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본문
다음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아마도 모세 시대에는 자식들이 효성스럽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 이런 계율이 필요했겠지요. 모든 이들이 효성스러웠다면 아무도 ‘불효’라는 걸 몰랐을 겁니다. 모두가 아름답다면 ‘추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요. 이 나라 모든 국민이 부유하다면 아무도 빈곤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 예로 이곳은 불교의 나라라서 스님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나라의 사람들은 한번도 스님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님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들에 대해 말을 하지도 않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그 당시 사람들은 교육을 잘 받지 못했습니다. 성경에서는 그때를 혼돈의 시대라고 묘사합니다.
모세와 떨어져 있은 지 40일 만에 그들은 하느님을 포기하고 금송아지를 숭배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등급이 낮았고 도덕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승을 40일 만에 바꾸었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계속 진보하며 문명화되고 있습니다. 전에는 동굴에 살며 날 음식을 먹었었지요. 불도 없고 집도 없고 비행기나 그 어떤 문명 도구도 전혀 없었습니다. 수세기에 걸쳐 외계의 중생들이 이곳에 내려와 현대의 지식을 전해 주고 우리를 더욱 지성적으로 만들고 새 세대들을 더 총명하게 만든 결과, 지금 우리는 좀더 문명화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지금 나를 따라 수행을 하기에 여러분이 임신한 아기도 다릅니다! 아기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채식을 해서 포동포동하고 발그레합니다. 아기의 팔을 본 적이 있습니까? 최소한 살이 세네 겹은 될 겁니다. 나는 그들이 어떻게 영양분을 섭취하는지 궁금해요.
그들은 우유만 마시는데 말이에요! 이 아이들은 분명히 우리보다 더 총명할 거예요. 아마도 엄마 뱃속에서 입문한 아이들은 비범하게 성장할 겁니다. 그 아이들은 특출나고 더 예의바르고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행복하며 지혜가 더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자손손 나아지는 것이지요.
모세의 시대를 봅시다. 그때는 정말 혼란스러웠습니다. 사람들의 지혜가 아주 낮았지요. 하느님은 그들에게 많은 것을 베푸시고 여러 번 기적을 행하시고 모든 면에서 그들을 보호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모세가 자리를 비운 지 40일 만에 하느님을 저버리고 대신에 금송아지를 숭배했습니다. 상상이 됩니까?
현대에도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비교적 적은 숫자지요. 나를 따르는 사람은 퇴보하지 않을 겁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더 확고하고 더 지혜롭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게 더 많은 공덕이 있어서 하느님이 최고의 제자들을 보내셨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점검해 보기 전에는 내 말을 믿지 마세요. (스승님과 대중 웃음)
왜 우리는 부모님을 공경해야만 할까요? 하느님의 사랑이 인과법을 통해, 그리고 육신의 부모와 사랑의 형태로 우리를 돌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사실 육신의 부모가 우리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신의 사랑이 우리를 돌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명백히 이해해야 합니다!
세세생생 부모의 육신을 빌린 최고의 부모가 우리를 돌보며 기본적인 덕목과 사랑, 자비를 가르쳐 왔습니다. 부모가 우리를 사랑하기에 우리가 성장할 때 사랑이 뭔지 아는 것이지요. 이건 사실입니다!
우리가 안정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자라면 우리는 더 사랑을 지니게 되고 더 안정감을 가지게 됩니다. 때로 우리는 일부의 아이들이 악한 행동을 하고 불량배가 되거나 죄를 지어 기소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그들을 성급히 비난하지 마십시오!
아마도 그들은 어렸을 때 따뜻한 보살핌과 사랑의 교육을 받지 못해서 그렇게 되었을 겁니다. 아마도 그들의 부모가 일찍 죽었거나 너무 바빠서 그들을 돌보지 못했기 때문일 거예요. 아니면 그들의 부모들이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자라서 어떻게 자식을 사랑해야 하는지 몰랐을 수도 있고요.
결과가 결과를 낳기 때문에 사람들은 점점 덜 사랑하게 되고 점점 더 많은 문제를 만들게 됩니다. 그들은 사회로 나갔을 때 불공평하게 대우받고 억압되어 안정감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후에 오해를 받거나 깡패가 되면 열등감에서 반항하고 사회에 점점 더 저항하게 됩니다. 반항하면 할수록 그들은 더욱 자신을 잃어 가게 됩니다. 사랑을 잃고 점점 증오심만 키우지요. 그래서 결국 감옥에 갇히는 비참한 신세가 됩니다.
