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
자신의 신성을 인지하라

고대로부터 내려온 난해한 질문들

어딘가 우리의 삶이 시작된 시점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우리 삶의 기원은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요. 아니면 지금 막 시작된 것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자신의 근원이 어딘지를 잊어버렸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대답할 수 없는 유일한 질문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그밖의 모든 것에 대해서는 영리한 우리들이 잘 알고 있지요. 책을 통해서 배우고 실험실에서 실험을 합니다. 화학물질이나 과학지식을 사용해서 문제를 풀고 답을 얻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디에서 왔지?"라는 질문만 나오면 모두들 당황합니다. '죽은 다음에 우리는 어디로 가지?'라는 질문 역시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들지요.

많은 사람들의 삶이 단지 관속에 들어갔다고 끝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지만 증명할 순 없습니다. 고대로부터 존재해 온 많은 성자들에게는 매우 간단한 질문이지만요. 그들은 자신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습니다. 죽음의 문제가 그들에게 어떤 힘을, 어떤 두려운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성자들이 '나는 매일 죽는다'고 말한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매일 죽는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우리 자신을 내면으로 끌어당겨 신의 왕국으로 들어간다는 것이죠. 일시적으로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겁니다. 우리가 고대의 성인들이나 예수의 발자취를 따른다면 부활은 일상생활 가운데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한 번 죽어본 적이 있거나 매일같이 죽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삶이 있고 이 물질세계 외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지요. 그때 우리는 자유롭게 우주를 유람하고 우주의 신비를 탐험할 수 있습니다. 죽음이 별 게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사실 우리는 결코 죽지 않는다는 걸 알지요. 또 이 육신조차 갖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아요. 이상하게 들릴진 몰라도 이건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습니다. 생명을 구걸하지도 않았고 도망치지도 않았죠. 도망칠 수 있었지만 그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었지요. 자신이 어디로 갈지 알고 있었기에 모든 것을 신의 뜻에 맡겼습니다. 그는 죽음이나 고통 같은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늘 알고 있었습니다. 진짜 고통은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모를 때 생겨납니다. 예수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육신의 안락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의 공포도 떨치고 그는 갔습니다. 범부의 눈에 죽어서 썩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단지 이 육신일 뿐, 자신은 항상 그곳에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예수의 지혜에는 그 육신조차도 존재하지 않았지요.

우리가 예수나 부처 같은 위대한 스승들이 걸어간 길을 따르지 않는 한 이것을 증명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들은 같은 길을 걸었고, 그래서 우리가 그것에 불교나 기독교라는 다른 이름을 붙일지라도 그들의 가르침은 동일한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용어를 만들어내고 하나의 진리를 두 가지 범주로 나누어서 자신을 혼란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스승들은 항상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을 가르칩니다. 리본을 끊고 포장지를 벗기듯이 각 스승의 재능과 언변이 어떻게 다른지 자세히 관찰해서 그것을 벗겨보면 모두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깨닫거나 같은 길을 따르거나 같은 방법을 수행한다면, 양쪽 모두 같은 길을 가는 것이므로 그것이 정확히 같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 모두 이 강당에서 잠시동안 앉아 있은 후에 밖에 나가서 이 강당에 대해 묘사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겁니다.

깨달음은 우리의 본성

무엇 때문에 사람들은 그렇게 깨달음을 신비화시키며 찬탄할까요? 왜 우리는 수행해서 깨달음을 얻으려고 할까요?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진리 때문입니다. 그것은 당위이고, 실상 그대로입니다. 만약 깨달음을 모른다면 신을 아는 것 외에는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고통받을 겁니다. 그러다 우리가 신을 알길 원할 때 신은 우리에게 친구나 안내인, 경험 있는 사형 등 누군가를 보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지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될 때, 그때가 바로 깨닫는 때입니다. 그 즉시 예수나 부처처럼 크게 깨닫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는 깨닫게 됩니다. 그후 매일매일 깨달음은 계속되고 결국에는 예수나 부처처럼 위대하게 되는 거죠. 우리는 예수가 말한 ?내가 무엇을 하든 너희도 할 수 있으며, 너희는 더 잘할 수 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라는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겁니다. 우리는 신의 자녀이고 신의 사원이며, 성령이 우리 내면에 거한다는 것을 이해할 겁니다.

신이 우리 내면에 거한다면 우리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바로 신입니다. 이 몸이 집이고 신이 그 안에 거한다면, 신 말고 누가 거기에 있겠습니까? 신과 내가 같은 집에 사는 것이 가능할까요? 예수는 나와 신이 거기에 거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와 아버지가 하나라고 말했지요. 나와 아버지가 하나라면 어떻게 우리가 신을 모를 수 있겠습니까? 성령이 이 사원에 거하는데, 이 육체가 유일한 사원이며 그 사원 안에 오직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안에 누가 있을까요? 오직 한 존재, 신만이 있습니다.

나는 이전에 그 사실 때문에 이따금씩 울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했지요. '내가 신이라는데 나는 왜 이리도 초라할까? 왜 이리도 나약하고 왜소한가? 어떻게 이토록 무지하고, 고통받을 수 있지? 내 고향은 어디인가?' 이때가 바로 우리 자신의 영광을 되돌리는 방법을 스스로 묻는 때입니다. 이때가 바로 깨달음이 우리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는 때이며 우리가 깨달음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가는 때입니다. 아마 뛰거나 날아갈 수도 있겠죠.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누구는 날고 누구는 걸으며 또 누구는 기차로 갈 겁니다. 그래서 입문 때 누구는 보다 큰 깨달음을 얻고 누구는 비교적 작은 깨달음을 얻는 것이죠. 그것은 우리가 때로는 빨리 때로는 늦게 가는 것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선택했을까요? 태어나기 전에 선택했습니다. 창조가 시작되어 우리가 이 물질세계나 우주의 다른 한 부분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고자 사방으로 흩어지기 이전에 이미 선택을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였는데 그후 신이 바라던 대로 여럿이 되었지요. 우리가 이 위대한 창조의 계획에 동참하여 다채로운 삶의 드라마를 연기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역할이 끝났거나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시간이 왔기에, 혹은 지치고 피곤해져서, 우리는 연극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영혼이 우리의 역을 이어받아 계속 해나가겠지요. 그때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때가 깨달음이 생기는 때입니다. 아주 간단하죠. 우리는 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지해지는 것을 선택한 이유는, 이 삶의 드라마를 연기하기 위해서, 창조계를 다채롭고 생동감 있고 훌륭하고 재미있게 꾸미기 위해서, 또한 우리가 진정으로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였습니다. 천상에는 오직 신만이 있고 다른 어떤 것도 없으니까요. 우리가 신이므로 신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과 달라져야 했지요. 우리는 자신을 보고 스스로 비교해 봄으로써 자신이 신임을 알기 위하여 이곳에 왔고 신과 달라지기로 했습니다.

