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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기담(스승님의 사랑이 일구어낸 기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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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신기한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일 중 하나는 타이쭝의 산중에서 있었던 일로 이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야기는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승님은 공개 강연을 하시지 않아 제자들의 숫자도 많지 않았다. 어느 날 스승님은 타이베이 근교의 신디엔 도장에서 머물던 우리에게 외부적인 문제가 생겼으니 즉시 짐을 싸서 떠나라고 하셨다. 평소 우리는 10분 이내에 준비를 마칠 수 있도록 훈련이 잘 되어 있었다. 동작이 느리면 뒤에 남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스승님의 훈련은 군대 훈련보다도 더 효과적이어서 손놀림이 둔한 나이 많은 출가승들도 충분히 따라갈 정도였다.

우리에겐 작은 트럭 한 대만 있었을 때라 스승님이 조수석에 앉고 다른 제자들은 짐들과 함께 적재함에 몸을 싣고 어렵사리 출발했다. 출발 당시 어디로 갈 건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타이쭝의 외곽을 지나 어떤 버려진 산장 옆을 지나려는데 스승님이 갑자기 우리에게 그곳을 살펴보라고 하셨다.

그곳은 소유권 문제로 반쯤 짓다 만 산장이었는데, 잡초만 무성했다. 물, 전기도 없고 사람이 살지 않아 황량해 보였다. 그 집을 둘러보다가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외딴 곳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출가승들을 이상히 생각하곤 말을 걸어왔다. 채식을 하는 일관도 신자인 그는 우리가 머물 곳이 없다는 걸 알고는 당분간 자기 집에서 지내라고 애써 권했다.

알고 보니 그는 어떤 산장의 관리인으로 관리인 사택에서 살고 있었다. 그 사택에는 물과 전기가 있었는데, 마침 다른 볼 일로 집을 비우게 되어 우리에게 일주일 정도 빌려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 '빌라'에 짐을 풀게 되었다. 스승님께서 꼭 방값을 주라고 하셨기 때문에 우린 당연히 거저 살지는 않았다.

그곳은 말이 좋아 산장이지, 사실 수많은 모기를 제외하곤 별 다른 게 없었다. 마침 한여름이라 모기 부대는 기승을 부리며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내 평생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그 집은 2층으로 되어 있어 남자들은 아래층에서 자고, 스승님은 2층에 있는 유일한 방에서, 여자들은 스승님 방에 딸린 작은 거실에서 지냈는데, 사실 스승님 방도 문 없이 바로 거실로 통하게 되어 있어서 모기의 공격을 막을 순 없었다.

우리는 무수한 모기떼에게 물리지 않도록 머리부터 발끝까지 침낭으로 감쌌다. 더워 죽을 지경이었지만, 밤새 모기떼에게 파티를 열어 주는 것보단 나았다. 더 참기 힘들었던 건 폭격기를 연상시키며 윙윙거리는 모기들의 단조롭고 지루한 소리였다. 그때 방에서 나오다가 우리들의 이상한 모습을 보신 스승님이 이렇게 더운 날 왜 미이라처럼 몸을 싸매고 있냐고 물으셨다. 이유를 말씀드리자 스승님은 의아한 표정으로 당신 방엔 모기가 한 마리도 없다고 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확인하러 바로 스승님 방에 올라가 봤는데, 정말 모기의 '모'자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모기들은 우리들만 물고 스승님에게는 감히 접근도 하지 않은 채 존경을 표했던 것이다. 나중에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에게는 그 자신의 업장이 없어서 모기에게 물릴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중생들의 업장을 짊어졌을 때에만 그 업장의 냄새로 모기에게 물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날 밤 우리는 모기들의 폭격음 속에서 누에고치처럼 잠을 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잠이 들 무렵에는 그 성가신 소음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스승님께 모기들이 안 보이는 걸 보니 스승님의 신통이 정말 큰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스승님은 웃으시며 유리잔을 몇 개 가리키며 이 잔들이 바로 신통이라고 말씀하셨다. 밤중에 일어나신 스승님은 모기들에게 물릴까 꽁꽁 싸매고 있는 제자들의 불쌍한 모습을 차마 그냥 볼 수가 없어 그 찻잔으로 모기들을 잡아 바깥으로 내보냈던 것이다. 스승님이 거의 2백 마리 되는 모기들을 내보내셨으니 우리가 편히 잘 수 있었던 게 당연했다.

며칠 후 우리는 타이쭝의 산장을 떠나 근처의 이름도 모르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다. 작은 트럭은 거친 길 위에서 덜컹거리며 춤을 추었다. 몇 군데서는 굵은 나뭇가지들이 길을 막아 길이 끝난 것처럼 보여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스승님은 계속 가라고 지시하셨고, 그곳을 지나자 신기하게도 길이 나왔다. 하지만 소심한 제자들은 이런 모험들로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었는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더 큰 모험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외진 산간이라 길이 좋지 않은 데다 좁기도 해 통과하기가 힘들어서 트럭은 몇 번이나 낭떠러지를 끼고 산 쪽에 바짝 붙은 채 간신히 통과했고 그때마다 우리는 목숨이 오락가락 했다. 물론 스승님의 축복으로 위험한 고비를 무사히 넘기기는 했지만 말이다.

산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을 때 한 농부를 만나게 되었다. 이 두번째 만남 역시 믿을 수 없는 우연의 일치로 그 역시 채식주의자였던 것이다. 농부가 산중에 있는 자신의 오두막을 쓰라고 해서 찾아간 오두막은 아무런 살림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 집의 앞부분은 지붕도 없었는데 여자 출가승들이 거기서 자고 스승님은 뒤쪽은 작은 창고에서 주무셨다. 처음에 스승님은 지붕 없는 곳에서 주무시려고 했는데 제자들의 강한 권유로 포기하셨다.

잠자리가 편한지 염려하신 스승님이 여러 번 물어보시자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괜찮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미 수많은 모기떼들의 공격을 경험한 지라 고요하고 시원하며 모기들도 없는 오두막에서 잠자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처럼 느껴졌다. 또 마루에 누워 밤하늘의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니 마치 대지의 왕국에 와있는 것 같아 정말 감격스러웠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우리가 자던 사방이 지붕이 없어서 밤새 내린 이슬로 젖어있는 데 반해, 우리 침낭과 그 주위는 그대로 말라 있는 걸 발견했다. 우리는 이 불가사의한 일의 연유 역시 알 수 있었다! 광친 노스님(고행으로 유명한 포모사의 스님)이 밤새 바깥에서 명상을 하면 그와 그의 주변에는 이슬이 내리지 않았다지만, 우리는 아직 그렇게 수행이 높은 것도 아니었으니, 이 현상은 우리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이 일을 스승님께 바로 말씀드리자 스승님은 웃으시며 우리가 밤새 이슬에 젖을까 염려했더니 이런 신통이 자연스럽게 일어났다고 설명하셨다. 스승님은 이슬이 내리지 않도록 기도하거나 주문을 외우신 게 아니다. 그저 제자들의 건강을 염려했을 뿐인데,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기적이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이다. 이건 모두 스승님의 '함이 없이 하는' 기적이었다.

우리는 산중에서 한동안 머물면서 스승님께 평소 훈련받았던 야생 생활 능력을 응용하는 좋은 기회를 가졌다. 타이쭝 산중 여행은 단조로웠던 내 인생의 캔버스에 오색 찬란한 무지개를 그려 넣으며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꿈은 히말라야에서 수행하는 것이었다. 그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이번 산중 경험으로 그 마음은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었다.

- 뉴스잡지 121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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