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 진보를 위한 비결 > 입문과 수행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입문과 수행

수행 진보를 위한 비결

본문


여러분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것들이 좀 있습니다. 전에 여러 번 얘기했던 것들이지만, 더러는 이해를 하지 못했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어떻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명상을 잘할 수 있는지 말해 주겠습니다.

우선은 집에서든 센터에서든 단체명상에 참가하라는 것입니다. 단체명상은 언제나 큰 도움이 됩니다. 얼굴을 마주 보고 앉는 것이 더 강력하고 안심이 된다면 그렇게 해도 됩니다. 명상하기 전에 찬물로 세수를 하십시오. 그러면 명상할 때 정신이 더 맑을 겁니다.

세수하기 전후에 가능하다면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는 것도 좋습니다. 여러분 대다수에게는 아직도 말로 하는 가르침이 매우 유익하니, 부디 비디오를 좀더 보고 오디오를 좀더 들으세요. 그리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세요.

여러분 가운데 다수가 명상에서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은 내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를 많이 봤지요. 예를 들어 난 선에 올 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라고 말합니다. 잠시 동안 가족과 모든 것을 잊으라는 거지요.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여러분은 내게 와서 “제 아이는 어떻고, 제 어머니는 어떻고, 제 아버지는 아프고, 저도 아프고….”라고 말합니다. 온 마을 사람을 이곳에 데리고 옵니다. (웃음) 여러분 중 일부가 그렇다는 겁니다. 다행히도 전부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저기에 먼지를 일으키고 내게 말썽을 안겨 주는 데는 한두 사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면 나는 내 성질로, ‘사자후(獅子吼)’ 법문으로 되갚지요.

부처님도 가끔 이 ‘사자후’ 법문을 썼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 것입니다. 그는 팔만 사천 법문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사자후(獅子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묻기를 “스승님께서도 그 법문을 좀 사용해 보시지 그러세요. 다른 건 빼놓고 한 가지 법문만 가르치시는 것 같아요.”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나는 팔만 사천 법문을 다 사용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가끔 경험하듯 ‘사자후’법문도 사용하고 있으니 더 이상 묻지 마십시오. 불교 신자들은 그것이 내가 가르친 바 없는 뭔가 신비로운 법문이라고 생각하며 늘 이렇게 묻습니다. ‘사자후’ 법문을 언급하는 불교 경전을 너무 많이 읽은 탓이지요. 그러나 여러분, 15년 동안 숱하게 그것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요! 아직도 더 원해요? (청중: “아닙니다.”) 그래요. 그걸로 충분하지요. 나 역시 그리 자주는 사용하고 싶지 않아요.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니까요.

내가 얘기하길 좋아해서 말을 많이 하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이 전에 나와 친구였거나 동료였던 사람, 같은 선생님 밑에서 공부했거나 같은 반이었던 동창들을 안다면, 예전의 나는 말수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누군가 내게 말을 많이 하려고 하면 난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곳은 말하는 장소가 아니에요. 더군다나 식사할 때는 말하지 말아요.”라고 하는 식이었지요.

어제 옛 ‘동수’를 만났는데, 그 사저는 옛날에 내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회합을 가질 때나 식사할 때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고 기억했습니다. 사실입니다. 나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지요. 아주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집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니고 아쉬람이나 모임에서도 그랬습니다.

그 사저는 내가 24시간 명상만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사저는 나를 기억했지만 나는 어제 그 사저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저는 나와 함께 점심을 먹고 싶다고 자기 자신을 내 점심에 초대했지요. (웃음) 그래서 그를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정말 기억이 납니다. 그 사저는 아주 사랑스러웠으니까요. 말을 많이 하지도 않았고 아주 좋은 수행자였습니다.

그가 내 기억을 되살려 주었습니다. 나는 그들과 더는 관계를 갖지 않고 연락을 취하지 않으니까 그들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를 알아보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난 정말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나와 오랜 기간 같이 일을 한 경우가 아니면, 물론 이런 경우는 예외지만,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여러분에게 말한 적도 있을 거예요. 그 사저에게 다시 한 번 사과합니다. 당신은 나를 ‘스승’이 아니라 ‘사저’라 불러야 합니다. 우리는 한때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했으니까요. 전에도 말했듯이 내겐 많은 스승이 있었습니다.