물질계로 오는 모든 이들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우리는 신을 알고 신과 우리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인지 깨닫고자 무지한 역할을 선택했습니다. 이는 이 세상에 오직 남자만 있다면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자가 없다면 자신이 남자라는 것을 모르겠지요. 밤이 없다면 낮을 모르고 항상 햇볕 속에서 산다면 어둠을 모르는 것처럼요. 그것이 나 스스로 찾은 해답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그 진정한 의미를 알고 깨달으려면 각자가 스스로 그 길을 찾아야만 할 겁니다. 우리가 신이라는 말을 듣는다고 그것을 알 수는 없지요. 성경을 믿어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신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그렇죠? 여러분이 신이라는 것을 압니까? 여러분 중 일부는 깨달았으니 알 수도 있겠지요. 다른 스승이나 교사들과 공부를 해왔고 어느 정도는 깨달아서 우리가 이 육신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 삼매에 들면 여러분은 육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발견합니다. 여러분은 존재하지만 육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죠. 그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과 뼈, 몸, 머리카락이라고 부르는 그 어떤 물질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빛이고 모든 것이 신이지요. 그때가 우리 자신이 신이며 오직 신만이 이 사원에 거한다는 것을 진실로 깨닫는 때입니다.

결국엔 그 사원마저 사라져 버리지요. 오직 이 깨달음만이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스승들한테서 우리가 신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도 우리는 그 말을 믿지 못할 겁니다. 우리가 진실로 신의 자녀들이고 신의 왕국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절대 알 수 없을 겁니다.

우리는 매일 성경을 읽습니다. 성경을 달달 외우죠.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암송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신을 모릅니다. 또 우리는 매일 신에게 기도합니다.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신에게 우리의 의문에 답을 달라고, 우리의 요청을 들어달라고, 우리의 욕망에 응해 달라고 기도하지요. 사실은 우리가 신인데도 말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때로 우리는 신에게 화도 냅니다. 신이 응답해 주지 않고, 우리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우리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야 우리는 신을 더 이상 비난하지 않게 됩니다. 더 이상 기도할 필요조차 못 느끼죠.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원하든 그것을 얻게 될 테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원하기를 그만 둘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너무나 만족스러워 '주님은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도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벤츠를 운전하든 자전거를 몰든 그냥 걷든 상관없이 우리는 너무나 행복하고 만족합니다. 안으로 너무나 풍요로워 어떤 것도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 수 없어요. 우리는 진실로 행복을 알기 때문에 자신이 왕이 되었든 거지가 되었든 모든 상황에서 똑같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우리 자신이 행복이 됩니다. 그것은 깨달음의 결실입니다. 단지 듣기만 하는 이론이 아니고, 체험이자 이해이며, 우리가 반드시 얻어야 하는 깨달음이죠. 만일 이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우리는 알고자 하는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사적인 관계나 사업거래에서, 혹은 신을 사랑하며 신과 맺은 관계속에서 계속해서 서로를 오해하며 크게 고통받을 겁니다. 원수마저도 용서할 수 있는, 너무나 위대하고 참된 사랑과 이해도 얻지 못할 거예요. 진정한 사랑과 이해가 있어야만 미워할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텐데요.

우리는 성경을 많이 읽습니다. '네 원수를 용서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등등… 그러나 우리가 무엇인지, 우리가 누구인지 진정 이해해야만 왜 용서하고 사랑해야 하는지 이해할 것입니다. 그땐 설명할 필요조차 없지요. 사랑이 우리 안에서 저절로 흘러나올 테니까요. 빛이 우리를 감싸고 우리가 빛, 그 자체가 될 것입니다. 사랑이 되고 빛이 되고 우리가 항상 되고 싶었던 것이 될 겁니다.

우리가 항상 기도해 왔던 것 말예요. 신과 같아질 겁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예수와 같은 스승을 숭배하는 거죠. 그가 너무나 신과 닮았으니까요. 모든 이들이 부처를 숭배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부처도 너무나 신과 닮았어요. 우리가 상상하는 신의 모든 모습을 갖추고 있었지요.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의 말을 믿어야 합니다. 그가 우리에게 거짓말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 당시 예수는 어느 누구에게도 돈을 받지 않았고 교회나 집을 짓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아무 것도 지니지 않은 채 도처를 걸어다녔지요. 그러므로 그에게는 지구상의 어떤 영혼에게도 거짓말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너희도 할 수 있다. 너희는 신의 자녀이다.' 그가 분명히 그렇게 말했으니 우리는 그의 말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해야할, 단 한 가지 일은 그가 한 말을 깨닫고 우리 자신에게 그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가 이미 약속했으므로 우리는 이 약속을 현실화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깨달음에 관한 모든 것입니다. 매우 간단하지요.

참된 가르침을 발견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깨달음은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 신의 왕국도 우리 안에 있고요. 신의 왕국은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가까이' 라는 말은 언제든지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얻는 방법만 안다면 멀리 있는 게 아니죠. 옛 스승들은 갔지만 그들의 가르침과 깨달음의 계보는 항상 어디선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오로지 예루살렘이나 인도의 부다가야에만 전해 내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강처럼 존재의 늪 깊은 곳에서 흐르고 있습니다.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가지를 칩니다. 어디선가 종적을 감췄다가 다른 곳에서 불현듯 나타나지요. 그래서 우리는 지금 그 강이 어디서 출현했는지를 찾아 생명의 근원지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 강이 지하에 숨어서 흐르다가 혹은 드러나지 않는 어느 곳에서 흐르다가 다시 샘솟는 곳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행운아입니다.

고대 스승들의 가르침도 이와 유사합니다. 그 가르침은 사라지지 않아요. 준비가 되면 여러분은 언제든지 그 강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친구나 평소 아는 이, 때로는 매우 우스꽝스러운 기회나 아주 기이한 인연을 통해 그 가르침의 강을 다시 찾게 될 겁니다. 가게에서 물건 사듯이 쉽게 찾을 수도 있겠죠.

