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다스리기
일하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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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오직 자신만이 알도록, 신조차도 모르도록 하십시오. 그래야 완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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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여러분이 신과 대중들을 위해 일하면 공덕은 몇 배로 늘어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수록 공덕도 몇 배로 불어나 여러분의 수행 진보를 위한 보물 창고에 쌓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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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또한 일종의 훈련입니다. 일은 우리의 성격을 형성시키고 인내심과 재능을 길러 주며 깨달음을 넓혀 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일을 두려워하는 것 또한 일종의 공포증입니다. 일을 많이 할수록 더욱더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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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을 바라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만 일할 때 모든 일이 순탄하게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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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을 갖고 자발적으로 일할 때 완벽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그 결과가 신, 우리의 진정한 지혜, 진정한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뭔가 기대하거나 자만심을 갖고 계산을 한다면 일은 잘못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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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완전한 헌신으로 봉사한다면, 늘 만족스럽고 성취감을 느낄 것이며 뭔가 요구하려는 마음도 없을 겁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풍족하게 가졌다고 느끼기 때문이지요. 신과 온 우주의 웅대한 계획에 대해 믿음을 가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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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고 신실하게 일을 한다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완벽이란 일을 훌륭히 해낸 과정에서 발견되는 것이지 일 자체에 있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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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경계해야 합니다. 일을 할 때는 독립적이고 논리적이며 양심적으로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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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스승님, 일을 하면서 자신을 발휘하고 싶은데 오히려 압박을 받는다면 일할 때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하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직장에서 야심을 갖는 것이 잘못입니까? 이 문제에 대해 지혜로운 답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스승님: 일에 대한 야심은 나쁘지 않습니다. 마땅히 일에 대한 야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일을 하고 진보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여러분의 사장과 자신을 기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회사에 이익을 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의무입니다.

야심을 갖는 것은 의무입니다. 야심을 가지라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머리를 밟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야망은 악덕이나 시기와는 다릅니다. 우리는 야심을 가져도 되며 다른 사람들을 억누르지 않고도 발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소 압박감을 느낀다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압박하는 이유를 알아봐야 합니다. 우리가 너무 경쟁적인 건 아닌지, 성격상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또는 다른 사람이 우리를 너무 시기하는 건지 말입니다. 할 수 있다면 그 사람과 대화하십시오. 우리가 옳다고 생각되면 그 사람이 그른 것이니 그와 대화해 보십시오. 상대의 태도가 좋아지면 그를 용서하고요. 좋아지지 않아도 어쨌든 용서하고 자기 일을 계속하십시오.

이 삶에서는 충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건 분명합니다. 대인 관계에서도, 때로는 부부 사이에도 한 사람이 크게 성공하면 서로를 시기합니다. 그것이 인간 두뇌의 문제점입니다. 하지만 영혼의 문제는 아니지요. 깨달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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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우리는 외부의 좋고 나쁨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외부의 영향을 받아 내면에 집중하는 것을 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 대부분이 성공하지 못하는 겁니다. 집중은 성공의 비결입니다. 우리가 명상을 많이 하고 주의력을 집중할수록, 무슨 일을 하든 더 순탄하게 이룰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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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고 신실하게 일할 때, 우리는 어떤 일도 잘할 수 있습니다. 완벽이란 일을 훌륭하게 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것이지, 일 그 자체에서 발견되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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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저는 저 자신과 직업 사이에 고민이 있습니다. 저는 변호사로서 큰 회사와 법인체 일을 맡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제소하는 사람들은 때때로 마음의 상처를 받고 물질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사람이 죽었을 때 회사가 보상금을 지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가 하는 일입니다. 저는 직업적인 성공이란 게 어떤 것인지 반성하며 수없이 고민해 보지만, 혼자서는 해결이 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에 보상금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이 제가 낸 소송 때문에 받지 못한다고 느껴지고, 저는 그것 때문에 몹시 괴롭습니다. 스승님께서 제게 좀 위로의 말씀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스승님: 이해합니다. 당신만 그런 질문을 하는 게 아닙니다. 둘 중 하나입니다. 회사에서 봉급을 받으니 회사의 요구대로 그렇게 하든가, 아니면 그만두고 개인 사무실을 내는 겁니다. 변호사는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일이 잦아지면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습관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지,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할지는 당신의 결정에 달렸습니다. 당신은 양심, 봉급과 명성 사이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데블스 에드버킷’이라는 영화를 본 적 있습니까?

