="#006699">웃음은 또한 고통을 경감시킨다. 여러분은 긴장을 풀었을 때 웃을 수 있으며, 더욱 긴장을 
        풀고 느슨해질수록 고통을 덜 느낀다. 사실상 병과 웃음을 동시에 얻을 수는 없다. 여러분은 이것 아니면 저것을 선택해야 한다. 
        똑같은 상황일지라도 다른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는 종종 우리 자신과 삶에 대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해서 병에 걸린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웃는 일이다. </font></p>
      <p><font color="#006699">행복해지는 비결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가능한 한 빨리 웃어 버리는 것이다. 어떤 한 
        사람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실의에 빠져서 약 2년 동안이나 웃지 않았다. 또 다른 한 사람은 2주가 지난 후에 울음을 그치고 
        웃기로 결심했다. 그 때문에 처음의 사람은 나중 사람보다 50배나 더 오래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그것은 그가 선택한 
        것이다. </font></p>
      <p><font color="#006699">우리 모두는 불행으로 고통 받는다. 행복한 사람들은 실의와 좌절의 어리석음을 오래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거기서 재빨리 탈출하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우리 자신에게는 항상 커다란 고민거리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하라. 만약 다른 사람들이 잠 못 이룰 정도로 심각해하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 자신도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font></p>
      <p><font color="#006699">타인에 대한 우리의 최선의 대응책은 우리 스스로 즐기는 것이다! 우리가 재미있어 할 
        때 우리는 좀더 좋은 감정을 갖게 되고 더 잘 일할 수 있으며 사람들은 우리 곁에 있기를 원하게 된다. 삶은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다. 좀더 열렬하게 유머를 갖도록 하라.</font><br /><font color="#003399">☞ ‘행복해지기’에서 발췌</font></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50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11 Mar 2004 14:20:13 +0900</dc:date>
</item>


<item>
<title>전설의 왕 루이 2세</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57</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칭하이 무상사/ 1995. 9. 10. 포모사 시후 센터,<br />
        일요일 단체명상(원문 중국어)</p>
      <p> <font color="#FF9900">*1869년부터 1878년에 걸쳐 독일 뮌헨에 세워진 린데르호프 성. 루이 2세가 
        설계하고 건립했다. </font></p>      <p>
        <span class="topic">은둔의 왕</span></p>
      <p> 독일 국왕 루이 2세가 살았을 당시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를 어느 곳에 가둬 두었고 며칠 후에 
        그는 죽어 버렸습니다. 해변을 거닌 후에 그는 죽었습니다! 나는 그가 살해되었지만 역사에는 자살한 것으로 기록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주치의마저도 자살했다고 합니다. 이상하지 않은가요? 만약 그가 자살했다면 왜 머리에 두 개의 총구멍이 났을까요? </p>
      <p>만약 왕이 정말로 미쳤었다면 어떻게 천국의 성처럼 이토록 아름답게 내부 장식된 아름다운 성들을 지을 수 있었을까요? 그는 성뿐만 
        아니라 극장도 지어서 자기가 아주 존경하는 음악가들이 거기서 연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모든 건축물들이 매우 거룩했고 예술적이었습니다. 
        </p>
        <p>그는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었고 그의 말과 행동에는 수행자의 분위기가 어려 있었습니다. 그는 언젠가는 우리가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이며, 백조들이 우리의 마차를 끌고 우리는 우리의 무거운 육신을 끌고 다닐 필요가 없어서 지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천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말했던 것입니다. 그의 성들은 천국의 모습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후에 사람들이 그를 신화적인 
        왕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p>
      <p>그 당시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루이 2세는 국가 내에서 다른 사람과의 협력을 꺼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미쳤다고밖에 
        할 수 없었지요. 의사가 그를 정신병자라고 진단했을 때 루이 2세가 의사에게 물었어요. “내가 미쳤는지 그대가 어떻게 아는가? 
        그대는 나를 본 적도 없고 나에 대한 과거의 의학 자료를 본 것도 아닌데 이상하지 않은가?” </p>
      <p>그는 부와 명예를 바라지 않았고 왕좌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종종 거처를 옮겼습니다. 그는 화려한 궁전에 머물지 않고 아주아주 외딴 곳으로 갔습니다. </p>
      <p>여러분은 19세기에 아주 먼 곳으로 떠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그가 살던 곳에 가려면 대양처럼 큰 호수를 건너야만 했습니다. 
        그는 아주 먼 산으로 갔어요. 19세기에는 도로 여행이 수월하지 않았죠. 보트도 역시 그리 발달되지 못했고, 그곳으로 건축 자재들을 
        배로 실어 나르는 것은 정말 불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지요. 그러나 그 당시 그는 종종 이처럼 먼 곳을 찾아 떠났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를 보러 간다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만약 걸어가려면 높은 구두를 신을 수 없어요. (스승님과 모두들 웃음) 
        또 산을 넘어야 하는 등과 같은 상황이지요. </p>
      <p>그러므로 그 당시에 어떤 사람들은 그가 수행하려고 은거한 왕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도 그가 미친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정치인들만이 그를 없애기 위해 그렇게 말해야 했겠지요. 그래야만 자기들 말을 잘 듣고 자기들과 손을 맞잡을 왕이 될 사람을 
        달리 구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건 모두 정치적 계략이었습니다. </p>
      <p><br /><span class="topic">집을 그리워하는 고독한 백조</span></p>
      <p> 루이 2세는 매우 잘생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지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이었고 결코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의 신하들에게도 잘 대해 줬습니다. 그의 신하들이 적은 역사 기록을 보면 그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루이 2세는 한 공주와 사랑에 빠졌던 것 같은데 그 공주는 오스트리아의 왕과 결혼을 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루이 2세는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독신으로 지냈고 그때 성을 지었습니다. 그는 ‘고향’을 그리워했고 매일매일 천국에 관한 
        얘기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일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백조가 끄는 마차 같은 이야기들을 하는 그가 미쳤음에 틀림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백조를 아주 좋아했는데, 왜냐하면 백조가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상징한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지요. 우리도 또한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4세계의 등급에 도달했다면 영계의 사람들은 그를 백조라고 부릅니다. 누군가 5(중국말로 ‘우’, 
        우리말로는 ‘오’라고 발음됨)세계에 이르면 당연히 5세계의 우쌍스(‘무상사’를 일컬음)가 되는 것이지요. (스승님과 모두 웃음) 
        여러분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칭하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청중들 박수치며 웃음) 농담입니다. </p>
      <p>루이 2세는 백조를 무척 좋아했어요. 그는 수행을 했습니다. 그는 죽어 갈 때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여전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신을 구하고 신을 찾는다면 물질계를 벗어나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떠한 고귀한 이상이나 지혜도 
        없이 단지 동물처럼 산다고 말했습니다. 미친 사람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p>
      <p> 또 그는 음악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는 많은 미묘한 것들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신화 속의 궁전같이 장식된 이처럼 아름다운 
        성들을 지을 정도로 현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았어요. 내부를 들여다보면 너무나 밝고 눈부셨습니다. 
        어떻게 그 속에서 눈을 감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내가 그곳에 산다면 나는 재빨리 모든 것을 검은 천으로 덮어 버릴 것입니다. 
        그러면 명상을 좀더 잘할 수 있을 테니까요. (스승님과 모두들 웃음) 밖이 너무 밝으면 내면의 빛을 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스승님과 모두 웃음) 아마도 그는 사랑을 잃은 것을 상심했기에 건축물들을 집과 같이 지었을 겁니다. 이 모든 것들이 언젠가 
        공주가 되돌아와서 자신과 함께 살지도 모른다는 희망에서 지어진 것들이었죠. 그는 그녀가 왕비였고 또 매우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녀가 
        살기에 어울리는 그런 종류의 성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루이 2세는 항상 그녀에게 그렇게 얘기했죠. 그녀는 아주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결혼한 상태였고 자신의 나라가 따로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에게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p>
      <p>그들은 함께 성장했고, 루이 2세는 그녀에 대한 깊고 간절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다른 소녀와 관계를 갖거나 할 수 없었습니다. 
        한번은 자기 누이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는 내일 또 내일 그리고 내년으로 자꾸만 미루었습니다. 결국에는 사람들의 압력에 
        못 이겨 ‘노우’라고 말하고(스승님과 모두들 웃음) 약혼을 취소해 버렸습니다. </p>
      <p><br /><span class="topic">사람을 바로 이끌려면 깨달아야 한다</span></p>
      <p> 그러므로 역사의 기록과 실제가 항상 같을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는 역사나 어떤 고사, 혹은 경전들을 읽을 때 우리 스스로 
        신중하게 판단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이해가 올바르다고 느끼기 때문에 우리 자신과 타인을 잘못 이끌게 됩니다. 그러면 
        훨씬 나쁜 상황이 됩니다. 만약 우리가 이해하지 못했다면 입 다물고 있는 게 상책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깨달아서 완전한 이해를 
        얻고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주고 가르칠 수 있을 때까지는 참으십시오. OK! (박수)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51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11 Mar 2004 14:01:35 +0900</dc:date>
</item>


<item>
<title>신기한 인두어(人頭魚) 이야기</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56</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글/ 거주제자/ 포모사 
        시후 센터 </p>
      <p>어느 날 우 도인(동수)과 잡담하던 중 그는 며칠 전에 있었던 믿지 못할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는 “쿤룬파의 옛 사형의 
        아들(도사)이 우쉬로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한 친구가 심각한 정신적 충격으로 고생한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도울 수 없어서 
        내가 가서 한번 봐주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친구가 지난주에 친구 몇 명과 낚시를 갔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큰 우고를 한 마리 
        낚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즉시 그 고기를 구워서 먹었습니다. 갑자기 그들은 한 노파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고기가 연하고 
        맛있니?’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고 보니 다름 아닌 바로 그 구워진 고기였습니다. 그들은 기절초풍했으며 그들 중 한 사람은 
        다음날 실제로 놀라서 죽어 버렸습니다!”라고 말했다. </p>
      <p>그리고 이 믿지 못할 기사가 며칠 전 자유시보(부록 참고)에 실렸다. 우 도인은 계속해서 “나는 놀라움을 진정시키고 마음을 
        편하게 해줄 몇 가지 주문을 적어서 그에게 주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친구한테 차후로는 살생을 피하고 고기를 먹지 말라는 충고를 
        해주라고 말했습니다. 오직 채식만이 안전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결국 이 살생과 육식으로 인한 응보를 받아야 합니다. 자주 
        우리는 설명할 수 없는 불상사와 치유할 수 없는 병과 직면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중생을 도살하여 그 고기를 먹은 것이 원인이 
        되어 유발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br />
        살생의 업장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우 도사는 또 다른 실화를 이야기했다. 그가 입문했던 해의 어느 날 명상하고 있을 때 지역신, 
        산신령과 백년 묵은 커다란 진(영혼)뱀이 나타났다. </p>
      <p>그 지역신은 그에게 급히 청원했다. “사람들이 루산에 불도저로 길을 내고 있는데 당신이 가서 그들을 중지시켜 주십시오. 그들은 
        천년 동안 수행한 진뱀을 해칠 것입니다. 재앙이 덮칠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하늘의 뜻일 것입니다만 이 운명적인 불상사로부터 
        그를 구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십시오.”</p>
      <p> 우 도인은 “이것은 하늘의 뜻인데 제가 어떻게 그것을 피할 수 있게 하겠습니까?”라고 즉시 답했다. 그 지역신은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만약 그를 구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암뱀이라도 구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p>
      <p>삼매에서 깨어나서 우 도인은 즉시 그 공사장에 조사하러 갔었는데 공사가 중단되어 노무자들은 없고 불도저만 있었다. 그는 노무자들이 
        며칠간 쉬는데 언제 일을 재개할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p>
      <p>며칠 후 한 마을 사람이 그에게 달려와서 무게가 35kg 나가는 큰 뱀을 불도저가 파냈다고 말했다. 우 도사는 그 지역신의 
        경고가 떠올랐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오! 안 돼.’라고 외쳤다. </p>
      <p>그가 급히 공사장으로 달려갔지만 그 거대한 진뱀은 불도저 칼날에 머리가 베여 죽어 있었다. 갑자기 그는 노무자들이 “저기 또 
        한 마리가 있다.”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우 도인의 완강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모든 노무자들이 즉시 그리로 달려갔다. </p>
      <p>결국 그 뱀은 사로잡혔다. 그것은 약 20.4kg 나가는 암뱀이었다. 우 도사는 노무자에게 “이 진뱀은 100년 이상 수행했으므로 
        절대 해쳐선 안 됩니다.”라고 충고했다. 대부분의 노무자들이 그 말을 알아들었지만 그들 앞에 사로잡힌 뱀에 대한 이익만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한 노무자가 좀더 자비심이 있었고 우 도사의 말을 믿었다. 그는 자기 돈으로 그 큰 진뱀을 사서 살려 주었다. 
      </p>
      <p>그날 10여 명의 노무자는 죽은 뱀을 맛있게 요리해 먹었다. 그 다음날 몇 명의 노무자들이 차를 타고 언덕을 내려가다가 차가 
        절벽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모두 죽었다. 한 달 안에 다른 몇 명의 노무자들이 교통사고와 공사 중 사고로 앞 다투어 죽었는데, 
        그들 중 몇 명은 치명상을 입고 그날 밤으로 죽었다. 암뱀을 사서 살려 준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었던 것이다. </p>
      <p>이 사건은 산악 지대의 마을 사람들 사이에 넓게 퍼져 나갔다. 이 이야기를 모두 다 알고 있지만 불행히도 동물을 도살하는 일은 
        중단되지 않고 있다. </p>
      <p><br /><font color="#003399">【부록】</font><br /><font color="#0066CC">자유시보 포모사 1995. 8. 11.</font><br /><font color="#003399">사회만상</font></p>
      <p><font color="#006699">말하는 인두어(人頭魚) <br />
        다섯 명의 관광객이 놀라 자빠지다. <br />
        세 명은 구토증으로 병원에 실려 갔다.<br />
        한 명은 다음날 의문사했다. <br />
        사진에는 무서운 노파의 얼굴이 보인다.</font></p>
      <p><font color="#003399">【룽탄에서 챠리카이 기자의 보도】</font><font color="#006699"><br />
        신비한 전설은 많이 있다. 최근에 타오유안의 룽탄 향에 ‘인두어’ 이야기가 넓게 퍼져 있다. 독자들은 구워진 고기가 자신을 먹고 
        있던 사람들에게 “고기가 맛이 있니?”라고 물었다는 것을 믿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사진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게다가 이 괴상한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이 이 이야기의 신빙성을 더해 줄 것이다. </font></p>
      <p><font color="#006699">여기 룽탄 향의 반장 정 씨의 말을 들어 보자. 올해 4월 초순 어느 날 지아이 민상에 
        사는 젊은 부부(남편은 직업적인 도사), 타이난에서 온 또 다른 부부와 지아시안에서 온 34세 된 천 씨를 포함한 5명이 낚시와 
        바비큐를 즐기기 위해 카오슝의 광산에 있는 개울에 소풍을 갔었다. </font></p>
      <p><font color="#006699">다섯 명은 개울가로 차를 타고 갔으며 천 씨가 낚시를 책임졌다. 저녁 무렵 그는 거의 
        2.7kg이나 되는 우고를 한 마리 낚았다. 그들은 즉시 이 고기를 구워서 먹기 시작했다. 그들이 이 고기를 막 먹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그들은 한 노파가 포모사어로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고기가 맛이 있니? 고기가 맛이 있니?” </font></p>
      <p><font color="#006699">그들이 “고기가 맛이 있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보니 그것은 구운 고기였다. 그 고기의 입이 움직이면서 말을 했다. 그들 모두는 경악했고 심한 충격을 받았다. 세 
        명은 먹었던 모든 음식을 토해 냈다. 아주 괴상한 현상이었으므로 누군가가 카메라로 고기의 사진을 찍었다. </font></p>
      <p><font color="#006699">구토 증세를 보인 세 명은 그날 병원으로 달려가서 치료를 받았다. 의사의 진찰을 받는 
        동안 그들은 병원 직원에게 이 괴상한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말이 사실인 것을 맹세했다. 그러나 그들은 터무니없는 말이라는 
        비웃음만 받았다. </font></p>
      <p><font color="#006699">다음날 또 다른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낚시를 책임진 34세밖에 안 된 씨가 이상스럽게도 
        잠자는 동안 죽어 버렸다. 검사를 했지만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사망 진단서에는 ‘심장마비’로 기록되었다. 지아이 민상에서 
        온 직업 도사는 이 소식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서 즉시 ‘놀라움을 진정시키는 의식’을 거행했다. </font></p>
      <p><font color="#006699">그들은 사진이 현상되었을 때 또 큰 충격을 받았다. 젓가락으로 찢어 벌린 물고기의 몸체에서 
        노파의 얼굴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눈과 코와 입은 분명했으며 정말로 소름 끼치는 모습이었다. </font></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51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11 Mar 2004 13:45:22 +0900</dc:date>
</item>


<item>
<title>외계인을 대하는 방법</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55</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칭하이 무상사/ 1995. 
        10. 28. 포모사 시후 센터,<br />
        선칠 기간 중 외국 동수들에게 하신 말씀(원문 영어)</p>
      <p>선칠 기간 중 한국 동수들이 다음과 같이 스승님께 질문했다. “최근 한국에 UFO가 많이 나타나는데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 자리에 있었던 4명의 한국 동수들이(그들 중 3명은 승려들이었다.) 직접 UFO를 목격했다. 요즈음의 화젯거리인 이 점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스승님은 외계인을 대하는 올바른 방법을 유머러스하게 제시하셨다. 우리 자신을 보호하고 이 세상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관음법문을 신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p>
      <p>최근에는 수천수만 개의 UFO들이 한국뿐 아니라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인들뿐 아니라 NASA나 FBI 같은 
        도처에서 이런 정보를 접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수십만 개의 UFO가 일제히 출현했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들은 
        이런 정보가 세상에 노출되는 걸 원치 않습니다. 지구인들이 걱정하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여러분이 내게 물으니 내가 아는 바를 말하겠습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크리스마스 전인 지금부터 한 달 반이나 두 달 안에 외계인들이 
        우리를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고 아무것도 모릅니다. (모두 웃음) 나는 아무데도 안 가고 TV도 
        안 봅니다. 그리고 내가 죽을 때가 되면 나는 죽습니다. 끝나는 거지요. </p>
      <p>그러니 또 다른 삶을 준비하거나 죽을 준비를 하십시오. (스승님과 모두 웃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관음법문을 수행하고 
        좋은 일을 하며 양심에 따라 행동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의로운 사람이니까요. 그 이상은 할 수가 없습니다. </p>
      <p>이런 나쁜 소식과 함께 좋은 소식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외계인들은 자비심이 아주 많아서 우리를 도와주러 온다.”고 
        합니다. 아마 이런 끔찍한 변화의 시기에 우리를 도와주러 올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더 좋겠지요. 그들은 기술적인 면에서 훨씬 
        발달했고, 그들 대다수가 영적인 지식도 훨씬 앞섰으니까요. 신문에서 봤는데 미국 상원 의원 가운데 적어도 12명이 외계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그 사실을 자인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는 
        이미 외계인들과 살고 있습니다. 정부, 은행, 교육계, 교회, 종교 단체 등 어디에나 모두 외계인들이 있다는 내용과 유사한 소식들이 
        다른 나라에서도 들립니다. 그러니 더 이상 두려워할 게 뭐 있습니까? 그 외에도 그들이 이곳에서 사는 생활 방식을 보면 외계인들이 
        오더라도 우리가 더 나빠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더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집시다. </p>
      <p>어쨌든 우리는 길거리에서 이미 외계인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랬을 겁니다. 외계인들을 본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불보살들이 
        곁에 오기를 항상 기도합니다. 그런데 불보살들은 모두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들입니다. (웃음) 그리고 여러분이 절이나 교회에 
        걸어 놓은 사진들도 모두 외계인들입니다. (웃음) 모든 나라에서 여러분이 매일 절하는 모든 종교의 지도자들도 모두 외계인들입니다. 
        (웃음) 그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나도 역시 외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승님과 모두 웃음, 박수) (동수들: 최고의 외계인이십니다.) 
        좋은 외계인이지요! 예? (청중: 예.) 그러니 UFO가 어쨌다는 겁니까? 걱정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냥 바라보다가 그들이 오면 
        “안녕하세요? 우리 스승님도 당신 같은 분입니다.” (스승님과 모두 웃음) “우리 스승님은 가끔 당신들 행성에 가라고 가르칩니다.”라고 
        말하십시오. 그냥 인사하고 오불을 외우며 명상하십시오. 그 외에 여러분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p>
      <p>여러분이 그들을 죽이려고 하면 여러분이 먼저 죽을 겁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전에 죽을 겁니다. 그러니 그들을 공격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건 우리 계율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면에서 훨씬 앞섰습니다. 그들에게 정말 어떤 나쁜 의도가 있다면 
        우리는 끝장입니다! 이 세상의 최첨단 기술도 그들 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좋든 나쁘든 우리는 덕과 내면의 전능한 
        힘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뿐입니다. 즉 우리가 죽든 살든 우리는 결코 파괴될 수 없다는 걸 알면 됩니다. 우리의 영혼은 
        영원히 사니까요. 그들이 좋든 나쁘든 우리는 여전히 선의와 사랑으로 그들을 대하면 됩니다. (모두 박수)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52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11 Mar 2004 13:38:38 +0900</dc:date>
</item>


<item>
<title>외계인의 호기심</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54</link>
<description><![CDATA[<br /><table width="560" border="0" style="background-image:url(&quot;../mihwa/externalbeing.gif&quot;);"><tr><td>       <p>사실 대부분의 외계인들은 지구인들을 보면서 웃습니다. 왜들 서로 그렇게 싸우고 죽이는가? 오해가 있으면 왜 말이나 윤리로 해결하지 
        못하는가? 그들은 우리를 보면 이상하게 느끼고 우리를 아주 무례하고 거친 사람으로 여깁니다. 그 까닭을 몰라서 가끔 고개를 내젓기도 
        합니다. (모두 웃음) 그래서 이따금 UFO를 타고 와서 우리가 서로 전쟁놀이하는 걸 지켜봅니다. </p>
      <p>그들은 우리가 너무 어처구니없다고 느낍니다! 저 위에서 그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사용합니다. 만일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같이 삽니다. 만일 누군가 정말 규칙을 따를 수 없고 그들의 이상에 
        동의하지 않으며 그런 생활 방식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는 다른 곳으로 가 버립니다. 어디로 가냐고요? 그들 대부분이 이 지구로 
        보내집니다. (모두 웃음) 더 완고하고, 고집 세고, 지혜가 없는 사람들을 여기 지구로 보냅니다. 우리 주변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러면 알 겁니다. 나를 보십시오. 그러면 이해할 겁니다. (스승님 웃으심) </p>
      <p>그래서 이 세상은 더 혼란스럽습니다. 외계인들은 저편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면서 다소 놀랍니다! 수백만 년이 지났어도 지구인들은 
        여전히 고집불통입니다. 전혀 진보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함께 살면서도 여전히 서로 대화할 수 없습니다. 마치 저 위에서 했던 
        것처럼 여전히 싸움을 합니다. 저 위에서는 다수의 군중들과 싸움을 했지요. 여기 와서도 서로서로 싸움을 합니다. 정권의 수뇌들(정치 
        지도자들)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겁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52호에서-</p>
      </td>  </tr><tr><td height="2"> </td>  </tr></table>]]></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hu, 11 Mar 2004 13:27:53 +0900</dc:date>
</item>


<item>
<title>충실한 반려자가 되라</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53</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칭하이 무상사/ 1995. 10. 31. 포모사 시후 센터(원문 
        영어)</p>
      <p>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스스로 계율을 알고 있고 계율을 이해하고 있으며 계율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계율에 
        3가지 부분, 즉 육체적인 부분과 정신적인 부분 그리고 심리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을 
        해서 일평생을 배우자와 함께하며 서로 신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가 말하기를 이웃 아낙네를 보고 마음속으로 정욕을 
        느껴도 이미 간음한 것이라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육체적, 심령적, 지성적인 측면에서 전부 깨끗하고 순수하도록 확실하게 계율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습관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그런 습관에 따르지 않고 
        그것을 멈추게 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p>
      <p>만약 결혼을 해서 한 사람과 오랫동안 줄곧 같이 있다면 여러분은 자신이 충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조심하세요. 
        여러분 중에는 금지된 것들을 행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결혼 증명서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따금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바람을 
        피워도 결혼했다는 구실로 사람들은 아무 말도 못 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단지 결혼했기 때문에 아무 걱정 없이 줄곧 방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상대가 좋지 않으면 “미안하지만 나는 결혼한 몸이에요.”라고 말하고, 상대가 좋다면 좀더 많이 바람을 
        피우면서 한정적으로 결혼을 이용합니다. 그러면 만족할 때까지 어느 정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래도 누구도 뭐라 할 수 없고 막을 
        수 없습니다. 결국은 남편이나 아내에게로 되돌아오지만 그 어느 것도 진실로 신뢰성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p>
      <p><br /><span class="topic">진정한 충실성</span></p>
      <p> 그러므로 만약 여러분이 진정으로 아내나 남편에게 충실하고자 한다면 내면으로부터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을 
        보지도 말고, 다른 사람이 무슨 옷을 입었는지,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 남자나 그 여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관심조차 갖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내나 남편을 다른 사람과 비교할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하고,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배우자 외에는 어떠한 종류의 
        쾌락도 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진실로 충실한 것입니다.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어렵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결혼 기간 동안 그렇게 했으며 그러면서도 자연스러웠습니다. 내가 어떤 계율 같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은 단지 자연스러운 것이었어요. 내가 결혼했을 때 내가 결혼한 몸이라는 것, 내가 아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지요. 
        그러므로 만약 여러분 스스로가 의지를 강인하게 하여 자신의 마음과 열정을 한 방향으로만 이끌고 나간다면 여러분은 보다 평온하게 
        되고 여러분의 결혼 생활도 보다 즐겁고 축복받은 것이 될 것입니다. </p>
      <p>만약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인도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줄곧 “오, 나는 단지 손만 잡았어요. 단지 쳐다보기만 했다고요.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여태껏 그녀와 잠을 잔 적은 없어요.”와 같은 변명만 늘어놓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해서 신뢰성을 
        잃을 필요가 있나요? 성(性)에는 육체적인 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도 있습니다. 고상하지 못하게 너무나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달리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성이란 것이 수치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만일 여러분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거나 결혼한 관계라면 배우자와 성관계를 가져야겠지요. 오로지 그것은 사랑에 의한 것이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사랑을 
        느끼고 있지 않다면 이러한 행위는 단지 기계적인 동작일 뿐이며 서로의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해칠 따름입니다. 여러분은 극도의 공허함을 
        느끼고 방황하기 시작할 것이며 그런 다음에는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p>
      <p><br /><span class="topic">서로간의 사랑에 주목하십시오</span></p>
      <p> 여러분이 결혼하거나 혹은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여러분은 오직 그것에만 마음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또한 
        일종의 기쁨을 맛볼 것이고 수행 생활의 풍미도 더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그 자체가 일종의 수행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한 가지 
        일에 집중한다면, 즉 서로간의 사랑에 마음을 쏟는다면 그것 또한 일종의 집중이므로 여러분은 거기서 행복을 느낍니다. 여러분에게 
        진실되고 순수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이든 여러분의 수행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태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은 모두가 부정적인 것이죠. 따라서 계율은 단지 육체적으로만 지켜져야 할 것이 아니라 신, 구, 의(身口意) 모든 면에서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또한 생각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니까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할 수도 없고 행하지도 않게 됩니다. </p>
      <p>그러므로 여러분은 계율을 생각으로부터 지켜야 하며, 항상 여러분의 생각을 관찰하고 그것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주시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적합하지 않고, 또 그것에 관해서는 생각조차도 해서는 안 된다고 마음속으로 되풀이하십시오. 
        그러면 서서히 여러분의 마음은 여러분의 지시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 자신의 주인이 되는 방법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스승이 되거나 제자들을 가르치는 걸 바라지 말고, 여러분 자신의 내면의 말(馬)을 잘 길들여서 여러분이 원하는 
        데로 그것을 몰고 갈 수 있기를 바라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의 삶을 보다 힘 있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이 바로 여러분 
        자신의 운명을 주도할 수 있는 주인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여러분은 강하고 힘 있고 확신에 찬 느낌을 
        갖게 될 것입니다. 눈으로 직접 신을 볼 수도 있고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고 당당하게 그에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박수) 
      </p>
      <p><br /><span class="topic">배우자에게 사랑과 용기를 주세요</span></p>
      <p> 여러분이 인생의 반려자, 사랑하는 이 혹은 결혼한 사람에게 진실된 사랑과 용기를 준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이 하루가 다르게 
        또 다른 아름다움과 미덕을 갖춘 모습으로 성장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그때 여러분은 그런 관계를 보다 좋게 느끼게 되어 
        관심이 다른 방향으로 쏠린다거나 엉뚱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없게 될 겁니다. 반면에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거나 이웃 아낙네에게 
        모든 관심과 사랑을 주게 되면 그때 여러분은 여러분의 배우자가 점점 보기 싫어질 겁니다. 그녀에게 어떠한 축복도 주지 않고 서로 
        관계도 갖지 않고 그래서 서로 버텨 주는 힘도 소진되어 버리지요. 당연히 그녀는 점점 매력을 잃어 가고 여러분에게서 점점 더 
        멀어질 것입니다. </p>
      <p><br /><span class="topic">마음에서부터 계율을 지킨다는 것</span></p>
      <p> 나는 여러분이 계율을 육체적으로가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지켜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육체적인 것은 최소한의 것이며 또 
        최후의 것이기도 합니다. 가끔 육체적으로 계율이 어겨지더라도 참된 의미에서 계율이 어겨진 것은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마치 여러분이 
        강요에 의해 도둑질이나 어떤 일을 하게 되지만 그것이 의도적으로 행한 것이 아니기에 여러분은 순수하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했어요. “가족에게 줄 빵을 훔치는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 이제 이해했겠죠? (청중: 예.)</p>
      <p><br /><span class="topic">여러분의 배우자를 존경하세요</span></p>
      <p> 우리는 근심 걱정으로부터 자유롭고 이 세상의 온갖 속박에서 벗어나길 원하기 때문에 수행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한 여인이나 
        아내와의 진실된 사랑이 당신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고 이런 날들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이 또한 일종의 보너스인 셈이죠. 그러니까 여러분의 
        배우자를 경멸하지 말고 신처럼 떠받드세요. 그들이야말로 칭하이 무상사 수마자 외에 여러분이 공경해야 할 유일한 대상이니까요. 
        (스승님 웃으심, 청중 박수)</p>
      <p> 인도에서 시바가 살아 있었을 때 그는 일반 사람들에게 120가지의 수행법을 가르쳤는데, 거기에는 부부간의 사랑도 포함되어 
        있었어요. 서로 포옹할 때는 자기 자신을 그 속에 몰입시켜서 그것과 하나가 되고 그것을 느끼라는 것이었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적어도 포옹하는 그 순간만큼은 온갖 괴로움을 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생에서 사람들이 성(性)에 집착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입니다. 성관계를 통해서 일시적으로나마 모든 괴로움과 슬픔, 근심 걱정을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속적인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성적인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세상 사람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신에게서 부여받은 이 쾌락의 선물을 뜻있게 하는 것은 
        그것보다 먼저 그리고 나중까지 존재하는 사랑, 바로 그것이며 이 세상의 또 다른 성인이 될 수 있도록 아이들을 키워 줄 그들의 
        책임감입니다. 함께 나누는 이 모든 것, 모든 행복과 기쁨과 책임감이 아내와 남편의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p>
      <p><br /><span class="topic">참된 사랑의 진실된 축복을 소중히 여기세요</span></p>
      <p> 밖에서 온갖 종류의 덧없는 즐거움만 쫓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슬픔과 공허함으로 끝을 맺게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들은 
        여자를 존경할 줄도 모르고 진실된 사랑의 축복도 알지 못합니다. </p>
      <p>많은 이성과 사귀고 있는 사람들에게 과연 그들이 행복한지 어떤지를 물어보십시오. 아니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더욱 많은 사람을 
        사귈수록 그들은 더욱 불행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축복을 쌓아 놓고 한꺼번에 즐길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여기저기서 
        낭비할 뿐입니다. 즉 이곳에서 1페니, 저곳에서 1페니, 결국에는 한 푼도 남지 않아요. </p>
      <p>만약 그들이 돈을 저축했다면 비행기표를 사서 어디론가 휴가를 떠나고 특별한 것을 보며 2, 3주 동안 친구와 함께, 혹은 혼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매일 쓰고 또 씁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집도 살 수 없고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자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쓰는 방식만 다를 뿐입니다. 
      </p>
      <p>따라서 그들은 열렬한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행복과 즐거움을 결코 누릴 수 없게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성(性)이라는 쾌락의 선물을 
        진정으로 즐기고 싶다면 여러분은 매우 절제를 해야 합니다. 금욕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때 여러분은 보다 더 큰 즐거움을 갖게 
        될 것입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53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10 Mar 2004 22:40:47 +0900</dc:date>
</item>


<item>
<title>비만증-새로운 병원체</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52</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칭하이 무상사/ 1995. 
        6. 10. 포모사 시후 센터(원문 영어)</p>
      <p>비만증은 공기를 통해 전염되기도 합니다. 스위스의 하인리히 뭐라고 하는 의사가 있었는데, 그는 유전자를 분리시켜 에이즈를 일으키는 
        병원균을 발견하려고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우연히도 그는 사람을 뚱뚱하게 만드는 병원체를 발견하게 된 겁니다. </p>
      <p>몇몇 사람은 매우 소량의 식사를 하지만 계속 뚱뚱해지고 반면에 어떤 사람은 많은 양의 식사를 해도 여전히 젓가락처럼 야위었지요. 
        그 의사는 비만이 음식물에 의한 것이 아니고 그 병원체에 의한 것임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이들이 다이어트를 계속하고 
        운동도 하고 온갖 것을 다 해보지만 여전히 비만 상태에 있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이 속았다고 생각하고는 적당히 먹는 
        것도 아니고 찬장 뒤에 숨어서 먹습니다. (모두 웃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그 의사는 이 병원체가 지방질을 끌어 모으거나 
        아니면 지방질을 증가시켜서 끝없이 축적해 놓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체내에 지방질이 너무 많으면 혈맥을 통해 몸의 
        각처에 운반되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몸 밖으로 배출되는 법인데 이 병원체가 있으면 지방질을 한 곳에 계속 축적한다는 겁니다. 
        특히 이곳이나(스승님이 당신의 복부를 가리키심) 아마도 뒤쪽 엉덩이 같은 데에 쌓아 놓고 배출이 못 되게 하는 것이죠. 그러므로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계속하거나 온갖 종류의 것들을 시도해 보지만 항상 비만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p>
      <p>어쩌면 그들은 이미 몇 가지 해결책을 찾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이들 치료제를 대량 생산하기를 바랄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아마도 뚱뚱한 사람에게는 희소식이 될 겁니다. 다시 본래의 날씬한 상태를 되찾을 테니까요. 비만에 관한 더욱 심각한 
        사실은 뚱뚱한 사람의 근처에만 있어도 뚱뚱해진다는 것입니다. 보고서에 그렇게 써 있습니다.</p>
      <p>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대비책은 관음법문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좀더 명상을 한다면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고, 뚱뚱하거나 깡마르지도 않게 되며, 물이나 불에 대한 저항력도 기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은 견디기 
        힘든 곳입니다. 모든 것이 여러분을 오염시키지요. 심지어는 비만증까지도 그래요. 참으로 믿기 어렵습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53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10 Mar 2004 22:31:27 +0900</dc:date>
</item>