때로는 히말라야에 가야 할 정도로 어려울 수도 있고 때로는 도서관이나 제과점에서 인연이 닿기도 하지요. 누가 알겠어요? 신이 일하는 방식은 아주 신비롭습니다. 하지만 항상 우리에게 이로움을 주지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우리가 모두 히말라야나 아주 먼 곳으로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이 우리 각자에게 맞는 다양한 안배를 합니다. 우리의 갈망과 신실함에 맞춰서요. 우주의 책에 기록된 운명에 따라 우리는 깨달음의 기회를 이곳에서 혹은 다른 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운 좋게도 나는 새롭게 솟아오른 강줄기를 만나 그 맛좋은 생명수를 마셨습니다. 나는 직접 그것을 마셔 보았기 때문에 그 맛이 좋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알려주려고 되돌아 왔습니다. 어디서 그 물을 구해 맛볼 수 있는 지를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보다 한 발 앞서 그것을 발견한 것뿐이지요. 여러분이 이 자리에 앉아서 나에게 알려줄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신은 뜻한 대로, 운반하기 편리한, 자그마한 여성을 골랐습니다. (모두 웃음) 작은 것이 멀리 가니까요. 어디든지 살짝 숨어 들어가서 여러분에게 그 강을 찾아주는 것이 내겐 아주 쉬운 일이지요. 그러니 왜 나냐고 묻지 마세요. 나 역시 모릅니다. (스승님 웃음) 어쨌든 누군가가 어디선가 무엇인가를 어떤 식으로든 발견해야 하는 거니까요. 모든 사람이 똑같은 것을 동시에 발견할 필요는 없어요.

마치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이론을 발견한 것처럼요. 그 이론을 발견한 사람은 오직 그 뿐이었죠. 뉴턴을 예로 들어도 한 명으로 충분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전세계가 그의 지식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세상은 이로움을 얻지요. 두 명의 아인슈타인과 두 명의 뉴턴이 있을 필요는 없어요. 태양이 두 개라면 너무 많은 거죠. 너무 뜨거울 겁니다. 캘리포니아는 여름에 정말 더워요. 태양이 두 개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건 너무 지나친 거예요. 낭비지요. 한 개의 태양으로 충분합니다. 그래서 내가 여기 온 것입니다. 멀리서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에 대해 알고 받아들이길 원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여러분과 그것을 나누겠습니다. 완전히 무료이고, 아무 조건도 없어요. (스승님 웃음) 전후, 중간에도 전혀 비용이나 조건이 없습니다. 간단하지요. (박수)

이렇게 대중 앞에 나선 것이 정말 오랜만이군요. 동료 형제자매들의 모임엔 나가지만 이렇게 진짜 대중 앞에는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 유창한 말솜씨가 사라진 것 같네요. 하지만 사실은 간단해요. 때때로 나는 말할 필요조차 못 느낍니다. 여러분이 신이므로 여러분 모두가 내 말을 이해하고 안다는 느낌이 들어요. 나는 지금 여기 앉아서 신들을 보고 있는 거죠. 그래서 무척 기쁩니다. (스승님 웃음) 더 이상 말할 필요는 없지만 의문이 있다면 모두를 위해서 보다 상세하게 대답할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자유롭게 질문하세요. 여러분의 지식을 나와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질의응답

질문ː 깨달은 스승님을 이 자리에 모셔 질문을 하고 진정한 해답을 듣는 기회를 가지니 참으로 영광입니다. 스승님은 진리를 알고 계신 분입니다. UC 얼바인 대학의 졸업생인 저로서는 더욱이 이곳 캠퍼스에서 깨달은 스승님을 모시게 된 것이 더한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이렇습니다. "스승님! 관음법문의 기원과 그 수행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전에 한 번 언급했듯이 관음법문은 신에게서 왔습니다. 그것의 기원을 아는 건 신뿐이지요. 이 법문은 창조가 시작된 이래, 기억할 수도 없는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져 왔습니다. 우리가 삶이라는 드라마를 연기한 그때부터 신은 우리가 그에게 되돌아 갈 수 있는 길, 바로 이 길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그것이 관음법문의 기원입니다.

수행방법에 관해서는, 관심을 갖고 이 자리에 남아 있으면 나중에 상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내가 떠나고 없을 때 여러분이 집에서 혼란스러워하지 않도록 미리 자세하게 설명해 둘 필요가 있지요. 여러분은 한 번에 알아야 하고 영원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다시는 잊지 않을 거예요. 스승이 죽든 살든, 여기 있든 저기 있든, 여러분이 그를 다시는 못볼지라도 여러분은 집에서 혼자 수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주의를 기울여 배우세요.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아마 모든 것을 설명하는데 두세 시간정도 걸릴 거예요. 하지만 그것은 평생을 위한 것이죠.

지금은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아요. 간략히 말하자면, 관음법문은 사실 법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신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신의 힘입니다. 우리가 그 신의 힘을 갖고 있으며, 스승은 입문 때 여러분에게 그 힘을 일깨워주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즉시 그 힘을 기억하고 느낄 것입니다. 그 힘이 여러분을 흔들어 놓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난 후엔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안정이 될 것입니다. 처음엔 흥분할지도 모르지만 나중엔 ?괜찮아, 뭐가 어쨌다는 거야? 모든 사람이 신인걸. 별일도 아니야? 하고 말하게 될 거예요. (웃음)

질문ː 과거의 업을 지우는 것이 왜 필요합니까?

여기서 계속 살고 싶다면 업을 지울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고통을 통해서든 깨달음이라는 약을 통해서든 모든 빚을 갚아야 합니다. 깨달음을 얻으면 과거의 업은 지워집니다. 하지만 현재의 업은 계속 되죠. 미래의 업은 존재하지 않고요. 그것이 우리가 자유롭게 신의 왕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입니다. 우리를 이곳에 묶어 놓는 것은 과거의 업장이니까요.

업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산스크리트어로는 '인과'라 하고 성경에서는 '뿌린대로 거두리라'고 말하는 겁니다. 시간이 시작된 이래로 수억 년 동안 우리는 좋고 나쁜 행위의 씨앗을 뿌려 왔습니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이곳에 계속 존재해 왔죠. 계속해서 갚고, 빌리고, 되갚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항상 과거의 빚을 갚기 위해 돌아옵니다.

