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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스승의 길

스승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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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수행에서도 다섯 기관 중 하나라도 정상이 아닌 경우엔 부처의 승단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석가모니불 재세 당시에는 불교에 입문하려면 그 외 많은 전제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가장 최악의 사람을 구하기로 맹세했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겐 그 누구나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 제자들 중에는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안 좋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시방 세계 부처라 해도 그들을 구할 수 없었을 겁니다.

사람들은 내 제자들이 나를 찬탄하고 나를 부처나 누구누구라고 한다고 해서 나를 비판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나는 나에 대해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늘 내 제자들이 하는 말만 듣고는 내가 하지도 않은 말로 수없이 나를 공박했습니다.

“뭐라고요? 당신이 부처라고요? 말도 안 돼요.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죠?” 그래서 나는 지쳤습니다. 겸손에도 한계를 느껴 차라리 공개적으로 말해버렸습니다. “나는 부처입니다. 그것이 어쨌다는 거죠? 뭐 잘못된 거라도 있습니까?”

여러분도 부처가 되고 나면 사랑으로 가득 차고 마냥 귀여운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며 특별한 것도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보물, 자신의 힘을 발견해서 사용할 뿐입니다. 잊고 있던 은행 계좌를 찾은 게 뭐 그리 대단한가요? 자기 돈을 쓰는 것은 도덕적으로 칭찬받을 일도 아니며 대단히 중요한 일도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처럼 자신의 힘과 지혜를 찾아서 자신이나 필요로 하는 누군가를 위해 쓰는 것은 대단할 것도 없는 일입니다. 자신의 지혜와 힘을 되찾았다는 것 외에는 특별할 게 없으며, 다만 힘을 더 갖춘 것뿐입니다. 남들이 하는 건 뭐든 다 하지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걸어야 할 때는 걷고, 자야 할 때는 자고, 먹어야 할 때는 먹고, 일해야 할 때는 일합니다. 그뿐이에요. 이전과 똑같이 생활합니다. 단지 여분의 힘이 더 생겼을 뿐입니다.

의대생의 경우와 같습니다. 의대를 졸업하면 그는 정식 의사가 되지만 아무것도 바뀐 게 없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외모도 똑같고 친구도 똑같으며 활동도 똑같고 행동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바뀐 것은 그가 특별한 지식과 재능과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고, 의학적 지식으로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과 남들을 도울 수 있게 되었다는 것뿐입니다.

사람들은 부처를 신화적인 존재, 위대한 존재, 신비에 싸인 인물로서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고 알지 못하고 만지거나 볼 수 없는 존재로 만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의 주인으로 만들고는 그 누구도 그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고 만듭니다. 이건 잘못된 것이며 부정확한 정보입니다.

여러분이 잃었던 보물을 되찾았다고 해서 행동이나 습관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목석이나 돌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여러분은 여전히 예전의 감정을 가지며 예전과 같은, 혹은 그보다 더한 이해력과 직무 능력을 갖게 되어 더 큰 역량과 왕성한 활동력, 그리고 더욱 명철한 견해로 최선을 다해 사회에 봉사하게 됩니다.

유형의 능력을 이용하여 재능을 사회와 전세계를 위해 공헌하는 것 외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용기와 기쁨, 축복을 안겨다 줄 힘으로 나타나고 사용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지혜를 갖추게 됩니다.

사실상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 줄 것은 자기 자신을 가르치는 방법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부처가 일어나 여러분을 가르칠 것이며, 여러분 자신의 신이 일어나 여러분을 가르칠 것입니다. 그러나 우선은 내가 여러분 내면에 있는 그 신, 그 부처를 깨울 방법을 가르쳐 줘야 합니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교사입니다. 내면의 신의 왕국이나 내면의 부처가 가장 위대한 선생이지 난 아닙니다. 나는 단지 여러분에게 그를 깨워 소개를 시키고 그에게 일어나서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 줄 뿐입니다. 내 일은 그게 다입니다.

스승님께서는 자신이 정말 신의 축복을 받아 이 지구와 우주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을 돕고 구원하기 위해 신이 보내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예, 완전히 알고 있습니다. 거짓을 말하면 지옥에 갈 테니 그것이 두려워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나는 신의 벌이 두렵습니다. 신의 심판도 두렵고 부처의 심판도 두렵습니다.


스승님은 모든 사람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나요? 누군가의 깊은 본성을 개조하실 수 있습니까?