<item>
<title>아버지를 구한 의롭고 용감한 어린 소녀</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51</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거주제자/ 포모사 시후 
        센터</p>
      <p><strong><font color="#CC3300">&lt;스승님의 어린 시절 실화&gt; </font></strong></p>
      <p>우리는 여러 위인들과 성인들이 어린 시절 시련과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어떻게 지혜와 자비심을 발휘해서 그것을 극복했는지 이야기나 
        기록을 통해 배운다. 이 이야기는 스승님이 아홉 살쯤 되었을 때 일어났던 일이다. 이 본보기를 통해 함께 배우자. </p>
      <p>스승님은 어울락에서 태어나 자랐다. 부친은 의술이 뛰어난 의사로 다른 의사들이 못 고치는 병을 잘 고쳤다. 또한 자비심이 많아 
        가난한 사람들한테는 치료비도 받지 않았다. 그들은 병이 나으면 직접 기른 사탕수수, 고구마, 채소를 가져와 감사의 마음을 표하곤 
        했다. </p>
      <p>스승님의 모친은 자상하고 현명하며 근면했고 일을 빨리 해냈다. 그녀는 가족을 돌보는 일 외에 사업도 성공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온 집안은 풍족하고 안정된 생활을 꾸려 나갔다. </p>
      <p>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스승님의 부친이 정치 활동에 관련되었다고 억울하게 고발되어 조사를 받기 위해 감금되었다. 조사관이 수차례 
        조사한 결과 아무런 혐의도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부친은 석방되지 않고 감옥에 계속 있게 되었다. </p>
      <p>그때 스승님과 모친은 음식을 장만해 면회 가서 그를 위로하곤 했다. 상처를 입은 채 갇혀 있는 부친을 보자 스승님은 한없이 
        슬펐다. 스승님은 의술로 사람을 구하기만 했던 아버지가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스승님은 집으로 
        돌아와서 만나는 사람마다 부친은 죄가 없으며 억울한 희생자라고 말하곤 했다. 그들이 별 도움을 주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스승님이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부모에 대한 효성과 정의를 위해 싸우고 말하는 용기를 지녔음을 보여 준다. </p>
      <p>그 당시 임신 중이던 모친이 출산하게 되었다. 불행히도 그때 그들은 사기를 당해 돈을 모두 잃게 되었다. 게다가 모친은 출산 
        후 산후 조리를 하지 못해 합병증이 생겼다. 배에 물이 차고 부어 통증이 심했지만 다른 의사에게 치료받을 돈도 없었다. </p>
      <p>스승님은 아홉 살의 나이에 병든 모친과 갓난아이를 돌보는 일 외에도 시장에 식량을 사러 다녀야 했다. 돈이 부족했으므로 스승님은 
        매일 야채만 조금씩 살 수밖에 없었다. 살기가 아주 힘들었다. </p>
      <p>사흘째 되던 날 모친은 통증이 너무 심해 신음하고 있었는데 갓난아이를 돌봐 줄 사람마저도 없었다. 게다가 집에는 돈도 없고, 
        자신은 어리고, 부친은 자유로운 몸이 아니어서 스승님은 이대로 가다간 절망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p>
      <p>그 당시 부친은 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더 큰 교소도로 보내졌다. 굳은 결심을 하고 집을 나선 스승님은 작은 체구에 차멀미를 
        해 가며 여러 번 차를 갈아탄 후에 겨우 그곳에 당도했다. </p>
      <p>스승님은 정문 수위에게 집안의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하고는 부친은 죄가 없으니 석방시켜 달라고 교도소장에게 애원할 수 있게 그를 
        만나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수위는 스승님의 딱한 처지를 듣고는 동정심이 들어 교도소장에게 말해 볼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나 
        시간만 자꾸 흐르고 스승님은 너무나 걱정된 나머지 마침내 큰소리로 울고 말았다. 크게 소리 내어 울면서 부친을 석방시켜 달라고 
        부탁하게 교도소장을 만나게만 해 달라며 소란을 피웠다. 때마침 지나가던 교도소장이 스승님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무슨 일인지 물었다. 
      </p>
      <p>교도소장은 자기 앞에 서 있는 작고 귀여운 어린 소녀가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이 어린 소녀는 부친이 억울하게 교도소에 
        있으며 모친이 위독해도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고 있고 사흘 전에 태어난 어린 동생을 보살필 사람도 없는데 자기는 아직 너무 
        어리다고 말했다. </p>
      <p>스승님은 교도소장에게 부친만이 가족을 돌볼 수 있으니 제발 풀어 달라고 애원했다. 젊고 친절한 교도소장은 그 이야기를 듣고는 
        깊이 감동했다. </p>
      <p>아홉 살밖에 안 됐지만 혼자서 먼 거리를 여행할 만큼 용기 있는 먼지투성이의 소녀를 바라보며 그는 “너의 아버지를 즉시 이리 
        오게 하겠다.”고 말했다. </p>
      <p>교도소장은 부친의 학자다운 용모를 보고는 기록을 살펴본 후 자신들이 일을 잘못 처리했다는 걸 알았다. 그는 즉시 부친을 풀어 
        주며 24시간 동안 집에 돌아가 가족을 돌봐 주고 다시 돌아오라고 했다. </p>
      <p>교도관이 농담으로 부친이 돌아올 때까지 스승님이 대신 남아 있어야 한다고 하자 스승님은 곧바로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여기 
        있어도 소용없어요. 너무 어리거든요. 그리고 저는 어머니와 동생을 돌봐 주러 집에 돌아가야 해서 여기 있을 수 없어요.” 교도소장은 
        이 말을 듣고는 웃으며 스승님이 부친과 함께 집에 돌아가도 좋다고 허락했다. </p>
      <p>훌륭한 의술을 지닌 부친이 집에 돌아와서 곧바로 모친의 병을 치료하자 병세가 눈에 띄게 나아졌다. 부친은 집안 문제를 모두 
        해결하고는 시간에 맞춰 교도소로 돌아갔다. </p>
      <p>며칠 후 부친은 갑자기 무조건 석방되었다. 정당하고 자비로운 교도소장을 기억하고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스승님의 부모는 갓난아기의 
        이름을 ‘광트룽(光忠)’*이란 교도소장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p>
      <p>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그 당시 스승님이 어린 나이였지만 부모에 대한 순수하고 신실한 효성과 용기를 지녔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스승님은 사람들과 천국을 감동시켜 교도소장이 신의 훌륭한 도구가 되게 했고, 이로써 스승님의 가족이 재결합하여 밝은 
        미래를 살 수 있게 했다. </p>
      <p>*광트룽은 남자 이름이다. 특히 어울락에서 이 이름은 남자 이름이어서 여자에게는 짓지 않는 이름이다. 마치 미국에서 존(John)이 
        남자 이름인 것과 같다. 스승님의 부모가 교도소장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어린 딸의 이름을 이렇게 지은 것이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54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10 Mar 2004 22:25:31 +0900</dc:date>
</item>


<item>
<title>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법</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50</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칭하이 무상사/ 1992. 
        6. 24. 미국 뉴저지 단체명상(원문 영어)</p>
      <p>우리가 너무 배가 고프다고 해서 하루 종일 앉아서 먹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허기져도 일정한 양만 먹으면 됩니다. 
        여러분은 다른 일을 해야 하고 새로운 음식을 받아들이기 위해 음식을 소화하고 배설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음식을 섭취해서 얻은 
        에너지나 명상을 통해 얻은 가피력은 밖으로 흘려보내고 매일매일 새롭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p>
      <p>어린아이가 우유 2병을, 아니 2리터를 먹고서 그 우유를 몸속에 간직하기 위해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다고 합시다. 왜냐하면 
        아이가 운동하고 뛰어놀면 소화가 되어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그 우유 2리터를 낭비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아이는 우유에서 에너지를 얻었기 때문에 뛰어놀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다시 우유를 마셔야 또 놀 
        수 있습니다. 운동하고 마시고 노는 것을 통해 아이는 자라납니다. </p>
      <p>수행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수행의 힘을 밖으로 내보내야 합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었으면 소화시켜야 하고 활동하는 데 그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거지요. 그것이 바로 몸과 마음을 건강한 상태로 유지하는 법입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54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10 Mar 2004 22:22:16 +0900</dc:date>
</item>


<item>
<title>스승은 신의 뜻에 따라 사람들을 구제한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49</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칭하이 무상사/ 1995. 
        7. 9. 포모사 시후 센터(원문 중국어)</p>
      <p>우리는 정치적인 일에 쉽게 관련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아주 복잡한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자연이나 우주의 계획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p>
      <p>꽃의 경우처럼 우리가 꽃을 더 잘 돌봐 주면 꽃이 더 활짝 피고 오래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꽃이 영원히 시들지 않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떤 종류의 꽃이든 시들고 죽습니다. 그때는 고약한 냄새가 납니다. </p>
      <p>그러나 제안은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폭력적인 사건을 알았을 때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그에 대한 반대를 할 수 있습니다. 폭력적인 
        방법으로 이 세상의 계획을 결코 바꿀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또 다른 인과를 초래하여 이 윤회의 
        사슬에 세세생생 묶이게 됩니다. 여러분이 그를 죽이면 나중에 그가 여러분을 죽이고 이렇게 왔다갔다해서 어느 누구도 고해에서 해탈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너무 많은 일에 간섭해서는 안 됩니다. </p>
      <p>물론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지만 우리가 그에게 도움을 준다 해도 그의 공덕이 부족해서 도움을 받을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가 우리가 준 것을 받는다면 그가 잘 받아들인다 해도 언젠가는 저절로 혹은 또 다른 사고를 통해 그것을 잃게 됩니다. </p>
      <p>그러므로 이 세상은 아주 어렵습니다. 이 세상에 내려온 어떤 부처나 스승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이치를 설명해 
        주고 논리적인 일에 대해 말해 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을 찾기 위해 폭력, 속임수, 초자연적인 힘과 같은 부당한 방법을 
        결코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부자연스럽기 때문에 전혀 효과가 없습니다. 부자연스러운 건 그 어떤 것도 효과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과를 남기기 때문입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56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7:21:14 +0900</dc:date>
</item>


<item>
<title>노란색 법복의 유래</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48</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 칭하이 무상사/ 1995. 
        12. 31. 포모사 시후 센터 (원문 중국어) </p>
      <p>노란색 옷을 입는 사람은 마장에 걸릴 기회가 드물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이 마장에 걸리더라도 마왕(魔皇)이 되는 대신에 
        황마(黃魔)가 된다고 합니다. (웃음) (중국어로 노란색(黃)과 왕(皇)은 발음이 비슷하다.)</p>
      <p> 옛날부터 출가승들이 노란 옷을 입은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웃음) 왕도 노란 옷을 입었습니다. 그들은 마장에 걸릴까 
        봐 두려웠습니다! (웃음) 노란색은 귀신을 쫓는 데 아주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노란색이 보기 흉해서 귀신들이 질색을 
        하나 봅니다! (스승님과 모두 웃음) 여러분도 보기 흉하고 싶으면 노란 옷을 입으세요. 마장에 걸린 사람들은 노란 옷을 입어도 
        좋습니다. 또 명상할 때도 얼굴을 남쪽으로 하고 잘 때도 그렇게 하십시오. 머리를 북쪽에 두고 발을 남쪽으로 두라는 뜻입니다. 
        아마 약간 도움이 될 겁니다. 5불을 외우고 명상하는 것 이외에도 5불을 같이 염할 사람을 몇 명 찾아보십시오. 그렇게 정화한 
        다음에 노란 옷을 입으세요. (스승님과 모두 웃음) 나중에 우리 센터가 노란색 옷으로 가득 찰까 걱정스럽네요. (스승님과 모두 
        웃음) 나 자신뿐 아니라 내 눈도 노란색이 될 겁니다. </p>
      <p>노란색 옷을 입고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자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여러분의 도덕성을 높이고 특히 여러분의 지혜를 높여야 
        합니다. 우리 내면에 불심(佛心), 신성(神性)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면에 사악한 어떤 것이 있으면 불가능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지요? (예.) </p>
        <p>그러나 잘 때 우리는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귀신이 가끔 우리를 귀찮게 하러 옵니다. 어쩌면 우리가 전생에 그에게 
        원한을 샀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것을 피하기 위해 잘 때 노란 옷을 입고 얼굴을 남쪽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웃음) 그러나 
        잠시 동안만 그렇게 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 가족들이 기가 막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세상에, 이미 노란 옷을 입었으니 
        머리 깎을 일만 남았네. 출가하면 어떡하지?” (스승님과 모두 웃음) 여러분은 항상 그렇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p>
      <p>옛날 사람들은 귀신을 쫓으려고 노란 옷을 입었지만 후세들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출가자들이 붉은 
        옷을 입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흰색이나 푸른색 옷을 입습니다. 이것은 서로 전통이 다른 데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고대의 
        근본 취지를 잊었습니다. </p>
      <p>원래 옛날에는 출가(出家) 전통이 없었습니다. 다만 수행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귀신을 쫓는 방법이나 비나 바람을 일으키는 
        방법 등을 연마했던 것입니다. 아니면 오직 평안과 신과의 접촉만을 갈망했지요. 계속해서 출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성적 접촉을 
        피하기 위해 함께 모여 살며 그들을 모방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p>
      <p>어떤 수행법은 성관계, 육식, 일정한 음식이나 알코올 등을 삼가라고 요구했고, 일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도덕성의 하락을 방지하고 
        싶어했습니다. 그후 그들이 함께 모여 수행함으로써 결과를 얻은 걸 보고는 노란색이 세속적인 영향을 물리치는 데 어떤 효과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들 역시 노란색을 입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빛을 발하고 영적으로 보이자 다른 사람들도 그들 옷차림을 
        따라했습니다. </p>
      <p>그러므로 옛날부터 출가자들은 항상 노란 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석가모니 부처가 왔을 때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괜찮다. 
        각 나라의 관습과 전통이 다르니 너희들은 어디를 가든 그곳 사람들이 입는 대로 입고 그들이 하는 대로 따르라.” </p>
      <p>그 이후로 석가모니 부처의 제자들은 밖에 나갈 때 각기 다른 옷을 입었습니다. 티베트에서는 윗부분만 약간 노란색이 첨가된 붉은 
        옷을 입습니다. (스승님 웃으심) 중국에서는 수행이 높은 사람들은 검은색이나 푸른색을 입습니다. 그들이 나이 든 스님이 되면 
        그때 노란 법복을 입을 수 있습니다. </p>
      <p>사실 노란색은 단지 귀신을 쫓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법복은 수행이 높다는 걸 상징하는 게 아닙니다. 나중에 사람들의 
        수행은 퇴보하고 대신 옷에 집착하게 되었지요. 그들은 “이봐, 승려만이 노란 법복을 입을 수 있단 말야!” 하고 말합니다. </p>
      <p>많은 곳에서 여전히 똑같습니다. 신참일 때는 검은색만 입을 수 있습니다. 조금 진급하면 밤색을 입고 조금 더 올라가면 푸른색을 
        입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검은색에서 푸른색으로 됐습니다.) 상좌의 자리에 올라야만 노란 법복을 입을 수 있습니다. 내가 수행을 
        막 시작했을 때 독일에서 비구, 비구니들을 몇 명 만났습니다. 나는 “옷이 아름답고 시원하게 보이네요. 저도 그런 옷을 잠시 
        입어도 될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스승님과 모두 웃음) </p>
      <p>그러자 내 여자 스승은 내게 “거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스승님과 모두 웃음) 어떻게 자네가 우리 옷을 입을 수 있는가? 
        이런 옷을 입기까지 우리가 얼마나 오랜 기간 수행했는지 아는가?”라고 말했습니다. </p>
        <p>그래서 나는 “아! 예, 알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웃음) 다른 전통들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와! 6개 조각 천으로 만든 
        대단한 누더기 승복이 있습니다. 반면에 4개 조각 천으로 만든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어울락에서는 누더기 
        승복을 입을 수 없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포모사에서 계를 받았기 때문에 그걸 입을 수 있었지요. (웃음) 포모사에서는 아주 빨리 
        스승이 됩니다. (웃음과 박수) </p>
        <p>전에 난 포모사에서 계를 받았을 때 누더기 승복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포모사에서 빨리 스승이 된 겁니다. 어울락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겠지요! (스승님 웃으심) 거기서는 여자들이 절대 누더기 승복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p>
      <p>옛날에는 이런 복장 규칙이 없었습니다. 새로운 출가제자들에게 석가모니 부처는 그들 옷을 물들여서 흰옷을 입지 말라고 했습니다. 
      </p>
      <p>그후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로 설법하러 갔다가 돌아와서 석가모니 부처에게 보고했습니다. “우리가 노란 법복을 입고 
        나가니까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며 우리 설법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삭발한 머리와 노란 옷을 보고는 우리를 괴물처럼 대하고 
        우리를 보면 도망갑니다.”</p>
      <p> 그러자 석가모니 부처는 “모두 괜찮다. 그 나라의 관습과 전통을 따르라.”고 말했습니다. </p>
      <p>진실로 그들이 더욱 수행을 오래할수록 그들에게는 노란 옷을 입는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충분한 힘이 
        있었으므로 노란색 옷으로 마귀를 쫓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 또한 옷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설법하러 나갈 
        수 있는 한 그들은 괜찮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들이 무슨 옷을 입든 괜찮았습니다! 사실상 문제가 되는 것은 후세 사람들이 그런 
        옷에 계속 매달리며 영적 측면의 핵심을 잊고 있다는 것입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56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7:17:09 +0900</dc:date>
</item>


<item>
<title>선도(仙道)를 넘어 불도(佛道)에 입문하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47</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글/ 거주제자 시천, 포모사 시후 센터</p>
     
      <p> 내가 중국 대륙에 갔을 때 사저 두 사람을 만났는데, 그들은 각 명산 도량을 찾아다니며 선도 수행을 할 때 겪었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후에 그들은 칭하이 무상사를 알게 되어 진정 깨달은 스승을 따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최상의 
        법문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p>
      <p>옛날부터 협서의 태령에는 많은 수행자들이 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종남산은 이것으로 유명했다. 태령에서 이 사저와 왕 
        사저는 차를 끓이는 선동을 보았으며, 태백산에서는 노자가 함곡관(函谷關)에서 나오는 것을 목격한 관리를 만나기도 했다. 또 화산에서는 
        장기를 두면서 노는 선인을 보기도 했고, 또 다른 산에서는 주나라 강자아 때의 주선진을 보고서 호기심에서 그쪽으로 들어갔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오기도 했다.</p>
      <p><br /><span class="topic"><font color="#6666CC">백일 동안 수행의 토대를 닦다</font></span></p>
      <p> <font color="#3366FF">알지 못하는 어떤 인연으로 이 사저와 왕 사저는 선인의 제자가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스승이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몰랐다. 때로 그들은 천안통과 천이통이 열려 그들의 스승들과 직접 교통하는 가운데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font></p>
      <p><font color="#3366FF">그러나 어떤 때 그들은 스승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았다. 그로부터 그들은 몇 가지 교훈을 
        얻게 되었는데, 그 모든 지시가 자신들에게 이로운 것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이를 경험한 후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완전히 복종하게 되었다. </font></p>
      <p><font color="#3366FF">우선 그들의 스승은 그들에게 청성산으로 가 백일 동안 수행의 토대를 닦도록 했다. 청성산은 
        도가에서 가장 유명한 도장 중의 하나이다. 그들은 그곳으로 가 한 도교 노승의 도장에서 잠시 머물렀다. </font></p>
      <p><font color="#3366FF">3일 후 그 노승은 그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무슨 수행을 하고 있소? 내가 훈련시킨 
        작은 귀신들에게 어떻게 했소?” “아닙니다. 저희들은 아무것도 수행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font></p>
      <p><font color="#3366FF">원래 그 노승은 자신의 수행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모산파(茅山派)였는데, 
        많은 신통도 있었고 무공도 대단했다. 예를 들면 손가락 하나로 온몸을 지탱할 수 있었다.(一指禪) </font></p>
      <p><font color="#3366FF">그 스승은 사찰을 돌보는 작은 귀신들을 훈련시켰다. 일반 낯선 사람들은 하룻밤도 머물 
        수가 없었는데 그 사저들은 아무 문제 없이 그곳에서 지냈던 것이다. 노승은 자신이 훈련시킨 그 귀신들이 모두 사라져 버리자 그들에 
        대해 매우 이상하게 여겼던 것이다! </font></p>
      <p><font color="#3366FF">노승은 매우 당황했으며 그 사저들과 이야기를 해본 후 그들이 선인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13명의 비인간 제자들이 있다고 했다. 그 제자들은 각기 신통이 있으며 인간으로 
        변할 수도 있었다. 그 제자들 중에는 가장 아름다운 인간으로 변할 수 있는 여우도 있었다. 또 돼지는 코, 귀, 발을 가장 흉측한 
        모습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었다. 그 노승의 여우는 후베이로 가 버렸다. </font></p>
      <p><font color="#3366FF">그 노승은 매일 밤 제자들에게 비법을 가르쳤는데, 그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모습이 탄로날까 
        봐 낮 동안에는 모두 깊은 산으로 휴식하러 들어갔다. </font></p>
      <p><font color="#3366FF">선인들은 매일 새벽 2, 3시경이면 두 사저들이 쿵푸를 수련하도록 잠을 깨웠다. 그리고는 
        수련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못 보도록 했다. 권법을 수련하는 것을 딴 사람이 보게 될 경우에는 자동적으로 수련을 멈추게 되었다. 
        </font></p>
      <p><font color="#3366FF">그 사저들은 이미 40대였기 때문에 몸을 단련시켜야만 했다. 그들은 모든 권법을 수련했으며 
        저절로 모든 과정이 행해졌다. </font></p>
      <p><font color="#3366FF">그들의 스승은 어떤 동작도 기록하지 못하게 했다. 안 그러면 다음 동작이 막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어떤 때 뛰어오르거나 낙하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공중제비도 하고 구르기도 했다. 종종 피부가 갈라지고 터져 피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수련이 다 끝난 후 휴식할 때면 저절로 상처가 회복되고 흉터도 남지 않았다.</font></p>
      <p><font color="#3366FF"> 그들은 몸을 단련시킨 후 임독양맥(任督兩脈)을 통하는 수련을 시작했다. 그들은 천사동(天師洞)에서 
        은거하도록 지시를 받았다. 그곳에서 그들의 스승은 단전이 따뜻해질 때까지 단전으로 태양의 정기를 흡수하는 것을 가르쳤다. 이는 
        특정한 시간과 기술을 필요로 한다.</font></p>
      <p><br /><span class="topic"><font color="#6666CC">온양(溫養)을 통한 회태(懷胎)</font></span></p>
      <p> <font color="#3366FF">그들은 백일 동안 수행의 토대를 닦은 후 청성산을 떠나 다른 유명한 산을 찾아가 수련을 
        계속하도록 지시를 받았다. 그들은 문수도량인 오대산, 관음도량인 보타산, 아미산, 구화산 등을 참방했으며 많은 기적들을 보았다. 
        </font></p>
      <p><font color="#3366FF">1986년 이전에는 각 명산의 호법들이 아주 특출났다. 특히 문수보살의 金身은 산만큼이나 
        거대했으며 관음보살은 자비롭고 장엄하게 보였다.</font></p>
      <p><font color="#3366FF"> 한번은 아미산에서 철지팡이를 짚고 있는 팔선의 이철괴(李鐵拐)에게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그들은 빛을 발하는 그 철지팡이를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아미산에 머물 때 단전의 기가 팽창하기 시작했으며 (마치 
        임신한 것처럼) 10개월 후에는 金丹이 만들어졌다. </font></p>
      <p><font color="#3366FF">금단이 생기자 금단은 중단전(中丹田)으로 올라와 부드럽게 자라났다(溫養). 이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많은 시험과 장애들을 극복해야 했는데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를 지켜 주었다. 한 사람이 
        장애에 부닥치면 수련할 때 다른 사람은 호법을 서야 했다. </font></p>
      <p><font color="#3366FF">1986년 이후 그들이 명산도량을 참방했을 때 천신호법은 사라지고 다른 중생들-아수라 
        중생-이 호법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font></p>
      <p><br /><span class="topic"><font color="#6666CC">금단을 토하니 홍아가 나오다</font></span></p>
      <p> <font color="#3366FF">도가에서 말하기를 하단전을 수련하면 精이 氣로 화하고, 중단전을 수련하면 氣가 神으로 
        화하고, 상단전(지혜안)을 수련하면 神이 虛로 화한다고 한다. 우리 관음법문은 바로 상단전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다른 법문을 능가하는 
        것이다! </font></p>
      <p><font color="#3366FF">그 사저들이 대온양(大溫養) 수련 기간을 끝낸 후 어느 날, 태령의 어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들이 산을 오르고 있을 때 소 같기도 하고 말 같기도 한 유니콘을 만났는데 온몸이 비늘로 덮여 있었다. 
        </font></p>
      <p><font color="#3366FF">산길은 아주 좁아서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였다. 유니콘이 아주 빨리 그들에게 다가오자 
        그들은 너무 무서웠지만 숨을 곳이 없었다. 유니콘은 그들 앞까지 다가와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높이 뛰어올라 공중에서 한 번 회전했다. 
        그리고는 그들을 산신전으로 안내해 주고 사라졌다. </font></p>
      <p><font color="#3366FF">그날 밤 자정쯤 그들은 금단을 토해 냈는데, 그것은 아주 작고 붉은 동자로 변해 천천히 
        승천했다. 갑자기 그 순간 천상의 음악이 하늘에서 크게 들려왔다. 금빛이 동자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고, 태상노군이 그들에게 말했다. 
        “서둘러 돌아가거라. 동자들이여, 밖에서 놀지 말거라!” 그래서 그 동자들은 천천히 그들의 몸속으로 되돌아왔다. </font></p>
      <p><font color="#3366FF">그들은 후에 나에게 말하기를, 그 붉은 동자들이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며 특정한 장소와 시간이 요한다고 했다. </font></p>
      <p><font color="#3366FF">산을 내려올 때 그들은 산기슭에 사는 한 소녀를 만났는데, 그 소녀는 그들이 살아서 
        내려오는 걸 보고는 매우 놀라워했다. 왜냐하면 그의 아버지는 유니콘에게 잡혀서 산 계곡 아래로 떨어져 죽었기 때문이었다. </font></p>
      <p><br /><span class="topic">스승님의 화신이 관음법문을 가르쳐 주시다</span></p>
      <p> <font color="#3366FF">그들이 상단전을 수련할 때 특별한 진보는 없었다. 그러나 후에 그들은 관음법문을 수행하면서 
        칭하이 무상사야말로 백천만겁에 한 번 만나기도 드문 진정으로 깨달은 스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관음법문 또한 최상의 수행법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font></p>
      <p><font color="#3366FF">그들이 그 당시 이 관음법문을 수행해도 괜찮은지를 그들의 스승에게 묻자 “좋다. 하루빨리 
        수행하도록 하라.”는 대답을 얻었다고 한다. </font></p>
      <p><font color="#3366FF">어느 날 그들은 명상하는 동안 하늘에서 칭하이 무상사의 화신을 보았다. 칭하이 스승은 
        수행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으며, 무상의 축복과 법열을 그들에게 베푸셨다. 그들은 입문한 후 수행하면서 아주 좋은 체험을 했다. 
        그들은 스승님께 매우 감사했으며, 좀더 일찍 이런 법문을 만났더라면 그렇게 많이 고생하진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font></p>
      <p><font color="#3366FF">그들은 관음법문을 수행한 후 이전의 道行이 퇴보하지 않고 크게 진보했다. 상단전을 수련하면 
        神이 虛로 화한다. 하지만 상당한 근기가 없으면 수련하기가 쉽지 않다. </font></p>
      <p><font color="#3366FF">관음법문의 독특함은 바로 우리의 불성과 직접 통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본성을 깨닫도록 
        해주고 도를 따르고 음류를 즉각 체험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 음류를 통해 보다 높은 차원으로 보다 쉽게 올라갈 수 있다. <br /></font></p>
      <p><br />이 사저들은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는 것을 도왔던 덕택에 1, 2개월 안에 많은 진보를 했다. 더욱이 
        일상생활 속에서도 화신 스승님이 그들이 아무런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을 항상 돌봐 주신다. </p>
      <p>그들은 자신들이 여태껏 알고 있던 스승들 중 칭하이 스승님이 최고의 스승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스승님의 제자가 된 걸 더없는 
        영광으로 여기며 언젠가 직접 스승님을 만나 뵙기를 고대하고 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56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6:52:05 +0900</dc:date>
</item>


<item>
<title>스승의 육신이 훨씬 더 소중하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46</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칭하이 무상사/ 1995. 
        8. 26. <br />
        유럽 선삼 때 중국 대륙에서 온 동수들에게 하신 말씀(원문 중국어)</p>
      <p>어떤 사람들은 내 화신을 보는 데 만족하지 않고 여전히 나를 보러 옵니다. 나는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육신이 더 드물기 때문일 겁니다. 깨달은 존재는 모두 화신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웃음) </p>
      <p>화신을 보는 것보다 진짜 육신을 보는 게 더 어렵습니다. 깨달은 스승이 이 세상에 살 때만 그런 육신이 존재합니다. 스승이 
        떠난 후에는 화신만 남습니다. 물론 화신도 보고 실제 육신도 보는 게 더욱 바람직하겠지요. </p>
      <p>보통 깨달은 존재는 화신만 있을 뿐 진짜 육신은 없어서 중생들을 돕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석가모니 부처도 화신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를 입문시키지도 못하고 우리에게 별다른 도움을 주지도 못합니다. 석가모니 부처가 우리를 육신을 지닌 살아 있는 스승에게 입문하도록 
        인도할 수는 있겠지요. </p>
      <p>실제의 육신이 드물기 때문에 모두들 육신을 사랑하나 봅니다! 이 우주에는 무소부재한 깨달은 존재의 화신으로 가득 차 있으므로 
        화신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지만 육신은 겨우 몇 개만 존재할 뿐입니다. 깨달은 존재가 내려올 때만 중생들은 진짜 육신을 볼 
        수 있습니다. </p>
      <p>육신이 출현하기 위해서는 아주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며, 인과와 중생들의 공덕, 전능한 신의 뜻을 비롯한 여러 측면이 이 우주에서 
        통합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화신보다는 실제 육신을 보는 것이 훨씬 가치가 있습니다. </p>
      <p>그렇지만 이 말은 여러분에게만 하는 것이니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마세요. (웃음) 내가 오늘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군요. 
        평소에는 말하지 않는 걸 말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듣고는 여러분이 너무 건방져서 육신은 추켜올리면서 화신을 얕잡아본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p>
      <p>여러분이 명상 중에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면 나뿐만 아니라 아미타불이나 관음보살 같은 옛 스승의 화신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느 경지에 이르렀는지에 따라 깨달은 분의 광체를 볼 수 있습니다. <br />
        진짜 육신을 보는 것이 무척 어렵기 때문에 석가모니 부처는 완전히 깨달은 진짜 스승을 보기가 지극히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몸 얻기가 그토록 어려운데 완전히 깨달은 존재의 육신을 보기란 훨씬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깨달은 존재의 육신을 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건 이 시대에 국한되지 않고 고대로부터도 늘 그랬습니다. </p>
      <p>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사람을 관찰해 보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득도한 수행자입니다. 그의 생김새나 언어와는 무관하게 그가 
        설법을 하든 하지 않든, 또는 여러분을 만져 주거나 여러분에게 뭔가 주든 말든 그런 것에 상관없이 여전히 모두가 그를 보고 싶어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득도한 것입니다!</p>
      <p> 장자의 책에도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가 공자에게 “어느 지방에 절름발이 꼽추가 있는데 그 사람도 스승님만큼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않지만 모두들 그의 곁에서 지내고 싶어합니다. 남자들은 그의 친구가 되고 싶어하고 
        여자들은 그의 부인이 되고 싶어합니다. 모두들 그를 사랑합니다. 공자님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그 사람이 도를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57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6:43:02 +0900</dc:date>
</item>


<item>
<title>태교의 중요성</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45</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칭하이 무상사/ 1996. 
        2. 4. 포모사 시후 센터(원문 중국어)</p>
      <p>자녀의 교육은 태아 때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임신 기간 중 태아에게 선하고 긍정적인 말을 들려주어야 합니다. 하루에 
        몇 페이지씩 사전을 읽어 주세요. 그러면 그 아이가 태어나는 즉시 당신에게 말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스승님과 모두 웃음) 
        옳은 말입니다. 아이큐가 발달할 겁니다. 자주 노래를 불러 주세요. 긍정적이고 좋은 노래를. 그러면 역시 아이큐가 높아질 것입니다. 
        아마 20 내지 50 정도. </p>
      <p>임신 중 아기의 잠재력을 자극하면 태아의 신경 계통이 더 발달할 겁니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날 때 매우 영리해서 이야기나 노래 
        등을 들려주지 않았을 때보다 더 똑똑해질 것입니다. 베개 밑에 쇳조각을 두어도 도움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단지 듣기만 했지만 여러분은 한번 시험해 볼 수 있습니다. (모두 웃음) 내가 보증하는 건 아닙니다. 
        (스승님과 모두 웃음) 그저 풍문에 들었을 뿐입니다. </p>
      <p>요즘 아이들은 매우 영리합니다. 왜 그런지 압니까? 그건 대다수의 임신부들이 TV를 봄으로써 태아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태아들도 이미 두뇌 개발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정보들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임신부가 받아들이는 
        것은 뭐든 태아 역시 받아들이게 됩니다. 태아는 육체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므로 알아들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어머니와 
        아기 사이의 긴밀한 관계 때문에 여러분은 아기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무엇이든 여러분이 먹고 생각하는 것은 태아에게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두뇌 발달에 필요한 음식을 보다 많이 섭취해야 합니다. 시금치와 여타 푸른잎채소들 말입니다. 예쁘고 영리한 
        아이가 태어날 것입니다. </p>
      <p>여러분이 잘생긴 아기를 원한다면 예쁘고 잘생긴 그리고 도덕적인 사람들의 사진을 집안 곳곳에 걸어 두세요. 그러면 아주 잘생긴 
        아기를 낳게 될 것입니다. 반드시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누구든 여러분이 생각하는 사람을 아기는 닮게 됩니다. 대다수의 아기들이 
        아버지를 닮게 되는데(스승님과 모두 웃음) 그것은 여러분이 자신의 남편을 가장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장 싫어하는 사람도 
        남편이지요! (스승님과 모두 웃음) 여러분이 남편을 생각하기 때문에 아기가 날마다 남편을 더 많이 닮게 되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아기들이 엄마보다 아버지를 더 닮습니다. 훌륭하지요. 신의 안배입니다. 아기가 누구를 닮았든 엄마는 제 아기를 알아봅니다. 그러나 
        남편은 확실히 알지 못하지요. 남편은 자신을 닮은 아기를 보고 기뻐하며 더 잘 보살피고 더 사랑하게 되지요. 이건 신의 안배입니다. 
      </p>
      <p>그렇기 때문에 시기심으로 “어떻게 된 거야! 왜 아기가 늘 나보다 남편을 더 닮지.” 하고 투정하지 마세요. 그건 자연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57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6:38:58 +0900</dc:date>
</item>


<item>
<title>스승님이 인도에 계셨을 때의 이야기 한 토막</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44</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기록: 거주제자 단추/ 
        포모사 시후 센터</p>
      <p>여러 해 전에 스승님이 인도로 순례의 길을 떠나셨을 때 두 번 심하게 앓으셨다. 첫 번째는 모기에 물려서였고, 두 번째는 식중독이었다. 
        스승님은 그때 거의 아무것도 드시질 못해서 몸이 무척 쇠약해지셨기 때문에 모기에 감염되어 말라리아와 오한으로 고통을 겪으셨다. 
      </p>
      <p>므르가다바(녹야원: 석가모니 부처가 처음으로 진리를 설파하신 곳)를 지날 때 스승님은 무척 아프셨다. 일단의 라마승들이 근처에 
        살고 있었는데 그들 중 한 명이 중국어를 약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스승님은 말할 수조차 없으셨다. 그 라마승은 채식가였는데 
        그는 채식을 한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 두부를 가리켰다. 그는 스승님을 잘 돌봐 주었고 약도 주었다. 후에 스승님이 중국에 
        오셨을 때 스승님은 이 자비로운 라마승에게 선물을 계속 보내 주셨다. </p>
      <p>그 순례 여행은 지루했었다. 2등이나 3등 칸 표를 살 돈이 없었기 때문에 스승님은 4등 열차로 여행을 하셨고, 후에 보디만다(석가모니 
        부처의 사원)로 순례 여행을 하셨을 때 다시 크게 앓으셨다. </p>
      <p>4월과 5월은 인도에서 가장 더운 달인데,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스승님은 너무나 헌신적이어서 병중에도 순례를 계속하셨다. 
        점차로 병이 더욱 심해져서 더 이상 걷지 못하게 되었을 때 중국 사원의 사람들이 스승님께 음식을 제공했지만 스승님은 아무것도 
        드실 수 없었다. 그 사원의 사람들이 간이 있는 두부로 죽을 만들어서 드렸고 스승님은 점차 회복되셨다. </p>
      <p>스승님이 어디를 가시든 중국인들은 스승님을 항상 좋아했다. 예를 들어 불교연합의 사무총장인 랴오 스승이 큰 호의를 보여 준 
        것을 스승님은 지금도 기억하고 계시다. 중국인은 스승님을 아주 잘 대해 주었고, 스승님도 그들에게 많은 것을 해주셨다. </p>
      <p>인도에서 진리를 구하는 동안 스승님이 드신 음식은 주로 Job's tear powder와 소금물을 혼합해서 만든 티베트 버터 
        빵이었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차를 사용했지만 스승님은 그것을 살 수가 없어서 물을 이용하거나 갠지스 강의 물을 떠다 넣곤 
        하셨다.) 스승님은 많이 드시지 않았다. 그러나 아주 좋아 보이셨다. </p>
      <p>쿰바멜라(인도에서 12년에 한 번씩 열리는 대규모 영적 모임)에는 많은 큰스승들이 모인다. 스승님은 그때 비록 속인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스승님을 자신들의 집에 모시려고 했다. 스승님이 승복으로 갈아입으신 뒤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스승님을 돌보기를 원했고, 이전과 같이 계속 공양을 올리고자 했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57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6:30:10 +0900</dc:date>
</item>