위의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부모에게 효도해야 합니다. 부모가 우리에게 잘 대해 주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과보이며 달갑지 않은 운명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건 아마도 우리가 과거 생에서 부모에게 무언가를 빚지고 갚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전생에 우리가 나쁜 부모여서 이생에서 나쁜 부모를 만나 공부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인내하며 부모에게 효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좋은 거예요.
코스타리카에 스무 살이 약간 넘은 동수가 있는데, 입문한 지 이삼 일 후에 울면서 나에게 달려왔더군요! 왜 우느냐고 묻자, 그녀는 자신의 가족, 특히나 아버지와 잘 지낼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죽었고 아버지는 그녀에게 잘 대해 주지 않았지요. 그는 냉정하고 완고했으며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늘 그녀를 억압하고 지배했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지요.
그래서 내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사랑을 가두어 놓은 채 아버지한테 쌀쌀맞고 고집스럽게 구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나요? 당신이 그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그도 당신의 사랑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요?” 그녀는 한 방 맞은 듯한 모습으로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에게 제 감정을 표현한 적이 없을지도 몰라요.”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오늘 집으로 돌아갈 때 예쁜 장미를 사요. 그런 다음 아버지 앞에 꿇어앉아 꽃을 드리고 포옹하며 ‘내가 어리고 철부지여서 내 사랑을 표현한 적도 없고, 그래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하지만 그래도 난 아빠를 아주 사랑해요.’ 이렇게 말해 봐요.”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녀가 내 말대로 한 결과 그 둘은 서로 껴안고 울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의 사이는 아주 좋아졌지요.
그들 중 한 명이 먼저 마음을 열어야 했습니다. 부모들은 밖에서 일합니다. 그래서 종종 정신적ㆍ육체적으로 지치지요. 그들에겐 많은 빚과 근심은 물론이고 가정에 대한 무거운 책임까지 있어 집에서 웃는 일조차 힘이 들지요. 그렇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고충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부모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요구하기만 할 뿐, 부모도 사랑과 지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한편 부모는 권위적입니다. “우린 네 부모야!” 그들은 자식들이 자신들을 공경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서 엄격해지기도 합니다. 게다가 일에 대한 무거운 압박감 때문에 크게 웃지도 못하지요. 한편 아이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부모님은 너무 엄격하셔. 우리를 사랑하지도 않으시고 우리에게 이것도 안 해주고 저것도 안 해주셔.’ 그러면 아이들은 남몰래 분노와 적대감을 가지게 되지요. 이것이 그들 사이의 오해를 심화시키고 세대 차이를 더욱 크게 만듭니다. 사실상 그 둘은 서로 껴안기를 열망합니다. 그들은 서로 깊이 사랑하지만 그것을 표현할 줄 모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쑥스러워할 필요 없어요. 그들은 여러분의 가족입니다. 그들과 의사소통하기가 어렵다면 이 방법을 써 보십시오. 즉 먼저 껴안고 얘기는 나중에 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진심으로 말한다면 여러분의 말이 감동을 줄 겁니다. 여러분은 점차 그들과 의사소통을 하면서 상대방도 자기와 마찬가지로 사랑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이해할 거예요. 그런 후에는 서로 화해를 하겠지요. 가족은 서로 늘 사랑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자존심이 너무 강해 먼저 말을 못 하지요. 그래서 양쪽 모두 자신을 가두어 놓고 상대방이 노크해 주기만을 기다립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먼저 문을 두드리지 않지요. (스승님 웃음) 그래서 서로 바라고만 있습니다.
이런 일은 부부 사이에서도 종종 일어납니다. 그들은 화해하기를 원하지만 서로 기다리기만 합니다. 아무도 먼저 나서질 않지요. 날이 갈수록 분위기가 냉랭해지고 긴장됩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상대방을 용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고 체면이 깎일까 봐 자존심을 꺾지 못합니다. ‘그(그녀)가 나를 비웃지는 않을까?’ 하면서요. 사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남편이 여러분을 비웃는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는 여러분의 배우자예요! 여러분의 아내가 여러분을 비웃는들 어떻습니까! 하지만 사실 그러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여러분이 사과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요. 이제 알겠지요!
왜 우리는 부모를 공경해야만 할까요? 그들이 우리를 위해 힘들게 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 소중한 육신을 주었습니다. 사실은 육신의 부모가 아니라 그들을 통해 일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의 은총 덕분이지만요.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을 공경하기 위해 그들을 공경해야만 합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하느님이 부모의 육신을 통해 우리에게 생명을 부여한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가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지요.
그렇지만 부모는 신의 사랑, 즉 하느님을 내면에 가지고 있기에 그들이 우리를 사랑할 때는 신의 사랑의 힘이 나옵니다. 그들은 아주 고상하고 우아하며 높은 존재들인데,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추천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