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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일깨우는 말씀 자신의 삶을 길들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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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간의 사랑에 관한 농담이 있습니다. 한 백만장자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응급실로 옮겨졌지요. 그의 세 아들은 복도를 서성이며 걱정스럽게 의사를 기다렸어요. 의사가 나왔을 때 그들은 물었습니다. "의사 선생님, 희망이 있습니까?"
의사는 말했어요. "아니오, 희망이 없습니다. 팔이 약간 부러졌을 뿐입니다. 일주일 후엔 완쾌될 겁니다." (웃음)

이것은 여러분들이 나에게 하는 질문과 내가 하는 대답의 완벽한 예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방식으로 답하지 않지요. 질문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맞습니다. 때때로 여러분은 길게 우회해서 질문을 표현합니다. 계속 돌고 돌죠.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난 알아요. 그 의사처럼요. 보통 사람들은 그 세 아들이 아버지의 안녕에 대해 질문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의사는 압니다. 아마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거에요. (웃음)

예. 깨달음의 수행자들은 이 의사처럼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병을 진단해서 내면 깊이 간직한 우리의 바람을 알아냅니다. 때론 우리보다 더 잘 알아요.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예요. 매일 자신을 속이면서요. 스스로 괜찮고 선량하다고 생각합니다. 고귀하고 완벽하다고 생각하구요. 그래서 그 누구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고 무언가 말할 수도 꾸짖을 수도 없습니다. 누구도 우리의 잘못을 고쳐 줄 수 없어요. 우리는 이미 완벽하니까요.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압니다. 그런데 그저 알기만 할 뿐 실행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스승과 다른 사람들의 차이입니다.

스승이 태어날 때부터 완벽한 것은 아님을 여러분에게 꼭 상기시켜 주어야겠어요. 나는 바보 같은 짓을 참 많이 했어요. 젊은날 부렸던 어리석음이었지요. 나의 어리석음으로 자신을 바보로 만들었지요. 수학 시간에 학교를 빠져나와 영화관에 간다든지 나쁜 짓도 많이 했어요. 혼다 오토바이로 시속 120km를 달렸어요. 배기관을 부수면 혼다는 더 빨리 나가지만 엄청난 소음을 내지요. 사람들의 귀는 신경쓰지 않고 단지 옆사람보다 빨리 가려고만 했지요. (웃음)

내가 태어날 때부터 완벽했다고 여러분에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학교에서 성적이 좋았던 것은 지능지수가 약간 높았기 때문이지 열심히 노력했던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스승이라고 해서 완벽한 인간은 아니에요. 결코 그렇지 않을 뿐더러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겁니다. 그걸 알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스승은 자신의 실수를 관리할 수 있습니다. 매일 실수로부터 배우고 개선할 것을 다짐합니다. 천재가 되는 것이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이듯 스승도 마찬가지죠. 스승이 된다는 것은 자신을 관리한다는 것이지, 그 외에 어떤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 당신을 따른다면 그것은 단지 당신으로부터 나오는 자장 때문입니다. 당신의 진정한 신실함이 내면으로부터 그들을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어떤 것도 말할 필요가 없지요. 그들은 당신을 믿을 것이고, 스승이 된다는 것은 그와 같습니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완벽했다거나, 현재 완벽하다거나, 언젠가 완벽해질 거라고 믿지 마십시오.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처럼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관리했지요. 마음이 나에게 무엇을 하도록 지시하는 걸 허락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마음을 알기 때문이죠. 우리는 친구가 됐고 거래를 했어요. "너는 이걸 하고, 나는 저걸 할게. 서로 귀찮게 하지 말자. 네가 이것을 잘하면 내가 상을 줄게. 난 너를 잘 돌봐 주잖아, 그렇지 않니?" 나는 그렇게 말합니다. "네가 원하면 나는 어떤 것이든 준다." 지금 마음은 많은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에게서 많은 걸 얻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잊어 버리지요. 마음이 잠자고 싶어할 때 나는 말합니다. "안돼, 일어나! 일해!"

그러면 마음은 그렇게 해야만 하지요. 그래서 마음은 10년 후, 이것에 익숙해져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여자에게 말해 봤자 소용없지, 정말 고집센 여자야,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하니 논쟁할 필요가 없어." 바로 이것이 스승에 관한 전부이며, 완전을 향한 쉼 없는 노력, 보다 나은 고귀한 개성을 위한 노력이지요. 아니 개성이 아니라 더 높은 이상이라고 해야겠네요. 보다 나은 개성을 원한다는 것은 여전히 명성 등 온갖 것을 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자랑하고 싶은 에고를 여전히 갖고 있어요. 그건 참되지 못해요.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고상한 일, 하고 싶은 일이 이상적이고 남을 이롭게 한다면 반드시 행해야 합니다. 어떤 희생이 있건 간에 실행하세요. 단지 말만 하지 말구요. 그것이 유일한 차이입니다. 안 그러면 뭐 다를 게 있겠습니까?