<item>
<title>스승님은 식사 시간에도 계속 일하신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43</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글/ 거주제자 추공, 
        포모사 시후</p>
      <p>선사 때 스승님은 유머러스하게 “나는 먹을 때도 계속 일을 하지요. 음식을 맛보면서도 다음 요리책을 위해 사람들을 가르쳐요. 
        그러니까 난 하루 24시간 일해요.”라고 말씀하셨다. </p>
      <p>동수들은 그 말에 모두 웃었다. 스승님이 농담하셨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스승님은 있는 그대로를 말씀하셨다. </p>
      <p>스승님은 최고의 요리사를 보내 온 세상에 봉사하신다. 물론 스승님의 요리 솜씨가 최고지만 당신이 직접 요리할 시간이 없으시다. 
        스승님은 간소하게 식사하신다. 우리가 먹는 것을 그대로 드신다. </p>
      <p>나중에 시자가 접시들을 치울 때 스승님의 논평이나 지시가 적힌 메모지를 발견하곤 한다. 스승님이 선정한 요리는 요리책으로 출판되었으며, 
        우리는 그 책을 ‘장땡 뽑기’라고 별명 지었다. 왜냐하면 언젠가 스승님이 식사가 마치 제비뽑기 같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스승님은 
        우리에게서 맛있는 요리를 ‘얻는’ 걸 행운으로 여기신다! 음식의 맛과 향을 좋게 하는 몇 가지 충고가 있다. 예를 들면 “식사할 
        때 달콤한 수프를 더 달게 하려면 설탕이 필요하다. 다진 생강이 야채 맛을 쓰게 한다. 모든 야채 요리에 설탕을 항상 넣어서는 
        안 된다.” 등. </p>
      <p>스승님은 항상 당신의 ‘일’에 매우 진지하시다. 스승님은 어떤 작은 일도 간과하지 않으신다. 온갖 기회를 이용하여 우리를 가르치신다. 
        우리는 음식 재료를 다양하게 쓰는 방법을 알아야 하며, 양념은 적당하고 맛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시간과 재료들을 
        낭비하는 셈이다. </p>
      <p>우리가 음식들을 치울 때 보면 대부분의 요리를 건드리시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스승님은 모든 음식을 시식하신다. 스승님의 
        미각은 매우 예민하고 정확하시다. 때로 우리는 스승님이 더 많이 드시기를 바라면서 스승님의 구미에 맞게 음식을 만들려고 애쓴다. 
      </p>
      <p>우리는 이런 메모를 종종 받는다. “오늘 음식의 절반은 양념이 강하다. 양념에는 문제가 없지만 우린 모든 사람의 입맛을 신경 
        써야 한다.”</p>
      <p> 스승님은 하루 24시간 내내 모든 중생의 요구를 고려하신다. 스승님은 결코 당신 자신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으신다. 스승님은 
        드실 때도 당신의 입맛만 생각하시진 않는다. 깨달은 스승이 되기는 정말 어렵다! </p>
        <p>스승님의 일은 부담스럽고 힘들지만 우리 자녀들을 가르치시는 걸 스승님은 소홀히 하지 않으신다. 음식과 메모를 통해 우리의 사랑이 
        서로에게 전달된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58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6:27:23 +0900</dc:date>
</item>


<item>
<title>서호(西湖)의 구세주</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42</link>
<description><![CDATA[<br /><table width="560" border="0" bgcolor="#F3F5D8"><tr><td> <p class="caption_2" align="right">글/ 한국 서울 박길욱, 
        부산 안승배 동수</p>
      <p>[격암유록(格庵遺錄)]은 16세기에 씌어진 한국의 유명한 예언서이다. 오늘날까지 이 책에 씌어진 대부분의 예언들이 적중했다. 
        그리하여 한국의 일부 종교 단체에서는 예언서에서 언급된 대로 남쪽의 섬에서 올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p>
      <p>요즘 세상에 종말이라는 말이 많이 떠돌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방영한 바 있는 종말 관련 영화를 한국의 국영 TV 방송사와 
        제1 민영 방송사에서 방영할 정도로 그것은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p>
      <p>전세계에는 많은 예언가들이 있었으며 그들의 예언은 상당 부분 적중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나라마다 특정한 예언가가 있었듯이 
        한국에도 여러 예언가가 있었다. 그 중에 16세기 중엽(1502～1571)에 남사고(南師古)라는 분이 살았는데, 그는 천문과 
        지리 및 역학(力學)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그는 [격암유록]이라는 예언서를 남겼는데, 이 책의 말세 편에 구세주의 출현을 
        예언한 대목에 가면 구세주가 누구인지 자세히 밝혀져 있다. 그 원문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p>
      <p align="center"><font color="#FF6600">“末世聖君天人出” <br />
        말세의 구세주인 하늘 사람이 나오신다.<br />
        “世人不知天上仙” <br />
        세상 사람들은 구세주가 하늘의 선인인 줄 모른다. <br />
        “眞人天上雲中王” <br />
        구세주는 본래 하늘 세계의 운중왕이다.</font></p>
      <p align="center"><font color="#FF6600">“海島眞人 渡南來之 眞王出 <br />
        南海島中 紫霞仙境 世人不覺矣”<br />
        해도 진인이 바다를 건너 남쪽에서 온다. 남해의 섬 가운데 하나가 천국의 빛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를 알지 못한다. 
        </font></p>
      <p align="center"><font color="#FF6600">“西湖出世眞人 神聖諸仙神明 <br />
        各率神將統合 天降諸仙風雲化 惡化爲仙”<br />
        서호에서 구세주가 나오신다. 성스런 뭇 신선들, 신명들도 하늘 군사를 거느리고 오신다. </font></p>
      <p>원문에는 20세기 말에 커다란 환란이 예고되어 있는데, 그때 구세주가 출현해 이러한 환란으로부터 세상을 구하고 지상 천국을 
        건설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말세 때에는 오늘날 핵무기로 여겨지는 ‘소두무족(小頭無足)’에 의해 하늘로부터 불이 떨어져 
        세상이 온통 불바다가 되고 해와 달이 빛을 잃은 가운데 괴이한 독기가 퍼지는 등 유례없는 환란으로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죽게 
        되는데, 이때 하늘나라로부터 오신 구세주를 따르는 사람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 했다. 그런데 이 구세주는 서호(西湖)라고 불리는 
        한국의 남쪽 섬에서 오실 것이라고 했다. 위에서 남쪽 섬이라 함은 한국의 남쪽에 위치한 섬나라 ‘포모사’를 가리키며 西湖는 바로 
        시후 센터를 뜻한다. (‘시후’의 한자 표기는 ‘西湖’이다.) </p>
      <p>16세기의 한국의 예언가가 어찌 포모사, 시후에서 구세주가 출현하심을 예언할 수 있었을까? 그저 놀랍기만 하다. 서호에서 진인(구세주)이 
        출현한다는 글귀를 본 순간 나는 이분이 분명 우리의 스승이신 칭하이 무상사임을 직감했다. 그러나 이런 발견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지 
        못하고 단지 몇몇 동수들에게만 말했다. </p>
      <p>우리는 결국 이러한 내용을 전세계 동수들에게 알려서 스승님이 진정 누구시며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실 때 거룩한 사명을 띠고 오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각인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p>
      <p>이 예언서에 따르면 구세주는 모든 종교를 주관하시는 분으로 이 세상을 물질 세계에서 정신세계로 이끄시며 지구를 말세 환란에서 
        구하신다고 한다. </p>
      <p>우리는 이것이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황금시대의 도래’라고 생각한다. 더 높은 정신세계를 앞당기기 위해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우리는 수행의 과정에 놓인 그 어떤 장애와 고난도 극복해야 할 것이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59호에서-</p>
      </td>  </tr><tr><td height="2"> </td>  </tr></table>]]></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6:16:13 +0900</dc:date>
</item>


<item>
<title>적절한 도움</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41</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칭하이 무상사/ 1996. 
        2. 17. 포모사 시후 센터(원문 영어)</p>
      <p>재난에 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그곳으로 달려갑니다. 우리가 도울 수 있다면 우리는 늘 돕습니다. 때때로 나는 무일푼이 
        될 때까지 도와줍니다. 여러분에게는 내가 돈이 많은 것처럼, 숨겨 놓은 통장이 서너 개는 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게 그 당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부입니다. 그러나 신이 다시 주신다는 걸 나는 압니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나는 
        전부를 나눠 줍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다면 필요한 그 무엇이나 우리가 가진 것 중에 무엇이든 줍니다. 그뿐입니다. </p>
      <p>그래서 사람들이 굶주릴 때 여러분은 약간의 돈이나 빵을 그들에게 줍니다. 유엔에서 강연한 스승의 견본책자나 관음법문 광고지뿐만 
        아니라 돈과 빵도 줍니다. 그들은 배를 채워야 여러분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요. 아무것도 기대하진 
        마십시오. 굶주려 죽게 된다면 견본책자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견본책자를 읽어 보기도 전에 죽으면 
        그들이 죽은 다음에 견본책자를 읽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스승님 웃으심)</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59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6:13:44 +0900</dc:date>
</item>


<item>
<title>아이들과 함께 노는 법</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40</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칭하이 무상사/ 1996. 3. 27. 캄보디아 선(원문 중국어)</p>
     
      <p> 최근에 한 아이가 학교를 쉬고 놀러 와 있었는데, 내가 여러분 때문에 바빠서 매일 같이 놀아 줄 수 없었으므로 그 아이는 
        시자와 함께 에어컨만 쐬고 있었지요. 그림책만 몇 권 가져왔을 뿐 장난감도 별로 없는 터라 아이는 심심해서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어요. </p>
      <p>나는 어딜 가든 그 애를 데리고 다녔지요. 그렇게 놀아 주었어요! 여기 단체명상에 올 때도 아이에게 같이 가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그 아이는 예쁜 옷을 입고 나와 놀러 가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건 간편한 속임수지요. 아이와 
        함께 있는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놀아 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우리와 같이 있는 걸 좋아합니다. </p>
      <p>일이 생기면 아이에게 설명하고 책을 들어 달라고 부탁하면 아이는 나를 도와주게 된 것에 성취감을 느낍니다. 지퍼를 올려 달라고 
        하고 팔찌 끼는 것을 도와 달라고 하는 것이 바로 아이를 가르치면서 함께 노는 것입니다. </p>
      <p><br /><span class="topic">아이를 성숙하게 가르치는 것</span></p>
      <p> 나는 매일 아이와 장기를 두거나 전기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는 않습니다. 노는 방법이 다릅니다. 나는 일하면서 동시에 아이와 
        놀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신문을 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내가 신문을 볼 테니 너는 거기서 책을 읽으렴. 우리 
        같이 읽자.” 그러면 아이는 늘 즐거워합니다. 마치 어른 둘이서 신문을 읽는 것 같습니다. 나는 아이에게 또 이렇게 묻곤 합니다. 
        “이 책을 보면 무슨 뜻인지 아니? 네가 읽어서 알 수만 있으면 뭐든 읽고 영어도 익히렴.” 우리는 같이 노는 법을 생각합니다. 
      </p>
      <p>아이들이 놀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인형이나 곰돌이를 가지고 아침부터 밤까지 노는 것만이 아니며, 또 그럴 시간도 없어 우리는 
        함께 요리하고 채소 씻는 등의 여러 놀이법을 생각합니다. 내가 시간이 없을 때는 시자에게 대신 돌보라고 합니다. 시자가 빨래할 
        때 아이를 데려가서 빨래를 해보게 했더니 이젠 아이가 매일 자기 양말을 빱니다. (웃음) 아이는 나한테 “오늘 할 일이 있어요. 
        양말도 빨고, 마루 닦는 것도 도울래요.” 하고 말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아이는 아주 즐거워합니다.</p>
      <p> 아이들을 위해 노는 방법을 찾아보세요. 논다고 해서 꼭 밖에 나가 비싼 장난감을 사 주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반대로 일하는 
        동안 아이들을 자주 데리고 다니면 아이들의 머리도 좋아지고 더 똑똑하고 생기 있고 조심스러워집니다. 또한 아이들이 부모의 일을 
        이해하게 되지요. 그러면 나중에 의사소통도 더 쉬워집니다. 여러분이 무슨 말을 하든 그들이 여러분의 문제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훗날 여러분이 전에 무척 힘들게 일했었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그것을 이해하고 동정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일할 때 아이를 가둬 
        놓고 혼자 놀게 하면 부모가 무슨 일을 했는지 몰라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p>
      <p>어린아이들과 노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때때로 내가 양말 벗는 것을 거들어 주기도 하고 신발도 
        갖다 주고 신발을 집어 올렸다 내렸다 하기도 하지요. 이것이 아이들과 노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물론 그런 것은 나 혼자서도 할 
        수 있고 시자에게 시킬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내버려두어도 누군가가 가지런히 치웁니다. 그러나 나는 아이를 참여시키고 싶어 “이것 
        좀 올려 줄래? 저것 좀 내려 줄래? 우리 나중에 무알콜 맥주 마시자.”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면 아이는 무척 재미있어 합니다. 
      </p>
      <p>그리고는 각자 쌀과자 봉지를 하나씩 집지요. 그 아이는 쌀과자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런 후 아무거나 마시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합니다. 그게 바로 게임이 되지요. 나한테 어떻게 아이와 놀아 줄 시간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아침 식사를 하면서도 놀 수 있습니다. 
        누가 먼저 식사를 끝내는지 시합합니다. 재미있어요. 아이도 좋아합니다. </p>
      <p><br /><span class="topic">아이와 함께하기</span></p>
      <p> 어린아이들은 많은 걸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벌써 기뻐합니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매일 인형을 달라고 보채진 않습니다. 같이 놀아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인형하고 노는 것입니다. 이건 아주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p>
      <p>이렇게 하면 우리가 뭘 하든 그 아이는 나와 지낼 시간이 많아서 너무나 좋아합니다. 그렇게 해서 봉사 정신도 갖게 됩니다. 
        내게 책을 갖다 주고 신을 꺼냈다 넣었다 하고 우산을 갖다 주는 등 나를 돕는 것을 아주 자랑스러워합니다. 나 혼자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아이에게 성취감을 느끼게 해줍니다.</p>
      <p> 우리는 쌀과자 봉지를 하나씩 들고 마루에 앉아서 각자 고른 음료수를 땁니다. 나는 냉장고를 열고 “마시고 싶은 걸 골라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 아이는 자기가 벌써 어른이 되었다고 느낍니다! 이걸 마셔라. 저걸 마셔라 하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절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 아이도 자기가 매일 우유를 마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유에 질려 버리지요. 그래서 나는 
        그 아이한테 고르게 하고 나도 하나를 고릅니다. </p>
      <p>그리고는 서로의 건강을 위해 건배를 하고 어른들처럼 서로 재미있게 잡담을 합니다. 나는 논다는 것의 정의를 모릅니다. 우리 
        둘이서 하루 종일 놀 수 있다고 느낍니다. 모든 것이 놀이가 될 수 있지요. 그 아이도 아주 좋아합니다. 아이들이 좀더 성장해 
        감에 따라 아이들은 함께 있는 것을 더욱 좋아합니다. 장난감을 많이 사 준다고 반드시 좋아하진 않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놀아 
        주면 마냥 행복해합니다! 물론 아이들은 장난감을 좋아하지만 장난감이 부모의 사랑을 대신하진 못합니다. 여러분이 아이들과 매일 
        같이 놀면서 자주 이야기하고 설명을 많이 해주면 아이들은 더 영리해지고 부모와 한마음이 됩니다. 부모와 같이 있어 왔기 때문에 
        자라서도 친구처럼 됩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을 아이들이 모두 알지요. 그저 말만 해도 이해합니다. 그냥 장난감만 던져 주어서 
        의사소통에 익숙해 있지 못하면 나중에 설명해 주기가 아주 어렵게 되지요.</p>
      <p><br /><span class="topic">새로운 놀이법을 개발하다</span></p>
      <p> 비록 시간이 없더라도 나는 그 아이를 책임져야 합니다. 그 아이 부모가 죽으면서 내게 맡겼지요. 그래서 나는 그 아이와 놀 
        방법을 애써 궁리합니다. 논다는 것이 꼭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공원에 가는 것만은 아닙니다. 나는 시간만 있으면 언제나 그 
        아이와 놀 수 있습니다. 간지럼을 태우기도 합니다. 그 아이는 간지럼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 아이를 침대에 내던지기도 하지요. 
        그 아이는 그것도 좋아합니다! 가끔 스케이트도 탑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끌어당겨서 미끄럼을 태워 주지요. 이것을 스케이트 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놀려면 힘이 많이 듭니다. 근육이 튼튼해야지요. 우리는 가끔 이렇게 노는데 그 아이는 지치지 않습니다. 
        나도 한두 번 스케이트를 탔는데 미끄러지려고 했습니다. (웃음) (스케이트와 미끄러진다는 말이 중국어로 비슷하다.) 그 아이는 
        20kg 정도이고 나는 기껏해야 그 아이 두 배쯤 됩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같이 놀 수 있습니다. 크레파스로 여러 가지를 색칠하는 
        것도 가르쳐 주지요. 크레파스만 있으면 여러 가지 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그 아이가 상상하는 것을 그리게 하면 아주 좋아합니다. 
      </p>
      <p>아이들은 부모하고 같이 하는 것이면 무엇을 하든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관심을 보이고 같이 해주길 바랍니다. 어떤 놀이를 
        하든 좋아하게 되지요. 꼬마들은 세상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호기심이 무척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놀 
        수 있지요. 내가 어렸을 때 나는 장난감을 갖고 놀진 않았습니다. 그림 그리고 장기를 두고 뛰어다니거나 젓가락을 가지고 노는 
        등 나만의 방법을 고안했지요. 어떤 것을 가지고도 놀 수 있었습니다. 장난감이 도대체 왜 필요합니까? 그리고 넓은 장소도 필요 
        없습니다. 좋아요. 이젠 이해했겠지요!</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61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6:06:54 +0900</dc:date>
</item>


<item>
<title>여래(如來)의 경지</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39</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칭하이 무상사/ 포모사 
        시후 센터(원문 중국어)</p>
      <p>관음법문의 내면의 빛과 진동이 우리 몸의 모든 세포를 변화시킵니다. 그것은 우리의 진동수를 점점 빠르게 만듭니다. 진동이 
        빨라질수록 여래의 등급에 더욱 가까워집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어찌 부처(완전히 깨달은 존재)가 될 수 있겠습니까? </p>
      <p>그것을 왜 ‘여래’라고 부르는지 아십니까? 여래는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존재를 뜻합니다. 왜 그럴까요? 여래가 오고 가기를 
        너무 빨리 해서 마치 오지도 가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많은 곳을 동시에 갈 수도 있고, 돌아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가 어디로 가는지 볼 수는 없더라도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그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래라 칭합니다. 
      </p>
      <p>우리는 어렸을 때 작은 공을 대나무 모자에 집어넣고 모자 속에서 굴리는 놀이를 했었습니다. 공이 천천히 돌면 공의 움직임을 
        볼 수 있지만, 공이 아주 빨리 움직이면 마치 공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은 공의 속도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미 부처가 
        되었다면 그의 진동은 다릅니다. 그는 아주 빨리 오고 갑니다. 그러나 오지도 가지도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빛보다도 빠르고, 
        우리의 생각보다도 빠르며, 그 무엇보다도 빠릅니다. </p>
      <p>우리는 이 세상에서 빛이 제일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어딘가에서 번개가 친다면 빛은 아주 빠르기 때문에 몇 초 안에 불빛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전거는 아주 느리고 비행기는 아주 빠릅니다. 누구나 빛의 속도가 아주 빠르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불보살은 빛보다 빠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육체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p>
      <p>가끔 TV의 쿵푸 쇼나 쿵푸 영화에서 느린 동작으로 보여 줄 때가 있지요. 그래서 멋진 쿵푸 동작을 지켜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동작이 너무 빨라지면 그들을 똑똑히 볼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의 쿵푸 동작은 아주 느리고 어떤 사람은 아주 빠릅니다. 
        예를 들면 부르스 리의 동작은 매우 빠릅니다. 그가 공격을 시작한다는 것을 알아채기도 전에 그는 이미 그것을 끝내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칼춤을, 다른 사람은 또 다른 것들을 그렇게 빨리 할 수 있습니다. </p>
      <p>부처는 이보다 훨씬 빠릅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들이 오고 가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여래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動靜)’이라고 합니다. </p>
      <p>초보자나 조금 명상을 한 사람들은 자신이 삼매에 들고나는 때를 압니다. 다른 사람이 이것을 알 수 있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여래의 높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그가 언제 삼매에 들고 언제 돌아오는지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는 매 순간 들고나기 때문입니다. 
        그가 어떤 순간에 삼매에 들어 있다 해도 우리는 구별할 수 없습니다. 그는 정말 너무나 빠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어느 순간에 
        들고나는지 판단할 방법이 없습니다. 들고나는 것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그의 경지는 매우 높고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기 때문에 
        들고나는 것이 동시에 행해집니다. </p>
      <p>우리는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動靜)’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행주좌와 어묵동정’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수없이 많은 화신체를 가질 수 없고 무소부재할 수도 없습니다. 여래로 말하자면 그가 모든 곳에 있다 해도 그는 그저 한곳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행주좌와 어묵동정’의 수준에 도달한 사람은 매 순간 삼매에 들어 있기도 하고 삼매 밖에 있기도 합니다. </p>
      <p>우리가 어렸을 때 대나무 모자 속에 작은 공을 돌리며 논 것과 비슷합니다. 공이 너무 빨리 돌면 볼 수 없어서 공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지요. 공이 너무너무 빨리 돌면 금세 모습이 보이지 않아 모자 속에서 사라져 버린 것 같습니다. </p>
      <p>더욱이 여래의 경지는 아수라의 등급과는 같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삼매에 드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상태로 몇 달이나 몇 년씩 지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놀랄 만한 것이 아닙니다. 아직까지 그들은 들고나는 것이 구분되는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p>
      <p>이 수준에서는 아직 삼매에 들고나는 ‘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선(禪)은 ‘문(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수준이야말로 
        정말 높은 것입니다. 사원에 가면 ‘불이문(不二門)’이라는 글을 새긴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안도 바깥도 아니며, 
        선도 악도 아니며, 세상도 부처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불이문(不二門)’ 경지에 도달해 봐야 압니다. </p>
      <p>여래의 경지에 도달하면 언제든지 아무 곳에나 갈 수 있고, 그러면서 또 한곳에 머물 수도 있습니다. 모두들 ‘불이문’ 혹은 
        ‘행주좌와 어묵동정’이라는 말을 하지만 이 말의 참뜻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두뇌로써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경지에 도달해야 알 수 있습니다. 이 경지에 도달한 후에도 여러분은 여전히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부처라고 
        생각지도 않을 것입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62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5:38:38 +0900</dc:date>
</item>


<item>
<title>스승은 여러분이 자유로워지기만을 원한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38</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칭하이 무상사/ 1996. 5. 13. 캄보디아 선칠(원문 영어)</p>
     
      <p> 내가 전에 여러분에게 화목한 가정과 평화로운 주위 환경과 물질적인 이득 등, 스승의 축복과 관음법문을 통해 얻은 이로움이라고 
        생각되는 건 무엇이든 자랑스럽게 여기지 말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스승이 우리가 바라는 건 무엇이든 축복해 줄 것이라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 만족해서는 안 되며 그것을 자랑으로 여겨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냄새나는 화학 비료가 꽃을 위해서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꽃이지 화학 비료가 아닌 것이지요. </p>
      <p>그는 여러분이 자유로워지기를 원합니다. 예수처럼 위대한 어떤 스승이 이처럼 말했다면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우리는 
        스승이 우리에게서 원하는 것과 우리가 진실로 스승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p>
      <p>가족이 좀더 평화롭고 화목해지고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신과 스승의 힘에 감사하십시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이 돌봐 주고 관심을 가져 주고 그가 즐거운지, 그녀가 당신과 함께 있어 행복한지 어떤지 걱정해 주어야 할 사람이 없는 
        것을 신께 감사하십시오. </p>
      <p><br /><span class="topic">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여러분은 더욱 자유롭다</span></p>
      <p>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면 여러분은 더욱 자유롭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어떤 것도 대가가 있기 마련입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을 사랑한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그나 그녀를 따로 돌봐 주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그는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행복하지 
        않다면 여러분도 행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여러분을 미워한다면 좋습니다. ‘안녕’ 하면 되니까요. 당신은 할 
        일이 없고 걱정할 것도 없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미워한다면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닙니다. 좋은 일이지요. </p>
      <p>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미워하길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세상의 사랑이란 거의 다 속박입니다. 심지어 좋은 관계일지라도 
        속박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생각할 때 우리가 서로를 자유롭게 하는 것을 잊어버리게 되니까요.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과 사랑, 
        모든 것들을 요구합니다. 아무런 집착도, 요구도, 명령도 없고, 정말이지 어떤 조건이나 노력함도 없이 자유롭게 서로를 사랑하는 
        부부는 아주 드뭅니다.</p>
      <p> 대개 여러분은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어떤 노력에도 시간과 에너지가 듭니다. 여러분 주위에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시간과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원치 않는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여러분이 단지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내면의 중심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동시에 내면과 외면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시간이 소요됩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것들에 주의를 쏟는 동안에는 저것에는 주의를 기울일 수가 없습니다. 
        설사 동시에 두 가지를 기억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한번에 한 가지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한 가지에 주의를 기울일 수 없으며 
        또한 동시에 다른 것에도 완전히 주의를 기울일 수 없습니다. </p>
      <p>실제로 우리는 완전히 혼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것과 그것을 할 때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세상은 인간을 
        비롯하여 많은 중생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뭔가를 해야 한다면 항상 그들과 상호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히말라야나 
        어떤 다른 산에 가서 혼자서 일을 한다 해도 좋습니다. 아마도 아주 쓸모없는 일처럼 보이겠지만 그래도 그것은 훌륭합니다.</p>
      <p> 사람들 대부분이 물질적인 이로움만 바라고 개인적인 행복과 성취에만 매달릴 때 내가 이 세상에 머물러 인간을 가르친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 대부분은 나를 너무나 사랑하고, 너무나 보고 싶어하며, 매일 더 나아지고 있다고 
        공언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와서 나를 도와 달라고, 나를 위해 일을 하고 내 곁에 있어 달라고 부탁하면 
        여러분은 “안 돼요! 나는 아직 가정생활이 좋아요. 아내와 아이를 사랑하고 남편과 누구누구를 사랑해요.”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여기 올 때마다 말합니다. “오, 스승님, 당신이 보고 싶었어요. 너무나 보고 싶었어요. 제발 좀더 오래 머무세요. 거기에 있어 
        주세요.” 이런 식입니다. 난 여러분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역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안다고 생각지 
        않아요.</p>
      <p><br /><span class="topic">에고를 버리면 우리는 하나이다</span></p>
      <p> 여러분이 솔직하게 자신에게 선택하기를 요구한다면 그때 여러분은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진실로 알 것입니다. 그런 후에도 여러분이 
        나를 매우 사랑할지라도 여러분은 찬반양론의 득실을 고려했을 것이고, 여러분의 가족, 지위, 재산, 학식보다 나를 더 사랑할 것을 
        마음속으로 결심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오면 그때 여러분은 여전히 여러분의 에고와 부딪쳐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죽인 
        후에야 나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p>
      <p>이런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모든 것이 여러분을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일로 나를 도울 수 있게 되면 그때 여러분은 
        그 일에 집착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 일의 중요성에 집착하고, 그 일을 하고 있는 여러분의 중요성에 집착해서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지를 잊어버리고, 그 일의 목적이 뭔지를 잊어버립니다. 여러분은 나 때문에 일하고, 내가 여러분에게 그것을 하라고 했기 때문에 
        일하며, 여러분이 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기 때문에 한다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63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5:33:41 +0900</dc:date>
</item>


<item>
<title>나쁜 습관 고치는 비결</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37</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칭하이 무상사/ 1996. 
        3. 2. 포모사 타이베이(원문 중국어)</p>
      <p>만일 우리가 간절히 원한다면 좋거나 나쁜 어떤 것을 고칠 수 있습니다. 좋거나 나쁜 대부분의 영향들은 우리가 어렸을 때 형성됩니다. 
        아이일 때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했든 우리의 느낌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기록됩니다. 우리가 성장함에 따라 이러한 기억은 항상 
        우리를 따라다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동과 반응들은 우리가 어렸을 때의 그것과 아주 똑같습니다. 그러한 좋고 나쁜 영향들을 
        바꾸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전생이나 업장에 대해 모른다 하더라도 적어도 미래의 업장은 피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좋은 것입니다. </p>
      <p>우리의 나쁜 습관을 고치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집에 가서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어렸을 때 무엇이 우리를 
        기쁘게 했는지, 언제 불쾌하고 고통스러웠는지, 모든 것을 하나씩 적어 보세요. 우리가 고통을 받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혹은 언제 행복했는지 모두 적어 보세요. 매일 일기장에 우리의 좋은 점을 적어 보세요. 만약 우리가 아주 질색하는 어떤 나쁜 
        점이 있거나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점이나 혹은 우리가 고치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일기장에 기록하십시오. 우리가 행한 좋고 나쁜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기 위해 매일 우리 자신을 검토, 반성해 보세요. 약 3개월 후면 많은 진보를 할 수 있을 겁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이지 않고 아주 진실하게 검토한다면 우리는 몇 년 안에 이 모든 것들을 고칠 수 있을 겁니다. </p>
      <p>우리가 우리 자신을 고쳐 나갈 수 있고 우리의 좋은 품성을 신장시켜 나갈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소위 많은 복보를 얻을 것입니다. 
        이것은 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좋은 행위를 함으로써 우리는 복보를 얻을 것입니다. 우리의 분위기가 좋기 때문에 우리는 
        좋은 것을 끌어당길 겁니다. 그러면 더욱더 좋아지게 되지요. 나쁜 분위기는 나쁜 것을 끌어당깁니다. 그러면 더욱더 나빠지게 되지요. 
        그래서 수행자들은 더욱더 좋아지는 반면 수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욱더 나빠지게 되지요. 이것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p>
      <p>유유상종이라는 중국 속담은 정확하게 맞는 말입니다. 고대 사람이 한 말은 어떤 것도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경험과 수행으로부터 
        얻은 지혜로 그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제공해 주는 작은 비법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이 원한다면 한번 해보세요. 
        여러분은 스스로 수행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 대해 검토, 반성하는 한편 최고의 신, 최고의 부처, 최고의 
        성모, 혹은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거나 믿는 어떤 신에게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점점 더 좋아져서 나라와 가족과 우리 자신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도록 그분들에게 축복을 기도하세요.</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64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5:18:23 +0900</dc:date>
</item>


<item>
<title>왜 아난은 깨닫지 못했는가</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36</link>
<description><![CDATA[<br /><p>때로 내 주위의 시자들은 대중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늘 듣기 때문에 소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어떤 때 내가 대중들에게 다시 말하거나 비슷한 것을 말하면 그들은 “오! 난 이미 들었어. 별것도 아니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태만해지고 소중함을 모르는 태도가 생겨나게 되는 거지요. </p>
      <p>부처의 시자인 아난다는 25년 동안 깨달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너무 의존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처가 곳곳을 
        다니며 설법할 때 그는 항상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없는 것까지도 다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부처가 몇몇 사람과 담소를 나눌 
        때나 혹은 수백 명의 사람 앞에서 설법을 할 때 말한 모든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부처의 오른쪽에 있었지요. 
        그러나 나중에 누군가 똑같은 질문을 하고 부처가 수백 수천 명 앞에서 되풀이해서 말해 줄 때 아난다는 “오, 나는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있으니 다시 들을 필요가 없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부처가 대중에게 
        설법할 때와 한 사람에게 말할 때는 가피력이 다릅니다. 두 번 들으면 가피력을 두 배로 받습니다. 우리가 어떤 때는 백 번을 
        들어도 기억을 못 하는데 하물며 한 번 듣는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64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5:16:14 +0900</dc:date>
</item>


<item>
<title>사랑으로 만들어진 천의</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35</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샤오예/ 포모사 시후</p>
      <p>스승님이 언젠가 옷 입는 것에 대해 말씀하실 때 실크로 된 옷은 비교적 업장이 많으니 본래 70세가 넘으면 실크 옷을 입을 
        수 있다고 하셨다. 이어서 농담하시길, “나는 예외예요. 나는 이미 나이가 많으니까요.”라고 하셨다. 사실 깨달은 스승은 옷조차도 
        중생들에게 이로움을 주고 그들의 업장을 짊어짊으로써 그들에게 축복을 주기 위해 입는다. 그래서 자비로운 스승님은 제자들에게 옷을 
        입을 때도 주의해야 한다고 상기시켜 주시며 우리가 수행의 길을 보다 순조롭게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이다. </p>
       <p>스승님은 동수들을 위해 천의를 만들 때는 실크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배려하셨다. 스승님이 동수들을 위해 디자인하신 천의는 완전히 
        스승님의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64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5:14:02 +0900</dc:date>
</item>


<item>
<title>순수함의 중요성</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34</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칭하이 무상사/ 1995. 
        6. 30. 포모사 시후 센터(원문 영어)</p>
      <p>한 수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미국에 있는 수사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는 수도원에서 수사로 있을 때의 체험을 책으로 썼습니다. 
      </p>
      <p>그는 수사로서 수도원의 규율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일과표에 따라, 즉 정원을 가꾸고, 식사하고, 기도하고, 다시 잠자러 가는 
        등 어떤 일도 정해진 규칙에 따라 행했으며 항상 그것에 집중했습니다. 그는 그 수도원의 정책을 바꾸고 싶다거나 불평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br />
        그는 수도원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습니다. 그곳의 음식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수사들 대부분이 미혼이거나 젊은 사람들이라 요리를 
        할 줄 몰랐습니다. 그는 그걸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후 거기서 더 오래 살게 됨에 따라 그는 스스로 적응하려 애썼고 
        생각 없이 먹었습니다. 그의 앞에 어떤 음식이 놓여도 그냥 먹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p>
      <p>입문, 스승, 그런 것 없이도 그때 그는 영적으로 고양될 수 있었습니다. 아마 그런 방법으로 많은 비공개 가톨릭이나 기독교 
        단체에서 어느 정도 깨달음을 얻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도 신께 완전히 순종하고 운명이 가져다주는 모든 걸 받아들임으로써 
        어느 정도 성인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은 좋고 나쁘고, 혹은 수도원의 규칙이나 습관이 바뀌든 안 바뀌든 
        그런 것들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p>
      <p>그는 아주아주 좋은 체험을 썼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마음의 순수함이 수행에 아주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65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5:11:00 +0900</dc:date>
</item>