그러므로 이 빚을 청산하고,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과거의 업을 지워야 합니다. 과거의 업을 지우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깨닫는 것이죠. 깨달으면 과거는 사라집니다. 그것은 마치 수천 년 동안 이 방안에 암흑이 가득했었는데 불을 켜는 순간, 일순간에 암흑이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과거의 업장이 너무나 무겁기 때문에 지울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업장은 너무나 큽니다. 그래서 깨달음이 꼭 필요합니다.

질문ː 존경하는 스승님! 스승님을 매우 사랑합니다. 동물실험에 대해 질문하고 싶은데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동물실험이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의료 목적으로 동물에게 먼저 실험하는 걸 말하나요? 누가 질문했죠? (스승님이 질문을 분명히 하기 위해 물었으나 질문자가 나타나지 않음) 글쎄요. 어떤 대답을 듣고 싶습니까? 내가 전체 의료체계에 반대해서 그들에게 죽임을 당하길 원합니까? (웃음) 인류를 위해 동물을 실험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의도가 순수하다면 우리는 그 누구도 심판할 권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동물의 입장에서 보면 그건 너무도 매정하고 무자비한 일이지요.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었으면 합니다. 우리 모두 깨달음을 얻어 내면에서부터 스스로 바깥을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수)

질문ː 제게 영혼이 있습니까? 만약 없다면 어떻게 윤회가 가능합니까?

글쎄요. 성경에서 영혼이 있다고 하니 당신에게도 틀림없이 영혼이 있어야 하겠죠. (스승님 웃음) 실제로 윤회하는 것은 영혼이 아닙니다. 영혼은 영생합니다. 죽지도 않고 태어나지도 않으며 윤회하지도 않지요. 윤회하는 것은 삶의 경험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이른바 삶이라는 것을 실험해 나갈 때 겪게 되는 물질적이고 영적인 것 사이의 통합 과정이죠.

그것이 우리 존재 의식에 집착하여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과 동일시하는 이런 삶의 실험과정을 자신과 분리시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윤회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윤회하지 않고 결코 죽지도 않습니다. 단지 병에 걸릴 뿐이지요. 우리에게 달라붙은 이 사건들과 재난들로 병들 뿐입니다. 우리 스스로 그것을 잘라내 버리지 않는다면 당연히 우리는 영원히 그것과 붙어있을 겁니다. 인과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움직이고 증가하고 감소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들이 윤회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한다면 그렇습니다.

질문ː 스승님, 어떤 사람이 직장에서 자신의 견해를 펼치고 싶은데 그 기회가 억압된다면 어떤 태도와 행동을 취해야 합니까? 직장에서 야망을 갖는 것이 잘못입니까? 이 문제에 명백한 답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이제 실생활로 돌아왔군요. 일 얘기요. (스승님 웃음) 직장에서 야망을 갖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닙니다. 직장에서 야망은 필수죠.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일 속에서 발전하고 자기 자신과 윗사람을 만족시키겠습니까? 어떻게 회사에 이윤을 가져다 주죠? 그것은 의무입니다. 우리는 야망을 가져야 합니다. 야망을 갖는다는 게 반드시 남의 머리를 짓밟고 올라선다는 건 아닙니다.

야망은 부정이나 시기심과는 다른 것이지요. 우리는 야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항상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어떤 압력을 느낀다면, 왜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억압하는지, 우리가 충분히 유능한지, 성격에 문제가 있는지, 아니면 그 사람이 우리를 너무 시기하는 건지, 그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사람에게 털어놓으세요. 우리가 옳고 그 사람이 그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사람에게 말해주세요. 그래서 그가 더 나아진다면 그를 용서하는 거예요. 그가 좋아지지 않더라도 그를 용서하고 계속 여러분의 일만 하면 되죠. 인생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심지어는 사적인 관계, 부부 사이에서도, 한쪽이 크게 성공하면 질투를 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두뇌가 가진 문제입니다. 영혼은 문제가 없어요. 깨달은 사람도 문제가 없고요. (박수)

영혼은 영적인 자양분이 필요하다

질문ː 왜 매일 두 시간 반씩 명상해야 합니까?

여러분이 가끔씩 두세 개의 햄버거를 먹어야 하는 것과 같지요. (웃음과 박수) 즉 신체를 지탱하기 위해 매일 일정량의 음식을 먹어야 하죠. 마찬가지로 신 안에서, 신의 성품 안에서 다시금 강해지기 위해서 매일 섭취해야 하는 일정량의 영혼의 자양분입니다. 여러분이 꼭 지켜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이것은 의사의 처방에 따라 정해진 양입니다.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게 엄격한 건 아닙니다. 우리는 잠을 자면서도 명상할 수 있습니다. 버스 안에서도, 비행기 안에서도, 화장실에서도 명상할 수 있어요. 아, 실례했습니다. (웃음) 예, 맞아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많은 일을 할 수 있지요. 명상할 시간은 항상 있습니다. 불필요한 TV 시청을 줄이고 중요한 신문기사만 읽고 전화 통화를 줄이면 많은 시간이 생깁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을 좀 줄이세요.

때로 우리는 잠을 자지 않으면서 아침 늦게까지 침대에서 뒤척이지요. (웃음) 그때가 명상하기에 이상적인 때입니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대신 명상하고 집중하세요. 그렇게 하면 됩니다. 아주 간단하지요. 온갖 잡생각을 하는 대신에 집중하세요. 그것이 명상입니다. 부처처럼 가부좌를 틀 필요는 없어요. 그냥 누워서 집중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게으름 피우는 시간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거예요. 아! 미안해요. (스승님과 모두 웃음) 여러분이 비생산적으로 흘려보내는 시간이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주의를 분산시키는 시간요. 이러한 시간들을 모아서 신을 기억하세요. 아주 쉽습니다. (박수)

질문ː 언젠가 세계평화가 실현되리라고 믿으십니까?

(스승님 웃음) 당신은 믿나요? (웃음) 아마 서기 3,000년경이면 될까요? 아니에요. 세계평화는 결코 오지 않을 겁니다. 평화가 실현된다면 이곳을 세계(world)라 부르지 않고 천국(heaven)이라 부를 테니까요.