질문: 예, 최근에요.

스승님: 좋아요. 그러면 ‘레인메이커’는 봤습니까?

질문: 그건 아직 못 봤습니다.

스승님: 비슷합니다. 그 영화를 보면 답을 얻게 될 겁니다. 다른 직업도 많습니다. 법률 학교에서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어떤 면에선 다른 변호사들을 육성하는 방법이잖아요? (웃음) 많은 사람들이 당신과 똑같이 느낍니다. 새내기 변호사로서 높은 이상을 갖고 시작하니까요.

그들은 정의를 위해 싸우고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고자 했지만, 막상 현실은 그와 정반대의 일을 하도록 몰아세웁니다. 여러 차례 그들은 집으로 돌아와선 마음이 아주 불편합니다. 자신들이 번 돈이 완전히 깨끗하진 않다고 생각하니까요. 변호사들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당신 개인의 사무소를 개업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경쟁이 아주 심하겠지요.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동시에 자신의 가치 기준을 지키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삶의 방식은 당신이 선택하는 겁니다. 내가 어떻게 하라고 말해 줄 수 없는 문제지요. 당신이 회사에서 봉급을 받고 회사를 변호한다는 것만 놓고 보면 일을 잘하고 있는 겁니다. 그 때문에 봉급을 받고 있는 거니까요. 당신은 회사에 대해 성실하고 충성스러운 것이니 누구도 그것에 대해 당신을 탓할 수 없습니다.

한편 양심은 당신에게 그 가난한 고용자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음을 말할 겁니다. 그가 죽거나 사고라도 당한 뒤 그의 인생이 끝나고 그 가족의 미래가 암울해지면 당신 양심은 편치 못할 겁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당신의 직업만 놓고 보면 당신은 일은 아주 잘한 겁니다. 그 일을 하도록 돈을 받았으니 그렇게 해야 합니다. 당신은 일은 잘했지만, 이제 성공한 변호사가 될지 양심적인 인간이 될지 당신 스스로 선택해야 합니다.

다른 일도 많습니다. 밖에서 두부를 팔거나(웃음) 피자를 배달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문제는 일단 성공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거기에서 멈추거나 내려오기가 아주 어렵다는 겁니다. 하지만 일단 마음속으로 단념하면 아주 쉽습니다. 깨끗한 양심과 마음의 평온이 이 세상의 모든 금덩어리보다 귀중하다는 것을 안다면 당신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비버리힐즈에서 살거나 국회의사당에서 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동 주택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 아주 저렴하지요. 중고 이동 주택은 15,000달러나 20,000달러 정도, 때에 따라서는 5천 달러나 만 달러 합니다. 청소할 것도 많지 않으니 한 달이나 일주일에 한 번씩 청소하는 사람을 부를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이동 주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웃고 싶으면 웃어도 좋습니다.

그것보다 큰 집을 살 만한 여력도 되지만 지금으로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더 큰 집을 샀다면 나는 청소하고 잔디를 깎고 온갖 일들을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의존해야 했을 겁니다. 그러면 불필요한 경비가 많이 들겠지요. 능력이 돼서 큰 집에 살고 이름 있는 차를 갖고 하는 것은 특권이자 특전입니다. 그럴 능력이 안 되면 중고차도 좋고 이동 주택도 좋습니다.

갚을 빚이 없으면 아주 행복할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여러분은 잘못에 대해 자신을 탓할 필요도 없지요.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영원토록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저택’입니다. 바로 평화로운 마음과 깨끗한 양심이지요. 그래서 많은 스승들이 천국을 얻기 위해 세상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겁니다. “살고자 하는 자는 생명을 잃을 것이요, 삶을 포기하는 자는 영생을 얻을 것이로다.”(마태복음 16:25)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우리는 물질적인 안락과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에 지나치게 묶여 있는 탓에 우리 자신이 이 모든 것들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잊습니다. 우리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비버리힐즈에 파티를 하러 갈 필요가 없습니다. 다 버릴 수 있지요.