<item>
<title>스승은 제일 외로운 사람이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33</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칭하이 무상사/ 1995. 
        6. 4. 포모사 시후 센터(원문 영어, 무삭제 원본)</p>
      <p>나는 아버지, 어머니, 재판관, 경찰관, 천사, 그리고 동시에 염라대왕이 되어야 합니다. 지옥의 왕, 여러분은 그를 모릅니까? 
        그는 나의 친구입니다. 여러분이 처신을 잘못하면 나는 여러분을 그에게 보내면서 “자, 그들을 잘 돌봐 줘요.”라고 말할 겁니다. 
        염라대왕, 인과의 교주는 우리가 주고받은 것을 처리해 주어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깨끗해지도록 해줍니다. 깨끗하게 갚지 않으면 
        우리는 떠날 수 없습니다. 다시 돌아와야만 합니다. </p>
      <p>나는 때로 인과의 교주 역할을 부분적으로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소위 제자들의 업을 즉시 씻어 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서로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러면 제자는 깨끗해져 이 세상을 쉽게 떠날 수 있습니다. 그 일은 
        아주 힘듭니다. 여러분이 이미 그 점을 이해하고 나를 용서해 줘서 서로 기쁩니다. 여러분은 내가 그 사람을 혼내거나, 내보내거나 
        또는 여러분보다 더 특별하게 대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항상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이 나를 
        항상 용서해 줘서 아주 고맙고 기쁩니다. </p>
      <p>여러분은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몰라도 나를 용서해 줍니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나나 여러분에게 아주 좋은 일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아주 관대하고, 인내심이 있으며, 부드럽고 내면으로 아주 현명하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지혜와 수행 면에서 성숙해졌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에게 아주 좋습니다. 물론 여러분이 나를 용서해 준다면 나는 아주 편안하고 어떤 압박감이나 오해, 나쁜 
        에너지를 느끼지 않을 것이므로 내게도 좋은 일이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러분에게 아주 좋은 일입니다. 그래서 내가 행복한 겁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 정신을 계속 유지하고, 외적으로가 아니라 더 깊은 의식 수준에서 모든 걸 이해하길 바랍니다. </p>
      <p>여러분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외로운 사람일 겁니다. 그것은 또한 여러분 마음에 많은 고통을 줄 겁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나를 향한 오해와 부정적 에너지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 또한 여러분의 수행에 방해가 됩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좋지 않은 것입니다. </p>
      <p>때로 나는 아주아주 외롭습니다. 왜냐하면 내 주변에는 항상 좋고 용서하는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항상 
        자신의 전생이나 이생 또는 사회에서 배운 부정적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p>
      <p>아이들조차 아주 관용적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일을 하면서 때로 누군가를 꾸짖는 걸 보면 그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때로 나를 아주 고통스럽게 합니다. 내가 그들을 잃어서가 아니라 일을 할 때 항상 어느 정도의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워낙 많으니 모든 사람들이나 아이들에게 불유쾌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수가 없습니다.</p>
      <p>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거나 피하는 것을 볼 때면 나 역시 마음이 아프고 너무나 외롭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일을 해야 합니다. </p>
      <p>결국엔 우리 모두 아주 높은 의식 세계로 올라가 함께 내려다보며 서로 크게 웃을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거울에 비친 실체의 
        반영이나 연극을 진짜로 여긴 것이 얼마나 바보스러웠는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우 높은 지혜의 경지에 함께할 최후의 
        순간에 우리는 자신을 보고 웃을 겁니다. </p>
      <p>아주 고상하고 높은 목표를 위해 나는 모든 것을 희생하고 어떤 시련이나 오해, 극심한 부정의 힘을 겪어 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최후에는 아무것도 없는 오직 밝음, 아름다움, 은총, 사랑과 조화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유의 선생이 된다는 것은 아주 외로운 지위입니다. 모든 학생들이 졸업을 하고 성장해서 
        좋은 직장을 가진 다음 비로소 여러분을 이해하고 감사히 여기게 되었을 때는, 아마도 여러분이 이미 무덤에 들어가 있거나 정신적 
        압박과 병으로 아주 많은 고통을 겪고 난 후일 겁니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65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5:09:13 +0900</dc:date>
</item>


<item>
<title>고대로부터 진리를 전하는 깨달은 스승은 항상 외롭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32</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칭하이 무상사/ 1988. 
        5. 27. 포모사 타이둥<br />
        (원문 중국어, 삭제되지 않은 원본)</p>
      <p>왜 깨달은 스승은 외로울까요? 그것은 진리를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매우 긴 
        시간일 수도 있는 일정 기간 동안 수행을 하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진리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깨달은 스승은 그가 이 
        결실을 얻을 때까지 힘들여 그를 교육하고 돌봐야만 합니다. 이 결실을 얻기 전까지는 여전히 확고하지 못합니다. 오늘 믿다가 내일은 
        마음이 변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깨달은 스승이 되는 것은 매우 힘든 것입니다. </p>
      <p>우리가 밀라레빠의 이야기를 읽어 보면 그 스승(마르빠)이 그를 얼마나 엄하고 혹독하게 다루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스승 역시 아주 고통스러웠습니다. 그의 부인조차도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늘 밀라레빠의 편을 들었습니다. 마르빠가 
        그 당시 밀라레빠에게 법을 전수해 주는 것을 거절했기에 그 부인조차 밀라레빠를 도와 스승, 즉 남편을 속이기도 했습니다. </p>
      <p>밀라레빠는 밀교에서 가장 훌륭하고 유명한 깨달은 스승이었습니다. 스승을 만나기 전, 그는 많은 법문, 즉 이단의 법문과 신통력을 
        수행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주었고, 그렇게 해서 매우 무거운 업장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주 확고한 신념으로 
        마르빠를 따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무거운 업장이 두려웠기 때문에 매우 신실하게 진리를 갈구했습니다. 그는 노심초사하며 스승에게 
        법을 전수해 주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스승은 그때 당시 그가 정화되지 않은 상태여서 거절을 했습니다. 그는 업장이 너무나 
        무거워 법을 전수받는다 할지라도 수행해 내지 못했을 겁니다. </p>
      <p>그래서 밀라레빠의 스승은 7년 동안이나 그를 시험한 후에 법을 전수해 주었습니다. 이 7년 동안 스승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매일 밀라레빠에게 벌을 주고 집을 지으라고 한 다음 또 부수라고 말해야만 했습니다. 밀라레빠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그 스승은 
        잘못했다고 야단을 치고 매로 때렸습니다. </p>
      <p>그의 스승이 원래 포악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밀라레빠의 업장이 너무나 무거웠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그래서 스승은 그가 
        고행을 하고, 힘들여 일하고, 모욕을 당하고, 꾸중을 듣고, 매를 맞음으로써, 먼저 자신의 업장을 완전히 씻도록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의 무거운 업장과 나쁜 성품이 사라졌던 겁니다. 그 이후에 그의 스승은 그에게 법을 전수해 주었습니다. </p>
      <p>밀라레빠에게는 이 7년이란 시간이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스승을 흡족하게 하여 법을 전수받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외부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밀라레빠의 스승이 매우 잔인무도한 사람인 것처럼 보입니다. </p>
      <p>사실은 스승 또한 매우 고통스러운 날들이었습니다. 제자에게 벌주는 것을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밀라레빠의 무거운 업장을 씻어주기 
        위해서 매우 가혹한 방법을 사용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내면으로는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계속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p>
      <p>부인조차도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매일 나무랐습니다. “밀라레빠는 아주 열심히 일을 하고 매우 신실하며 착한데 왜 당신은 법을 
        전해 주지는 않고 마냥 그를 못살게만 구는 겁니까!” 여기서 우리는 깨달은 스승이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부인은 마르빠와 함께 한평생을 살았고, 함께 수행도 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그녀가 그를 이해하리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맞습니까? 
        (청중: 예.) 그녀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니 외부의 사람들이나 다른 제자들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p>
      <p>그러므로 석가모니 부처는 부처만이 부처의 지혜를 이해할 수 있다고 했으며 보살이라 할지라도 이해할 수 없고 아주 높은 등급을 
        지닌 보살이라 할지라도 아주 조금밖에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p>
      <p>예수 그리스도 또한 “진주를 돼지에게 주지 마라.”라고 했습니다. 그가 제자들에게 “여러분과 같이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말과 
        모든 방식으로 명확하게 설명해 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외부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해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겠다.”라고 말했던 것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 역시 외로웠던 겁니다. 
      </p>
      <p>석가모니 부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처만이 부처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부처를 찾을 수 있을까?” 
        그 역시 외로웠습니다. 그가 오랫동안 수행을 하고 난 다음에야 마하가섭이라는 그의 첫 번째 제자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그를 훈련시켜 부처가 되게 했고, 뒤를 잇도록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p>
      <p>20년 넘게 부처의 시중을 들었던 아난은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람이었으나 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큰 깨달음을 얻지도 
        못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하신 뒤 마하가섭에게 야단을 들은 후에야 열심히 수행을 해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석가모니 
        부처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제자마저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p>
      <p>나는 경전에서 읽었는데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할 당시 아난만이 그의 곁에 있었다고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가 “나는 곧 열반에 
        들 것이다. 빨리 밖에 있는 500명의 제자들에게 말해 그들이 마지막으로 스승을 볼 수 있게 하여라.”라고 하자 아난은 서둘러 
        그들을 데리러 갔습니다. <br />
        그때 이 500명의 제자들은 스승이 곧 이 세상을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밖에서 즐거워하며 자기들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부처가 그들을 떠나 열반에 들려고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난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그들은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와서 석가모니 부처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는 밖에 나가 놀았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같았습니다. </p>
      <p>나는 이 경전을 읽으면서 눈물이 나려고 했습니다. 너무나 훌륭했고 지금까지도 유명한 그의 임종시에 아난만이 옆에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제자들을 불러들였지만 그들은 곧 다시 밖으로 나갔습니다. <br />
        석가모니 부처는 아난에게 자신이 사바세계에 머물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아난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처에게 조금 더 
        머물러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아난이 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처는 머물 수가 없었고, 그래서 이 세상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p>
      <p>우리는 이 이야기로부터 외부의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가까이 있는 제자조차도 스승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p>
      <p>따라서 수행자가 외로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결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성불이 
        가장 큰 행복이고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행복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생이 고통 속에 있는 한 부처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열반에 들어야만 행복합니다. 사바세계에서 그들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중생이 고통 
        받을 때 자신도 고통을 받으며 중생이 아플 때 자신도 아프기 때문입니다. </p>
      <p>[유마경]에서는 이것에 대해 명확히 말하고 있습니다. “원래 불보살은 고통도 아픔도 없다. 다만 중생이 아프기 때문에 그들이 
        아픈 것이다.” </p>
      <p>이 경전을 읽을 때 우리는 그 경전 속에 담긴 주안점을 포착하거나 심오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단지 부처를 숭배하고 
        그의 도움과 축복을 바랄 뿐입니다. 우리는 결코 부처의 지혜를 구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p>
      <p>[도덕경]에 도(道)는 말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고 씌어 있습니다. 노자는 그것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단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자 또한 매우 외로웠습니다. 도생(道生) 스승이 설법을 
        할 때도 사람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14명 남짓한 사람들만이 그의 말에 귀기울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산으로 들어가 바위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까? (어떤 이: 예.) </p>
      <p>사람들은 그를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도생 스승은 산속에서 바위들에게 설법을 하고 난 뒤 그들이 동의를 하는지 안 하는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바위들은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스승님과 청중 웃음) </p>
      <p>그러니 우리 인간이 가장 영리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때때로 바위가 우리보다 더 지혜롭습니다. 우리 인간은 깨닫지 못했지만 
        한 용녀는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불경에서 오로지 인간만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맞습니까? 그러나 [법화경]에서 석가모니 
        부처는 이와 상반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한 용녀 또한 부처가 되었고 즉각적으로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스승님, 손가락을 
        튕기시다.) 그 용녀는 어른도 아니었습니다. 겨우 여덟 살에 부처가 되었습니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65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5:06:34 +0900</dc:date>
</item>


<item>
<title>깨달음의 힘으로 삼계를 초월하라</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31</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칭하이 무상사/ 1986. 
        9. 1. 포모사 타이베이 완화<br />
        (원문 중국어, 무삭제 원본)</p>
      <p>어떤 사람이 한 선사에게 물었습니다. “부모를 죽이는 것은 가장 큰 죄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 부모를 죽였다면 부처나 
        보살에게 참회함으로써 그 업장을 소멸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그는 계속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부처나 보살을 죽였다면 그때는 
        참회할 곳이 없지 않습니까?” </p>
      <p>그 선사는 대답했어요. “그래요. 맞습니다.” </p>
      <p>여러분 이것이 옳다고 생각합니까? (청중: 예.) 무지로 인해 우리가 우리 자신의 부처를 죽이고, 우리 자신의 부처가 살지 
        못하도록 하며, 우리 자신의 부처에게 그의 전능한 힘을 사용할 기회를 주지 않고, 또 우리가 의지할 곳이 없도록 하지요. 바로 
        우리의 무지 때문입니다. </p>
      <p>그러므로 관음법문을 수행하지 않고, 우리 자신의 부처의 힘을 알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그때는 우리 자신을 구할 
        방법이 없습니다. (스승님 웃음) 우리가 깨달은 스승을 죽였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구제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스승을 
        찾으면 되니까요! (스승님 웃음) 우리의 불성을 죽이고, 우리의 권리를 죽이고, 우리의 전능한 힘과 우리의 가장 위대한 지위를 
        죽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죄입니다. 알겠습니까? (청중: 예.) 그래서 그 누구든 무지로 인해 자기 내면의 신에 대해 배우거나 
        깨달으려 하지 않는다면 또는 에고로 인해 자신의 지혜를 배우거나 인식하려 하지 않는다면 둘 다 모두 나빠요. 그것이 가장 큰 
        무지입니다. </p>
      <p>우리는 수행을 시작한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의 에고를 조심해야만 합니다. 만약 어떤 일을 할 때 우주의 전능한 힘이나 무상사의 
        힘이 한다고 생각하는 대신 우리가 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곤란해질 겁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각자 자신의 방에 우리 자신을 
        가두어 두는 것이며 우리 자신이 거대한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것을 막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연히 아주 외롭고 왜소한 
        것입니다. 이런 관념에 대한 아주 사소한 차이도 굉장히 큰 차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체유심조라고 말합니다. 
      </p>
      <p>우리의 관념은 아주 정확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내면의 자아를 찾겠다는 욕망이 강렬하고 교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면, 그의 
        수행은 아주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나쁘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미신을 믿으며 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는 
        아마도 빨리 진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언변이 뛰어난 어떤 사람의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쉽게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기초가 확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p>
      <p>그러므로 보리달마가 말하기를 두 개의 문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교리로 들어가고 다른 하나는 행(行)-행이란 명상을 의미함-으로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교리를 이해한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교리를 응용한다는 뜻입니다. 먼저 교리를 이해하고 난 후에 
        응용할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매일 맹목적으로 명상만 하고 스승의 힘만 믿는다면 높은 등급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시험에서 실패하게 됩니다. 만약 우리의 관념이 정확하고 교리를 잘 이해하고 있다면 분명히 낙오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왜 
        우리가 믿는지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알겠어요? (청중: 예.)</p>
      <p> 우리의 두뇌란 하찮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삼계를 창조해 냅니다. 여러분이 두뇌에게 조용히 있으라고 요구하기란 어렵습니다. 
        두뇌는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처나 보살이 신통력을 사용하는 것이 더 낫겠지요. 
        모든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고양이나 개, 그들의 아이를 데리고 서방정토로 갑니다. 그때는 이 모든 고통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삼계가 이미 창조되었다면 우리는 스스로 그것을 소멸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무엇으로? 깨달음의 힘을 통해서만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파괴한다는 것이 꼭 불로써 태워 버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니에요. (웃음) 우리 내면의 깨달음으로 하는 겁니다. </p>
      <p>본래 삼계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흡인력도 없습니다. 그것이 존재하든 안 하든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그것에 더 이상 이끌리지 
        않는다면요. 마치 우리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지만 우리 머릿속에 너무나 많은 일이 가득 차 있다면 비록 눈은 보고 있더라도 텔레비전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조금 있다가 어떤 사람이 드라마가 어땠냐고 물어보면 여러분은 그때서야 깨어나서 “아, 
        나는 아무것도 못 봤어요.”라고 말할 것입니다. (웃음) 단지 텔레비전 앞에만 앉아 있었을 뿐 아무것도 보지 않았어요. 때때로 
        이런 일이 있습니다. 그렇지요? (모두 웃음) 마찬가지로 삼계 이내는 우리 자신이 창조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그것을 소멸하는 
        방법은 그것을 무시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고 더 나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박수)</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66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5:01:40 +0900</dc:date>
</item>


<item>
<title>세 종류의 제자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30</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칭하이 무상사/ 1993. 
        3. 3. 인도네시아 수라바야<br />
        (원문 중국어, 무삭제 원본)</p>
      <p>내 제자들에 대한 얘기를 해봅시다. 내 제자 중 어떤 제자들은 나를 아주 성심껏 따릅니다. 그들은 상당히 총명합니다. 내 경험에 
        따르면 내면의 체험이 아주 좋은 제자들은 끝까지 따릅니다. 그들은 어떤 시험도 극복합니다. 내가 머리를 기르든 깎든, 청바지를 
        입거나 다른 옷을 입어도 그들은 단순히 따릅니다. 그들은 내면으로부터 이해하고 나의 말이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내면으로부터 곧바로 나의 가르침을 듣습니다. 내면의 체험이 더 좋은 제자일수록 나를 더 충실히 따릅니다. 그들은 아주 이완되어 
        있고 행복합니다. 내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든, 꾸짖거나 사랑하거나 혹은 많은 것을 주든 안 주든 그들은 여전히 나를 따릅니다. 
        그들은 스승이 올바른 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내면으로부터 이해합니다. </p>
      <p>평범한 보통의 제자들은 전생에 아마 수행의 기초가 충분치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다시 돌아왔지만 아직 습관이 정화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깊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부지런하지도 않습니다. 나의 가르침을 받은 이후 
        그들은 때때로 명상할 뿐입니다. 그들은 피곤하거나 역경에 처해 있을 때만 명상합니다. 평상시에는 하지 않습니다. 스승도 거의 
        생각하지 않지요. 그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관음보살이나 아미타불에게 기도를 합니다. 만일 아무런 영험이 없으면 그때 그들은 
        나에게 기도합니다. (스승님 웃음) 만약 이것이 효과가 있으면 계속 수행할 것이고, 기대한 만큼 효과가 없거나 내가 즉각적으로 
        그들에게 백만 불을 주지 않는다면 수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웃음) </p>
      <p>최하위의 제자들은 지혜가 부족하고 내면의 체험이 아주 적은 사람들입니다. 아마 그들은 입문하기 전에 어떤 사람이 법을 설하는 
        것을 듣고서 그것을 믿지 않고 웃으면서 자리를 떠났을 것입니다. 석가모니가 살았을 당시에도 오천 명의 사람들이 설법 장소를 떠났습니다. 
      </p>
      <p>웃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면 아마 그것은 진정한 진리가 아닐 것입니다. 그들이 왜 웃었을까요? 어쩌면 그들이 그러한 설법을 
        전혀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대지혜를 가진 사람을 제외한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웃으면서 자리를 
        떠났던 거지요. 이것은 간단하고 합당한 이치입니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66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4:49:09 +0900</dc:date>
</item>


<item>
<title>스승님이 인력거꾼에게 극진히 공양하시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29</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구술: 동료수행자 이짱졔 사형/ 포모사 타이베이<br />
        기록: 뉴스기자 샤오치우링/ 포모사 타이베이</p>
      <p>한번은 스승님이 태국 강연을 마치신 후 우아한 자태로 강연장을 나와 차를 타고 떠나셨다. 얼마 가지 않아서 스승님은 길옆에 
        세워진 인력거를 보셨다. 밤 10시 가까이 되었는데 그 운전자는 여전히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연은 이미 끝났지만 스승님의 
        홍법용 포스터가 인력거 뒤편에 걸려 있었다. 스승님은 그것을 보시고는 바로 차에서 내리셨다. 스승님은 트렁크에서 선물을 꺼내 인력거 
        끄는 사람에게 선물과 약간의 돈을 아주 정중하게 주셨다. 스승님은 합장을 하고 그 사람에게 거듭거듭 절을 하셨다. 마치 부처에게 
        공양하듯 아주 신실하게. </p>
      <p>호법인 나는 옆에서 지켜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렀다. 스승님의 겸손함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때 나는 
        평소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겸손해야겠다고 마음 깊이 다짐했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줄 때는 온 마음으로 줘야만 한다. 
        나는 스승님께서 내 마음속에 겸손의 씨앗을 뿌려 주신 것에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66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4:39:23 +0900</dc:date>
</item>


<item>
<title>다시는 윤회하지 않는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28</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칭하이 무상사/ 1993. 10. 24. 포모사 핑둥 라이이 
        센터(원문 중국어)</p>
      <p>우리는 신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우리는 신과 하나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오랫동안 생사윤회를 했고 우리 스스로 외도니 내도니 생각하더라도 
        우리는 모두 도(道)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도를 떠날 수 없습니다. 천당과 지옥도 도 안에 있습니다. 단지 조금 떨어져 
        있을 뿐입니다. 마치 파도와 같은 것입니다. 때로 태풍이 불거나 지구가 심하게 움직이면 파도가 아주 높이 일 것입니다. 사실 
        파도는 여전히 바다와 연결되어 있으며 바다 표면에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 바다와 하나입니다. 파도는 아주 위대하고 더 이상 
        바다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파도가 떨어질 때는 여전히 바다나 강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이것은 아주 논리적입니다. 
        물론 파도는 이러한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단지 천진난만하게 일어나고 사라질 뿐입니다. 그래서 업장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윤회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파도는 윤회가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p>
      <p>이 모든 것은 우리의 두뇌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업장을 초래한다고 생각하고 신과 분리되어 있으며 죄가 
        많고 아주 비천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는 신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만약 우리가 
        죽은 후에 윤회에 대한 그런 관념이라든가 탐심이 없다면 마치 공중에 있는 것처럼 떠 있을 것이며, 결코 다시는 윤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무지한 관념 때문에 그리고 두뇌가 집착하고 요구하는 어떤 것을 계속 놓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윤회하는 것입니다. 
        영혼과 두뇌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두뇌가 체험을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아직 놀이가 끝나지 않았어.” (웃음) 
        그때 영혼과 두뇌는 함께 돌아와야만 합니다. 두뇌가 이 모든 학습을 끝냈을 때 영혼도 인식하게 됩니다. 그때 그들은 다시 돌아와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기도 전에 이 세상에 이미 지쳤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즐겼으며 더 이상 집착이 
        없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세세생생 여기서 노느라 지쳤습니다. 이때야만이 우리는 다시 돌아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67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4:35:06 +0900</dc:date>
</item>


<item>
<title>업장이 사라지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27</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칭하이 무상사/ 1993. 1. 24. 포모사 핑둥(원문 중국어) 
      </p>
      <p>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사윤회를 할까요? 그것은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나기를 마다하고 다시 돌아오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직 놓을 수 없는 뭔가가 있어 그것을 즐기기 위해 다시 오기를 원합니다. 혹은 어떤 사람들은 많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어 빚을 
        갚으러 다시 돌아오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업장이 없습니다. 과거의 업장은 스승이 모두 태워 버렸으며,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새로운 업장을 만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계를 지키며 채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어떠한 것도 빚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쓸 돈을 우리가 벌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공양을 받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빚을 지겠습니까? </p>
      <p>우리 창고에 있는 업장은 소멸하기가 아주 쉽습니다. 한번의 불로 다 태울 수 있습니다. 삼매의 불로써 온 세계를 다 태울 수 
        있는데 하물며 우리의 작은 업장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오직 현재만이 중요합니다. 현재와 미래에 새로운 빚을 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빚이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더 이상 미련이 없는데 왜 돌아오고 싶겠습니까? 우리는 죽을 때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오직 고통스럽고 끔찍한 것만 생각나서 빨리 달아나고 싶을 
        것입니다. 그래서 수행이란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아주 논리적인 것입니다. </p>
      <p>내가 여러분의 과거의 업장을 모두 소멸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면 여러분이 믿을 수 있는 다른 논리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농부가 창고에다 토란이나 쌀 혹은 새로운 작물의 씨앗을 다음 계절에 심기 위해서 저장해 놓았다고 합시다. 그러나 파종할 시기가 
        되어도 꺼내지 않고 계속 창고에 둔다면 그것들은 그냥 썩을 겁니다. 벌레가 먹을 수도 있고, 썩을 수도 있고, 쥐나 개미들이 
        물고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자라날 기회도 없고 싹틀 기회도 없을 것입니다. 물도 주지 않고, 토양도 적당치 
        않고, 햇볕도 충분히 받지 못해 모든 것이 부족하게 되겠지요. 그러면 저절로 썩게 될 것입니다. </p>
      <p>마찬가지로 우리의 과거의 업장은 우리의 기억 속에 계속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외부와 접촉할 기회가 생길 때 그것은 더욱더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고 그것이 발전할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이전에 행했던 그러한 잘못을 범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우리는 많은 잘못을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그런 잘못을 계속한다면 
        과거의 잘못을 자극해서 현재와 미래의 업장으로 더욱 확대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기회도, 재료도, 
        충분한 여건도 갖지 못해서 더 이상 발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해하겠습니까? (청중: 예.) 그러므로 우리는 오계를 지키고 채식을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명상을 해야만 합니다. 명상을 하더라도 매일 약간의 업장은 지을 것입니다. 우리가 부주의해서 새로운 업장을 
        짓는다 하더라도 관음으로써 그것을 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주 안전하고 업장이 싹틀 여지가 없는 겁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67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4:33:32 +0900</dc:date>
</item>


<item>
<title>진정한 스승과 아스트랄 중생</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26</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칭하이 무상사/ 1991. 12. 30. 포모사 시후 센터(원문 
        중국어)</p>
      <p>만약 어떤 사람을 볼 때 그가 감정에 묶여 있다면 우리는 그가 아스트랄 단계에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가 변재가 뛰어나고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도 없다면 1세계를 넘어 2세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없고 좋거나 
        나쁜 것도 전혀 하지 않으며 아주 많은 창조적 재능이 있다면 그는 3세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 겁니다. 그의 내면의 경계는 모른다 
        할지라도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써 조금은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만일 어떤 이가 이 세 가지 품성을 다 갖추었다면 어떨까요? 예를 
        들면 그가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도 있고 변재도 뛰어나고 창조력도 있다면 우리는 그가 3세계에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일하는 것이 아주 서투르고 뭔가를 잘 할 수 없다면 그가 아직 아스트랄 단계에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말하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p>
      <p>그러면 5세계에 도달한 진정한 스승은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없다는 게 사실일까요? 그가 3세계를 지나 5세계에 도달했다면 
        그는 어떤 아스트랄 감정도 없고 무지한 사람과는 다르겠지요? (청중: 그는 그것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는 왜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요? 왜 감정이 필요할까요? (청중들: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요!) 그는 그 단계에 있는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할 때 그것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br /><br />
        예를 들어 지금 우리는 수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욕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는 
        높은 지위를 갖고 싶어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높은 지위에 있다면 그 지위를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우리의 지위를 이용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많은 돈을 가졌다면 그것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바다에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정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변재나 창조력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지혜롭게 이용할 수 있으며 버려서는 안 됩니다. </p>
      <p>만약 어떤 사람이 그러한 능력을 가졌으나 천백억 화신으로 나툴 수 없고 행동도 좋지 않다면, 그때 우리는 그가 진정한 스승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겁니다. 그는 단지 아스트랄 중생일 뿐입니다. 만약 그가 아스트랄 감정도 있고,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도 있고, 
        다른 사람과 여전히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천백억 화신으로 나툴 수 있고, 신통이 무한하고, 자비심이 많고, 분별없는 사랑이 
        있다면, 우리는 그가 아스트랄 단계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품성을 가지고서 상황에 따라 그것을 이용한다는 것을 알 겁니다. 
        이해하겠습니까? (청중들: 예.) 이것이 바로 진정한 스승과 무지한 사람 혹은 아스트랄 단계의 사람들과의 차이점입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67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4:31:26 +0900</dc:date>
</item>


<item>
<title>훌륭한 의사의 만병통치약</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25</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칭하이 무상사/ 1996. 7. 19. 캄보디아 레이징 센터(원문 
        영어)<font color="#FF9900" size="-1">. </font></p>
      <p>미국 어딘가에 유명한 의사가 한 명 있습니다. 그녀는 예전에 정신과 의사였지만 지금은 자신이 의사나 정신과 의사로 불리기를 
        꺼려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매우 한적한 곳에 살면서 약이 아닌 심한 꾸중으로써 사람들의 건강을 되찾아 주는 일을 합니다. 많은 
        의사들과 사람들은 그녀가 매우 잔인하고 무례하며 거칠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녀는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고 있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의 98%는 건강해져서 돌아갑니다. 그녀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들에게 연민의 정을 전혀 주지 않는 것뿐입니다. </p>
      <p>간호를 받고 동정을 받고 보살핌을 받기를 좋아하는 이런 사람들은 누워서 “아! 나에겐 아무런 책임도 없어.”라고 생각합니다. 
        일하러 기고 집안일이나 그 밖의 일들을 책임지지 않아도 됩니다. 그들은 아프니까 그냥 누워 있으면 되는 거지요. 그때 우리가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 만약 우리 중에 누군가가 그 환자에게 나쁜 말을 한다면 우리에게 죄앙이 내릴 것입니다. 모든 
        군대가 다 동원되어 우리를 위협할 겁니다. “너, 이 잔인한 인간. 너는 정도 없냐. 그녀가 저렇게 아픈데 너는 그렇게밖에 말을 
        못 하냐. 너 때문에 그녀는 더 아프게 될 거다.”라고 말입니다. 그때 우리는 밖으로 나가거나 부드러운 어조로 다시 말해야만 
        할 겁니다. </p>
      <p>이 의사는 그런 걸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여러분이 걸어 들어오는 순간, 차에 실려서 왔거나 암 말기 상태에 있는 환자라 할지라도 
        그녀는 “야, 이 게으른 건달! (스승님과 청중 웃음) 당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모두 굶어 
        죽어 가고 있고, 인도 사람들 모두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데 당신은 거기 누워서 동정이나 구걸하고 있으니. 당신은 아프지 않아. 
        당신은 게으른 바보, 멍청이일 뿐이야. 당신은….”하면서 여러분이 사전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심한 욕설만 골라 퍼부어 
        댑니다. (웃음) 그녀는 약이나 약물치료에 대해서는 어떠한 연구도 하지 않습니다. 흙탕 목욕이나 열탕 목욕, 찜질 같은 것도 
        연구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단지 가장 심한 욕설을 찾아내기 위해 사전을 열심히 뒤적일 뿐입니다. (스승님과 청중 웃음) 이것이 
        그녀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사용하는 약입니다. 그녀가 한두 시간 호된 꾸중을 하고 나면 환자들은 벌떡 일어나 걸어서 집으로 
        갑니다. (웃음) 그들은 아마 화가 나서 펄펄 뛰겠지만 병은 낫습니다. (스승님과 청중 웃음) </p>
      <p>때로는 정말로 심리ㆍ정신 상태가 우리를 얽어맵니다. 만약 이처럼 육체적인 불편함이 계속된다면 말기 암 같은 그런 암들을 만들어 
        낼 수도 있습니다. 또 신체적 병이 유발될 수 있다면 정신적ㆍ심리적 건강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말로 허약하지 않다면 
        스스로 허약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강해지기 위해, 부처가 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십시오. 아파도 병원에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 극단적이지는 마십시오. 내 경우를 예로 들면 5일씩이나 병원에 있었는데도 계속 머물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좋은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으로부터 너무나 지나친 
        사랑을 받아서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사랑과 지나친 관심 때문에 나는 숨이 막힙니다. 그것은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울 때가 가장 좋습니다. 여러분이 아프다면 아픈 겁니다. 그러나 실제 이상으로 애써 아프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병상에 
        더 오래 머물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습니다. </p>
      <p>여러분은 간혹 잡지에서 나이 든 부인의 체험 같은 그런 이야기들을 읽었겠지요. 그녀는 집에서 아무 일도 못 했고 남편이 그녀를 
        돌봐야만 했으며 자식들은 그녀를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선 행사에 참가했을 때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녀는 체력을 회복해 건강해졌고 먹기도 많이 먹고 더 이상 아프지도 않았습니다. (스승님 웃음) 이해하겠습니까? 예, 때로 여러분은 
        벌떡 일어나 뭔가를 해야만 합니다. <br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68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4:27:07 +0900</dc:date>
</item>


<item>
<title>스승님이 전통과 관습을 따르시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24</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구술: 관핑양 사형/ 포모사 타이베이<br />
        기록: 뉴스그룹 준루우/ 포모사 타이베이<br /></p>
      <p>대부분의 귀족이나 부유층들은 물질적 공덕은 있으나 수행을 위한 공덕은 없다. 해탈에 관한 한 그들은 가난뱅이이다. 스승님이 
        그들처럼 옷을 입고 행동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스승님께 친근감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스승님이 가벼운 이야기를 하시며 웃고 
        그들과 친분을 맺는 것은 그들에게 살아 있는 스승과 인연을 맺는 은총을 내리시기 위해서이다.</p>
      <p>스승님은 우리 수행자들이 보통 사람들처럼 행동하면 할수록 더욱더 좋다고 종종 말씀하신다. 가령 스승님의 행위는 매우 자연스러워서 
        사람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게끔 만든다. 스승님은 결코 공공연하게 당신이 수행자임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신다. 때로 스승님이 호텔에 
        계실 때 치즈가 들어 있는 빵을 주문하시며 호텔에 며칠씩 묵어도 호텔 직원들이 우리가 채식하는 단체이며 수행자라는 것을 모르는 
        일이 흔히 있다.</p>
      <p> 게다가 유럽에 계실 때 스승님은 왕족이나 귀족 혹은 고위 관료들을 만나기 위해 연회에 자주 초대받아 나가셨다. 스승님은 항상 
        아주 우아하게 차려입으셨다. 한번은 스승님이 주위의 동수들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아름다운 장신구로 멋있게 차려입은 나를 볼 
        때 내가 수행자처럼 생각되나요?” 그러자 모든 동수들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스승님은 당신이 왜 
        그처럼 행동하시는지를 설명하셨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귀족이나 부유층들이 물질적 공덕만 가지고 있을 뿐 수행의 공덕은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탈에 관한 한 그들은 가난뱅이이다. 스승님이 이처럼 차리고 이렇게 행동하시는 것은 그들이 스승님을 친근하게 
        느끼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 스승님이 농담하시고 즐겁게 웃고 그들과 친구가 되는 것은 그들에게 살아 있는 스승과 인연을 맺는 
        은총을 내리시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그들 중 몇몇은 스승님과 친분을 맺으면서도 스승님이 누구인지 몰랐고, 단지 고상하고 인상 
        깊은 여인과 알게 되었다고만 생각한다.</p>
      <p> 스승님은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우리 동수들 가운데 몇몇은 너무 지나치게 ‘선(禪) 분위기’를 갖고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가까이하려는 것을 막는다. 그들의 분위기는 정말로 불쾌하다. 이러한 동수들은 항상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수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원한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자신들의 ‘선(禪) 분위기’를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p>
      <p><br /><span class="topic">일하는 것은 수행의 길을 닦는 것이다</span></p>
      <p> 언젠가 스승님은 개인적으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현재 제자들 중 반 이상이 거의 수행의 공덕이 없다. 그래서 
        스승의 공덕으로 그들이 입문하고 해탈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입문한 후 스승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시간을 갖도록 격려하신다. 사회를 위해 일해서 세상의 은혜에 보답하고 혹은 우리 단체를 위해 일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 이유는 만일 우리가 일하지 않는다면 그냥 매일 길거리를 걷거나 다리 위를 지나느라고 우리의 공덕을 다 써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어떠한 공덕도 남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일이라는 것은 우리가 조금씩 조금씩 공덕을 쌓을 수 있도록 
        돕고, 살아 있는 동안에 오랜 수행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가 오늘 일한다면 우리는 내일 수행할 수 있는 공덕을 
        갖게 될 것이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74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4:20:42 +0900</dc:date>
</item>