누구나 깨달을 권리가 있지만 그걸 바라는 것은 각자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우리가 가진 진정한 깨달음의 본성, 우리의 위대함과 지혜를 발견하고 나면 스스로 바뀔 것입니다. 나로서는 사람들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들의 진정한 본성이 특출하기 때문에 변하는 것은 그들인 것입니다. 그들의 고귀함과 지혜가 바뀌는 거지요. 그리고 그 진정한 본성을 찾은 사람은 자신의 모든 부정적인 습관을 없앨 것입니다.


스승님, 제가 당신께 신실하게 기도하면 영원히 해탈할까요?

그럴 것 같군요. (스승님, 싱긋 웃으심) 하지만 한 사람만 해당됩니다. 만약 당신 자신이 깨닫는다면 다른 사람도 데려갈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깨달으면 그의 많은 세대에 걸친 친척과 친구, 심지어 개와 고양이도 해탈합니다. 당신이 정말 신실한 상태에서 신께 개인적으로 기도하면 티켓 한 장만을 얻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신실한지 어떤지 모릅니다. 때론 구분하기 힘들 때도 있지요.


무엇이 당신을 다른 큰스승들과 동등하게 만듭니까?

스승님: 당신을 다른 큰스승들과 동등하게 만드는 바로 그것이 나를 동등하게 만듭니다. 우리 모두는 동등합니다. 당신은 예수나 부처만큼 위대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되고 싶고 자신의 위대함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면 말입니다. 나는 그것을 압니다. 그것이 나를 위대하게 만들지요. 당신이 모른다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알기를 원하기만 하면 그 누구만큼이라도 위대해질 것입니다.

수행자가 되면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관련된 사람은 누구나 나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은 대 영성의 대열과 관계가 있게 됩니다. 나 혼자 일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하늘과 땅에 많은 동료들이 있으며, 우리는 네트워크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 한 일원과 관계를 맺게 되면 전 단체로 확장이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교통사고나 암살, 자살 등으로 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여러분을 한번 봤거나 여러분과 친분이 있거나 혹은 스승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다면, 그들도 구원을 받아 곤경에 처했을 때 다른 세계로 가게 됩니다.


헤르메스, 조로아스터, 에세네파와 영지학파(靈智學派)도 스승들이었습니까? 누가 첫 스승이었나요? 그리고 위대한 백의형제단(The Great White Brother hood)이란 무엇입니까?

모든 참 스승은 하나입니다. 모두 한 근원에서 나오지요. 가장 높은 스승은 무상사(無上師), 즉 전지전능한 이로서 여러분 모두의 내면에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스승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축복을 준 후에 자신의 힘과 영광을 모두 잊어버렸고 바깥 현상에 주의를 빼앗겨 에너지를 모두 소진시켜 버렸습니다.

이곳에 오는 모든 스승은 이런 인식을 자각한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참된 영광을 알고 있으며, 고향으로 가는 길을 자주 여행했기에 우리를 고향으로 데려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스승들 간에 차별을 둘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종교는 스승이 떠난 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떠난 후에 기독교가 생겼고 부처가 떠난 후에 불교가 생겼지요.

칭하이 무상사/ 1993. 4. 10. 미국 덴버


스승님은 백의형제단, 우주형제단과 함께 일하시나요?

예, 나는 검은 형제단과도 함께 일합니다. (대중 웃음, 박수) 우리는 차별하지 않습니다. 물론 방금 그 사람이 말한 것은 백의형제단입니다. 이는 온 우주를 돕는 깨달은 사람들을 일컫는 호칭입니다. 조금 전에는 농담한 것이고, 거기에는 백인도, 흑인도 없습니다. (스승님과 대중 웃음)


스승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지만 응답할 것과 응답하지 않을 것을 선택할 뿐이라고 한다면, 그 말이 정확할까요?

나도 모릅니다. (스승님과 대중 웃음) 이건 매우 지적인 주제이군요. 당신은 마음이 두뇌와 다르다는 걸 알 겁니다. 육체는 스승의 힘과 다릅니다. 육신은 먹지만 스승의 힘은 그렇지 않아요. 육신은 잠을 자지만 스승의 힘은 항상 24시간 깨어 있습니다. 마음은 반응하지만 스승의 힘은 지혜와 함께 행동할 뿐 반응하지 않습니다. 스승의 힘은 동시에 모든 것을 알기 위해서는 육체 위에, 육체 안팎으로 있어야 합니다.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스승의 힘은 그걸 이해하기 위해서나 뭔가를 하기 위해 마음에 명령을 내리지 않습니다. 정말 필요한 경우라면 마음에게 뭔가를 하라거나 육체적으로 어떤 반응을 나타내라고 지시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스승의 힘은 추상적인 감각입니다. 물질계 밖의 것이지요.