**한 곳에 집중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존중하라

그 사저는 점심때 모인 사람들에게 내가 전에 말도 거의 하지 않고 24시간 내내 명상만 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나처럼 되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나를 우상이나 이상적인 여성상 혹은 이상적인 수행자상으로 여긴다면 여러분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달리 비결은 없습니다.

한 곳에 집중하고 어떤 스승과 같이 있든 그동안에는 그의 가르침을 존중하십시오. 어느 날 내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어떤 이유가 있어 나를 떠난다 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여기 있는 동안에는 한 곳에 집중하고 내가 가르치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만약 이렇게 하는데도 좋은 결과가 없다면 언제라도 나를 떠나십시오. 여러분을 탓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내 충고를 귀담아듣지도 않고 내 가르침을 실행에 옮겨 보지도 않은 채 떠난다면 내가 유감스럽게 여길 겁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미안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의 과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음으로써 성장할 수 있고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것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니까요.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나쁜 것을 가르쳤다면 그 즉시 내게 알려 주십시오. 그리고 의심이 있다면 내게 물으세요. 그래야 옳습니다. 최근에 여러분 가운데 몇몇이 나에 대한 의심과 견해를 피력했습니다. 그것에 대해 난 전혀 화가 나지 않았지요. 나는 왜 그런지 그들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어떤 비판을 해도 환영하고, 어떤 의심을 해도 이해합니다.

그리고 내 설명을 듣고도 여전히 의심이 가고 이해할 수 없다면 가도 좋습니다. 그렇지 않고 내게 믿음이 있어 한번 해볼 생각이라면 최선을 다해 최상의 결과를 얻도록 해야 합니다. 기왕에 와서 그토록 많은 시간과 노력, 돈과 희망을 쏟았다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나를 위해 여러분이 꼭 그렇게 해야만 하고 그렇지 않으면 내게 죄를 짓는 것이라서 그런 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자신에게 죄를 짓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노력과 돈을 낭비했으니까요.

그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오지 마십시오. 아예 시작을 하지 마세요. 대신에 여러분에게 더욱 이롭다고 생각하는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세요. 괜찮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제각기 인연 있는 스승이 있으니까요. 서로 다른 이해의 등급을 지니고 있으니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스승을 만나는 것입니다.

만일 좋지 않은 스승을 만난다면 그건 자신의 업장입니다. 여러분 내면의 품성이 그런 스승을 끌어당기는 것이지요. 여러분 안의 내적 열망이 더 훌륭한 스승에겐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승을 탓하지 말고 자신을 탓해야 합니다. 스승의 잘못된 점을 발견하고 다른 스승으로 바꿀 때마다 그러한 스승에 이끌린 건 바로 여러분 자신이라는 사실을 아십시오. (박수)

**명상 중 장애에 부딪혔을 때

만약 집에서 어떤 장애를 만나면, 예를 들어 무형의 중생이 방해를 해서 명상을 잘할 수 없거나 안절부절못하고 흥분하게 되면 두 가지 해결책을 쓸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내 불찬 테이프나 음악 테이프, 강연 테이프를 틀어 놓는 것입니다. 등 뒤가 아닌 앞에서 약한 소리가 나게 틀어 놓으십시오. 절대 뒤에는 뭔가를 놓지 마세요. 왜냐하면 주의가 뒤쪽으로 쏠려 앞쪽으로 집중하기가 어려워지니까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좋지 않다는 겁니다.

테이프나 음악, TV 등 뭐든 듣고 싶을 때는 앞쪽에 두십시오. 전화나 팩스 등 모든 것을 말예요. 만약 사무실에 앉아 있어야 한다면 기계를 마주하고 앉으세요. 그것이 울릴 때면 앞에서 울리도록 해서 주의를 뒤쪽으로 빼앗기지 않도록 말예요. 뒤쪽으로 습관이 들면 앞으로 되돌리기가 어렵습니다. 전화를 사용할 때도 오른쪽 귀를 사용하는 습관을 들이세요. 왼쪽으로는 듣지 마세요. 뭐든 의식을 왼쪽이나 뒤로 끌고 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이걸 잘 기억하세요. 또 한 가지는 필요하다면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하루에 한 시간씩 크게 오불을 외우는 것입니다.