<item>
<title>고통받는 스승님</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23</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글/ 20세기 제자<br /></p>
      <p>쇠진한 육체와 내면의 근심으로 탈진되어 스승님이 음력 정월에 병원으로 이송되셨다. 스승님의 시자가 이렇게 회상했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스승님께서 잠시 의식을 차리셨어요. 내가 땀을 흘리며 걱정이 되어 우는 것을 보시고 스승님은 힘없는 목소리로 나를 
        위로하시며 ‘장갑을 벗어요, 너무 더워요.’라고 하셨지요. 그리고 힘없는 손으로 휴지를 집어 나의 이마를 닦아 주셨어요.” 이야기를 
        하면서 시자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스승님은 내게 모든 사람에게 연락해서 당신은 괜찮다고 전하라고 하셨어요. 말씀을 마치시자마자 
        스승님은 다시 의식을 잃으셨어요.”</p>
      <p> 제자들이 크게 걱정하는 것을 아시고 스승님은 문병을 와도 좋다고 허락하셨다. 이날은 음력 정월 초사흘이 되는 날이었는데, 
        전화로 아침 일찍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말씀하셨다. 스승님은 어울락이나 중국에서는 음력 정월 초사흘이 되면 당신을 
        뵈러 제자들이 병원에 올 수 있게 허락하시면서 우리에게 비스킷과 사탕을 준비하라고 하셨다!</p>
      <p> 병원에서 고통 받고 있으면서도 스승님은 전통대로 제자들에게 줄 돈 봉투를 잊지 않으시고, 시자에게 스승님의 사랑이 담긴 봉투를 
        준비하라고 하셨다.</p>
      <p> 우리가 꽃과 상록수, 과자와 사탕을 가지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 시자는 스승님이 MRI 검사를 하고 계신다고 했다. 오, 
        하느님! 스승님은 이런 종류의 검사를 두려워한다고 하셨는데, 왜냐하면 긴 관 속에 누워 혼자 갇혀 있어야 하며, 여러 시간 동안 
        고통스럽게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승님이 우리를 위해 이런 고통을 견디고 계실 것을 생각하며 매우 
        산란해졌다.</p>
      <p> 대기실에서 우리는 조용히 명상하고 오불을 외면서, 신께 스승님이 더 이상의 고통을 겪지 않으시도록 보호해 달라고 기도했다. 
        나중에 우리는 고통스런 마음으로 병실 침상 옆에 둘러앉아 있었다. 스승님은 우리의 감정을 느끼시고는 눈을 뜨고 일어나 앉아 우리를 
        안심시키려 하셨다. 스승님은 음력설은 중국 사람에게는 매우 중요한 명절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외국에 있지만 우리를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고 느끼신 듯했다.</p>
      <p><br /><span class="topic">스승님의 육신(?)이 스승님을 보호하다</span></p>
      <p> 스승님은 사실상 이런 고통을 경험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스승님이 이런 육체적 고통을 견디셔야 하는 이유가 
        중생들의 업을 자비롭게 받아들이셨기 때문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p>
      <p> 시자가 말하기를 “스승님께서 의식을 잃으셨을 때, 의사가 마취 주사를 놓으려 하자 스승님께서 갑자기 벌떡 일어나 단호한 목소리로 
        주사 맞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시고는 다시 쓰러지셨어요.”라고 했다. 스승님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시며, 스승님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육신의 보호 의지였을 거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스승님의 몸은 너무나 민감해서 정상적인 마취량이라도 스승님께는 과다한 양이기 
        때문이다. 만약 의사가 간과하고 그냥 주사를 놓았다면 아마 스승님은 큰 고통을 당하시고 오랫동안 의식을 잃으셨을 것이다.</p>
      <p> 스승님이 MRI 검사를 받으실 때, 시자는 스승님 곁에 있겠다고 요청하지 않았다. 그래서 스승님은 그녀를 진정으로 돌봐 줄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아시고 슬퍼하셨다. 만약 우리가 스승님을 걱정한다면 우리는 스승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고집 부리며 유리창을 
        통해서 아니면 지붕을 뚫고서라도 스승님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스승님은 괜찮으시다고 확신하려 한다. 우리는 항상 
        스승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스승님의 화신이 우리가 하는 것보다 더 잘 스승님을 보호하다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p>
      <p> <br /><span class="topic">부처와 그의 아들 사이의 친교</span></p>
      <p> 잠시 후 약간 회복이 되어 일어나신 스승님은 우리와 함께 축복 음식을 즐기셨다. 드시는 동안 스승님은 석가모니 부처와 그의 
        유일한 아들인 라훌라 사이의 깊은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셨다. 왕자라는 고귀한 신분이었던 라훌라가 출가승이 되고 난 후에 부처는 
        그를 매우 엄하게 대했는데, 다른 제자들보다 한층 더 엄하게 대했다. 라훌라가 잘못을 했을 때 부처는 그를 변소에서 자게 했다.</p>
      <p> 2500년 전 출가승이 썼던 인도의 변소는 세라믹 타일로 마무리되고 방향제 냄새가 나는 현대식 화장실과는 달랐다. 라훌라는 
        지저분하고 지붕도 없는 변소에서 밤을 보냈는데, 그것이 부처가 그의 아들을 가르치는 방법이었다. 그 결과 라훌라는 겸손함을 배우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네 번째 계보를 잇게 되었다. </p>
      <p><br /><span class="topic">남편과 아내처럼 운명을 같이하라</span></p>
      <p> 스승님은 우리가 개선되기를 바라시면서 거주제자들 사이에서 흔히 있게 되는 결점을 지적하셨다. 스승을 따른 후에 우리들 중의 
        일부는 동수들과 너무 친밀해져 우정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 나머지 스승에게 배우러 혼 처음의 목적을 잊어버린다고 하셨다. 부처의 
        아들과 같이 고귀한 사람도 고된 시련을 겪었는데 어떻게 우리가 면제될 수 있겠는가? </p>
      <p>스승님은 제자와 스승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셨다. 현재 우리의 관계는 여자 친구와 남자 친구의 관계와 같아서 단지 
        행복을 공유할 준비가 되어 있을 뿐이고, 결혼하여 많은 고난을 무릅쓰고 운명을 같이하는 부부의 단계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고 
        하셨다.</p>
      <p> 스승님이 강연을 하실 때의 장엄함에 매료되어 우리는 스승님에 대한 찬미로 가득하다. 하지만 실제로 스승님과 가까이 있게 되면 
        우리는 스승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다. 스승님은 우리가 종종 우리의 위대함을 인식하지 못하는지 의문을 갖는다고 지적하셨다. 
        “만약 여러분이 진정으로 위대하다면 그것을 증명해 보세요.”라고 말씀하셨다. 분명한 것은 스승님이 우리의 위대함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자신의 위대함을 찾도록 자극하신다는 것이다.</p>
      <p> 종종 우리가 생각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에 스승님과 우리 사이에 장애와 오해가 생긴다. 스승님이 예를 하나 드셨다. 어느 
        날 스승님이 거주제자들과 나무를 심고 계셨다. 그들은 나무를 적절한 곳에 바르게 심기 위해 매우 주의를 기울이며 일하고 있었다. 
        갑자기 다른 거주제자가 다가와서 ‘좋은 의도’로 물었다. “내가 뭐 도울 일이었을까요?” 그런 혼란스런 순간에 스승님은 오직 
        이 말밖에 생각하실 수 없었다. “가 버려요!”</p>
      <p> 스승님이 웃으며 설명하셨다. “모든 사람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고 나는 우리가 나무를 옮기고 있는 동안 나무가 그를 칠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는 거기에 서서 어떻게 이 나무가 이렇게 크게 자랐고 안전하게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었지요. 그는 자초지종을 알고 싶어했어요. 불행히도 그의 애고가 상처를 입었죠.”</p>
      <p> 그때 간호사들이 노란 액이 들어 있는 주사를 들고 왔다. 그들은 병실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는데, 
        스승님께서 우리는 당신의 제자들이고 신년을 맞아 당신을 뵈러 온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주사를 맞은 후 스승님은 간호사들에게 오후에 
        차 마시는 시간을 함께 갖자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나갈 때까지 스승님 곁에서 여유로운 순간을 즐겼다. 스승님은 축복 과자가 든 
        커다란 바구니를 준비하라고 하시면서 이것을 간호사실과 전 의료진에게 보내도록 하셨다.</p>
      <p> 그런 후 스승님은 우리에게 재미있는 노래를 몇 곡 부르도록 하셔서 우리는 가장 위대한 가수 앞에서 ‘최고의 공연’을 했다. 
        우리는 연습을 거의 하지 않아 음정이 잘 안 맞았지만 우리의 신실함은 신을 감동시켰음에 틀림없었다. 스승님도 우리와 함께 노래를 
        부르셨다.</p>
      <p> 스승님은 향기로운 꽃들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즉시 스승님의 사랑이 병원의 작은 방으로부터 음류로 가득 찬 향기로운 
        천상의 왕국으로 퍼져 나갔다.</p>
      <p> 우리는 스승님이 우리를 즐겁게 해주시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승님이 지치실까 봐 걱정이 되었다. 스승님은 
        주실 때 언제나 남김없이 그리고 사심 없이 주신다. 그래서 우리도 우리의 최선을 다해 노래했으며 신의 축복으로 모든 불행이 소멸되기를 
        소망했다.</p>
      <p><br /><span class="topic">질투여 안녕!</span></p>
      <p> 나중에 스승님은 시자들이 서로를 잘 돌보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매우 속상해서 우셨다고 말씀하셨다. 누군가가 스승님 가까이에 
        있게 되면 사람들은 질투를 하여 그나 혹은 그녀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때까지 일부러 혹은 은연중에 압력을 가해 결국 달아나게 
        만든다고 하셨다. 우리는 스승님이 어떤 사람을 곁에 두실 때는 그 사람을 구해 주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다시 많은 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p>
      <p> 우리가 모두 스승님의 제자라면 그 사람만 주시할 수 있는가? 물론 아니다. 스승님이 단지 그 사람을 구해 주기 위해 고통스런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것을 우리가 참고 볼 수 있을까? 만약 우리의 무지 때문에 우리가 어떤 사람을 떠나게 만든다면, 설령 
        우리가 천국을 얻게 될지라도 스승님을 만나기 위해 수백만 년을 기다려야 하는 나쁜 업장을 초래한다.</p>
      <p> 제자들의 무지로 인해 나쁜 업장을 초래하는 것을 볼 때 스승님의 마음은 너무나 아프기 때문에 고통스럽게 우리에게 이것에 대해 
        설명하셨다. 어떤 사람의 업장으로 인한 장애가 너무 커서 우리의 질투심을 억제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이것을 잘 조절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인데 어떻게 우리가 서로서로를 그렇게 대할 수 있겠는가?</p>
      <p> 스승님은 한숨을 지으시며 모든 사람이 스승님 곁에 머물 수 있도록 친화력을 가진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무지로 
        인해 우리는 스승님의 좋은 동료가 될 수 없으며 스승님이 언제나 외롭게 느끼시도록 만든다. </p>
      <p>스승님의 눈물이 제자들의 어리석고 딱딱한 마음을 녹인다. 우리는 얼마나 이기적인가! 스승님, 정말 죄송합니다.</p>
      <p><br /><span class="topic">다시 그리스도에게 십자가를 지우지 마라</span></p>
      <p> 바닥에 떨어진 꽃잎을 주워 모으며 축복 음식이 든 바구니를 가지고 병실을 떠날 준비를 하자 스승님이 우리를 불러 세우시고는 
        흐느끼는 목소리로 “여러분의 노래에 매우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씀하셨다.</p>
      <p>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별이 빛나는 밤’을 바라보며 병상에서 팔을 뻗으시며 “신경 쓰지 말아요. 나는 언제나 박해를 
        받고 있어요.”라고 말씀하셨다.</p>
      <p> 수많은 생을 그리스도는 그의 피로써 사람들을 구원했다. 어떻게 우리가 신성한 존재의 부드럽고 순수한 마음이 더 상처받을 때까지 
        그렇게 잔인할 수 있겠는가?</p>
      <p align="center"><font color="#FF66CC"><font color="#9933CC" face="바탕체"><strong>“이제 
        나는 이해할 수 있어요<br />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자 했는지.<br />
        얼마나 당신이 스스로의 고결함으로 고통 받았는지.<br />
        얼마나 그들을 자유롭게 하려고 노력했는지.<br />
        그들은 듣지도 않았고,<br />
        알지도 못했지요.<br />
        아마 이제는 들을 거예요….”</strong></font><font color="#9933CC"></font><em><font color="#9933CC"><br /></font> </em> </font>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80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Tue, 09 Mar 2004 14:05:22 +0900</dc:date>
</item>


<item>
<title>향수의 비밀</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22</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칭하이 무상사/ 1990. 2. 25. 포모사 시후 센터(원문 
        중국어)<br /></p>
      <p><font color="#FF9900">*주: 이 글은 보다 많은 보호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들을 위한 것입니다. </font></p>
      <p>우리는 이 세상의 향수 냄새가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아주 많은 미세한 중생들을 우리 
        코 속으로 끌어 올 뿐입니다. 향수를 뿌리는 이들은 다양하고 복잡한 무수한 중생들을 끌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성격도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마치 많은 사람들이 한집에서 사는 것과 같지요. 향수나 어떤 미용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p>
      <p> 여러분은 아마도 바깥세상이나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들이 우리에게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를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냄새를 
        맡을 때면 그 냄새가 우리에게서 나든 남에게서 나든 간에 어떤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우리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든 없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육감을 통해 흡수되는 모든 것은 우리 안에서 어떤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세간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은 
        대부분 수준이 낮게 마련이지요. 그리고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수준 낮은 생각은 우리 주위의 수준 낮은 존재들과 연결됩니다. 
      </p>
      <p>그것은 전파와도 같습니다. 전파를 송신하면 누군가 그것을 수신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그 존재들이 신호를 내보내면 우리가 그 
        신호를 받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같은 채널에 맞춘다면 그것이 우리 안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우리가 라디오를 가지고 있고 라디오 
        방송국이 스물네 시간 방송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우리가 라디오를 끄면 들을 수 없게 되지만 그것을 켜면 다시 그 신호를 받아들이게 
        됩니다.</p>
      <p> 육감에 속하는 것은 무엇이든, 그것이 색(色)이든 소리(音)든 맛(味)이든 간에 우리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두뇌는 어떤 생각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을 끌어당기고 나쁜 것은 나쁜 것을 끌어당깁니다. 좋든 나쁘든 그 
        대부분은 여전히 삼계 이내의 중생들일 뿐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많은 존재들과 연관되어 있으며 그 생각이 그 존재들을 끌어당깁니다. 
        노름하는 사람들을 보세요. 그들은 노름을 좋아하는 아수라 중생들을 끌어들입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술을 좋아하는 영혼들을 
        끌어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중독되어 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노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일종의 
        죄책감도 느끼고, 자신에게 좋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어 스스로 그만두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하지를 못합니다. 그것은 무형의 중생들이 
        우리보다 더 힘이 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물질적인 육체가 없기 때문에 우리를 통제하기가 더 쉽습니다. 우리가 더 많이 통제당할수록 
        더 많은 중생들을 끌어들이게 됩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그들을 이기는 것이 불가능하니 점점 더 약해지는 것이지요. 그들은 먹고 
        마시고 즐기기 위해서 우리의 몸을 이용하는 것입니다.</p>
      <p> 그러니 향수를 뿌리지 않는 편이 더 낫습니다. 그래서 남녀 출가자들의 계율 중 하나가, 자신을 꾸미기 위한 향수나 화장품의 
        사용을 금지하는 것입니다. 계율들이 다 구식이라서 우리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런 냄새를 맡을 때마다 
        우리의 욕망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수많은 생을 통해 우리가 배운 것입니다. 예를 들어 좋은 향수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는 뜻이 
        되고, 그것은 곧 육체적인 욕망과 연결됩니다. 그래서 갑작스레 그것이 우리의 잠재의식을 일깨우게 됩니다. 유유상종이라고 하지요! 
        결국 우리의 일깨워진 마음은 비슷한 욕망을 가진 다른 중생들을 끌어들이게 됩니다.</p>
      <p> 어떤 이들은 유별나게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름이나 여자를 좋아하는 이들은 죽은 뒤에 그러한 유형의 수준으로 갈 
        것입니다. 비슷한 욕망을 가진 영혼들이 함께 삽니다. 그들은 서로를 더욱더 부추겨서 욕망이 더 강해지기 때문에 빠져나오기가 힘듭니다. 
        우리가 내면에서 어떤 생각의 채널을 열면, 생각만 한 것뿐인데도 그 중생들이 재빨리 안으로 스며들 것입니다. 그것이 냄새라면 
        코를 통해 들어올 것이고, 노래라면 귀를 통해 들어올 것이며, 성적인 이미지라면 눈을 통해 들어올 것입니다. 좋은 음식을 즐긴다면 
        입을 통해 들어오겠지요. 그래서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무수한 중생들을 제도하길 서원합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p>
      <p>우리는 매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형의 중생들을 우리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그들은 안에 들어와서 우리 존재의 일부를 차지하고 
        우리를 통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먹는 것을 좋아한다면 그것을 더욱 좋아하게 됩니다. 노름을 좋아하면 더욱더 노름을 좋아하게 
        되지요. 마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모두 그들이 우리를 통제하며, 우리가 더 원하도록 만들고 우리의 욕망을 강화시키기 때문입니다.</p>
      <p> 그 중생들은 우선 우리의 내부에다 중앙 도시를 건설하고, 행정부를 구성하고, 내무부 장관, 외무부 장관 등을 만들어 나갑니다. 
        우리 안에서 점점 개발하고 확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모두 웃음) 그리고 마침내 우리를 철저하게 통제하는 완전한 정부가 들어섭니다. 
        만일 우리 존재의 각 부분들마다 이런 각종 정부들이 온통 들어서게 된다면, 이런 외부의 세력들이 우리를 통제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자신을 잃어버림으로써 더 이상 예전의 자신이 아닌 것이지요! 그래서 갈수록 자신에 대해 더욱 생소해지고 자신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우리의 욕망이 우리를 통제하기 때문이지요.</p>
      <p> 이런 온갖 중생들의 욕망이 우리 내면에 살면서 우리의 권리를 통제합니다. 그들이 우리를 일부분씩 나누어 소유하고 통제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완벽하게 붙잡힌 것입니다. 그 중 일부는 돈을 원하고, 일부는 음식과 술을 원하며, 일부는 웃고 즐기는 것을 원하고, 
        또 일부는 노름을 원합니다. 온갖 종류의 욕망을 채우고자 하지요.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방금 말한 
        이유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p>
       <p>입문을 하면 여러분은 모든 것을 버립니다! 내가 그들 모두를 되돌려 보내지요. 나는 이렇게 말해요. “안녕, 잘 가!” (스승님과 
        모두 웃음) “여긴 너희들 집이 아니야!” (모두 박수) 그런데 어떤 때는 그들이 저항하기도 합니다. 보다 악하고 비열한 중생의 
        경우가 그렇지요. 악당들처럼 법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범죄자들이 경찰을 때려눕히는 것을 보게 됩니다.</p>
      <p> 이와 비슷하게 나는 진리와 높은 경지를 대표하고, 그들은 내 말을 들어야 할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어떤 때는 악한 존재들이 
        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내가 그들의 좋은 것을 빼앗아 가서 더 이상 즐길 것이 없어졌다며 분노합니다. 심지어 일부는 기존의 
        소유물에 집착한 나머지 나를 공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피곤해집니다. 그들이 여러분을 공격할 
        때 얼마나 피곤한지는 여러분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나를 공격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여러분을 공격할 수 없으니, 여러분의 
        일을 방해하고자 나를 공격합니다. 깨달은 스승이 사람들의 업장을 가져갈 때 바로 그런 일이 생기게 됩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86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Mon, 08 Mar 2004 15:58:21 +0900</dc:date>
</item>


<item>
<title>불멸의 은줄</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21</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칭하이 무상사/ 1989. 5. 21. 포모사 타이베이(원문 
        중국어)<br /></p>
      <p>왜 죽는 사람들은 그렇게 고통스러워할까요? 그것은 그들 대부분이 음류로부터 영원히 단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을 때 
        우리 모두는 은줄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디를 가든, 우리가 다른 수준의 세계를 여행할 때 자동적으로 늘어나거나 줄어들면서 우리를 
        따라옵니다. 만약 그 은줄을 사용할 줄 안다면 그 은줄은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내어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영혼에 자양분을 주며 
        우리를 진정한 고향으로 데려갈 수 있습니다. 이 은줄을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은줄은 죽음의 순간에 딱 한 번 사용됩니다. 
        그것이 다시는 고칠 수 없게 끊어질 때이죠. 매우 슬픕니다. </p>
      <p>그래서 죽은 많은 사람들이 불행한 겁니다. 그들은 살아 있었을 때 비록 은줄을 사용할 줄은 몰랐지만 은줄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영혼은 그래도 여전히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만돌린이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연주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지만 그것이 있으므로 위안이 되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연주할 수 있다는 걸 압니다. 전에 만돌린이 없었을 때는 “아, 
        만돌린이 하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지금 나는 만돌린이 있습니다. 비록 연주할 시간은 없지만 나는 
        그것이 있다는 걸 압니다. 없는 것보다는 낫지요. </p>
      <p>우리가 살아 있을 때 은줄은 존재합니다. 우리가 관음법문을 수행하지 않고 은줄을 사용하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존재하고 희망은 
        여전히 있습니다. 우리가 죽을 때 은줄은 사라집니다. 언제 다시 축복을 받아 인간이 되어 은줄을 받게 될지 모릅니다. 동물들에겐 
        그것이 없어서 내면의 음악도 없습니다. 사실 그들에겐 은줄이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작아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완전히 기능하기에는 
        충분하지가 않은 거죠. </p>
      <p>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은 후에 엄청난 고통을 겪습니다. 왜냐하면 이 은줄로부터 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희망도 없습니다. 입문한 
        사람들은 다릅니다. 그들의 은줄은 영원히 존재해서 그들을 보다 높은 세계로 데려가고, 그래서 그들은 항상 자유롭고, 길을 잃거나 
        가장 높은 영혼의 세계로부터 분리되지 않습니다. 은줄이 적절하게 기능한다면 그들은 정말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죽음의 순간에 은줄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희망도 사라질 것입니다. 만약 불교의 인과법에 따라서 동물이 되어야 한다면 희망은 
        더 적을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자들이 그렇게 비참하고 외면과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p>
      <p>관음 수행자들은 임종의 순간에 매우 행복합니다. 언제 죽을지 미리 아는 거죠. 은줄은 끊기지 않고 남아 있으며, 계속해서 영혼에 
        자양분을 주는 소리를 만들어 냅니다. 그들을 어디든지 데려가고 다시 데리고 옵니다. 우주의 궁극적인 경계와 가장 낮은 지옥까지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입문자들은 자유롭게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일반인과 입문자들이 죽을 때의 차이입니다. 
        입문자들은 정말로 절대 죽지 않습니다. 은줄이 끊긴 자들만이 죽습니다. </p>
      <p>우리가 만약 외부의 형상이나 소리를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면 아주 괴롭지 않겠습니까? 장님이나 귀머거리가 답답한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들은 외부의 소리와 색을 즐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죽은 자들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행합니다. 
        이 은줄을 잘 키워 나가고 끊어지지 않도록 지킨다면, 그때 우리는 불멸의 존재가 되고 항상 빛과 소리로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고, 
        우리의 마음은 안정이 되고 즐겁습니다. 우리는 하루 24시간 빛과 소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행복합니다. <br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88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Mon, 08 Mar 2004 15:53:39 +0900</dc:date>
</item>


<item>
<title>해몽</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20</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caption_2" align="right">글/ 두얼    <br /></p>
      <p>어느 날 스승님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여자 사무실에 오셨다. 스승님은 우리를 보시자마자 전날 밤 꿈에 대해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스승님 자신도 그 꿈의 의미를 확실히 알 수 없어 하셨다. “두얼, 우리 승단에서 누가 해몽을 할 줄 아는지 혹시 알고 
        있어요?”라고 스승님이 물으시기에 나는 “아마 통반선이 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스승님은 고개를 끄덕이시며 지금 
        곧바로 전화를 걸어 그녀를 오게 하라고 하셨다. 또한 책임자도 오게 하셨다. </p>
      <p>곧 통반선과 책임자가 왔다. 그때 사무실에는 다른 여자 출가승들도 몇몇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스승님 곁에 빙 둘러앉자 
        곧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때 스승님이 당신의 꿈 이야기를 하셨다. “감, 사과 등 온갖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커다란 과일 나무를 꿈에서 봤어요. 잠시 후 바람이 불어오자 느닷없이 큰 사과가 땅에 떨어졌어요. 나는 떨어지는 사과를 
        잡으려고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 버렸죠. 사과는 땅에 떨어졌고, 전부 멍이 들었어요. 나는 즉시 다른 과일들은 어떤가 하고 살펴봤는데, 
        대부분이 바람에 떨어져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오직 한 개의 작은 감과 한 개의 작은 사과만이 나무에 남아 있었지요. 
        여전히 두꺼운 잎사귀에 붙어서 자라고 있었기에 거센 바람에도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예요. 나는 이 연약한 두 열매가 너무 
        가여워, 나뭇가지에서 그것들을 따다가 내 양쪽 주머니에 하나씩 집어넣었어요.”</p>
      <p> 스승님은 이야기를 마치신 후 통반선에게 이 꿈을 풀이해 보라고 하셨다. 그가 뭐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스승님은 
        그 해몽에 만족스러워하지 않으셨다. 나중에 스승님은 스스로 가장 적절한 해몽을 하셨다. 스승님은 대단치 않은 듯 말씀하셨지만, 
        우리 모두는 그것이 가장 훌륭한 해몽이란 걸 알았다. </p>
      <p>“그 큰 사과는 수행을 잘해서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오른 제자들을 상징하는 것 같아요. 그들은 자신들이 거센 폭풍우도 잘 견뎌 
        낼 수 있으므로 더 이상 나무의 보호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렇게 해서 스스로 공격받기 쉬운 목표물이 되었던 거예요. 
        그래서 비바람이 몰아쳤을 때 제일 먼저 떨어진 거죠. 반면에 높은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한 다른 제자들은 아직 나무 곁에서 자라면서 
        보호받는 법을 알고 있었어요. 그 덕분에 그들은 스승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무사할 수 있었지요.”<br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97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Mon, 08 Mar 2004 15:49:24 +0900</dc:date>
</item>


<item>
<title>칭하이 데이 -스승님께 바치는 기쁜 날</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19</link>
<description><![CDATA[<br /><table width="500" border="0"><tr><td> <p class="caption_2" align="right">글 엔젤라 배틀 사저/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원문 영어)<br /><br /></p>
      <p>어느 기쁜 날,<br />
        육체더미 속에서 불안해하는 우리를 발견한 그녀는 <br />
        비뚤어진 우리 마음의 분별의 산을 뚫고 <br />
        끊임없는 광채로 번쩍이는 보석을 다듬어 내셨지요<br />
        당신이 드러낸 보석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니 <br />
        그 풍요로움에 가슴이 벅찼지요<br />
        머뭇거림도 한순간<br />
        당신의 부드러운 오라에 안심하곤<br />
        앞으로 내달려 그 보석들을 차지했지요</p>
      <p>이렇게 기쁜 날<br />
        잃어버린 왕국을 자랑스럽게 되찾은 고대의 왕족처럼<br />
        당신은 우리를 환희의 왕좌에 앉히셨네<br />
        그러나 그 밤,<br />
        우리의 대관식의 대가로 <br />
        당신은 고통과 슬픔의 눈물을 남몰래 흘리셔야 했지요<br />
        고맙게도 새벽에는 승리의 빗방울이 소리 없이 내리고<br />
        우리는 <br />
        당신의 희생에 미진하나마<br />
        이날을 당신을 위한 특별한 날로 선언하고<br />
        모든 기쁜 날이 당신의 은총을 찬양합니다. <br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20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td>  </tr><tr><td height="2"> </td>  </tr></table>]]></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Mon, 08 Mar 2004 15:35:40 +0900</dc:date>
</item>


<item>
<title>초세계의 치료법</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18</link>
<description><![CDATA[<br /><p>여러분에게 다른 세계에 대해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몸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은 각각 육체, 영체 등등의 서로 다른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술이나 담배, 마약 같은 것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뿐 아니라 영체에도 해를 입히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죽으면 천국의 존재들은 마치 이 세상의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듯 그들의 영체를 치료하고 돌봐야 합니다. 아주 오랫동안 이런 
        치료를 받아 회복되고 나면 그때서야 비로소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게 됩니다. 그들은 그와 같은 경험을 무수히 하며, 자신의 공부를 
        마치고 나면 수행에 대한 열망이 생기게 되고, 그러면 더 높은 중생으로 진화하게 됩니다. </p>
      <p>우리가 ‘금성’이라고 부르는 행성에는 온갖 사람들을 치료하는 그런 작은 ‘병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정토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매우 총명하고 영적이며 경지가 높아서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스승’의 지위에 근접해 있고, 그 중 대부분은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약물이나 도구가 아닌, 다양한 에너지의 광선, 빛으로 환자들을 치료합니다.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레이저 광선으로 사람들을 
        치료하고 암을 치료하듯이 말입니다.</p>
      <p>이 사람들은 비교적 높고 뛰어난 과학자인 셈입니다. 스승은 그보다 더 진보한 과학자로서 자장 에너지를 어떻게 바꾸는지 알아서 
        여러분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마치 이 세상의 훌륭한 과학자가 햇빛을 에너지로, 전기로 바꿀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p>
      <p>‘금성’은 이러한 천국 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그 이름에 집착하지 마세요. 천국이 거기 하나밖에 없는 게 아니니까요. 아주 
        많은 행성들이 그런 방식으로 사람들을 치료합니다. 그리고 다른 정토의 많은 존재들 역시 우리를 늘 돕고 있습니다. 그들은 빛 
        에너지로 자기 행성과 지구, 지옥에 있는 환자들을 치료합니다. 그들은 가엾은 사람들, 절망에 빠진 사람들, 기도하는 사람들과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돕고 있습니다.</p>
      <p>우리는 종종 어떠한 이유로 인해 자살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유일한 자살 방법은 아닙니다. 자살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이 물질적인 육신을 죽이는 건 아주 나쁜 일이지만 최악의 경우는 아닙니다. 자신의 영체를 죽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나쁜 일이지요! 만약 술이나 마약을 하고 이 물질적인 삶만 돌보면서 교회도 안 가고 절에도 안 가고 영성 강연에도 결코 
        간 적이 없고, 명상도 하지 않고 수행도 하지 않으며 염불도 하지 않고 어떤 종교 교리에도 신경 쓰지 않으면서 매일 사람들과 
        어울려 술과 고기를 먹고 춤추고 음악 듣고 텔레비전과 신문을 보는 등 온갖 것을 하면서 자신의 영혼을 돌보지 않으려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영체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정말 끔찍한 일이지요.</p>
      <p>만약 여러분의 친척 중에 수행을 하고 도심(道心)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최소한 여러분은 죽은 후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친척과 
        함께 간다는 게 아니라 친척의 공덕 때문에 올라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올라가선 아무것도 몰라 죽은 사람처럼 가만히 
        누워 있게만 되지요.</p>
      <p>일반적으로 사람이 죽고 나면 빛나는 몸을 갖게 되는데, 이런 사람들은 빛이 없어서 모습이 이 육신과 같긴 하지만 아무런 감각도 
        없습니다. 단지 그들의 마음이 물질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육신도 함께 데리고 올라온 것입니다. 하지만 살아 있을 때의 몸을 가져온 
        게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만들어 낸 몸으로서, 겉보기엔 이 육신처럼 보이지만 마치 돌이나 나무처럼 아무런 감각도, 생각이나 지성도 
        없습니다.</p>
      <p>그들의 친척이 수행을 하고 도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도 그 공덕을 얻어 그들과 함께 천국에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혈연관계가 
        있으니까요! 그렇다 해도 위로 올라오고 나선 의식이 흐리멍덩해서 그들의 친척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천사들이 그들을 병원으로 데려가면 
        그들은 거기서 아주 오랫동안 돌덩이처럼 누워 있게 됩니다.</p>
      <p>그때 천국의 선량한 존재들이 빛과 에너지로 그들을 치료하면서 자신들의 사랑과 힘을 그들의 몸에 쏟아 붓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치료를 받게 되면 그 환자들은 다시 소생해 그곳에 있는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알아보게 되며, 그때부터 서로 행복하게 
        지내게 됩니다. </p>
      <p>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비교적 업장이 가벼운 편입니다. 업장이 무거운 사람들은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준다 해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쁜 생각과 나쁜 생활 방식에 깊게 묶여 있어서 이런 사랑의 도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니 영원토록 
        암흑 속을 헤매게 되지요. 정말 가슴 아픈 일이긴 하지만,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p>
      <p>그러므로 명상을 하거나, 적어도 성경이나 경전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은 높은 힘과 접하고 있어 보호력이 약간 생기게 됩니다. 
        높은 힘이 조금이나마 그들을 보호합니다. 물론 수행을 많이 할수록 더욱더 좋습니다. </p>
      <p>더욱이 여러분이 신의 빛에 직접 접촉할 수 있고 이생에서 이미 빛을 볼 수 있다면, 죽은 후엔 반드시 높은 차원의 세계로 가게 
        됩니다. 우리 법문의 경우엔 입문하는 날 빛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법문의 경우엔 좀 늦어서 죽은 후 보게 되거나, 아니면 
        몇 년을 수행하고 나서야 볼 수 있습니다. 높은 세계에서는 빛으로 아이를 만들고, 옷이나 집, 나무 등 온갖 편리한 것들을 빛으로 
        만들어 쓰기 때문에 모든 것이 빛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천국에서도 수많은 등급의 구분이 있습니다. 마치 한 나라에도 빈부간의 
        차별이 있듯이 말이지요. 하지만 높은 경지의 천국에서는 서로 싸우지 않습니다. <br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39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Mon, 08 Mar 2004 15:22:20 +0900</dc:date>
</item>


<item>
<title>교회, 모스크, 사원, 피라미드의 참뜻</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17</link>
<description><![CDATA[<br /><p>교회, 즉 외형적인 교회, 모스크, 사원은 우리 내면에 있는 신의 왕국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우리 자신의 사원과 예수가 했던 
        말, "너희는 신의 사원이고, 너희 안에 성령이 거하심을 모르느냐"는 말을 일깨우기 위해 지어진 것입니다. </p>
      <p>내 생각에 교회와 사원은 신을 향한 숭고한 헌신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교회나 모스크, 혹은 다른 어떤 종교의 사원이든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우리는 존경심을 가지고 이런 숭배의 상징들을 떠올려야 할 것입니다. 사원, 모스크,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이렇게         벽돌로 쌓은 사원에서만이 아니라 참된 신의 사원에서, 다시 말해 자기 내면에 있는, 자신만의 사원에서 신을 찾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p>      <p></p>            <p align="right"><br /><span class="caption">칭하이 무상사/ 1994년 12월 7일 태국 (원문 영어) </span></p>      <p> 버스 안에서든 공원에서든 거실에서든 어디서든 그저 앉아 눈을 감고 명상하십시오. 그리고 매주 단체명상을 하십시오. 그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단체명상 날짜는 사람들의 편의에 맞게 정할 수 있습니다. 수요일이나 금요일에 한 번, 또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한         번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큰 일이 있을 때는 어느 한 장소에 모여 함께 축하할 수 있습니다. 장소가 그리 넓지 않으면         좀더 넓은 장소를 물색하면 됩니다. 그러니 굳이 나를 위해 사원을 지으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창고 같은 것을 쓰면 됩니다. 이제         여러분은 사원, 모스크, 교회가 어디서 유래했는지 알겠지요. 바로 단체명상입니다!</p>      <p></p>            <p align="right"><br /><span class="caption">칭하이 무상사/ 1993년 6월 4일 말레이시아 (원문 중국어) </span></p>      <p>        불교 사원은 원래 입문한 수행자들의 단체명상 장소였습니다. 우리 명상센터처럼 원래는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입문한 뒤에         일주일 혹은 이 주일에 한 번 꼴로 모여 함께 명상을 했던 겁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듣고 질문도 했지요. 그러면 스승은 제자들을         보내 그들의 질문에 답변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좀더 열심히 정진할 수 있도록 서로서로 격려했습니다. 단체명상은 축복의 힘이 매우         강하므로 단체명상에 참석하는 사람은 빨리 진보할 수 있습니다. 불교 사원은 본래 이런 취지에서 나왔습니다.</p>      <p></p>            <p align="right"><br /><span class="caption">칭하이 무상사/ 1995년 6월 4일 포모사 시후 (원문 중국어) </span></p>      <p>	  피라미드는 무덤으로 사용하려고 지은 게 아닙니다. 그런 목적이 아니었다는 게 나중에 밝혀졌지요. 나는 그것들이 영적 수행을         위해 지어졌다고 봅니다. 방금 전에 말한 것처럼 고대에는 '지혜 안내서'를 얻는 게 매우 어려웠습니다. 피라미드를 만든 이유         중의 하나도 그것입니다. 옛날에는 타인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기 때문에 수행하는 게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막에서         단체명상을 해야 한다면 어디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웃음) 호법들이 사방을 에워싸도 쉽게 남들 눈에 띌 것입니다</p>      <p>…… 아무 것도 없는 사막에 앉아 있으면 낮에는 쪄서 죽고 밤에는 얼어서 죽을 겁니다. 사막의 기후는 낮에는 극도로 덥고 밤에는         극도로 춥죠. 이런 극단적인 상황 때문에 피라미드가 세워졌습니다. 피라미드는 내부가 아주 조용합니다. 그리고 입구를 찾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p>      <p>…… 입구는 자기들끼리만 알고 있었죠. 내부는 아주 널찍했지만 완전히 텅 비어 있었습니다. 당연히 아무 것도 없었겠죠. 외부인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명상하고 입문식 등을 하려고 지은 것이니까요.</p>      <p>…… 참된 수행처는 명상을 하는 곳입니다. 그러니 아무 것도 없거나 기껏해야 불상이나 사진 정도가 있는 겁니다. 전에는 불상을         세웠지만 아마도 지금은 사진이나 초상화를 사용하는 게 더 빠르고 편리하겠죠. 여기 우리가 앉아있는 곳과 마찬가지로 그곳은 사람들이         모여 앉는 곳이었기에 안이 텅 비어 있었던 겁니다.<br /></p>      <p></p>      <p></p>      <p></p>      <p></p>      <p></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11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2:53:40 +0900</dc:date>
</item>