질문 ː 스승님, 여기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직관은 어디에서 옵니까?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가끔씩 저는 혼란스럽습니다. 제 앞에 두 갈래의 갈림길이 있는데 어느 길을 택해야할지 결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선택이 제 인생을 좌우하는 것이기에 어떻게 해야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수준에 이르고 싶습니다.

시간이 좀 걸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잊어버린 지혜의 힘을 다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세속의 문제들이 우리의 시야를 흐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단력이 없습니다. 몰라서,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결정을 못 내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분명해져야 합니다. 매일 우리가 저축하는 두 시간 반은 우리의 마음을 맑게 하고 우리를 근원으로 돌아가 신과 하나되게 하는 시간입니다. 그때는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게 되죠. 명확하게 알게 됩니다. 무엇을 할지 아주 명확해 집니다. 한편, 두 시간 반 동안 명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명상을 하고 싶어하는 것도 아닌데 직관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이른바 신의 지혜가 남겨진 흔적입니다.

때로 세상살이와 근심으로 흐려지지만 때로는 분명하게 드러나죠. 그것이 바로 직관입니다. 여러분에게 그것이 명확하지 않다면 모험을 해야겠죠. 어느 쪽이 보다 적합하고, 어느 쪽이 보다 확률이 높은지 느끼고 그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모험을 해야 합니다. 그 누구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신에게 기도하고 하나를 선택하세요. 아니면 종이를 왼쪽, 오른쪽 둘로 갈라서 하나를 고르세요. 어느 방법이든 위험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자신의 지혜, 여러분 자신의 스승의 힘을 얻어야 하는 겁니다.

질문ː 스승님, 스승님께 신실하게 기도하면 영원히 해탈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스승님 웃음) 하지만 단 한 사람뿐이지요. 반면에 여러분 자신이 깨달음을 얻으면 다른 사람도 데려갈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깨달음으로써 친척 몇 세대나 친구들, 심지어는 개와 고양이까지도 해탈을 얻지만 신의 화신에게 기도한다면 단지 한 장의 티켓만을 얻게 되죠. 여러분이 정말로 신실하다면요. 하지만 정말로 신실한지 아닌지는 자신도 몰라요. 알기 힘듭니다.

질문 ː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지옥이 존재합니까?

어떻게 생각합니까? 지옥이 있습니까? 이 세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른 곳을 볼 필요가 없어요. 썩 좋은 농담은 아닌데, 지옥에 관한 농담이 하나 있습니다. 듣고 싶습니까? 듣고 싶어요, 안 듣고 싶어요? (듣고 싶습니다!) (웃음) 알았으니 진정하세요. 18세나 19세쯤 된 한 소녀가 집에 와서 어머니 앞에서 울었어요. "아! 엄마, 존하고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결혼을 취소했어요." 엄마가 말했죠. "얘야, 도대체 이유가 뭐니? 이미 약혼했고 다음 주에 결혼하기로 했잖니. 문제가 뭐지?" 그 딸이 말했죠. "그가 싫어요. 그는 무신론자이고 지옥이 있다는 것도 믿지 않아요." 그러자 엄마가 말했어요. "얘야, 걱정하지 마라. 결혼한 후에는 믿을 거란다." (웃음과 박수) 좋은 농담은 아니죠. 항상 그런 건만도 아니에요.

왜 우리는 이 세상에 왔는가?

질문 : 스승님, 왜 우리는 추락했습니까? 왜 우리는 결코 환생하지 않는 이들처럼 순수한 의식으로 남아있을 수 없었습니까? 저는 업장을 이해합니다만, 업이라는 것이 창조주의 계획의 일부분인 채무와 채권인가요? 왜 신은 우리가 그토록 고통스러운 업장을 짊어지길 원했나요?

신은 그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랄 뿐이죠. 그것이 거래의 일부분입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신과 신이 아닌 것의 차이를 알게 되고 빛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 빛을 알아볼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그 빛의 완전한 장관을 알기 위해 일부러 암흑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천상을 떠나길 원치 않았던 이들은 이곳에 오지 않았죠. 천국을 결코 떠나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건 사실이에요. 일부 스승들이 그렇습니다. 어떤 스승들은 천상을 떠나 이곳에 와서 우리를 가르치지요. 여러 번 윤회를 하면서 스승이 되는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에겐 선택권이 있었죠. 우리가 원했기 때문에 여기에 온 겁니다.

이 질문에는 여러 대답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가 업장을 갖는 주요한 목적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신을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을 알고자 하는 유일한 목적에서 일부러 이곳에 왔습니다. 예전에 우리는 빛으로 충만된 곳, 천국에서 살았습니다. 모두가 성자였고 모두가 신이었지요. 그때 우리는 말했어요. "신? 신이 뭐지?" 그러자 신이 말했죠. "너희가 신이고 신이 너희들이다. 신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우린 의문을 가졌죠. "난 그래도 신이 뭔지 모르겠어요." 신이 대답했습니다. "너처럼 이런 게 신이다." 하지만 그 영혼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신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신을 알 수 있죠? 자신이 신임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신은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너는 먼저 너 자신, 신과 달라져야 한다. 그런 다음 자신을 되돌아보면 알 것이다"라고요. 우리는 그 이유 때문에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은 우리 자신을 더 잘 아는 것이죠.

둘째는 창조가 시작되기 이전에, 이 세상과 다른 모든 세상에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당시에 신이 계획을 세웠습니다. 신은 천지만물이 창조되어 존재하기를 원했고, 우리가 거기에 가담했습니다. 우리는 기꺼이 장엄한 계획의 모든 역할을 해냈지요. 그저 재미 삼아서요. 언젠가는 다시 신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이 삶을 다채롭게 만들기 위해서 일부의 존재들이 의식적으로 배역을 맡아 연기를 했어요. 그렇게 해서 그들은 다시 신을 알게 되는 겁니다.

신을 알기 위해서 그들은 수많은 배역을 맡아야했습니다. 한 역은 다른 역과 연관되어 있지요. 마치 영화에서처럼 주연도 있고 조연도 있고 모든 배역이 다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화가 안 되니까요. 그래서 지금 당장은 업장이 아주 무겁고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러나 그 당시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죠. 우리는 신이었기에 고통과 장애를 몰랐습니다. 우리는 장애물들을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여기지도 않았죠. 우리에겐 모든 것이 단지 연극에 불과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연극에 몰입하게 되자 고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게임의 일부분입니다. 우주적인 계획의 일부분이죠.