지금 당장 수술을 받는다고 머리가 훨씬 더 좋아지는 건 아니에요. 아마 내 지능이 조금 높거나 여러분이 조금 높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두뇌는 똑같아요. 의지력도 똑같습니다. 여러분이 노력해서 그것을 강하게 만드느냐 아니냐를 제외하곤 똑같지요. 그것은 당신의 자유의지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유해하게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더 높은 의식으로의 진보를 더디게 합니다.

왜 우리가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애써야 하는지 나에게 묻지 마세요. 가만히 누워서 빵이 하늘에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무지하고 나태하며 게으른 TV 중독자가 되는 것보다 고귀한 존재, 현명한 존재가 되는 것이 더욱 편안합니다. 나를 숭배하지도 따르지도 않는 편이 더 낫습니다. 단지 나의 본보기들을 따르세요. 내 노력의 결과들을 숭배하고 행하십시오. 내가 한 것과 같은 일을 하세요. 즉시 스승이 될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보다 나은 일을 하도록 자신을 가르치세요. 인류와 자신에게 이로운 일로서, 남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도록 자신을 가르치세요. 사람들에게 이롭고 자신의 판단력과 지혜를 향상시킬 일로서, 남들이 견딜 수 없는 일을 하도록 자신을 가르치세요. 자신을 알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하십시오. 당신의 위대한 힘은 아직 깊은 곳에서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지금의 모습보다 더 고귀합니다. 당신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이익을 주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죽을 때 알게 될 거에요. 그 순간에 인생을 되돌아보며 참회해도 이미 때는 너무 늦습니다. 매우 고통스러울 거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죽을 때 커다란 고통을 겪는 겁니다. 해야 할 일들을 완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양심이 질타를 하는 거지요. 마음이 육체를 조절하며, 양심이 육체적 존재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래서 양심이 편하지 않으면 아프고 고통스러운 거죠.

때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매우 슬퍼집니다. 그럴 때면 우리의 몸과 근육까지도 아프게 되지요. 끔찍한 상황이나 겁에 질렸을 때 모든 근육에 강한 통증이 오기도 하지요. 처음엔 뭔가 이상한 걸 느끼다가 나중엔 온몸이 아프게 되는 겁니다. 때론 거의 움직이지도 못해요. 깊은 슬픔에 빠졌을 땐 마치 수만 마일을 쉬지 않고 뛰어온 것처럼 온몸이 피곤합니다. 때로는 어떤 문제가 생겨서 몇 시간 동안 계속 웁니다. 그 다음에는 기분이 어떤가요? 때로 안도감을 느끼지만 너무너무 지칠 거에요. 그렇지 않나요? (예) 특히 한 문제 때문에 상심이 매우 크고 정말로 슬플 때는 우리의 몸도 허물어질 것만 같습니다. 당신에게 강한 의지가 있다면 그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세요. 일어날 일들은 일어납니다. 그 상황에 적응하고 잊어 버리세요. 다른 일들을 하고 기운을 내서 더 나은 다른 일을 찾으세요. 그러면 잊을 수 있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의지력과 지혜가 없어서 일시적인 기분들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기분에 좌우되어 매일 더욱더 비참해지고 약해지지요. 그리곤 병이 듭니다. 심리적으로 꺾인 겁니다. 치료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때론 치료가 불가능할 때도 있어요. 그들의 정신적인 방어 체제는 완전히 무너진 거지요. 때로는 병원에 가야 하거나, 영원히 병원 신세를 지기도 합니다. 정신적으로 무능력자가 되어 자신과 친척, 친구, 사회에 짐이 되어서 말예요.

그래서 여러분의 의지력과 고귀한 희생 정신을 놓아 버리는 건 매우 위험한 겁니다. 여러분은 늘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어떤 변명도 하지 마세요. 남에겐 변명할 수 있어도 자신에겐 결코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매일 내면을 성찰하고 진보가 있는지 보세요. 그렇지 않으면 내게 어떤 말도 하지 마십시오. 인류를 돕겠다느니 진리를 전파하겠다느니, 진리를 알았다느니 말예요.

진리에 관한 농담을 하나 더 해 줄게요. 제자를 몇 명 둔 한 선사가 있었는데 그의 제자 한 명은 입문 후 매번 스승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마치 여러분이 수행일기를 써서 나에게 보내고 어떤 '진보'를 했다고 보고하는 것처럼요. 그 제자는 스승에게 편지로 말했어요. "스승님, 저는 깨달음에 깊이 몰두해 있습니다. 제 모든 시간을 바쳐 내면의 진아를 찾고 있습니다." 스승은 첫줄만 읽고 휴지통 속으로 처넣었어요.

