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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길목에서

스승님에게로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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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겨울, 우연히 칭하이 무상사의 관음법문에 관한 견본책자를 얻어 보게 되었다. 나는 견본책자를 읽고 스승님의 가르침에 공감했고, 스승님의 말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역 센터의 도움으로 나는 많은 책과 비디오, 오디오 테이프를 보고 읽을 수 있었다. 나는 비디오와 오디오 테이프를 보고 들을수록 스승님과 인연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곧 채식을 하고 방편법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명상하는 동안 스승님께 빨리 입문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응답이 왔다. 어느 날 저녁 스승님의 책을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가 “나를 보러 오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별로 의식하지 않고 책을 계속 읽어 나갔다. 다음날 저녁이었다. 스승님의 잡지를 읽고 있었는데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보러 오세요.” 목소리는 너무나 생생했고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길 수 있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한 동수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 체험을 말했다. 나는 그 동수가 내 이야기를 들으면 나를 비웃거나 미친 사람으로 생각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주의 깊게 듣더니 스승님을 뵈러 가기 위해서 짐을 꾸리라고 했다. 스승님이 호주 선행사에 오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말했다. “스승님을 뵈러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겠고, 입문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나에게는 이 말이 운에 맡기고 한번 해봐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나는 여권도 없었고 선행사는 며칠 뒤에 시작될 예정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빨리 여권을 발급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여권과 비자를 발급받으려면 보통 몇 주씩 걸리기 때문이다. 나는 스승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하루 만에 도착하는 속달로 서류를 접수했다. 스승님은 다시 한 번 나에게 나타나서 확실히 만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며칠 만에 여권이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번에는 호주비자를 받기 위해서 여권을 워싱턴에 보냈다. 하지만 비자가 나오려면 일주일이 걸리기 때문에 호주에 못 가는 건 기정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호주에 있는 미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을 때 대사관 직원이 쿠안타스 항공편을 이용해서 호주에 가면 5분 내에 전화로 비자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알려 주었다.

아직도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는데, 그것은 돈이었다. 급하게 사면 비행기 표가 아주 비싸기 때문이다. 정말 이건 나에게 큰 시험이었다. 평생 동안 비행기 표를 사는 데 이렇게 많은 돈을 써본 일은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한번 해보기로 했다. 나는 타고 갈 비행기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시드니 센터에 팩스로 보내 주고 바로 비행기에 올랐다.

호주에 도착한 나는 비행기에서 내린 다음 몇 시간 동안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만나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혹시 큰 실수를 한 건 아닌가 해서 초조해 하기 시작했다. 시드니 센터에서 내 팩스를 못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어쩔 줄 몰라 당황했다. 전화를 걸려고 공중전화 박스로 걸어갔지만 호주 동전이 없었다. 나는 스승님의 사진을 움켜잡고 스승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기도를 하니 저절로 발길이 공항 안내 표지판으로 향했다. 열 걸음도 안 되는 곳에서 두 사람이 스승님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나는 순간 안도했고 그들에게 가서 물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지요?”

하지만 그들은 서로 쳐다보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 누구예요? 우리는 일본 동수 2명을 기다리고 있어요. 당신은 모르겠는데요.”

나는 내 소개를 했다. 그러자 우리는 스승님께서 일본 동수와 나를 함께 데려가도록 배려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들을 따라 선행사가 열리는 장소로 갈 수 있게 되어서 매우 기뻤다.

마침내 캠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진행요원은 입문식이 예정에 없기 때문에 캠프장에 들어올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할 수 없이 밖에서 스승님을 기다렸다. 나는 그때 침낭도 없었고 텐트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 그러나 공항에서 나를 안내해 준 동수 한 명이 캠프장 밖에서 지내는 데 필요한 침낭과 그밖의 다른 물품들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런데 밖에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캐나다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둘 다 채식을 석 달 채우지는 않았지만 간절히 입문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친구가 되었다. 스승님이 드디어 도착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평생 처음으로 살아 있는 스승을 만나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우리는 우리 두 사람에게 입문을 시켜 준다는 말을 듣고 너무나 기뻐했다. 이 소식은 스승님이 우리를 호주까지 인도하셨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이었다. 더구나 어머니의 날이자 스승님의 생신날 입문하게 되어 아주 영광스럽게 생각했다.

나는 입문식이 끝난 다음 무대 위에서 스승님 근처에 앉게 되었다. 나는 이 소중한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스승님 옆에 앉아서 스승님의 사랑스럽고 자비로운 눈을 본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스승님, 당신은 저에게 말씀하셨었지요, “나를 보러 오세요”라고. 그래요, 나는 당신을 뵈러 왔습니다. 이제 나를 집으로 데려가 주세요.

-뉴스잡지 84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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