우리가 배역을 연기하지 않으면 우린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고 이곳엔 아무 것도 없을 거예요. 나도 여기에 앉아있지 않을 거고 당신도 거기에 앉아있지 않을 겁니다. 당신은 금발이 아니고 나도 흑인이 아니죠. 그럼 뭐가 있나요? 모든 것이 너무 단조롭지요. 그래도 괜찮아요. 그래서 완전한 스승들은 모두 "태양 아래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는 "너희는 모두 신의 자녀들이다"라고 말했지요. 그 스승들은 해야할 일이 아무 것도 없고 모든 사람이 완벽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깨닫지 못했으므로 고통받지요. 그러니 그들이 깨달았던 것을 우리도 깨달아야 해요. 그러면 이유를 알게 될 겁니다. 그때는 더 이상 고통을 고통으로 보지 않겠죠. 여전히 고통은 있습니다. 누군가가 당신을 꼬집으면 아프죠. 하지만 여러분은 그 이유를 알기 때문에 고통받지 않습니다. 고통 속으로 가라앉는 게 아니라 고통 위에 떠있는 겁니다.

질문ː 스승님, 제 아내는 이곳에 입문하러 왔습니다. 아내는 오랫동안 채식을 해왔는데, 저는 채식을 하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제게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시고 채식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당신의 아내는 가서 채식 요리법을 좀 더 배워야겠군요. 가련한 남편들에게 맛없는 음식만 먹으라고 할 수는 없죠. 사실 깨달음은 여기서도 시작됩니다. (스승님, 배를 가리키심) 단지 여기서만이 아니고요. (스승님, 지혜안을 가리키심) (웃음) 내가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전 남편은 이미 재혼했습니다.) 나는 채식을 했고 그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의사였고 매우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이었죠. 그는 서양의 별자리로 황소자리이고, 동양의 띠로 소띠여서 소가 두 마리나 들어 있었어요. 그는 어떤 비합리적인 것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요리를 썩 잘했기 때문에 그는 나와 같이 식사를 했고 채식에 절대 반대하지 않았어요.

내가 "세계구원의 이상"(스승님이 장난스럽게 표현하심)을 위해 집을 떠난 뒤 남편은 내 요리법들을 총망라해서 자기 친구들에게 요리를 해주었습니다. 그는 항상 광고를 했지요. "내 아내가 이 요리를 했었어. 내 아내가 저 요리를 했었지. 모든 채소들에 비타민이 풍부하게 들어있어.? 그는 내 요리법대로 똑같이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서양인이고 독일인이며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그 사람 같은 의사도 채식을 할 수 있었다면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아내들이 맛있는 요리를 만든다면 여러분이 다른 것을 그리워하지는 않겠죠.

예를 들어 중국식 수프에는 국수와 고기를 넣는데요, 고기 대신 밀고기나 두부, 채식햄 혹은 채식 생선 같은 걸 넣을 수 있습니다. 고기와 똑같아요. 그건 단지 솜씨 문제죠. 깨달음으로 가는 길은 우리의 배를 거쳐간다고 나는 믿습니다. 그래서 아내들은 손맛을 길러야 하고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서 남편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여성들에겐 보다 쉬운 일이죠. 사실이에요. 여성들은 일단 뭔가를 믿으면 어떤 거라도 먹습니다. (모두 웃음)

그러나 남자들은 보다 과학적이고 실용적이며 여성만큼 감상적이지 않지요. 여성들은 감상과 애정과 감정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여성들은 믿음이 있으면 맛이 어떤지는 상관하지 않고 먹을 수 있어요. (웃음) 그러나 남자들은 보다 비평적이어서 먼저 맛을 음미합니다. 깨달음은 그 뒤에 오지요. (웃음)

질문ː 칭하이무상사님, 스승님과 우리의 영적인 관계를 설명해 주십시오. 스승님께서 돌아가신 후에도 여전히 입문한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장됩니까? 스승님의 영혼의 인도로요.

보장합니다. (박수) 전에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육체가 아니라 영혼입니다. 그래서 이 육체가 가거나 오거나 우리 사이엔 어떤 차이도, 어떤 거리도 없습니다. 입문식 때 이미 그 방법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평생 그 방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방법을 거부하고 떠나지만 않는다면 그 사이에 끼어 들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러나 다음 생에도 그 씨앗은 여전히 존재할 겁니다.

질문ː 스승님, 저의 다섯 아이들은 이미 입문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매우 늙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까?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요? 신실함이 유일한 기준입니까?

예. 신실함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너무 들면 이 육체와 기억력이 더 이상 민감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다음 기회에, 다음 생에 다시 오라고 하기도 합니다. 아니면 방편법을 수행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꼭 완전입문을 해야 하는 건 아녜요. 그러나 방편법은 오직 한 사람만을 보증합니다. 반면에 입문은 많은 세대들을 보증해 주죠. 그것이 차이입니다. 입문하고 수행함으로써 당신도 완전히 깨달은 스승이 될 수 있고 수없이 많은 영혼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질문ː 스승님, 기독교는 왜 윤회를 믿지 않습니까? 성경에 윤회에 대한 것이 언급되어 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삭제되었죠. 누군가가 예수에게 예수가 엘리야였는지, 과거 스승인 누구누구였는지, 다시 말하면 예수가 과거 스승들 가운데 한 분이었고 그 분이 환생한 것인지를 질문했을 때 예수는 침묵했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에서 그 부분을 삭제하고 그것을 잊었지요. 윤회가 없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예수는 "아니다. 스승이 돌아오는 것과 같은 일은 없다. 나는 나일 뿐이고 유일한 존재이다. 생은 단 한 번 뿐으로 전도 없고 후도 없으며 다시는 없을 것이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는 침묵을 지켰지요. 그 당시에 침묵은 긍정과 동의를 의미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는 제자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지 않으려고 설명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는 침묵을 지켰습니다.

질문ː 스승님, 한 사람이 입문을 함으로써 5대 조상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고기를 먹고 술 마시는 살아있는 가족들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그들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슬프고도 다행스러운 일이죠. (모두 웃음) 다시 말해 그들이 의식적으로 해탈을 원하지 않는다면 스승이 억지로 해탈하게 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신이니까요. 우리 각자가 신이라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그 누구도 신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또 다른 신일지라도 말예요. 좋든 나쁘든 그것이 그의 선택이며 스스로 선택한 자신의 길입니다. 그는 이 역할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그가 나쁘다해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심판하지 말라고 쓰여 있지요.