<item>
<title>진동의 비밀</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16</link>
<description><![CDATA[<br /><p><span class="topic">식물들의 감지능력 </span><br /></p>
      <p>과학자들이 실험을 통해 식물을 태울 때 잎과 줄기의 진동을 측정했는데, 식물들이 공포심에 매우 격렬하게 진동하는 것을 발견했지요.         또 다른 실험에서 식물을 사랑하는 선량한 사람을 식물 곁에 가게 했더니 매우 좋아하였고, 식물을 싫어하거나 나쁜 사람이 오면,         격렬하게 떨며 환영의 진동이 아닌 거부의 진동을 발생시킨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과학자들은 거부의 진동수와 환영의 진동수를 모두         실험했고, 이 연구로 식물 역시 감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나무와 식물을 기를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는 것이죠.</p>      <p>내 자신의 얘기를 하자면, 나는 어릴 적부터 나무와 식물을 좋아했습니다. 출가하기 전 우리 집에는 큰 정원이 있었지요. 푸른         잔디밭이 있는 정원은 녹색식물로 가득했어요. 아주 아름답고 편안해서 나는 매일 물을 주며 식물들을 잘 돌봤습니다. 그러다 누가         그들을 상하게 하면 몹시 화가 났는데, 그들의 고통이 나에게 그대로 전해져 견디기가 힘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는 함부로 식물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됩니다. </p>      <p><br /><span class="topic">사랑은 기적을 창조한다 </span></p>      <p>        내가 진리를 찾아 인도에 머무를 때, 내가 살던 아쉬람에는 사막에서 자라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잎은 온통 가시투성이였지요.         하지만 사람들이 마구 잘라 놓아서 뿌리를 뻗을 수가 없었어요. 어떤 식물은 잎의 밑 부분을 잘라 물에 담가 놓으면 뿌리가 나기도         하지만, 잎 위를 자르면 자랄 수 없습니다. 나는 그 사막의 식물이 불쌍하게 느껴졌어요. 뿌리를 내릴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잘라져 있었습니다. 그 식물이 뿌리를 내릴 수 없어 보이자 아무도 심으려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쉬람의 한 동수가 "당신이         한 번 키워 보세요? 당신이라면 할 수 있을 거예요" 하고 권했습니다. 나는 "좋아요, 한 번 해보죠"         하고는 그것을 흙에 심었는데, 내가 거기 머무는 동안 그 식물은 계속 살아 있었어요. 뿌리도, 아무것도 없었지만 살아서 싹을         틔우고 자라났지요. 나는 그것이 기쁘게 살아 간다는 걸 알았습니다. 내가 매일 거기에서 명상하고 오불을 외웠으므로, 그 식물도         영향을 받았겠지요. 나쁜 기운을 느끼지 않았기에 다시 자라기 시작한 겁니다.</p>      <p>미국에 있을 때는 한 중국 사찰에 머물렀습니다. 원래 거기에는 화분에 심은 식물이 없었어요. 그냥 누렇게 뜬 화분이 한두 개         있었는데, 몇 년이 지났는데도 자라지 않았고 병든 것처럼 보였지요. 아마 영양이 충분치 않았거나 아무도 물을 주며 돌보지 않아서         그랬을 겁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그냥 물을 주었어요. 매일 물을 주었더니, 2개월 후에는 엄청나게 자라나서 내 방은 화분으로         가득 차 더 이상 앉을 자리도 없었지요. </p>      <p>사람들은 모두 놀라워했습니다. 당시 나는 식물에 줄 비료를 살 돈도 없었고, 또 전문적인 원예가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가진         건 사랑 뿐이었어요. 매일 명상하고 물을 주고 별다른 생각도 하지 않았어요. 그 식물은 매일 잎이 번성하여 점점 많아졌습니다.         결국엔 너무 커져서 내가 떠날 때 나는 그들을 돌볼 사람이 없을까 걱정되어 신도들에게 나눠 주었어요. 사람들은 좋아하며 그것들을         즉시 가져갔지요. </p>      <p>거기에는 또 수년이 되었어도 별로 자라지 않은 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내가 온 뒤 밑둥치에서 가지들이 자라나기 시작하더니,         키가 크고 높게 자랐습니다. 내가 떠날 때, 그곳의 주지 스님은 "이 나무는 너무 커서 줄 곳도 없는데, 당신이 가버리면         죽겠군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 때 "앞으로 이 년은 더 살 겁니다"라고 한 내 말은 사실이 되었습니다.         이 년 뒤 내가 돌아왔을 때 그 나무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어요. 내가 너무 늦게 돌아온 거죠. 주지스님은 내게 나무가         얼마 전에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떠난 지 이 년이 되지 않았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 때         나는 내가 농담으로 한 말이 생각났어요. 그 나무는 그래서 정말 이 년 뒤에 죽은 거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나무에게도 감정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들을 매일 돌봤으므로, 그들은 매우 크고 싱싱하게 자랐습니다. 잎이 너무 크게 자라서 다른         여느 식물과는 차이가 났지요. 나는 특별히 한 것 없이 매일 물만 주었습니다. 때로 차를 마시다 남으면 주고, 바깥에서 흙을         파다 주기도 했지요. 나무들이 점점 크게 자라서 더 많은 양분을 줘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정말 엄청나게 커져 버렸지요.       </p>      <p><br /><span class="topic">나쁜 마음은 파괴를 가져온다</span></p>      <p>        그 무렵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그녀는 무거운 업장을 지은 사람이었습니다. 비구 스님을 데려다가 자기 집의 '재산'으로 만들어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았지요. 아무도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래도 왔습니다. 하루는 그녀가 와서 화분을 놓아두는         방에서 잠을 잤어요. 그 때는 선칠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식물들을 내 방과 가까운 바깥이나 다른 방에 두었습니다.</p>      <p>그녀가 거기에서 하룻밤만 잤는데도, 내가 이튿날 일어나 보니, 많은 잎사귀들이 커피 색으로 변해 죽어 있었어요. 마치 누군가         불로 태우거나 아니면 불에 너무 가까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정말 탄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보여서 나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내가 그 잎사귀들을 모아 주지스님에게 보여주자, 그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산소가 부족했나 보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그는 이해하지 못 했으므로 난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머리를 흔들며 잎사귀들을 쓰레기통에 버렸죠.         보세요, 얼마나 무서운 일이지! 나는 매일 같이 잤어도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어떻게 그녀가 하룻밤만 잤는데 식물들이 그렇게         되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자지만, 하룻밤만에 우리 식물들이 파괴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여기서 매일         많은 사람들이 명상하지만 아무 문제가 없어요. 예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잤지만, 문제가 없었어요. 그러니 사람 수 때문이         아닌 것이죠.</p>      <p>악한 마음이 너무 지독하고 업장이 너무 무거우면 식물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그러니 생각해 보세요. 식물도 그토록 영향을 받으니,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더 영향을 받겠습니까? 그래서 많은 스승들이 산을 찾아 들어가고, 그 제자들이 따라 들어가는 거죠. 그들은         떠나고 싶어하질 않습니다. 진정한 스승일수록 산을 내려가고 싶어하지 않죠. 도시에 산다 해도 역시 자신을 숨긴 채, 이러이러한         큰 스승이 여기 살고 있다고 광고하지 않습니다. 유명해질수록, 스승들은 더욱 숨고 싶어합니다. 사람들이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욱 숨게 되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으면 개의치 않겠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숨으려고만 하고 노출되는         걸 싫어합니다. 수행하지 않는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다른 사람들을 태워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사람의 자장은 무서운 것입니다.       </p>      <p></p>      <p><br /><span class="topic">수행은 중생을 이롭게 한다 </span></p>      <p>        그러므로 우리 마음은 타인에게 영향을 줍니다. 우리가 채식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채식을 하면서도 악한 생각을         끊지 못한다면, 좋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명상을 해야 합니다. 석가모니불은 "악한 이와 사귀지 말라, 그들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수행의 초심자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은 초심자들은 자신을 보호하기엔 아직 수행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행하는 것으로도 도움이 되므로, 수행을 많이 할수록 더 많은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p>      <p>우리가 조용히 오불을 외우면, 많은 사람들이 이롭게 됩니다. 오불을 외우는 것이 일상화되면 어디에 가든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이         이로움을 얻게 되지요. 여러분이 그들을 몰라도 이로움을 주는 것입니다. 오불을 외우는 힘은 이처럼 큽니다! 더 많이 외울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이롭게 되죠. 만약 어떤 사람이 진리를 완전히 이해하고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하면, 전세계, 전 인류의 수준이         높아져 수행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진보하게 되지요.</p><p>            
      </p><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20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2:52:18 +0900</dc:date>
</item>


<item>
<title>동일체의 사랑</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15</link>
<description><![CDATA[<br /><p>4월 중순 시원한 봄비처럼 스승님이 플로리다 센터에 나타나셨다. 당시 플로리다는 백 년 만에 겪는 최악의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물 사용이 금지되었고, 더불어 불의 사용 역시 금지되었다. 센터의 과실수는 모두 까맣게 말라 죽어가고 있었고, 모두들 
        언제 비가 올지 고대하고 있었다. </p>
      <p>그때 스승님이 오셨다. 스승님은 도착하자마자 장주들을 처소로 부르셨다. 온몸을 비닐 옷으로 감싸신 스승님은 커다란 흰 개를         안고 계셨는데, 그 개는 동물 보호소에서 만났을 때부터 병들어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수년 동안 스승님의 청결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우리는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p>      <p>스승님이 계시는 곳은 언제나 청결함 그 자체였으며 스승님 방에서 먼지 한 점이라도 발견된다면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 스승님께서         병들어 침 흘리는 개를 얼굴 가까이까지 들어올려 안고 계셨던 것이다. 그 후에도 스승님은 몇 주 동안 새를 비롯해 온갖 버려진         동물들을 받아 키우셨다. (스승님은 새 날개의 상처가 치유되는 대로 날려보내시려고 했다.) 스승님의 깨끗한 처소는 '에이스 벤추라(동물         탐정-화)'가 되어 집안에는 온갖 동물들이 밤낮으로 소란을 피우고 심지어 스승님 침대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p>      <p>스승님의 애완동물들은 일반적인 다른 애완동물과는 달랐다. 스승님은 마치 친자식처럼 안아주고 함께 놀아주셨으며 정겹게 동물들과         얘기를 나누시기도 했다. 스승님은 동물들이 언제 밖에 나가고 싶어하는지 늘 감지하셨고 밖에서 돌아온 뒤에는 레몬즙을 탄 물로         즉시 닦아주셨다. 또 애완견용 특수 치약, 애완견용 안약 등 갖가지 '개 전용품'을 마련해 주셨다. 그리고 손수 스승님의 음식을         동물들에게 먹이곤 하셨는데, 그 음식을 '스승님의 음식'이라고 하는 건 합당치 않을 것이다. 개들이 스승님보다 먼저 음식을 먹었으니까         말이다! 스승님은 개들에게 먹이고 남은 음식을 드셨다. </p>      <p>정말 그 모습은 동물들이 의인화된 동화 같았다. 스승님이 동물에게 말씀하실 때면 동물들은 사람처럼 똑같이 반응했다. 스승님은         동물 보호소에서 데려온 순간부터 동물들이 차츰차츰 바뀌어 아주 영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스승님은 그들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방법을 알려 주셨다. 동물들이 착한 짓을 하면 높은 음조로 말씀하시고 나쁜 짓을 저지르면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목소리를 사용하지 않고 대신 어떻게 해야할지 뜻을 전달하시면 동물들이 즉각 이해했다. </p>      <p>스승님은 이웃의 동물들도 보살피셨다. 스승님이 처음 오셨을 때 이웃의 개가 센터에 왔는데, 스승님은 개의 눈곱을 깨끗이 닦아주신         후 바로 돌려보내셨다. 평소 우리가 먹이를 주곤 해서 그 개가 계속 센터로 돌아오자 스승님은 "이웃 사람이 개를 잘         돌보지 않는다 해도 다른 사람의 개를 갖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씀하시면서 새 개집과 개 전용 약품, 안약, 채식 개뼈다귀         등 개에게 필요한 다른 모든 물건과 함께 개를 이웃집에 돌려보내셨다. 그리고 나중에 '후속조치'를 위해 이웃집을 방문하시기도         했다.</p>      <p>스승님은 돌리틀 박사(동물의 말로 의사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영화 주인공)처럼 동물을 돌보셨다. 스승님의 처소에 오는         모든 동물들을 잘 보살피셨는데, 심지어 처소 앞마당을 엉망으로 만드는 못생긴 커다란 독수리도 불쌍히 여기시곤 매일 먹이를 주셨다.       </p>      <p>또한 센터 주변의 이웃들과도 친교를 나누셨다. 하루는 이웃집의 뒤뜰에 불이 났는데 스승님은 장주들을 모두 불러 불이 난 장소로         바로 보내 물을 어떻게 뿌리는지, 방화선을 어떻게 파야할지 가르쳐 주셨다. 스승님의 지도로 우리는 성공적으로 그 불의 일부분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간 불이 순식간에 커지자 스승님은 모두를 현장에서 철수시키신 후 한 자리에 모아         모두 무사한지 확인하셨고, 다시 바람이 가라앉자 센터로 들어가라고 지시하셨다.</p>      <p>장주들이 집으로 돌아가 찬 음료수를 마시는 동안에도 스승님은 불이 난 장소로 돌아가 소방관들에게 음료와 선물을 주셨다. 그리고         이웃들이 모두 괜찮은지 상태를 확인하셨다. 그날 밤 이웃의 한 집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자 스승님은 처소 옆에 있던 당신의 트레일러를         바로 제공해 그들이 쓸 수 있도록 하셨다. 나중에 스승님은 우리가 불을 끄는데 많은 도움을 주진 못했지만 중요한 것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우리의 의무를 다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p>      <p>이 일은 매일 일어난 갖가지 사건 중 한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하루는 스승님이 우리를 데리고 노변 식당에 저녁을 사주시려고         가셨다. 우리 일행이 식당에 들어갈 때 종업원은 불친절하게 맞았으며 게다가 스승님이 동물을 데리고 들어가려고 하자 이를 제지했다.         잠시 후 그녀는 스승님의 자리에 왔다가 스승님의 냅킨에 새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스승님은 그녀에게 상냥하게 미소를 지었지만         그녀는 불만스런 눈빛으로 스승님을 보았고 스승님의 쇼핑백에 개가 한 마리 든 것을 알아차리고는 한층 더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p>      <p>마침내 "무슨 일이 있나요? 얼굴이 좋아 보이지 않는데 오늘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가 보군요" 하고         스승님이 말씀하시자 그녀는 지친 목소리로 원래 쉬는 날인데도 주야 근무를 지시받았다고 토로했다. "아무도 이 분을 번거롭게         하지 마세요. 그녀는 오늘 일진도 아주 좋지 않고 주야근무를 해야 하니까요." 식당에 있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스승님은 그녀의 손을 잡고 손에 키스를 하셨다. 그녀는 계속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지만 결국엔 크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승님은         "와, 웃으니까 아주 예쁘군요!"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녀에게 사랑이 가득 담긴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하셨고 그녀는         얼굴을 붉히고 계산대 뒤로 숨어 모자로 얼굴을 가려 버렸다. 사랑과 키스로 스승님이 그녀를 이기신 것이다.</p>      <p>무엇보다도 스승님은 우리 제자들을 생각하셨다. 플로리다에 오신 날부터 스승님은 제자들이 스승님을 쉽게 뵐 수 있고 선을 하기에도         알맞은 장소를 찾기 위해 고심하셨다. 스승님은 수주 동안 플로리다 각지를 차 타고 다니셨고 때로는 밤늦게 돌아오셨다. 허위 광고나         가격의 변동으로 스승님은 종종 실망하셨으며, 이 외에도 관련 허가증이나 법규 등에 관한 온갖 모순적인 정보들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야만         하셨다. 스승님은 플로리다의 가뭄 문제 때문에 신이 당신을 이곳의 곳곳을 다니도록 하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p>      <p>실제로 스승님이 오신 날부터 거의 매일같이 비가 내렸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지역 신문사들은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고, 몇 달 동안 뿌리까지 죽어 있던 우리 센터의 과일 나무들도 갑자기 푸른 잎들이 돋아났다. </p>      <p>이 기간 동안 스승님은 많은 압박감을 느끼셨다. 많은 제자들이 스승님을 뵙기를 고대하고 있었고 특히 스승님 생신 날에는 더욱         심해 스승님은 눈물을 흘리시기도 하셨다. 생신 날에도 스승님은 일하고 계셨는데, 우리는 그날 밤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바비큐를         준비했다. 스승님은 함께 참석하셔서 농담과 노래를 들려주시며 모든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 주셨다. </p>      <p>            
      </p><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25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2:50:2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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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포도주에 피가 섞여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14</link>
<description><![CDATA[<br /><p>최근 프랑스 당국은 포도주를 통해 광우병이 확산될 것을 우려하여 도살장에서 나온 건조된 피를 '정제'해서 만든 10만 병의 
        포도주와 1톤의 건조된 피를 압수했다. 수행을 하는 우리들은 포도주를 마시지 않으니 별 문제될 것이 없지만, 나 자신은 이제까지 
        포도주도 채식에 속한다고 생각해 왔으므로 이 기사를 읽은 뒤 우리 식탁에서 고기와 포도주를 추방시킨 스승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하게 
        되었다.<br /></p>
      <p></p>      <p></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5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2:48:57 +0900</dc:date>
</item>


<item>
<title>천년의 어머니</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13</link>
<description><![CDATA[<br /><p><font color="#CC9900">아래 글은 11세기와 12세기에 걸쳐 쓰여진 프랑스 예언가 장 드 예루살렘의 책에서 
        발췌한 글이다. 우리 앞에 놓인 새 천년과 관련된 예언이 그 책에 실려 있다. 장은 템플 기사단의 단원이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의 예언들은 점차 소실되었다. 그런데 최근에 그의 예언이 재발견되었다. 그의 예언은 놀랍도록 정확하다. </font></p>
      <p><font color="#CC9900">현대의 많은 문제들, 예를 들어 에이즈라든가 세계적인 기아, 환경오염 등이 그의 책에         아주 분명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렇지만 장 드 예루살렘은 세기말의 파국과 전쟁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미래에 관해서도 묘사하고 있다.         '인류는 영적으로 진화하여 진정한 위대성을 되찾을 것이며 평화 속에서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울 것이다.' 몇몇 예언에서 그는 한         여성을 새로운 시대의 어머니로 기술하고 있다. 우리는 그분이 바로 우리의 스승님이라고 믿는다. </font></p>      <p>2000년이 다가오면,<br />        스승의 자리는 남자만의 것이 아니리라<br />        한 여인이 와서 권장(權杖)을 차지할 것이기에. <font color="#6699CC">(스승님은 오랫동안 주장자를 사용하셨다.)</font>         <br />                그 여인은 다가오는 시대의 위대한 어머니가 되어,<br />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을 남자들로 하여금 행하게 하리라.<br />        그 여인은 천년 후에 오는 새 천년의 어머니가 되리라. <font color="#66CCCC">(2000년 이후)</font><br /><br />        그 여인은 어머니 같이 따사롭고 부드러운 기운을 발산하며, <br />        악의 시대가 다한 후에, <br />        잔인한 시대의 추악함이 끝난 후에 아름다움의 화신이 되리라.<br />        천년 후에 오는 새 천년은<br />        빛의 시대로 변하니,<br />        사랑과 나눔과 꿈이 있을 것이요, <font color="#66CCCC">(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들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며……)</font><br />                이러한 꿈들이 실현되리라.<br /><br /><font color="#CC9900">스승님을 직접적으로 지칭하지 않은 예언들이 좀더 있다. 그러나 그 예언들은 스승님이 미래의         영적인 진보와 황금시대에 관해 하신 말씀과 완전히 일치한다. 장의 예언은 세기말의 재난과 고통만을 담고 있는 게 아니라 지구의         놀라운 미래까지 포함하고 있어 아름답다. 다시금 이 지구에 신성한 질서를 부여하는 고통의 한 시기를 거친 후에 인류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font></p>      <p>2000년이 다가오면,<br />        인류는 마침내 눈을 뜨리라. <font color="#66CCCC">(스승님이 지혜의 눈을 열어주시다.)</font><br />        사람들은 더 이상 두뇌나 자신들의 도시에 갇히지 않으리라. <br />        또 세상의 한 끝에서 다른 끝까지 서로 보고 들을 수 있으리라. <font color="#66CCCC">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열리는 국제선)</font></p>      <p>        그들은 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이 또 다른 사람을 역시 해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br />        인류는 하나의 거대한 몸을 형성하여, <font color="#66CCCC">(단체명상)</font><br />                각 개인은 그 속에서 한 작은 부분이 되고, <br />        그들이 모여 심장을 구성하고, <br />        모든 이가 하나의 언어를 말하리니, <font color="#66CCCC">(내면의 소리</font> )<br />                그리하여 마침내 위대한 인류의 영(靈)이 탄생하리라. </p>      <p>2000년이 다가오면, <br />        인류는 돌이나 물, 동물의 몸이나 다른 존재의 눈빛에서 <br />        만물 안에 숨겨진 본질을 이해하리라. <br />                고대의 신들이 지켜온 비밀들이 발견되고, <br />        새 삶의 미로 속에서 문이 하나씩 열리리라.<font color="#66CCCC"> (관음법문으로 깨달음을 얻음)</font></p>      <p> </p>      <p>그들은 창조의 힘과 원동력을 지니리라.<br />        모든 인류에게 지식을 가르치니,<br />        어린이들마저 이전 시대의 그 누구보다도 천상과 지상에 대해 더 잘 알리라.<font color="#66CCCC">(6세 어린         입문자들에게도 놀랍도록 높은 천국의 비전이 있다) </font><br />                인간의 몸은 더욱 커지고 정교해질 것이며,<br />        그들의 영(靈)이 모든 것을 포함하고 소유하리라.</p>          <p>2000년이 다가오면,<br />        인류는 두 번째 탄생을 겪게되리라. <font color="#66CCCC">(입문 = 다시 태어남)</font><br />                성령이 무수한 이들을 지배하여,<br />        그들을 한 형제로 통합시키리라.<br />        그때 야만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리. </p>      <p>새 시대는 믿음이 굳건해지는 시기가 되리라.<br />        암흑기가 지나고 천년 후에 오는 새 천년이 시작될 때,<br />        행복의 날이 열리리라.<br />        인류는 다시금 참된 신사도를 발견하고, <br />        지구는 다시금 질서를 회복하리라.<br /></p>      <p>2000년이 다가오면,<br />        인류는 모든 존재가 빛을 지니고 있고,<br />        모든 존재가 존중되어야 할 창조물임을 알게 되리라.<br />        그리고 인류는 새 도시를 발견하리라,<br />        천국과 지상과 대양의 표면 위에서.<br /><br />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기억하고, <br />        미래를 이해하리라.<br />        그리고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으리, <br />        한 생에 여러 삶을 살것이고, 빛은 결코 소멸되지 않음을 알 것이기에. <font color="#66CCCC">(살아 있는 동안         죽음을 경험하고 빛을 보는 것에 대한 스승님의 가르침과 일치함)</font></p>      <p><font color="#FF9900">(이 예언은 중세 프랑스어로 쓰여졌다. Jean-Claude Lates가 1994년에         출간한 'Le Livre des Prophetes'에서 발췌함.) </font></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8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2:47:1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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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12</link>
<description><![CDATA[<br /><p class="topic" align="center">귀중한 참고 자료 -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p>   <br /><br /><p class="topic" align="center">노스트라다무스 - 위대한 예언</p>    
 <p>지난 여름,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 있는 한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그곳에서 세계출판사가 발행한 "노스트라다무스와 20세기 후반에       관한 그의 예언(Nostradamus and Predictions for the Latter Half of the 20th Century)"이라는       어울락판 책을 발견했다. 원래 영적인 문제에 호기심이 많던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 책을 읽고 책의 문구들을 숙고하였다. 450년       전에 쓰여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들이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나는 책에 푹 빠져 버렸다. 모든 문구가 다른 예언가에 의해 아직       설명되지 않은 많은 경이와 신비들을 풀어주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다음 문장에서 노스트라다무스는 진정한 스승이 아시아에서 나올 것이라고       알려준다.</p><blockquote>                 <p><font color="#FF9900">오랫동안 기다렸던 그는 유럽으로 돌아오지 않고 <br />          아시아에서 나타나리라<br />          .French: Tant attendu ne reviendra jamais, <br />          Dedans l′Europe, en Asie apparaItra, (C10Q75)</font></p>      </blockquote>      <p>예언가들의 예언은 신비스럽고 불명확한 것이 특징이다. 우리가 얼마나 명석하든 그것을 우리의 생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고, 토론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단체명상을 하는 중에 난 문득 동양철학과 종교, 달의 아름다움, 명상의 은총, 동서양         비전(秘傳)의 상징들, 그리고 깨달은 존재의 영광에 대한 노스트라다무스의 언급을 직관적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빛으로 충만한         놀라운 세계로 들어가고 있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가운데 한 구절이 아주 분명하고 생생하게 내 귓가에 울렸다. </p>      <blockquote>                 <p><font color="#FF9900">예언자 성씨(姓氏)의 후반부<br />          French: Le Penultiesme du surnom du Prophete, (C2Q28)</font></p>      </blockquote>      <p>갑자기 "수마(SUMA)"라는 이름이 밝은 빛을 내며 계속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보이지 않는 부드러운 힘에         이끌려 서둘러 명상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 노스트라다무스의 책을 뒤적였다. <br />        기적과도 같이, 내면의 빛이 내 마음을 밝히자 예언가 이름의 마지막 네 글자가 즉시 내 눈에 들어왔다.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         오, 하느님, 그건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우리의 자비로운 스승님, 칭하이 무상사(수프림 마스터, SUpreme MAster)의         이니셜인 수마(SUMA)였군요! 나는 기쁨에 겨워 눈물이 났다. 가슴을 가득 채운 그 환희는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 스승님,         제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방법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황홀감에 빠져 나는 전에는 결코 느껴보지 못했던 큰 행복을         맛봤다! 게다가 노스트라다무스의 또 다른 4행 시는 이렇게 말한다.</p>      <blockquote>                <p><font color="#FF9900">바다라고 명명(命名)된 종교가 승리하리라.<br />          French: Religion du nom de mers vaincra (C10Q96)</font></p>      </blockquote>      <p>"칭하이(청해, 淸海)"라는 이름의 의미가 바로 "순수한 대양"이다. 또 이 책의 다른 부분에서 저자는 석가모니         부처의 말씀에 관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소개하였다. "친구라는 뜻을 가진 '미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울 다음 번         위대한 세계적 지도자가 서기 2000년경에 나타나서 모든 구도자들에게 힘을 채워주리라."<br /></p>      <p>1999년 10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센터에서 할로윈 축제가 열렸을 때, 나는 운 좋게 스승님 옆에 서게 되었다. 그때         스승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스승님, 노스트라다무스의 책을 수 차례 읽고 여러 차례 명상을 한 끝에 스승님이 미륵불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인자한 어머니가 순진한 어린아이를 바라보듯 그렇게 나를 보시며 스승님이 농담조로 말씀하셨다.         "나를 10년 동안이나 봐왔는데, 이제서야 그걸 알았나요?" 그리고는 사랑스럽게 웃으셨다. 나는 구름 위에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br /></p>      <p>스승님, 당신 내면에 계신 신께 인사드립니다. 저와 제 가족이 스승님의 가없는 사랑과 영원한 축복 속에서 살게 하심을 영원토록         감사드립니다. <br /></p>   
    <p align="center"> </p>      <p align="center"><font color="#FF9900">열 한 번도 넘게 달이 해를 원치 않아,<br />        둘 다 정도에 따라 차고 줄고,<br />        매우 낮추어 아주 적은 금(金)밖에 봉할 수 없나니,<br />        기근과 역병 후에 비밀은 벗겨지리라. </font> </p>        <p>* 동양(달)과 서양(해)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로 남았다…… 그러나 세상에 많은 재난들이 발생한 후에 비밀(진리)이 드러날         것이다.</p>      <p> </p>      <p align="center"><font color="#336633"><b><font size="3">스승님의 이름을 예언하는         중요한 증표들</font></b></font></p>              <p align="center"><font color="#FF9900">예언자 성씨(姓氏)의 후반부, <br />          그는 다이아나의 날을 안식일로 정하리라.<br />          또 멀리 사방으로 분주하게 유랑하리니,<br />          이는 위대한 민족을 종속에서 해방시키기 위함이라.</font></p>            <p>* 다이아나=달: 수마(SUMA) 칭하이는 매년 한가위 명절에 선(안식일)을 연다.<br />        * 스승님은 세계 지도자들, 관련 주요인사들을 만나 어울락 난민문제, 즉 그들의 생활환경과 정착, 그 외의 주요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러 나라를 다니셨다<font size="2" color="#3366FF">.</font></p>      <p> </p>      <p align="left"> </p>      <p align="center"><font color="#336633"><b><font size="3">스승의 탄생과 깨달음을 예언하는         중요한 증표들</font></b></font></p>      <p align="center"> <font color="#FF9900">……황폐한 전야, 타락한 교회가 가장 높고 숭고한 권위를         차지할 때…… <br />        한 선지자가 오랫동안 열매를 맺지 못하던 가지에서 태어나 전 세계 사람들을 굴종과 노예의 상태에서 구원하여 화성의 보호아래 놓을         것입니다……<br />        그 종파의 불길이 전 세계로 퍼질 것입니다……<font color="#00CCCC"></font></font><font size="2" color="#00CCCC"><br />        :::(헨리 2세에게 보내는 서한 중에서:::</font><font color="#00CCCC">)</font></p>      <p></p>      <p>* 깨달은 참스승이 오랫동안 부재했던 엄청난 종교적 혼란기에 `이념`으로부터 한 스승이 태어난다. (또한 스승님의 어머니는         12년만에 스승님을 임신하였다.)<br />        * 화성: 불(내면의 천국의 빛)─이 불길이 이미 전 세계로 번져나가고 있다!</p>              <p> </p>           <p align="center"><font color="#FF9900">한 밤중 높은 산에 걸린 달을<br />        젊은 현자가 홀로 마음으로 보네.<br />        제자들이 그를 영생하도록 청하나니,<br />        그의 눈이 중앙에, 그의 손이 가슴에, <br />        그의 몸이 불길 속에 있네.</font></p>      <p> * 스승님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깨달았다. 스승님은 내면의 눈으로 내면의 달을 보았다. 게다가 언젠가 거주제자들이 스승님과         함께 있을 때 산꼭대기에 달이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 것을 보기도 했다.<br />        * 우리 동수들은 언제나 스승님을 `만수무강기원`의 노래로 맞이한다.─스승님의 필명 가운데 하나도 `절대 죽지 않는다`는 의미의         `무자(無子)`이다.<br />        * 마지막 문장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관광(觀光) 및 관음(觀音) 명상 자세에 관한 설명.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스승님의 몸이 천국의 빛(불)을 발하는 것을 봐왔다.</p>      <p align="center"> </p>      <p align="center"><font color="#FF9900">수도원 앞에서 발견된 쌍둥이 아이는<br />        승려의 오랜 혈통을 전승하였네.<br />        그의 명성이 언어와 강력한 소리의 방식을 통해 퍼지니,<br />        사람들은 조산한 쌍둥이가 건강한 구원자로 선택되었다고 말하리라.</font></p>      <p> * 스승님은 출가를 하셨고, 처음에는 불교승복을 입으셨다. (쌍둥이: 스승님은 중국 사원과 티베트 사원에서 한 때를 보내셨다.)<br />        * 쌍둥이─스승님과 스승님의 `쌍둥이 형제`─스승님의 화신<br />        * 스승님은 현대적 장비와 강력한 확성기를 사용하여 내면의 소리에 대해 설교하신다.<br />        * 조산한 쌍둥이: 사람들은 스승님을 보고 `그토록 큰 깨달음을 얻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말을 종종 했다. 그렇지만 스승님의         힘있는 말씀을 듣고 나면 모두들 그분이 지고의 스승임을 알아보았다. (쌍둥이를 선택하다.)</p>      <p> </p>      <p align="center"> </p>      <p align="center"><font color="#FF9900">오랫동안 고대하던 이는 결코 돌아오지 않으리.<br />        아시아에서 나타나 유럽에 머무르리.<br />        그는 위대한 헤르메스의 일원으로,<br />        동방의 모든 왕권 위에 서리라.</font></p>      <p>* 스승님은 사람들이 기대하던 곳으로 환생하지 않으셨다.<br />        * 스승님은 어울락(아시아)에서 태어나셨지만 유럽에서 자유롭게 머무셨다. (유럽 시민권을 획득하심.)<br />        * 헤르메스: 스승님의 가르침은 깨달음에 관한 유일 법문으로 헤르메스(고대 그리스의 신(神)으로 신들의 사자(使者)임. 고대         로마의 머큐리 신에 해당)의 가르침과 동일한 것이다.<br />        * 스승님의 가르침은 세속의 권력을 넘어 동양 전역으로 퍼질 것이다. 스승님은 포모사(대만),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홍콩,         태국, 한국, 일본 등지를 여행하시며 대중강연을 여셨다. (왕권이 있는 동양 국가들 전역에서 스승님의 가르침이 먼저 싹트고 굳건히         성장했다!)</p>      <p> </p>      <p> </p>      <p align="center"><font color="#FF9900">천칭좌가 하늘과 땅을 주관하며,<br />        서방을 통치하리라.<br />        일곱(7)이 연이어 권력을 승계할 때에 <br />        비로소 동방의 힘이 무너지는 것을 보리라.</font></p>      <p align="center"><font color="#FF9900">C10Q74<br />        위대한 일곱 번째 숫자가 성취되는 해에<br />        도살자의 유희가 시작되고<br />        위대한 새 천년(2000)이 멀지 않으니<br />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나오리라. </font></p>      <p align="center"><font color="#FF9900">C1Q56<br />        곧 보리라,<br />        극도의 공포와 복수가 불러온 거대한 변화를.<br />        달의 천사가 달을 이끄니, <br />        천상의 나라들이 천칭좌에 도달하리.</font></p>      <p>* 천칭좌: 균형과 조화를 의미: 대략 1972년도에서 1984년도 사이에 명왕성이 천칭좌를 지남.<br />        * 스승님은 1972년에 서양으로 가셨고, 1983년에 인도, 포모사(대만), 독일에서, 그리고 1984년에 미국에서 사람들을         입문시키기 시작하셨다. 그로 인해 많은 영혼들이 구제되었고 지상의 무덤(몸)에서 해방되었다.<br />        * 동양 스승의 힘은 악을 없애고 전쟁의 경로를 바꾸어 더 나은 미래를 열 것이다.<br />        * 달(동양)은 자비로운 달의 여신인 스승님의 인도로 이 지상에 균형을 되찾아줄 것이다. (스승님이 '상아(달의 여신)' 역할을         하시던 걸 기억하는가?)</p>      <p><br /></p>      <p> </p>      <p align="center"><font color="#FF9900">신성한 벗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성스런 대지 아래서 들리고,<br />        인간의 불길이 신성한 목소리를 향해 빛을 비추리라.<br />        그로 인해 독신자 승단체계가 무너지고,<br />        불순한 자들의 거짓된 성전이 파괴되리라.</font></p>      <p> * 스승님은 미아오리 시후의 지하동굴에서 선을 열고 교리를 펴셨다. (또한 그곳에서 감미로운 목소리로 시를 낭송하셨다.)<br />        * 야외에서나 숲에서 선을 개최할 때 횃불과 전등이 스승님의 발걸음을 비추고, 스승님이 강연을 하거나 동수들의 질문에 답하실         때 강렬한 조명이 스승님을 비췄다. 스승님이 노래 하시던 음악당의 단상도 조명이 화려했다.<br />        * 제약적이고 빈약한 신념체계들이 파괴될 것이다.<br />        * 스승님은 우리가 자유롭게 되기 위해, 혹은 깨닫기 위해 집을 떠나거나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억누를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신다.         우리의 몸이 진정한 사원이다. 진정한 금욕은 우리가 자신의 운명(업)에<br />      따라 '주고받는' 의무를 다하는 동안, 그에 따른 모든         세속적인 득실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p>      <p> </p>      <p> </p>      <p align="center"><font color="#336633"><b><font size="3">스승님의 자비를 예언하는         중요한 증표들</font></b></font></p>      <p align="center"> <font color="#FF9900">세상의 중심에 있는 한 떨기 장미,<br />        새 행위로 민중은 피를 흘리고,<br />        진실을 말하기 위해 자신들의 입을 다무네.<br />        그 위기의 순간에 기다리던 이가 오리라.</font></p>      <p>* 장미: 여성, 여교사<br />        * 그 '장미'는 세계 곳곳의 난민수용소에 고립되어 있는(입을 다문) 난민들의 안녕을 위해 그들을 대변하려 할 때 강력한 세상과         직면하게 된다. (일부의 난민들이 자신들의 억압되고 고통스런 상황을 알리려고 피를 흘렸다.)<br />        * 스승님은 그들의 슬픔을 아시고 난민수용소에 있는 동포들을 <br />        대표해 중재에 나서셨다.</p>      <p> </p>      <p class="Question_b"> </p>      <p align="center"><font color="#FF9900">C8Q4<br />        대중들이 전쟁을 일으킨 자들과 화해하려 하나,<br />        정치 지도자들은 그들의 호소(메시지)를 들으려 하지 않나니,<br />        아, 슬프다! 신이 지구에 평화를 가져다 주지 않으신다면.</font></p>      <p>* 수천의 사람들이 난민문제의 해결을 위한 기도회에 모였다. 수만의 사람들이 세계 지도자들에게 보낼 탄원서에 사인을 했다.         그러나 그것에 귀기울이는 이는 거의 없었다. 만약 신이 이 세상을 축복해 주시지 않으셨다면, 많은 이들의 이런 고통스런 몸부림이         커다란 재앙을 가져왔을지도 모를 일이다.</p>      <p> </p>      <p class="Question_b" align="center"> </p>      <p align="center"><font color="#FF9900">한 정의로운 이가 억울하게 죽으리.<br />        광장의 민중 앞에서 자결을 하리.<br />        이 때문에 이곳에 전염병이 돌아,<br />        재판관들이 흩어져 도망가야 하리.</font></p>      <p><br />        * 실제로 절망에 빠진 어울락 난민들이 전 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죽어갔다. <br />        * 이어서 홍콩에 전염병이 돌았다.<br />        * 전염병으로 홍콩의 지배 세력들이 홍콩에서 도피해야만 했다. (집권당 교체)</p>      <p> </p>      <p class="Question_b"> </p>      <p align="center"><font color="#FF9900">곧 반대세력이 통치권을 차지하고,<br />        역사적 사건들은 뇌리에서 사라지리라.<br />        붉은 옷을 입은 창백한 사람, 과도기의 정부 관료들,<br />        근심하는 젊은이와 잔인했던 공포 사건.</font></p>      <p>* 곧바로 새 관료들이 이곳(홍콩)을 다스리고, 과거의 사건들과 사람들은 잊혀진다. 고뇌하는 이(스승님), 붉은 옷(불교 법복)을         입은 이, 교체되는 지도자들, 눈물이 나도록 처절하고 강압적인 장면 (탈출한 나라로 되돌려지는 사람들).</p>      <p class="topic"> </p>      <p class="topic" align="center"><font color="#336633"><b><font size="3">스승님의         천상의 디자인을 예언하는 중요한 증표들</font></b></font></p>      <p align="center"><font color="#FF9900">다이아나(달)와 머큐리(헤르메스)의 수많은 은과 수은,<br />        영상들이 호수에 비치리.<br />        조각가는 새 점토를 구하고,<br />        그와 그의 추종자들이 황금빛에 잠기리.</font></p>      <p>* 스승님은 자선을 위해 깨달음의 상징들로 보석을 디자인하신다. 즉, 은이나 백금을 사용해 달, 별, 해, 연꽃, 신의 자녀들,         극락의 새 등을 디자인하신다.<br />        * 스승님이 시후(西湖)센터에 머무신 이래로 많은 관음 수행자들의 행복한 모습이 호수(시후센터를 의미)에 비친다. <br />        * 버섯과 거북이, 도자기 등 찰흙을 재료로 스승님이 새 작품들을 만드셨다. <br />        * 스승님 자신과 모든 제자들이 스승님이 디자인한 장신구와 보석으로 치장하다!</p>      <p><br /></p>      <p> </p>      <p align="center"><font color="#FF9900">종파들이 연합해 붉은 종파에 대항하리.<br />        불, 물, 철이 평화 가운데 약해지리.<br />        죽음에 임박해 음모를 꾸민 자들은<br />        세속을 전부 초월한 이들을 제외하고 파멸되리. </font></p>      <p> * 위의 내용은 스승님과 제자들이 세계 각지에서 장애를 만날 것이고, 평화롭지 못한 시기에 우리의 영적인 능력을 발휘할 것임을         말해준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살기 위해 이 세상을 초월해야 한다는 것을 웅변한다. 과거의 일들을 상기해 보면 진정 알 수 있다.         세속적인 부와 명예, 비방 등에서 자유로울 때 진실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br />        불 : 지난날 종교적 오해로 우리의 문헌과 유산을 소각했던 걸 의미함.<br />        물(잉크) : 지난날 종교적 오해로 우리의 교리를 비방했던 걸 의미함.<br />        철(크레인) : 지난날 기계와 기중기로 우리의 거처를 파괴했던 걸 의미함.</p>      <p></p>      <p></p>      <p></p>      <p></p>      <p></p>      <p></p>      <p></p>      <p> </p>      
      <p align="center"><font color="#336633"><b><font size="3">스승님의 고귀한 가르침과 
        세계강연을 예언하는 중요한 증표들</font></b></font></p>
      <p align="center"> <font color="#FF6600"><font color="#FF9900">환상으로 왜곡된         종파와 사원들을 파괴하는 임무를 가진 그는<br />        중생 자체를 멸하지는 않고 다만 중생들의 잘못된 의지처를 멸하리니,<br />        중생의 귀는 아름답고 화려한 울림(소리)으로 가득하리라.</font></font></p>      <p> * 그간의 간접 경험을 통해 아는 바와 같이, 깨달은 이의 진리의 가르침이 기존의 체계와 믿음의 공허함을 드러냄으로써 중생들을         진리의 길로 이끈다. 지구상의 모든 중생이 자신의 위대한 불성을 이해하고 살아 있는 동안 신을 만나기 전까지는 진리의 가르침에         대한 비방은 끊이지 않을 것이니 우리는 인내해야만 한다.<br />        * 스승님은 우리에게 채식주의, 비폭력, 정직, 고귀한 이상 등 평화의 길을 가르치신다.<br />        * 스승님의 가르침과 내면의 소리가 우리의 귀를 아름다운 멜로디로 채울 것이다.</p>      <p><br /></p>      <p> </p>      <p align="center"><font color="#FF9900">……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적이 출현하여…… 모든 기독교 국가와         이교도 국가들이 25년의 기간동안 두려움에 떨 것이며…… 전쟁과 전투는 이전 어느 때 보다 가혹할 것이고, 마을과 도시와 모든         건물들이 파괴될 것입니다…… 사탄의 왕자가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전 세계가 파괴되고 황폐화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수없이 많은 이상한 새들이 공중에서 울 것입니다. `바로 지금!` `바로 지금!`이라 외치며. 그리고 얼마 후 그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br /><font color="#00CCFF">(:::헨리 2세에게 보내는 서한 중에서)</font></font></p>      <p> * 전쟁에 의해 폐허가 된 지역의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비로운 성인의 마음을 울렸다. 그리하여 스승님은 또 다시 전         세계를 돌며 인류의 의식을 고양시키셨고, 사람들에게서 슬픔과 두려움을 거두어 가고 대신에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 주셨다. 스승님의         제자들 또한 인류에 봉사하는 것을 최상의 영광과 행복으로 여긴다.<br />        * `이상한 새들`은 세계 각지에서 스승님(구세주)이 오셨음을 알리기 위해 우리가 배포하는 전단을 의미한다. 살아 있는 동안(바로         지금) 신을 만나라. 즉각적인 깨달음(바로 지금). 천국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일세해탈(바로 지금).<br />        * `이상한 새들`은 실제 새들이 아니라 뿌려지는 전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스승님의 강연이 끝난 후엔 없어진다.</p>      <p> </p>      <p class="Question_b" align="center"> </p>      <p align="center"><font color="#FF9900">동방의 그 남자는 자리에서 물러나<br />        아페니노(이탈리아) 산맥을 넘어 프랑스(유럽)로 오리라.<br />        그는 눈비를 헤치며 하늘을 날아와서<br />        마법의 지팡이로 모든 이를 치리라.</font></p>      <p>* 동수들은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스승님을`사부(師父)`라 부르는데, 중국어나 어울락어로 `사부`라는 말은 남자교사(그,         그 남자)를 가르킨다. 스승님은 동양에 있는 본부(거처)를 떠나 세계 각지를 도셨고, 전 대륙이 재난으로 가득해서 사람들이 내,외면으로         평화를 간절히 바라는 곳, 유럽에까지 가셨다. 비바람 눈보라를 헤치고 산 넘고 바다 건너 유럽으로 가신 스승님은 지고의 존재에게서         나오는 위대한 사랑과 축복을 신의 자녀들에게 전하셨다. 마음이 순수한 자들에게 복이 있도다!<br />        * 여기서 우리는 스승님이 왜 지팡이나 우산을 지니고 다니시는 지 알게 된다. 스승님의 지팡이에 달려 있는 조롱박에는 스승님이         만나시는 모든 이들(대부분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실 약이 들어있다. 이는 신들의 사자(헤르메스)의 지팡이와 약이 의미하는 바와         일치한다. 정말 놀라운 우연의 일치가 아닐 수 없다!</p>      <p><br /></p>      <p align="center"><br /><span class="Question_b"><font color="#FF9900">강력한 왕이 스페인에 오리라,<br />        바다와 육지를 거처 황금빛 남방을 정복하면서.<br />        이로써 초생달이 겸허해지고,<br />        금요일의 날개가 접혀지리라.</font></span></p>      <p>* 스승님과 제자들은 스페인어 지역, 기독교 국가, 회교 국가에도 신의 메시지를 전한다.<br />        * 내륙 도시와 해변 지역으로 구성된 황금빛(해가 내리쬐는) 남아프리카로 간다. <br />        * 스승님은 카톨릭, 이슬람 등 모든 종교의 신도들로부터 환영받고 사랑받는다.<br />        * 초승달(타종교 상징)<br />        * 금요일(타종교 상징)</p>      <p><br /></p>      <p> </p>      <p align="center"><font color="#FF9900">바다로 명명(命名)된 종교가 승리를 거두리,<br />        아달룬카티프 종파에 맞서,<br />        완고하고 비탄에 잠긴 종파는 두려워하리라,<br />        알레프와 알레프에 의해 상처입은 그 둘을! </font></p>      <p>*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존재하지만 바다(칭하이, 淸海)의 이름을 가진 종교가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임을 예언하다.<br />        * 아달룬카티프(Adaluncatif)는 고대언어처럼 들리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아부바 불라불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예언자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무의미하고 낡은 도그마를 상징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했다.<br />        * 절망에 빠진 종파들은 천상의 권세를 쥔 종파를 두려워 할 것이다.<br />        * `바다 종파`를 해치려 한다면 그들 자신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모든 존재는 하나이므로 누군가를 해치려 하는 건         곧 자기 자신을 해치려는 것이다. (알레프와 알레프(Alef, Alef)는 자신과 타인을 대표한다. 양자가 모두 같은 본질,         같은 이름에서 나왔다.)<br /></p>      <p></p>      <p></p>      <p>고금의 많은 예언가들이 동방에서 여자 스승이 나온다고 말했으며, 일부는 스승님의 거처를 `미아오리 시후`라고까지 언급했다.</p>      <p> </p>      <p align="center"><font color="#336633"><b><font size="3">다른 현자들 역시 스승님의         탄생을 예고하다</font></b></font></p>      <p> 모두 알고 있겠지만, 놀랍게도 다른 여러 예언가들도 같은 예언을 했다. 예를 들면 마담 블라바츠키의 예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p>      <p align="left"><font color="#FF9900">19세기에 유명했던 예언가이자 점술사인 마담 블라바츠키는 1950년경에         아시아에서 깨달은 성인이 출현할 것임을 예언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는 지금 5000년간의 기나긴 암흑기의 종지부에 와 있다.         곧 새로운 빛의 세계가 올 것이다. 성령의 사자가 서방으로 보내질 것이다. 그는 1975년에 출현할 것이다`라 하였다. (Madame         Blavatsky 1831-1891)</font> </p>      <p>* 실제로 스승님은 1950년 5월 12일에 어울락에서 태어나셨고, 1975년 유럽으로 건너가 유럽 시민권을 획득하셨다.</p>      <p class="caption"> </p>      <p class="caption"> </p>      <p class="caption"><span class="caption_2"><font color="#996600">주: 정치적이고         종교적으로 민감한 문제들을 피하기 위해 간략히 해설하였습니다. 노스트라다무스도 똑같은 이유로 이름이나 종교, 사건 등을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상세한 정보를 원하시는 분은 무선통신 999-10000-1로 연락하길 바랍니다. </font></span></p>      <p></p>      <br /><p></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108호에서-</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2:45:13 +0900</dc:date>
</item>