또 다른 보호책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끔 두려움을 느끼거나, 무형의 중생이 주변에 혹은 뒤쪽에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아니면 전에 귀신이 들려 내게 왔는데 아직까지 두려움이 남아 있다면, 내 사진을 앉은 자리 주변에 둘러놓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겐 내 사진이 많겠지요. 크기는 작아도 상관없습니다.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물이 중요한 것이니까요. 작은 사진으로라도 주위에 원을 만들어 놓으면 됩니다.

티베트의 만다라 전통은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지요. 그들은 언제나 원을 그렸습니다. 그 전통은 스승이 기념으로 준 가피물들을 주위에 둥그렇게 둘러놓고 그 가운데에 앉으라는 가르침을 주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원 가운데서 스승의 사랑과 축복으로 둘러싸이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점점 화려해져서 꽃과 향, 모래, 거기다 색깔 같은 온갖 것들이 더해졌지요.

좋고 안전하며 보호받는 느낌을 주는 것이라면 뭐든 좋습니다. 내 사진만이 아니고 원한다면 꽃이나 향, 촛불을 갖다 놔도 됩니다. 그렇다고 연기를 너무 많이 피워 놓고 기침을 하진 마세요. (웃음) 향이나 촛불에서 나오는 연기는 낭만적이고 영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많은 경우 짜증을 돋웁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목이 아프거나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이런 부작용은 오래가고 전혀 좋을 게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참을 수만 있다면 괜찮습니다. 난 여러분 수행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금하지 않습니다. 염주나 묵주를 돌려도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염주 알 세는 것에 습관이 들면 여기(지혜안)에 집중하는 것을 잊게 됩니다. 다시 돌이키기가 어렵지요.

우리는 이미 바깥 세상에 너무 매여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화장을 하거나 넥타이를 매지요. 이미 물질적인 것에 신경을 너무 많이 씁니다. 직장에서는 온통 정신을 돈에 쏟고 집에 와서도 돈만 생각합니다. 매일같이 여자, 남자, 넥타이, 보석, 화장, 돈에 대한 명상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명상할 시간이 나면 내면에 집중해야 합니다. 다른 스승이나 내가 광신적이거나 권위적이어서 이러한 것들을 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것은 모두 잊고 그저 내면의 지혜의 중심에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집중할 때는 정면을 바라봐야 합니다.

정면을 바라본다는 것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방식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내면에 있는 지혜안으로 보는 것이지요. 그러나 사실 우리는 내면에 있는 것도 외면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어떤 곳에도 있지 않습니다. 그저 설명을 하기 위해 그렇게 말하는 것뿐입니다.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내면에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물질적인 세상과 접하지 않고 내면에 홀로 있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을 재발견하고 알게 됩니다.

바로 여러분이 영혼이고 신이며 부처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그때 묵주나 염주 등은 우리의 집중을 방해하여 해를 줍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신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는 것은 무엇이든 좋습니다. 사진, 묵주, 십자가, 불상, 그 모든 것이 다 좋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자신이 부처이고 십자가이며 신이기 때문에 명상할 때는 모든 것을 잠시 잊는 편이 좋습니다. 그것을 일깨워 줄 뭔가가 필요한 게 아니지요.

만다라는, 여러분 가운데 무형의 중생에게 방해를 받은 적이 있어서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고 안 좋은 기억들로 인해 고통을 받거나 어둠을 무서워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명상을 할 때 두려움을 없애려고 촛불을 켜 놓곤 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가끔은 그런 조언을 하기도 합니다. 그것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누가 그렇게 하면 “그래, 촛불을 켜니까 좋은데.” 하면서 모든 이들이 따라 배웁니다. 그렇게 해서 그것이 습관이 됩니다. 그래서는 안 되지요.

