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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모르실거야

스승님의 환상적인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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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의 가르침을 묻는 질문에 만족스럽게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감로법어 단행본의 한 문구가 수개월간 나를 괴롭혔다. 보면 볼수록 알 수 없었다. 그게 뭘 의미할까? 그래서 스승님이 런던에 오셨을 때 나는 그 문구에 대해 질문하였다.

“문장을 정확히 기억 못합니다만 조그만 감로법어책 어딘가에 쓰여 있습니다. ‘때로 마야도 부처가 될 수 있다. 즉 그것은 우리 자신이 부처가 아니라면 우리가 부처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문장을 잘 이해 못하겠습니다. 추측은 하지만 확신할 수 없습니다.” “좋아요. 당신의 의견을 말해보세요. 먼저 당신이 어떻게 이해하는지 말하세요.” 스승님이 이렇게 요구하셨다.

나는 말했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 이렇습니다. 악마도 마음을 돌리면 언젠가는 선해질 수 있고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 심지어는 나쁜 사람조차 부처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부처는 부처입니다. 그것이 정확한 이해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스승님이 대답하셨다. “한편으로 그것도 맞습니다. 그 의미는 이와 같아요: 마야는 부처입니다. 본래 모든 것은 한 곳, 무, 모든 것의 시초로부터 왔습니다. 신성이나 불성이나 신의 왕국으로부터 오지 않았다면 마야가 어디로부터 왔겠습니까? 태초에 우리는 모두 스승이었습니다. 스승의 계획의 한 부분이었고, 전체 창조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마치 사과파이의 한 조각처럼요. 전체 사과파이의 한 조각처럼 말이죠. 그러나 우리 각자는 개인적인 다양한 뭔가를 갖습니다. 마치 어떤 피자에는 토마토가 얹혀 있고 다음 것에는 버섯이 그리고 다음 피자 조각에는 올리브 기름이 얹혀 있는 것과 같은 거지요. 그리고 어떤 것은 더 크고 어떤 것은 더 작습니다. 작은 것은 아이들 것이고 큰 것은 어른들 것입니다. 예를 들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우리는 스승이었고 최소한 스승의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재미있게 지내려면 우리는 자신을 나누어야 합니다. 각자가 다양한 역할을 맡는 거지요. 누구는 부처를 맡고 누구는 부처의 반대역을 맡는 겁니다. 마치 연극처럼요. 처음부터 모든 배우들은 같은 소속입니다. 그러나 여 주인공이 된 배우는 예뻐야 하고 이러저러한 모습을 지녀야 하지요. 그리고 다른 배우는 하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이러저러한 의상을 입고 이렇게 행동하고 이러한 몫 ─ 육체를 갖게 되는 거지요. (스승님 웃으심)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똑같습니다. 이 세상과 같은 존재의 낮은 차원으로 내려왔을 때 우리는 스승으로서의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 역을 맡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 역할을 아주 오래 연기한다면 천국에서 했던 모든 것, 여러분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여러분의 위대함을 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스승은 여러분 내면에 있다고 합니다.

“이제 여러분의 스승의 권리를 다시 찾고 싶다면 시작하십시오. 내면을 탐구하십시오.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여러분의 역할, 그 목적을 이루려고 여러분은 너무나 오랫동안 밖에서 헤맸습니다. 그래서 잊었지요. 자, 지금이 다시 내면을 돌아보고 위대함을 찾을 시간입니다.

마야는 창조에 균형을 주고 양념을 가하기 위해 마야의 역할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만약 반대역이 없다면 다른 부분을 어떻게 알아보겠습니까? 만약 여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자신을 남자로써 인식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마야가 있고 부처가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스승이 “너희는 모두 동등하다.” “너희는 모두 신의 자녀이고 부처이고 불성이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일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군가가 악한 일을 할 때 무조건 좋다고 말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악은 악이고 선은 선입니다. 목적한 바가 있어 선은 선이고 악은 악인 것이니까요. 신은 우리가 선을 알도록 하려고 이런 것들을 만듭니다. 마치 슬픔을 모를 때 행복이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그 반대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음양이라 칭하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이들이 자신의 위대성을 인식하도록 서로 돕는 것입니다. 각자는 서로 도와서 자신의 위대함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니 아무 문제없지요. 이해했나요?"

“정확히는 못했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정확히는 아니다- 아마 내가 명확하지 못했나 봅니다. 미안해요. 당신은 교수지요. 복잡한 해설과 책에 익숙해 있어요. 그래서 좀 어렵네요.마야는 부처입니다. 처음에는 어떤 마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실 악당 역할을 하려고 마야의 가면을 쓰고 있는 부처입니다. 시험도 없이 악당도 없이 어떻게 당신이 선하다는 것을 증명합니까? 당신이 선하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모든 영웅은 역사가 만듭니다. 모든 약은 질병이 만들어냅니다. 만약 질병이 없다면 위대한 의사도 명약도 없을 겁니다. 빛을 필요로 하지 않고 산업적인 어떤 요구도 없었다면 전기의 발견도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선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지키도록 악이 있습니다. 그런 목적에서 악한 이가 그렇게 행동하고 자신을 악으로 변장했기에 여러분이 위대해지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오, 이것은 나빠. 하지 말아야 해. 좋은 품성을 지녀야 해!” 당신은 자신과 비교합니다. “오, 이것은 정말 나빠. 이건 좋군.” 만약 비교할 만한 나쁜 것이 없다면 여러분은 모릅니다. 그렇죠? 방향과 목적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마야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야의 가면 뒤로 얼굴을 숨기고 있는 부처(깨달은 존재)들입니다. 이해했어요?”

“예” 나는 대답했다.

“좋습니다. 신의 축복을 빕니다. 그건 추상적입니다. 이해하기 어렵지요. 그러나 당신이 자랑스럽군요. 그 나이에 벨기에의 유명한 대학 교수로서 이 문제를 질문할 정도로 겸손하고 심지어 이해하지 못할 때는 그것을 인정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야와 부처에 대한 이 논쟁은 겸손에 대한 교훈이었습니다. 스승님의 모든 가르침을 이해하는 척 하는 대신 직접 스승님에게 질문하고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매우 좋습니다.

- 뉴스잡지79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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