<item>
<title>계란에 발암성 물질이 있으니 먹지마세요!</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11</link>
<description><![CDATA[<br /><p>스승님은 우리에게 계란을 먹지 말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계란 속에는 음(부정적인) 기운이 들어 있어서 부정적인 힘을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계란 속에는 생명력이 반쯤은 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br /><br />
        하루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발견 채널’에서 과학자들이 계란에 대해서 실험하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보통 슈퍼마켓이 
        계란을 한번 들여올 때는 10개들이 수천 판을 들여오게 마련이다. 우리는 계란이 신선한지 상했는지 모르며 다른 사람에게 들은 
        대로 그냥 냉장고에 넣어둘 뿐이다.<br /><br />
        과학자들은 한 슈퍼마켓을 골라 실험을 했다. 계란을 다 파는 데 5일이 걸렸다. 5일 동안 매일 슈퍼마켓에 가서 계란을 사서 
        계란마다 세균 한 마리를 집어넣고, 같은 시간, 같은 온도에서 세균 수가 어떻게 증가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나중에 조사해 보니 
        첫날에 산 계란에는 세균이 1,000마리가 있었고, 두번째 산 계란에는 10,000마리가 있었다. 그리고 5일이 지난 계란에는 
        1억 개의 세균이 살고 있었다.<br /><br />
        실험이 끝난 후에 과학자들은 기자에게 말했다. “계란은 암을 일으키기 때문에 먹으면 안 됩니다. 더구나 몸에도 좋지 않아요.” 
        그러자 기자들이 말했다. “익혀서 먹는데 뭐가 문제입니까?”<br />
        과학자들이 대답했다. “그러면 수백만 개의 세균 시체를 먹을 텐데 무슨 영양가가 있겠어요?”<br /><br />
        나도 계란이 부정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입문하기 전이었다. 나는 그때 스승님의 가르침을 신실하게 따르며 
        채식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임신 중이었는데 의사는 내가 영양실조에 걸렸다고 진단했다. 주기적인 검사를 해도 배가 잘 불러 오지 
        않자 의사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남편은 영양 보충하라고 계란을 사왔다. 나는 바보같이 계란을 한 입 베어먹고 말았다. 
        하지만 계란을 먹은 다음 기분이 아주 이상했다. 그리고 토하고 싶었지만 토할 수 없었다.<br /><br />
        그날 밤 나는 아주 끔찍한 악몽을 꾸었다. 마치 지옥에 갔다 온 것 같았다. 거기에는 길 양쪽으로 집들이 있었고 집집마다 장례식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슬프게 울고 있었다. 집들은 모두 하얀 색이었다. 사람들도 모두 흰 옷을 입었고, 얼굴도 
        하얀 색이었다. 너무 침울한 분위기여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식은땀을 
        흘리면서 벌떡 일어났다.<br /><br />
        일주일 내내 이러한 악몽들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여동생(여동생도 입문했다) 집에 가서 스승님의 축복과자를 먹었더니 괜찮아졌다. 
        그리고 이전처럼 잠도 잘 수 있게 되었다. 여러분은 나의 끔찍했던 체험을 통해서 계란에 얼마나 강한 부정적인 기운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84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2:38:16 +0900</dc:date>
</item>


<item>
<title>또다른 종류의 축복</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10</link>
<description><![CDATA[<br /><p>몇 년 전 내가 포모사에서 지낼 때의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점심식사 후에 한 호법이 스승님의 강연이 있으므로 모두 뒤편 언덕으로 
        모이라는 전갈을 보내왔다.<br /><br />
        미리 얘기하지만, 나는 스승님의 강연이 있을 때 한번도 앞자리에 앉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그날은 동수들이 
        '너무도 친절하게' 우리를 맨 앞자리에 앉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스승님이 오늘 강연에서 붓다가 그랬듯이 '포효하는 
        사자'처럼 강연하시는 것을 보고 말문이 막혀 버렸다. 따라서 동수들이 너무도 '겸손하게' 우리가 앞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뒷자리로 
        간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나는 스승님 바로 앞에 앉았다. <br /><br />
        그때까지 비록 나는 스승님과 함께 지내 왔지만, 나의 두뇌는 여전히 아주 완고했다. 나의 습관은 여러 생에 걸쳐 누적되어 내 
        일과 생활이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쳐 있을 때 나는 스승님을 종종 귀찮게 하였고 기도하는 
        대신 습관적으로 스승님께 불평만 했다.<br /><br />
        그날 뒤편 언덕에서 다정한 대화를 하고 나서 스승님은 문수사리보살의 지혜의 칼을 이용하여 우리의 에고를 자르셨다. 스승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 내면의 중심부를 잡아 흔드는 천둥 번개와 같이 느껴졌다. <br /><br />
        우리가 머리를 숙여 깊이 참회하는 동안, 아무리 에고가 완고한 사람도 스승님의 질책을 견딜 수는 없었다. 바로 그때 우리에게 
        각별한 은총이 내려진 것을 알고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다. 비처럼 흐르는 내 눈물은 내 안에 찌든 
        때를 말끔히 씻어 주었다. <br />
        그 이후로 나의 '불평하던' 습관도 가라앉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모든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주위의 모든 것을 소중하게 
        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적적으로 내 삶에 있어 어려웠던 시간을 극복할 수 있었다. 당연히 스승님에 대한 감사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또 한 가지 좋아진 점은 동수들에게 지극한 존경심을 느끼게 되었고, 동수들에 대한 
        고마움을 더욱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81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2:37:05 +0900</dc:date>
</item>


<item>
<title>잃어버린 성서</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9</link>
<description><![CDATA[<br /><p><font color="#0099FF">이 글은 제임스 비인이 최근 자신이 진행하는 ‘영적인 각성’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말한 내용이다. 이것은 동서양의 세계적 경전들과 성자들의 저서와 여러 신비주의자들의 저술을 강독하고 새롭게 조명한 것이다. </font></p>      <p><font color="#6666FF">최근에 칭하이 무상사는 성경에서 사라진 몇 부분에 대해 놀랍고도 직관적인 언급을 했습니다.         칭하이 무상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font color="#0099FF">“Reincarnation(윤회)에 해당하는 또다른         말은 Transmigration(윤회)이다. 이 단어는 매우 동양적인 용어이다. 여러분 모두가 알고 있듯이, 성경이 항상 완벽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은 성경에서 윤회라는 단어를 보지 못한다. 성경은 이천 년 이상이나 ‘전해져(윤회해)’왔다. 그래서         그 중 일부는 분실되었을 수도 있다. 진짜 성경은 어딘가에 감춰져 있어서 우리가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발굴한 고대         유적지에서 몇 가지-성경의 일부분-가 나왔으며 여기에 윤회에 대한 언급이 있다.” </font>(칭하이 무상사 뉴스잡지         60호)<br /><br />        잃어버린 성경에 대한 나의 탐구에 기초해서, 나는 칭하이 무상사의 언급이 매우 정확하다는 것을 압니다. 지난 이 백년 동안에         유대교 및 기독교와 관련된 많은 고대 기록물들이 중동에서 재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일부 기독교인들이 성경 밖의 성경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채 이천 년 동안 이러한 ‘또다른 성경’의 일부를 보존해 왔다는 사실을 언급해야겠습니다. 개방적인 구도자들         중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이것들의 영적인 지혜를 중요시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그 밖의 많은 흥미로운 찬송가와 편지들과 복음서와         계시록이 수세기 동안 힘겹게 생존해 왔습니다.<br /><br />        나는 여러분과 함께 또다른 성경과의 만남을 나누고 싶습니다. 나는 불가사의한 시집과 깨달음을 얻는 데 대한 담론, 그리고 여러분의         구도의 길에 도움이 될만한 다른 놀라운 문서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길 원합니다. 지금이 바로 이런 지식이 널리 알려져서 모든 사람이         분실되었거나 숨겨졌던 성경의 일부분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때입니다. <br /><br />        오래 전에 내가 성경(고대 유대어로 된 성경들과 신약)공부를 집중적으로 할 때, 나는 카톨릭 성경에는 개신교 성경에 없는 몇         가지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부분들은 개신교 계통에서 ‘외전(外典)’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입니다. AD 1611년의         제임스왕 역서 원본에 이 부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성경 위원회는 대중이 이용할 수 있는 더 작고 값싼 성경을 만들기         위해 이 백년 전에 이 부분들을 성경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도들이 ‘카톨릭’이라고 의심하는 이런 부분들은         사실은 천 년 동안 ‘외전’으로서 그리스 정교회와 시리아교회와 러시아교회와 아르메니아교회와 이집트교회와 다른 모든 고대 교회의         오랜 된 성경에 전통적으로 포함되어져 왔습니다.<br /><br />        이 성서의 대부분의 번역 본이 또한 사해두루말이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BC 200년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쓰여진 구약의 그리스어         원전 역시 미국의 개신교 성경에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이런 다른 성경들을 포함했습니다!<br /><br />        나의 견지에서 볼 때, ‘외전’의 가장 흥미로운 두 가지는 솔로몬의 지혜와 시락(Sirach)의 지혜인데 이 두 가지는 노자가         쓴 도덕경에 비유될 만한 속담과 재담의 대형 모음집입니다.<br /><br />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성경이 기원 후 1세기 동안에 예수와 사도들에 의해 종합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이 존재한 시기 -몇 세기-보다 더 오랜 세월동안 초기 교회에는 영적인 주제에 관련하려 ‘최후의’라거나         ‘유일한’ 계시라고 보았던 성경집, 즉 비공개된 성서의 정전(正典)같은 개념이 없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창조적인 시기         동안에 기독교도들은 자신들이 영감을 받았다고 느끼는 새로운 경전과 찬송가와 송시와 격언들과 서한들과 영적인 성격을 지닌 다른         문서들을 자유롭게 지을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일들은 살아 있는 사도들과 성자들이 있었던 기독교 초기 동안에 있었고, 그         당시 기독교는 훨씬 더 초월적인 종교, 신의 왕국이나 영적인 영역을 체험하는데 굉장히 역점을 두었던 신비종교였습니다.</font></p>      <p class="topic">*** 교재의 정비***</p>      <p><font color="#6666FF">다른 종교들처럼 기독교도 ‘주류 형성(정착화와 고착화)’의 과정을 겪으며 표준화되고         조직화된 교리가 되었습니다. 그 주류 사상은 <font color="#00CCFF">“사도와 예언자의 시대는 가버렸다”</font>라는         것을 믿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승들과 성자들(신의 사제로 활동했던)을 더 이상 알지 못하게 되었고, 일부 사람들은         안내자로 과거의 스승들에게 기대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는 성경이 스승이 되고 구루가 되는 시대로 들어섰습니다.<br /><br />        콘스탄틴 황제의 국교회(國敎會)는 교리의 규칙으로 모든 시대에 통용될 고정된 성경 목록을 만들었으며, 성경으로 더 이상 간주되지         않고 유통에서 제거될 성경 목록도 만들었습니다. 이런 정형화와 검열의 과정은, 대부분 4세기에 일어났습니다. 이 시기에 대부분의         ‘또다른 성서’는 성경으로서의 지위를 잃었습니다. 단지 극소수의 성서만이 이 시기에 성경에 들어갔고, 애석하게도 많은 중요하고         신비로운 성서들이 제외되었습니다.</font></p>      <p class="topic">***삭제된 성경들의 예***</p>      <p><font color="#6666FF">여러 해 전에 나는 신약 유다편을 읽을 때 놀라운 인용구를 발견했는데, 그 구절은 나로         하여금 또다른 성서에 마음을 열게 했습니다. 유다는 신약 유다편 14장에서 에녹 1편 1장9절의 부분을 인용했습니다. 유다는         또한 열두 교주의 성경이라고 불리는 고대 히브리성서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또다른 성서의 일부도 인용했습니다. 나는 이러한 잃어버린         성서들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어 놀랐고, 1세기에 유다에게 그 성서들이 있었다면, 내 스스로 그것들을 알아보리라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 때 성경으로 간주되었던 외전의 문서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br /><br />        ‘외전’이라는 용어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정의가 있습니다. <font color="#00CCFF">1)신비주의적 본성에 대한         숨겨진 혹은 비밀 문서들. 2)교회에서 영감을 주는 것으로 간주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도록 권해지는 책들. 3)허구적인         문서나 환상적인 이야기들.</font> 이 세 가지 범주에 속하는 수백 가지 외전이 존재합니다. 나는 입수할 수 있는 모든 외전을         모으려고 애썼고, 모은 외전에서 절대적으로 핵심적인 영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는 많은 중요한 성서들을 찾았습니다. <br /><br />        에녹서는 몇몇 에티오피아 성경과 사해두루말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 성서들은 예언자 에녹이 체험했던 일곱 개의 천국을 통한 천상의         여행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와 인도출신인 중세의 위대한 신비주의자 까비르처럼, 유대인 예언자         에녹은 고등 세계의 광경을 묘사했습니다.</font></p>      <p class="topic"><font color="#6666FF">*** 솔로몬의 송가 - 신약 시편**</font></p>      <p><font color="#6666FF">내가 모은 외전 중에서 나는 솔로몬의 송가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신약         시편의 예비서였지요! 송가집은 초기 기독교의 것으로 최초의 찬송집으로 불리어 왔습니다. 송가에 대해 어떤 학자는 “여기에는 세상의         평화와 기쁨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노래들이 실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벤틀리 레이톤은 영지주의 경전에서 <font color="#00CCFF">“송가는         영감으로 쓰여진 성서이며 이천여 년 전에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살았던 기독교들에 의해 불려진 노래이다”</font>라고 말했습니다.<br /><br />        기독교 연합회의 한 추종자는 몇 년 전에 송가의 교정본을 발간했고 이 고대의 성서에 기초해서 일상의 진술을 만들었습니다. 이들         신비주의적 찬송은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 받는 사람’의 전통에 있는 수피의 연시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시편에         대한 명상수련을 택했고 더 깊은 헌신(bhakti 박티)의 수준으로 이끌렸으며 신과의 연애사건에 휩쓸렸고 사랑의 바다에 휩쓸렸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또한 내 체험이기도 합니다.</font><br /><font color="#006633"><br /><font color="#0099FF">“단순한 마음이 있는 곳에는 역경이 없고, <br />        선량한 생각은 고통을 모르고,<br />        깨달은 생각의 심해에는 어떤 폭풍우도 없다.</font></font></p>      <p><font color="#0099FF">열린 세계의 아름다움에 온몸이 휩싸여, <br />        사람은 의심에서 벗어나리니.</font></p>      <p><font color="#0099FF">아래는 <br />        위와 같네.</font><font color="#00FFCC">”</font><font color="#990066"><font color="#FF00FF">(송시34)</font></font></p>      <p> </p>            <p><font color="#0099FF">“너의 귀를 열어라, 그러면 내가 네게 말하리라.<br />        네자신을 바쳐라, 그러면 나 역시 너에게 나자신을 주겠노라.”</font><font color="#990066"> <font color="#FF00FF">(송시9)</font></font></p>      <p> </p>            <p><font color="#0099FF">“그 분은 내가 말해도 좋은<br />        진리의 말씀으로 나를 채웠네.</font></p>      <p><font color="#0099FF">물이 흐르듯 진리가 내 입에서 흐르고,<br />        내 입술은 진리를 얻었음을 누설하네.</font></p>      <p><font color="#0099FF">그리고 주님의 말씀은 <br />        참된 언약이요 신의 빛으로 이르는 문이니 <br />        나는 황금의 지식을 얻었네.</font></p>      <p><font color="#0099FF">지고의 존재가 그의 왕국들에게 이르시니,<br />        이들이 그 분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br />        그 분의 공적을 찬미하며,<br />        그 분의 생각을 고백하고,<br />        그 분의 마음의 전달자가 되고 <br />        그 분의 위업의 지시자가 되는구나.</font></p>      <p><font color="#0099FF">그 말씀의 신속함은 형용할 수 없으니<br />        그 분의 언약이 신속하고 정확함과 같아라.</font></p>      <p><font color="#0099FF">말씀의 과정은 끝을 알 수 없고,<br />        말씀은 결코 실패하지 않고, 지속되네.<br />        말씀의 계승과 경로는 이해할 길 없어라.</font></p>      <p><font color="#0099FF">말씀의 끝은 그 분의 역사인 것과 같이<br />        말씀은 빛이요 사고의 새벽이니,<br />        그것을 통해 왕국들은 변화하리.....</font></p>      <p><font color="#0099FF">지고의 존재의 입이 그의 왕국에 이르시니,<br />        그 분의 말씀으로 그 분이 분명해지누나.</font></p>      <p><font color="#0099FF">말씀은 사람에 거하고 <br />        그것의 실체는 사랑이라.”</font><font color="#990066"> <font color="#FF00FF">(송시12)</font><br /><br /><font color="#6666FF">송시에는 심지어 신의 여성적 측면을 묘사하는 구절도 몇 군데 있습니다!</font></font></p>            <p><font color="#0099FF">“나는 주님의 영에 기대어 쉬고 그녀는 나를 천국으로 들어올렸다.”</font></p>      <p class="topic">*** 막달라 마리아 복음서***</p>      <p><font color="#6666FF">마리아 복음은 1945년에 이집트의 낵 함마디 근처에서 발견된 고대성서집의 일부입니다.         이 복음서에서 보여지는 막달라 마리아의 걸출함은 초기 기독교에서 여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예입니다.<br /><br />        마리아는 예수 내부회의 일부로서 그리고 열두 제자와 모든 면에서 동등한 한 사람의 사도로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점보다도,         마리아는 다른 제자들의 영적 지도자로서 예수의 지위를 이어받은 그리스도의 영적 계승자였습니다. 모든 면에서, 이 복음서는 보다         월등한 영적 이해력을 바탕으로 다른 제자들을 이끈 마리아의 지도력을 분명하게 드러내 줍니다.<br /><br />        부활한 예수의 비밀스런 가르침을 받은 사람으로서 마리아는 그녀의 복음에서 다른 제자들에게 영적인 지식을 가르치고, 스승(부활한         예수)의 화신과 함께 올랐던, 높은 세계와 천국을 향한 여정 속에서 자신이 본 것을 세세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아마도         깊은 기도와 오랜 명상 과정에서 체험했을 이런 만남 속에서 자신이 들었던 그리스도의 말씀인 영적 지시들을 제자들에게 전하였던         것입니다.</font></p>      <p class="topic">* **바울과 데클라(THECLA) 전도서***</p>      <p><font color="#6666FF">초기 기독교의 여성 사도와 여성 성자들 이야기인 바울과 데클라의 전도서는 사도 성 바울의         추종자인 데클라의 시대와 삶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성서는 ‘하느님의 사도’로서 데클라를 묘사합니다. 데클라는 때때로 여행을         했고 보통은 동굴에서 은둔생활을 했습니다. 데클라는 또한 ‘신의 말씀’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영적 지도자이자 교사였습니다. 이         성서는 많은 사람들이 세속을 떠나 그녀와 함께 수도생활을 했다고 기록합니다. 데클라는 지극히 존경받았기 때문에 그녀를 위해 사원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font></p>      <p class="topic">* 피스티스 소피아 (신앙 - 지혜)서</p>            <p><font color="#6666FF">네 개의 신약 복음서를 연구한 후에 나는 매우 호기심을 느꼈으나 그 복음서들이 결말짓고         있는 방식에 대해 혼란을 느꼈습니다. 그 복음서들 각각은 부활한 예수의 가르침과 활동을 짧은 단락 한두 개 정도로 싣고 있었습니다.         논리적으로 말해서, 누군가가 죽은 후 다시 살아났고 이것을 아주 상세히 기록한 자들이 신들린 자들이 아니라면 이 사건은 즉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주된 관심사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부활한 예수의 말과 행동은 성경전체는 아닐지라도 많은 구절에서         언급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전히 신약은 간략히(그리고 은밀하게) <font color="#00CCFF">“예수가         했던 많은 다른 일들이 있었다.” </font>그리고 “예수는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나타나서 신의 왕국에 대해 가르쳤다”고만 말합니다.<br /><br />        예수의 부활 후의 가르침은 분명히 제자들에 의해 사적이거나 진보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고 더 깊은 명상과 영적 여행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 제자들에게만 의미있는 것이었습니다. 발견하기가 더 힘들어도, 부활 후의 가르침을 포함한 다른 문서들이 있습니다. 부활서,         마리아 복음서, 성 토마스 복음서, 구세주와의 대화, 제임스 복음서, 유(Jeu)서, 베드로가 필립에게 보내 서한과 피스티스         소피아(신앙-지혜)서 가 그것입니다.<br /><br />        여태까지 발견된 것 중에 가장 분량이 많은 피스티스 소피아서는 이집트에서 영국으로 건너간 후 1772년에 런던인 박사이자 오래된         수고(手稿) 수집자인 A. Askew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이 복음서는 출간되어 읽혀졌는데 유명한 독자 중 한 사 람은 위대한         신비주의 시인인 윌리암 브레이크였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습니다.<br /><br />        이 복음서는 일부 기독교도가 영혼의 윤회개념과 무소부재개념을 정말로 믿었던 때가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신약에 기록된 성 바울의         ‘다마스커스 길 체험’과 마찬가지로 예수는 믿을 수 없는 찬란한 빛과 광휘로 제자들의 내면에 나타났다고 말해집니다. 예수와 그의         입문 자들간의 많은 흥미로운 대화들이 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대략 11년간의 기록)<br /><br />        피스티스 소피아서는 또한 많은 아름다운 시와 기도를 담고 있습니다. 윤회가 비록 사실이라고 말해지더라도 가르침의 목적은 물질적인         구속과 윤회와 운명의 수레바퀴와 어둠의 장애로부터 영혼을 해탈시키는 것이었습니다. <br /><br />        영적인 세계에 대한 무지는 영적인 자유로 대체되었고 영혼은 성스러운 빛줄기에 실려 지상에서 천국으로 여행할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font color="#00CCFF">“너희들 모두는 빛을 찾으라, 그러면 너희 안에 있는 영혼의 힘이 살리라. 빛의 왕국의         신비를 찾을 때까지 밤낮으로 찾는 것을 중단하지 말라. 빛의 왕국은 너희를 정화시켜, 순수한 빛속으로 이끌고 빛의 왕국으로 인도할         것이다.”</font><br />        이러한 내면의 비전은 홀로 명상에 잠겨 있는 동안에 일어났습니다.</font></p>      <p class="topic">***이집트에서 발굴된 낵 함마디 서고***</p>      <p><font color="#6666FF">다수의 고대 신비주의 경전이 이집트 위쪽의 낵 함마디 도시 근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지금은 낵 함마디 서고로 알려진 거의 이천 년이 된 이 ‘타임 캡슐(콥트어로 쓰여진 양피지를 4세기에 수도승들이 커다란 저장         항아리에 넣고 밀봉함)’은 영적인 혁신 의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br /><br />        수백 년 동안이나 이집트 사막 밑에 매장된 채 삭제되고 잊혀졌던 초기 영지주의 기독교의 이 성서들은 한 때 서양에서 존재했던         여러 가지의 신비주의 전통에 관한 지식을 오늘날의 영적 탐구자들에게 알려 줍니다. 이 고대의 서고에는 기독교와 영지주의와 유대교와         피타고라스 학파와 헤르메틱과 그 밖의 영적 운동들의 수행 담론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탐구자들을 ‘빛의 왕국의 신비’속으로 입문시키고         내면의 다른 세계 속의 여행을 묘사하고 기록했던 영지주의와 다른 다양한 신비주의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되돌려졌습니다. 낵 함마디         서고의 책들 중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성서 가운데 하나는 깨달음을 얻는데 대한 예수의 영적인 말씀의 모음집인 토마스 복음서입니다.</font><br /><br /><span class="topic">*** 빛과 소리에 관한 예수의 말씀***</span><br /></p>            <p><font color="#6666FF">토마스 복음은 신의 왕국을 발견하는데 대한 예수의 격언과 비유를 모은 ‘이야기 복음’입니다.         이 지혜의 경전의 주제는 지고의 존재는 빛이고, 우리의 영혼은 빛으로 되어있으며, 살아 있는 빛을 묵상함으로써 우리는 천국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br /><br />        토마스 복음에서는 예수가 제자들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었다고 기록합니다. <font color="#00CCFF">“우리는 빛에서,         빛이 스스로 존재하던 곳에서 왔다 … 빛을 가진 사람 안에 빛이 있다. 그리고 그 빛은 온 세상을 비춘다. 만약 하나가 전체가         된다면 그 하나는 빛으로 가득찰 것이다. 내 입으로부터 들이마시려는 사람은 나처럼 될 것이다. 나 자신은 그 사람이 될 것이고,         숨겨진 것들이 그 사람에게 드러날 것이다.”</font><br /><br />        그리스도의 입으로부터 들이마신다는 이미지는 듣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이들을 더 높고도 감춰진 실재로 데려가는 신의 우주적인 목소리         혹은 말씀, 소리를 듣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인용글은 하퍼 콜린스가 간행한 마진 메이어의 토마스 복음서에서 인용한 것입니다.</font></p>      <p class="topic">*** 영지주의의 빛 신비주의, 옛날과 오늘날***</p>      <p><font color="#6666FF">영지주의 성자들의 중심적인 가르침들 가운데 하나는 내면의 빛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사실,         성스러운 빛을 보았다는 것은 보편적인 체험입니다. 모든 문화권의 사람들이 ‘내면의 빛’과 만났고 천국을 보았다고 기록해왔습니다.         많은 이들이 어둠 너머에서 오는 빛과 만난 것을 자신들의 비밀 경전에 풍부하게 묘사해왔습니다. 다양한 낵 함마디 성서들의 저자들을         포함해서 많은 성자들과 신비주의자들이 신이나 지고의 존재를 순수와 자비와 찬란한 빛의 신으로 묘사합니다. 그들은 또한 우리가         영혼(우리의 참된 영적 실체)으로서 ‘빛의 불꽃’이라고 즉, 우리는 실제로 ‘빛의 자녀들’이라고 믿습니다.<br /><br />        빛 신비주의(내면의 빛을 보는)의 체험은 묵상의 기도 즉, 명상 중에 일어납니다. <font color="#00CCFF">“영적         인식을 얻은 순수한 영혼들을 비추는 최초의 빛줄기들은 그들을 축복과 광명으로 가득 채울 뿐만 아니라 창조물의 내면의 본질을 묵상하는         것으로써 그들은 순수 이성의 천국으로 이끌 것이다.”</font> 이런 까닭으로 성 나이로스는 <font color="#0066CC">“지성의         올바른 상태는 순수 이성의 수준에 있는 것인데 이는 천국의 특성과 어느 정도 유사하며 기도 동안에 성스런 삼위일체의 빛으로 가득         찬다.”</font>라고 말합니다. (필로갈리아(The Philokalia) 4권, 그리스 성자들의 저술과 Faber와 Faber경전들)’</font></p>            <p><font color="#0099FF">“신은 빛이다, 그 안에 어둠은 없다.”<br />        그리고 <br />        “마음이 순수한 자들에게 축복이 있으리, 그들은 신을 볼 것이기에.”</font><font color="#990066"> <font color="#FF00FF">(신약)</font><br /><font color="#0099FF">“위대한 빛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font><font color="#FF00FF">(영어판         낵 함마디 성경, 하퍼 콜린스)</font></font></p>      <p><font color="#0099FF">“나는 모든 것 위에 있는 빛이다.”</font><font color="#990066">         <font color="#FF00FF">(토마스 복음서)</font><br /><br /><font color="#0099FF">“그때 우리는 여섯 번째 천국에 올랐다. 그리고 위를 올려다보고 여섯 번째 천국위로 내리         비추는 위대한 빛을 보았다.”</font> <font color="#FF00FF">(바울 계시록, 영어판 낵 함마디 성경)</font></font></p>      <p><font color="#6666FF">하퍼 콜린스가 발행한 신약, 사해두루말이는 이렇게 말합니다.<br /></font><font color="#0099FF"> </font></p>      <p><font color="#0099FF">“나의 빛이 그의 지식의 근원으로부터 나왔다. 나의 눈은 그의 경이를 응시하였다.”<br />        “너의 성령이 태양 같은 빛으로 너의 하인 마음의 어두운 곳을 비치리라.”<br />        “동방으로 더 멀리, 중세의 성자 까비르는 영혼의 빛은 태양 16개의 밝기와 같다”</font><br /><br /><font color="#6666FF">이라크의 Madaean교에는 종종 NDE(현대 사후의 진술)를 닮은 천국의 비전과 빛을         향한 기도와 아름다운 송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font color="#00CCFF">“그의 빛이 비추이고 그의 광명이 온 세상을         밝혀준다. 그 분 앞에 서 있는 성스러운 존재들은 그들의 빛속에서, 그리고 그들에게 거하는 위대한 빛 가운데서 빛난다.”</font><br /><br />        피스티스 소피아서는 E. J.브릴 문고에 의해 출판되었습니다. 에녹서와 솔로몬의 송가와 데클라서는 잃어버린 성서와 잊혀진 에덴서와         메리디안서, 펭귄문고에서 발견되며, 토마스서, 마리아서, 제임스서와 그 외의 다른 성경부분들은 폴브리지 출판사가 발행한 완전한         복음서(The Complete Gospels)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br /><br />        내가 강력히 추천하는 뛰어난 외전의 선집은 하퍼 콜린스가 발간한 ‘또 하나의 성경(The Other Bible)’입니다! 이밖에         훌륭한 책들로는 새예루살렘 성경(외전으로 엮음)과 더블데이(Doubleday)와 하퍼 콜린스에서 발행한 영어판 낵 함마디 서고입니다.         <br /><br />        여러분이 외전의 이러한 간단한 예에서 알 수 있듯이, 4세기에 성경에서 제외된 부분들은 개인의 영적인 체험과 명상을 장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초기의 영적인 전통은 서양에서는 결코 전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내 견해로는 그것이 이러한 또 다른         성경들이 제외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br /><br />        오래 전에, 위대한 신비주의 시인은 <font color="#00CCFF">“시간의 신(마야)이 성자들의 가르침 위에 장막을         쳐서 인간들에게서 그 가르침을 감춰버렸다.”</font>라고 했습니다.<br /></font></p>      <p> </p>      <p><font color="#000033">더 많은 정보를 원하고 ‘잃어버린 성경’들의 번역 목록을 무료로 받으시려면 아래로 연락주세요.         : James Bean PO BOX 7, New Port, Maine 04953-0007 USA</font></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81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2:36:07 +0900</dc:date>
</item>