한동안 지난 뒤 그는 스승에게 또 편지를 썼습니다. "아! 스승님, 전 우주가 저의 지고한 사색에 응답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는 참으로 경탄할 만합니다. 우주의 힘은 정말 위대합니다." 스승은 그 편지로 코를 풀고 (웃음) 변기에 던져 버렸어요.

그 제자는 다시 세 번째 편지를 썼습니다. "스승님, 저는 지금 모든 인류와 소외된 모든 존재들을 향한 자비심이 있습니다. 심지어 개미의 심장이 뛰는 소리도 듣습니다. 그리고 그 영혼이 몸부림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스승님, 참으로 놀랄 만한 발견이지요? 저는 더욱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제자가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조만간 스승님도 알게 될 겁니다." 스승은 그 편지로 뭔가를 닦았습니다. (웃음) 어딘지 알죠? 말하지 않겠어요. (스승과 모두 웃음) 그리곤 변기 속에 처넣었습니다. 가망이 없다고 느낀 거지요.

그 제자는 다시 네 번째 편지를 썼습니다. "스승님, 저는 지금 우주와 하나입니다. 모든 것이 나이고 나는 모든 것입니다. 내가 아닌 것은 없습니다. 나는 모든 것입니다. 오! 저는 저 자신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웃음) 스승은 편지를 건드리지도 않고 바람에 날려 어디론가 날아가게 했습니다. 더 이상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지요.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스승은 그 제자에게 말했어요. "더 이상 나에게 편지 쓰지 마라. 펜과 종이만 낭비할 뿐이니까." 그래서 그 제자는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스승은 그 제자를 너무 매정하게 대한 것이 미안하게 느껴졌어요. 그 환상적인 제자를 기억하며 메시지를 보냈지요. 오랫동안 그 제자에게서 아무런 소식도 없었습니다. "자네, 어떻게 지내나?" (웃음) 아마 스승은 그 제자의 말도 안되는 '대 우주적인' 편지를 그리워했나 봅니다. "수행에 진보가 있었는가?" 제자는 큰 종이 위에 단 두 단어로 답장했습니다. "관심 없어요." (웃음, 박수)

스승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아세요? 예! 제자에게 가서 커피나 차, 혹은 쎄븐 업을 칵테일한 무알콜 맥주를 마셨지요. (스승님과 모두 웃음) 바로 그런 식입니다.

자신이 괜찮다는 것을 알 때에만 그 제자처럼 초연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나에게 편지를 아무리 많이 써도 소용없습니다. "스승님, 사랑해요. 우주의 힘이 자비를 베풀어 주었어요." 이 모든 것은 넌센스이고 이론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이론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입만 열면 자비와 깨달음, 지혜를 설교하지만 그것을 행하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알지도 못하고 얘기만 합니다. 매우 따분합니다. 그들에게 말이 필요 없다는 걸 이해시키는 건 매우 힘듭니다.

내가 항상 말하는 건 여러분이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청중: 예) 또한 나는 여러분을 가르치기 위해 말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여러분을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틀린 겁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에게서도 아무런 희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내가 여러분에게 어떤 것도 가르칠 수 없다는 걸 알아요. 단지 다양한 표현으로 여러분을 즐겁게 할 뿐이에요. 그 중에서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간직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그러면 나를 기억하고 수행하는 걸 잊지 않을 겁니다. 언젠가는 여러분이 내 가르침을 통하지 않고도 스스로 모든 것을 알게 될 거에요. 아마 30퍼센트 정도는 내 가르침에 의존할 수도 있겠지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러분이 나를 기억함으로써 우리는 내면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누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지 않아요. 하지만 무엇을 하든 여러분이 요구했기 때문에 나는 최선을 다합니다. 여러분이 원해서 내가 하는 거지요. 말로써, 이야기로써, 언어로써 여러분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간에 깊은 유대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깊은 연결을 통해 우리는 내면으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아마 그것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가르침일 겁니다. 여러분은 이미 부처입니다. 하나의 독립된 개체지요. 나처럼요.