육신이 이해할 수 있거나 여러분과 내가 이해하고, 두뇌가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스승의 힘은 24시간 쉼 없이 움직입니다. 두뇌는 과도한 정보로 지나친 스트레스와 생각으로 지치고 무리가 생기고 피곤해질 수 있지만, 스승의 힘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말하는 ‘내가 안다, 모른다.’ 하는 것은 내 두뇌를 말하는 겁니다. 당신의 사고방식을 알려면 나는 지금 알아야 합니다. 두뇌를 이용해 당신의 사고방식을 알아야 하지요. 하지만 그것 역시 두뇌의 영역에 속합니다.

아는 것은 스승의 힘입니다. 마음은 그것을 작은 정보로 간단히 처리할 수도 있습니다. 알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것이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스승은 마음이 반응하고 ‘내’가 반응하도록 만듭니다. ‘나’라는 것은 여러분이 보는 물질적인 의미인 것이지요. 스승의 힘으로서의 ‘나’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하며 늘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물질계에서는 아닙니다.

물질세계에서는 무슨 일이 생기거나 뭔가 필요하면 스승의 힘이 몸과 마음에 지시를 내려 그 특정한 일, 특정한 활동만을 하게 합니다. 스승이 하는 모든 일들을 몸이나 두뇌가 알고 이해하는 건 아닙니다. 두뇌와 육신은 제약이 있으니까요. 그들은 터지고 폭발하고 피곤해지거나 손들어 버립니다. 너무 많은 것은 감당할 수 없지요. 그래서 스승의 힘이 일을 해야 합니다.

늘 육체나 두뇌로 일하는 게 아닙니다. 물질적인 스승의 육체와 두뇌는 그 정도만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마치 차와 같지요. 여러분이 대통령이든 아랍의 왕이든 차를 매일 밤낮으로 운전할 수는 없습니다. 롤스로이스나 볼보, 메르세데스라 해도 때로는 쉴 시간이 필요합니다. 연료가 필요하고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그렇긴 해도 스승의 몸은 물론 차보다는 훨씬 대단합니다. 다르긴 하지만 우주의 법칙, 물질의 법칙 때문에 기진맥진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내 가르침을 받아들여 명상을 하고 육체가 하는 일이나 내가 하는 일에 신경 쓰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종교 지도자로서 스승님의 가장 뛰어난 자질은 무엇입니까?

나에겐 단 하나의 특출한 장점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사람들과 관계가 좋은 것 같습니다. 내가 예쁘게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는데, 그런 경우라면 더 예쁜 스타들을 찾아 지도자로 삼길 바랍니다. (스승님 웃음) 물론 이건 농담이에요. 여러분이 내 유머 감각에 익숙해졌으면 좋겠군요.


하지만 소말리아인들은 스승님의 가르침을 들은 적이 없잖아요?

있습니다. 내가 여기서 말해도 내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영혼으로 듣는 거지요. 우리 영혼은 어디나 있을 수 있으니까요. 영혼은 마이크나 모니터가 필요 없습니다.


에고가 없는 존재의 생각이란 무엇인가요?

스승에 대한 생각, 오불, 신의 왕국 등 여러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고귀한 생각입니다. 스승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모든 것, 내면의 모든 품성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자연스레 다가오지요. 여러분이 내게 기도해야 한다거나 그런 뜻이 아닙니다. ‘스승’은 우주에서 가장 좋은 모든 것을 대표합니다. 오직 그 빛 속에서 여러분은 스승을 생각해야 하고, 그 결과 모든 좋은 것들이 여러분에게 올 것입니다. 스승이 최상의 것을 보내니까요.

무언가가 최상의 것을 보내고 그 내면이 최상이라면 외적으로 어떤 모습이든 그건 중요치 않습니다. 그 속에 든 것이 가장 좋은 음료지요. 우리는 그릇이나 컵이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이 안에 든 음료가 최고인지만을 따질 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좋아하니까 나는 여러분에게 가장 멋진 컵을 선물합니다. 우리가 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사는 곳을 아름답게 해야 하지 않겠어요? 신이 내게 그런 재능을 줬다면 내가 왜 그것을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까?