앉아 있을 땐 홀로 되어야 합니다. 촛불도, 꽃도, 향도 필요 없고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이 어떻게든 정신을 산란하게 만듭니다. 촛불은 계속해서 깜빡이고 향은 냄새를 피웁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에취!”(스승님이 기침하는 흉내를 내시다.) (웃음) 기침을 하고, 앉아서 ‘이건 유향이야. 맘에 안 들어. 난 백단향이 더 좋은데.’(웃음)라는 생각을 하며 번뇌를 일으키다 보면 두 시간이 지나가 버립니다. 다음엔 꽃을 갖다 놓고, ‘장미잖아! 난 장미 알레르기가 있는데. 국화가 더 좋아.’라고 또 속으로 주절댑니다. 그리고 옆의 사람이 국화를 갖다 놓으니 스승님이 오신 것 같고 기분이 좋았으며 명상이 잘되었다는 등의 말을 듣고 나가서 국화를 사는 데 시간을 전부 허비합니다.

맹목적인 믿음은 해롭고 수행에 도움이 안 됩니다. 내 말을 포함하여 사람들이 말하는 모든 것을 여러분 스스로 검증해야 합니다. 받아들이기 전에 그것이 논리적인지 분석해 봐야 하지요. 내 생각에는, 내 가르침이 논리적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내 가르침은 논리에 어긋나는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상식, 최상의 논리에 비추어 볼 때 일치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걸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논리적이지 않다면 곧바로 내게 반박을 하거나 지적을 해주거나 편지를 써도 좋습니다.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한은 설명해 주겠습니다.

그래도 여러분이 받아들일 수 없다면 나와 견해가 다르다는 것이겠지요.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제각기 다른 생각을 하며 다른 인생을 사니까요. 나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고 여기에 머물러 있겠다면 여러분의 돈과 노력,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지혜안을 문지를 수도 있습니다. 너무 건조하면 기름을 약간 발라도 좋습니다. 그러면 훨씬 부드러워지죠. 그리고 나처럼 늙은 사람은 주름살도 펴지고요. (웃음) 난 마사지를 자주 하지는 않습니다. 화장할 때만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집중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손가락으로 이렇게 여기를(양미간에서 약간 위쪽으로 이마 한가운데를 가리키시다.) 대고 있거나 문질러도 됩니다.

**사랑과 수행

선이나 단체명상에 오면 주위를 너무 둘러보지 마세요. 여자를 쳐다보지 않는 것도 비정상이라고 내가 말한 적이 있지요. 나도 압니다. (웃음) 하지만 그것은 그 남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이었습니다. 그저 그가 정상이라는 것을 알게 하려고 한 말이었지요. 미혼의 총각이니 아름다운 여자를 보면 관심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보지 않을수록 여러분에게 더 이롭습니다.

특히 이미 결혼을 했거나 애인, 남편, 남자 친구가 있는 사람은 더욱 그렇습니다. 혼란이 적을수록 현재의 관계에 집중해서 그 관계 속에서 더 많은 이로움과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감과 열정이 생겨 수행을 포함한 모든 인생사에 열심히 임할 수 있습니다. 육체적 쾌락에 너무 탐닉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피곤해서 명상을 잘할 수 없고 수행에 전념할 시간도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뭐든 적당한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이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를 찾아야 한다면, 외로워서 대화를 나눌 상대나 함께 동행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면 친구를 갖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는 마십시오. 일단 어떤 사람을 만났으면 그에게 정성을 다하세요. 그래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많을수록 더욱 불행해집니다. 날 믿으세요!

그 때문에 모든 스승들이 한 명의 배우자로 족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질투 따위를 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윤리 때문도 아니지요. 단 한 사람의 배우자를 가지라는 것은 전적으로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바람을 피우며 여러 사람의 마음을 들쑤셔 놓고 다닌다면 도덕성은 언급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해를 입히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도 불행하고 공허해집니다.