여러분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할 필요가 뭐 있나요? 여러분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단지 서로간의 내면의 연결을 통해서, 나의 내면의 진아가 여러분 내면의 진아를 일깨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내면의 진아들이 다시 하나로 융합되는 것입니다. 가르침은 없습니다. 본래 영혼은 완벽하므로 어떤 것도 배울 필요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오직 인간의 두뇌, 에고만이 완벽하지 않게 태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점검하는 것보다 그냥 실수하는 것이 쉽고 편안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다시 실수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사회의 많은 고귀한 이상들이 실현될 수 없는 이유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류에 편승하여 홀로 눈에 띄기를 원치 않고, 그들이 믿기에 가장 숭고한, 최고의 삶의 방식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가르침을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깨닫고 싶어하고 이것저것 원한다고들 하지만 이렇게 말하지요. "아, 채식은 불편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이들은, 아내는, 친구들은, 직장 동료들은, 사장님은?" 여러분에게는 자신의 해탈과 생존만 빼고 모든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참 어처구니 없습니다. 그러다 만일 내일 여러분이 죽는다면 누구도 도움을 줄 수 없어요. 지옥에 가게 된다면 여러분의 사장, 아내,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 주위에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든 여러분 혼자 가야 합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모두가 압니다. 아마 모두가 알지는 못해도 여러분은 알 것입니다.

그러니 조심하세요! 그리고 잊지 마세요. 우리는 내일 죽을지도 몰라요. 나의 많은 제자들이 이미 죽었어요. 그것을 슬퍼하는 게 아닙니다. 삶은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내 말을 믿으세요. 삶은 끝납니다. 내 생명도 그렇고요. 그날이 올 때 난 행복할 거에요. 그날을 기다리는 건 아니지만 와도 상관없어요. 내 말은,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없으며 내일이라고 시간이 나는 게 아니란 뜻입니다. 내일 시간이 없으면 어떻게 되지요?

우리는 대부분 오늘보다 내일 더 많은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내일이 되면 오히려 일이 더 많이 생겨서 시간이 더 없게 될 거에요. 왜냐하면 어제 일을 하지 않았고 내일과 미래 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괜찮다고, 시간이 있다고 우리 자신을 속입니다. 그래요, 우리는 잠시 그렇게 피해 다닐 수도 있지요.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럴 순 없습니다. 마음을 계속 따른다면 우리는 결국 패배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나는 많은 것을 두려워해요. 이미 말했죠, 비행기 타는 걸 포함해서요. 나는 비행기를 타고 싶지 않아요. 비행기 타다가 죽는 게 두려운 것이 아니라 기내의 좁은 공간이 싫어요. 기내를 가득 메우는 담배 연기도 싫고요. 일등석이나 이등석, 금연 구역 할 것 없이 담배 연기가 있지요. 모든 이를 위한 무료 선물입니다. 담배 하나로 모든 사람이 같이 피우지요. (스승님과 모두 웃음) 매우 경제적입니다. 이 모든 게 싫습니다. 좋아하지 않아요. 그러나 꼭 어떤 일을 해야 한다면 나는 합니다. 그것을 좋아해서가 아닙니다. 그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면 내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상관하지 않고 합니다.

나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지만 상관없습니다. 나는 마음에게 말하지요. "네가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해야 해." 나는 마음에게 그것을 좋아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마음에 관해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이 그것을 좋아하건 말건, 기분이 내키든 안 내키든 말예요. 나는 마음이 내면에서 늘어놓는 불평들을 다 받아들이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죠. 그것이 스승과 제자의 차이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빨리 스승이 되고 싶으면 자신을 길들이세요. 당신의 결정을 길들이고, 삶 속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길들이세요. 당신의 희망, 아끼는 것, 당신의 성장에 가장 이로운 것, 당신의 주위 사람들을 잘 관리하세요. 영혼은 영원히 영리하고 현명하고 순수하니까요. 그러나 영혼이 계속 마음과 같은 끔찍한 친구와 함께 불결한 육체 안에 갇혀 있으면 그 전능한 힘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마치 당신 스스로 집안에 갇혀 있는 것처럼요. 어떻게 나가겠습니까? 당신 스스로 자신을 집안에 가두었다 해도 여전히 갇혀 있는 것이지요. 누가 가두었든 당신 스스로를 안에서 잠근다면, 당신은 안에 있습니다. 열쇠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면 그건 당신의 잘못입니다. 당신이 얼마나 영리하든 안에 잠겨 있다면 당신은 여전히 갇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잠갔어, 이건 달라"라고 말할 수 없어요. 아무 차이도 없어요. 음식도, 음료도, 친구도, 전화도, 외부와의 접촉도 없이 한 달 동안 그 안에 머문다면 여러분은 죽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생각하기에 옳은 것, 완벽하고 바른 것을 주장하고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누구도 우리 대신 할 수 없습니다. 스승도 하지 못합니다. 스승은 단지 길을 안내할 뿐입니다. 걷는 것은 여러분이 해야 해요. 물론 당신이 아플 때나 걸을 수 없을 때 스승은 당신을 데려갈 겁니다. 하지만 영원히 그럴 순 없어요. 당신에게 좋지 않아요. 그렇게 하면 당신은 절름발이가 될 거에요.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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