사람들에게 뭔가를 제공하신다는 점과 관련해 스승님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언제든지 내 몸과 말과 마음이 신의 뜻에 따라 신의 곁에 가까이 있기를 좋아하는 자녀들을 위해 사용되도록 내놓는 것 외에는 줄 것이 없습니다. 나는 사용되도록 준비할 뿐입니다. 나는 줄 것이 많지 않습니다! (대중 웃음) 여러분과 같습니다. 육신이 무엇을 줄 수 있겠습니까?

칭하이 무상사/ 1990. 8. 13. 미국 길로이


종교란 것은 추종자들의 믿음입니다. 위대한 스승은 그 제자들에게 있어 살아 있는 우상과 같습니다. 스승님이 도쿄 공항에 도착하셨을 때 제자들이 매우 공식적이고 열렬하게 환영했는데, 전 그 광경을 보며 젊은 세대들이 영화배우나 스포츠 스타, 가수를 향해 보내는 열렬한 지원을 떠올렸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우상 숭배와 존경입니다. 종교 지도자로서 인기인처럼 느끼십니까?

나는 평화롭고 조용한 것을 좋아하지만 제자들의 감정을 막을 순 없습니다. 그들은 내가 자신들의 삶을 더 많이 이해하고 밝음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좋은 가르침을 주었기 때문에 나에게 감사해하는 겁니다. 마치 영어 선생님에게서 영어를 배웠을 때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것과 같은 거지요.

내 제자들은 점점 더 깨달아 가면서 나 자신, 이 물질적 육신보다는 나의 가르침으로 관심을 돌리게 됩니다. 하지만 나 개인적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결코 인기인처럼 느낀 적이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느낄 시간도 없어요.

중생을 구하는 일은 매우 힘이 듭니다. 여기저기 다니며 끊임없이 미소 짓고 끝없는 질문에 답변하느라 매우 지칩니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건 좋지만, 나는 그들 마음에 들기 위해 일하진 않습니다.


관음법문을 수행함에 있어 매일 집에서 명상할 때 옆에서 지도해 줄 스승이 없다면 마장에 걸릴까요?

그럴 리 없습니다. 입문을 한 사람에게 어찌 스승이 없겠습니까? 스승은 그 어느 곳이든 다 존재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스승은 이 육체가 아닙니다. 입문을 하면 모든 사람에게 화신 스승이 한 분씩 있게 됩니다. 그는 매일 당신을 돌봅니다.

어떤 때 당신은 그를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때 그에게 의문 나는 점을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수행이 좋은 사람만이 볼 수가 있습니다. 모든 이가 다 스승을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스승이 매일 그들과 함께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똑같이 “나는 결코 너희를 떠나지 않는다(I never leave).”라고 얘기했습니다. 만일 스승에게 모든 제자들을 돌볼 수 있는 힘이 없다면 그것은 사부(師父)가 아니라 사학(師學)입니다. (대중 박수)

칭하이 무상사/ 1988. 3. 6. 포모사 타이베이


스승님께서는 입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왕생할 때 그의 수행 정도와는 상관없이 데리고 올라가십니까?

이것은 그가 계를 분명히 지켰는지, 스승의 지시대로 수행을 했는지, 스승이 데리고 올라가는 것을 원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스승을 믿지 않은데다가 비방까지 했다면 좀 어렵지요. 그도 언젠가는 올라가겠지만 좀 늦게 가게 되겠지요. 어쩌면 우선 지옥에 보내서 일정 기간을 지내게 한 후 다시 데리고 올라갈지도 모릅니다.

칭하이 무상사/ 1988. 8. 3. 포모사 타이베이 중산당


그럼 내면의 스승을 찾을 때까지는 어느 정도 외부의 스승이 필요하다는 건가요?

그러나 스승은 내면의 안내자이기도 합니다. 육신의 차원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면 스승은 수천 마일 떨어져 있는 세계 도처의 제자들을 도울 수 없을 것입니다. 스승은 언제 어디서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이들을 돕기 위해 대단히 높은 경지에 있어야 합니다.