<item>
<title>음악 요법</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8</link>
<description><![CDATA[<br /><p>‘음악 요법’은 생리학자나 심리학자들의 주요 연구 대상이 되어왔다. 근래에 그들은 음악이 신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통계수치와 
        자료를 발표했다. 이 말은 어떤 이가 음악을 들을 때 그 감각이 청각기관이나 청신경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다각적으로 감지된다는 
        것이다. 음악이 흐르는 곳에 있으면 ‘온몸’으로 음악을 듣고 반응을 하게 된다. 음악은 신경전달물질인 폴리페놀이 분비되고 전달되게 
        함으로써 몸 전체에 삼차원적인 영향력을 유발시킨다.<br /><br />
        일부의 과학자들은 물의 전도성을 이용해 청각을 잃은 사람들이 물 속에서 음악을 듣게 하기도 했다. 물론 그들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고 몸으로 듣는 것이다. 물 속에서 그들은 소리의 파장을 감지할 수 있는데 그 파장이 두뇌의 청신경을 자극해 음악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br /><br />
        그래서 우리는 음악의 힘과 치료적 효과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생리적 용어로 ‘음악’과 ‘소리’는 공히 대상에서 방출되는 
        강한 파장으로 정의되는데, 이 파장은 공기의 밀도를 변화시키고 각각 다른 음폭을 지닌 소리의 파동을 만들어 내면서 주위의 공기층으로 
        퍼져나가며 전달된다. 이 소리의 파동이 퍼져 고막에 도달하였을 때 청신경이 자극을 받아 음향효과를 갖게 된다.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우리는 소리가 파장의 한 형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빛과 소리는 사실상 동일체의 양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파장은 눈에서 
        빛으로 감지되며 귀에서 소리로 감지된다. 즉 소리는 들을 수 있는 빛이고 빛은 볼 수 있는 소리인 것이다. 무형의 빛과 유형의 
        물질과의 접점이 바로 소리이다. 소리는 무형과 유형 사이에서 전도자와 수정자로서의 역할을 하며 그 중간에 있는 것이다.<br /><br />
        음파는 소통의 길이며 다리이다. 육체적으로 지친 상태에서 집에 돌아왔을 때 가벼운 음악을 연주한다거나 방안에 음악이 울려 퍼지게 
        한다면 잠시 후에 우리는 훨씬 편안해진다. 이것은 신체와 영혼의 연결이 두절되어 있던 상태에서 음악의 파동이 수축된 에너지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교량적 역할을 함으로써 고단한 몸이 다시 활력을 되찾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이들이 하는 리본 
        놀이와 비슷하다. 리본 줄의 한쪽 끝을 잡고 위아래로 세게 흔들어 파동이 일어나게 하면 리본의 한쪽 끝에서 생성된 파동이 다른 
        쪽 끝으로 전달되면서 동일한 형태의 파동을 생성시킨다. <br /><br />
        1. ------, 정지된 리본<br />
        2. ⌒∼∼---, 한 끝에서 다른 끝으로 전달되는 에너지 <br />
        3. ∼∼∼∼∼, 양쪽 끝이 동일한 파장<br /><br />
        영국 캠브리지의 어린이 계발센터의 연구작업에 관한 교육용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 나는 다중 결함을 지닌 한 어린이를 돕는데 음악 
        요법이 어떻게 사용되어져 왔는가를 보았다. 그 소녀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고 감정적 결함 때문에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했다. 
        처음에 그 아이를 다룰 때 의사는 아이와 친해질 수 없었다. 낯선 환경과 사람들한테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아이는 계속 소리를 
        질러대고 울부짖었으며 공격적으로 되기까지 했다. <br /><br />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고 그 의사는 갑자기 피아노로 시끄럽고 거친 음악을 짤막하게 연주했다. 그 아이는 자기 울음소리보다 더 
        요란한 소리를 듣더니 놀랐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 이상한 소리가 어디서 나오는지 알아보려고 했다. 그리고는 조용해 졌다. <br /><br />
        의사는 피아노 건반을 거칠게 두드리던 손을 멈췄다. 그 대신에 그녀는 부드럽고 감미로운 가락을 연주했으며 이해력을 돕고 친근감을 
        갖게 하려고 동물의 소리와 유사한 소리를 흉내내기도 했다. 음악적 활동과 훈련, 게임을 통해 이 아이는 점차적으로 격정적이지 
        않게 되었으며 보다 안정적으로 되었다. 그리고 주위의 환경과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소리를 입밖에 
        내던 것이 서서히 가락 있는 콧노래가 되었다. 2년이 지난 후에는 언어 요법도 받았고 그 결과 그 아이는 결국 완전한 문장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br /><br />
        내 선생님들 중 한 분은 원래 천성적으로 조용하고 내성적이고 수줍어했는데 짤츠부르크의 오르프(Orff) 연구소에서 공부를 한 후에 생기 
        있고 발랄하고 혈기왕성하게 바뀌었다. 이 연구소에서는 종종 음악 요법을 사용한 지시적 기술을 도입해서 사용해 왔다. 마틴 루터 
        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음악 애호가들은 하늘의 은총을 받은 자들이다.”<br /><br />
        나는 관음 수행자들이야말로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장 잘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유명한 한 광고 문안에 ‘음악을 배우면 아이들이 
        잘못될 리가 없어요!’라는 것이 있다. 이 말처럼 단지 음악을 연주하거나 악기를 사용한 치료를 받는 것만으로도 환자들이 좌절감을 
        극복하고 확신과 생기를 찾게 되는 경우가 있다. 다중적인 정신적 결함 때문에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까지도 화를 잘 
        내고 안정되지 못했던 성격을 고치고 말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우리가 초세계 소리의 법문인 관음법문을 수행할 때 소리의 흐름이 
        온몸과 온마음으로 퍼져 우리를 정화시키고 고양시키며 우리를 우리 영혼의 웅대한 집인 천국의 왕국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진정 최고의 ‘음악 요법’이 아닐 수 없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 91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2:33:12 +0900</dc:date>
</item>


<item>
<title>스승님의 환상적인 대답</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7</link>
<description><![CDATA[<br /><p>스승님의 가르침을 묻는 질문에 만족스럽게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감로법어 단행본의 한 문구가 수개월간 
        나를 괴롭혔다. 보면 볼수록 알 수 없었다. 그게 뭘 의미할까? 그래서 스승님이 런던에 오셨을 때 나는 그 문구에 대해 질문하였다. 
        <br /><br />
        “문장을 정확히 기억 못합니다만 조그만 감로법어책 어딘가에 쓰여 있습니다. ‘때로 마야도 부처가 될 수 있다. 즉 그것은 우리 
        자신이 부처가 아니라면 우리가 부처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문장을 잘 이해 못하겠습니다. 추측은 하지만 확신할 수 없습니다.” 
        “좋아요. 당신의 의견을 말해보세요. 먼저 당신이 어떻게 이해하는지 말하세요.” 스승님이 이렇게 요구하셨다. <br /><br />
        나는 말했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 이렇습니다. 악마도 마음을 돌리면 언젠가는 선해질 수 있고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 심지어는 나쁜 사람조차 부처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부처는 부처입니다. 그것이 정확한 이해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br /><br />
        그러자 스승님이 대답하셨다. “한편으로 그것도 맞습니다. 그 의미는 이와 같아요: 마야는 부처입니다. 본래 모든 것은 한 곳, 
        무, 모든 것의 시초로부터 왔습니다. 신성이나 불성이나 신의 왕국으로부터 오지 않았다면 마야가 어디로부터 왔겠습니까? 태초에 
        우리는 모두 스승이었습니다. 스승의 계획의 한 부분이었고, 전체 창조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마치 사과파이의 한 조각처럼요. 전체 
        사과파이의 한 조각처럼 말이죠. 그러나 우리 각자는 개인적인 다양한 뭔가를 갖습니다. 마치 어떤 피자에는 토마토가 얹혀 있고 
        다음 것에는 버섯이 그리고 다음 피자 조각에는 올리브 기름이 얹혀 있는 것과 같은 거지요. 그리고 어떤 것은 더 크고 어떤 것은 
        더 작습니다. 작은 것은 아이들 것이고 큰 것은 어른들 것입니다. 예를 들면 그렇습니다. <br /><br />
        그래서 처음에 우리는 스승이었고 최소한 스승의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재미있게 지내려면 우리는 자신을 나누어야 합니다. 
        각자가 다양한 역할을 맡는 거지요. 누구는 부처를 맡고 누구는 부처의 반대역을 맡는 겁니다. 마치 연극처럼요. 처음부터 모든 
        배우들은 같은 소속입니다. 그러나 여 주인공이 된 배우는 예뻐야 하고 이러저러한 모습을 지녀야 하지요. 그리고 다른 배우는 하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이러저러한 의상을 입고 이렇게 행동하고 이러한 몫 ─ 육체를 갖게 되는 거지요. (스승님 웃으심) 
        이와 같습니다.” <br /><br />
        그래서 우리는 똑같습니다. 이 세상과 같은 존재의 낮은 차원으로 내려왔을 때 우리는 스승으로서의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 역을 맡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 역할을 아주 오래 연기한다면 천국에서 했던 모든 것, 여러분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여러분의 위대함을 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스승은 여러분 내면에 있다고 합니다. <br /><br />
        “이제 여러분의 스승의 권리를 다시 찾고 싶다면 시작하십시오. 내면을 탐구하십시오.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여러분의 역할, 그 
        목적을 이루려고 여러분은 너무나 오랫동안 밖에서 헤맸습니다. 그래서 잊었지요. 자, 지금이 다시 내면을 돌아보고 위대함을 찾을 
        시간입니다. <br /><br />
        마야는 창조에 균형을 주고 양념을 가하기 위해 마야의 역할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만약 반대역이 없다면 다른 부분을 어떻게 알아보겠습니까? 
        만약 여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자신을 남자로써 인식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마야가 있고 부처가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스승이 “너희는 모두 동등하다.” “너희는 모두 신의 자녀이고 부처이고 불성이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일한 
        진리입니다. <br /><br />
        그러나 그것은 누군가가 악한 일을 할 때 무조건 좋다고 말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악은 악이고 선은 선입니다. 목적한 바가 있어 
        선은 선이고 악은 악인 것이니까요. 신은 우리가 선을 알도록 하려고 이런 것들을 만듭니다. 마치 슬픔을 모를 때 행복이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그 반대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음양이라 칭하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이들이 자신의 위대성을 인식하도록 서로 돕는 것입니다. 각자는 서로 도와서 자신의 위대함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니 아무 문제없지요. 이해했나요?"<br /><br />
        “정확히는 못했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br /><br />
        “정확히는 아니다- 아마 내가 명확하지 못했나 봅니다. 미안해요. 당신은 교수지요. 복잡한 해설과 책에 익숙해 있어요. 그래서 
        좀 어렵네요.마야는 부처입니다. 처음에는 어떤 마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실 악당 역할을 하려고 마야의 가면을 쓰고 
        있는 부처입니다. 시험도 없이 악당도 없이 어떻게 당신이 선하다는 것을 증명합니까? 당신이 선하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모든 
        영웅은 역사가 만듭니다. 모든 약은 질병이 만들어냅니다. 만약 질병이 없다면 위대한 의사도 명약도 없을 겁니다. 빛을 필요로 
        하지 않고 산업적인 어떤 요구도 없었다면 전기의 발견도 없었을 겁니다. <br /><br />
        그래서 모든 사람이 선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지키도록 악이 있습니다. 그런 목적에서 악한 이가 그렇게 행동하고 자신을 악으로 
        변장했기에 여러분이 위대해지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오, 이것은 나빠. 하지 말아야 해. 좋은 품성을 지녀야 해!” 당신은 
        자신과 비교합니다. “오, 이것은 정말 나빠. 이건 좋군.” 만약 비교할 만한 나쁜 것이 없다면 여러분은 모릅니다. 그렇죠? 
        방향과 목적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마야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야의 가면 뒤로 얼굴을 숨기고 있는 부처(깨달은 
        존재)들입니다. 이해했어요?”<br /><br />
        “예” 나는 대답했다. <br /><br />
        “좋습니다. 신의 축복을 빕니다. 그건 추상적입니다. 이해하기 어렵지요. 그러나 당신이 자랑스럽군요. 그 나이에 벨기에의 유명한 
        대학 교수로서 이 문제를 질문할 정도로 겸손하고 심지어 이해하지 못할 때는 그것을 인정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야와 부처에 
        대한 이 논쟁은 겸손에 대한 교훈이었습니다. 스승님의 모든 가르침을 이해하는 척 하는 대신 직접 스승님에게 질문하고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매우 좋습니다.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79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2:30:38 +0900</dc:date>
</item>


<item>
<title>깨달은 스승은 언제나 적기에 행한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6</link>
<description><![CDATA[<br /><p>나는 자주 스승님을 따라 스승님 가까이에서 일하곤 했는데, 스승님은 언제나 모든 일들을 가장 적절한 시간에 행하심을 알게 되었다. 
        스승님이 장래의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어느 순간 그 일을 완성하기로 작정하시면 그 일을 즉각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해내신다. 
        그것이 바로 때때로 스승님이 세상의 일반적인 방식과는 사뭇 다르게 일을 하시는 이유이다. <br /><br />
        어느 늦은 밤 스승님이 갑자기 한 사형에게 밖에 나가서 채식 햄을 사오라고 하셨다. 그 사형은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았을 그런 
        늦은 시간에 어떻게 그것을 살 수 있을지 걱정했다. 그가 차를 몰고 밖으로 나간 얼마 후 놀랍게도 그는 한 채식 음식점의 문이 
        아직 반쯤 열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그의 사명을 순조롭게 이루었고, 스승님의 위대한 힘을 진심으로 경탄했다. <br /><br />
        또 다른 경우는 스승님이 어떤 장소에서 건설 작업을 지시하실 때였다. 며칠이 지난 후 제자들이 아직 일을 다 끝맺지 못했는데, 
        스승님이 갑자기 그 일을 그만두게 하셨다. 왜냐하면 일을 할 적기를 잡아 제때에 그 일을 끝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운이 다하면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 일을 즉각적으로 중지하도록 하신 까닭이었다. <br /></p>
      <p><font color="#003300" size="2" class="topic"><br />놀라운 속독</font></p>      <p>스승님은 자신의 언행을 통해 제자들을 교육시킬 뿐 아니라 가끔 제자들의 영적 성장을 가로막는 에고로부터 그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놀라운 방법으로 제자들을 도우신다. <br /><br />        한번은 어떤 사형이 스승님과 같이 비행기로 여행할 때 스승님 옆에 앉게 되었다. 자신의 영어 실력에 자부심을 느끼며 그는 즉시         비행기의 승무원에게 식사와 그밖의 것들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영어 실력과 비교해서 스승님이 강연하실 때 쓰시는         영어는 너무 단순하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자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스승님이 그가 막 읽기를 마친 영어         잡지를 손에 들고 책장을 한장한장 넘기시더니 잡지 한 권을 금방 독파해 버리신 것이다. 지구상의 어떤 속독가도 스승님의 속독에는         비할 수가 없었다. 그 사형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스승님이 그 잡지의 주제와 내용에 관한 아주 세세한 것까지도         그 사형과 이야기를 나누신 것이었다. 영어 지식에서 기인한 그의 모든 자만과 에고는 사라졌다.<br /><br />        스승님은 명백하게 그의 오만을 아셨던 것이다. 이 일화는 위대한 수행자가 완고한 제자를 어떤 경이로운 방법으로 교화시키는지를         그리고 스승님의 내면의 힘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해 있음을 완전히 보여주는 것이다. <br /><br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73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2:27:02 +0900</dc:date>
</item>


<item>
<title>진정한 천국은 우리 안에 있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5</link>
<description><![CDATA[<br /><p>우리는 언제나 내면에 천국이 있고 그 천국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잊었을 때는 다시 
        기억하도록 하세요. 여러분 자신을 내면으로 향하게 하여 내면의 평화와 평온 그리고 위안을 느끼십시오. 어느 누구도 그 천국을 
        앗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천국입니다. 어젯밤 내가 여러분에게 들려준 노래처럼 별들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비입문자나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닌 수행자들을 위한 겁니다. </p>
      <p>처음에는 한 조각의 케익이나 그 무언가로 유혹해야 합니다. 그러면 “와, 내게 천국이 있구나”하고 말할 겁니다. 예, 물론 
        천국은 있지만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지요. 열반은 여러분이 영구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어떤 곳이 아닙니다. 어떤 개인적인 자산이 
        아닙니다. 이 우주에는 개인적인 자산이나 영구적인 거주지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여러분에게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거기에 집착할 테니까요. 비록 여러분이 아름다운 열반에 있다 해도 언제나 거기에 집착하고 고착되어 있다면 얼마나 따분한 
        부처이겠습니까? 열반에 집착하다니 … <br /><br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73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2:25:53 +0900</dc:date>
</item>


<item>
<title>일하는 아이들이 지능 지수가 높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4</link>
<description><![CDATA[<br /><p>우리가 사람들을 도울 때 어쩌면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독립심을 손상시킬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게 
        함으로써 그들을 나약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br /><br />
        세상 사람들은 아이들이 일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그들은 그것을 아동 학대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어려서부터 
        일하는 아동들이 높은 지능 지수를 갖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어린이들에게 일을 하도록 강요해서가 아니고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똑똑해져야 하고 스스로 살아나갈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상황이 그러할 때는 자신들이 
        어직 어려 아무것도 모른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무도 그들을 위해 생각해 주지 않으니 스스로 방법을 생각을 해야 하지요. 
        <br /><br />
        그래서 집없는 아이들이나 부랑아들이 언제나 영리하고 일을 그렇게 빨리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그들은 나쁜 
        짓도 하지만 그것은 다만 생존을 위해 싸워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도둑질을 할 때조차도 빈틈이 없을 만큼 영리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그들과 비교가 안 됩니다. (웃음) 우리 아이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우리한테서 훔치는 것입니다. (스승님 
        웃음) <br /><br />
        그래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들을 어렸을 때부터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들에게 집안일을 분담시키고, 돈의 가치를 가르치세요. 그리고 
        일을 훌륭하고 빠르게 할 수 있는 것이 자랑스러운 것임을 알게 해주세요.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그들은 일을 영광과 흐뭇함 그리고 
        사랑과 부모의 칭찬으로 여길 것입니다. 아이들이 다 자랐을 때 그것은 습관이 될 것입니다. 아동기에 훈련되지 않으면 어른이 되었을 
        때 그렇게 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서른이 넘으면 때는 이미 너무 늦습니다. 그들이 꾸물거리는 것을 원치 않고 굼뜬 행동을 싫어하더라도 
        바꾸기가 힘듭니다. 그런 습관을 근본적으로 고치는 것은 매우 더디기 때문입니다. <br /><br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73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2:24:18 +0900</dc:date>
</item>


<item>
<title>지혜는 여러분이 사용할 때만 나온다</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3</link>
<description><![CDATA[<br /><p>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고 그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안 준다면 여러분은 자신이 매일의 
        명상동안 얼마나 많이 얻었는지 결코 모를 겁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가끔은 얻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체험이 있고 여러분의 삶이 더 순조로워졌으니까요. 이것과는 별도로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스승님 하지만 
        저는 지혜를 원해요. 저에게는 지혜가 없어요. 저는 빛도 보고 소리도 듣고 생활도 나아지고 매우 좋게 느끼긴 하지만 제 지혜는 
        어디에 있죠?” <br /><br />
        그렇습니다. 지혜는 오직 여러분이 사용할 때만 나옵니다. 만약 오늘 여러분이 여기에 없었고 내가 오기를 기대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말들이 결코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내가 그것을 내면에 갖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사용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내가 아는 것을 결코 모를 겁니다. 나도 역시 내가 무엇을 아는지를 모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무엇을 지니고 
        있든 자신이 그것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을 꺼내 써야만 합니다. 이해하겠습니까?<br /><br />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깨닫기 위해서 그것이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혹은 지적인 것이든 우리 모두는 그것을 써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우두커니 앉아서 “스승님 저는 지혜가 없어요”라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말도 안 됩니다. 여러분은 
        사람들에게 말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과거의 자신과 비교해서 혹은 비입문자들과 비교해서 자신이 얼마나 높은 경지에 올라와 있는지를 
        깨달을 겁니다. 그가 어떤 지위나 종교에 속해 있든, 그 종교에서 어떤 계급에 있든 상관없습니다. 더 높은 사람에게 말할수록 
        여러분은 자신이 얼마나 현명한지 더 잘알 것입니다. 예전에는 높은 종교 지도자에게 말할 때 두려워했을 겁니다. 여러분은 그들에게 
        절하고 떨리는 손을 쥐었었지요. 지금 그들에게 말해보십시오. 자신이 얼마나 진보했는지를 알겠지요? 여러분의 지혜를 알고 싶다면 
        이 방법을 시도해 보고나서 어떻게 느꼈는지 나에게 말해 주십시오. ♥<br /><br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71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2:23:04 +0900</dc:date>
</item>


<item>
<title>무자시 낭송을 즐기며...</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2</link>
<description><![CDATA[<br /><p>만약 누군가가 내게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낭송하는 시를 듣겠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오, 아니에요! 나는 흥미 없어요”라고 
        하거나 “고맙지만 사양하겠어요”라고 할 것이다. 평범한 말에서 조차도 통상적으로 숨겨진 의미를 갖고 있는 시인들의 시어들을 나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것은 시간 낭비일 수밖에 없었다. <br /><br />
        그런데 스승님의 어울락시 낭송을 듣고는 나의 태도는 돌변했다.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어도 처음 그 시들을 듣는 순간 나는 놀랍게도 
        평온함과 평화로움을 느꼈다. 그것은 설명하기는 어려웠지만 아주 가뿐하고 신선한 느낌이었다. 가락을 타고 흐르는 독특한 시 낭송 
        예술과 스승님의 낭랑하고도 아름다운 목소리, 플루트와 치터 두 악기에 의해 연주되는 배경음악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정말 완벽하고 
        웅장한 조화를 이루었다. 모든 요소가 서로 조화롭게 받쳐주고 융합하여 매우 훌륭한 걸작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물론 낭송자로부터 
        오는 축복은 말할 것도 없고! <br />
        나는 이 예술미에 취하여 몇 시간이 흘러간 것도 깨닫지 못했다. 사실 나는 학교에서 4, 5년 동안 여러 종류의 태국 시를 작문하는 
        법을 배우는 데 보냈고, 유명한 태국의 예술가들에 의해 공연되는 많은 시 낭송을 들어보았지만 이와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나는 어울락의 전통과 문화에 대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고, 어울락 사람들이 이러한 빛나는 문화를 지니고 있으니 그들의 내면은 
        매우 아름다울 것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br /><br />
        한번은 스승님이 어울락어는 매우 보기 드문 6성조라는 것을 설명해 주셨다. 스승님이 알고 있는 다른 언어는 중국어를 포함해서 
        많아야 5성조라고 하셨다. 그래서 음악적 톤을 특성으로 지니고 있는 언어로 시 낭송을 할 때에는 마치 노래를 듣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시 낭송에 있어 낭송자의 능력과 기술 또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br /><br />
        스승님은 어려서부터 아름다운 시를 짓는데 재능이 있었다. 학교 다닐 때 스승님이 지은 시는 매우 뛰어나 담임 선생님에 의해 칭찬을 
        받았고, 상급 학년의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도 자주 읽혀졌다. 그러므로 스승님이 어울락시의 명수가 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스승님의 시낭송 능력은 정말로 특출하다. <br /><br />
        이러한 사실은 스승님이 시 낭송을 녹음하기 전에 연습을 할 기회도 갖지 않았다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스승님은 준비과정 없이 
        즉석에서 시어의 적절한 억양을 선택하고 어디에서 끊고 끝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등등을 생각하며 낭송해야 했다. 스승님 자신이 
        쓴 시 뿐만 아니라 다른 유명한 시인들이 쓴 아름다운 시들도 낭송했으므로 이 일에 대한 스승님의 재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br /><br />
        안타깝게도 스승님은 어렸을 때 지은 많은 시들을 모아 놓은 두툼한 책을 잃어버렸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시들은 스승님의 작품중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시들은 신문에 실렸거나 제자들이 도서관에서 추려낸 것들이다. 이러한 시들은 스승님이 아직 완전히 
        깨닫기 이전에 지은 시들인데, 그 시들은 그녀의 젊은 시절의 삶의 경험들, 사랑, 이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 그리고 그 
        당시의 내면의 아름다움과 덕성에 대한 인식을 묘사한 것이다. <br /><br />
        스승님은 선행사 동안 제자들에게 매일 긴 시간을 이야기 했고, 그 이상의 시간을 토론하는 데 보냈기에 목소리가 별로 좋지 않다고 
        겸손하게 말씀하셨다. 이러한 상황에서조차 나는 스승님의 목소리가 매우 맑고 아름답다고 느꼈다. 스승님의 목소리는 깊고 힘이 있어 
        사람들을 도취하게 만든다. 스승님도 자신의 시 낭송을 듣기 좋아한다고 인정하셨다. 스승님은 시 낭송을 들을 때마다 이완되면서 
        평온함을 느끼게 된다고 하셨다.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니 참 안됐군요. 만약 당신이 어울락어를 알아듣는다면 당신은 그것을 더욱 
        높이 평가하게 될 겁니다. 왜냐하면 어울락어는 전 행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이니까요! 어울락어로 하는 낭송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답니다” 라고 스승님은 말씀하셨다. <br /><br />
        우리는 스승님과 더불어 우리에게 이런 가치있는 예술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참가한 모든 이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들은 인류에 대한 
        신의 고귀한 선물이다. ♥<br /><br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71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description>
<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2:22:0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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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em>
<title>편리하고 손질이 쉬운 천상의 가방</title>
<link>https://godsdirectcontact.or.kr/bbs/board.php?bo_table=psec&amp;amp;wr_id=1</link>
<description><![CDATA[<br /><p>스승님이 디자인하신 S.M. 천상의 가방들은 특히 동물의 권리를 염려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것들은 색깔이 매우 
        화사하며, 고급 재질로 만들어졌다. 스타일이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이 가방들은 매우 실용적이다. 가장 커다란 장점은 어떤 경우에든 
        상관 없이 거의 매일 사용할 수 있고, 동시에 스승님의 무한한 보살핌과 축복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사랑과 지혜가 
        넘쳐흐르는 ‘지혜의 가방’이다. <br /><br />
        더욱이 이 천상의 가방들은 세탁과 손질이 매우 쉬워서 손으로 간단히 빨기만 하면 된다. (세탁기 사용 금지!) 이 가방들은 매우 
        경제적이고도 편리하다. 그래서 그것들을 마음놓고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으며, 더러워지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br />
        사랑이 담긴 스승님의 선물은 정말 훌륭하다. ♥<br /><br /></p>
      <p align="right" class="caption">- 뉴스잡지70호에서-</p>
      <p align="right" class="caption">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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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creator>관음법문</dc:creator>
<dc:date>Wed, 21 Jan 2004 12:20:4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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