질문ː 깨달은 스승이 되기 전에 우리는 인류를 위해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겠다고 서원합니다. 그들에게 봉사하겠다고 맹세를 하죠. 하지만 예를 들면, 깨달은 스승이 된 후에 우리는 어떤 이유 때문에 마음을 바꿀 수 있습니다. 가치관이 바뀌니까요. 우리가 자신의 맹세를 지키지 않을 자유도 있습니까? 아니면 인과법에 따라 자신의 맹세를 꼭 지켜야 합니까?

우린 자유롭습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질문ː 안녕하세요? 칭하이 무상사님, '대지(大地)는 사랑으로 우리 위대한 중생들을 끌어올린다.' 이것에 대해 스승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신에게서 나왔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우주의 진동을 의미하는 '말씀'으로부터 나왔고 그 진동이 신이며 관음법문이지요. 우리는 여러분에게 그것에 집중하는 걸 가르칩니다. 그것이 모든 창조의 근원인 우주의 진동이니까요. 우리 인간도 신이 만들었고, 이 거대한 지구와 우주의 모든 것이 신에게서 왔습니다. 다른 형태와 다른 밀도를 지녔지만 모두 신의 품성을 가지고 있지요. 그렇다면 당신이 말한 대로 이 지구 역시 위대한 중생입니다. 우리는 지구에서 나서 지구에서 살아갑니다. 당연히 이 위대한 어머니를 존경해야 합니다. (박수)

꿈속에서 업장을 갚는다

질문ː 꿈속에서 업장을 소멸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신의 은총에 의해서만 꿈속에서 업장을 갚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대부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물질적으로 갚아야 하지요. 입문을 하거나 깨달으면 우리는 신의 은총으로 살아갑니다. 이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정정도의 업장이 있어야 하기에 약간의 정업을 갖지만 그것 말고는 더는 인과법에 매이지 않지요. 우리는 업장과 더불어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정업 역시 일정정도는 지워질 수 있고 부드러워질 수 있으며 많은 부분 감소되고 꿈을 통해 소멸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입문을 하거나 깨달았을 때에만 가능하죠.

질문ː 스승님, 만약 입문하고서 두 시간 반 명상을 채우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일정기간 유급되겠죠. (웃음) 학생들과 마찬가지예요. 만약 등록을 하고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여전히 그 학년에 머물러 있을 겁니다. (모두 웃음) A를 받는 대신 F를 받겠죠. 바로 그거예요. 그렇지만 여러분은 여전히 대학생입니다.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이 되는 건 아니죠. 최소한 대학생인 건 확실합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수준이 낮은 것뿐입니다.

질문ː 저는 스승님에게 관음법문을 전수해 주신 분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그분은 예수가 환생한 분인가요? 아니면 스승님이 바로 예수의 환생입니까? 그의 이름을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오래 전에 한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쿤다지 스승입니다. 그는 신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예수는 결코 윤회하지 않습니다. 다른 스승들도 마찬가지죠. 윤회는 오직 우리 인간들, 업장이 있는 사람들만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윤회를 했다고도, 혹은 안 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윤회하는 것은 예수가 아닙니다. 인류를 돕기 위해 내려오는 그리스도의 힘이지요. 신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의 힘이 계속해서 다른 형상으로 내려오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다고도, 혹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박수)

질문ː 스승님의 가르침은 일반적인 종교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스승님의 가르침은 우리 자신의 종교에 대한 신심을 더 높여 줍니까?

예. 그렇습니다. 이미 알고 있군요. 나는 여러분이 자신의 종교를 더 잘,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스스로 깨닫는다면 자기자신이 종교가 되고 진리가 됩니다. 다른 성경을 쓸 수도 있죠. 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의 성경으로 충분하니까요. 여러분은 단지 그걸 증명하고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것으로 이미 훌륭합니다.

질문ː 꿈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꿈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때로는 좋고 때로는 나쁘죠. 가끔씩 꿈이 현실이 되기도 하지만, 꿈은 일상에서 수집한 다양한 정보의 단편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여러 재료를 섞어 놓은 샐러드와 같지요. 꿈은 때로 미래에 대한 일종의 예언이기도 하고 과거에 대한 회고이기도 하며 여러분의 가장 깊은 욕망이나 소망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비상한 통찰력을 지닌 꿈도 있습니다.

수많은 관음 수행자나 명상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꿈을 꿉니다. 그들의 꿈은 매우 생생하고 천연색으로 빛나며 아주 장엄하고 밝지요. 그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니라 내적 체험입니다. 그들은 천국에도 가고 어느 곳이든 갑니다. 명상하면서 천상에 갈 때는 거의 꿈과 같지요. 그러다 깨어나면 아주 기쁘고 활기차고 생명력과 사랑으로 충만해서 어쩔 줄 모르게 됩니다. 모든 사람을 껴안고 키스하고 싶어하죠. 그러나 그렇게 하지는 마세요. (웃음)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미쳤다고 생각할테니까요.

질문ː 동물과 식물도 그들만의 신이 있습니까?

우리에겐 오직 하나의 신만이 있습니다. (웃음) 똑같지요. 모든 이를 위한 하나의 아버지. 예수가 그렇게 말했습니다.'들에 핀 저 백합을 보라. 아버지가 저들을 어떻게 돌보시는지를…(마태 6:28)' 그러니 똑같은 신이 분명합니다. (웃음) 여러분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내게 너무나 많은 질문을 하는군요. 모든 게 이미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질문ː 제가 어떻게 전생의 경험들로부터 분리될 수 있습니까?

전생의 경험들요? 이미 말했습니다. 입문을 통해서죠. 입문할 때 스승이 전생에 쌓은 업장을 지워줍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더 이상 과거의 업이 남아있지 않게 되죠. 원한다면 약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스승님 웃음) 다시 이생으로 돌아오고 싶다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질문ː 우리가 신의 자녀이고 우리 모두 신이라고 하셨는데, 그 의미를 분명히 해주십시오. 우리가 이미 신이기 때문에 신을 숭배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까?