칭하이 무상사/ 1993. 10. 19. 미국 산타크루즈 ‘라디오 2000과의 인터뷰’


서양에서는 구도자가 교사에게 엎드려 숭배하는 것이 위험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교사가 진짜라면 문제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여러분은 자신을 숭배할 뿐이고, 이미 스승과 하나가 된 최고의 영혼을 숭배할 따름이니까요.


그 스승이 진짜라면,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깊이 성찰하도록 그가 거울이 되어 준다는 말씀입니까?

맞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스승이 가고 나면 제자들은 어쩌지요? 제자들은 다른 스승을 찾아가야 합니까?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일이나 물질적인 것에 대해 묻고 싶으면 살아 있는 다른 스승이나 그 스승의 후계자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내면에는 죽은 스승의 영적인 인도가 여전히 있습니다. 이미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는 여전히 책임질 수 있으며 계속 인도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과거의 스승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만 새로운 스승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수백 년 전의 옛 스승에게 가지 못하는 것은 그가 살아 있었을 때 그와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 연결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미 스승과 연결되었다면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여전히 그의 보호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죽기 전에 여러분과 연결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여러분을 보살필 수 있겠습니까? 알겠습니까?

칭하이 무상사/ 1991. 10. 18. 일본 도쿄


스승님은 세계를 두루 다니시기 때문에 여기에 머무르시며 모든 사람을 가르치실 수 없습니다. 그러니 스승님이 계시지 않을 때는 누구를 따라야 합니까?

그것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교사를 추종하지 않고 단지 그의 가르침만을 따릅니다. 그러므로 교사가 잘못되어도 우리는 절대 잘못되지 않습니다. 가르침이 옳다면 그 가르침을 따릅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이 옳은지 봐야 합니다. 내 윤리가 옳은지, 내가 가르치는 것을 내가 행하는지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고기를 먹지 말라고 가르치는 한편 나 역시 채식을 하고,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면서 나 역시도 훔치지 않습니다. 나는 자선을 베풀라고 가르치고 나 또한 자선을 행합니다. 나는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나 역시 사람들을 사랑하고 돕습니다. 나는 가르치는 대가로 돈을 받지 않고 스스로 돈을 법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잃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얻기만 할 뿐입니다.

또한 나는 불경과 성경에 기록된 모든 도덕적인 규범을 다시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그러니 내가 어떤 새로운 것이나 비도덕적인 것, 비윤리적인 것을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알겠습니까? 이제 여러분은 여러분의 교사가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것, 경전 이외의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안심해도 됩니다. 내가 가르치는 것은 전부 경전에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윤리적 행위는 변치 않았으며, 하느님과 부처의 계율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와 똑같은 것들을 가르치고 나 역시 그대로 행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최소한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거예요! 그러니 가르침도 옳은 것입니다. 맞지요?

그리고 명상은 지혜와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어떤 방법이든 얼마간 도움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 방법도 예외는 아닙니다. 나는 이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말할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나를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단지 여러분에게 알려 줄 뿐이며 선택은 여러분이 합니다.

나는 진리만을 말합니다. 이 방법이 빠르면 빠르다고 말합니다. 나는 출가자입니다. 출가자는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일반인들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데 무엇 때문에 출가자가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내겐 여러분의 돈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여기서 살지도 않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서 어떤 이득도 얻지 않습니다. 내일 떠나면 영영 못 볼지도 모릅니다. ‘안녕!’ 하고는 그만이지요. 그러니 나는 아무것도 얻는 게 없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은 안전합니다. 그렇지요?

그러니 여러분은 나를 따르지 말고 나의 가르침을 따르십시오. 가르침은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나를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명상의 진보에 관해 개인적인 조언이 필요하다면 내게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걸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스승에게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포모사(대만)나 내가 머무르는 곳으로 찾아올 수 있습니다. 내 육신은 여러분이 나를 만나 볼 수 있게 해주는 외양이고, 집이며, 사무실일 뿐입니다. 내가 영체만을 이용한다면 여러분이 나를 보지도 못하고 내 말을 듣지도 못할 테니까요. 그러면 어떻게 내가 여러분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이 육신을 이용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 내가 떠난 후 여기에 아무도 없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언제나 누군가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매우 신실하고 경지가 높다면 지금처럼 여러분의 집에 내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다가가는 것을 볼 것이고 필요할 땐 언제라도 볼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칭하이 무상사/ 1989. 10. 13. 미국 버클리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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