사랑하는 것과 섹스를 하는 것은 다릅니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미안합니다. 그렇다고 뭐 잘못된 것이 있습니까? 없지요? 사랑을 한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서로 관계를 가지며 일체가 되고, 서로에게 느끼는 사랑과 애정을 나누는 것입니다. 존재의 모든 면이 관계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섹스를 한다는 것은 일시적인 욕망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공허감에 빠지지요. 가끔은 죄의식을 느낄 수도 있고, 가볍게 앓거나 심각한 질병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습관적으로 하다 보면 방심하게 되고,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거의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도덕적 측면에서, 정서적 만족감 측면에서, 영적인 보호 측면에서, 정신적 무장 측면에서 아주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렇게나 섹스를 할 때는 이 모든 것이 아주 낮습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이 약하지요. 그래서 일단 질병에 걸리면 그걸 이겨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랑을 하는 것은 다릅니다.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지복과 일체감과 신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감정, 정신, 영혼, 열정, 이 모든 것이 높습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가득 찹니다. 그 때문에 여러분은 다른 수준의 존재가 됩니다. 어떤 것도 여러분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완전 무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질병이 오더라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온몸으로 이 고귀한 사랑과 헌신과 하나 됨의 행위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질병은 근처에 오지도 못합니다. 두 사람이 동일체가 되므로 모든 것이 괜찮습니다. 모든 것이 순수합니다. 불결함이나 죄의식, 공허함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약간 피곤할 수는 있어도 체력이 고갈된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내면으로 행복하기 때문이죠.

이것은 단지 육체적 만족을 위해 성행위를 남용했을 때의 무엇인가 빨려나간 듯한 공허함이나 고갈된 느낌과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관계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관계에 충실한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고대의 스승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계율들은 지혜의 보고(寶庫)에서 나온 것입니다. 제약이나 통제, 명령이 아닙니다. 계율은 우리 자신의 이로움과 행복을 위한 것이니, 그것을 따르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도 원치 않는다면 두리번거리지 마십시오.

예의 바르고 친절하게 행동할 수는 있지만 일부러 문젯거리를 만들거나, 특히 다른 사람에게 문제를 안겨 주지는 마세요. 사전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만두세요. 물론 어떤 때는 아무것도 모른 채 문제를 만들기도 하지요. 이건 다른 경우입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다면 시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르고 했더라도 안 좋긴 마찬가집니다. 뒤처리를 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미 다른 사람의 연인임을 알고 있다면 후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아예 시작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 누군가가 있다면 과거의 사람은 잊어버리십시오. 이로울 게 없습니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과거가 더 좋았던 것 같지요. 나쁜 것은 잊어버리고 좋은 것만 기억하니까요. 그러나 사실 현재가 가장 좋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잘 돌보고 현 관계를 잘 풀어 나가면 조만간 이로움을 얻게 됩니다. 반면에 과거를 되짚거나 미래를 내다보면 걱정과 근심, 후회, 환상뿐이지요. 그러므로 사업에 있어서나 수행에 있어서, 선 행사 혹은 사적인 관계에 있어서 늘 현재를 직시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현재에 이익을 가져다주니까요. 과거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에겐 항상 과거가 더 좋았다는 환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늘 말하는 것처럼 선에 참가할 때는 모든 것을 놓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단상에 올라와 무의미한 질문들을 합니다. 나는 지칠 때까지 인내합니다.

그렇지만 아주 낮은 수준의 이런 질문들은 모든 이들에게 재를 뿌리고 전체의 분위기를 낮은 수준으로 끌어내립니다. 우리가 전부 그것의 영향을 받게 되지요. 그래서 내가 나서서 그것들을 쓸어 내야 합니다. 그러니 내가 가끔 ‘사자후’ 법문을 쓰더라도 양해하길 바랍니다. 다른 방법을 쓸 수도 있습니다. 바로 ‘호랑이 후’ 법문입니다. 차이가 있다고 느낀다면 바꿔 보겠습니다. (웃음) 이제 됐습니다. 이런 것들이 여러분의 명상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법입니다.

칭하이 무상사/ 1997. 12. 26. 미국 워싱턴 국제 선사


Copyright © Supreme Master Ching Hai International Associatio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