우리는 호화롭고 부유한 친구들을 떠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경쟁심을 일으키고 그들처럼 되기 위해 끝없이 올라가야 한다고 느끼게 만듭니다. 얼마 안 있어 여러분은 파티와 거물급 친구들, 명성 등 모든 것에 싫증이 나서 그저 자기 방에 있고만 싶을 겁니다. 작은 방이라도 좋다면서요. 여러분은 명상하면서 내면으로 아주 행복할 겁니다.

물질적인 것들을 과시할 필요가 없어지니 어떤 일도 할 겁니다. 우리는 직업에 의존하지 않으며, 명성이나 위신에 따라 살아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신에 의존하고, 내면의 평온과 깨끗한 양심에 따라 살아갑니다. 그래서 예수가 이렇게 말한 겁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느님을 볼 것이요”(마태복음 5:8)라고요. 신의 왕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정말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옆집 사람처럼 되려고 애쓴다면 어린아이처럼 될 수 없습니다. 많은 유명 인사들이 온다고 해서 여기저기 파티에 가려면 우리 또한 뭔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되어 그곳에 갈 수 없고 스스로 부끄럽게 여길 겁니다. 하지만 그건 부끄러워할 게 아닙니다. 신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했다면 부끄러워해야 마땅하지요. 도덕성을 갖추지 못했다거나 양심이 떳떳하지 못한 경우라면 부끄러운 게 당연합니다.

우리는 물질적인 도구가 부족하거나 초라한 집에 살고 중고차를 갖고 있다고 해서는 결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생각이 많은 사람들을 속박하고 지위에 집착하게 만들고 자신의 양심과 의지에 위배되는 일을 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속으로 몹시 고통스러워합니다. 이 세상의 금을 다 준다 해도 그것을 보상할 수 없지요.

그들은 불편하게 느끼다가 나중에는 그 모든 아픔이 암이나 그와 같은 질병으로 발전합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나는 지금 사람들에게 그들을 묶고 있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지는지 말해 주는 겁니다. 돈은 독입니다. 돈은 많은 사람들을 망치고, 명성과 허망한 지위로 좋은 사람들을 많이 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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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자신의 모든 행동의 동기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일을 하는지, 자신의 자질을 증명하기 위해 하는지, 아니면 에고 때문에 하는지 어떻게 알지요?

스승님: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그 일을 하는지 압니다. 그것을 즉시 느낄 수 있지요. 설령 처음에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을지라도 나중에 자신을 점검하다 보면 왜 이 일, 저 일을 하는지 압니다. 만약 에고 때문에 하고 있다면, 스스로 점검하고 마음을 바꿔 보다 무아의 정신으로 일하십시오.

대개 처음에는 왜 우리가 이런저런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경쟁적인 태도로써 어떤 일이나 봉사를 할 수도 있지만, 자신이 경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즉시 마음을 바꿔 먹고 ‘안 돼! 이렇게 하면 안 되지. 이렇게 느껴서는 안 돼! 나는 이 일을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기회와 영예로 삼아야 해.’라고 생각합니다. 이 편이 더 고귀하지요.

우리의 행동이나 의도에 있어서 충분히 고귀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자신을 즉각 점검해서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하는 일은 같지만 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설령 처음에는 의도가 고귀하지 않았어도 우리는 도중에 그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속이기도 하기 때문에 때론 그게 어렵습니다. 마음은 우리를 속여 이렇게 생각하게 만듭니다. ‘오! 나는 인류에게 봉사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마음으로 봉사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한동안 자신을 점검하고 나면 우리는 행동과 생각, 동기를 더욱 신중히 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천성적으로 에고 없이 됩니다.

때로 우리가 에고로 했다 해도 괜찮습니다. 그냥 자신을 용서하십시오. 최소한 다른 누군가가 봉사를 받을 테니까요. 다른 누군가가 여러분의 행동을 통해 이로움을 얻으니 괜찮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선 자신의 의도가 고상하다는 것을 알고 그를 통해 자신이 더욱 훌륭하고 진보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아는 편이 더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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