아뇨. 필요합니다. 신이 누군지 그 사랑이 많은 존재가 진정 누군지 신이 얼마나 우리와 가까이 있는지를 안 후에, 신이 이 세상의 가장 가까운 친구보다 더 가까이 있고 우리 피부보다 더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 우리는 더욱 더 신을 숭배하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신을 숭배하게 되죠. 우리가 그저, "저에게 돈을 주시고 아내를 주시고 일자리를 주세요. 제발, 제발…"하며 부탁만 할 때는 진정으로 신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신이지만 아직 신이 아닙니다. 그러니 먼저 신을 알아야 합니다. 질문은 나중에 하고요. 신을 안 후에 말해 주세요.

질문ː 인간적 사랑이 우리의 깨달음에서 어떤 역할을 합니까?

인간적 사랑요? 글쎄요. 인간에게든 동물에게든 사랑을 받는다는 건 좋지요. 누구에 의해서든, 무엇에 의해서든 우리가 사랑을 받는다면 그건 신에게서 온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이 아니죠. 모성애나 형제애인 것이 아니라 실은 모두 신의 사랑인 것이죠. 나누어지고 최소화되고 변경되긴 했지만 모든 것이 신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모든 이가 우리를 사랑하는 신입니다. 그래서 해침이 없고 단지 도움만이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 우리를 사랑할 때, 혹은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때, 그 사랑으로 함께 깨닫는다면 그건 크게 이롭고 좋은 일이죠.

질문ː 진화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진화론의 문제는 무엇이죠?

아, 나는 과학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원숭이에게서 나왔다는 그런 이론들을 말하는 건가요? (모두 웃음) 우리는 모두 신에게서 왔습니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 어떤 종류의 연결이 있을 수는 있겠지요. 왜냐하면 때때로 인간과 동물은 함께 사니까요. 때로 우연한 기회에 그들은 서로를 가르칩니다. 그래서 그게 가능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인간은 전혀 다른 종족입니다. 우린 진화하지 않아요. 우리는 신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어요. 그게 전부입니다. 신은 동물도 만들었어요. 신은 성경 첫 장에서 그렇게 말했지요. 첫 장에요. 구약성서 첫 페이지에 보면 신이 인간과 모든 과실수와 식물을 만들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신이 이 대목에서 채식에 대한 언급도 했군요.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보기 좋고 맛도 좋은 온갖 과일과 식물을 창조하니 그것들이 너희의 음식이 될지니라.' 그는 또 이렇게도 말했어요. '나는 각각의 동물들이 먹을 음식도 창조하였느니라.' 신은 우리가 동물로부터 진화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신은 우리가 동물 왕국의 통치자라고 말했죠. 우리는 그들의 왕입니다. 따라서 진화에 대해 혼란스러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입니다. 동물 역시 신에게서 왔지만 인간은 아닙니다.

질문ː 한 생에 완전한 깨달음을 얻는 것이 가능합니까? 스승님이 히말라야에 간 것처럼 똑같이 하지 않아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나요? 스승님께서 완전하고 자비로운 스승이라서 7년 내에 우리가 깨달음을 얻게 해주시는 건가요?

히말라야에 갈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말했죠. 그것은 나의 업장이었습니다. 나는 거기에 가야 했어요. 그러나 여러분은 나보다 나아요. 여기 소파에 앉아서 깨달음을 얻으니까요. (모두 웃음) 7년이 걸릴 수도 있고, 7개월이 걸릴 수도 있겠죠. 그건 여러분에게 달려 있어요. 여러분 자신의 운명에 달려 있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이 존재가 나오기 이전에 여러분 자신이 선택한 것에 달려 있는 겁니다. 거기엔 나도 개입할 수 없습니다. 오직 여러분 자신만이 알지요. 여러분은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이곳에 오기 전에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한 것에 대해서 기뻐하고 있으니 서두르지 마세요.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그건 여러분의 선택이에요. 7년이나 17년, 혹은 20년, 아니면 몇 년이 걸리기로 신과 이미 성약을 맺었습니다.

우리는 영원 속에 살고 있습니다. 얼마나 긴 세월이 걸리는가는 문제가 안 됩니다. 그래도 깨달음은 입문 때 즉각적으로 일어납니다. 그것이 완전한 깨달음이긴 하지만, 사람에 따라 다양하죠. 얼마나 근면한가, 얼마나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느냐에 달려 있어요. 차를 예로 들어봅시다. 여러분은 차를 빨리 혹은 천천히 몰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7년이 걸릴지 몇 년이 걸릴지 내게 묻지 마세요.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깨달은 후에는 나날이 더욱 행복해지므로 몇 년이 걸리는 가에는 더 이상 신경조차 쓰지 않게 될 거예요. 심지어는 깨달음조차도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미 신을 알고 행복을 아니까요. 그저 충만하고 만족스럽습니다.

질문ː 세상의 악마나 부정적인 업장이 위대한 힘(마하트마 에너지)의 보랏빛과 황금빛을 사용함으로써 선하고 긍정적인 업장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까?

부정적인 에너지는 우리가 신을 깨닫는데 필요합니다. 우리는 빛을 알기 위해 어둠을 선택했지요. 그것이 이른바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전환시키는 방법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부정은 부정이고 긍정은 긍정이죠. 어둠을 빛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어요. 하지만 어둠은 빛이 어둠 속에서 빛날 수 있게 함으로써 여러분이 빛을 알아보도록 돕고 있습니다. 질문자가 의미하는 것은, 명상을 하고 빛을 본다면 부정적인 힘을 중화시킬 수 있느냐는 질문 같은데, 물론 그렇습니다. 빛이 오면 어둠은 사라지죠. 그것이 보랏빛일지 황금빛일지는 각자의 의식 수준에 달려 있습니다. 보랏빛은 좀 낮은 차원이고 황금빛은 좀더 높은 차원입니다. 후에 명상을 하면 알게 될 거예요.

질문ː 천국과 그 빛 너머로 여행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거기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스승님과 모두 웃음)

당신은 내 초콜릿을 맛보고 싶어하는군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웃음과 박수) 왜냐하면 그것을 먹은 사람은 나니까요. 하지만 내겐 초콜릿이 한 조각 더 있으니 여러분이 맛보는 걸 환영합니다. 내가 그것이 달콤하다, 바삭하다, 혹은 맛이 풍부하다고 여러분에게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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